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3.2.1. 인도성지순례 4일째, 보드가야
“이곳은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은 보리수가 있던 자리예요”

안녕하세요. 오늘은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으셨던 보드가야를 순례하는 날입니다.

스님은 새벽 기도와 명상을 한 후 곧바로 보드가야를 향해 출발했습니다. 보드가야에 도착하자 우뚝 솟은 대탑이 한눈에 보였습니다. 부처님은 대탑이 세워진 바로 그곳에서 마지막 49일 동안의 정진 끝에 깨달음을 얻으셨습니다.

보드가야대탑에는 각국에서 온 다양한 사람들로 북적였습니다. 특히 어제 티벳에서 많은 사람들이 와서 기도를 마쳤지만, 오늘도 계속 남아서 기도하는 티벳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스님과 순례자들은 보리수까지 한 줄로 걸어갔습니다. 성지순례단은 보드가야 대탑 관리측에 요청하여 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얻으신 보리수 아래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커다란 보리수 그늘 아래 1,250명이 너끈히 앉을 수 있었습니다.

1,250명이 모두 자리를 잡자 가사를 수하고 대탑 주위를 빙 돌아가며 일렬로 서서 대탑을 향해 마음을 모아 예불을 올렸습니다.




예불을 마친 후 다시 보리수 아래에 모였습니다. 이곳 보드가야 대탑에 대한 성지 설명을 하고 난 후 경전을 독송하고 명상을 했습니다.

“이곳에서 부처님의 깨달음을 생각하면서 정진을 하겠습니다.”




명상을 마친 후 스님이 부처님께서 성도하기 전후에 대한 법문을 해주었습니다.

“이곳은 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얻은 보리수가 있던 자리예요. 부처님은 이 보리수의 동편을 보고 앉으셨어요. 저 맞은편이 동쪽이에요. 부처님이 앉으셨던 자리에는 탑을 쌓았습니다. 보리수와 탑 사이에는 책상만 한 크기의 네모진 돌이 있습니다. 부처님이 앉았던 자리를 상징해서 조각해 둔 거예요. 부처님은 돌이 아니라 풀 위에 앉으셨는데, 후세 사람들이 돌에 풀 무늬를 그려놓고 태국 사람들이 그 돌을 또 금으로 덮어씌워 놓았습니다. 부처님은 그냥 목동이 베어놓은 풀을 한 움큼 깔고 앉으셨는데 후대 사람들은 거기다가 금칠까지 하고 난리예요. (웃음)

먼 길을 달려 여기까지 온 이유

이곳은 세계적으로 불교 최대 성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깨달음을 얻으셨기 때문에 우리가 ‘부처님’이라고 부르는 거예요. 그러면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으셨던 정황을 한번 살펴볼까요?

이곳에서 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얻으셨다고 할 때, 지금 우리에게는 그 깨달음이 너무 신비화돼 있습니다. 그래서 깨달음이 우리가 얻을 수 없고 이룰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곳에서 부처님의 깨달음이 어떤 의미인지를 다시 생각해봐야 합니다.

왜 우리가 이곳까지 왔겠어요? 바른 법이 무엇인지를 다시 돌아보자는 뜻입니다. 한국 불교나 세계 불교가 모두 제각기 다른 이야기를 하더라도, 원래 부처님이 이 나무 아래에서 깨달으신 게 무엇이며 사르나트에서 첫 번째로 설법하신 내용이 무엇인지를 생각해야 해요.

근본적인 내용 외에 형식은 조금씩 바뀔 수 있어요. 실제로 역사 속에서도 형식은 조금씩 바뀌었잖아요. ‘저 스님은 저렇게 가르치던데요’, ‘저쪽 종파에서는 그렇다던데요’, ‘경전에는 이렇게 써놨던데요’ 이렇게 따지면 이게 누구 말이 맞는지 모르게 됩니다. 사르나트에 와서 초전법륜(初轉法輪)을 돌아보고 여기 와서 부처님께서 깨달으신 내용을 살펴봐야 ‘아, 원래 불법이 이거구나’ 하고 확연히 알 수 있습니다.

