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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오전에 생방송으로 즉문즉설 강연을 연달아하고, 오후에는 방송, 영화, 연극 예술인들의 마음 공부 및 사회 활동 모임인 ‘길벗’ 회원들과 연탄 배달 봉사를 한 후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스님은 새벽 수행과 명상을 마친 후 라이브 담마 토크(Live Dharma Talk)를 하기 위해 오전 8시부터 정토회관 2층 정진실에 마련된 카메라 앞에 자리했습니다. 미국, 캐나다, 유럽, 아시아 등 다양한 나라에서 영어를 사용하는 200여 명의 정토회 회원들이 화상회의 방에 접속한 가운데 전 세계 정토회 회원들을 위해 온라인 즉문즉설 강연을 하며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스님을 소개하는 영상이 끝나자 스님이 웃으며 인사말을 하고 질문을 받았습니다. 1시간 30분 동안 다섯 명이 손들기 버튼을 누르고 스님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그중 한 명은 일상에서 온화함과 단호함 사이에서 어떻게 균형을 잡아야 할지 고민을 털어놓았습니다.

“My question is how to strike a balance between gentleness and firmness in everyday life. Gentleness often reflects compassion, yet firmness is sometimes necessary to achieve results. For example, when my internet service failed, my polite complaint was dealt with slowly, but when my colleague spoke more sharply, the issue was resolved immediately, which made me wonder. Where is the healthy boundary between being patient and being firm? As a Buddhist practitioner, should I always be gentle, even if it means slower results? Or are there moments when being firm is a more appropriate and effective response?”
(제 질문은 일상생활에서 온화함과 단호함 사이의 균형을 어떻게 잡아야 하는가입니다. 온화함은 종종 자비심을 반영하지만,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때로 단호함이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제 인터넷 서비스가 중단되었을 때, 제가 정중하게 불만을 제기하자 처리 과정이 느리게 진행되었습니다. 그러나 제 동료가 더 날카롭게 말하자 문제가 즉시 해결되었죠. 그래서 저는 궁금해졌습니다. 인내심과 단호함 사이의 적절한 기준은 어디에 있을까요? 불교 수행자로서, 결과가 늦어지더라도 항상 부드러움을 유지해야 할까요? 아니면 단호함이 더 적절하고 효과적인 대응이 되는 경우도 있을까요?)
“질문자의 얘기를 들으면서 공항에서 있었던 제 비슷한 경험이 하나 떠올랐습니다. 공항에 도착해서 탑승 수속을 하려는데 이미 마감돼서 들어갈 수 없다는 거였어요. 마감 시간은 출발 40분 전인데, 저는 1시간 전에 도착했으니 당연히 될 줄 알았죠. 그런데 이미 끝났다고 했어요. 제가 급한 일이 있어서 그러니 제발 들여보내 달라고 간곡하게 사정했습니다. 그런데 이미 마감했다며 안 된다는 거였어요. 10분 가까이 사정해 보았지만 들여보내 주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마침 다른 분이 또 늦게 와서 항공사에 항의했습니다. 원래 마감 시간은 법적으로 40분 전인데 1시간 전에 마감했으니 불법이라며 아주 강경하게 얘기했어요. 결국 그분 덕분에 저도 같이 탑승 수속을 할 수 있었습니다. 탑승 게이트까지 들어와서 보니 왜 마감을 일찍 했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항공사가 좌석을 초과 예약해 둔 상태였고, 자리가 꽉 차서 탑승 수속을 더 받을 수 없었던 겁니다. 결국 제가 들어가자, 이미 들어가서 같은 좌석을 배정받았던 다른 승객이 나오게 되었고, 그분도 항공사에 거세게 항의했습니다.

제가 말씀드리는 것은 때로는 이렇게 원칙을 내세우며 강하게 얘기하는 것이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된다는 것입니다. 저는 문제가 해결되어 좋았지만, 동시에 다른 승객은 취소되어 나와야 했어요. 저 때문에 다른 누군가가 손해를 볼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불교적 관점으로 보면 불만에 차서 화내며 강하게 항의하는 것은 수행자답지 못한 행동입니다. 그러나 어떤 사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강하고 단호하게 행동하는 것은 상황에 따라 필요할 수도 있어요. 화내지 않고 편안한 마음으로, 그러나 단호하게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불교 수행자의 원칙에서 벗어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실제로 평정심을 유지하기 어렵죠. 편하고 부드럽게 얘기하거나, 우유부단한 태도로 얘기하면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화나서 강하게 얘기하면 해결될 때도 있고요. 그러나 화내어 강하게 얘기하면 갈등이 생겨서 서로 다툴 수도 있고, 그러면 문제 해결은 오히려 더 어려워지기도 하죠. 작은 갈등은 큰 분쟁으로 커질 수도 있고, 때로는 전쟁으로까지 이어지기도 합니다. 그래서 ‘화내어 강하게 말하면 반드시 통한다.’고 단정해서 말씀드릴 수는 없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어떤 문제를 해결할 때 평정심을 유지하며 자비롭게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동시에 강하고 단호한 태도로 문제 제기하는 것도 허용하셨습니다. 소승 불교의 관점은 다르지만 대승 불교의 보살 수행 관점에서, 보살이 어떤 사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단호하면서도 강한 태도로 행동하는 것은 인정됩니다. 대승 경전에서 ‘어떤 특별한 힘을 가진 신들이 보살을 옹호한다.’는 표현이 나오는 것도 이런 측면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행동하다 보면 대개 마음의 평정을 잃어버리기 쉽습니다.

