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5.9.26. 북미동부 순회강연(1) 뉴저지(New Jersey)
"한국에서는 잘 살았는데, 미국에서는 왜 이렇게 힘들까요?"

안녕하세요. 오늘은 뉴저지(New Jersey)에서 북미 동부 순회강연을 시작하는 날입니다.

새벽 5시에 숙소에서 새벽 기도를 마치고 미국 시각으로 오전 6시 30분, 한국 시각으로 저녁 7시 30분에 금요 즉문즉설 생방송을 하며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3400여 명이 생방송에 접속한 가운데 스님이 인사말을 했습니다.

“저는 지금 미국 뉴욕에 있습니다. 이곳 시간은 아침 6시 30분입니다. 어젯밤 10시경에 뉴욕 공항에 도착해서 숙소에 11시 넘어서 들어왔습니다. 그래서 아침 일찍 이렇게 여러분과 만나서 대화를 나누게 됐습니다. 앞으로 2주일 동안 미국 동부 지역에 있으면서, 저 북쪽으로는 캐나다 토론토부터, 남쪽으로는 휴스턴까지, 열 군데를 다니면서 교민들 또는 미국 현지인들과 통역을 통해서 인생과 세상에 관한 대화를 나누려고 합니다. 오늘은 온라인으로 한국에 있는 여러분과 대화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미국 뉴욕에서는 지금 유엔 총회가 열리고 있는 중입니다. 저도 내일 맨해튼에 가서 강연하게 되는데, 유엔 총회 때문에 교통 체증이 심해서 승용차로 못 가고 지하철로 가야 된다고 합니다. 미국은 또 여러 가지 정치적 혼란으로 많은 갈등이 있는 상황입니다. 미국의 관세 정책 때문에 미국과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지 지금 한국 정부도 많이 고심 중인 것 같습니다. 이런 혼란한 세상에서도 우리들은 마음의 평화를 유지하면서 하루하루를 살아가야 합니다. 세상이 혼란스럽다고 나까지 혼란스러우면 나만 손해니까요. 또한 그것은 세상의 혼란을 평화롭게 만드는 데에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세상이 어떻든 먼저 내 마음의 평정심을 유지해야 합니다. 그다음에 ‘세상을 위해서 내가 어떻게 기여해서 평화롭게 만들 것인가.’ 하는 관점에 선다면 우리가 작은 기여라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어서 사전에 질문을 신청한 네 명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중 한 명은 남편과 함께 살아도 더 외롭고 공허한 마음이 든다며 고민을 이야기했습니다.

남편과 함께 살지만 너무 외롭습니다, 이 결혼을 끝내야 할까요?

“저희 남편이 체력이 아주 좋아요. 한 달에 25일 이상 친구를 만나서 새벽까지 노는데도 출근도 잘하고 일도 잘합니다. 그런데 남편이 늘 바쁘다 보니까, 이제 같이 있는 시간과 공간이 너무 어색하고 불편해지더라고요. 돈 벌어 오는 기특한 큰아들이라 생각하면서 잔소리를 좀 내려놨는데, 그랬더니 점점 더 밖으로 돌고, 반항기에 접어든 아들처럼 대화도 되지 않아요. 저는 삶의 동반자와 나누는 정서적인 교감이 필요한데, 맨날 혼자서 마음을 다독이다 보니까 점점 더 외롭고, 슬픔에 갇히는 시간이 늘어나더라고요. 차라리 자유롭게 살라고 놓아 주고 싶은 마음도 있는데, 아이들도 있다 보니까 쉽지 않습니다. 마음을 다른 곳으로 돌려 보려고 취미도 가져 보고, 정말 바쁘게 일도 해 봤는데, 체력만 바닥나고 마음은 여전히 공허하고 힘듭니다.”

“첫째, 남편이 밖으로 도는 이유가 정말로 사업상 필요에 의해서인지, 질문자와 있으면 자꾸 따지고 묻고 해서 좀 답답한 건지, 그 원인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남편 입장에서 마치 껌딱지가 붙어서 이쪽 손에 붙었다가 저쪽 손에 붙었다가 하듯이 대화가 끝이 안 나고 자꾸 논쟁이 되면 말하기 싫어질 수가 있습니다. 질문자와 말하기 싫기 때문에 밖에서 술 먹고 친구들하고 어울려 있다가 밤 12시에 들어와 아침에 나가는 경우라면, 질문자부터 우선 상담을 해서 자기 점검을 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남편에 대해서 아무 관심이 없어도 문제지만, 너무 집착이 강해서 사람을 옥죄어도 상대가 답답함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 같이 살더라도 서로의 마음이 조금 자유로워야 해요. 남편에게 자꾸 반론을 제기하지 말고, 정말로 이혼을 고민할 정도로 힘들다면 남편하고 편안하게 차 한잔하면서 자신의 외로움을 한번 호소해 보세요.

