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6.6.2. 부탄 입국, 부탄 방문 1일 차
“판단하는 마음과 이해하는 마음은 어떻게 다른가요?”

오늘 스님은 방콕을 경유하여 부탄에 입국해서 ‘JTS 지속가능한 개발 프로젝트’가 진행 중인 트롱사(Trongsa)로 이동하는 일정입니다.

JTS의 지속가능한 개발 프로젝트는?

스님은 2024년 부탄 정부에 '지속가능한 개발 프로젝트'를 제안했습니다. 기후 위기 시대에 무분별한 물질적 개발 대신, 적게 소비하면서도 행복하게 사는 삶의 모델을 부탄에서 실현해 보자는 취지입니다. 부탄이 국가 이념으로 삼고 있는 GNH(국민총행복)의 가치를 지키면서도, 낙후된 지역 주민들의 실질적인 생활을 개선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개발 방향은 주거 환경 개선, 자립 생산 기반 마련, 교육·의료 지원, 기본 인프라 보수, 전통문화 및 자연환경 보전 등 7가지이며, JTS는 자재, 부탄 정부는 기술 인력, 지역 주민은 노동력을 제공하는 협력 방식으로 진행됩니다. 2024년 초 현장 답사를 통해 가장 취약한 두 지역, 젬강주와 트롱사주를 사업 대상으로 선정했습니다. 그해 4월 첫 시범사업 MOU(업무협약)를 체결하고 시범 사업을 시작했으며, 주거 개선 27채, 학교 7개 보수, 식수 시설·도로·농수로 정비, 보청기 106대 등을 지원했습니다. 이 성과를 바탕으로 2025년 6월 23일 본 사업 MOU를 체결, 5년간 500만 달러를 투입하는 본격 프로젝트에 돌입했습니다. 이번 스님의 부탄 방문은 본 프로젝트가 시작된 지 1년이 되는 시점에 이루어졌습니다.

부탄에서 스님의 하루 시작

스님은 6월 2일 방콕공항에 새벽 1시에 도착했습니다. 방콕에서 활동하고 있는 정토행자인 황소연· 쿤조 부부가 공항에 마중 나와 주었습니다.

스님은 이번 부탄 일정에서 통역을 담당할 린첸 님과도 방콕공항에서 만났습니다. 함께 황소연 님 집으로 이동해서 잠시 휴식을 취했습니다. 스님은 원고 교정을 보고 아침 기도를 마친 뒤 다시 방콕공항으로 이동했습니다. 오전 7시 30분에 이륙 예정인 부탄행 비행기를 타기 위해서 수속을 밟았습니다.

현지 시각 오전 11시, 비행기는 예정된 시간보다 30분 정도 일찍 파로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공항에서 BNF(부탄 비구니 재단) 사무총장 타시 장모(Tashi Zangmo) 박사님을 만났습니다.

짐을 찾아 출국장을 나오니 부탄 내각에서 나온 프로젝트 실무자 체왕 님이 스님을 마중 나와서 반겼습니다. 체왕 님은 스님께 환영의 꽃다발을 드렸습니다.

부탄 날씨가 비가 오고 쌀쌀할 거라는 예상과는 달리 해가 쨍하고 상당히 더웠습니다. 짐을 정리해서 차에 싣고 오전 11시 30분에 오늘의 목적지인 트롱사를 향해 출발했습니다.

이동을 시작하며 스님은 이번 일정 동안 운전을 해줄 기사와 인사를 나눴습니다. 운전기사 나추 님은 16년 동안 부탄 내각에서 운전기사 일을 했다고 했습니다.

“다닐 길이 험한데 괜찮겠어요?”

“네 괜찮습니다. 예전에 총리님을 모시고 젬강(Zhemgang)에 간 적이 있습니다.”

부탄은 산악 지형 특성상 굽이치는 좁은 도로가 많아 거리에 비해 소요 시간이 상당히 긴 편입니다. 특히 젬강으로 가는 길은 험하고 마을로 들어갈 때는 대부분 비포장도로로 되어 있어 덜컹덜컹한 길들이 많아서 안전 운전을 위해서 운전기사가 주의를 더 해야 하는 곳입니다.

