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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종합선물세트'를 아시나요? 큰 상자 속에 다양한 과자가 7~8개 정도 들어 있어 평소 먹지 않던 새로운 과자를 먹어볼 수도 있고, 가격도 각각 사는 것보다는 저렴해서 인기가 많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오늘 소개할 이야기가 바로 수행의 종합선물세트 같다는 생각이 들어 추억을 소환해 보았습니다. 이 글에는 정토회 청년이 경험한 행복학교부터, 불교대학, 경전대학, 인도성지순례, 바라지장, 깨달음의 장까지 다양한 이야기가 녹아 있습니다. 정토회의 다채로운 활동들을 한꺼번에 맛볼 수 있는 선물 같은 글입니다.
10년 전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저는 한참 동안 우울한 시간 속에서 허덕였습니다. 늘 술을 많이 드시고 어머니를 힘들게 하던 아버지와의 관계도 외줄 타듯 위태로웠습니다. 힘들어하시는 어머니의 모습이 자꾸만 떠올라 어머니가 돌아가시게 된 원인이 아버지 때문이라 여기며, 죽을 때까지 아버지를 미워하고 원망하며 살겠다고 다짐도 했습니다.
공부 외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는 무기력한 저 자신을 한심하게 여기기도 했습니다. 사는 게 의미가 없고 삶을 산다기보다 시간의 흐름에 저를 방치했습니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내가 어떻게 병들어가고 있는지 무심하게 내팽개치고 살았습니다. 이런 제가 힘들어 보였는지 이모가 행복학교를 추천해 주셨고, 종교나 불교에 딱히 관심은 없었지만, 워낙 호기심이 많았던 터라 별다른 고민 없이 행복학교에 입학했습니다.
마음 편을 시작할 때 매주 출석 체크를 하는 그 자체가 저에게는 챌린지였습니다. 관계 편, 심화 편까지 들으면서 점점 행복학교의 매력에 빠졌고, 평화, 통일, 사회문제까지 들을 수 있어 가족 문제에만 국한되어 있던 시야가 점점 넓어져 감을 느꼈습니다. 행복학교를 통해 참 나를 알게 되었고, 나를 알게 되니 상대방의 감정도 헤아리게 되는 마음의 여유가 생기면서 괴로움도 줄었습니다.
행복학교 졸업 후 편안한 마음이 유지됐다가 한 달 후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들 때 이모가 다시 불교대학을 추천해 주셨습니다. 자연스럽게 2022년도 가을 불교대학 입학을 시작으로 경전대학까지 졸업했습니다. 잠시 정토회 활동 공백기가 생기자 고삐가 풀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런 내 모습이 싫었고 스님의 법문도 더 듣고 싶은 마음에 전법활동가 교육을 신청했습니다.
발심해서 무언가를 이루고 싶다는 생각보다 그냥 꾸준히 법문을 듣고 싶은 마음이 컸고, 도반들과의 나누기 맛도 알게 되면서 조금 더 마음을 내었던 것 같습니다. 전법활동가 교육을 받으며 타인을 돕는 일을 자주 하다 보니 가벼운 마음으로 지속적인 봉사를 하게 됐습니다.
어릴 적부터 낯가림이 심해 낯선 곳에 가면 울기 일쑤였지만 모순되게도 사람들을 너무 좋아했습니다. 항상 집에 친척들이 놀러 오면 마음은 반갑고 즐거우면서도 적극적으로 다가가는 게 너무 쑥스러워 누군가 먼저 말을 걸어주고 먼저 다가오기를 기다렸습니다. 학창 시절에도 친구들이 먼저 다가와야 함께 어울려 놀 수 있었고 표정도 늘 포커페이스라 친구들로부터 ‘너 좀 웃어라’ 하는 말을 자주 들었습니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더 웃기 싫었고 습관처럼 표정이 굳어져서, 한 번씩 웃을 때는 ‘웃을 줄도 아는구나’라는 친구들의 우스갯소리도 들었습니다.
어른이 되면서 제가 힘들다는 것을 타인에게 들키기 싫었습니다. 힘들 때 누군가가 그걸 알아차리고 다가와서 괜찮냐고 물어볼 때는 상대방이 나 때문에 신경 쓰는 게 민폐 같아 미안하기도 하고 어린애 같은 내 모습에 짜증이 올라왔습니다.