‘여보, 나는 당신한테 다른 불만은 없어. 당신이 늦게 들어와서 시간을 같이 못 보내니까 내가 많이 외로워. 물론 나하고 있으면 당신이 좀 답답하게 느껴질 수가 있는데, 내가 너무 힘드니까 나를 조금 도와주면 안 될까?’

이렇게 남편에게 얘기해 보는 겁니다. ‘당신이 밖으로 돌아서 문제다.’ 이렇게 문제를 제기하지 말고, 나의 외로움을 얘기하면서 도움을 요청해 보는 거예요. 그리고 남편 얘기도 들어봐야 합니다. 아내의 얘기만 들어 보면 남편이 너무 무심한 것 같지만, 또 남편의 얘기를 들어 보면 아내가 너무 집착해서 답답하니까 집에 가기 싫은 것일 수도 있거든요. 그러니 우선 남편하고 대화가 좀 필요합니다. 물론 서로에 대한 선입견 때문에 처음에는 좋은 마음으로 대화를 시작하더라도, 결국 논쟁으로 번지며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대화를 중단하게 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자녀만 없으면 헤어져서 따로 사는 방법도 있는데, 일단은 자녀들이 있으니 최선을 다해 대화를 나눠 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남편에게 요구하지 말고, 저한테 얘기하듯이 나의 어려움을 남편에게 호소해 보는 겁니다. 그런데 남편이 이것도 듣기 싫어할 수 있어요. ‘또 그 소리!’ 이러면서 나가 버릴 수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번, 세 번 시도를 해 봐야 합니다. 자존심 세우지 말고 ‘여보, 나 지금 좀 힘드니까 도와줘.’ 이런 식으로요. 그리고 남편의 고충이 무엇인지, 남편이 어떤 문제 때문에 밖으로 떠도는지, 그 원인을 파악하는 게 필요합니다.

그런데 정말로 남편이 일이 많아 바쁘고 사업상 필요해서 밖으로 떠도는 것이라면, 내가 아무리 외로워도 남편을 봐 줘야 해요. 왜냐하면 남편 자신은 진짜 자녀와 가정을 위해서 헌신적으로 일하고 있는데, 마누라는 계속 ‘일이 더 좋으냐? 내가 더 좋으냐?’ 이런 식으로 비교해 가면서 자꾸 따지면 짜증이 나거든요.

그래서 첫째, 나의 어려움을 호소해 봅니다. 한 번 해서는 안 되고, 두 번, 세 번, 네 번 시도해 봐야 합니다. 하나하나 단계적으로 호소해 보고, 도저히 안 되면 마지막으로 나도 행복하게 살아야 하니까 이혼하는 길도 있다는 겁니다. 이미 자녀가 있기 때문에 덜컥 이혼부터 선택해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질문자부터 심리 치료를 해볼 필요가 있어요. 일단은 신경 정신과에 가서 상담을 통해 자기 점검을 해봐야 해요. 또 필요하다면 행복학교나 정토불교대학에 다녀보거나 깨달음의장을 다녀와 보세요. 이렇게 남편을 문제 삼지 말고 내 심리 상태를 먼저 점검하고 고치는 게 필요합니다.

둘째, 이렇게 자기 점검을 해 봐도 도저히 결혼생활을 하기가 어렵다고 판단이 되면 헤어져도 돼요. 그러나 자기 점검이 안 된 상태에서 이혼을 해 버리면 나중에 반드시 후회하게 됩니다. 아이들 문제도 있고, 생활 문제도 있고, 내가 자꾸 남편을 들들 볶아서 생긴 문제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기 점검을 먼저 해 보고, 남편에게는 나의 어려움을 호소해 봅니다.

‘여보, 나 어려움이 좀 있어. 내 어려움을 당신이 들어 보고 평가를 좀 해 줬으면 좋겠어. 내가 전혀 쓸데없는 생각을 하는 건지, 아니면 당신이 시간을 조금 내서 나를 도와줄 수 있는지, 점검을 한번 해줘.’