낮 1시, 도출라(Dochula)에서 잠시 쉬어갔습니다. 도출라는 3,000미터 고도라서 바람이 시원했습니다. 주변에 인도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인도 북부 지역은 5월과 6월이 가장 더운 날씨로 섭씨 40도를 넘는 날이 많아서 시원한 지역으로 피서를 가는 시즌이라고 합니다. 6월의 인도는 몬순(우기)이 시작되는 시기로, 습도가 매우 높아서 체감 온도가 더 높게 느껴지는 편입니다. 더위를 피해서 부탄으로 온 인도 관광객들을 여기저기에서 쉽게 볼 수 있었습니다.

다시 차를 타고 서둘러 이동했습니다. 지난해 큰 비로 산사태가 많이 나서 길이 심하게 손상되었던 터라, 최근에 도로포장을 다시 해서 길 상태가 아주 좋았습니다.

오후 1시 40분, 점심 장소인 로베사(Lobesa)의 식당에 도착했습니다. 스님은 부탄 내각 비서실장님이 준비해 준 점심 식사를 하고 잠시 일행들과 대화를 나누며 휴식을 했습니다. 오후 2시 40분, 다시 차에 올라 트롱사로 이동했습니다.

오후 4시 30분 트롱사 탕십지 게옥(Tangsibji Gewog) 첸뎁지 치옥(Chendebji Chiwog)에 도착했습니다. JTS 한국인 활동가들과 탕십지 게옥 공무원들이 스님을 반겼습니다.

첸뎁지 마을은 보행로 설치를 지속적으로 요청하였으나, 급경사가 아니라서 JTS 지원 기준에 해당하지 않았습니다. 이곳은 2003년 헤리티지 마을(Heritage Village)로 공식 지정되었는데, 집 외관을 변경하지 못하도록 제한하여 전통 부탄 건축 양식을 보존하고 문화 관광을 장려하려는 목적에서 보존되고 있는 곳입니다. 그래서 시멘트로 보행로를 설치하는 것에 대한 우려가 있어서 스님의 점검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이곳에 먼저 답사하게 되었습니다.

마을 길은 이미 사람들이 밟고 다닐 수 있도록 돌로 길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하지만 마을 측의 요청 사항은 보행로에 시멘트 포장을 하는 것입니다. 스님은 돌로 만들어진 보행로를 걸으며 마을 둘러본 후 말했습니다.

“가파른 곳을 제외하고는 보행로 포장을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문화유산이기 때문에 포장하는 것보다 이렇게 돌로 길을 만드는 것이 가치가 있어요. 하지만 이곳에 사는 사람들이 원한다면 할 수도 있는 프로젝트입니다. 그러나 20년 후에 생각하면 시멘트를 뜯고 다시 이렇게 돌길로 만들려고 할 거예요. 시멘트로 하더라도 돌을 박고, 표면은 시멘트를 덮어서 만들도록 해 보세요. 그럼, 전체가 시멘트로 만들어져 있어도 돌이 깔린 것처럼 보일 거예요.”

스님은 촉바(Tshogpa, 치옥의 수장, 한국의 이장에 해당)와 사람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그림을 그려가면서 설명하였습니다.

둘러보기를 하고 일행들과 이야기하다 보니 마을 사람들이 프로젝트를 원한다기보다는 문화유산 마을을 조성하고자 하는 주지사님과 마을 군수가 원하는 프로젝트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본인 집 앞까지 시멘트 보행로 연결이 되지 않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프로젝트를 원하지는 않는다고 했습니다. 스님이 촉바에게 물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프로젝트를 원하나요?”

“필요하다고는 생각합니다. 일하겠다고 도장도 찍었습니다. 미팅도 4~5번을 했습니다. 겁(Gup, 게옥의 수장, 한국의 면장에 해당)이 와서 하는 게 좋을 거라고 설득했습니다.”

“본인들이 원하지 않는데 왜 프로젝트를 진행하려고 하나요? (웃음) 주민들이 생각할 때 메인 보행로는 본인들에게 큰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참여하는 게 쉽지 않을 거예요. 메인 보행로 250미터를 다 함께 만들고, 개인이 메인 보행로에서 자기 집까지 가는 보행로를 만들고 싶어 한다면 자재를 지원해 주겠습니다. 그래야 마을 사람들이 보다 적극적으로 참여 할 수 있을 거예요.”

답사를 마친 후 첸뎁지 초등학교에서 차를 준비해 줘서 일행들은 차를 마시며 숨을 골랐습니다. 차를 마신 후 다시 트롱사로 이동을 시작했습니다.

