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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5시 룸비니 대성 석가사에서 새벽 예불을 했습니다.
예불 후 바로 어두운 새벽 길을 걸어 부처님께서 탄생하신 룸비니동산으로 갔습니다.
입구에서부터 향을 사르고 정근을 하며 부처님 탄생지로 들어갔습니다.
아쑈카 석주가 이 곳이 룸비니동산임을 알려주는 듯 늠름히 서 있었습니다.
자리를 펴고 앉아 부처님께 예불을 올리고, 경전을 독송하고, 명상을 했습니다.
스님께서 부처님의 탄생에 대해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부처님의 전생 이야기를 기록한 경전이 본생경입니다.
본생경에는 부처님의 전생이야기 중 발심 수행하는 장면이 많이 나옵니다. 맨 처음 선혜동자가 발심하여
수행하는 이야기로 시작되는데요, 사슴왕 이야기, 원숭이 왕 이야기 등 희생, 봉사, 보시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런 전생의 공덕으로 선혜동자가 도솔천의 천주인 호명보살로 머물다가
카필라성의 주인인 정반왕과 마야부인 사이에서 태어나게 되었습니다.”
“오늘로서 우리는 불교의 4대 성지를 모두 참배했습니다. 8대 성지 중에서는 여섯 번째 성지입니다.”
하시면서 발우공양을 할 때 소심경의 제일 첫 구절 독송을 하셨습니다.
“불생 가비라 성도 마갈다 설법 바라나 입멸 구시라”
스님께서 온 마음으로 독송하시는 소리에 눈물이 났습니다.
부처님이 탄생하시고, 도를 이루시고, 법을 설하시고, 입멸에 드신 과정들이 쭉 그림처럼 지나갔습니다.
아름답고 성스러운 룸비니동산에 스님을 모시고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것 자체가 감사했습니다.
부처님의 발자국과 부처님 탄생 설화를 조각해 둔 유적지를 둘러보고, 성스러운 곳에서
108배 정진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룸비니동산에서 천천히 걸어서 대성 석가사로 돌아왔습니다. 식사준비가 되어 있어서 맛있게 먹었습니다.
식사 후 버스를 타고 부처님께서 출가전 29년간 살았던 카필라성으로 갔습니다.
큰 보리수 아래 태자궁터라고 이야기한다는 유적지에 앉아 경전을 읽고 명상을 했습니다.
스님께서 부처님의 성장기, 농경제, 사문유관에 이어 유성 출가까지 자세하게 이야기를 해 주셨습니다.
“싯다르타는 12살 때 농경제에 참가한 후부터 농부의 고통과 소의 큰 눈망울의 눈물이 생각나
깊은 사색에 드는 일이 많았습니다. 그 후 사문유관을 통해 생노병사의 고해에 대한 사색에 더 깊이 빠져 들다가
북쪽문 밖에서 수행자를 만나서 인생의 새로운 길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부모님의 반대로 바로 출가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세속에 있으면서도 깊은 명상에 들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다 29살에 왕위를 뛰어넘어 출가를 했습니다. 세상을 뛰어넘어 출가를 했다고 해서
우리는 이를 유성출가라고 합니다.”
“오늘 이 곳에서 사춘기 싯다르타가 농경제에서 가졌던 문제의식과 전정각산에서 정진하면서
고행주의와 쾌락주의 양극단 속에서 가졌던 문제의식, 이 두 가지 문제의식에 대해서 우리는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부처님의 출가를 근본적으로 다시 점검해 봐야 합니다.
자기로부터 근본적으로 시작한다는 출가의 정신을 다시 새겨봐야 할 것입니다.”
부처님이 유성출가하셨다는 동쪽 성벽으로 갔습니다. 그 곳에서 대중들이 다 함께
‘싯다르타의 출가’ 노래를 부르면서 부처님의 유성출가를 떠올려 봤습니다.
