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특집] 결사행자 이야기
부산 승지혜 보살님 첫 번째 이야기
햇살처럼 내게 온 인연

우리의 삶은 다른 듯 닮아있어 나의 발자취가 누군가에겐 길이 되기도 합니다. 그러기에 목적지보다 중요한 것은 가는 과정일 수 있습니다. 성취의 크기보다 과정 속에서 품었던 진심과 방향이 한 사람을 설명합니다. 저에게 '어디로 가는가' 보다 '어떻게 가는가'에 대해 돌아보게 했던 결사행자 승지혜(김경희) 보살님의 첫 번째 이야기 함께 들어보겠습니다.

부지런한 어머니, 다정했던 아버지

저는 3녀 1남 중 둘째로, 언니와 남동생, 여동생이 있습니다. 어머니는 가게 일이 많아 늘 바빴습니다. 우리가 식사를 마치고 난 뒤에야 집에 들어오는 날이 많았지만, 가게와 집안 살림을 항상 깔끔하게 해 놓고 사는 부지런한 분이었습니다. 집안 행사가 있으면 찾아오는 친척분들을 위해 “이번엔 뭘 좀 해 먹일까?” 하던 손이 큰 맏며느리였습니다.

2025년 간월재에서 김경희 님
▲ 2025년 간월재에서 김경희 님

아버지는 아주 가정적인 분이었습니다. 직장을 마치면 곧바로 집으로 와서 어머니의 빈자리를 대신했습니다. 검소한 살림꾼으로 집을 사용하기 편하게 재활용품으로 물건을 만들어 고쳐 놓았습니다.

새 학기에 교과서를 받으면 아버지는 밀가루 포대를 물에 담갔다가 말린 뒤 다림질하여 책 표지를 감싸 주셨습니다. 붓글씨로 '5-1 산수, 김경희' 라고 겉에 적어 주던 세심한 아버지는, 가운데 잘라 낸 종이도 버리지 않고 잠자리와 나비를 만들어 주며 놀아 주었습니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아버지가 만든 종이 책 씌우개 대신 문구점에서 파는 유행하는 비닐 책 씌우개를 하고 있는 아이들이 부러웠던 기억이 있습니다.

아침마다 우리를 깨우던 모습도 떠올리면 흐뭇합니다. 불자는 아니었지만 천수경이나 당시 유행가를 크게 틀어 놓고, 그래도 일어나지 않으면 발을 집게발 모양으로 만들어 이불 속에 넣고는 “여기 게가 한 마리 있네” 하며 발가락으로 우리 다리를 집어 대곤 했습니다. 그것이 아버지가 우리를 사랑하는 방식이었습니다.

언니 초등학교 졸업식에서(작은 어린이 초등학교 4학년생 김경희 님)
▲ 언니 초등학교 졸업식에서(작은 어린이 초등학교 4학년생 김경희 님)

친구 집과 학교 운동장, 공터를 오가며 잘 놀던 저는 그만큼 무릎을 자주 깨고 옷과 신발에 구멍을 내어 들어와 어머니에게 한 번씩 잔소리를 듣곤 하던 딸이었습니다. 형편이 넉넉하지 않았고, 어머니가 가게 일로 바빠 외식을 하거나 가족 나들이를 갔던 기억은 없지만,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평온한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세상에 눈을 돌리며

대학에 들어가서는 학생운동을 했습니다. 입학하고 어느 날 학교 정문 시계탑을 지나가는데 하얀 한복을 입은 학생들이 노래를 부르는 모습을 보며 가슴이 뛰었습니다. 그들의 외침에 공감이 되었고, 그들의 말을 들어 주고 싶었습니다. 이렇게 시작한 학생운동은 그동안 제가 마치 딴 세상에 살고 있었던 것처럼 아주 새로운 세상을 마주하게 했습니다. 내 발 앞만 보며 주어진 길을 순탄하게 따라가던 저에게 처음으로 바깥세상과 다른 사람들에게로 눈을 돌리는 경험을 하게 했습니다.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 키우면서 부산으로 내려와 공동육아를 시작했고, 이웃들과 마을도서관을 만들어 함께 어울렸습니다.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세상을 바라보게 되면서 가장 큰 관심사는 환경 문제였습니다. 특히 ‘지속 가능한’, ‘생태’라는 단어에 매력을 느끼던 때에 친구가 동래정토회에서 생태 강좌가 열린다고 알려 주었습니다.

