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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두부를 만들고 경주에서 미팅을 하였습니다.
스님은 새벽정진과 명상으로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스님은 원고를 수정한 후, 오전 6시가 되자 공양간에 가서 부탄에서 온 활동가들과 함께 두부 만들기를 시작했습니다. 일을 시작하기 전 스님은 먼저 두부 만드는 과정을 설명했습니다.

“콩을 8시간 정도 불려서, 부드럽게 갈고, 갈 때는 물을 조금씩 부어가면서 갑니다. 콩물을 끓일 때는 불 조절이 가장 중요해요. 계속 저어가면서 끓여야 합니다. 끓이다가 끓기 시작하면 불을 줄이고, 넘치지 않게 찬물을 조금씩 부어요. 이렇게 세 번 정도 끓인 후에 콩물을 천 주머니에 부어서 짜야 합니다. 흔들어서 콩물을 어느 정도 뺀 다음 다시 천 주머니를 단단히 묶어서 계속 짜야 해요.

짜서 거른 콩물에 간수를 넣으면 콩물이 엉킵니다. 엉키면서 맑은 물이 생기는 데 천을 바치고 떠냅니다. 그리고 천을 깐 틀에 담고 덮은 다음 위에 무거운 것을 올려 눌러주면 두부가 됩니다. 덜 누르면 부드럽고, 많이 누르면 단단한 두부가 됩니다. 엉긴 두부를 넣고 바로 먹으면 순두부입니다. 자, 이제 시작해 볼까요.“


어젯밤부터 불려둔 메주콩은 알맞게 불어 있었습니다. 스님은 기계를 켜고 콩을 갈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콩이 기계 밖으로 튀기도 했지만, 물을 조금씩 부어가며 갈자, 금세 부드럽게 갈렸습니다. 기계를 사용하니 10kg의 콩이 금방 갈렸습니다.


다음 단계로 큰 솥에 갈아 놓은 콩물을 넣고 저어가며 끓였습니다. 콩이 솥 바닥에 눌어붙지 않도록 쉬지 않고 저어야 했습니다. 끓기 시작한 콩물이 솥 위로 치솟자, 스님은 재빨리 찬물을 부어 넘치지 않게 했습니다.


콩이 충분히 익자 콩물을 자루에 옮겨 담아 물기를 짜냈습니다. 뽀얀 두유는 대나무 발 아래 양푼에 차곡차곡 모였고, 자루 안에는 비지만 남았습니다.


이어 법사님이 준비해 온 간수를 넣었지만, 예상과 달리 두유가 잘 엉기지 않았습니다. 스님은 식초를 조금 넣어보자고 했고, 식초를 넣자 두유가 서서히 몽글몽글 엉기며 순두부가 되었습니다. 스님의 지인을 통해 다시 간수를 조금 얻어오기로 했습니다.



잠시 후 스님은 두부 틀에 삼베를 깔고 순두부를 담았습니다. 삼베를 덮은 뒤 나무 뚜껑을 올리고, 물을 가득 채운 냄비를 눌러 무게를 더했습니다. 시간이 지나자, 두부 틀 아래 구멍으로 물이 조금씩 빠져나오기 시작했습니다. 물이 빠지면서 두부가 단단하게 모양을 갖추었습니다.
마지막 콩물에는 스님의 지인을 통해 새로 공수된 간수를 부었습니다. 간수를 부으니 두부가 잘 엉겼습니다.
스님은 완성된 두부를 칼로 자르며 행자님들에게 말했습니다.

"자, 두부 맛보세요. 부탄에서 온 행자들은 실컷 드세요.“
고소하고 부드러운 두부였습니다. 잘 익은 묵은지와 함께 먹으니 그야말로 꿀맛이었습니다.

스님은 오늘 미팅에서 만날 분들을 위해서 두부를 잘 잘라 선물용으로 준비했습니다.
스님은 두부를 만들면서 땀을 많이 흘려 외출을 하기 위해 잠시 씻고 옷을 갈아입었습니다. 9시 30분에 차를 타고 경주로 이동했습니다.

