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3.1.31 인도성지순례 3일째, 수자타아카데미 개교기념식, 만인공양
“수자타가 부처님께 공양을 올렸듯이 여러분께 공양을 올립니다”

안녕하세요. 오늘은 수자타아카데미가 개교한 지 29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동시에 정토회 30년 만일결사 회향 기념으로 둥게스와리 마을주민 1만 명에게 공양을 올리는 날입니다.

수자타아카데미 쁘락보디홀에서 새벽 예불을 하며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예불을 마치고 나오니 날이 차츰 밝아지면서 부처님이 6년 동안 고행을 한 성지인 전정각산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아침 일찍부터 개교기념식을 준비하기 위해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분주하게 움직였습니다. 마을 주민 1만 명이 앉을 수 있게 담요를 깔고, 도시락 1만 개를 구역마다 배치했습니다.



개교기념식을 시작하기에 앞서 순례단은 8시부터 인도 JTS에서 봉사하시다가 무장괴한의 침입으로 돌아가신 설성봉 거사님 추모식을 했습니다.

추모식을 마치자 마을 주민들이 학교 안으로 입장하기 시작했습니다. JTS에서 나눠준 티켓을 받은 사람만 입장을 할 수 있기 때문에 교문 밖으로 줄이 길게 이어졌습니다.


마을 주민 만 명이 학교 안에 들어오자 운동장이 빈틈없이 가득 찼습니다.

부다가야의 외국절 스님들과 이 지역 내빈들도 29주년 개교기념식에 많이 참석했습니다. ICCS Director 아사이 바베(Aasish Bhave)님, 국회의원인 린구 야다브(Rinku yadav)님, 보드가야 한국절 분황사 주지 부다팔라 스님, 인도JTS 이사장인 쁘리야팔 스님 등 여러 분들이 자리를 빛내 주었습니다.

먼저 한국에서 온 풍물패의 신명 나는 공연과 함께 개교기념식의 문을 열었습니다.

학생들이 빤짜실을 한 후 우렁찬 목소리로 교가를 제창했습니다.

이어서 인도JTS 이사장인 쁘리야팔 스님이 환영사를 해주었습니다.

“지난 29년 동안 둥게스와리 마을을 위해 학교를 운영해 준 법륜 스님과 JTS 활동가들에게 진심으로 감사 말씀을 드립니다. 법륜 스님이 항상 직접 행동하고 모범을 보여주셨기 때문에 수자타아카데미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유치원생들이 노란색 옷을 입고 무대에 올랐습니다. 보기만 해도 미소가 절로 지어지는데 동요에 맞춰 앙증맞은 춤을 보여주었습니다.

이어서 초등학교 1, 2학년 공연, 6학년 여학생들의 공연, 중학교 여학생, 중학교 남학생들의 공연이 차례로 펼쳐졌습니다.




마을 청년들도 공연을 준비해서 보여주었습니다. 두르가푸르 마을과 자그디스푸르 마을 청년들은 아주 힘 있는 동작으로 음악에 맞춰 멋진 춤을 추었습니다. 마을 청년들은 수자타아카데미 졸업생이 대부분이었습니다.


마을 주민들도 공연을 선보였습니다. 까나홀 마을 주민들이 법륜 스님과 수자타아카데미에 대한 이야기를 가사로 만들어서 노래를 부르며 악기를 연주해서 큰 박수를 받았습니다.

아이들은 평소에 갈고닦은 태권도 실력도 뽐냈습니다. 야무지게 팔을 내지르고 시원한 발차기로 접시 위에 담긴 꽃잎을 격파했습니다. 아이들의 동작 하나하나에 만 명의 청중이 열렬한 박수를 보냈습니다. 무대 아랫사람들은 아이들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습니다.


한참 신나게 공연을 즐긴 후 스님이 무대에 올라와 축사를 했습니다.

“마을 주민 여러분, 즐거웠습니까? 마을 청년들이 무대에 올라와서 공연을 했고, 여러분의 자녀인 학생들이 무대에 올라와서 공연을 했습니다. 여러분의 자녀들이 춤추는 것을 보고 자랑스러웠습니까?”

“YES!”