2002년 두북 탑곡수련원 풀뽑기 봉사(앞줄 왼쪽 두 번째 김경희 님)
▲ 2002년 두북 탑곡수련원 풀뽑기 봉사(앞줄 왼쪽 두 번째 김경희 님)

강사들은 여러 전문가들과 원불교, 천도교, 정토회 분들이었는데, 종교인들이 화합하는 모습이 인상 깊었고 환경과 생태 문제를 여러 종교가 각자의 언어로 풀어내는 방식도 신선했습니다. 강연자 한 사람 한 사람이 전하는 메시지 또한 깊은 울림을 주었습니다.

보수법사님이 “생태적인 삶이란 이 세상 모든 것을 품는 마음이다. 내 중심적으로 재단하지 않는 삶이다. 흙은 모든 것을 품는다”라고 하셨던 말씀은 오래도록 감동으로 남았습니다. 적게 먹고, 적게 입고, 적게 쓰고, 남는 것은 다른 사람과 나누어 갖는 삶을 기쁘게 살아가는 자세에 대해 들으면서 정토회는 어떤 단체일지 궁금해졌고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 무렵 저는 “이 사회가 문제야. 환경 문제를 개선하려면 제도가 마련되어야 하지 않나? 몇 명이 실천한다고 환경 문제가 해결되겠어!” 하며 거대한 변화를 한꺼번에 이루려는 생각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러면서도 답답해하고 무력감 속에서 불안해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강의를 통해 정토회는 ‘느리고 단순하고 소박한 삶’을 실천하고자 한다는 말에 마음이 가벼워졌습니다. 제가 알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미 소중한 출발이며, 아는 만큼 작은 실천 하나라도 이어가는 일이 중요하다는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오랫동안 갇혀 있던 생각의 틀에서 벗어나 한 걸음 밖으로 나온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그해 가을, 저는 곧바로 정토불교대학1에 입학했습니다.

2002년 9월 정토불교대학 개강(앞줄 오른쪽에서 세 번째 김경희 님)
▲ 2002년 9월 정토불교대학 개강(앞줄 오른쪽에서 세 번째 김경희 님)

마이크 울렁증, 사회를 맡다

2001년 당시 불교대학은 수시 모집으로 운영되는 2년제 과정이었습니다. 6개월을 한 학기로 하여 총 4학기로 운영되었습니다. 전국에 법당이 몇 곳 되지 않았지만, 서울과 부산을 오가는 거리가 상당하여 쉽지 않은 상황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보수법사님이 직접 전국 법당을 다니며 불교대학 강의를 맡았습니다.

개강하자마자 저는 젊다는 이유로 사회를 맡게 되었습니다. 마이크 울렁증이 있어 사람들 앞에서 말을 잘하지 못한다고 했지만, 정해진 멘트를 읽으면 된다는 권유에 봉사를 시작했습니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 마이크를 잡고 멘트를 그대로 읽는 일도 매번 용기가 필요했습니다. 그러나 3년을 반복하니 어느새 익숙해졌습니다. 그동안 잘하고 싶어 하고, 눈치를 보며 위축되고, 인정과 칭찬을 받고 싶어 하는 저 자신을 수없이 마주했습니다. 하지 않았다면 알지 못했을 제 모습이었습니다.

불교대학 졸업식은 문경수련원에서 열렸습니다. 2003년, 5년 만에 얻은 생후 6개월 된 둘째를 데리고 참석했습니다. 무대에 올라 졸업장을 받을 때 남편과 여러 사람이 번갈아 아기를 안아 주었습니다. 저는 3년에 걸쳐 4학기를 모두 마쳤고 전 과정을 개근했습니다. 당시 전국에서 개근자는 네 명이었습니다. 그 가운데 한 사람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사회자 역할을 맡았기에 가능했습니다.

2001년 법복도 없이 불교대학 사회 보던 시절의 김경희 님
▲ 2001년 법복도 없이 불교대학 사회 보던 시절의 김경희 님

덤으로 받은 선물

집에서 동래정토회까지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대중교통으로 한 시간이 넘게 걸려 일찍 서둘러야 했습니다. 임신과 출산, 육아로 몸과 마음이 힘들 때도 있었지만, 법당에 나가 그 마음을 나눌 수 있었기에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작은 일을 도와 달라는 요청을 받으면서 자연스럽게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고, 시간이 지나면서 여러 가지 소임을 맡았습니다. 그중에서도 정토회의 환경·복지·통일 사회 실천 활동은 매 순간 특별했습니다. 세상에서 쉽게 하지 않는 방식의 일들이라 시작하기 전에는 무겁고 낯설고 불편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막상 하고 나면 할 수 있음에 감사했고, 일을 시작하기 전에 일어났던 제 마음을 되돌아보게 했습니다.