9시 50분 약속 장소인 옛날 경주역에 있는 카페에 도착하였습니다. 오랜 인연인 종수 스님, 신라문화원의 진병길 원장님을 함께 만났습니다. 먼저 스님은 오늘 아침에 만든 두부를 선물하였습니다.
”오늘 아침에 만든 두부입니다. 두부 만들다가 급하게 준비하고 이곳에 나왔어요. (웃음)“
차를 마시며 JTS의 파키스탄 사업에 관한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대화를 마치고, 다음 미팅 장소인 경주시청으로 이동했습니다. 경주 시장님과 천룡사 불사에 관한 미팅을 진행했습니다. 스님은 30분가량 미팅을 하고, 경주시장 님에게 두부를 선물로 드렸습니다.


미팅을 마치고 두북수련원으로 이동을 하려는데 동국대학교 총장님이 스님에게 점심 대접을 하고 싶다고 갑자기 연락이 왔습니다. 하지만 스님은 현재 스리랑카 일정 이후 설사를 하고 몸이 좋지 않아 식사는 할 수 없고 오히려 차를 마시는 게 어떻냐는 제안을 하여 동국대학교로 이동하였습니다.

동국대학교 총장실에서 총장님, 종수스님, 신라문화원장님과 함께 차담을 하고, 내부 건물 소개와 총장님의 동국대학교 운영에 대한 비전에 대해서 잠시 듣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차담을 마치고, 두북수련원에 복귀하니 어느덧 오후 1시가 되어있었습니다. 스님은 점심을 먹고 날이 하도 더워서 오후에는 휴식을 하였습니다.
오후 7시 30분에는 온라인 즉문즉설이 예정되어 있어 스님은 법문을 하기 위해 방송실로 이동했습니다.
스님의 소개 영상을 시작으로 금요 즉문즉설이 시작되었습니다. 온라인으로 4000여명이 동시 접속하여 스님의 즉문즉설을 시청했습니다.


스님은 스리랑카에 다녀온 이야기를 잠시 공유한 뒤, 최근 날씨에 대해 이야기하며 법문을 시작했습니다.
“요즘 날씨가 무덥습니다. 지구 전체로 보면 작은 나라인 한반도, 그 안에서도 제가 있는 이곳은 울산입니다. 울산은 비 한 방울 내리지 않은 채 쨍쨍한 무더위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같은 경상도인 문경에는 비가 많이 와서 물바다가 되었다고 하고, 충청도에는 200밀리미터가 넘는 비가 내려 홍수 피해가 크다고 하지요. 저는 여기서 농사를 짓고 있는데, 지금은 들깨를 비롯한 농작물의 모종을 옮겨 심어야 하는 때입니다. 들에 있는 모종의 일부를 옮겨 심었는데, 물을 줘도 햇살이 너무 심해서 다 말라 죽었습니다. 며칠간 구름이 끼어 있고 비가 축축이 내리는 장마철에 옮겨 심으면 들깨가 잘 자랍니다.
요즘은 국지성 기상 현상이 자주 나타나고 있습니다. 좁은 지역에 비가 집중적으로 쏟아진다든지 가뭄이 계속되는 것은 기후 변화의 한 모습입니다. 기온이 갑자기 높아지거나 낮아지는 것뿐만 아니라 국지성 폭우나 가뭄으로, 산불 같은 피해가 생기기도 합니다. 이런 기상의 변화를 우리는 지금 세계 곳곳에서 겪고 있어요. 제가 스리랑카를 방문했을 때, 평소 같으면 비가 계속 내리는 우기였습니다. 그런데 일주일을 머무는 동안 마지막 날에 비가 조금 내린 것 말고는 비 한 방울 안 왔습니다. 비가 올 것을 대비해 챙겨 간 우산도 쓸 일이 없었어요. 비가 안 와서 여행하기에는 편했지만, 농사짓는 사람들은 우기에 비가 와야 모내기를 할 수 있으니 어려움이 많을 것 같습니다. 날씨는 늘 조금씩 변하지만, 요즘은 그 변화의 폭이 옛날보다 훨씬 커진 것 같습니다.