인도성지순례에 갔을 때 제 마음이 일어나는 과정을 볼 수 있었습니다. 순례 일정 중 계단이 엄청 많은 산을 오르게 되었는데, 고단한 순례길에 가파른 계단을 마주하니 더욱 힘들게 느껴졌습니다. 도반들이 하나둘씩 가방을 들어주겠다든지 보폭을 맞춰서 함께 걸어간다든지 저를 배려하는 모습이 고마운 반면, 타인에게 민폐 끼치는 것 같아 싫고 짜증 나는 마음이 함께 일어났습니다. 가끔 이런 힘든 상황에서 쉽게 물러나는 마음이 올라오는 자신이 어린애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경전대 수업을 들을 때만 해도 아침마다 정진하고 절에 가서 활동하는 모습을 보며 할머니가 정말 좋아하셨습니다. 그런데 경전대 졸업 후 돕는이 소임을 시작하면서부터 “또 절에 가냐, 절에 돈 많이 가져다줬겠다” 등 불편한 내색을 하면서도 활동을 반대하지는 않으셨습니다.
올해 초 바라지장에 두 번 다녀왔습니다. 그때 ‘사용하는 사람의 마음을 헤아려 잘 쓰이겠습니다’라는 명심문이 마음에 와닿았습니다. 바라지하면서 아침마다 생활 공간을 청소하고, 음식을 만들면서 ‘집에서 이렇게 살면 되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명심문을 품고 집에서 똑같이 생활했는데, 할머니는 제가 변했다고 느끼셨습니다.
수행정진 덕분인지 어려움이 닥쳤을 때 극복하는 힘이 조금은 길러진 것 같습니다. 정토회 활동 전에는 어떤 문제에 부딪혔을 때 해결하기보다 회피하는 방법을 선택했습니다. 어린애처럼 책임감 없이 일을 처리했는데 지금은 힘들어도 조금 더 인내심을 갖고 해결하려는 마음이 생깁니다. 늘 스스로에게 ‘괜찮지? 괜찮은가 보다, 참을 만한가 보다, 그럼 조금만 더 하자’ 하면서 무덤덤하게 극복할 수 있습니다.
서로 다르다는 걸 인정하니 분별심이 일어날 때도 ‘저 사람은 그렇게 생각하는구나’로 변했고, 친구들이 정토회 다니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말을 할 때도 ‘그럴 수 있지’ 하면서 웃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저의 이런 변화들이 조금씩 전법이 되었는지, 한번은 친구가 먼저 정토회에 관해 관심을 가지고 질문하길래 ‘온종일 청춘 톡톡’에 초대하여 함께 참여했습니다. 그 친구가 한번 체험하더니 주변 지인들에게 ‘정토회가 참 좋다’며 적극적으로 홍보를 했습니다.
활동하는 시간이 행복하고 재미있다 보니 너무 재미에 취해 정토회 활동을 하는 게 아닌지 회의감이 들었습니다. 스님에게 질문을 해보니 “재미없으면 관둘 거냐?”고 하셨습니다. 스님 말씀을 듣고 ‘재미가 있든 없든 할 건 해야지’라는 마음의 소리가 떠오르면서 단번에 고민이 해결되었습니다. 정토회에서 제일 인상 깊었던 활동은 집 근처에 숙소를 정하고 4박 5일 동안 경험했던 명상수련입니다. 명상수련 기간에 생일이 있어 나 자신에게 선물한다는 생각으로 신청하였고, 그 선택은 제 인생 최고의 선물이었습니다.
불편한 가부좌 상태로 아무리 아파도 진통제나 파스 사용 금지란 사항을 지키며 버텼는데, 처음에는 다리만 아프다가 나중에는 온몸으로 통증이 번지는 걸 느꼈습니다. 과정은 매우 고통스러웠지만 수련이 끝난 후 정신이 맑아졌고 몸과 마음이 정화된 느낌이었습니다. 그 이후로 사람들에게 명상수련을 적극 추천하게 되었습니다.