스님은 전정각산 주위에 15개 마을 주민들이 각각 어디에 앉아 있는지 직접 호명하며 확인했습니다.

“두르가푸르 마을 주민들 어디에 계세요?”

“자그디스프르 마을 주민들은 어디에 계세요?”

“방갈비가 마을 주민들은 어디 계세요?”

...

이어서 마을 주민들 모두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했습니다.

“인도JTS가 시작된 지 올해로 30년째이고, 수자타아카데미가 시작된 지는 29년째입니다. 제가 30년 전 이곳을 처음 방문했을 때 많은 아이들이 구걸을 하고 있기에, 왜 아이들이 학교에 가지 않고 구걸을 하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여러분이 근처에 학교가 없어서 학교에 못 간다고 대답했습니다. 그 일을 계기로 이 지역에 학교 짓는 일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사르빤지 씨와 수칸 만지 씨를 비롯해서 마을 분들과 의논해서 마을 사람 10명이 각각 1가타씩 보시를 해서 교문 앞에 있는 초등학교 공사를 시작했습니다.

수자타가 부처님께 공양을 올렸듯이

지난 30년 동안 학교가 이렇게 규모 있게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주민 여러분들의 협력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학생들이 와서 공부를 했기 때문에 학교가 유지될 수 있었습니다. 또 유치원마다 땅을 기증해 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올해는 인도JTS 창립 30주년이기 때문에 주민 여러분께 공양을 올리려고 합니다. 30년을 날짜로 세면 만일입니다. 그래서 오늘 여러분 만 명을 초대해서 정성을 기울여 공양을 올립니다.

소녀 수자타가 부처님께 공양을 올렸듯이 저희들이 여러분께 공양을 올리고자 합니다. 원래 따뜻한 밥을 드려야 하는데, 사람이 너무 많아서 도시락으로 만들었으니까 양해 부탁드립니다.


누구나 배우게 되면 훌륭하게 자랍니다

오늘 아이들의 공연을 보면서 사람은 누구나 배우게 되면 훌륭하게 자란다는 걸 알 수 있었을 겁니다. 우리 아이들은 인도 어느 지역의 어느 학교 아이들 못지않게 공부도 잘하고, 운동도 잘하고, 춤도 잘 추고, 노래도 잘합니다.

우리는 인도뿐만 아니라 전 세계 어디를 가든 부처님께서 6년 동안 고행하신 둥게스와리에 살고 있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해야 합니다. (모두 박수)


우리가 비록 가난하기는 하지만 우리의 자녀들이 열심히 공부해서 앞으로 10년, 20년, 30년이 지나면 여러분도 다른 도시에 사는 여느 사람들 못지않게 자유롭고 행복하게 살 것입니다. 그러니 절대 희망을 잃지 마시고, 꿈과 목표를 가지고 열심히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마지막 공연은 매년 같은 공연입니다. 수자타아카데미의 시작과 현재를 표현하는 춤입니다. 1993년, 구걸하던 아이들이 학교를 다니며 변화한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마지막 공연을 보며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공연 끝에 아이들이 법륜스님과 여러 귀빈들을 모시고 무대 위로 올라와서 꽃목걸이를 걸어주었습니다. 오늘 공연했던 모든 아이들이 올라와 손을 흔들며 개교기념식이 끝났습니다.


개교기념식이 끝나고 마을 사람들에게 쌀을 한 포대씩 나눠주었습니다. 정토회 만일결사 회향 기념으로 둥게스와리 마을 주민 만 명에게 공양을 올리는 행사입니다. 오늘은 1250명의 순례단이 모두 자원봉사자가 되어서 쌀과 도시락을 나눠주는 일을 도맡았습니다. 스태프로 참가한 실무자들은 오늘 만인공양 행사를 신속하고 질서 있게 진행하기 위해 몇 개월 동안 고민하고 연구하고 준비했습니다.

학교 전체를 4개의 구역으로 나눠서 실무자와 순례단이 각각 배치되었고, 순례단은 쌀 배분팀과 도시락 배분팀, 감사 인사팀으로 나뉘어서 서로 교대하는 방식으로 프로그램을 진행했습니다.

