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검색
원하시는 검색어를 입력해 주세요
저는 마음을 많이 쓰거나 몸을 많이 쓴 다음 날이면 꼭 몸살이 납니다. 그럴 때면 생로병사의 고통이 지척에 있음을 실감합니다. 고통이 심한 날엔 마음이 금세 길을 잃고 어리석은 낯빛을 냅니다. 쓰기 나름인 게 마음이지만 잘 쓰기는 역시 어렵습니다. 승지혜(김경희) 보살님의 이야기를 듣는 내내 '이분은 정말 마음을 잘 쓰는구나' 하고 알아차렸습니다. 승지혜 보살님의 두 번째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2017년, 오랜 법당 활동을 접고 새로 만들어진 통일특별위원회에 참여했습니다. 저를 포함하여 모인 구성원들은 사회를 바라보는 인식이 각자 달랐고, 무엇을 하는 조직인지조차 모를 때였습니다. 통일에 대한 관심이 크지 않은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분명한 기준이나 방향도 없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장을 열어 주고 마음껏 해 보라고 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아이가 걸음마를 뗄 때까지 지켜보는 마음으로 도와주신 분들이 많았습니다. 법륜스님은 강연을 통해 통일특별위원회의 방향성을 제시했습니다. 평화재단 권영선 님은 사회 인식에 대한 강연을 통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를 일깨웠고, 배우는 기쁨을 알려주었습니다. 통일특별위원회 담당 법사님들은 “잘하고 있다”는 말로 쉼 없는 격려를 보냈습니다.
구체적인 계획은 없었지만 “함께 만들어 가보자”는 제안에 우리는 서울로 대전으로 자주 모였습니다. “개인이 행복하기 위해서는 먼저 어떻게 하면 행복할 수 있는지를 배워야 한다”는 스님 말씀 그대로 실천해 보는 연습의 공간을 만들어 보자고 했습니다. 무엇을 할지, 어떻게 할지,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몰랐지만 뜨거운 마음으로 논의했습니다. 통일특별위원회 몇몇 팀장은 1박 2일 워크숍을 자주 열어 방향을 찾았습니다. 슬로건 몇 줄을 정하는 데에도 그 안에 방향성을 담기 위해 1박 2일이 필요했습니다. 그 과정 자체가 매우 즐거웠습니다.

우연히 노래 가사를 듣고 “나보다 더 큰 내가 된다”라는 표현을 제안했습니다. 모두 그 표현에 공감했습니다. 통일특별위원회는 “나보다 더 큰 내가 되어 행복시민으로 나아가자”는 방향을 세웠습니다. 그때 느꼈던 기쁨과 함께하는 즐거움은 지금도 생생합니다. 처음에는 법당을 떠나는 것에 대한 미안함과 아쉬움도 있었지만, 이후에는 새로운 자리에서 마음껏 활동했습니다. 새로운 시도를 하며 시행착오도 겪었습니다. 때로는 힘들었지만, 그 과정 또한 소중한 경험이었습니다.
그렇게 수많은 회의 끝에 드디어 ‘행복학교1 ’가 시작되었습니다. 종교가 있든 없든 누구나 가볍게 시작할 수 있는 ‘행복학교 마음편’ 프로그램이 만들어졌습니다. 부산 사직동에서 처음 행복학교가 열리던 날, 마친 후 참가자들의 반응을 물었습니다. 그때 “이게 되는구나”라는 안도감이 들었습니다.
우리 가운데 자가용을 가진 사람이 없었습니다. 필요한 물품을 보따리에 싸 들고 지하철과 버스를 이용해 사직동과 금정구를 오갔습니다. 힘든 여정이었지만 그런 우리의 모습이 오히려 좋았습니다. 서로를 바라보며 웃을 수 있었고, 새로운 일을 시작한다는 설렘으로 마음껏 행복했습니다.

