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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지회 허지은 님을 줌으로 만났습니다. 2018년 불교대학 졸업 후, 불교대학 진행과 모둠장, 환경실천 꼭지 등을 했고, 지금은 불교대학 생방송 반 서제지부 담당과 반 담당을 맡고 있습니다. 어린 시절 어머니의 영향으로 인해 불교 공부를 했다고 합니다. 큰 어려움 없이 살다 불법을 만나 큰 세상을 알아가는 허지은 님의 이야기 함께 만나보겠습니다.
어머니가 절에 다니며 기도와 사경하는 모습을 보며 자랐습니다. 4남매의 입시 때마다 기도하는 모습이 제게 힘이 되었고 든든했습니다. 도시락을 싸서 다니던 시절로 어머니는 도시락 반찬 준비로 늦게 잠들었고, 틈틈이 사경도 했습니다. 그때의 향냄새가 좋았습니다.
불교대학에 다니는 어머니를 보고, ‘나도 어른이 되면 어머니처럼 불교 공부를 하고 싶다.'라고 막연하게 생각했습니다. 불교에 대해 아는 것은 없지만, 공부하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2018년 아이가 4학년이 되었습니다. 곧 사춘기가 시작될 아이의 손을 잘 놓아주고 싶어 인터넷에 검색하여 정토회 봄 불교대학에 입학했습니다.
저는 1남 3녀 중 셋째로 평범한 가정에서 자랐습니다. 형제자매가 많아 친구가 그립거나 외롭지 않았습니다. 형제끼리 놀고 공부하면서 보냈습니다. 아버지는 계획적인 성격이었습니다. 일을 할 때, 1안 2안 3안까지 생각하며 책임감 있게 가정을 이끌었습니다. 그런 모습이 저에게 가부장적이고, 억압으로 느껴져 답답하고 벗어나고 싶었습니다. 반면 어머니와 저희 남매들은 화기애애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큰 고민이나 걱정 없이 살았습니다. 학생 때는 공부를 했고, 졸업 후는 경제적 활동을 위해 직장에 다녔습니다. 당면한 일에만 집중하며 살아왔습니다. 그러다 보니 시야가 좁아 주변을 살펴보지 않았습니다.
2018년 서귀포 법당이 생기면서 5명으로 불교대학(이하 불대)을 시작했습니다. 시간이 지나고 저 혼자 남았습니다. 법당 총무님도 집 안에 일이 생겨 못 나오게 되자 불대 후반 3분의 1 기간은 혼자 법당문을 열고 수업을 시작하고 마쳤습니다. 컴퓨터를 켜고 삼귀의부터 끝까지 혼자 했습니다.
도반도 없었고 나누기도 없었습니다. 오프라인의 장점도 모른 채 배우는 즐거움만 있었습니다. 공부 자체가 재미있고 신기해서 즐거웠습니다. 그렇게 혼자 수업을 듣고 졸업했습니다. 불대 마지막 과정인 '천일결사 맛보기'는 어린 시절 어머니가 기도하는 모습을 보고 ‘나도 해 보고 싶다.’라는 마음으로 하였습니다. 정토회에 대한 정체성도 몰랐고, 천일결사 기도의 뜻도 모른 체 어머니와 같은 기복 신앙으로 하였습니다.
같이 공부하던 도반이 "나는 기도할 때 물 한 잔 떠서 아들 방 앞에 놓고 절을 한다."라고 했습니다. '너무 괜찮은 것 같다.'라는 생각에 저도 천일결사 기도할 때 그렇게 했습니다. 기도 후 “엄마가 기도한 물”이라고 하면서 아들한테 주었습니다. 아들은 좋아했고, 어느 날 물이 없으면 “그 물 어디 있어 ?” 찾기도 했습니다.
천일결사 입재식 후, 오프라인으로 법사님과 도반들이 둘러앉아 고민거리를 얘기하는데 ‘여기가 도대체 어디지? 뭐 하는 곳이길래 이렇게 사연 있는 사람들이 많지?’ 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제가 정토회에서 불대 공부를 한 이유는 괴로움을 해소하고자 한 것이 아니었고, 저는 지식을 쌓는 불교 공부에 많이 치중했었습니다. 법문을 듣는 것도 불대 공부도 새로운 내용이 재미있어 열심히 다녔습니다.
법문을 들으며 스님의 사회 활동, 정토회에서 하는 활동들을 보며 시야가 조금씩 넓어졌습니다. 주변을 보고 그 안에서 제가 할 일이 있고 할 수 있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혼자 불대에 계속 다닐 수 있었던 것은 같이 하는 것에 의미를 두지 않았고 그런 것이 중요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누군가와 같이하든 하지 않든, 제가 재미있으면 하고, 재미 없으면 도반이 아무리 많아도 하지 않았을 겁니다.