2014년부터 1차 만일결사2 8차 천일결사 기간 동안 동래정토회 총무 소임을 맡았습니다. 서울을 제외하고 가장 오래된 법당이자 규모가 큰 곳이었기에 부담이 컸습니다. 이전에 총무를 맡았던 분들과 저를 비교하며 잘하고 싶어 하는 욕심이 자주 올라왔습니다. 다른 법당의 소식을 들을 때마다 우리 법당과 견주어 보기도 했습니다.

선택과 결정을 내려야 하는 순간마다 쉽게 결단하지 못했습니다. 누군가 대신 책임지고 결정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전전긍긍하며 눈치를 보기도 했습니다. 맡아서 책임진다는 일은 제게 쉽지 않은 수행이었습니다

2015년 정초 순회 법회 후(앞줄 오른쪽 첫 번째 김경희 님)
▲ 2015년 정초 순회 법회 후(앞줄 오른쪽 첫 번째 김경희 님)

주간·저녁·청년 법회와 일요명상까지 일주일 내내 법당이 돌아갔고, 불교대학과 경전대학 학생 수도 많았습니다. 저녁 불교대학의 경우 많을 때는 100명이 넘게 입학하던 시기였습니다. 저는 저녁 활동가들이 올 때까지 집에 가지 않고 남아 기다려 주었고, 청년들에게 인사하며 간식과 저녁 공양을 챙겼습니다. 또 진행에 어려운 점은 없는지 묻고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러면서 책임을 진다는 것은 무거운 짐을 혼자 떠안는 것이 아니라, 그 자리에 함께 있어 주는 일이며, 제가 할 일은 엄마 같은 역할이 아니라 저 역시 하나의 역할을 맡아 함께 나누는 일임을 차츰 알게 되었습니다.

법당은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많은 분들의 손길로 거대한 수레바퀴가 굴러가듯 자연스럽게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모두가 부처님 법을 듣고 자신의 삶에 적용하며 실천해 나가는 수행자들이었습니다. 이해가 부족해 부딪힘이 잦았지만, 그것을 꺼내 놓을 줄 아는 용기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때로는 상처받고 감추고 외면하기도 했지만, 점차 굳은살이 생기며 수행을 더 깊게 해 나가는 기회로 삼는 도반들이었습니다.

이런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얻은 말로 다 할 수 없는 소소한 감동은, 총무 소임을 맡으며 덤으로 받은 선물이었습니다.

2008년 입재식 공연준비 총괄(앞줄 맨 오른쪽 김경희 님)
▲ 2008년 입재식 공연준비 총괄(앞줄 맨 오른쪽 김경희 님)

상보다 더 큰 보상

1-8차 천일결사 기간 동안 동래정토회는 3년간 건물 밖으로 음식물 쓰레기를 배출하지 않기로 하고 ‘빈그릇운동’과 ‘쓰레기 제로 운동’을 실험했습니다. 많은 인원이 점심과 저녁 공양을 하는 상황에서 음식물 쓰레기를 전혀 배출하지 않는 일은 체계를 마련하지 않으면 쉽지 않았습니다. 그동안 동래정토회는 ‘내 마음의 푸른마당’이라는 활동과 환경 공청회를 꾸준히 열어 왔고, 환경 실천을 구체화해 온 활동가들이 있었기에 이 실험을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비닐 없이 장을 보고, 식재료는 껍질까지 모두 사용해 조리하고, 남기지 않고 다 먹었습니다. 그래도 남는 꼭지와 겉껍질은 지렁이 상자에 넣거나 말려서 처리하는 시스템을 법당 공간 안에 마련했습니다. 무엇보다 음식을 남기지 않고 다 먹는 문화가 중요했습니다. 이를 위해 불교대학, 경전대학 학생들과 법회 참석자들에게 충분히 안내했습니다. 전국적으로 정토회가 빈그릇 운동을 실천하고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특히 공양간 활동가들의 적극적인 협력이 큰 힘이 되었습니다. 과일도 껍질째 먹어야 했는데, 수박의 흰 부분이 가장 큰 과제였습니다. 수박의 흰 껍질은 반찬과 국으로 활용했고, 푸른 겉껍질은 얇게 벗겨 말렸습니다. 수박 보시가 들어오면 학생들이 수업을 마친 뒤 봉사활동으로 수박 겉껍질을 얇게 벗기는 일을 함께 했습니다.