부처님의 법이 쉽게 다가오지 않는 까닭

요즘 사람도 못 깨닫는다면 부처님 당시 사람들은 어떻게 깨달았겠어요? 불가능하죠. 그래도 요즘 사람이 낫지 않을까요? 그런데 여러분에게 부처님의 법이 쉽게 다가오지 않는다면 목표가 분명하지 않아서 그래요. 불교대학을 다니고 경전대학에서 공부해도 늘 ‘불교 믿으면 뭐가 좀 잘 되려나?’, ‘이 공부를 하면 장사가 잘 되려나?’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잖아요. 그러면 해탈과는 거리가 멀어집니다. 수행의 목표는 천상에 태어나는 것도 아니고 죽어서 극락 가는 것도 아니에요. ‘그건 틀렸다’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수행의 목표는 해탈(解脫)과 열반(涅槃)이라는 겁니다.

해탈은 속박에서 벗어나는 것이고, 열반은 괴로움이 없는 상태입니다. 괴로움과 즐거움을 분리시켜서 괴로움을 없애기란 애초에 불가능합니다. 괴로움과 즐거움이라는 건 동전의 양면처럼 붙어 있기 때문이에요. 둘 다 뿌리는 욕망입니다. 욕구가 이루어지면 즐겁고, 욕구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괴롭습니다. 이렇게 반응이 양쪽으로 일어날 뿐이지 그 뿌리는 하나예요. 그래서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워질 때 괴로움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는 거예요. 즐거움을 행복으로 삼으면 필연적으로 괴로움이 따라옵니다. 그래서 고락은 계속 윤회할 수밖에 없어요.

그런데 이 대목에서 귀 기울여 잘 들으셔야 합니다. ‘저는 설령 괴롭더라도 즐거운 게 좋습니다’ 이런 사람도 있죠? 그러면 그 사람에게는 그것도 하나의 공부예요. 다만 그럴 경우 즐거움을 추구하는 건 좋지만, 괴로울 때 불평하면 안 돼요. 괴로움을 당연하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돈을 빌려서라도 마음껏 쓰고 싶다면 써도 돼요. 그런데 그 돈을 갚을 때 고생하거나 미처 갚지 못해 감옥에 가도 마음이 편안해야 합니다. ‘야, 그래도 나는 실컷 원대로 놀아봤다. 그게 어디냐? 생각만 하다 죽는 것보다 옥살이를 하더라도 직접 놀아본 게 나는 훨씬 좋다’ 이러면 문제가 없다는 거예요. 이렇게 하면 괴로울 일이 실제로 없어요. 그런데 대부분 이럴 때 100% 후회합니다. ‘조금 참으면 될 걸 괜히 고생이다’ 이렇게 후회하는 게 문제라는 거예요.

즐거움으로 행복을 삼지 말아야 괴로움이란 불행이 생겨나지 않습니다. 물론 기분이 좋고 기분이 나쁜 것은 내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자동으로 일어나는 거예요. 그러니 기분이 좋은 것과 기분이 나쁜 것을 다만 알아차릴 뿐입니다. 좋을 때 집착하고 나쁠 때 싫어하는 마음을 내지 말아야 합니다.

지금 순례를 하면서도 계속 연습할 수 있습니다. 사실 한국에 있을 때보다 이곳에서 연습하기가 훨씬 좋아요. 괴롭고 즐겁고가 너무 자주 바뀌니까요. 만인공양을 시작할 때는 기분이 좋았는데, 뙤약볕에 조금 오래 서 있으니까 ‘내가 왜 이 짓을 하고 있나’ 싶었죠. 사람들이 쌀을 잘 받아 가면 기분이 좋은데 방금 받아가 놓고 또 받으려고 오면 기분이 확 나빠지잖아요. (웃음)

