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0.1.31 인도 ▶︎ 한국 도착
“인도에서 불교가 쇠퇴하게 된 이유”

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한 달 간의 인도 방문 일정을 마치고 새벽 6시에 인천공항에 도착했습니다. 도착하자마자 곧바로 서울 정토회관으로 향했습니다.

서울 공동체 대중은 먼 길을 다녀온 스님에게 인사를 드리기 위해 모두 정토회관 1층 법당에 모였습니다. 오전 8시에 스님이 환한 웃음과 함께 법당에 들어섰습니다.

한 달 동안 인도 성지순례와 인도 JTS 사업장 방문을 마치고 돌아온 스님에게 대중들은 삼배로 새해 인사를 올렸습니다.

연말 휴가 기간에 스님이 인도로 출국했기 때문에 대중들은 새해가 되고 나서 스님을 처음 뵈었습니다. 스님이 웃으며 인사를 건넸습니다.

“다들 안 죽고 살았네요.” (모두 웃음)

“설 연휴에 집에는 잘 다녀왔어요?”

“네.”

합장으로 인사를 한 후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곧바로 10차 천일결사를 준비하고 있는 천일준비위원장과 회의를 한 후 오후에는 문경 정토수련원으로 이동했습니다.

저녁에는 문경 정토수련원에서 법사단과 회의를 했습니다. 10차 천일결사를 앞두고 인사 배치, 조직 개편 등 논의할 안건이 많았습니다.

내일은 전국에서 서원행자들이 모두 모여 정토회 대표와 행정처장을 선출하는 선거일입니다. 이어서 모레는 각 지역 정토회별로 대표, 총무, 대의원을 선출하기 때문에 선거와 관련된 스님의 법문도 함께 있을 예정입니다.

오늘은 법문이 없었기 때문에 지난 17일 델리에서 열린 즉문즉설 강연 중에서 소개하지 못한 내용 한 편을 소개하며 글을 마칩니다. 불교는 인도에서 시작되었는데, 왜 지금은 불교가 인도에서 사라졌는지 역사적 과정에 대해 스님은 자세히 설명해 주었습니다.

인도에서 불교가 쇠퇴한 이유가 무엇인가요

“인도에 온 지 2년쯤 됐지만 불교와 힌두교에 대해 잘 모르겠습니다. 인도인들은 불교가 힌두교 속의 한 갈래인 것처럼 이해하는 것 같습니다. 힌두교 사원에 가보면 힌두교의 구루(guru)들이 역사적으로 묘사되어 있는데 부처님도 그중 한 분이라고 나와 있어요. 인도는 불교가 시작된 나라인데도 힌두교를 믿는 사람이 대부분이고, 불교는 자취를 감추다시피 했습니다. 불교와 힌두교의 관계와 변천 과정을 알고 싶습니다.”

“힌두교에서는 3000년 전의 아리안 문명, 즉 브라만 문명도 모두 힌두교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보면 지금으로부터 3500년 전부터 2500년 전까지는 브라만 문명 시기였습니다. 아리안족이 남하했다가 갠지스강 유역으로 동진하면서 문화를 꽃피웠고, 자연신을 예찬한 베다시대(Vedic Age)와 종교시대 그리고 철학시대인 우파니샤드 시대(Upanishad Age)를 지나 쇠퇴기를 맞이합니다. 이 쇠퇴기에 고타마 붓다(Gautama Buddha)가 출현합니다. 육사외도(六師外道)가 나타난 시기도 이때입니다.

이런 현상은 중국 춘추전국시대에 백가쟁명(百家爭鳴)이 일어난 것과 거의 유사합니다. 그러다 중국에서는 한나라가 유교를 국교로 삼으면서 유교가 중심 사상이 됐죠. 인도에서는 불멸 후 200년 경에 태어난 아쇼카(Ashoka) 왕이 불교를 신봉하면서 불교가 인도 전역으로 퍼져나갑니다.