너무 불쌍하게도 하지 말고, 너무 따지지도 말고, 이렇게 호소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이런 방법을 통해서 극복해 가는 게 좋겠다고 생각해요. 이런 경우는 극복한 사례가 수없이 많습니다. 질문자의 답답함도 이해가 되지만, 충분히 극복할 수 있는 일이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사실은 스님이 말씀해 주신 것을 다 시도해 봤거든요.”

“어떻게 시도해 봤어요? 남편하고 대화도 해 봤어요?”

“신랑이 왜 그러는지 궁금해서 얘기를 해봤습니다. 제가 싫은 것도 아니고, 일을 굉장히 좋아하는 사람이라서 일이 힘든 것도 아니고, 그냥 친구들이 너무 좋다고 합니다.”

“그러면 남편이 친구들하고 놀 때, 질문자도 따라가면 안 되겠냐고 한번 물어보지 그래요?”

“그래서 그것도 몇 번 해 봤는데, 저랑은 너무 결이 달라서 힘들더라고요. 저는 남편 친구들과 어울리는 게 힘들었어요. 여자는 저 혼자고, 다들 미혼입니다. 저는 아이들이 있어서 매번 그렇게 나가는 것도 너무 힘듭니다.”

“매번 나가지 말고 가끔 나가면 되지요. 외로울 때만 가끔 나가면 되잖아요. 깨달음의장은 다녀왔어요?”

“아직 안 갔어요.”

“그럼, 깨달음의장을 먼저 갔다 오고 난 뒤에 얘기합시다. 깨달음의장을 다녀오면 대부분 다 좋아집니다. 지금 정토불교대학은 졸업했어요?”

“아니요.”

“아무것도 안 해봤는데, 왜 다 해 봤다고 그래요?”

“마음 수련을 좀 해보면 이런 병은 십중팔구는 해결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감사합니다. 한번 해보겠습니다.”

계속해서 질문들이 이어졌습니다. 한 시간 정도 대화를 나눈 후 스님이 정리 말씀을 해주었습니다.

“오늘 여러분이 질문한 내용은 인간이 살아가면서 누구나 다 겪는 일입니다. 밖으로 들어내어 하나하나 살펴보면 사실은 별일 아니에요. 그러니 여러분도 참지 말고, 드러내어 살펴보세요. 그러면 별일 아닌 줄을 깨닫게 됩니다. 그렇게 해서 스트레스를 안 받아야 합니다. 참기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 거예요.”

생방송을 마치고 나니 오전 8시가 넘었습니다. 아침 식사를 하고 오늘 일정을 점검한 후 휴식을 취했습니다.

점심 식사 후에는 뉴욕정토회 초기 임원이었던 이연순, 최경숙, 이명숙 님이 스님에게 인사를 드리기 위해 숙소로 찾아왔습니다. 세 분은 스님에게 삼배로 인사를 드린 후 함께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법당이 없던 시절, 법회 용품을 바리바리 싸들고 다니며 보따리 장사하듯 법회를 열던 이야기, 깨달음의장 수련을 위해 방석부터 모든 물품을 챙겨가며 장소를 전전하던 시절의 추억이 이어졌습니다. 이제는 머리가 희끗해진 할머니들이 되어 웃으며 지난날을 이야기했습니다. 오랜만의 만남을 기념해 함께 사진을 찍었습니다.

오후 4시 30분이 되어 강연장으로 출발했습니다. 오늘 강연이 열리는 장소는 허드슨강 동쪽, 뉴저지 주의 테너플라이에 위치한 한인 문화 공간인 KCC(Korean Community Center)입니다. 뉴저지는 한국에서 온 주재원을 비롯해 교민들이 많이 거주하는 지역입니다.

숙소에서 1시간이면 가는 거리지만 금요일 퇴근 시간과 겹쳐 2시간이 넘게 걸려 강연 시작 15분 전인 오후 6시 45분에야 도착했습니다.

강연장 주차장에 들어서자 많은 봉사자들이 스님을 반갑게 맞이했습니다. 봉사자들이 교통 체증 때문에 참가자가 적을까 봐 걱정하자 스님은 괜찮다며 다독여 주었습니다.

3층 강연장에 올라가니 실내도 봉사자와 참가자들로 북적였고, 마치 잔칫날처럼 활기찼습니다. 봉사자 중에서는 11년 전에 세인트루이스에서 즉문즉설 강연 봉사를 했던 분도 있었습니다.