오후 6시 20분에 트롱사 주민행정센터에 도착했습니다. 트롱사 주지사님 일행이 스님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꽃다발을 전달하며 스님을 맞이했습니다. 환영 세레모니 이후 주민행정센터에서 차를 마시며 주지사님과 대화를 나눴습니다.

주지사님 이외에도 부주지사, 새로 부임한 판사와 경찰서장도 함께 했습니다. 차를 마시며 트롱사 주지사님과 프로젝트 진행 상황에 관해 이야기했습니다. 주지사님이 말했습니다.

“스님 이번 일정이 엄청 빡빡하다고 들었습니다.”

“네. 방문해야 할 곳이 108곳이라고 해요. 주민들이 정성스럽게 프로젝트를 진행했으니 돌아보고 격려를 해줘야지요.”

스님은 기획담당관에게 물었습니다.

“주민들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힘들어하나요? 아니면 재밌게 하고 있나요?”

“처음에는 스님이 지원해 준다고 하시니 사람들이 열정이 있었는데 막상 본인들이 몸을 써서 일을 하려고 보니 힘들어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이렇게 하는 게 본인들에게 이득이 되는 것을 잘 알게 된 것 같습니다. 근데 고민은 스님 멀리서 오셨는데 우리가 해놓은 것이 잘한 것인지 걱정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이외에 콜푸 게옥 납지(Nabji), 콜푸 치옥의 도로 프로젝트 등 여러 현안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주지사님이 말했습니다.

“JTS 지속 가능한 프로젝트는 JTS에서 자재를 지원하고 공무원들도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다 보니, 정부에서 지원해 주 듯이 모든 것을 다 해주는 줄 알았다는 주민들이 꽤 많이 있습니다. 본 프로젝트에서는 주민들이 직접 노동을 하면서 참여해야 한다고 하니까 프로젝트를 취소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앞으로 정부의 지원 방식도 JTS에서 하는 방법으로 갈 수밖에 없지 않을까 싶습니다. 정부에서 진행 중인 울타리 설치 프로젝트도 자재만 지원해 주고 있어요. 이 모델이 활성화될 것 같습니다.”

스님이 이어서 말했습니다.

“공공의 일은 정부가 해주지만 수로를 만들거나 울타리를 치고 집 짓는 일은 개인의 일이라서 자기가 해야 해요. 자재를 지원해 주고, 자기가 직접 참여해서 만들어 가야 자립심을 키울 수 있습니다. 그런 기준을 가지고 프로젝트를 진행해야 합니다. 납지처럼 먼 곳에서 물을 끌어오는 건 정부에서 해주고 그 물을 각자 논에 대는 건 개인의 일이라 주민들 본인이 하는 거예요. 예산이 있더라도 본인들이 부담해서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게 필요합니다. 정부가 모든 걸 다 지원해 줘서 이뤄지는 일들은 경제적인 효과로는 투자 대비 소득이 안 나와요.”

트롱사 주지사님이 지난 3월 말에서 4월 초, 한국 방문 후 한국 음식 문화를 경험하고는 채소 반찬으로 맵지 않고 기름지지 않게 저녁 식사를 준비해 주었습니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주민행정센터를 한 바퀴 둘러보았습니다. 주지사님이 JTS 활동가 중 한 명이 인테리어에 아이디어가 많다는 것을 알고 주민행정센터를 리모델링할 때 조언을 구한 적이 있습니다. 1층에는 탁구대가 설치되어 있어 탁구를 쳐보기도 했습니다.

주민 행정센터에서 나와 오늘 숙소인 트롱사 JTS 센터로 이동했습니다. 이곳은 활동가들이 트롱사 주에서 프로젝트가 진행되는 동안 머무는 숙소이자 사무실입니다. 스님은 오늘 이곳에 처음 방문했습니다. 첫 방문을 기념하기 위해 부탄식으로 센터 곳곳에 물을 뿌리는 축원을 요청받아서 스님은 정성껏 축원을 했습니다. 축원을 마친 후 한국인 활동가들이 스님께 삼배를 드렸습니다.

스님은 내일 일정에 대한 브리핑을 듣고, 원고 교정을 하며 하루 일정을 마무리했습니다. 내일은 트롱사 지역 프로젝트 진행 상황을 점검하고 젬강으로 이동할 예정입니다.

