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0.2.1 정토회 대표, 행정처장 선거
"선출제와 임명제의 장단점"

안녕하세요. 오늘은 문경 정토수련원에서 정토회 서원 행자들이 모여 제10차 천일결사 대표와 행정처장을 선출했습니다.

어제 한국에 도착해서 문경 수련원으로 이동한 스님은 오전 8시부터 10시까지 명상원에서 법사단회의를 했습니다. 스님이 한 달 동안 한국을 비웠기 때문에 긴급한 안건 중심으로 논의를 했습니다.

전국의 서원행자들은 새벽부터 도시락을 준비해서 문경 수련원으로 모였습니다. 투표는 대강당에서 진행했습니다. 서원행자들은 접수처에 신분증을 제시하고 명찰을 받아 지역별로 자리에 앉았습니다.

선거를 하기에 앞서 스님께 법문을 청해 들었습니다.

“설 휴가는 잘 보내셨어요?”

“네!”

스님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에 대한 이야기로 법문을 시작했습니다.

“지금 많은 사람들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에 두려워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두려움의 원인은 ‘무지(無知)’입니다. 무지(無知)로 인해 일어나는 현상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두려움으로 나타나고, 또 다른 하나는 신비주의로 나타납니다. 세상의 많은 종교가 이런 중생의 무지를 이용해서 유지되고 있습니다. 한쪽은 두려움으로 이용하고, 다른 한쪽은 신비주의로 이용합니다. 신비주의를 이용해서는 유혹을 하고, 두려움을 이용해서는 협박을 하고, 이러면서 사람들의 정신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두려움이 생기는 이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이전에 발견된 바이러스보다 특별히 더 위험해서 두려운 것이 아니라 이에 대해 아는 것이 없기 때문에 두려운 측면이 큽니다. 기존의 병원균이 변형돼서 새로 나타난 것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입니다. 처음에는 모르니까 오히려 안전불감증으로 대응을 제대로 못 했고, 지금은 전 세계가 난리법석인데 오히려 두려움 때문에 지나치게 과잉 대응하고 있는 측면도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 바이러스만이 아니라 우리 인생도 그렇습니다. 첫째, 우리에게 닥쳐올 위험을 모르기 때문에 막행막식 하는 행동을 해서 업을 짓습니다. 그래서 막상 그 과보가 닥쳤을 때는 너무 억울해하고 당황해합니다. 둘째,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 모르기 때문에 너무 두려워합니다. 삶이란 게 사실은 별게 아닌데 너무 많은 의미 부여를 합니다. 죽음이라는 것은 자연의 한 현상인데 두려움 때문에 너무 많은 의미 부여를 하다 보니까 살아있는 때도 전전긍긍하면서 살게 됩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이런 무지(無知)를 타파하는 가르침입니다. 내가 지어서 내가 받는 인연 과보를 잘 알도록 해서, 인생을 함부로 살지 않도록 안내합니다. 또 인생에 너무 의미부여를 해서 두려움과 불안 속에 살 필요도 없다는 걸 알려줍니다.

이런 가르침은 옛날만이 아니라 지금과 같은 현대 사회에서도 그대로 적용이 됩니다. 옛날 사람들은 천둥 번개가 치고 화산이 분출하는 자연현상에 대해 두려워했습니다. 이런 걸 보면, 우리의 무지가 해소되지 않는 이상은 두려움으로부터 자유롭기는 어렵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어제 제가 이비인후과에 갔는데 의사 선생님께 ‘의사 선생님이 생각할 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어느 정도 위험성이 있다고 생각합니까?’라고 물어봤어요. 그러자 ‘현재 중국이 발표한 치사율로 보면 독감 수준밖에 안 됩니다’라고 대답하더라고요. 그렇지만 이 바이러스의 전파력과 치사율이 어느 정도인지를 정확히 모르기 때문에 지금으로서는 조심할 수밖에 없어요. 어제 보도된 뉴스를 보니까 미국에서는 한 달 사이에 독감(인플루엔자)으로 인한 합병증으로 8,000명이 죽었다고 합니다. 이 얘기는 실제로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보다 독감으로 인해 더 많은 사람이 죽고 있다는 거예요. 독감이 훨씬 더 위험한데도 문제가 안 되는 이유는, 독감은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질병이기 때문입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는 어쩌면 독감에 비하면 위험성이 더 약할 수도 있는데, 이에 대해 아직 밝혀진 바가 없기 때문에 지금 공황 상태에 빠진 겁니다.