오후 7시, 소개 영상이 끝나고 스님이 무대에 올랐습니다. 스님이 웃으며 인사를 건넸습니다.

“오시는 데 길이 많이 막혔죠?”

“네.”

“저는 뉴욕 퀸즈에서 출발해서 왔는데 두 시간이 조금 더 걸렸습니다. 사람들이 두 시간 전에는 출발해야 한다고 해서 저는 그 시간이면 워싱턴 D.C. 까지도 가겠다며 농담까지 했습니다. 그런데 정말 두 시간이 좀 넘게 걸린 거예요. 그래서 참석자들도 길이 막혀서 많이 늦을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그런데 다행히 모두 제시간에 잘 오셨네요. 모두 뉴저지에 사시는 분들인가요?”

“네.”

“요즘 사람들의 관점에서 보면 제가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는 방식인 즉문즉설이 법륜스님만의 좀 독특한 설법 방식으로 보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보면 부처님이 살아 계실 때의 방식과 거의 비슷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사람들의 어떤 요구나 필요에 따라 대화하셨을 뿐이지, 강의를 하듯이 사람들에게 일방적으로 말씀하진 않으셨어요. 불교의 다른 역사에서도 찾아 보면 ‘야단법석’과 비슷하다고도 말씀드릴 수 있어요. 요즘 미국 사람들이 쓰는 말 중에, '타운 홀 미팅(Town Hall Meeting)'이란 것도 들어 보셨죠? 즉문즉설도 저와 여러분이 타운 홀 미팅을 하듯이 자유롭게 대화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즉문즉설의 진행 방식을 간단하게 설명한 후 질문을 받았습니다. 두 시간 동안 여섯 명이 스님과 대화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그중 한 명은 미국에 와서 애도 잘 키우고 새로운 일도 하고 싶었으나 기대했던 것과 달리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며 스님에게 조언을 구했습니다.

한국에서는 잘 살았는데, 미국에서는 왜 이렇게 힘들까요?

“저는 한국에서 한 12년간 회사 생활을 했고, 미국에 이민 와서 아이를 낳아 키우고 있습니다. 한국에 계속 있었더라면 좋은 보육 제도를 이용하며 잘 키웠을 텐데, 미국에 살면서 여러 가지 힘든 점이 많습니다. 미국 사회에 적응하기도 힘들고, 또 일을 새로 시작해 보려고 하면서 생긴 어려움도 너무 많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제 경력까지 살리려다 보니 첩첩산중으로 느껴집니다. 친정 부모님이나 시부모님들께서는 제가 한국에 있을 때도 잘 살았으니, 미국에서도 잘 살아갈 것이라고 생각하십니다. 그런데 저는 그저 앞길이 막막하게만 느껴지고 너무 힘이 듭니다. 제게 천만 원이 있는데 그 돈으로 무엇을 할지도 고민이 됩니다. 왜냐하면 사실 처음에 올 때는 새로운 일을 해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막상 와보니 그럴 만한 환경이 아니라고 느껴졌습니다. 차라리 그 돈으로 한국에서 일하던 직종의 자격증을 다시 따서 좋은 회사에 취직하여 안정적으로 사는 게 낫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질문에 초점이 없는 것 같아요. 뭘 말하려고 하는지 대략 이해는 했습니다. 한국에서 살다가 미국에 오니 적응하기 어렵다는 점과 아이 키우는 게 어렵다는 것 같아요. 그런데 천만 원이 있는데 그걸 어떻게 쓰는 게 좋겠냐는 건 너무 막연한 질문입니다. 생활비로 써도 되고, 아이 교육비로 써도 되고, 그건 질문자가 알아서 하시면 될 일입니다.

원래 살던 곳을 떠나 이민을 와서 살면 당연히 어려움이 생길 수밖에 없죠. 그래도 성공할 확률이 높은 조건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세 가지 정도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첫째, 못사는 나라에서 저임금을 받으며 살던 노동자가 미국처럼 잘 사는 나라로 이민하는 경우입니다. 예를 들어, 40년 전에는 한국에서 막노동하는 노동자가 하루에 10달러씩 받고 살았어요. 그런데 미국에 이민을 와서 똑같은 일을 하면 하루에 100달러씩 벌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면 그 사람이 건설 노동자를 하든, 식당 종업원을 하든, 똑같은 일을 하고도 수입이 10배나 늘어나게 되죠. 그런 사람은 이민을 와서도 잘 적응해서 살아갈 가능성이 큽니다. 그 나라의 말을 얼마나 잘하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이런 조건에서 온 사람들은 영어를 못해도 손짓, 발짓으로 소통하며 대부분 정착해서 잘 살아갑니다.