동쪽 성벽을 지나 북쪽으로 갔습니다. 당시의 연못터도 아직 남아 있었습니다.
“자, 한 번 보세요. 부처님이 29살까지 살았던 카필라성의 자연환경입니다.
같이 자연환경을 보면서 걸어봅시다.” 하시는 스님을 따라 농작물을 심어놓은 논 사이로 걸었습니다.
기분이 좋았습니다.
버스를 타고 다음 성지인 쿠단으로 갔습니다.
“이 곳은 부처님이 출가 후 12년만에 돌아왔을 때 정반왕이 부처님을 마중나온 곳입니다.
석가족이 다 수다원과를 얻었는데 수다원과를 얻지 못한 사람이 딱 한 명 있었다고 합니다.
바로 정반왕이었습니다. 그래서 아난존자가 왜 정반왕만 유독 수다원과를 증득하지 못했는지 물었을 때
부처님께서 ‘정반왕에게는 부처님은 없고 오직 아들만 있었기 때문에 부처를 볼 수 없느니라.’ 하셨습니다.”
아들에 대한 집착 때문에 가장 가까이에 부처님이 출현했는데도 깨닫지 못한 정반왕을 보면서
안타까우면서도 바로 우리들의 모습이구나 싶었습니다.
쿠단에서 참배를 드리고 명상을 하고 랑그람으로 향했습니다. 랑그람 입구에서부터 정근을 하며
탑을 세 바퀴 돌고 예불을 하고 경전 독송을 했습니다.
“랑그람은 부처님의 8개의 진신사리탑 중 하나로 꼴리족이 세운 탑입니다.
아쑈카왕이 진신사리탑 전체를 헐 때도 이 진신사리탑은 헐지 못했다고 합니다. 용왕이 아쑈카왕에게
자기가 사리를 더 잘 지킬 수 있다고 해서 헐지 못하고, 아직까지도 원형이 잘 보존된 귀한 탑입니다.
8개의 진신사리탑 중 신기하게도 부처님의 종족인 석가족과 외가인 꼴리족, 부처님이 제일 좋아하셨던
리차비족의 사리탑만 세상에 발견되어 알려져 있습니다.”
“이 곳은 성지순례객 만 명 중 한 명이 겨우 왔다가는 곳입니다. 이 곳에 온 것에 대해 스스로
자부심을 가져도 좋습니다.” 스님과 함께 성지순례를 하기 때문에 몸은 좀 피곤할지 모르지만 더 많이 배우고,
더 많이 보고, 더 많이 느끼게 되는 것 같습니다.
랑그람에서 대성 석가사로 돌아오는 길에 로히니강에 들렸습니다. 많이 가물어 석가족과 꼴리족이
로히니강물을 서로 사용하기 위해서 다투다가 나중에 전쟁의 위기까지 갔을 때 부처님께서 직접 오셔서
전쟁을 막았던 일화가 있는 곳입니다.
“그 때 부처님께서 그 이야기를 듣고, ‘저들은 어리석어서 분명히 전쟁을 할 것이고, 피를 강물흘리듯이
흘릴 것이다. 내가 그 곳에 가지 않는다면 그들은 엄청난 희생을 치를 것이다.’ 부처님이 직접 현장에 오셔서,
양쪽 군대 대장의 이야기를 듣고 이렇게 이야기 하셨습니다.
‘여러분 물이 귀합니까? 피가 귀합니까?’
양족 군대 대장들이 ‘부처님! 어찌 하찮은 물을 피에다 비교할 수 있겠습니까?’ 이렇게 말했을 때
부처님께서 ‘그렇다면 그 하찮은 물을 위해서 귀한 피를 물흘리듯이 하려고 하지 않소.’
그들은 그 말에 감정에 복받쳐 있다가 깨어났습니다. 양 종족은 감정을 누그러뜨리고, 서로 협력해서
수로를 개척하고 물을 나뉘어 가지면서 가뭄을 극복했습니다.