이런 모습을 보면 부처님의 가르침이 얼마나 위대한 지를 알 수 있습니다. 부처님은 무지가 모든 두려움의 원인이라고 말씀하셨어요.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내용에 대해서는 아무런 두려움이 생기지 않습니다. 비행기가 300명을 싣고 하늘을 날아도 그걸 신기하다고 생각하지 않잖아요. 그 이유는 원리를 알기 때문이에요. 반면에 사람이 공중에 붕 뜨는 것은 자기 혼자 떴는데도 난리를 피웁니다. 그 원인을 모르기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지게 되는 겁니다.

반대로 무지로 인해 위험을 전혀 모를 때도 있습니다. 2017년에 미국이 북한을 폭격할 전쟁 준비를 다 해놓고 있었다는 보도가 얼마 전에 나왔잖아요. 마지막 단계로 한국에 있는 미국 시민권자를 철수시키면, 곧바로 공격에 들어가려고 했다는 겁니다. 그래서 당시 우리는 전쟁을 반대하는 평화대회와 캠페인을 죽을 힘을 다해 펼쳤습니다. 여러분들은 제 말을 믿고 따랐지만, 여러분들 주위에 있는 사람들은 ‘무슨 전쟁은 전쟁이냐?’라며 외면했습니다. 이렇게 모르면 위험한 것도 괜찮다고 여기고, 모르면 괜찮은 것도 위험하다고 난리를 피웁니다.

오늘 서원 행자들이 모인 이유

이런 어려움을 뚫고 오늘 우리가 아침부터 이 자리에 모인 이유는 향후 3년간 정토회를 이끌 일꾼을 선택하기 위해서입니다. 물론 정토회 대표와 행정처장을 뽑기 위해서만 우리가 아까운 시간을 내서 모인 것은 아니에요. 여러분들 중에는 각 지역 정토회의 대표로 선출될 사람도 있고, 대의원으로 선출될 사람도 있고, 총무로 선출될 사람도 있습니다. 이런 중요한 직책을 맡게 될 서원 행자들이 다 같이 모여서 3년을 새롭게 출발하는 발심을 하자는 게 오늘 모임의 취지입니다.”

지난 9차 천일결사까지만 해도 대의원이 정토회의 대표와 행정처장을 선출했습니다. 그러나 서원행자들 모두가 임원인 만큼 서원행자들이 직접 선택을 하도록 하자고 해서 회칙을 변경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서원행자들이 처음으로 직접 정토회 대표와 행정처장을 선출하는 날입니다.

스님은 후보자들을 소개했습니다. 선거권자는 서원행자 이상, 피선거권자는 결사행자입니다.

“결사행자는 당장 내일이라도 인도에 파견하기로 결정이 나면 집을 떠나 인도로 갈 수 있는 사람입니다. 만약 정토회가 위급한 상황에 처했을 때 누군가는 가정이나 직장보다 정토회를 더 우선해서 지켜줄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이 사람들은 끝까지 남아서 정토회를 지킬 사람들이 결사행자들이에요. 결사행자들은 다 일어나 보세요.

이 중에 법사님들은 다 앉으세요. 이번에 법사교육 후보로 내정된 분들은 다 앉으세요. 그리고 결사행자 회의를 통해서 양윤덕 전 행정처장은 통일특별위원회 위원장으로 선정되었습니다. 2차 만일결사 준비위원장으로는 전해종 님이 선정되었습니다. 이 두 분은 앉으세요.