이제 우리 이야기를 한번 나눠볼까요? 날씨의 변화만 심한 게 아니라 그보다 더 변화가 심한 것이 사람의 감정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감정 기복이 지나치게 심하면 병이라고 말합니다. 날씨도 매일, 매년 조금씩은 변합니다. 그런데 그 변화의 폭이 일정한 한계를 넘어섰다고 보기 때문에 이것을 ‘기후 위기’라고 하고 여러 가지 대책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감정도 마찬가지입니다. 감정의 기복은 사람마다 다릅니다. 그러나 내가 90퍼센트 안에 있으면 비교적 괜찮습니다. 그런데 양극단의 5퍼센트 정도에 위치한다면, 그것은 질병이라고 봐야 합니다. 단순히 ‘성질이 더럽다’라고 생각할 것이 아니라 정신 질환으로 보고 치료를 받아야 합니다. 약간의 상담 치료나 약물 치료를 받으면 비교적 빨리 심리적인 안정을 취할 수 있습니다.
옛날에는 정신 질환에 대해 아는 것도 없고 정보도 없어서 정신 분열이 아주 심하고 통제가 안 될 때만 정신병이라고 했습니다. 지금은 일상에서 자기감정을 조절하기 어렵다면 정신 질환으로 보고 적절한 치료를 받는 것이 필요합니다. 누군가와 헤어진 후에 오는 아쉬움과 슬픔의 감정이 너무 커서 몸져눕고, 음식도 못 먹고, 삶의 의욕도 잃는 경우가 있습니다. 상심이 너무 깊어 병이 된 상태인 겁니다. 이럴 때 우리는 ‘세월이 약이다’라고 하며 몇 달 시간이 지나면 낫는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헤어짐이나 사망처럼 원하지 않는 일을 겪은 충격으로 생긴 일시적인 정신 질환으로 봅니다. 이럴 때 약간의 치료를 받으면 회복 속도가 훨씬 빨라질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기분이 조금만 안 좋아도 치료를 받으려 하거나, 잠이 안 온다고 약으로 잠을 자려고 하는 것처럼 과용해서는 안 됩니다. 요즘 치료용 마약의 오남용이 늘어나 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되기도 하지요. 잠이 안 온다고 프로포폴(Propofol)을 맞는 것은 지나친 약물 남용입니다. 반면에 감정 기복이 심할 때 조금만 치료받아도 나을 수 있는데, 정신 질환에 대해 잘 몰라서 치료를 못 받는 경우가 있어요. 이것도 문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비교적 어르신들은 몸이 아파도 병원에 가서 검사받는 것을 꺼리는 경우가 많아요. 저부터도 병원에 안 가려고 하거든요. 결국 병을 키워서 더 큰 병을 만들게 됩니다. 이가 아파도 너무 늦게 병원에 가서 결국 이를 빼게 되고, 허리도 수술까지 가게 됩니다. 진짜 많이 아플 때까지 병원에 안 가고 버티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미리미리 건강 체크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젊은이들은 또 조금만 다쳐도, 작은 일에도 병원에 가서 치료받으려고 합니다. 지나치게 의존하는 것도 문제겠지요. 정신 질환도 너무 병원에만 의존하는 것도 문제지만, 너무 거부하는 것도 문제라는 말씀입니다.
어떻게 살아야 인생을 적절하게 살아갈 수 있을지 대화 나누면서 알아보겠습니다. 여기서 ‘적절하게’라는 말이 매우 중요해요. 철학적인 용어로 말하면 ‘중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넘치지도 않고 모자라지도 않은 상태, 바로 적절함을 말합니다. 이런 상태를 우리가 어떻게 유지하며 살아갈지가 중요합니다. 자 그러면 여러분들의 이야기를 한번 들어보겠습니다.”