힌두교와 전혀 다른 불교의 특징

불교는 인도에서 일어나긴 했지만 힌두교와 같은 전통사상이 아닙니다. 인도의 전통사상은, 첫째, 믿음을 중시하는 종교와, 둘째, 사색을 중시하는 철학이 발달했어요. 그러나 불교는 이런 종교나 철학과는 달리 삶의 고뇌로부터 자유로워지는 수행에 대한 가르침이었습니다.

고타마는 당시 모든 대중이 브라만교를 믿는데도 고통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 의문을 갖습니다. ‘신이 있다면 왜 그 고통을 해결하지 않는가’라고 고민했죠. 그 고민은 진리에 대해 치열하게 논쟁하면서도 정작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해서는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는 우파니샤드 철학가들에 대한 문제 제기이기도 했습니다.

시대의 변화를 브라만교나 철학으로는 설명할 수 없자 진리가 무엇인지에 대해 다양한 견해를 펼치는 신흥 사상가들, 즉 사문(沙門)이 등장합니다. 세습이 되는 브라만교의 사제들과는 달리 스스로 사문의 길을 선택하였기 때문에 이들을 출가사문(出家沙門)이라고 일컫습니다.

이 브라만과 사문이라는 두 집단이 사상계의 큰 흐름을 형성한 가운데, 고타마는 브라만교의 전통에서 성장했지만 거기에 의문을 품고 출가사문의 사상에 크게 공감하여 출가를 합니다. 사문의 지도자인 알라라 칼라마(Āḷāra Kālama)와 우타카 라마풋타(Uddaka Rāmaputta)를 찾아가 가르침을 받고 그 스승의 경지에 이르렀지만, 본인이 볼 때는 이것도 완전한 해탈이 아니었습니다. 명상 중에는 모든 고뇌가 없어지는 것 같았지만 움직이고 보고 듣는 등 사람들과 맞닥뜨리면 고요함이 깨졌기 때문입니다.

고타마는 라즈길(Rajgir, 왕사성)에서 가야(Gaya)로 와서 둥게스와리(Dongheswari)에 있는 전정각산(前正覺山) 아래에서 6년간 엄청난 고행을 했지만 깨달음을 얻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자기의 삶을 되돌아보았습니다. 출가 전에는 욕망의 충족이 행복인 줄로 알아 욕망을 따라갔고, 출가한 후에는 욕망의 억제가 해탈의 길이라고 생각해서 욕망을 억압했습니다. 그러나 둘 다 자신이 완전히 만족할 만한 해탈의 경지에 이르지 못했어요.

‘내면에서 일어나는 이 욕망에 대해서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욕망에 끌려갈 것인가? 욕망을 거부할 것인가?’

고타마는 쾌락주의와 고행주의는 끌려가느냐 거부하느냐의 차이만 있을 뿐 결국 욕망에 대한 반응이라는 점에서는 동일하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누가 자신을 잡아당길 때 잡아당기는 대로 끌려가는 것은 상대에게 예속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끌려가지 않으려고 저항하는 것도 상대에게 예속되는 거예요. 바깥 경계에 내가 속박받고 있다는 점에서는 둘 다 똑같습니다. 세상에서는 이 두 가지의 주장이 정반대라고 하면서 어느 것이 진실인지를 따지지만, 고타마는 둘 다 경험해 보고는 둘 다 해탈의 길이 아님을 깨닫고 고행마저도 버렸습니다. 물론 고행을 버렸다고 해서 쾌락을 따라갔다는 뜻이 아닙니다.

붓다가 새로 발견한 길

그렇게 해서 발견한 새로운 길이 ‘사띠(sati)’였어요. 사띠는 ‘지금 여기 알아차림’이라는 뜻입니다. 알아차림은 욕구가 일어나면 그 욕구를 충족시키려고 끌려가지도 않고, 욕구를 억제하지도 않는, 다만 알아차릴 뿐인 상태를 말합니다. 욕구를 따르면 과보를 받고, 억압하면 스트레스를 받게 됩니다. 그런데 사띠는 거기에 반응을 하지 않는 거예요. 다만 알아차릴 뿐입니다. 양극을 모두 떠난 이 새로운 길을 불교에서는 ‘중도(中道)’라고 합니다.