지역 확산은 쉽지 않았습니다. 행복학교를 열기 위해 어렵게 장소를 구하고 필요한 물품도 옮겨 놓았지만, 정작 당일에는 아무도 오지 않았습니다. 유수스님과 워크숍을 진행하던 중 한 명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제가 복이 없나 봐요. 저 때문에 사람이 안 오는 것 같아요.” 그 말에 다들 웃었지만, 한 명도 오지 않을 때 그 기분은 정말 공감이 갔습니다. 마음편 1강에는 서너 명이 참석했지만, 2강에는 아무도 오지 않을 때도 있었습니다. 그때마다 “무엇을 잘못했나?” 하며 비슷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우리는 봉사를 재미있고 적극적으로 하고 싶어도 사람이 없어서 할 수 없는 이상한 상황에 놓였습니다.
이 좋은 프로그램을 어떻게 알릴지 고민했습니다. 여러 가지 홍보 방법을 찾아보았지만 참가자는 여전히 많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한 명이라도 신청하고 찾아오면 감사했고, 그 한 사람이 아주 소중했습니다. 그렇게 모인 사람들이 행복학교의 모든 단계를 마치고 행복시민이 되었을 때의 기쁨과 축하의 마음은 어느 때보다 컸습니다.
현재는 행복운동본부로 자리 잡아 국내를 넘어 세계적으로 활발하게 확산되고 있으며, 행복시민들의 지역 활동도 놀라울 정도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되기까지는 수많은 시행착오의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그러한 시간이 당연히 필요한 시간임을 깨닫고 섣불리 욕심내지 않았습니다. 욕심이 올라올 때마다 그것을 돌아보며 천천히 한 걸음씩 걸어온 시간은 제게 큰 배움이었습니다.

2022년 2월, 난소암 2기 진단을 받고 수술을 했습니다. 모든 활동이 멈췄고 영화 같은 비현실적인 상황이 바로 제 일이었습니다. 비교적 간단한 수술이라고 들었지만 실제로는 7시간이 걸렸습니다. 출혈이 많아 수술 후 중환자실에서 2박 3일을 보냈습니다. 코로나 기간이어서 넓은 중환자실에 혼자 격리되어 있었습니다. 손이 묶인 채 아무도 곁에 오지 않는 시간이었습니다. 자다 깨다 입술이 타들어 가듯이 목이 말랐지만, 간호사들은 수치만 적어 가고 아무도 저를 쳐다봐 주지 않았습니다.
그때 한 간호사가 다가와 제 눈을 들여다보며 이름을 불러 주고 필요한 것이 없는지 물었습니다. 나중에 남편에게 제가 간절할 때 다가와 준 그 사람의 행동이 관세음보살님 같았다고 말했습니다. 저도 누군가 힘들 때 가까이 다가가 눈을 들여다보고 안부를 묻는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일반 병실로 옮겨 온 뒤에는 중환자실에서 집중적인 케어를 받을 수 있었던 상황조차 감사하게 느껴졌습니다. 뉴스를 통해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 소식이 전해지고 있었고, 코로나 오미크론 확산으로 확진자와 사망자가 급증하고 있었습니다. 코로나에 걸려 갑작스럽게 사망하기도 하는 상황에서, 바로 생명을 잃지 않는 암이라는 사실이 오히려 다행처럼 느껴졌습니다.

우크라이나의 병원들이 폭격되고 건물이 무너지는 모습을 보며, 스님께서 늘 말씀하시던 “세상의 평화가 곧 개인의 평화”라는 가르침을 오롯이 깨달았습니다. 우리나라가 전쟁 상황이라면 안정적인 의료 체계가 제대로 작동할 수도 없고, 수술과 치료를 받을 수도 없으니 평화로운 우리나라에 살고 있다는 사실이 안심이 되었고 감사했습니다.