4명의 질문자가 사전 질문을 신청하였습니다. 4개의 질문 중, 실수로 부인의 때려서 후회하고 있는 질문자에 대한 스님의 법문을 소개합니다.
“저는 결혼 36년 차입니다. 부부싸움을 하다가 실수로 아내의 오른쪽 귀를 때렸습니다. 그 일로 아내가 많이 아파하고 있습니다. 저희 부부는 둘 다 성격이 불같지만, 이혼이나 별거는 하고 싶지 않습니다. 제 참을성 부족을 인정합니다. 어떻게 하면 좋을지 가르침을 주십시오.”
“솔직하게 말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봉건시대에는 자식은 부모의 소유물이었습니다. 자식을 키울 때 부모가 때리기도 했어요. ‘내 자식 내가 때리는데 누가 뭐라고 해’하는 식이었죠. 아내도 남편의 소유였습니다. 말을 듣지 않는다고 때릴 수도 있었어요. 종 역시 주인의 소유였기 때문에 양반들이 종을 때렸습니다. 예전에는 스승이 제자를 때리는 것도 교육적인 목적으로 허용하면서 ‘사랑의 매’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군대 훈련도 마찬가지였고, 스님들도 처음 절에 들어가 공부할 때 스승으로부터 맞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부처님은 어떤 경우에도 폭력을 행사해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2600년 전 당시 사람들은 그 말을 현실에 맞지 않는 이야기라고 생각했어요. 아이를 때리지 않고 키우는 것도, 아내를 때리지 않고 길들이는 것도 불가능하다고 여겼던 거죠. 하지만 지금은 이런 폭력이 모두 범죄입니다. 가정폭력, 학교폭력, 직장폭력에 해당합니다. 질문자는 실수라고 표현했지만, 사실은 가정폭력에 해당하는 행위입니다. 성격이 불같은 것은 개인의 문제지만, 그 결과는 가정폭력이라는 범죄가 됩니다. 신고를 하면 접근 금지 같은 조치를 받을 수 있어요. 아이를 때렸다면 사회보호시설에서 아이를 보호한다고 부모와 분리할 수 있고, 아내를 때렸다면 강제 격리될 수도 있습니다. 회사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면 형사처벌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이렇듯 옛날 사람들은 관습적으로 폭력을 행사했지만, 현대 사회에서는 폭력을 범죄로 규정합니다. 질문자는 이번 일을 계기로 폭력은 절대로 허용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분명히 자각해야 합니다. 부인이 신고하지 않은 것만 해도 다행이에요. 만약 부인이 저에게 이런 질문을 했다면 저는 반드시 신고하라고 말씀드렸을 겁니다. 사랑하더라도 신고해서 처벌 받아야 남편이 개선될 수 있기 때문이에요.