먼저 수자타 아카데미를 처음 지을 때 자신의 땅을 보시해 준 10명의 어른들에게 스님이 직접 쌀 포대를 나눠주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자, 받으세요.”

이어서 마을 주민들이 10명씩 나란히 서서 쌀 포대를 받은 후 도시락을 받는 장소로 이동했습니다.


마을 주민들은 그동안 JTS에서 나눠주는 구호품을 많이 받아보았기 때문에 질서 정연하게 줄을 잘 섰습니다. 쌀을 받은 주민들은 출입구에서 도시락을 받아서 교문 밖으로 나갔습니다.




스님은 1 구역부터 4 구역까지 전체를 돌아보며 배분에 지체가 생기는 부분을 하나씩 해결했습니다. 지체가 가장 많이 생긴 곳은 도시락을 받는 3 구역이었습니다. 지체가 생기는 곳마다 스님이 직접 조정을 해주었습니다. 막혔던 곳이 뚫리기 시작하면서 도시락 배분이 다시 원활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만인공양을 1시간 동안 진행할 계획이었는데 도시락 배분에 지체가 생기면서 2시간 30분 만에 만인공양을 마칠 수 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수자타아카데미 학생들에게 쌀과 도시락을 나눠주는 것을 끝으로 만인공양을 무사히 마쳤습니다.

“수고했어요!”

오후에는 1250명의 순례자들이 가야산을 올라갈 계획이었는데 대중을 인솔하는 법사님들이 스님에게 제안을 했습니다.

“오늘 뙤약볕에서 만인공양을 하느라 순례단이 모두 지쳐있는데 가야산을 가야 할까요? 다들 피곤해서 쉬면 좋겠는데요.”

“그럽시다.”

순례단은 모두 휴식을 하도록 하고, 스님은 스태프들을 데리고 쌀 포대가 남아 있는 곳으로 향했습니다.

“아직 힘이 남는 사람들은 전부 저를 따라오세요.”

쌀포대를 여유 있게 준비하다 보니 만인공양을 마치고 420포대가 남았습니다. 스님은 인도인 스태프와 한국인 스태프를 모두 불러 모아 남은 쌀포대를 창고에 차곡차곡 쌓았습니다. 쌀포대가 무너지지 않도록 피라미드식으로 깔끔하게 쌓은 후 창고 문을 닫았습니다.

해가 저물고 저녁 6시에 1250명이 쁘락보디홀에 모여 저녁예불을 했습니다. 예불이 끝나고 인도 JTS 사업소개가 이어졌습니다. 8년째 JTS 사무국장을 하고 있는 보광법사님이 인도JTS를 소개하고 질의응답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인도 JTS 각 부분에서 봉사를 하고 있는 인도인과 한국인 활동가들을 무대에 올려 소개했습니다. 학교, 병원, 마을개발, 건축부 순서로 한 명씩 소개를 할 때마다 1250 명의 순례자들의 박수 소리가 쁘락보디홀에 울려 퍼졌습니다.


“성지순례를 올 때마다 인도에서 활동가들이 고생을 하지만, 이번에는 1250명을 맞는 준비를 하느라 인도인 활동가들이 거의 한 달 동안 학교에 살다시피 했다고 합니다.” (웃음)

스님은 수고한 활동가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담아 용돈을 주었습니다.

이어서 스님의 정리말씀이 있었습니다. 스님은 성지순례와 인도 JTS 사업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30년이 지난 지금 어떤 과제가 남았는지 설명했습니다.

“제가 인도성지순례를 처음 온 건 1991년 1월이고, 성지순례단을 모아서 대중과 함께 인도에 온 건 1993년 1월입니다. 올해로 30년째죠. 인도에서 JTS사업을 한 것도 올해로 30년째입니다. 우리가 사업을 시작한 건 캘커타(Kolkata)였어요. 그리고 학교 공사는 이듬해인 1994년 1월부터 시작했으니, 학교사업을 따지면 올해가 29년째입니다.