그는 중도를 발견하고 나서 극한적 고행은 스트레스만 줄 뿐 해탈의 길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고행을 그만두고 수자타의 공양을 받고 마음을 편안히 한 상태로 선정에 들어 마침내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이처럼 불교는 인도의 전통에 비추어 보면 가히 혁명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브라만교의 핵심 세계관은 브라만 신이 우주와 인간 계급을 창조했고, 인간들이 그 질서를 따르지 않아 죄를 짓게 되는데, 제사로써 신에게 용서를 구하면 죄가 사해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장 중요한 것이 종교의식인 뿌자(puja)입니다. 그런데 부처님은 이를 부정했어요. 이 세상을 창조한 신도 없고, 인간을 구분하는 네 개의 계급은 신이 창조한 것도 아니며, 뿌자를 지낸다고 사람의 죄업이 없어지는 것도 아니라고 봤습니다. 이런 관점을 가졌기 때문에 혁명적이라고 표현할 만합니다.

예를 들어 윤회(輪廻)라고 하면 우리는 사람이 죽은 뒤 천상에 태어나거나, 개나 소나 말 같은 짐승으로 태어나거나, 다시 사람으로 태어나는 것을 생각하기 쉽습니다. 이건 힌두교에서 말하는 윤회의 개념이에요. 그런데 불교에서 말하는 윤회는 용어는 같이 쓰지만 개념이 다릅니다. 사람의 심리는 욕구가 충족되면 즐거움이 일어나고, 욕구가 충족이 안 되면 괴로움이 일어납니다. 이 괴로움과 즐거움이 늘 되풀이돼요. 이처럼 고(苦)와 락(樂)이 돌고 도는 것을 윤회라고 합니다.

해탈의 개념도 다릅니다. 다시는 안 태어난다는 개념이 힌두교에서 말하는 해탈이라면, 고락(苦樂)의 반복이 사라져 마음이 늘 고요한 상태에 머무는 것이 불교에서 말하는 해탈이에요.

부처님은 세상에 대해서 아무런 비판적 입장을 갖지 않았지만, 이런 이유 때문에 세상으로부터 굉장한 비판을 받았고 온갖 모함이 따랐습니다. 그러나 부처님은 그런 속에서도 개의치 않고 가르침을 펼치며 살아가셨어요.

인도 불교의 대중화, 그리고 종교화

부처님이 돌아가시고 200년 후 아쇼카왕 때가 되어서야 인도에서 불교가 점점 대중화됩니다. 그런데 대중은 당장 복을 빌어서 원하는 바를 이루는 게 중요했어요. 그 과정에서 불교가 힌두교의 종교적인 형식을 ‘대중화’라는 이름으로 점점 받아들이게 돼요. 이를 잘 보여주는 가장 큰 사건이 대승불교입니다. 대승불교는 철학적으로는 굉장히 고상하지만 종교적으로는 힌두교와 비슷합니다. 예를 들어 불상을 보면 관세음보살상에 팔이 여러 개인데, 힌두교 신상에도 팔이 여러 개 붙어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어요. 무슨 보살이니 무슨 신이니 하는 것은 이름만 다를 뿐 문화적으로 차이가 없습니다.

대승불교 다음에 일어난 것이 바즈라야나(vajrayana) 불교, 즉 밀교예요. 밀교는 종교적으로 힌두교와 거의 같습니다. 사원 모양도 똑같아졌고요.

이렇게 종교화되면서 불교의 독자적인 정체성이 사라지고, 다수의 불교는 이름만 다를 뿐 사실상 힌두교와 비슷한 종교가 되었어요. 부처님은 수행자가 아니라 신이 되고, 승려는 수행자가 아니라 사제 계급이 되고, 재가 수행자는 일반 종교의 신자가 되어버렸습니다. 이렇게 해서 불교는 자신의 고유한 정체성을 상실하게 됐지만, 종교적 철학적으로는 계속 유지되고 있었습니다.