이 분들은 제외하고 지금 서 있는 나머지 아홉 명 중에 정토회 대표와 행정처장을 뽑습니다. 선택 기준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 ‘아, 저 분이 하면 잘하겠다’ 하는 사람을 뽑으면 됩니다. 둘째, ‘저 분은 진짜 결사행자인지 아닌지 시험을 해봐야겠다. 임무를 주면 진짜 직장을 그만두고서라도 저 역할을 해내는지 한번 지켜보자’ 이런 생각이 드는 사람을 뽑아도 됩니다. 그래서 역할을 못하겠다고 하면 서원행자로 강등시키는 방법도 있습니다. (모두 웃음)

자유롭게 투표하세요. 너무 복잡하게 개인 사정을 봐줄 필요는 없습니다. 정토회의 일꾼으로 누가 가장 적합한지 판단하셔서 투표해주시기 바랍니다.”

이어서 선거를 시작했습니다. 선거를 하기에 앞서 사회자가 대표와 행정처장의 역할에 대해 소개했습니다.

“정토회 대표는 전국대의원회 의장, 전국대의원회 상임위원회 위원장, 전국대표단회의 의장, 대의원회 사무국을 총괄합니다. 정토회를 대표할 만한 인품과 수행력을 갖추어야 하고, 대의원회 의장으로서 원만한 회의 준비와 진행을 할 수 있는 분이어야 합니다.

행정처장은 행정처 업무를 총괄하고, 지역 정토회의 행정업무를 조정하고 조율하는 역할입니다. 정토회 살림살이를 챙길 수 있는 행정력이 있고, 원칙을 지키되 효율적인 집행력도 있고, 회칙과 전국대의원회의 결정사항에 수순 할 수 있는 분이어야 합니다.”

오늘 선거는 전자 투표로 진행했습니다. 처음 해보는 방식이라 한 번 연습을 해보았습니다. 모든 사람이 투표 방법을 잘 숙지한 후 먼저 정토회 대표 선거를 했습니다.



투표는 묵언으로 진행했습니다. 전자 투표 방식이라 금세 집계가 나왔습니다.

“2020년 2월 1일 실시한 정토회 대표 선거의 개표 결과를 발표하겠습니다. 김은숙 님이 과반수 득표로 당선되었습니다.” (모두 박수)

당선인에게 의사를 확인해보았습니다.

“당선인께서는 정토회 대표직을 수락하시겠습니까?”

“네.” (모두 박수)

같은 방법으로 한 번 더 행정처장 투표를 했습니다. 이번에도 한 번에 과반수 득표로 박종숙 님이 당선되었습니다.

“당선인께서는 행정처장직을 수락하시겠습니까?”

“네. 흔쾌히 수락하겠습니다.”

정토회 대표 김은숙, 행정처장 박종숙, 통일특별위원회 위원장 양윤덕, 만일결사 준비위원장 전해종, 네 명이 앞으로 나와 대중을 향해 반배로 인사했습니다. 스님은 네 명에게 선물로 인도에서 사 온 스카프를 하나씩 걸어주었습니다.

그리고 김은숙, 박종숙, 전해종, 양윤덕 님의 소감을 차례로 들어보았습니다.

“국회의원에 당선된 것 같네요. (웃음) 지금까지 아홉 번의 천일결사가 한 번도 중요하지 않은 적은 없었습니다. 매번 중요하게 생각하고 달려왔는데요. 이번 10차 천일결사는 지난 만일을 마무리하면서 2차 만일을 준비하는 시기입니다. 유종의 미를 거둬야 하는 중요한 때에 대표 소임을 할 수 있도록 추천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도반님들과 화합하고 솔선수범하며 주인 되는 정토행자가 되겠습니다.”