그래서 저는 질문자에게 두 가지 방법을 제안합니다. 첫째, 문제를 제기할 때는 평정심을 유지합니다. 둘째, 현안에 대해서 부드러운 태도로 제안합니다. 그렇게 해서 해결되지 않는다면 포기하셔도 되고, 꼭 해결해야겠다면 강력하게 밀어붙여 보셔도 괜찮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강한 방식은 대승 불교의 관점이지 소승 불교의 관점은 아닙니다.”
“I was actually quite polite and gentle, but my friend ran out of patience, so I took advantage of his anger. So the problem was resolved not because of me.”
(사실 저는 꽤 예의 바르고 부드럽게 행동했는데, 친구가 인내심을 잃어서 제가 그 화를 이용했습니다. 그 문제는 제가 잘해서 해결된 것은 아닙니다.)
“네. 어쨌든 ‘중도’는 놓인 상황에 따라 이 두 가지 방법을 적절히 사용하는 것이라고 말씀드립니다.”

계속해서 질문이 이어졌습니다. 다양한 질문과 스님의 답변이 이어지는 가운데 9시 30분이 되어 대화를 마무리했습니다.
생방송을 마친 스님은 정토회관을 찾아온 손님들과 잠시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미국 LA정토회 회원인 이경택 님과 이승훈 님이 정토회 으뜸절 순례를 하기 위해 한국을 방문했습니다.
“죽림정사, 천룡사, 아도모례원, 문경수련원과 연수원까지 전국을 한번 돌아보고 오세요. 내일 가는 천룡사는 제가 직접 안내해 드릴게요. 환영합니다.”

스님은 묘덕 법사님에게 두 분을 잘 안내해 주라고 당부한 후 방송실로 향했습니다.
오전 10시부터는 정토회관 방송실에서 정토경전대학 학생들과 그동안 수업을 들으며 궁금한 점에 대해 대화하는 온라인 즉문즉설 시간을 가졌습니다.

1000여 명이 생방송에 접속한 가운데 지난 한 달 동안 경전대학 학생들이 실천 활동을 한 모습을 영상으로 보았습니다.

이어서 모두가 삼배의 예로 스님에게 법문을 청했습니다. 스님은 정토경전대학의 교과 과정에 대해 소개한 후 곧바로 학생들의 질문을 받았습니다. 먼저 사전에 질문을 신청한 여섯 명과 대화를 나눈 후 이어서 즉석에서도 질문을 받고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중 한 명은 알아차림은 되지만 가족·친구·동료에게 이미 지어 놓은 견고한 ‘상’을 내려놓기가 어렵다며 상을 짓지 않고 수행하려면 어떤 마음가짐이 필요한지 스님에게 조언을 구했습니다.

“경전 공부를 시작하지 않았다면 제가 아상(我相)이 있는지도 모르고, 자비심과 욕심을 구분하지도 못하고 살았을 것 같습니다. 저는 지금 경전 공부를 할 수 있게 된 것에 그저 고마운 마음입니다. 이제는 알아차리기는 할 수 있게 됐는데, 상(相)을 짓지 않는 건 과연 가능할까 하는 의구심이 듭니다. 특히 자주 마주하는 가족, 친구, 직장 동료들에 대해 이미 제가 지어 놓은 상이 꽤 견고한 것 같습니다. 상을 내려놓는다는 게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 궁금합니다.”
“개와 고양이를 관찰하면 개는 이런 성질이 있고, 고양이는 저런 성질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특징을 구분해서 아는 지혜를 분별지(分別智)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 특징에 대해 ‘문제 있다.’고 여기면, 그것을 ‘시비분별한다.’ 하여 분별심(分別心), 시비심(是非心)이라고 합니다. 다시 말해 두 대상의 특징과 차이를 알아서 어떤 문제를 푸는 데 도움이 되면 그것을 지혜라 하고, 그 특징과 차이를 ‘좋고 나쁨’, ‘옳고 그름’으로 구분해서 오히려 내 마음에 분노를 일으켜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장애가 되면 그것을 분별심과 시비심이라고 합니다.