이처럼 좋고 싫음이 너무 수시로 바뀌니까 조금만 관찰하면 알 수가 있습니다. 법문을 들으면서 성지순례의 거룩함을 찬탄하다가도, 오줌이 마려운데 법문이 빨리 안 끝나면 성질이 나기 시작합니다. 그런 사람은 일어나서 화장실 다녀오세요. 화장실은 저쪽에 있습니다. (웃음)

이처럼 환경이 열악할수록 마음이 더 민감하게 반응을 합니다. 수행을 할 때는 오히려 옆에 누군가 트레이너가 있는 게 좋습니다. 트레이너로 가장 좋은 사람은 남편이나 아내, 자식이나 부모입니다. 여기서는 제가 여러분에게 제일 좋은 트레이너예요. 막 이래라 했다가 저래라 하잖아요. 저를 존경한다고 했다가도 제가 팍 성질을 내면 ‘뭐 저런 게 다 있나’ 싶죠. 이렇게 마음이 자꾸 바뀌죠? (웃음)

그럴 때 ‘그러려니’ 하고 지켜보는 연습을 자꾸 해보세요. 여기서 연습을 한 뒤에 집에 가서 해보면 잘 될 테니까 여기에서 꾸준히 연습을 좀 해봐요. 특히 본인 남편은 나쁘다고 생각하고 스님은 좋게 생각하는 분들은 여기서 저하고 일주일만 같이 살아보세요. ‘우리 남편 같은 사람이 세상에 없구나. 스님 같은 사람과 살았으면 어쩔 뻔했나!’라고 하게 될 거예요. (웃음)

이런 원리를 알아야 수행이 됩니다. 기분이 좋다고 막 흥을 내면 수행자가 아니라는 뜻이 아니에요. 수행자는 흥을 내면 안 된다는 뜻이 아니라, 흥을 낼 때 내더라도 거기에 놀아나거나 집착하면 안 된다는 뜻입니다. 음식 맛도 모르고 살라는 얘기가 아니에요. 맛있는 걸 먹었다고 다음에 맛있는 거 없다고 짜증 내면 안 된다는 거예요. 배고파서 음식을 먹어야 하는 상황인데 맛없다는 이유로 안 먹다가 몸을 해치면 안 되잖아요. 맛과 건강은 아무 관계가 없어요.

지금 라씨 먹고 설사해서 고생하는 사람이 있죠? 이처럼 입에는 달콤한 것이 위와 장에는 나쁜 경우가 많아요. 그러니 맛을 느끼기는 하되 맛보다는 건강이 중요하다는 걸 알아야 합니다. 많이 먹으면 기분은 좋지만 몸에는 나쁜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늘 맛과 포만감에 사로잡히기 때문에 건강을 해치게 되죠.

부처님은 그런 원리를 깨달았기 때문에 마왕의 유혹을 이겨내고 부처님이 되실 수 있었어요. 마왕이 무엇이든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자재천왕(自在天王)이 될 기회를 줬는데도 부처님은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나는 아무것도 바라는 바가 없다.’

그런데 저는 자재천왕의 유혹을 이기기 힘들 것 같아요. 그래서 가끔은 ‘내가 평화와 통일, 북한 동포에 너무 집착하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좋게 말하면 자비심이지만, 그것도 지나치면 집착입니다. 그러면 감정이 자꾸 흔들리게 되고, 동참하지 않거나 반대하는 사람을 보면 짜증이 나는 거예요. 이처럼 좋은 일이라도 집착이 되면 괴로움이 따릅니다. 그건 수행자의 자세가 아니에요. 그래서 항상 자기를 살피고 마음의 평정을 유지해 나가야 합니다. 이것을 우리가 이곳에서 분명히 알아야 해요. 오늘 해결은 안 되더라도, 원리는 분명히 알고 가야 합니다.

부처님은 무엇을 깨달았을까요?