오늘날 남북 관계도, 여야 관계도, 지역감정도, 부부싸움도 이와 비슷할지 모릅니다.
이런 싸움을 부처님께서 염려하셔서 스스로 찾아가셔서, 그들을 깨우쳐서 평화를 유지시켰습니다.
이것이 불교의 평화에 대한 부처님의 가르침입니다. 그들이 싸우든 말든 세상일이니까 외면한 것도 아니고,
그들이 요청하지 않는다면 나와 관계가 없다는 것도 아니고, 그들이 어리석어서 분명히
큰 희생을 치를 것이라고 해서 싸움의 현장으로 가서 전쟁을 막았습니다.
이것이 평화에 대한 불교인들의 역할입니다.
지난번 열반경 서분에서도 보셨다시피 마가다국 아자타삿투왕이 밧지족을 침공하려고 할 때
전쟁을 해라, 마라가 아니라 ‘나라가 망하지 않는 7가지’를 설함으로 해서 그들을 깨우쳐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했습니다.
불교의 제 1계율인 불살생, 비폭력이라고 하는 소극적인 자세에서 더 나아가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적극적인 평화운동이 부처님의 삶의 방식이었습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로히니 강물을 가지고 싸운 것을 말린 일입니다. 이 경전을 읽을 때마다 남북간에 다시는
전쟁이 없어야 한다,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감정에 치우친 서로의 지도자들을 설득해서
평화를 유지시키는 것, 평화를 공고히 하는 것, 이것이 부처님의 가르침에 가장 준하는 것이지 않을까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로히니 강가에서 해당되는 경전을 서서 간단히 읽고 대성석가사로 돌아왔습니다.
식사 후 저녁 예불을 드리고 간단한 법회를 했습니다.
“오늘은 열반당을 거쳐 끝으로 부처님의 일생을 마무리 하고, 새로이 부처님의 어린 시절로 돌아가
룸비니에서의 탄생, 카필라성에서의 어린 시절, 성도 후 처음 왔을 때 정반왕이 부처님을 환영했던 쿠단 유적지,
마야부인의 고향인 콜리족이 세운 사리탑인 랑그람, 부처님 평화의 정신을 나타내는 로히니 강을
둘러보았습니다. 벌써 순례가 중반을 넘어섰습니다.
내일은 석가족이 세운 빠쁘리하와 사리탑을 친견할 예정입니다. 부처님께서 성도 후 가장 오래 머무셨던
기원정사와 사위성을 순례하고 그 다음에 상카시아 참배를 하는 것으로 해서 10대 성지를 마무리하게 됩니다.”
“경전도 많이 읽었죠? 경전에서는 오직 진리를 깨우치는 것, 바르게 살아가는 것, 마음을 맑게 가지는 것,
성내고 욕심내고 어리석지 말 것, 살생하지 말고, 도둑질하지 말고, 남을 괴롭히지 말고, 거짓말 하지 말고,
술 마시지 말 것, 항상 마음을 바르게 사념할 것, 해탈을 할 것, 세상에는 계급 차별, 남녀의 차별이 있지만
인간이 모두 평등하다는 것, 갈등이 있을 때 감정을 가라앉히고 평화를 도모할 것, 이런 것을 가르쳤습니다.
우리가 이야기하는 ‘부처님을 믿으면 복 많이 받는다, 좋은 데 간다.’ 하는 이야기는 없습니다.
우리 신앙의 90%는 경전에 없는 이야기입니다. 경전에 있는 것은 1%도 제대로 실행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성지순례를 하면서 혼란이 올 수 있습니다. 내가 믿고 있는 불교와 부처님의 삶은 차이가 나서
혼란이 온다는 분도 있을 수 있습니다. 고타마라는 한 수행자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유심히 살펴본다면
오늘날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잘 알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스님께서 참으로 자상하게 하나 하나 일러주셔서 정말 많이 배우고 편안한 성지순례가 되고 있습니다.
내일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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