두 번째는 학생 신분으로 와서 이민 사회에 뿌리를 내리는 경우입니다. 한국 사람이 미국에 가든, 베트남 사람이 한국에 가든, 학교에 먼저 다니면서 그곳에 뿌리를 내리면 이민을 와서 성공할 확률이 매우 높습니다. 학교에 다니면 일단 언어를 배울 수 있고, 친구도 사귈 수 있습니다. 또 그 나라에서 인정하는 자격증도 딸 수 있어요. 이렇게 학교에 먼저 다니다가 사회에 나온 사람들도 그 사회에 매우 쉽게 적응합니다.

세 번째는 많은 돈을 가지고 이민을 온 경우입니다. 예를 들어, 한국에서 미국으로 올 때 100만 달러나 200만 달러쯤 가지고 오는 겁니다. 그러면 그 돈으로 잘 되는 가게를 통째로 인수할 수 있습니다. 이 방식도 이민에 성공할 확률이 높습니다. 직원도 기존 현지 직원들을 그대로 고용해서 운영할 수 있습니다. 물론 실패할 가능성도 있지만, 이 방식도 비교적 성공하기 쉬운 방법입니다.

그러나 미국에 올 때 돈도 많이 없고, 유학을 와서 학교에서부터 미국 사회에 적응한 것도 아니고, 미국 사회에서 저임금의 일을 할 수 있다는 자세도 없는 사람이라면, 이곳에 적응하고 살아가기는 어렵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질문자처럼 한국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 다니다가 약간의 기술만 가지고 결혼해서 이민 온 사람들은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습니다. 예를 들어, 베트남에서 한국에 이민 온 사람들은 그가 베트남에서 제일 유명한 대학을 나왔거나 법대나 공대를 나왔다고 하더라도 한국 사회에서는 그 학력을 인정해 주지 않기 때문에 막노동부터 할 수밖에 없습니다. 베트남 사회 안에서는 중학교만 졸업한 사람과 유명 대학을 나온 고학력자가 취업 시장에서 받는 대우는 엄청나게 차이가 나겠지만, 한국 사회라는 환경에서는 중학교만 나온 사람이 훨씬 더 빨리 적응하게 됩니다. 베트남의 고학력자가 한국에 오면 베트남 사회에서 받는 만큼의 학력을 인정받지 못하기 때문에 한국의 취업 시장에서는 중학교만 졸업하고 온 사람과 큰 차이가 없습니다. 대부분 공장 노동자로 채용될 가능성이 높죠. 그런데 그들은 ‘내가 베트남에 있었더라면 이런 일을 하면서 살지 않았을 텐데’ 하면서 한국에 와서도 사무직에 미련을 가지기 마련이에요. 그래서 이런 사람들은 대부분 이민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고국으로 돌아갑니다.

미국에 온 한국의 초기 이민자들은 대부분 평범한 서민이었습니다. 그래서 미국에 와서도 아무 일이나 할 수 있었어요. 작은 가게를 차려도 대부분 잘 정착해서 살았습니다. 그런데 요즘 이민 오시는 분들을 보면 대학까지 졸업하신 분들이 많아졌어요. 그런 분들은 대부분 자리를 잘 잡지 못합니다. 의사처럼 아주 전문적인 기술을 가지고 온 분들은 예외지만, 대부분 마음고생을 굉장히 많이 합니다. 한국에서는 대학을 졸업하고 자기 전공을 어느 정도 살리면서 회사에 다녔는데, 미국에 오면 이민자가 그런 조건의 취업을 하기가 어렵다는 걸 확실히 느끼게 되니까요. 그래서 한국 대졸 학력자라면 대부분 하지 않을 일을 미국에 와서 하게 됩니다. 그 과정에서 자존심이 많이 상하게 되죠.