오늘은 법문이 없었으므로, 지난 4월 부산 ‘행복한 대화’ 강연에서 있었던 즉문즉설 내용을 소개하며 글을 마무리합니다.

판단하는 마음과 이해하는 마음은 어떻게 다른가요?

“평소 스님의 즉문즉설을 통해 제 삶을 돌아보며 많은 지혜를 얻고 있습니다. 저는 부산에서 이발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매일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그 사람의 선택이나 태도를 보면, ‘저러면 나중에 힘들어지겠다.’라고 짐작될 때가 많아졌습니다. 실제로 시간이 지나면 예상했던 대로 결과가 나오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상대는 그저 나와 다를 뿐이다’라고 여기지 않고, 자꾸 그 사람의 선택이나 태도를 평가했습니다. 더 혼란스러운 건, 예상대로 그 사람이 힘들어졌을 때 제 마음도 함께 불편해진다는 점이었습니다. 이것이 상대를 위하는 마음에서 오는 것인지, 아니면 내 기준으로 상대를 통제하려는 것인지 스스로도 잘 모르겠습니다. 타인의 삶이 어느 정도 보일 때, 그것을 그냥 ‘다름’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맞을까요? 아니면 보이는 대로 판단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걸까요? 이런 판단을 내려놓고 편안하게 상대를 바라보려면 어떤 연습을 해야 할까요? 타인의 삶을 판단하는 이 마음이 진정 상대를 위한 것인지, 제 기준으로 상대를 통제하려는 마음에서 오는 것인지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요?”

“질문자가 예수님이나 부처님 같은 성인인가요?”

“아닙니다.”

“그런데 왜 다른 사람을 위한다고 말하나요. 사람은 기본적으로 자기밖에 모릅니다. 그것이 인간이에요. 남을 위한다고 해도 결국 다 자기를 위한 것이고, 모두 자기 관점에서 살아갈 뿐이에요. 이렇게 분명히 알면 질문할 거리도 없습니다.”

“알겠습니다.” (대중 웃음)

“내가 아내를 좋아한다면, 이것은 내 욕구입니다. 아내를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것은 그저 나의 감정일 뿐이에요. 만약 정말로 성인처럼 누군가를 대하고 싶다면, 좋아하는 마음이 아니라 이해하는 마음을 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해하는 마음을 내면 미워하거나 원망하는 마음도 없고, 화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오히려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일어나죠. 그런데 좋아하는 마음은 다릅니다. 내가 좋아하는 만큼 상대가 돌려주지 않으면 바로 미워지고, 복수하고 싶어집니다.

어떤 젊은 여성이 자신을 너무나 사랑하는 남자와 결혼했어요. 아내를 위해서라면 모든 것을 버릴 만큼 헌신적인 남자였기에 그 사람과 살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학창 시절부터 알고 지낸 남자 친구가 아내를 찾아왔어요. 이성 관계가 아니라 그저 오래된 지인이었습니다. 그런데 함께 온 일행이 급한 전화를 받고 먼저 자리를 뜨는 바람에 둘만 남아 대화를 조금 더 하게 됐어요. 바로 그 순간 남편이 집에 들어왔습니다. 이때 남편이 아내를 사랑할수록 화를 낼까요, 사랑하지 않을수록 화를 낼까요?”

“사랑할수록 화를 냅니다.”

“그래요. 남편은 불같이 화를 냈습니다. 이렇듯 좋아하는 마음은 그만큼 위험한 거예요. 저도 누가 ‘스님, 정말 좋아요!’ 하면 조심합니다. 나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은 나를 미워할 일도 없고 실망할 일도 없어요. 오히려 ‘스님 팬입니다!’ 하고 몹시 좋아하는 사람이 원하는 대로 사진을 찍어주지 않으면 돌변해서 원수가 될 확률이 높습니다. 누군가를 좋아하든 싫어하든, 그 마음은 물을 필요도 없이 전부 자기중심적인 것입니다.