“10차라는 중요한 시기에 부족한 저에게 큰 소임을 맡겨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지리산에 살고 있습니다. 결사행자인지 아닌지 테스트를 해주신 것 같네요. (웃음) 지방에 살고 있는 것에 구애받지 않고 소임을 맡겨주신 만큼 3년 동안 아주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살다 보니 대전에서 배 농사짓던 사람이 이런 곳에 서 있게 되었네요. 27년 전 정토회를 설립할 때 선배님들이 가졌던 마음과 원력을 잘 새기겠습니다. 여기 계신 서원행자님들께 부지런히 물어보면서 잘해보겠습니다.”

“감사하고 기쁜 마음입니다. 지난 3년 동안 행정처장 소임을 맡아서 실컷 일해 본 경험을 잘 살려서 이번에는 통일특별위원회에 가서 신나고 재미있게 해보겠습니다. 저에 대해 새로운 도전을 하는 의미로 최선을 다해서 해보겠습니다.”

당선자들의 소감을 들은 후 다 함께 정토행자의 서원을 함께 낭독했습니다.

“지금 우리 인류는 인간성 상실, 공동체 붕괴, 자연 환경 파괴라는 중대한 위기에 처해있다. 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 우리는 불교의 근본 가르침 속에서 그 해답을 찾고자 한다...(중략)”

이어서 축가로 ‘장미’를 불렀습니다. 서원행자 한 명 한 명이 이 자리의 주인이기 때문에, 모두 다 같이 축가를 불렀습니다.

“당신에게선 꽃내음이 나네요. ♬
싱그런 잎사귀 돋아난 가시처럼
어쩌면 당신은 장미를 닮았네요. ♬
당신을 부를 때 장미라고 할래요.”

오후 1시가 다 되었습니다. 아침 일찍 출발해서 배가 많이 고팠습니다. 점심시간에는 각 지역별로 법사님과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정토회별로 장소를 나누어 도시락을 먹었습니다.

점심시간이 끝나고 2시부터 천일준비위원회에서 개편되는 10차 천일결사 정토회 조직구조에 대해 발표했습니다. 발표를 다 듣고 나서 스님이 정리 말씀을 해주었습니다. 특히 서원행자들이 한 자리에 모였기 때문에 서원행자의 역할과 자세에 대해 자세히 알려주었습니다.

“정토회는 수행자들의 모임인 ‘수행 공동체’입니다. 수행이란 나의 괴로움을 남의 탓으로 돌리지 않는 겁니다. 즉, 내가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지 않아서 인생이 괴로운 게 아니라 나의 무지와 어리석음이 괴로움의 원인이라는 것을 자각하는 것입니다. 만약 남들로 인해 내 괴로움이 생겼다면, 괴로움을 해결하기 위해 남한테 요구하고 의지하고 빌어야 됩니다. 그런데 괴로움의 원인이 나의 무지와 어리석음에 있다면, 내가 남에게 의지하거나 빌 필요가 없습니다. 나의 무지와 어리석음을 깨우쳐서 내 삶이 자유롭고 행복한 경지로 나아가면 됩니다. 이런 수행적 관점을 확실하게 가진 사람이 ‘발심 행자’입니다.

세상에 도움이 되는 역할을 맡겠다고 약속한 사람

그런데 여기까지는 자기 인생에 관계되는 겁니다. 다음으로는 이 세상에 도움을 주는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세상을 이롭게 하는 일에 일정한 재정 부담을 하라고 하면 돈을 내고, 시간을 내서 역할을 맡으라고 하면 맡고, 이렇게 뭔가 세상에 도움이 되는 역할을 기꺼이 하겠다고 약속한 사람이 ‘서원행자’입니다.

그래서 서원행자는 대중이 나에게 어떤 역할을 맡긴다면 바쁜 가운데도 시간을 내서 기꺼이 그 역할을 맡아야 합니다. 발심행자도 세상을 이롭게 하는 일을 해야 되지만, 그러나 발심행자는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한 건 아니에요. 발심행자는 내 괴로움을 남 탓으로 돌리지 않겠다는 정도까지만 약속한 사람입니다. 물론 발심행자도 어느 정도 보시와 봉사의 역할을 해야 됩니다. 그러나 서원행자는 개인에게 좀 부담이 될 수 있는 봉사까지도 기꺼이 하겠다고 약속한 사람입니다. 이 땅을 행복한 세상으로 만들겠다는 서원을 세운 사람이라고 해서 ‘서원행자’라고 부르는 거예요.