무슬림의 침입

그런데 무슬림이 침입해서 절을 파괴하고, 경전을 불태우고, 승려들을 다 죽이거나 속퇴하게 만들었어요. 그 결과 불교는 1세기 만에 빠른 속도로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런데 힌두교는 민간신앙이다 보니까 사람을 모조리 다 죽여버리지 않는 한은 없앨 수 없었어요. 브라만은 혈통으로 브라만이 되는 것이고, 기도도 민간신앙으로 기도하는 것이니까 무슬림이 이걸 완전히 없앨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불교는 자기가 선택해서 출가하는 것이다 보니 목숨이 위태로우면 포기하고 도망가기 쉽습니다. 도망가지 않더라도 승려가 한정되어 있으니 죽임을 당하면 남은 사람이 없어져요. 경전은 불태워서 없앴고, 절은 파괴해 버려서, 인도에서는 형식적인 불교가 모두 없어져버렸습니다. 내용적으로도 일반 신자들의 입장에서는 절에 가서 비나 힌두교 사원에 가서 비나 별 차이가 없다 보니 힌두교로 흡수되어 버렸습니다. 이런 과정을 거쳐서 불교가 인도에서 완전히 쇠퇴하게 됐습니다.

현재의 힌두교는 브라만교의 모습 그대로가 아닙니다. 불교가 번창할 때 브라만교가 불교의 영향을 받아서 재정립된 종교가 힌두교예요. 힌두교도 초기에는 복을 비는 민간신앙 수준이었다가 불교의 영향을 받아 철학적으로 정비되어갔어요. 그래서 5세기경에 이르면 힌두교가 다시 부흥하기 시작해서 불교와 힌두교가 공존합니다. 그러다가 13세기에 무슬림의 침공에 의해 불교는 형식적으로 없어졌고, 힌두교는 무슬림과 함께 현재까지 남아있는 상태입니다.

힌두교 속으로 들어가 버린 불교

그래서 힌두교 입장에서는 힌두교에서 부처님이 나와서 결국은 힌두교로 다시 들어왔다고 봅니다. 그래서 부처님을 비슈누신의 아홉 번째 화신으로 여깁니다. 이런 시각 덕분에 좋은 점도 있어요. 인도에서 불교를 전파하는 데 저항을 안 받거든요. 힌두교에서는 불교도 힌두교의 일부로 보니까요. 기독교를 전파하려고 할 때는 저항을 받습니다.

나쁜 점은 인도 사람들한테는 불교의 정체성이 없다는 겁니다. ‘불교를 굳이 믿을 필요가 있나? 여기는 어차피 다 힌두교인데’ 이렇게 생각해버리는 거예요.

인도에서 불교를 제대로 가르치려면 힌두교와 정체성의 차이를 어떻게 정립시켜나갈 것인지가 관건입니다. 암베드카르(Ambedkar)의 신불교운동(Neo-Buddhism Movment)은 계급 해방적 관점을 중시하기 때문에 정치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도 암베드카르 쪽은 나름의 정체성을 명확하게 갖고 있어요. 그런데 현재 종교화되어 있는 불교로는 인도에서 정체성을 찾기가 굉장히 어렵습니다.

인도에서 불교가 정체성을 확보할 수 있는 방법

그러나 수행을 중심으로 하는 불교의 원래 가르침으로 돌아간다면, 종교와는 다른 자기 정체성을 확보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서양에서는 불교가 바로 수행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데, 한국에서는 아직도 불교가 수행으로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습니다. 제가 운영하고 있는 정토불교대학에서 제일 적응을 못하는 사람들이 불교 믿다가 온 사람들입니다. 종교가 없던 사람이 불법을 가장 잘 이해하고, 기독교를 믿다 온 사람은 불교가 원래 이런 건 줄 알고 잘 받아들이지만, 절에 다니다 온 사람은 계속 의문을 제기해요.

‘어, 이건 불교가 아닌데? 그러면 스님은 윤회가 없다고 하는 건가?’