수자타 아카데미가 걸어온 길

처음에 학교를 시작하려고 동네 아이들을 모아보니까 초등학교 입학할 나이인 7~10세 사이 아이들이 한 150명 정도 됐어요. 한 반에 50명씩 배정해서 교무실까지 총 네 칸이면 되겠다 생각하고 초등학교를 세우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공사가 끝나기도 전에 150명이던 학생 수가 300명이 넘어버렸어요. (웃음)

그래서 공사를 진행하는 도중에 계획을 변경해서 건물을 2층으로 올리기로 했습니다. 건물을 2층으로 올리고 교실 여덟 칸을 만드는 것으로 변경했는데, 2층까지 짓다 보니 시간이 3년 걸렸습니다. 그다음으로 중학교가 생기고, 고등학교가 생기고, 기술학교와 노동학교도 생겨났습니다.

처음에는 문맹퇴치운동으로 시작한 학교사업이었는데 아이들이 자꾸 크다 보니까 이것저것 신경을 쓰게 되었습니다. 기업인들을 유치해서 공장을 세우거나 가야에 슈퍼마켓을 만들어서 졸업하는 아이들이 일할 수 있도록 하는 건 어떤지 등 여러 가지 생각을 했는데, 그런 생각을 자꾸 하다 보면 제가 속인이 되는 거예요. (웃음)

처음에는 수행으로, 또 문맹퇴치운동으로 시작한 사업이 아이들의 장래를 생각해서 여러 가지를 생각하다 보면 마치 자식을 둔 부모의 마음으로 일을 하게 되거나, 사업을 하는 사람처럼 머리를 쓰게 되는 거죠. 그러다 ‘이건 내가 할 일이 아니다’ 싶어서 더 이상 진행하지는 않았는데, 아이들을 생각하면 딜레마가 있습니다.

일단 우리가 목표로 한 문맹퇴치는 마무리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참 어려웠어요. 학교를 열어도 집에서 아이들에게 자꾸 일을 시키려고 하니까 취학률이 50%가 채 안 되었거든요. 문맹퇴치를 할 수 있었던 건 사실 초등학교가 아니라 유치원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왜냐하면 네 살짜리 아이들은 어디 데려다가 일을 시킬 수가 없으니까 유치원에는 잘 보내는 거예요. 또, 집안에 어른들이나 큰 애들이 일하러 나가면 그동안 유치원에서 아이들을 봐주는 건 좋아하니까, 그렇게 3년 정도 친구들이랑 같이 유치원에서 놀다 보면 아이들이 친구 따라 학교 가는 걸 당연하게 생각하게 되는 거예요.

이건 옛날 한국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집에 형, 누나, 언니, 오빠가 있는 아이들은 형이나 언니가 학교를 다니면 동생도 같이 학교에 가는데, 집에 아무도 학교에 가 본 사람이 없는 경우에는 부모고 형제고 학교에 안 보내고 일을 시키곤 했어요.

그렇게 유치원에서 아이들을 돌봐주는 걸 사람들이 좋아하니까 자연스레 학교 취학률도 오르고, 80%, 90%까지 취학률이 오르더니 몇 년 더 지나서 지금은 거의 100%라고 볼 수 있습니다.

수자타 아카데미의 미래 30년

지금 우리는 기로에 서 있습니다. 유치원은 꼭 운영을 해야 하고, 또 초등학교 운영까지는 괜찮은데, 중학교 이상을 꼭 우리가 운영할 필요가 있는가 하는 문제예요. 왜냐하면 정부에서 운영하는 학교들이 점점 자리를 잡아가니까 초등학교를 졸업한 아이들을 그쪽으로 보내면 되지 않는가 하는 문제의식이 있기 때문에, 어떤 면에서는 초등학교까지만 운영하고 중학교 이상은 운영하지 않는 방법이 하나 있습니다. 물론 유치원만 운영하고 초등학교도 운영하지 않는 방법도 있고요. 또는, 조금 전에 한 분이 제안한 대로 기존의 학교를 좋은 사립학교로 전환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이렇게 선택지를 놓고 결정을 내려야 합니다.