서원행자가 되신 분들은 자기 스스로 그런 원을 세웠을 뿐만 아니라 정토회에서도 그것을 인정해 주었기 때문에 언제든지 정토회를 대표하는 어떤 역할을 맡길 수 있습니다. 총무를 할 수도 있고, 대표를 할 수도 있고, 대의원을 할 수도 있고, 팀장을 할 수도 있고, 어떤 역할이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나는 어떤 역할이든 맡을 준비가 되어 있다’ 이런 마음을 항상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만약 대중이 ‘이 역할을 하십시오’라고 요청하는데도 본인이 ‘나는 못하겠다’라고 나오면 서원행자의 자격이 없습니다. 물론 소임을 못하는 이유에 대해 대중이 들어보니까 ‘아, 사정이 있구나’ 하고 받아들여 주면 서원행자의 자격이 유지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대중이 듣기에 ‘사정은 너나 나나 똑같은데 그런 이유로 소임을 못한다는 건 서원행자 약속에 어긋난다’라고 받아들여진다면, 서원행자 자격은 없어지고, 발심행자 자격만 갖게 됩니다.

모든 서원행자는 임원이 될 수 있는 후보

그런 약속을 한 사람들이 오늘 한자리에 다 모인 겁니다. 내일 각 지역 정토회로 돌아가서 선거를 하게 될 텐데요. 투표를 한 결과, 대중이 나보고 총무를 하라고 하면 ‘감사합니다’ 하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대표를 하라고 해도 ‘감사합니다’ 해야 하고, 대의원을 하라고 해도 ‘감사합니다’ 해야 하고, 팀장을 맡으라고 해도 ‘감사합니다’ 해야 합니다. 만약 그 소임을 못할 개인 사정이 있다면, 그 사정을 소상하게 이야기하고 대중의 동의를 구해야 합니다. 해외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거나, 몸이 많이 아프다거나, 이런 사정을 이야기하니까 대중이 ‘그래. 이해가 충분히 된다. 나라도 그 상황에서는 역할을 못할 것 같다’ 이렇게 동의를 해주면 괜찮습니다. 그런데 그런 특별한 이유 없이 못하겠다고 거부하면 서원행자 자격이 상실됩니다. 이런 규정이 있다는 사실에 대해 모두 알고 있죠?”

“네.”

“내일 선거를 하게 되면 여러분들 중에 대표, 총무, 대의원이 모두 뽑히게 됩니다. 당선이 된 사람들은 역할이 부담스럽다고 거부하면 안 되고, 당선이 안 된 사람들은 대중이 나를 뽑아주지 않았다고 섭섭해 하면 안 돼요.

정토회의 임원이 되든, 안 되든, 서원행자 여러분 모두는 임원입니다. 임원의 역할을 우리 모두가 다 할 수는 없으니까 우리를 대표해서 일부 사람들에게 그 역할을 맡기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가 임원에 선출이 됐는데도 거부하거나, 임원에 자기가 선출이 안 됐다고 속으로 섭섭해 하면 수행자의 자격이 없습니다.

물론 대중의 눈이 항상 정확하지 않을 수는 있습니다. 나는 총무 역할을 충분히 잘할 수 있는데도 대중이 나를 잘 몰라서 다른 사람이 총무로 뽑혔다면, 나는 다른 소임을 맡으면 돼요. 팀장을 맡아도 되고, 모둠장을 맡아도 되고, 나머지 필요한 일을 무엇이든지 맡으면 됩니다. 혹시나 대중이 나를 총무로 선출해주지 않고 그 밑에 팀장을 하라고 한다고 해서 ‘내가 총무급이지, 팀장급이냐? 팀장은 안 해’ 이렇게 마음을 내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모두 웃음)

웃을 일이 아니에요. 이런 사람이 많아요. ‘나한테 총무 자리를 준다면 하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활동을 안 했으면 안 했지 팀장은 안 맡는다’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이런 생각을 버려야 정토회가 유지될 수 있습니다.”