질문자도 미국 사회에 이민 와서 적응하기 좋은 조건을 가지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아 보여요. 그래서 첫째, 한국으로 빨리 다시 돌아가는 게 좋겠다고 말씀드립니다. 미국에 와서 살아 보니 ‘여기 살 만하다.’ 하는 생각이 들지 않고 ‘한국보다 살기가 더 어렵네.’ 하는 생각이 든다는 것은 한국에서 그럭저럭 잘 살았다는 걸 방증합니다. 아주 가난한 환경에서 살던 사람이 미국 같은 나라에 온다면 살기 어렵다는 말이 나올 수가 없어요. 이민 사회에 적응하는 것은 현지어 실력과는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가난한 환경에서 살던 사람들은 미국에 와서 무슨 일을 하더라도 자기 나라에서 일할 때와 비교하면 수입이 10배 이상 많습니다. 그러니 살기 어렵다는 소리가 나올 수 없어요. 미국에 살면서 자꾸 고국 생활에 대한 미련이 남는 이유는 한국에서 살 때 좀 잘 살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질문자는 미국 생활이 힘들 수밖에 없어요.

미국에 정착하려면 한국 생활과 자꾸 비교하면 안 됩니다. 영어를 못해도 뭐든지 적극적인 자세로 살아야 합니다. 저 같은 경우에는 미국에서 살려는 생각이 없으니까 영어를 안 배우게 돼요. 그런데 미국에서 살겠다면 꼭 영어를 배워야 합니다. 물론 저도 30년 전에 미국에서 부처님 법을 전하려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어요. 세계 전법을 하려면 한국에서 활동하지 않고 주로 미국에서 활동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었죠. 그러려면 우선 영어를 모국어처럼 유창하게 하는 게 필요했습니다. 영어를 가장 잘 배울 수 있는 방법이 뭘까요? 대학교에 다니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 아닙니다. 한국 사람이 전혀 없는 곳으로 가서 미국 사람과 결혼해서 사는 게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미국 사람과 결혼해서 5년만 살면 말문이 트입니다. 즉문즉설을 하려면 상대의 표정이나 음성에서 섬세한 감정을 파악해야 하거든요. 그러지 않고 통역을 통해 대화를 하면 대부분 말의 뜻만 오고 갈 뿐 상대와 속 깊은 소통을 하기가 어렵습니다. 고무풍선을 계속 불면 점점 부풀어 오르다가 어느 순간 확 터지는 것처럼 외국어를 익힐 때도 심리적 압력이 커지다가 어느 순간 확 터지면서 말문이 트입니다. 그런데 중간에 답답하다고 자꾸 한국말을 쓰면 실력이 늘기 어려워요. 그런데 그렇게 하려면 제가 승려 신분으로 활동하는 데 제약이 따를 수밖에 없잖아요. 그래서 망설이다가 결국 그런 선택을 할 수가 없었던 겁니다.

그것처럼 질문자가 미국에 정착해서 살려면 한국에 돌아가려는 생각을 접어야 합니다. ‘한국에 살 때가 좋았는데, 여기에서는 이런 게 힘들구나.’ 이런 생각을 하면 안 됩니다. ‘미국에 왔으니 무조건 이곳에서 산다.’ 이런 마음으로 살아야 길이 열립니다. 자꾸 한국 생활에 대한 미련이 생기면 차라리 빨리 돌아가는 게 더 낫습니다. 시간 낭비가 되는 것이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에서 살아본 경험이 한국으로 돌아간다고 해서 전혀 쓸모가 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미국에서 잠시라도 살아 본 경험이 한국에서 사는 데 좋은 자산이 될 수 있어요. ‘미국 이민 생활이 힘들어서 한국으로 돌아왔으니 내 인생은 실패야.’ 이렇게 생각할 것이 아니라 ‘나는 미국에서도 한번 살아 봤다.’ 이렇게 생각해야 합니다. 그러면 한국에 돌아와서 살아도 도움이 됩니다. ‘말도 잘 통하지 않는 낯선 미국에서도 정착해 보겠다며 열심히 살아 봤는데, 한국에서라면 얼마든지 잘 살 수 있어. 어려울 건 없어.’ 이렇게 생각해야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 더 잘 살 수 있습니다.

그래서 빨리 한국으로 돌아가거나 아니면 한국에 대한 미련을 딱 끊고 살아야 합니다. 그렇게 딱 집중해서 살다 보면 어느 순간 적응하게 될 거예요. 그렇지 않고 지금처럼 계속 어중간하게 양다리 걸친 것처럼 살면 적응하기가 점점 더 어렵습니다.”

“감사합니다. 잘 알았습니다.”