첫째, 부처님은 내 마음에 괴로움이 왜 생기는지를 확연히 아셨어요. 그걸 확연히 알아버렸기 때문에 부처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제 두려움도 없고 번뇌도 없다. 이것을 고뇌의 최후라 선언하노라’

그런데 부처님도 깨달은 이후에 번뇌가 좀 있었을까요, 없었을까요? 아마 있었을 거예요. 그런 번뇌가 일어날 때마다 경전을 기록한 사람은 ‘마왕이 속삭인다’ 이렇게 표현했어요. 그러니까 법륜 스님도 지금 짜증을 내고 있다면 마왕이 속삭이고 있는 겁니다. (웃음)

둘째, 깨달음을 얻은 눈으로 세상을 보니까 이 세상이 개별적 존재의 집합이 아니었어요. 아트만(Atman)이 있느니, 브라만(Brahman)이 있느니, 영원한 행복이 있느니, 이런 건 다 이 세상을 개별적 존재의 집합으로 보는 관점에서 나온 말입니다. 개별 존재로 이루어져 있다고 생각하니까 지은 죄에 따라 지옥 가고, 천당 가고, 소 되고, 말 되고, 개 된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나라는 실체, ‘아(我)’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또 극락이나 천당에 가면 영원히 행복을 누린다고 생각해요. 이것도 나라는 실체가 영원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의 철학적 기반은 세상이 개별적 존재의 집합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얻고 이 세상을 보니까 이 세상의 모든 존재는 연관되어 있었습니다. 단독자는 없어요. 나뭇잎 하나는 단독으로 존재하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아요. 나뭇잎은 나뭇가지에 연결되어 있고, 이 나무와 저 나무는 땅이며 햇볕으로 연결되어 있고, 모든 게 다 연결되어 있습니다. 존재가 상호 연결돼 있는 것뿐만 아니라 과거와 현재, 현재와 미래가 시간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거죠. 그걸 ‘제석천의 그물처럼’ 이렇게 표현하는 거예요.

이러한 연결성은 오늘날 과학이 완전히 밝혀놓았어요. 씨앗이라는 것도 사실 그 안을 보면 유전자로 돼 있잖아요. 엄청나게 복잡한 설계도로 돼 있는데, 그 설계도를 약간 바꿔버리면 종자가 바뀌는 거예요. 물을 비롯한 온갖 물질도 다 원자의 결합으로 돼 있어요. 예를 들어 물에 약간 열을 가하거나 다른 처리를 해서 분열시키거나 결합시키는 게 가능합니다. 그럼 물질이 바뀌어버려요.

이처럼 우리의 정신세계, 생명세계, 물질세계 등 모든 것은 다 연관되어 있습니다. 이걸 연기법(緣起法)이라고 해요. 크게 공간적 연기와 시간적 연기로 나눌 수 있습니다. 시간적 연기란 원인이 있고 결과가 있다는 관계이고, 공간적 연관이라는 것은 상하좌우 이런 식으로 연관이 돼 있다는 거예요. 여러분의 삶은 여러분이 사는 주위 환경에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가족관계, 학교 관계, 나라 관계, 문화 등의 영향을 받고 있죠. 이와 동시에, 여러분은 역사적으로도 영향을 받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 할아버지와 할머니에게 영향을 받고 지난 역사에도 영향을 받잖아요. 현재 주변과 연관성을 사회성이라고 하고, 과거와 연관성을 역사성이라고 해요. 그래서 인간을 가리켜 사회적, 역사적 동물이라고 하잖아요. 이것도 다 부처님의 연기법입니다. 연기법은 최근 과학적으로도 증명되었습니다. 또 사회과학이 발달하면서 인간 존재를 ‘사회적, 역사적 동물이다’라고도 규명했습니다.

현대 문명의 병폐를 해결하는 방법

그렇기 때문에 변화를 시키고 싶다면 그 원인을 소멸하면 됩니다. 관계를 바꾸면 되는 거예요. 연기법이야말로 오늘날 인간의 평등을 실현하고 사회를 좀 더 정의롭게 만들고 자연환경 파괴를 근본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철학적 기반이 됩니다. 그래서 우리가 ‘정토행자의 서원’에서 처음으로 선언하는 내용이 ‘우리는 연기적 세계관을 갖는다’입니다.