정토회의 선거 방식에 대해 설명한 후 10차 천일결사 3년의 방향에 대해 자유롭게 토론하는 대중공사 시간을 가졌습니다. 스님은 어떤 질문도 좋고 제안도 좋다고 했습니다. 주로 내일 진행할 지역 선거에 대한 질문이 많았습니다.

  • 저희 지역에서는 피선거권을 가진 사람이 6명뿐 입니다. 그중에 한 명은 자격은 있으나 선거에 참가하지 않겠다고 하고 연락이 두절된 상태예요. 총무 1명, 대의원 5명을 뽑아야 하는데, 뽑을 사람이 부족해서 답답합니다.
  • 저희 지역에는 서원행자가 없어서 발심행자 중에 자격심사위에서 추천받은 사람이 후보로 나올 계획입니다. 추천받은 사람은 이 사실을 모르고 있는데 미리 알려줘야 하지 않을까요?
  • 만약 15명의 대의원을 뽑아야 하는데 10명만 득표를 받게 되면 어떻게 하나요?
  • 저희 지역에서는 대의원 3명을 뽑는데 후보자가 3명입니다. 이 경우에도 투표가 필요할까요?
  • 10차 천일결사에는 모둠이 중심이라고 했는데 저희 법당은 이미 모둠 중심으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1월 말부터 불교대학 홍보도 자체적으로 하고 있어요. 모둠 활성화에 찬성합니다.
  • 총무와 대의원의 역할이 무엇인지에 대해 설명해주세요.

추대형 선거 제도에 대한 추가 설명을 요청하는 질문도 있었습니다.

  • 추대형 선거라고 말씀하셨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정회원들이 피선거권자에 대해 정보가 너무 없다는 문의가 많습니다.
  • 왜 득표수를 공개하지 않나요?
  • 내가 뽑은 사람이 당선되지 않았을 경우 실망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마음을 어떻게 다스려야 할까요?

스님은 추대형 선거 제도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주었습니다.

“정토회는 엄격하게 말해 임명제도 아니고, 선출제도 아니고, ‘추대제’라고 이해하시면 됩니다. 위에서 임명하는 게 아니라 사전에 임원 역할을 할 만한 사람을 후보로 미리 뽑아놓고 대중들이 그 후보들 중에서 ‘이번에는 당신이 맡아서 해주십시오’ 이렇게 추대를 하는 겁니다. 그래서 ‘저를 뽑아 주십시오’ 이렇게 선거운동을 해서도 안 되고, ‘저는 바쁘니까 안 하겠습니다’ 이렇게 거부를 해도 안 돼요. 둘 다 선거법 위반이에요. 정토회에서는 그런 의사표현을 일체 하지 못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정토회 선거와 일반 선거의 차이점

득표수를 공개하지 않는 이유는 정토회의 선거 방식이 추대제이기 때문입니다. 일반적인 선거는 자신의 공략을 발표하고 선거운동을 펼치게 되는데, 선거가 끝나고 나면 그 사람을 지지했던 사람과 지지하지 않았던 사람 사이에 앙금이 생깁니다. 대중들 사이에서 이런 앙금이 생기는 것은 정토회가 수행 조직으로 나아가는 데에 장애가 됩니다. 이것이 일반적인 선거가 갖는 가장 큰 부작용입니다. 그리고 선거에서 당선되기 위해 공략이 포퓰리즘적으로 마련되기가 쉽습니다. 대중의 표를 얻기 위해 대중이 원하는 공략을 이것저것 들고 나옵니다. 그리고 당선이 되려고 경쟁을 하다 보니 서로를 비판하기가 쉽습니다. 이런 선거 방식을 수행 단체에 도입하는 것은 올바르지 않습니다.