부처님이나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자비란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이 아닙니다. 이해하는 마음이에요. ‘저 사람은 이것 때문에 화가 났구나’, ‘저 사람은 저것 때문에 저렇게 행동하는구나!’ 이렇게 이해하는 마음을 내는 것입니다. 만일 이해까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상대를 존중할 줄은 알아야 해요. 존중은 나와 다른 상대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겁니다. ‘저 사람은 저렇구나’ 하고 인정하는 거예요. 존중이 먼저이고 그다음이 이해예요. ‘저 사람은 저럴 수밖에 없었구나’ 이렇게 이해하는 마음을 내면 미운 마음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서로 좋아하는 남녀가 있다고 해봅시다. 이해하는 마음이 있을 때는 상대의 형편을 보고 기다려 줄 수 있어요. 상대가 어려워 보이면 돕고 싶어집니다. 하지만 좋아하는 마음만 있을 때는 그렇지 않아요. 빨리 결혼하고 싶은데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오히려 짜증을 내게 됩니다. 그러면 질문자의 경우는 어떨까요?”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입니다.”

“그게 나쁘다는 뜻은 아니에요. 다만 인간의 마음이 원래 그렇다는 겁니다. 저는 누군가 ‘저희 결혼을 축하해 주세요’라고 요청하면, 선뜻 ‘결혼 축하합니다’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이 결혼이 진정 축하할 일인지 아닌지는 지나 봐야 알 수 있어요. 지금은 기쁘게 결혼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원수가 되어 후회하는 경우도 많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사랑’이라는 말을 할 때, 단순히 좋아하는 감정을 사랑이라고 부를 수도 있어요. 하지만 사랑이라는 말을 깊이 들여다보면 결국에는 그 끝에 있는 자신의 욕망을 마주하게 됩니다.

우리는 친구를 사귈 때 ‘이 사람이 의리가 있는가’를 중요하게 여깁니다. 동업자를 구할 때는 ‘신용이 있는가’를 중요하게 보고요. 그런데 결혼 상대자는 어떻습니까? 여러 가지 중에 딱 한 가지만을 중요하게 보나요, 아니면 열 가지를 다 따져보나요? 대부분 열 가지를 다 따져봅니다. 인물과 성격, 집안과 학벌까지 다 괜찮아야 합니다. 왜 이렇게 온갖 조건을 따지는 걸까요? 그건 한 사람을 붙잡아서 평생 그 덕을 보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결혼할 배우자를 찾기가 어려울 수밖에 없어요.

첫눈에 반했다는 건, 내가 원하는 여러 조건을 한꺼번에 갖춘 사람으로 느껴졌다는 뜻입니다. 그렇기에 서로의 만남이 오래 지속되는 경우는 드물어요. 흔히 말하는 '세기의 결혼'이 대부분 실패로 끝나는 이유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 만남에는 상대를 진정으로 이해하는 마음이 없기 때문이에요. 결국 상대를 인정하고 존중하며 이해하는 마음, 그것이 인간관계에서 가장 소중한 것입니다.

다만, 그렇게 못한다고 해서 나쁜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인간 사회에서 이렇게 모든 것이 얽혀서 온갖 갈등이 일어나는 이유는, 대부분의 사람이 상대를 이해하는 마음을 먼저 내지 못하기 때문이에요. 질문자가 어떤 손님을 보고 ‘꼴을 보아하니 일이 잘 안 풀리겠다.’ 싶었는데, 막상 그렇게 되니까 ‘거봐라, 내 예측이 맞았네!’ 하고 생각이 들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때, 사실은 그 사람만 문제가 아니라 질문자도 마찬가지예요. 서로 피장파장이라는 겁니다. 그러니 상대를 판단하는 데 그치지 말고, 그런 나 자신을 보면서 ‘너도 똑같다.’ 하고 자기를 함께 돌아보면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결혼할 때 ‘나도 이기심으로 하고, 상대도 이기심으로 한다’라고 인정한다면, 그건 처음부터 사랑이 아니라 둘 다 이기심인 거예요. 그렇다고 그것이 나쁜 것은 아닙니다. 원래 결혼이라는 건 다 이기심으로 하는 거예요. 다만 이기심을 사랑이라고 착각하니까 갈등이 생기는 것뿐입니다. 처음부터 서로 이익이 맞아 결혼한다고 생각하면, 상대가 이해관계를 따지는 것을 기분 나쁘게 여길 이유가 없습니다. 나도 그렇게 하니까요. 그런데 이해관계로 만나놓고는 사랑으로 만났다고 자꾸 착각하니까 갈등이 깊어지는 것입니다.