현대 문명은 한계 이르렀을 뿐이지 아직 파탄이 난 건 아니에요. 그래서 저는 아직은 이런 상태로 한참 더 이어질 것이라고 생각해요. 지구의 한쪽에서는 파탄 나는 부분이 계속 나타나고 또 한쪽에서는 계속 더 나아가겠죠. 이제는 인도와 중국까지 개발을 하면서 변화가 더 극심하고 빨라지기는 할 거예요. 지금까지 개발을 마친 선진국을 다 합쳐봐야 인구가 12억 정도밖에 안 되는데, 중국 인구만 해도 14억이고 인도 인구도 14억이잖아요. 이런 규모의 나라들이 한꺼번에 본격적인 개발을 하게 되면 지구는 몸살을 앓을 수밖에 없고, 이러한 발전이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사실을 어쩌면 우리 세대 중에 깨달을 수도 있을 거예요. 이렇게 되면 ‘어떻게 살아야 우리가 지속적으로 삶을 영위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을 두고 어느 순간에 큰 각성 운동이 일어날 테고, 그때 우리가 만들어 둔 모델이 있다면 그것이 순식간에 확산될 수 있다고 봅니다.

지금은 모델을 만들기가 좀 어려워요. 아직 세계는 크게 소비 중심으로 흘러가고 있는데 우리가 ‘소비를 줄이자’ 이러니까, 여러분이 따라오면서도 자꾸 돌아보게 되죠.

‘나만 이러면 어떡하나. 다른 사람들은 잘 나가는데 나는 괜히 스님 만나서 인생 망치는 거 아닐까?’

이런 생각 때문에 지금 계속 뒤를 돌아보느라 앞으로 나아가질 못하고 있는 거예요. 그런데 조금만 더 시간이 지나면 젊은 사람들은 자기 세대가 지나기 전에 지금의 흐름이 파탄을 맞는 모습을 보게 될 거예요. 이런 징후가 환경위기뿐만 아니라 곳곳에서 앞으로도 계속 나타날 거예요. 미국에서는 벌써부터 이런 문제에 대해 굉장한 각성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지금 미국에서 불교가 빠른 속도로 확산되는 이유는 다른 걸로는 해결책이 안 나오기 때문이에요.

조금 앞서가려면 원래 외로울 수밖에 없어요. 여러분은 인도까지 와서 돈 내고 사서 고생을 하고 있는데,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좀 분명하게 잡고 한국으로 돌아가야죠. 그래야 한국에 돌아갔을 때 내가 사는 게 편안하고, 가족과도 잘 지내고, 주위 사람들에게 기죽지 않고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요? 그동안에는 수억 원을 벌어도 해결이 안 되었는데 300만 원 들여 고생 좀 한 것으로 눈치 안 보고 살 수 있는 길이 열린다면, 이것보다 더 효과적인 해결책은 없어요.”

모두 크게 박수를 치며 스님의 말씀에 공감을 했습니다.

이어서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은 보리수 아래에서 여래 선포식을 진행했습니다. 북소리에 맞춰 경전 속 글귀를 함께 읽었습니다.

"이제 어둠의 세계는 타파되었다. 내 이제 다시는 고통의 수레에 말려들지 않으리. 이것이 고뇌의 최후이니, 내 이제 여래의 세계를 선포하노라."

북소리가 둥둥 울려 퍼지고 다 함께 박수를 치며 환호했습니다. 이어서 합창단의 선창으로 ‘해탈의 노래’를 함께 불러 보았습니다.

한 생각 바로 돌려 얽힌 번뇌 끊고 보니
천상천하 넓은 우주 걸릴 것이 하나 없고
평등한 성품 속엔 너와 내가 따로 없네
대자재 유아독존 바로 이것인 것을
해탈의 참된 기쁨 사바세계 가득하네
윤회의 고해에서 피안언덕 이르러니
어두웠던 나의 마음 한순간에 밝아지고
본래의 천지면목 진실하게 드러나네
위없는 님의 진리 영원한 빛 가운데에
열반의 대합창이 온 누리에 가득하네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는 바로 그 자리에서 이 노래를 부르니 가슴이 뭉클해지고 눈시울이 붉어졌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나 차량별로 법사님의 안내에 따라 대탑 주위를 둘러보았습니다. 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얻은 후 7주간 머무셨던 장소에 표지판이 세워져 있습니다. 하나씩 돌아보고 법사님의 설명을 들은 후 대탑 순례를 마쳤습니다.