좋은 영어학교로 전환하거나 사립학교로 전환하려면 선생님들을 더 이상 자원봉사자로만 꾸리기가 어렵습니다. 좋은 학교로 전환하려면 석사 학위를 가진 자격증이 있는 교사를 채용해야 하는데, 그렇게 되면 월급도 다 정부에서 나오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100% 자원봉사자로만 운영하는 수자타아카데미의 건립이념은 많이 사라지고, 그냥 한국에서 볼 수 있는 사립학교와 우리는 그 학교를 운영하는 사학재단이 되는 겁니다.

JTS가 사학재단이 될 필요가 있는가 하는 부분은 검토를 해봐야 합니다. 한국에도 외국인이 들어와서 세운 이화여대, 연세대와 같은 교육기관이 있으니, 앞으로 인도에 영향력이 있는 사람, 지도자들을 키우고자 하면 사학재단을 운영하는 것도 한 방법입니다. 반면, 우리가 지금까지 적게 먹고, 적게 입고, 적게 쓰는 운동을 하고 있는데 인도에까지 와서 소비문화를 조장하고 출세를 지원하는 게 맞는지 생각해봐야 합니다.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소비문화를 따라가고, 아이들이 좋은 학교에 가고 출세하는 걸 학교의 성과라고 여기는 게 맞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이건 JTS와 정토회의 이념과도 관계가 있기 때문에 잘 살펴봐야 합니다.

얼핏 보기에는 겉으로 드러나는 성과, 사람들이 알아주는 결과물이 당장 자랑스러울지 모르지만, 그건 우리가 하지 않아도 학교에서 조금만 배우고 나면 각자가 알아서 기를 쓰고 출세하려고 할 텐데 우리까지 나서서 그런 걸 도와야 하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지금은 문맹퇴치가 어느 정도 이뤄졌기 때문에 학교 문을 닫는 것도 한 방법이고, 특수학교나 장애인 학교로 전환해서 운영하는 것도 한 방법이고, 예술학교나 다른 고급 사립학교로 바꾸는 것도 한 방법입니다. 이를 두고 선택하는 과제가 남아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만인공양을 함께 해 준 순례자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오늘 뙤약볕에 만인공양을 하느라 힘들었어요? 그래도 보람이 있었죠?”

“네!”

“쌀과 도시락을 받은 마을 주민들이 모두 좋아하는 모습을 보셨을 거예요. 사전에 조금 덜 혼잡하고 예의 바르게 나눠 주는 방안을 연구했는데 아직 미흡한 점이 많았습니다. 오늘보다 조금 더 선물을 주듯이 줄 수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서 제가 막 뛰어다니면서 여기저기 독촉을 하면서 나눠줬네요. 미안합니다. (웃음) 여기저기 다니면서 독촉을 하고 억지로 해서 그나마 그 시간에 끝낼 수 있었지 안 그랬으면 그 시간 안에 끝내지도 못할 뻔했어요.

만인공양을 위해 보시해 주신 분이 여러분 계신데요. 특히 미국에 계신 우정민 보살님은 남편도 세상을 떠나고, 아들까지 세상을 떠나고 혼자 남아서 사는 게 죽는 것보다 못하다고 생각했는데, 즉문즉설을 듣고 정신을 차리게 되었다고 해요. 그래서 남은 유산은 모두 아들을 위해 기증하겠다고 해서 이번에 만인공양을 하는 데 쓰였습니다. 다들 우정민 보살님께 박수를 부탁드립니다.

그분의 이름이 걸린 플래카드는 나중에 사진으로 보내주려고 합니다. 당신 아들이 만 명에게 공양을 올렸으니까 이제 마음을 좀 놓으시고 사는 날까지 편안하게 사시라는 의미입니다.

우정민 보살님의 이야기를 듣고 만인공양에 동참하겠다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어요. 100만 원부터 1천만 원까지 많은 분들이 보시를 해주셔서 그분들도 명단에 함께 포함되었습니다. 그런데 몇 분은 플래카드가 인쇄된 다음에 보시를 해서 플래카드에 이름이 올라가지는 못했네요.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꼭 만인공양을 위해서가 아니더라도 JTS에 후원하신 분들은 이보다 훨씬 더 많습니다. 그분들은 굳이 명단에 넣지 않았는데 ‘나도 보시했는데 왜 내 이름은 없나?’ 하지 마시고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정토회는 원래 명단을 발표하거나 이런 걸 잘 안 하는데, 이번에는 만인공양이고 이곳 주민들도 오는 자리이고 해서 특별히 했습니다.