지금까지 계속 믿어 왔던 것과 안 맞으니까 이런 식으로 자꾸만 의문이 생기는 거예요. 그것처럼 인도에서도 불교의 정체성 문제가 앞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입니다. 인도 청년들과 대화해보면 ‘윤회를 하지 않는다면 무엇 때문에 좋은 일을 하느냐?’ 이런 질문을 해요. 그래서 제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꼭 윤회를 해야만 좋은 일을 하게 될까? 좋은 일과 나쁜 일을 모두 해봐라. 어떤 일을 할 때 기분이 좋겠니? 칼로 생선 머리를 칠 때 마음이 좋니, 아니면 죽어가는 물고기를 살려줄 때 마음이 좋니? 이건 윤회와는 아무 관계가 없다. 이 행위가 지금 나에게 기쁨을 주기 때문에 선행을 하는 거야.’

이런 얘기를 하면 한국인은 그래도 좀 알아듣지만 인도인은 그게 무슨 말인지 도무지 못 알아들어요. 그래서 제가 부처님을 생각하면서 감탄을 합니다.

‘와, 부처님은 참 위대하시다. 오늘날 인도 사람들도 이렇게 깨우치기 어려운데, 2600년 전에 인도 사람들을 어떻게 깨우치셨을까?’ (모두 웃음)

이처럼 힌두교가 불교를 거쳐 다시 일어나는 과정이 있었기 때문에 힌두교 안에 불교철학적인 요소가 많이 존재합니다. 기독교 국가의 사례도 비슷합니다. 기독교 국가에 불교가 유행하고, 그 불교의 경험을 가지고 기독교가 다시 부흥합니다. 이를 역으로 생각하면, 불교 국가에 기독교가 들어와서 유행할 때 불교가 기독교까지 포용해서 다시 일어난다면 경쟁력이 더 뛰어날 수밖에 없을 겁니다.

현재 인도에 존재하는 불교의 다양한 모습들

이런 역사적 과정을 알면 현재의 인도 상황을 이해하기 쉬울 겁니다. 현재 인도에 존재하는 불교를 살펴보면, 히말라야 산 쪽 라다크(Ladakh) 지역에 밀교(티베트 불교)가 있고, 동부 미얀마 국경 지역에 소수민족이 주로 믿는 테라밧다(Theravada, 남방불교)가 있고, 인도 중부의 나그푸르(Nagpur) 지역에 신불교운동이 있습니다. 암베드카르가 불교로 개종하면서 해당 카스트 200만 명이 모두 개종을 했는데, 이를 신불교운동이라고 해요. 이들에게는 불교가 일종의 달리트(Dalit) 계층 해방 운동입니다. 이와 관련한 천민 해방 정당도 만들었는데, 연정을 하게 되었을 때 그 정당에서 대통령도 나왔어요.

이를 다 합치면 인도의 불교 인구는 600만 명에서 700만 명 정도가 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많은 숫자이지만 인도 전체 인구에 비하면 0.5% 정도예요. 그래서 인도에서는 불교인을 만나기가 정말 어렵죠. 이게 현재의 인도 불교 상황입니다.”

“감사합니다.”

이상으로 인도에 대한 이야기는 모두 마칩니다. 내일은 문경 정토수련원에서 정토회 대표, 행정처장 선거가 있습니다.

전체댓글 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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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말하겠습니다

불교에 성지가 어딨습니까? 부처님의 가르침은 경전에 있는 것인데. 성지 순례니 비 종교적인 서양의 religion 기반의 신앙에 기반을 둔 사상들이 너무도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있는 것이 소름이 돋을 정도입니다.
교도가 아닌 '신자'관계에 대해, 일부 불교의 존속을 위해 필요한 부분도 이해 하지만.
그 이상으로 넘어가는 느낌입니다.

2023-06-29 00:22:25

지리산

좋은 배움이 있는 글이네요.

2021-04-27 17:57:47

임규태

스님께 감사드리며 참가자분들께도 감사드립니다!^^

2020-05-07 14:1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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