순례자들이 보드가야 대탑을 둘러보는 사이 스님은 바로 나와 보드가야 대탑 주지스님을 찾아갔습니다. 주지스님은 몸이 안 좋아 쉬고 계셨습니다. 주지스님을 대신해 오늘 직접 나오셔서 계속 봐주시고 경찰을 불러 한 줄을 더 만들어 주신 스님을 만나 감사 인사를 드렸습니다.

“오늘 저희가 보드가야 대탑을 참배하는 데 많이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말 오랜만에 뵙네요. 많은 사람들이 찾아주셔서 기뻤습니다.”

보시금을 전달하고 잠깐 대화를 나눈 후 사무실을 나왔습니다. 거리에서 한 인도인이 반갑게 스님에게 인사를 건넸습니다.

“아, 잘 지냈어요? 제가 처음 보드가야에 왔을 때 만난 사람이에요. 30년도 더 되었네요.”

순례자들에게 다음 일정을 안내하기 전까지 약 40분의 시간이 있었습니다. 스님은 쁘리야팔 스님을 찾아가 인사를 드렸습니다. 쁘리야팔 스님은 인도 동부의 소수민족 출신으로 어려움에 처한 차크마족을 위해 일하고 있습니다.


대화를 나누고 차크마족을 위한 일에 쓰시라고 보시금을 전달했습니다.

시간에 맞춰 보드가야 대탑 앞으로 돌아와 순례자 한 팀을 이끌고 방글라데시 절을 찾았습니다. 방글라데시 주지 스님은 스님과 일행을 반갑게 맞이해 주었습니다.



“안녕하세요! 법륜스님과 같이 오신 불자님들을 대환영합니다. 법륜스님은 처음부터 저희 절을 계속 도와주셨습니다. 그래서 법륜스님과 한국 분들을 잊을 수 없습니다. 정말 감사드립니다. 다시 한번 환영합니다!”

주지스님은 열렬한 환영사를 하고 꽃다발도 주었습니다.


스님과 순례자들은 한꺼번에 법당에 들어갈 수 없어 밖에서 삼귀의를 하고 방글라데시 절을 위해 조금씩 보시도 했습니다.

방글라데시 절을 나와 스님은 버스에서 아침 겸 점심으로 도시락을 먹고 정토회 명상센터 부지로 갔습니다. 오늘 명상센터와 우루벨라가섭터, 나디가섭터를 방문하는 순례자들을 만나기 위해서입니다. 가는 길에 수자타 탑을 참배했습니다.

마을을 지나 수자타 절도 참배했습니다. 절 앞에 빼곡히 모인 노인과 어린이들에게 미리 준비해 온 사탕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명상센터 부지에 도착해 잠시 숨을 돌리고 나자 곧이어 순례자들이 도착했습니다. 스님은 차량별로 함께 사진을 찍었습니다.


“저는 금요즉문즉설 법회가 있어서 이만 가봐야 해요. 잘 둘러보고 가세요.”

대문 밖 줄을 서있는 아이들에게 가져온 사탕을 나누어 주고 보드가야 아난드 호텔로 향했습니다.


생방송 30분 전 도착해 인도 JTS 이사 중 한 분인 나레스 지를 만나 인사를 나누고 인도 시간으로 4시 정각에 수행법회를 시작했습니다.