불대 과정 중 문경 수련원에서 하는 특별 수련은 마음이 불편했습니다. 낯선 곳에서 많은 대중이 한 곳에 모여 다 같이 하는 활동이 편하지 않았습니다. 학교생활은 별 불편함을 느끼지 못해 몰랐는데, 특별 수련을 통해 많은 사람들과 함께 모여 있는 것을 불편해하는 성향임을 알았습니다. 봉사도 5명 정도는 괜찮지만, 사람들이 많아지면 불편했습니다. 혼자 하는 것을 편하게 여기고, 누군가와 맞추는 것을 힘들어하는 저의 업식을 알았습니다.
학사 진행을 할 때, '소통 절차가 명확하지 않다.'라고 생각했습니다. 소통을 확실하게 하자고 요청하니, ‘지금까지 이렇게 했다’라는 답변을 받았습니다. 그때 도반에게 분별심이 올라왔습니다. 그 후 정일사 기간에 소통과 화합을 화두 삼아 정진했습니다.
그 무렵, 스님의 하루에 실린 '제각기 모양이 다른 돌들을 모아 쌓아 올린 불국사 축대를 모자이크 붓다에 비유한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전에도 들었던 내용이지만, 다시 듣는 순간 마음에 확 와닿았습니다. 분별심이 났던 도반과 저는 불국사 축대의 돌처럼 모양도 크기도 다르고, 심지어 반듯하지도 않을 수 있습니다. 불국사의 축대에 쓰인 돌들이 모양이나 크기와 상관없이 하나의 큰 축대가 만들어지듯, '모자이크 붓다를 이루려면 도반들의 다름 하나하나에 시시비비를 가릴 필요가 없다.'라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소임을 하는 것은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큰 그림의 한 조각이다'에 의미를 두었습니다. 이렇게 입장을 정리하니, '큰 그림을 보면 되지, 그동안 필요 없는 망상을 했다.'는 생각과 분별심도 정리되었습니다.
저는 지식적 학습에 치중하고 있어 부족함이 많았습니다. 앞만 보고 살았던 제가 봉사를 통해 주위를 살피는 사람으로 변했습니다. 봉사를 시작할 때는 주저함과 싫은 마음도 있었습니다. 어느 날, JTS 거리 모금을 하면서 무엇이 더 중요한지 배웠습니다. 잠깐의 저의 부끄러움과 아이들이 하루를 먹고 살 수 있는 것 중 어느 것이 더 중요한가? 생각하니, 모금함을 내미는 게 어렵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다른 일을 할 때에도 무엇이 더 중요한가 생각합니다. 나만 잘 먹고 잘사는 것보다 세상이 좋아지는 방향으로 마음을 내니 보람 있고 계속 봉사할 힘이 납니다.
저는 천일결사를 뜨개질에 비유합니다. “지금까지 가장 잘한 것이 있다면 뜨개질의 실을 끊지 않은 것입니다. 중간에는 큰 구멍, 작은 구멍이 있지만 긴 목도리가 만들어지는 중입니다. 구멍이 나더라도 계속 뜨개질을 하니 긴 목도리가 만들어지듯 매일 하는 기도가 수행에 가장 큰 도움이 된다.”는 내용입니다.
시댁은 모두 기독교인이고 시어머니는 목사입니다. 저만 불교입니다. 남편은 사고가 개방적이고 자유로워 저를 이해하고 정토회 활동을 지지합니다. 아들에게 “엄마가 많이 바뀐 것 같지 않냐? 화도 안 내고”라며 저를 칭찬하니, 아들도 그런 것 같다고 맞장구를 쳤습니다. 그동안 사람들에게 "나 많이 좋아진 것 같지 않냐?"라고 묻고 싶지만, 혹시 "아니"라고 말할 것 같아 묻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가족에게 직접 좋아졌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제가 실을 끊지 않고 뜨개질을 계속 한 결과입니다.
남편 또는 아들과 갈등이 있을 때면 그 사람이 부처라고 생각합니다. 수행으로 관점을 바꾸고, 뒤집어 생각하니 다툼도 줄었습니다. 예전에 아들의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았을 때 '제가 옳다.'라고 고집하고, “이렇게 해야 해!”라며 상대의 생각을 바꾸려고 했습니다. 싸움으로 이어지거나 문제가 되는 상황이 생기기도 했습니다.
수행하는 지금은, 제 의견이 받아들여지지 않아도 제 관점을 바꿉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전달하는 것이다. 시절 인연으로 내 뜻을 받아들일 때가 있을 것이다. 알아듣지 못해도 어쩔 수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안내하는 것까지.’라고 생각을 바꾸니 갈등이 없어졌습니다. 아들에게 안내하고 알려주는 것까지 제 일이고, 선택과 결정은 아들이 하고, 책임도 아들이 지는 방향으로 생각했습니다.