보통 화가 나면 눈에 뵈는 게 없어진다고 합니다. 한마디로 이성을 잃은 미친 상태예요. 그래서 폭력 행위가 나오는 것입니다. 화가 나지 않아야 평화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어요. 간디의 비폭력 운동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저항하지 말자는 것이 아니라 폭력적으로 저항하지 말자는 뜻입니다. 우리나라도 3·1운동을 비폭력으로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일제가 총칼로 무참히 탄압했기 때문에 독립운동이 무장투쟁으로 이어진 것이죠. 사회적으로는 긍정적으로 평가하기도 하지만, 오늘날 국제 사회는 무장투쟁을 테러 행위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화가 나는 근본 원인은 ‘내가 옳다’는 생각입니다. 그런데 조금만 사실을 들여다보면 이 세상에는 옳고 그른 것이 없습니다. 믿음이 다르고, 생각이 다르고, 이념과 사상이 다르고, 취미와 성격이 다를 뿐이에요. 나를 기준으로 삼으면 상대가 틀린 게 되는 것입니다. 길을 가면서 한 사람이 앞서고 다른 사람이 뒤따라간다고 할 때, 앞사람을 기준으로 하면 뒤에 오는 사람이 느린 게 되고, 뒷사람을 기준으로 하면 앞에 가는 사람이 빠른 게 됩니다. 실제로는 다만 두 사람의 속도가 다를 뿐이에요. 그런데 자기를 기준으로 잡으면 서로 다름이 아니라 옳고 그름의 시비가 되어 버립니다.
질문자는 어떤 경우에도 ‘서로 다르다’라는 사실을 마음에 새겨야 합니다. 아내와 나는 취향도 다르고 입맛도 다를 뿐이라는 것을 늘 기억해야 해요. 이것이 상대를 존중하고 인정하는 태도입니다. 앞으로는 음식을 먹을 때 ‘왜 이렇게 싱겁지?’라고 말하면 안 됩니다. 내 입맛을 기준으로 하니까 싱거운 것이지, 다른 사람에게는 오히려 짜게 느껴질 수도 있어요. 옳고 그름을 따지기 시작하면 상대는 ‘간이 잘 맞는데?’라고 하고, 나는 ‘간도 볼 줄 몰라?’ 하면서 성질을 내게 됩니다. 그렇게 싸움이 시작되는 거예요. 그래서 늘 ‘다를 뿐이다’는 사실을 명심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나도 모르게 즉각적으로 화가 확 올라오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럴 때 한 번, 두 번, 세 번 참다 보면 결국 화가 터집니다. 화가 터지면 목소리도 커지죠. ‘보자 보자 하니까!’ 하며 폭발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참으면 안 됩니다. 질문자의 성격이 폭발하는 이유는 늘 못마땅해하며 참고 있기 때문이에요. 평소에 참지 말고, ‘화가 나는구나!’ 하고 알아차려야 합니다. ‘화가 일어났구나’, ‘내가 또 옳다고 생각하는구나!’ 하고 자기를 살펴야 합니다. 그런데도 나도 모르게 화를 팍 냈다면 금방 사과해야 합니다. 화가 나는 것을 먼저 알아차리고, 서로 다름을 살펴야 합니다. 그런데 화를 냈다면 재빨리 사과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 화나는 횟수도 줄고, 화가 올라오더라도 화를 안 낼 수 있습니다. 설령 화를 냈더라도 금방 사과하기 때문에 큰 싸움으로 번지지 않아요.
상대가 ‘그런 것 가지고 왜 화를 내?’라고 하면 내가 ‘미안해’라고 사과하면 됩니다. 그러면 싸움이 시작됐다가도 금방 사그라집니다. 그리고 방에 들어가 참회를 해야 합니다. ‘내가 또 옳다고 주장했구나. 알아차림을 놓쳤구나’ 하며 자신을 돌아보며 108배를 하는 등의 방법으로 참회해야 합니다. 그럼 점차 개선이 될 수 있어요.