제가 쓴 『스님의 주례사』라는 책이 있어요. 그 책 제목을 처음에 어떻게 지었는지 아세요? 제가 ‘사랑 좋아하시네!’라고 지어서 출판사에 줬습니다. 그런데 출판사에서 ‘아이고 스님, 그렇게는 도저히 안 됩니다’라고 해서 제목이 바뀌었어요. 하지만 책을 읽어 보면 알겠지만, 전체적인 내용은 영락없이 ‘사랑 좋아하시네!’입니다. (웃음) 마찬가지로 질문자도 그 사람을 이기적이라고 비난할 일이 아니라, 그와 나, 우리 모두에게 그런 속성이 있음을 알고 서로 협력하면 큰 문제 없이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질문드리겠습니다. 이해와 존중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이해했는데, 그런 마음을 낼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요?”

“제가 지금까지 알아듣지 못할 헛소리를 했네요. (대중 웃음) 이 세상 사람은 모양이 서로 같아요, 달라요?”

“다릅니다”

“성격이 같아요, 달라요?”

“다릅니다”

“취향이 같아요, 달라요?”

“다릅니다.”

“이렇게 서로 다른 걸 바로 알 수 있는데, ‘무얼 어떻게 하면 다른 줄 알 수 있습니까?’라고 물으면 어떡하나요. 눈이 있으면 다르게 보이니 다른 줄 알고, 귀가 있으면 다르게 들리니 다른 줄 알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예를 들어, 오늘 즉문즉설을 들은 사람들에게 ‘스님 법문을 듣고 느낀 소감이 어떻습니까?’라고 물어보면 같은 말을 할까요, 각자 다르게 말할까요? 감동했다는 사람도 있지만, ‘스님은 자신만 결혼 안 하면 되지, 왜 우리 결혼생활까지 비난하시지?’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똑같은 얘기를 들어도 다 이렇게 각기 달리 들리고 달리 느껴지는 거예요. 그것을 ‘너는 왜 그렇게 말하니?’라면서 비난하면 안 됩니다. 저 사람은 ‘저렇게 느꼈구나’, ‘저렇게 들었구나’하고 받아들이면 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다른 것을 어떻게 하면 다른 줄 압니까?’라는 질문 자체가 모순인 거예요. 사실을, 있는 그대로 보면, 사람은 저마다 다릅니다. 그런데 왜 질문자는 그 사실을 모를까요? 그건 자기 생각에 빠져서 눈을 감고 살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누군가를 이해한다는 말은 ‘그 사람이 옳다’라는 뜻이 아니에요. 다만 ‘그 사람 입장에서는 그럴 수 있겠다’라는 뜻입니다. 예를 들어, 집에 늦게 들어온 남편에게 아내가 화를 냈다고 해봅시다. 이때 남편 입장에서 아내를 이해한다는 건 ‘늦게 들어온 내가 잘못했다’도 아니고 ‘화를 낸 아내가 잘못했다’도 아닙니다. 나는 늦게 들어올 만한 이유가 있었고, 아내도 화를 낼 만한 이유가 있었던 거예요. 아내는 자기 나름대로 남편에게 잘한다고 저녁 식사를 준비했을 수도 있어요. 아내가 정성을 들였을수록 더 화가 날 겁니다. 그러나 만약 아내가 남편을 전혀 기다리지 않았다면 화가 나지 않을 거예요. 아내가 다른 친구와 때마침 즐겁게 전화하고 있었다면, 남편이 늦게 들어올수록 아내는 오히려 좋을 겁니다. 그때는 남편이 일찍 들어오는 게 하나도 반갑지 않아요. 아내가 화가 난다는 건, 남편을 기다렸기 때문에 화가 나는 거예요. 그래서 남편은 ‘아내가 화가 났구나’, ‘아내 입장에서는 화날 만하구나’하고 받아들이면 되는 겁니다. 그것이 잘 안된다면, 그건 자기 생각에 빠져 있기 때문이에요.”

“네, 잘 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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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식

“만약 정말로 성인처럼 누군가를 대하고 싶다면, 좋아하는 마음이 아니라 이해하는 마음을 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해하는 마음을 내면 미워하거나 원망하는 마음도 없고, 화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오히려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일어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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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심명’의 ‘미워하고 사랑하지만 않으면 통연히 명백해진다’를 생각합니다.(但莫憎愛 洞然明白)

2026-06-05 06:55:37

구자정

고맙습니다.

2026-06-05 06:54:44

이용주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이해는 안되도 존중은하자
감사합니다

2026-06-05 06:4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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