“안녕하세요, 정토행자 여러분. 지난 수요일은 델리에서 여러분과 대화를 나누었데 지금은 부처님이 성도하신 보드가야(Bodh Gaya, 부다가야)에 와 있습니다. 지난 금요일에 한국에서 1250여 명이 인도에 도착했어요. 18시간에 걸쳐서 델리에서 바라나시까지 버스를 타고 이동했습니다. 그리고 바라나시 안에서도 부처님의 첫 설법지인 사르나트(녹야원)에서 1250여 명이 수계를 받고 가사를 입고 수행자로서 성지순례를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보드가야로 왔어요. 수자타아카데미에서 학생들의 환영식도 있었고, 어제는 둥게스와리 주변 주민 1만 명을 초대해서 식사도 대접하고 쌀도 한 포대씩 드리고 이렇게 만인공양을 올렸습니다. 오늘은 보드가야 마하보디 템플을 참배했습니다. 마하보디 템플(Maha Bodhi Temple)은 대탑(大塔)이라는 뜻이에요. 대탑을 둘러보고,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으신 그 보리수 아래에서 법회를 열었습니다. 그런 뒤에 순례단 일부는 왕사성으로 가고, 일부는 이 주변의 우르벨라 가섭, 나디 가섭, 가야 가섭의 수행터와 교화터, 수자타의 탑터를 지금 돌아보고 있는 중입니다. 저는 순례단을 안내하다가 법회 시간이 돼서 급하게 왔습니다. (웃음) 그러면 지난 일주일간 있었던 일을 영상까지는 못 만들었지만 사진으로 잠깐 보여드리고 대화를 이어가겠습니다.”

지금까지 성지순례 모습을 사진으로 본 후 질문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오늘은 총 5명이 사전에 질문을 신청하고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중 한 분은 생각을 내려놓는다는 의미에 대해 물었습니다.

“스님께서는 행복하게 살고 싶으면 생각과 마음을 일으키지 않으면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어떤 일을 시작하려면 그 일에 대한 생각이 있어야 하고, 진행하는 과정에서 수정할 상황이 벌어지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이번 인도 성지순례를 진행하려면 오늘은 순례자들의 환영식, 내일은 수자타 아카데미 개교 기념식과 만인공양 등등 일정이나 행사 진행에 관한 계획을 준비하고 모의실험을 통해 체크하는 등 일련의 준비 과정이 필요합니다. 대규모 인원이 참여하는지라 진행 과정에서 여러 문제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행사 준비를 하려면 생각을 많이 해야 할 겁니다. 그런데 불교에서는 생각을 내려놓아야 한다고 가르치니 서로 모순되는 것은 아닌가요?”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어요. 그런데 부처님의 가르침은 괴롭지 않게 살라는 것입니다. (웃음) 스트레스받지 않고 살라는 거예요. 만약에 농사를 짓고 싶어서 지었는데 스트레스를 안 받는다면 아무 문제가 없어요. 그런데 스트레스를 받는다면, 본인이 원해서 농사를 짓는데 왜 스트레스를 받느냐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이 스트레스에 대해서 탐구를 해야 합니다. 명상을 하는데 명상이 괴로운 경우도 있어요. 괴로움에서 벗어나려고 명상을 하는데 정작 명상하는 게 괴롭다면 무엇 때문에 그럴까요? 힘들여 일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가만히 앉아 있는 건데요. 이걸 잘 살펴보면 내가 생각을 일으켜서 괴롭다는 겁니다. 친구를 사귀거나 결혼생활을 하는데, 본인이 원해서 하면서 그게 왜 괴로울까요? 서로 잘했느니 잘못했느니 하는 이 생각 때문에 괴로움이 생깁니다. 이런 생각을 일으켜서 상(相)을 짓고 거기에 집착하기 때문에 괴로움이 생기는 거예요. 그래서 생각을 멈춰버리면 괴로울 일이 없다고 말하는 거예요. ‘항상 생각하지 마라’ 이런 얘기가 아니에요. 괴로움의 원인이 그렇다는 거예요.