계속해서 질문들이 이어졌습니다.

  • 결혼 이후에 중국으로 같이 가서 살자고 하는 중국인 남편이랑 갈등이 있습니다. 어떡하면 좋을까요?
  • 정성껏 키운 스물네 살 직장인 외동딸과 사이가 좋지 않습니다. 저도 어릴 때 엄마와 불편했던 관계가 있었는데, 같은 상황이 비슷하게 반복되는데 어떡하면 좋을까요?
  • 매형의 전처와 아버지를 합장해서 이제나마 관을 옮기려고 하는데 매형의 반대가 심합니다.
  • 어릴 적 이혼하신 아버지와 최근에 재회를 했습니다. 그동안 아버지가 재혼도 하시고 잘 사셨던 걸 보니 마음이 좋지 않습니다.
  • 발가락을 다쳐서 108배가 힘듭니다. 108배 대신 어떤 수행을 할 수 있을까요?

질문자가 더 있었지만, 어느덧 강연을 시작한 지 2시간이 지나 아쉽지만 스님이 정리 말씀을 해주었습니다.

”오늘 즉문즉설은 인생 얘기만 하다가 끝났네요. 요즘 미국 사회가 많이 혼란스러운데 미국에 사시는 분들이 미국 사회에 관한 질문은 아무도 하지 않으시네요. 한국에서도 정치적 변화가 많았는데 그것에 관한 관심도 별로 없나 봅니다. 미국에서 살다 보니 트럼프 대통령을 닮아서 그런지 기후 위기에 대한 관심도 없으신가 봐요. (웃음)

지금 막 손드신 분이 계시지만 예정했던 시간을 이미 넘겨서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 여러분 모두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큰 박수와 함께 강연을 마쳤습니다.

강연 후 무대 앞에서 책 사인회가 열렸습니다. 외국인 참가자도 있었습니다. 스님은 내일 맨해튼에서 영어 통역으로 강연이 진행된다고 알려 주었습니다.

사인을 받은 많은 분들이 “먼 길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유튜브로 강연 들을 수 있어 참 고맙습니다.”라며 인사를 전하였습니다.

사인회를 마치고 봉사자들과 단체 사진을 찍었습니다.

“뉴저지 파이팅!”

사진 촬영 후에는 오늘 강연 총괄을 맡은 이선림 님과 부총괄 장경지 님에게 감사의 마음을 담아 스님의 책을 선물했습니다.

봉사자들은 뒷정리를 마치고 묘덕 법사님, 법해 법사님과 마음 나누기를 했습니다. 해외 지부뿐 아니라 행복본부, 국제지부 회원들도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달려와 함께 강연을 준비해 주었습니다.

“유튜브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이번 봉사를 통해 절절히 느꼈습니다. 스님은 정말 모자이크 붓다이십니다.”

“내일 뉴욕 강연에서도 봉사하겠습니다.”

스님은 “내일 뉴욕 강연에서 또 봅시다.”라고 인사하고 먼저 숙소로 출발하였습니다. 돌아가는 길은 올 때보다 교통이 한결 수월하여 오후 10시 20분경 숙소에 도착하였습니다.

내일은 새벽 1시에 온라인으로 정토불교대학 입학식을 하고 오후 2시에 뉴욕에서 교민 대상 즉문즉설 강연을 한 후, 오후 7시에는 맨해튼에서 영어 통역 즉문즉설 강연을 할 예정입니다.

전체댓글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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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상훈

고맙습니다 ^^

2025-09-30 07:02:13

정태식

“이런 혼란한 세상에서도 우리들은 마음의 평화를 유지하면서 하루하루를 살아가야 합니다.
세상이 혼란스럽다고 나까지 혼란스러우면 나만 손해니까요.
또한 그것은 세상의 혼란을 평화롭게 만드는 데에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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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한 세상, 불편한 사람들 속에서도 편안한 마음을 가지고자 수행 정진을 합니다.

2025-09-30 06:58:51

해탈지

어떤 어려움에 처했을때 감정적으로 대처할 것이 아니라 방법을 총망라해서 실천해 봐야 후회가 없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옛날에는 좋았는데... 잘 살았는데' 라며 과거에 얽매이다 보면 개선되는 것은 없고 오히려 더 힘들어지니 과거는 잊고 현재를 직시하고 현재의 환경에 맞게 살아야함을 알겠습니다.

2025-09-30 06:5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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