저의 내면을 마주하게 된 것은 역시 깨달음의 장(이하 깨장)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제 인생 모든 갈등의 근원이 아버지라 생각하던 시기였고, 아버지를 두둔하는 가족들에게도 분노의 불씨가 번졌습니다. 깨장에서 돌이켜보니 제가 아버지를 그토록 원망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버지도 열심히 살았고 사실 저를 많이 사랑했는데, 원망과 미움이 눈을 가려 사실을 보려 하지 않았던 나의 모습을 발견했습니다.
더 깊은 내면에는 아버지를 극도로 미워하는 것이 돌아가신 어머니에 대한 의리라는 생각이 있었던 것입니다. 깨장 이후로 아버지를 그냥 남이다 생각하고 어려운 이웃을 돕는다는 마음을 내기로 했습니다. 아버지는 지금 병원에 입원해 있고, 저는 그런 아버지를 가끔 돌봐 드리는 ‘봉사자’로 잘 지내고 있습니다.
깨장 마지막 날, 수련하는 동안 맛있는 밥을 해주신 바라지분들과 만남의 시간을 가졌는데 그중 한 분이 저와 같은 모둠의 법우님이었습니다. 너무 반갑고 감사한 마음에 저도 받은 것을 돌려주고자 바라지장을 신청했습니다.
정토회 봉사 기간에 늘 좋은 모습만 보여주고 싶었고, 소중한 도반들과는 좋은 기억을 간직하고 싶었는데 그 모든 게 바라지장에서 무너질 뻔하였습니다. 처음 접해본 바라지 공양간의 모습에 주눅이 들었고, 정신없이 돌아가는 시스템과 우당탕탕하는 소리, 팀장님의 지시 등이 너무 혼란스러워 분별심이 일어났습니다. 시킨 것을 또다시 해와라, 이렇게 해오라 하는 지시를 불편해하다가 순간 잘하고 싶고 잘 보이고 싶어 하는 마음이 살펴졌고, 그걸 내려놓으려고 마음먹으니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찾게 되었고, ‘어떻게 하면 될까?’ 연구하는 자세로 소임에 임했습니다.
바라지를 함께한 보살님들과의 나누기 시간에 머리로는 정토회를 만난 후 내가 어떻게 좋아졌는지 나누고 싶었지만, 그 말을 하려는 순간, 목이 탁 멨습니다. 예상 밖의 나누기를 하게 되면서 지금까지 어디서도 내놓지 못했던 나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게 되었습니다. 감정을 밖으로 표현하는 것을 싫어했던 제가 감정에 북받쳐 눈물을 흘리며 말하는 모습이 의외였습니다. 그 후 바라지 소임을 더 편안하게 할 수 있었고, 보살님들과도 서로 상처를 나눈 동지처럼 더욱 친밀하고 끈끈해졌습니다.
정토회의 더 많은 수련에 참여하여 계속 저의 참모습을 발견하고 싶습니다. 9박 10일 명상수련뿐만 아니라 기회가 된다면 백일출가도 하고 싶습니다. 4박 5일의 명상을 해봤기에 9박 10일의 명상을 하게 된다면 또 어떤 모습이 수면 위로 드러날까 궁금합니다.
백일출가도 기대되는 이유는 4박 5일 바라지장 봉사를 했던 것처럼 한다면 몸은 힘들지만,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무엇보다 타인에게 감정적인 모습을 보여주기 싫어하는데 끊임없이 부딪히는 상황일 때 어떤 반응을 할까 궁금하기도 합니다. 새벽에 일어나서 밥하고 일하고 정진하는 생활을 100일 동안 연습하다 보면 일상에서 늘 수행하는 자세로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꼭 가고 싶은 마음입니다.
제가 조금씩 변하다 보니 주변의 환경도 긍정적으로 변화하는 것처럼 보이고 사람들도 저로 인해 바뀌는 듯 느껴져서 지금 이 수행의 길을 놓치고 싶지 않습니다.
수행을 재미 삼아, 수련을 방편 삼아 부지런히 정진하고자 합니다. 저는 편안합니다. 그래서 행복합니다.
글_유수경(청년특별지부)
편집_월간정토 편집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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