저보다 먼저 암을 겪거나 아팠던 모든 분들께도 고마웠습니다. 여러 사람의 치료 과정이 쌓여 오늘날의 의료 체계가 마련되었고, 그 혜택이 저에게까지 이어졌기 때문입니다. 암 수술을 하고 병실에 누워 남편에게 감사한 일을 하나하나 말했습니다. 그동안 “어떤 상황에서도 우리는 행복할 수 있다”고 말씀해 주신 법문이 생생하게 현실이 되고 있어서 법륜스님께도 매우 감사했습니다. 느닷없이 암 진단을 받고 수술과 항암 치료로 낯선 암 환자의 삶을 시작했지만, “한쪽 발목이 부러지면 안 부러진 발목을 붙잡고 감사하라”는 말씀이 그때 그 순간 그대로 적용되고 있었습니다.
정토회와 함께한 지 어느덧 26년째입니다. 암 진단을 받던 당시 저는 서른 살부터 22년 동안 이어오던 정토회 활동의 삶이 한순간에 멈춰 선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새벽에 일어나 기도하고, 회의하고, 사람들을 만나며 익숙하게 반복해 오던 일상을, 원하지 않아도 그만두어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항암치료로 몸이 부서질 듯 아프던 어느 날, 문득 깊은 슬픔이 밀려왔습니다. 남편에게 말했습니다.
“내가 꼭 부러진 장난감 같아. 암에 걸려서가 아니라, 더 이상 활동할 수 없을 것 같아서 너무 슬퍼. 나, 이제 정토회로 돌아가지 못하겠지?”
정토회 활동뿐 아니라 가족과 이웃과의 관계까지, 제가 살아오며 붙들고 있던 익숙한 모든 것들이 한순간에 방향을 잃은 듯했습니다. 두려웠습니다. 그런 생각이 들자, 마치 제 앞에서 제가 있던 곳의 문이 쾅 닫혀 버린 느낌이었습니다. 그 문고리를 붙잡고 열어 달라 매달리고 싶은 마음이 들 만큼 외로웠습니다.
항암 부작용으로 머리를 모두 밀고, 온몸이 부서지듯 아픈 날에는 쉽게 잠들 수 없었습니다. 그럴 때면 법륜스님과 함께 했던 명상을 떠올리며 호흡에 집중했습니다. 새벽에 눈을 뜨면 유수스님의 예불 음원을 틀어 놓고 누운 채로 들었습니다. 몸이 움직이지 않고 통증이 심하니 그것 외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습니다.
예불 중에 활동가들에게 “계~~향 할 때 계율을 잘 지키겠다는 원을 세우고”라고 하시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그렇게 한 문장 한 문장에 마음을 두고 듣다 보니, 예불문이 제 안으로 천천히 스며드는 느낌이 들어 참 좋았습니다.

어느 날은 십대 제자에 마음이 끌려 저도 스님의 십대 제자 중 한 명이 되는 상상을 했습니다. 어느 날은 역대 조사들에 마음이 끌려 이 법이 전해지기까지 애써 오신 그 많은 분들께 감사하는 마음이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은 예불문 마지막 구절인 “자타일시성불도”라는 문장에 마음이 머물렀는데, 눈물이 흘렀습니다. 이 새벽 캄캄한 어둠 속에서 일어나 새벽 기도를 하는 누군가가 무심히 외쳐 준 “자타일시성불도”라는 발원 덕분에 제가 이 성불의 끈을 놓지 않고 가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감사한 마음으로 한참을 울었습니다.
암 환자로서의 생활은 저에게 충분한 쉼을 주었고, 그동안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고 들리지 않던 것이 들렸습니다. 그렇게 날마다 예불과 명상을 하고 스님 법문을 들으며 지내던 어느 날, 문득 마음이 홀가분해졌습니다. “하나의 문이 닫히면 새로운 문이 열린다. 이미 닫힌 문 앞에서 문고리를 붙잡고 있지 말고 새로운 문을 열고 들어가 기쁘게 살아보자”고 다짐했습니다. 수행하는 암 환자여서 정말 다행이었습니다.
새로운 문이 열렸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병원이 아닌 집에서 가족들과 평범하게 하루를 시작하는 오늘이 감사했습니다. 베란다 창문을 열고 금정산과 하늘을 바라보며 날씨의 변화에 감사했고, 색깔별로 아름다운 채소와 과일을 곁에 두고 천천히 밥을 먹으며 감사했습니다. 집 앞 대천천을 걸으며 대자연에 감사했고, 이렇게 움직이고 소화하는 제 몸에 감사했습니다.