그럼 임명제는 어떨까요? 지금 모든 종교 단체가 임명제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임명제는 조직이 작을 때는 효과적입니다. 왜냐하면 대중은 후보들에 대해서 정보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법사단은 후보들에 대해서 많은 정보를 갖고 있습니다. 그 사람을 몇 년간 상담도 했고, 그 사람이 활동하는 것도 봤기 때문에 대중들보다 법사단이 훨씬 더 그 사람에 대해서 많이 알고 있습니다. 대중은 그 사람과 매일 같이 사는 것도 아니니까 그 사람이 누군지 잘 모를 수밖에 없어요. 그런 점에서는 선출제보다 임명제가 오히려 낫다고 볼 수 있어요. 그러나 단체의 규모가 점점 커지면 법사님들이 모든 것을 다 알 수가 없습니다. 가까이에서 늘 접촉했던 사람들이 주는 정보만 참고하기 때문에 대중의 요구와는 유리된 결론을 자꾸 낼 수 있습니다.

만약 지도자가 내는 결정이 대중이 보기에 ‘저 판단은 영 아니다’ 이렇게 인식되면, 나머지 신뢰도 확 없어져버립니다. 지금까지는 법사님들이 잘해오고 있었지만, 앞으로 규모가 커지면 이런 오류가 발생할 수 있어요. 특히 수행단체에서 법사님들이 인사나 행정에 자꾸 관여해서 권위를 떨어뜨리게 되면, 수행 지도에 필요한 권위를 상실할 위험이 있습니다.

이런 문제점이 예상되기 때문에, 대중이 보는 눈이 정확하지 않을 수는 있지만, 그래도 대중이 직접 선출하는 게 좋겠다고 결정한 겁니다. 특히 먼 미래까지 내다보면, 지금 살아있는 초창기 법사님들이 다 죽은 뒤에는 그만큼 많은 정보를 가진 사람들이 없게 돼요. 마찬가지로 저 또한 정토회의 모든 대중들 한 명 한 명의 역량에 대해서 다 알 수가 없어요. 그래도 같은 법당에서 활동하는 대중들이 그 사람을 가장 잘 알지 않느냐는 거죠.

이처럼 임명제가 갖는 부작용과 선출제가 갖는 부작용을 모두 보완해서 만든 제도가 ‘추대제’입니다. 선거운동을 못하게 하는 대신 그 직책을 맡을 만한 자격이 있는 서원 행자들에게 미리 피선거권을 줍니다. 그래서 정회원들은 평소에 서원 행자들을 눈여겨보아야 합니다. 서원 행자들이 일상적으로 활동하는 걸 보고 정회원들은 ‘다음에 정토회 대표는 저분이 맡으면 좋겠다’, ‘총무는 저분이 맡으면 좋겠다’ 이런 생각을 갖고 있다가 그걸 투표 날에 한 표로 행사하게 되는 겁니다.

투표를 하는 사람들의 자세

그래서 정회원들은 평소에 서원행자들에게 아무런 관심을 안 갖고 지내다가 선거일이 되어서 ‘나에게는 아무런 정보가 없다’ 이렇게 말해서는 안 됩니다. 투표를 하는 건 자기의 권리인 동시에 자기의 의무예요. 지도자를 선출할 권리만 나한테 있는 것뿐만 아니라, 누가 지도자가 되기에 적합한지 유심히 관찰해야 할 의무도 있는 거예요. 평소에 서원행자들을 눈여겨보지 않은 사람은 의무를 방치한 거예요. 투표에 참석하지 않은 사람들도 자신의 의무를 방치한 것이고요. 그래서 투표에 참여하지 않으면 정회원 자격 기준에서 감점이 됩니다.