보시도 가벼운 마음으로 합니다. ‘법당에서 법문 듣고 공부하려면 인건비는 봉사로 해결하지만, 다른 부수적인 비용이 들어가니 사용료는 내야지’라는 마음입니다. ‘3배를 하든 108배를 하든 절할 수 있는 장소를 제공해 주었으니, 자릿값은 내야지’라는 마음으로 보시합니다. 해외에서 활동하는 스님의 영상을 보면서 저의 보시가 좋은 곳에 잘 쓰이는 것을 알았습니다. 보시 액수가 크든 작든 전혀 아깝지 않습니다.
정토회에 오기 전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을까?'라는 생각도 했었습니다. 정토회에서 봉사하며 제가 할 수 있는 것이 있음을 알았습니다. 3년 전부터 유기견 보호소에서 봉사하고 있습니다. 봉사하며 ‘쓰일 수 있어 좋다. 내가 존재하는 이유가 있구나’라는 것을 느낍니다. 소비하는 삶을 사는 게 아니라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생산적인 삶을 살 수 있어 좋습니다.
저는 몸으로 하는 봉사가 잘 맞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일을 받아들일 때 지식으로 받아들이는 성향이 있어 머리가 무겁게 느껴질 때가 많았습니다. 머리로 이해해야 행동으로 옮기는 편이니, 머리를 써서 하는 일보다는 몸으로 하는 일을 하고 싶습니다.
봉사를 통해 자존감이 올라가는 것을 느낍니다. 연말에 연탄 봉사 후 지도법사님이 ‘봉사는 자기 자존감을 높이는 일’이라고 했던 말씀이 오랫동안 기억납니다. 아들이 고등학생이 되고 시간 여유가 생겨 제 가족만이 아닌 더 큰 일, 더 좋은 일에 쓰일 수 있는 여건이 되었습니다. 여건을 마련해 준 남편과 아들에게 고맙습니다.
불법 만나 가장 많이 변하고 마음에 드는 저의 모습은 주변을 보는 시야가 넓어진 것, 저만 보지 않고 지구 반대편에 있는 사람들도 생각하는 것입니다. 최근에는 새벽 정진 후, 유기견 입양을 돕는 일이 잘 될 수 있도록 발원하는 기도도 합니다.
지도법사님이 막사이사이상 수상식에서 "세상에 생명 가진 모든 존재들에게 평화와 행복이 함께하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바라나이다."라고 하신 말씀이 마음에 와닿았습니다. 그동안 ‘세상에 생명 가진 모든 존재’가 제 마음에 없었는데, 그 말을 듣고 서서히 생겨났습니다. 그날 이후 정진이 끝날 때 스님과 같은 발원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불대를 다닐 때는 아들 기도만 했는데, 지금은 스님을 흉내라도 내며 세상을 위한 기도를 계속해야겠습니다.
일을 할 때 올바른 과정과 결과만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같이하는 사람들과의 화합이나 공동체 유지는 중요시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과정이 엉성하고 마음에 들지 않아도 화합할 수 있는 방향으로 결정하고, 손해가 있어도 화합을 우선으로 하고 있습니다.
저의 수행 과제는 ‘지금 여기, 나한테 깨어 있기’입니다. 핸드폰에 쏟아지는 다양한 매체들을 접하면서 정신이 분산되고, 집중이 잘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일을 미루지 않고 지금 할 일에 집중'하는 것을 수행 과제로 삼아 실천하고 있습니다.
불대 진행하면서 법 비를 흠뻑 맞았습니다. 배움을 향한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보며 초심으로 돌아가 새로운 힘을 얻었습니다. 매일 새벽 세상에 생명 가진 모든 존재들에게 평화와 행복이 함께 하기를 발원하는 기도로 하루를 시작합니다. 앞으로도 꾸준하게 이렇게 이어가겠습니다.
'인생에 굴곡이나 괴로움이 없었다면 이 공부를 시작했을까?' 글을 쓰는 내내 생각했습니다. 허지은 님은 어머니의 기도하는 모습을 보며 든든했던 순간의 기억과 사춘기 아들의 손을 잘 놓아 주고 싶은 마음이라는 소박한 이유로 불법을 공부했습니다. 지금은 세상을 위한 큰 그림의 한 조각을 잘 메꾸고 있는 허지은 님을 인터뷰하며 저도 다른 한 조각을 잘 메꿔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정토행자의 하루 기사 작성에 쓰이고 있어 고마운 마음입니다.
글_이재선 희망리포터 (대경지부 경주지회)
편집_최미영 (국제지부 아태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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