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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백두산을 한번 더 가는 날이었습니다. 지난번에 비로 천지를 보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오르지도 못한 백두산을 다시 가 보기로 했기 때문입니다.
백두산으로 가기전에 일송정에 올라 용정시내, 혜란강을 내려다보며 처음 이땅에 와서 이 곳을 일구었던 우리 선조들이 얼마나 외로웠을까? 얼마나 힘들었을까? 얼마나 눈물을 머금었을까 하는 생각에 숙연해지기도 했습니다.
참가자중 한 학생이 바이올린으로 선구자를 연주하니 더욱 우리 가슴을 울렸습니다. 비록 일송정의 기념비에는 새겨지지 못했지만, 우리 가슴에는 그대로 남아 있는 것 같습니다.
대종교 3인묘로 가는 길에 발해시대 제2 수도였던 중경현덕부, 서고성을 바라보며 비록 논밭사이에 있지만, 멀리서나마 보이는 성벽이 그대로 남아 있는 것만으로 안도감이 들었습니다.
우리나라 독립운동을 이끌었던 대종교의 창시자 나철선생, 2대 교주 김교헌선생, 북로군정서 총재 서일선생의 묘에 가서 직접 잔을 올리며 참배도 하였습니다. 그분들을 비롯하여 이땅의 독립을 위해 사라져간 많은 선열들에 대한 묵념도 함께 하였습니다.
청산리 기념탑으로 가기전에 화룡시장에서 간단히 아침을 먹었습니다.
청산리 기념탑에서는 참가자중 가장 어린 사람이 직접 잔을 올리며 참배했습니다. 이땅의 독립을 위해 사라져간 독립군들과 더불어 독립군을 도왔다는 이유만으로 학살된 주민들, 단지 전쟁이라는 이유로 죽어야만 했던 일본군인들, 이땅에 있었던 전쟁으로 인해 사라져간 모든 이들의 넋을 기리며 잔을 올리며 참배를 했습니다. 모두들 평안히 가시고 이땅에 다시는 전쟁이 없기를 기원했습니다.
여기까지의 일정을 마치고 법륜스님께서는 동북아 대장정 참가자들과의 일정을 마무리 하였습니다. 백두산 일정을 추가로 조정하는 바람에 스님께서는 항일독립유적지 참배를 끝으로 참가자들과 아쉬운 작별을 하였습니다. 참가자들은 스님과 끝까지 함께 하지 못함을 아쉬워하며 스님께 인사를 드렸습니다. 스님께서도 아쉬움을 안고 참가자들을 서둘러 백두산으로 향하게 했습니다.
스님께서는 이곳 연변에 살고 있는 조선족 동포 어르신들을 접대하는 일정이 잡혀 있어서 이곳에 남으셨습니다. 그분들은 스님이 이곳에서 조선족 가난한 사람들과 탈북난민을 도울 때 스님을 도우셨던 의로운 분들입니다. 또, 스님께서는 북한 주민들에게 식량지원을 하기 위해 이곳에 국수공장을 설립하는 문제등 여러 가지 일들을 하셔야 하기 때문에 이곳에서 청년들과 헤어지게 되었습니다.
참가자들은 못다 본 천지를 보기 위해 다시 장백으로 이동했습니다. 가는 도중에 안개가 짙어질때는 실망감이 왔다가 백두산 가까이에서는 다시 해가 나기 시작하자 기대감에 설레이기도 했습니다.
서문 아래에 도착하자 서둘러 점심을 먹고 바로 서문으로 향했습니다. 서문앞에 도착하니 하늘이 맑아지고 해도 쨍쨍했습니다. 설레는 마음으로 백두산 천지를 향했습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오늘도 천지는 우리를 향해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습니다. 1시간 이상을 천지에서 기다렸으나 또다시 아쉬움을 안고 발길을 돌려야 했습니다.
오늘 비록 천지를 보지는 못했지만, 천지앞에서 천지가 보이기를 기다리며 한판 신명나게 놀아보기도 했습니다. 서문아래로 돌아와서 오늘까지 7일간의 일정을 마무리 하며 소감문을 작성하고 나누기를 한후 저녁을 먹고 심양으로 향했습니다.
스님께서는 내일 아침 일찍 북경을 방문하고 밤늦게 서울로 오셨다가 다음날 아침일찍 필리핀으로 가실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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