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월간정토
바라지 도반과 함께하면
안 되는 일이 없어요

김지현 님은 학교에 가지 않는 아이와 실랑이를 하면서 너무 힘들고 괴로웠다고 합니다. 하루하루가 지옥과도 같은 그때 즉문즉설을 듣게 되고,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불법을 공부하게 되었습니다. 점차 내 마음이 가벼워지자, 그동안 아이는 얼마나 힘들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아이에 대한 집착을 내려 놓을 수 있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제는 나도 다른 사람에게 힘과 위로를 주어야겠다는 마음에 바라지장에 신청하였는데요. 그곳에서 봉사하면서는 또 어떤 깨달음을 얻으셨을까요?

2023년 4월, 나는 정토수련원에 처음 발을 들였다. ‘깨달음의 장’(이하 깨장) 수련에 참여하기 위해서였다. 가정을 꾸린 후 아이들과 남편을 두고 떠나온 건 이때가 처음이었다. '나에게 무슨 문제가 있기에 우리 아이가 평범하지 않고 다른 아이들과 다르게 사는 걸까?’라는 의문은 아이가 학교에 가지 않아 매일 아침 아이와 실랑이할 때부터 생겼다. ‘나의 문제는 무엇인가? 나의 양육방식은? 나는 어떤 사람인가?’ 이런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의문은 풀리지 않았다. 괴로워서 죽을 것만 같았다. 하루하루가 지옥이었다. 그때 즉문즉설을 알게 되었고, 법륜스님 얘기를 들으며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행복학교, 불교대학, 경전대학을 졸업하였다.

부처님 오신날 연등 만들기
▲ 부처님 오신날 연등 만들기

그 음식은 나를 다시 태어나게 해준 커다란 힘과 격려

내 마음속에 있는 얘기들을 꺼내면서 점점 가벼워졌고 내가 참 무지하고 어리석다는 것을 알았다. 아이는 얼마나 힘들었을까? 아이의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마음이 편안해지니 아이를 대하는 게 편해졌다. 하지만, 마음 한쪽에는 늘 아이에 대한 자책감과 미안함이 남아있었다. 깨장에 다녀오면서 숙제처럼 풀리지 않던 나의 응어리가 조금씩 풀리기 시작했고, 아이를 향한 집착이 조금씩 옅어지기 시작했다. 아이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으니 너무나 자유로웠다. 집에만 갇혀있던 내 마음이 바깥을 향하기 시작했다. 내가 받은 것을 조금이라도 돌려주고 싶었고,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때 깨장에서 정성스럽게 음식을 해주시던 바라지 분들이 생각났다. 그 음식은 나를 다시 태어나게 해준 커다란 힘이자 격려였다. 너무나 감사하고 고마웠다. ‘내가 받았던 이 음식을 되돌려줘야지!’ 그렇게 나도 다른 분들께 힘과 위로가 되고 싶어 깨장 바라지를 신청했다.

바라지가 시작되는 날, 함께 할 도반님들을 만나 자기소개를 하고 지금 마음이 어떤지 나누기하였다. 이곳에서의 생활 규칙 등을 송지연 도반님께 안내받았다. 제일 인상 깊었던 것은 발우공양이었다. 너무나도 생소했다. ‘과연 발우공양을 하면서 밥을 제대로 먹을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나는 첫 발우공양 시간에 늦어 대중들을 기다리게 했다. 이튿날부터는 ‘시간에 깨어있자’라는 생각에 항상 시간을 체크하고 일정표를 염두에 두었다.

새벽에 일어나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새벽 시간 예불은 장엄하고 엄숙했다. 혼자서 정진할 때와는 다른 느낌이었다. 집중도 잘되고 기도할 때의 예절도 배웠다. 너무나 소중하고 감사한 시간이었다. 예불을 드리고 문수방으로 돌아올 때는 부처님의 가피를 받은 것 같아 기분이 날아갈 듯 좋았다.