누가 우리의 지도자가 되는 것이 좋겠는지 평소에 잘 살펴 두었다가 적임자를 뽑는 책임을 다해줘야 정토회가 계속 좋은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제도가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아직 미비점이 있긴 합니다. 특히 중앙에서 일하는 사람을 뽑을 때는 지방에 있는 사람들이 후보자들에 대해 도저히 알 수가 없어요. 이 경우는 직접 투표를 한다고 해봐야 형식주의에 불과합니다. 그래도 서원행자들은 활동을 오랫동안 해 온 사람들이기 때문에 전국적으로 누가 활동을 잘하고 있는지 어느 정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정토회 대표와 행정처장을 뽑는 선거 만큼은 서원행자들에게 선거권을 준 겁니다.

그러나 각 지역 정토회를 대표할 사람은 정회원들이 조금만 눈여겨보면 후보자들에 대해 어느 정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지역 정토회 역시 여러 법당의 연합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각 법당에서는 정보가 충분하지 못한 경우가 있어요. 그러나 이 부분은 횟수를 거듭하면서 앞으로 보완이 될 겁니다. 그 이유는 지금까지는 중앙 중심으로 운영이 됐는데, 앞으로는 지역 중심으로 운영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지역 정토회 단위로 많이 활동하게 되면, 법당 사이에 교류도 늘어나고, 정보도 많아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렇게 추대를 하는 선거제도이기 때문에 설령 내가 뽑지 않은 사람이 당선되었다고 하더라도 투표 결과를 기꺼이 받아들이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우리들 중 과반수가 ‘저분이 대표를 맡으면 좋겠다’ 하고 투표 결과가 나왔다면, 저분을 우리의 대표로 기꺼이 받아들여야 합니다.

‘오케이, 나는 저분이 별로라고 생각했는데, 다른 분들은 저분이 대표를 맡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구나. 앞으로 3년 동안은 저분을 대표로 모시고 가보자.’

이렇게 흔쾌하게 대중의 결정을 받아들이는 게 필요합니다. 여러분들이 이런 자세를 좀 가져주면 좋겠습니다.”

추위가 차츰 물러가고 봄이 오듯, 정토회 10차 천일결사도 하나씩 준비되고 있습니다. 오늘 투표를 했던 서원행자들은 내일은 각 지역 정토회에서 후보자가 되어 선거에 참여합니다. 마지막으로 다 함께 기념사진을 촬영했습니다.

서원행자들이 전국으로 다시 돌아가고, 스님과 결사 행자들은 자비당에서 10차 천일결사를 준비하는 회의를 이어갔습니다.

내일 지역 정토회별로 대표, 총무, 대의원을 선출하기 전에 국장급 직책에 대한 임명을 확정했습니다. 국장으로 임명된 분들은 내일 선거 후보자에서 제외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어서 10차 천일결사를 이끌어갈 전국 대의원회의 상임위원회 구성 방식과 임명에 대해 의논한 후 마지막으로 3월 8일 입재식 전까지 새로운 지도부의 선출과 인준 절차를 위한 일정까지 확정하고 나니 저녁 7시가 넘었습니다.

토론해야 할 안건이 많았지만, 우선 급한 안건만 결정하고, 나머지는 다음 결사 행자 회의 때 다루기로 하고 회의를 마쳤습니다.

저녁 8시에 문경 수련원을 출발하여 두북 수련원으로 향했습니다. 내일은 두북에서 논과 밭을 둘러보며 올해 농사 계획을 수립할 예정입니다.

전체댓글 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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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규태

스님께 감사드리며 참가자분들께도 감사드립니다!^^

2020-05-07 14:38:18

해탈지

두려움과 신비주의로 사람들을 협박하고 유혹해서 사람들의 정신을 지배하는 것이 요즘 종교의 실체라는 말씀 들으니 무지에서 벗어나 주인된 삶을 살도록 배우고 실천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2020-02-12 22:35:44

고경희

부처님의 가르침

2020-02-11 20:0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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