통합검색
원하시는 검색어를 입력해 주세요
참 외롭고 괴롭던 시절, 이러다가 혼자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까지 들었던 이봉우 님. 불교대학 수업도 자주 빠졌지만 '힘들어도 붙어 있기만 하라'는 진행자님의 응원에 힘입어 천일결사도 입재하고, 수행법회도 들었습니다. 보리수 활동 역시 도반들에게 등 떠밀리듯 시작했지만, 직장 일과 병행하기가 참 고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번에도 '힘들어도 붙어 있기' 정신을 발휘하였는데요. 그 결과 이봉우 님께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요?
아내와 저는 스무 살에 만나 결혼했습니다. 밥숟가락 하나 없이 빈손으로 시작했지만, 철이 없어서 처음에는 직장 생활조차 하기 싫었습니다. 큰아이가 태어나자 장모님이 의료보험 카드라도 만들어야 하지 않겠냐고 했습니다. 자동차 공장에 입사했고 6개월만 다닐 요량으로 일을 시작했습니다. 주야 10시간씩 2교대로 일하는 건 힘들었지만, 가족을 생각하니 좋은 가장이 되고 싶어 힘이 났습니다. 그러나 결혼생활은 늘 먹고살기에 바빴고, 돈에 쪼들리며 사는 기분이었습니다.
세 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어머니는 장사하느라 하루하루가 바빴습니다. 술을 많이 마시는 형님과 어머니는 끊임없이 다투었고, 늘 도움을 주어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저는 가난한 본가 형편을 신경 쓰면서 괴로웠습니다.
나름대로 부지런히 일을 하는 데도 돈은 부족했고, 고생시키고 싶지 않던 아내와 아이들에게는 점점 무심해졌습니다. 좋은 남편, 친근한 아빠가 되어 평범하게 살고 싶었는데 마음대로 되지 않았고, 가정불화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그저 돈이 많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법륜 스님을 알고 나서 즉문즉설을 1,000편 이상 보면서 스님에게 대단한 통찰력이 느껴져 일반 종교인과는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더 깊은 말씀을 듣고 싶어 정토불교대학에 입학하려고 했으나 2교대인 직장 일로 수업 시간을 맞출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던 중 코로나로 온라인 불교대학이 시작되었고 자의 반 타의 반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불교대학에서 공부하는 기간에도 가정에서의 문제는 계속됐습니다. 사랑해서 결혼한 게 분명한데, 상처 주려고 함께 사는 사람들처럼 참 많이 싸웠습니다. 보수적이고 이기적인 나는 시집살이와 경제 문제로 고단하고 힘든 아내를 제대로 챙겨주지 못했습니다. 술도 좋아해서 자주 마시다 보니 서로의 거리는 점점 멀어졌고, 결국 집을 나오게 되었습니다. 아무것도 없이 몸만 나와 혼자 지내면서 가족에 대한 책임을 다하지 못한 미안함과 가정을 지키지 못한 자책감이 커졌습니다.
남자가 혼자 사는 것도 창피했지만, 막상 할 줄 아는 게 없다는 사실에 아내에게 받기만 하고 살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몸이 아플 때는 ‘자다가 죽을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괴롭고 외로운 시간이었습니다.
이런저런 이유로 힘들다면서 불교대학 수업에 자주 결석하고 있었습니다. 진행자는 이유도 물어보지 않고 “싫어도 도망만 가지 마라, 힘들어도 붙어 있기만 하라”면서 응원하고 챙겨주었습니다.
덕분에 천일결사에 입재하여 새벽기도를 시작했습니다. 2교대로 시간 맞추기가 어려웠고, 원룸이라 기도 음원을 크게 틀어놓지 못했지만 빠지지 않고 매일 기도했습니다. 머리로만 공부하는 게 아니라 나를 내려놓는 정진이 필요했습니다. 스님의 법문과 도반들의 활동 및 나누기가 있는 수행법회도 여건이 되는 대로 참여했습니다. 그러나 돈 버는 게 더 중요하다는 핑계와 술을 좋아하는 탓에 수행을 점점 게을리했고 타성에 젖어갔습니다. 이러다가 정토회에 누를 끼치는 게 아닌지 걱정됐습니다.