정토사회문화회관 도량 청정 봉사(뒷줄 왼쪽에서 두 번째가 김지현 님)
▲ 정토사회문화회관 도량 청정 봉사(뒷줄 왼쪽에서 두 번째가 김지현 님)

모든 과정에 부처님을 떠올리며 정성스럽게

바라지장에서 나의 소임은 재료를 다듬는 것과 음식이 만들어지면 접시에 예쁘게 담아내는 것이었다. 공양 만들 때의 명심문 ‘이 음식은 부처님께 올리는 공양입니다’처럼 모든 과정에 부처님을 떠올리며 정성스럽게 준비하였다. 낯설고 어색했고 도반님과도 어색해서 각자 맡은 소임만 했는데, 시간이 갈수록 각자의 소임을 하면서도 서로 도우며 다 같이 준비하고 있었다.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도 우리는 서로 도우며 함께했다.

처음엔 잘 안돼서 시행착오를 겪었지만, 하면 할수록 모두의 힘이 모아져 작품이 탄생했다. 이렇게 되는 과정을 보고 우리는 같이 하면 안 되는 일이 없음을 체험했다. 어렸을 때부터 항상 혼자서 무언가를 하면서 외롭다는 생각을 많이 하곤 했다. 그런데 이젠 외롭지 않다. 내 옆에는 언제나 함께하는 도반들이 있기 때문이다. 부처님 법을 만나 연기법을 알았고, 지금 여기까지 온 것이 나 혼자만의 힘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수행과 봉사 덕분에 행복해

매일 바라지 도반들과 저녁 프로그램으로 하루를 마무리했다. 나누기하면서 보니 다들 겉으로는 평온해 보였지만 내면에 어려움이 없는 도반님들이 없었다. 각자의 자리에서 저마다 힘겨운 삶을 마주하다가 자기를 찾기 위해서 여기서 함께 잠깐 쉬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한 분 한 분이 소중했고, 인연이 되어 만난 것 같아 눈시울이 붉어졌다.

내 생각대로 안 된다고 늘 투정 부리고 내 식대로 하려는 마음이 강한 나. 이런 내가 여기까지 온건 어쩌면 세상은 내 맘대로 안 된다는 걸 보여주던 아들 때문이 아니었을까? 새삼 아들이 보고 싶어지고 고마웠다. 지금도 가끔 아들을 보면 마음이 편치 않을 때도 있지만 모든 것이 내가 지은 인연임을 받아들이니 편안하다. 정토회에서의 경험은 나를 성장하게 만든다. 이번 깨장 바라지에 참여하면서 함께 한다는 것이 얼마나 기쁘고 행복한 일인지 다시 한번 느꼈다. 역시 수행과 봉사는 나를 행복하게 만든다.

173차 일상에서 깨어있기 회향수련(왼쪽에서 두 번째가 김지현 님)
▲ 173차 일상에서 깨어있기 회향수련(왼쪽에서 두 번째가 김지현 님)


이 글은 <월간정토> 2023년 11월호에 수록된 김지현 님의 바라지장 소감문입니다.

글_김지현(서울제주지부)
편집_월간정토 편집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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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댓글 19

0/200

대정진

감동적인 수행담 나눠 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덕분입니다.

2024-06-19 09:57:38

이완규

감동적인 나누기 잘 들었습니다.
무엇이든 열심히 하시는 모습이 보기 좋았는데, 이런 과정이 있었군요~~
앞으로도 쭉~~ 행복하시길 바래요~^^
(깨장 동기..ㅋ)

2024-06-11 10:09:56

지아

다시 초발심자로 되돌아가고 싶네요 그땐 참 행복했었는데
요즘 정진을 놓치지않고 있지만 뭔가 예전같지않은 기분 나를 고집하고있나봅니다
내려놓기위해 바라지봉사라도 해야겠습니다
나눠주셔서 감사합니다

2024-06-11 08:4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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