옹기종기 모여 앉아 수박 껍질 처리하는 동래법당 도반들(앞모습 왼쪽에서 세 번째 김경희 님)
▲ 옹기종기 모여 앉아 수박 껍질 처리하는 동래법당 도반들(앞모습 왼쪽에서 세 번째 김경희 님)

어느 날 한 분이 무거운 수박을 들고 동래정토회 계단을 올라왔습니다. 마침 여름이라 수박 보시가 잦았고, 껍질 처리로 어려움이 많던 때였습니다. 공양간 활동가들이 선뜻 수박을 받지 못하고 잠시 망설이는 모습을 보고 모두 크게 웃었습니다. 고맙게 받아야 할 보시물을 두고 ‘저 수박 껍질을 어떻게 처리하지?’ ‘또 수박 보시가 들어왔네’ 하며 걱정을 먼저 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힘을 모은 결과, 도심의 건물에서 3년 동안 음식물 쓰레기를 외부로 배출하지 않는 실험을 무사히 마쳤습니다. 활동이 마무리될 무렵 동래정토회는 정토행자상 ‘환경상’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상보다 더 큰 보상은 함께 마음을 모아 이루어 낸 사람들의 변화였습니다. 그것이 저에게는 가장 값진 선물이었습니다.

물 흐르듯이 그냥 가보자

KBS홀 대강연을 준비하던 때의 일입니다. 강연 준비 방식은 사전에 충분히 연습하여 당일에는 여유 있게 임하자는 것이었습니다. 해운대정토회와 동래정토회를 합쳐 봉사자가 약 150명 정도 필요하던 시기였습니다. 지금은 훨씬 적은 인원으로도 진행이 가능하지만, 당시에는 그만큼 많은 인력이 필요했습니다.

2019년 KBS홀을 가득 메운  법륜스님의 즉문즉설
▲ 2019년 KBS홀을 가득 메운 법륜스님의 즉문즉설

대강연 준비는 처음이었고, 공간은 넓었으며 팀도 여러 팀이었습니다. 그래서 작은 소임까지 세분화하여 나누었습니다. 강연 동선을 머릿속으로 수없이 그려 보며 시뮬레이션했고, 이를 반복적으로 교육했습니다. 서울에서 여러 차례 강연 봉사를 경험한 한 분은 이렇게까지 교육하는 곳은 처음 본다며 “지독하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저는 발생 가능한 모든 상황을 미리 점검하여 당일 어떤 변수가 생기더라도 예상 범위 안에서 웃으며 대응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2012년 KBS홀에서의 대강연은 처음 시도하는 행사였습니다. 2,500석 규모의 공간이었지만 5,000명을 모아 보자고 했습니다. 부산 전역에서 스님의 강연 포스터와 전단지, 현수막을 쉽게 볼 수 있을 만큼 적극적으로 홍보했습니다. 그 결과 약 5,500명이 모였습니다. 일부는 입장하지 못했기에 외부에 TV 두 대를 설치하여 로비에서도 강연을 시청하도록 했습니다.

모든 봉사자가 시시각각 변하는 상황에서 “이렇게 좀 바꿔 봅시다” 하면 “왜요?”라고 묻기보다 “알겠습니다!” 하며 일사불란하게 움직였습니다. 그때 큰 규모의 강연을 한 번 치르고 나니 이후 작은 강연에서는 예상치 못한 변수가 생겨도 걱정보다는 “물 흐르듯이 가 보자”는 여유가 생겼습니다.


글&편집_이주현(부산울산지부 동래지회)


  1. 정토불교대학은 인생을 좀 더 행복하고 자유롭게 사는 법을 부처님의 가르침을 통해 배우는 곳입니다.
    온라인반-5개월 과정 / 주 1회 / 매주 목요일(오전10:00 / 저녁8:00)
    오프라인반- 5개월 과정 / 주 1회 / 매주 목요일(오전10:00 / 저녁7:30)
    입학신청 https://www.jungto.org/edu/junior 

  2. 만일결사정토회는 개인의 행복과 정토세상 실현을 위해 1993년 3월 만일결사를 시작. 3년을 정진하면 개인의 의식 흐름이 바뀌고, 30년을 정진하면 한 사회가 바뀔 수 있다는 믿음으로 3년 단위로 천일결사 정진을 이어오고 있음 


2026 3월 정토불교대학

전체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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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순

와 오랜 시간 소임의 경험으로 일을 진행하시는 모습에 감동이었습니다.처음 접하는 일에 무겁고 못할까봐 두렵고 하는데 그런 마음이 일어나도 해나가는 모습을 보니 나만 그런게 아니었구나 싶어지며 배우게 됩니다. 소중한 경험을 나눠주셔서 고맙습니다_()_

2026-03-04 09:38:01

황석현

잘들었습니다. 고맙습니다.
길이 되어주셔서 감사합니다!

2026-03-04 08:37:59

박진현

존경하는 김경희 보살님. 감동적입니다. 두번째 이야기 기다립니다.

2026-03-04 07:3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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