남편과 아이들에게도 넘치도록 감사했습니다. 자주 웃고 안아 주며 이야기를 들어 주었고, “무슨 일로 그렇게 바빴습니까?”라며 스스로에게 자주 물었습니다. 부탁이 아니라 습관처럼 강요하듯 말할 때는 미안하다고 표현했습니다. 불편한 자극이 올 때면 잠시 머물러 보며 내가 어떻게 반응하고 싶은지 살펴보았습니다. 그렇게 가족과 함께 하고 나를 살피며 수행자로서 암을 마주한 4년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법륜스님의 말씀이 저의 명심문이 되었습니다.
“내가 나를 믿어 주고, 내가 나를 존중하고 사랑합니다.”

2022년 12월, 30년 전 출발한 정토회가 만일 동안의 대장정을 마무리하는 1차 만일결사 회향식 날은 역사적인 날이었습니다. 그때 저는 십이지장이 꽉 막혀 물 한 방울도 삼킬 수 없는 상태가 되어 콧줄과 링거를 꽂은 채 병실에 누워 참석했습니다. 20년 넘게 함께한 사람들과 감격을 나눌 그 행사가 길게만 느껴졌습니다.
서운한 마음에 남편에게 반드시 건강하게 살아서 2차 만일결사 회향식은 어디에서 하든지 직접 참석할 거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30년 뒤 건강하게 만날 나를 위해 오늘 하루를 감사하며 기쁘게 살아갑니다. 30년 뒤 그날은 이미 제 마음속에서 확정된 미래가 되었습니다. 언젠가 스님께서 평화와 통일 문제는 “안 되면 또 되도록 하고, 안 되면 또 되도록 하고 그렇게 할 뿐입니다. 저는 그 목표를 향해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이미 통일된 사회에 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라고 했던 말씀은 이제 제 것이 되었습니다.
앞으로 어떤 삶을 살게 될지 상상합니다. 암을 치유한 경험이 있기에 사람들이 아프지 않도록 돕고, 아픈 이들이 치유될 수 있도록 그 사이에서 연결하는 역할을 하는 저를 그립니다.
그리고 법륜스님의 다양한 활동을 따라가며 저 또한 부탄, 인도, 난민캠프 등 도움이 필요한 현장을 찾아 지원하는 제 모습을 그려봅니다. 산꼭대기에서 물을 모으는 동티모르 활동가들, 실천불교를 실천하는 INEB 스님들과도 현장에서 만나 함께하는 모습을 떠올립니다. 어떤 곳이든 사람들 속에서 함께하며, 나를 더 사랑하게 되는 시간이 될 것이라 믿습니다.
꿈은 이루어집니다. 그리고 꿈을 꾸는 지금 이 순간, 보고 들을 수 있고 움직일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저는 감사함에 가슴이 뜁니다.
2025년 10월 말경 인터뷰를 하고 몇 개월이 지났지만 김경희 님을 떠올리면 가슴이 금세 따뜻합니다. 정토회가 좋은 또 하나의 이유가 된 김경희 님! 국제 구호 현장에서 그을린 모습을 ‘한 주간 정토행자 소식’에서 뵐 날을 기다리겠습니다. 인연됨에 감사하며 응원을 보냅니다.
글&편집_이주현(부산울산지부 동래지회)
행복학교 법륜스님 행복학교는 온라인에서 일주일에 한 시간 법륜스님의 즉문즉설을 보고 진행자와 참가자가 행복을 배우고 연습하며 '내 것으로 만드는 체험의 장'입니다. 행복학교는 종교를 떠나 누구나 함께 할 수 있습니다.
행복학교 신청: http://hihappyschool.com ↩
전체댓글 11
전체 댓글 보기정토행자의 하루 ‘[특집] 결사행자 이야기’의 다른 게시글
다음 글이 없습니다.
이전글보리수? 아직도 잘 모르지만_마음은 편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