그 무렵, 도반들의 권유로 등 떠밀리듯 보리수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그동안 교대 근무와 퇴직을 핑계로 보리수 활동보다는 ‘천룡사나 두북수련원 근처에 거처를 마련해서 적당히 봉사하며 살아볼까?’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런저런 궂은일을 힘들어도 마다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도반들에 대한 미안함에 거절하기가 힘들었습니다. 여지껏 봉사와는 거리가 멀었는데 이 기회에 정진이라도 백일은 해보자 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보리수 백일정진은 시작부터 난관에 부딪혔습니다. 자동차 공장에서 1주 2교대로 주 6일 근무하는 조건이라서 야간에 일하는 날은 교육을 받을 수가 없었습니다. 또한 일주일 중 하루 쉬는 날, 으뜸절에서 봉사하게 되니 몸에 무리가 와서 피곤했습니다. 괜히 한다고 했나 후회하는 마음도 들고 수입도 걱정되었습니다.
붙어 있기만 하라던 말이 떠오르면서 ‘어렵게 내디딘 한 발을 빼내지는 말자’라고 마음을 돌렸습니다. 사용하지 않으면 돈으로 받을 수 있는 월차를 보리수 교육 받는 시간으로 활용하면서 법회 참석, 실천장소 방문도 하게 되니 일석삼조였습니다. 회사에서 주는 말년 휴가도 보리수 정진으로 잘 쓰였습니다. 회피하고 싶은 마음이었는데 하려는 마음을 내니 방법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매주 카풀로 천룡사에 봉사하러 갔는데, 처음 만나는 도반이 대부분이었습니다. 내가 보기에 치부라고까지 할 수 있는 이야기를 서로 아무렇지 않게 편안히 말하는 것을 보고 놀랐습니다. 저도 부끄럽고 입이 안 떨어질 것 같은 제 얘기를 하나씩 꺼내 놓았는데 아무렇지 않았습니다. 가볍게 마음을 풀어놓으니 편안하고 홀가분했습니다. 도반들은 저에게 그만하면 잘했다고, 잘 살았다고 칭찬을 해줬습니다. 아내에게 들어보지 못한 칭찬을 들으니 기분도 좋고 감사했습니다.
첫 만남에서 서로 마음을 드러내 보여주고, 들어준 도반들과의 나누기는 새로운 법문이었습니다. 참 어렵게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나만 그런 게 아니라는 생각에 문득 부모님께 감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법사님이 보리수 백일정진 동안, 매주 한 번씩 수행 상태를 점검해주었습니다. “지금까지 잘 살아왔고, 사느라 고생했으니 수행하고 공부하면서 지금을 잘 살면 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자책하지 않아도 된다’라는 뜻으로 들리면서 지금까지 잘 살아왔다는 말에 울컥했습니다. 따뜻한 격려와 함께 “지금을 잘 살겠습니다”라는 명심문도 받았습니다.
나 자신을 사랑할 줄 몰랐던 지난 세월이 주마등처럼 스쳐가며, 법사님과 도반님들에게 받은 위로는 든든한 용기가 되었습니다.
실천장소인 천룡사로 가는 산길을 오르며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쉬는 날이면 유명한 산을 찾아 놀러 다니면서, 같은 산을 가면서 봉사라는 거창한 이름에 얽매여 그것을 일로 여긴 어리석음을 깨달았습니다. 효율성을 따지며 모든 것을 돈으로 환산하던 봉사에 대한 생각은 남을 위해서가 아닌 나를 위한 놀이로 새롭게 다가왔습니다.
한쪽에서 사진을 찍으며 즐거워하는 등산객들과 실천활동하는 불교대학 학생들의 들꽃 같은 웃음 속에서 예초기로 풀과 함께 마음의 번뇌까지 시원하게 베어내는 나를 보았습니다. 마음은 괴롭고 불편한데, 여건이 허락되지 않는다고 수행도 봉사도 한쪽에 밀쳐내고 계신 분들이 계시다면 보리수 정진을 꼭 해보시길 권해드립니다.
보리수 교육에서 법사님과 진행자, 선배 도반들은 자본주의 세상에서 대가를 바라지 않는 삶을 그대로 보여주었습니다. 그분들이 말없이 행하신 ‘무주상보시’가 인연이 되어 내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음을 깨달았습니다. 이제는 내가 길을 닦고 꽃을 심어, 다음에 오는 도반들의 마중물이자 길잡이가 되겠다는 마음을 가져봅니다.
발만 살짝 담그려는 저에게 수영도 해보라는 가르침을 주신 유수 스님 말씀처럼 주저함 없이 머무는 이곳에서 오늘 하루 잘 쓰입니다.
글_이봉우(보리수 9기)
편집_월간정토 편집팀
전체댓글 20
전체 댓글 보기정토행자의 하루 ‘월간정토’의 다른 게시글
다음 글이 없습니다.
이전글좋은 세상을 위한 큰 그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