그 외 나머지 보시금은 지금 파키스탄에 지진으로 인한 큰 홍수가 나서 피해가 극심한데, 그곳에도 이번에 만 명에게 양식을 지원하는 만인공양을 했습니다. 그리고 천 개가량의 핸드 펌프를 파서 깨끗한 물이 제공될 수 있도록 할 계획입니다. 그곳 수재민들을 위한 주거 공간도 많이 필요한데, 아주 잘 지은 집까지는 아니더라도 임시로라도 살 수 있도록 집 짓는 계획을 하고 있습니다. 그곳에 보시금을 쓸 계획입니다.

우리가 하는 사업은 모두 여러분들의 후원금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처음에 성지순례를 할 때 돈을 더 내지는 않되, 먹고 입고 자는 걸 순례자처럼 해서 1인당 몇 십만 원이 남으면 그 돈을 모아서 학교를 짓고, 아이들 먹을 음식을 마련하는 게 어떻겠냐고 물었어요. 참가자들이 다들 좋다고 동의를 해서 성지순례를 시작했습니다.

성지순례를 하는데 굳이 호텔에 잘 필요가 없잖아요. 그래서 법륜스님과 성지순례를 가면 자세한 설명을 들을 수 있지만 고생을 한다고 소문이 나 있습니다. (웃음) 처음에는 누구나 인도성지순례에 참가할 수 있도록 했지만, 지금은 불교대학을 졸업하고 정토행자가 되어야만 성지순례에 참가할 수 있도록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이 이렇게 조금 덜 먹고, 조금 더 아껴서 입고, 침낭 가져와서 아무 데나 자면서 아낀 경비들이 모이고 모여서 이곳에 학교를 짓고, 병원도 짓게 되었습니다. 여러분이 한 끼 가볍게 먹는 게 이 아이들에게는 한 달의 음식이 되고, 여러분이 하룻밤 가볍게 자는 것이 이 아이들에게는 한 달 공부하고 옷 입는 게 됩니다. 그러니 너무 힘들게 생각하지 마세요. 이렇게 자나 저렇게 자나 눈 뜨고 일어나면 그만입니다. 여기서 자나, 저기서 자나, 자고 일어나면 매한가지예요. 그러니 여러분도 그렇게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오늘 만인공양을 하는 데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렸습니다. 쌀을 나눠주는 건 어느 정도 계획대로 됐는데, 도시락을 나눠주는 게 생각처럼 되지 않았어요. 무거운 짐을 들고 아이들을 데리고 이동을 하다 보니까 일률적으로 진행되지 않았던 것 같아요. 그리고 길도 좁고, 사람과 이동하는 물건들이 너무 많다 보니까 한 시간이면 되리라 예상했는데 실제로는 두 시간 반이 소요됐습니다. 다들 수고하셨습니다.” (모두 박수)

저녁 8시에 법회를 마쳤습니다. 참가자들은 숙소로 돌아가 조별로 마음나누기를 하고 다음 날 먹을 도시락을 싼 후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내일은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으신 보드가야를 참배하고 오후에는 수행법회 생방송을 할 예정입니다.

전체댓글 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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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림하이

여러분이 이렇게 조금 덜 먹고, 조금 더 아껴서 입고, 침낭가져와서 아무 데나 자면서 아낀 경비들이 모이고 모여서 이곳에 학교를 짓고, 병원도 짓게 되었습니다. 여러분이 한 끼 가볍게 먹는 게 이 아이들에게는 한 달의 음식이 되고, 여러분이 하룻밤 가볍게 자는 것이 이 아이들에게는 한 달 공부하고 옷 입는 게 됩니다. 그러니 너무 힘들게 생각하지 마세요."

2023-11-13 08:13:59

Young mi shim

대단하십니다 .
감사하고 만인의 수행길이 원만히 이루어지시길
두손모아 기도 드립니다.
스님께서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2023-02-28 07:30:59

박경자

감사합니다

2023-02-17 15:4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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