어떤 경우에도 폭력을 행사해서는 안 됩니다. 만약 폭력 행위를 했다면 진솔하게 사과해야 합니다. 변명해서는 안 돼요. 이유가 무엇이든 폭력을 행사한 것은 잘못이기 때문에 사과하는 것입니다. ‘너 때문에 그랬다’라고 이유를 붙이면 해결이 안 돼요. 이유를 따지지 말고 사과하는 관점을 가져야 합니다. 요즘 황혼 이혼이 많지요. 남편이 직장에 다니면서 돈을 벌어 올 때는 큰소리를 치고 아내에게 심부름도 시키며 살아왔지만, 지금은 은퇴를 했고 이제는 사회가 변했고 나이도 들었습니다. 그러면 아내 마음속의 갈등도 커집니다. 예전에는 아이들이 어리니까 참고 살았지만, 요즘은 그렇지 않습니다. 최근 몇 년 사이 황혼 이혼이 크게 늘었습니다. 질문자가 어려운 이야기를 해주셨는데, 이번에는 넘어갔지만 자칫 황혼 이혼으로 이어질 수도 있는 사례입니다. 예전에는 자식들이 부모의 이혼을 말렸지만, 요즘은 별거라도 하라고 조언하는 쪽이 많아졌어요.
내가 순리대로 살려면 ‘성질대로 살아서는 안 된다’라는 각오를 해야 합니다. 옛날에는 이런 일이 허물이 아니었는데 이제는 허물이 됩니다. 폭력은 부처님 법에도 어긋나고, 현행법에도 어긋납니다. 우리가 어릴 때부터 아버지가 어머니를 때리고, 선생님이 학생을 때리는 모습을 보고 자랐기 때문에 우리의 행동에도 관습적으로 폭력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그런 환경에서 자랐기 때문에 나도 모르게 폭력 행위가 나오는 것이니 주의해서 개선해야 할 점이에요. 그래도 우리가 남은 생을 행복하게 살려면 폭력적인 습관을 극복해야 한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네, 감사합니다.”
이 질문 이외에도 다음과 같은 질문들이 있었습니다.
교사이며 만 4세 자녀가 있습니다. 저와 남편은 과도한 핸드폰 사용이 문제입니다. 저는 매일 2~3시간 사용하고 남편은 잠시도 핸드폰을 손에서 놓지 못합니다. 저만 핸드폰 사용을 자제하면 될까요? 그리고 남편을 문제 삼지 않으면 아이는 저를 보고 배울 수 있을는지요?
회사에서 승진하고 인정도 받았지만, 정작 제 마음은 점점 행복에서 멀어지는 것 같습니다. 세상이 말하는 성공과 내가 느끼는 행복이 다를 때, 무엇을 기준으로 살아야 할까요?
직장 동료들이나 친구들을 보면 항상 다들 약속이 있고 할 일이 있는 것 같습니다. 무료함과 외로움이 나날이 무거워지고 앞으로 몇십 년 동안 이래야 한다고 생각하면 숨이 턱 막힙니다. 저는 어떤 것을 못 받아들이고 있는 걸까요?
법문을 마치며 스님이 정리 말씀을 해주었습니다.

"인생을 살다 보면 이런저런 문제가 발생합니다. 그렇다고 어떤 것이 꼭 바른길이라고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에요. 이렇게 살아도 되고 저렇게 살아도 됩니다. 다만, 내가 살기 위해 남을 죽이거나, 내가 이익을 보려고 남에게 손해를 끼치거나, 내가 즐거워지려고 남을 괴롭히면 반드시 과보가 따릅니다. 그에 따르는 대가는 나중에라도 지불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자가 좀 많이 붙습니다. 그 이유는 복수심인데 인간의 심리가 한 대 맞으면 세 대쯤 때려야 속이 풀립니다. 이런 것은 우리가 나쁘다고 말할 수도 있고 어리석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불교에서는 나쁘다고 말하기보다 어리석다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상대에게 손해를 끼치는 것이 결국 나 자신에게 더 큰 손해를 끼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런 어리석은 행위를 하지 말자는 거예요. 그 외에는 자유롭게 살고 그 결과는 받아들이자. 너무 조심하고, 너무 눈치를 보며 살지 말고, 남이 돈을 많이 벌든 말든 신경 쓰지 맙시다. 죽을 때 돈을 짊어지고 가는 것도 아니니까요. 나는 돈이 없어도 좋다, 남의 지위가 높든 말든 이것도 좋다. 이렇게 자기만족을 하면서 살면 됩니다. 중요한 것은 자기가 자기 삶의 주인이 되어 살아가는 것이에요. 그런데 여러분은 늘 돈에 기죽고, 지위에 기죽고, 사랑에 기죽고, 그렇게 마지 못해 살아요. 그게 좋으면 그렇게 살아도 되지만 다람쥐도 토끼도 산에서 자유롭게 사는데 우리는 사람으로 태어났으니 좀 더 자유롭게 살아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조금 그렇게 자유롭게, 행복하게 여러분의 삶을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다음 주에 또 뵙겠습니다."
스님은 방송을 마치고 사무실에서 업무와 보고서 수정을 한 후 휴식하였습니다.
내일은 고인돌 주변을 정비하는 울력과 아도모례원에 이동해 미팅을 할 계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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