질문자가 이번 성지순례를 예로 들어주셨는데, 우리가 성지순례 계획을 세우면서 막 괴로워 죽겠다거나 스트레스를 엄청 받는다면 그건 살펴봐야 할 문제예요. 그러나 성지순례를 더 효과적으로 하기 위해서 프로그램을 이렇게도 잡아보고 저렇게도 잡아보는 일은 탐구에 속합니다. 더 잘하기 위해서 여러 가지를 모색해 보는 것이니까요. 그런데 더 잘하려고 하는 것이 집착이 되면 어떨까요? 탐구가 아니라 집착이 되면 괴로움이 생겨납니다. 탐구를 할 때는 안 돼도 괴로움이 일어나는 게 아니라 ‘어, 안 되네. 그럼 어떻게 하면 되지?’ 이렇게 새로운 방법을 찾는 쪽으로 가게 돼요. 이것이 탐구와 집착의 차이입니다. 괴로움이란 송곳에 찔리거나 불에 타서 괴로운 것 같은 육체적 통증을 제외하면 다 정신작용입니다. 생각이나 마음에서 일어나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생각과 마음을 일으키지 말라’ 이 말은 괴로움의 원인을 찾아서 거기로부터 자유로워지라는 의미예요.

그렇다면 부처님은 아무 생각도 안 하셨을까요? (웃음) 부처님도 생각도 하고 느끼기도 하셨을 겁니다. 그러나 괴로움이 생겼을 때 ‘무엇 때문에 이 괴로움이 일어났느냐’ 이걸 살피라는 거예요. 부부가 같이 사는데 괴롭다고 합시다. 살펴보면 그 괴로움은 내 기준으로 상대를 맞추려고 하는 고집 때문이에요. 다시 말해 ‘이래야 한다!’라는 생각 때문에 생긴 것 아닐까요? 그게 아니라면 둘이 같이 사는데 괴로울 일이 뭐가 있겠어요? 첫 번째 질문자가 남편과 많이 싸웠는데 이혼하기로 하니까 별 문제가 없어졌다잖아요. 그동안은 하는 꼬라지마다 다 화가 나고 미워지더니, 그냥 남이라고 생각하고 한 발 떨어져서 보니까 상대가 이러든 저러든 별일 아니에요. 그런데 우리는 평소에 ‘내 남편이다’, ‘내 아내다’, ‘너는 이래야 한다’ 이렇게 생각하니까 그것 때문에 수많은 갈등이 생겨날 수밖에 없습니다.

마음을 좁혀서 이것저것 문제를 삼기 시작하면 아무리 친한 사이라도 흠집이 생깁니다. 문제를 안 삼기로 하면 아무 일이 없어요. 이런 원리를 알아야 합니다. 어떤 일이 괴로울 때는 그와 관련된 어떤 생각에 집착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아야 해요. 그래서 ‘집착을 놔라’, ‘상을 짓지 마라’, 더 근본적으로 가면 ‘생각을 일으키지 마라’ 이렇게 표현하는 겁니다.”

“감사합니다.”

법문을 하는 사이 창밖으로 해가 졌습니다.

법회를 마치고 곧바로 어두워진 도로를 달려 수자타아카데미로 돌아왔습니다.

내일은 새벽에 라즈기르로 이동해서 빔비사라왕이 부처님께 귀의한 제티안에 가서 평화행진을 하고, 최초의 사원인 죽림정사를 참배한 후 바이샬리로 이동할 예정입니다.


2023 3월 정토불교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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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림하이

조금 앞서가려면 원래 외로울 수밖에 없어요. 여러분은 인도까지 와서 돈 내고 사서 고생을 하고 있는데,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좀 분명하게 잡고 한국으로 돌아가야죠. 그래야 한국에 돌아갔을 때 내가 사는 게 편안하고, 가족과도 잘 지내고, 주위 사람들에게 기죽지 않고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요? "

2023-11-13 09:10:47

나키어던

해탈 열반의 목표, 여래의 선포식,욕망의 뿌리, 즐거움을 행복으로 삼지 말라는 말씀이 좋았습니다.
이래야 한다는 상을 만들어서 괴롭단 말씀을 이해했습니다. 감사합니다

2023-03-12 21:34:05

선덕여왕

생각을 놓아라는 의미가 정리가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2023-02-25 18:0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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