예를 들어 ‘내 친구 중에 누구는 자기를 비판하면 성질을 버럭 내는 성질이 있고, 누구는 칭찬을 해주면 아주 좋아하는 성질이 있다.’ 하고 아는 것은 상을 짓는 게 아니고 그 특징을 아는 거예요. 그런데 ‘이 친구는 칭찬받을 줄밖에 모르고, 저 친구는 비판받으면 성질을 버럭 내니까 내가 비판을 못한다.’라고 하면서 그 친구를 ‘나쁜 친구’로 여긴다면, 이것을 이름하여 ‘상(相)’이라고 합니다. 상은 편견이에요. 그 사람이 그런 성질이 있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은 부분도 있어요. 어떤 때는 그렇지만 어떤 때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어요. 즉, 어떤 특징을 단정 짓는 걸 ‘상’이라고 합니다. 내가 몇 번의 경험을 통해서 그렇게 봤을 뿐이지 ‘그 사람이 진짜 그렇다.’라고 단정 지을 수 없어요. 내가 어떤 음식을 먹어 보고 맛이 없었다고 해서 그 음식을 ‘맛없는 음식이다.’라고 객관화하는 게 상이예요. ‘내 입맛에 안 맞다.’ 이렇게 아는 것은 상이 아니고 경험입니다.
질문자가 회사 동료들의 특징을 두루 살피는 건 좋은 일이에요. 그걸 할 줄 모르면 ‘눈치가 없다.‘, '지혜가 부족하다.' 하는 소리를 듣습니다. 상대의 특징을 잘 살펴서 그에 맞게끔 대화하고, 의견을 조율하는 건 지혜로움에 속합니다. 다만 그 특징을 ‘좋다, 나쁘다’ 단정 짓지 않고, ‘내가 보기에 그렇다.’, ‘내가 보기에 저건 문제가 있는 것 같다.’라고 말하는 건 괜찮아요. 이건 상을 짓는 게 아니고 자기 견해를 말하는 거예요. ‘내가 보기에 문제처럼 느껴지는 것’과 ‘진짜 문제’로 여기는 건 다른 경우예요.

상을 짓지 않는다는 게 아무런 분별도 없는 걸 말하는 게 아닙니다. 분별지가 있어야 중생을 교화할 수 있습니다. ‘제법이 공하다.’, ‘옳고 그름이 없고, 맞고 틀림이 없다.’를 아는 지혜를 통찰지(洞察智)라고 합니다. 통찰지가 있으면 내가 괴로울 일이 없어요. 그런데 통찰지만 있고 분별지가 없으면 세세한 차이들을 다 이해하지 못하고 그냥 뭉뚱그려서 ‘공하다’ 이렇게만 전달하게 되므로 상대에 맞게끔 교화를 할 수가 없습니다. 보살(菩薩)은 분별지가 있어야 상대에 맞게끔 교화를 할 수가 있어요.

분별하는 걸 다 상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단정 짓는 것을 상이라고 해요. 내가 본 것과 나의 관점을 실제라고 객관화하는걸 ‘상을 짓는다.’고 합니다. ‘내가 보기에 파랗다.’가 아니라 ‘그건 파란색이다.’ 이렇게 말하는 게 상입니다. ‘내 눈에 파랗게 보입니다.’라고 말해야 해요. 그래서 부처님 제자인 아난다 존자도 ‘부처님이 이렇게 말했습니다.’가 아니라, ‘부처님의 말씀이 저에게는 이렇게 들렸습니다.’라고 했잖아요. 이게 상을 짓지 않는 표현입니다.”
“감사합니다. 잘 알았습니다.”
계속해서 질문이 이어졌습니다.
금강경에서는 ‘나라고 할 것이 없다.’고 하고, 육조단경에서는 ‘참된 나를 찾으라.’고 하니 서로 모순처럼 느껴집니다. 이 상반된 표현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세상을 편견 없이 보라는 수행 지침을 실천하며, 긍정적 취향도 일종의 선입견이 아닐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긍정적 시각과 취향도 내려놓아야 할 선입견일까요?
집착을 버리면 욕구와 삶의 동력이 사라져 개인과 사회 발전이 저해될까 걱정됩니다. 또한 왜 중생을 모두 구해야 하는지,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타인에게는 자비가 쉽지만 가족에게는 자비심을 내기가 어렵습니다. ‘그럴 수도 있다.’고 연습하다 보면 진짜 자비심이 생길까요?
기준을 세우되 집착하지 않으려 할 때 우유부단함과 고집 사이에서 갈등이 생깁니다. 비난의 자리에 놓일 때 중도의 길은 무엇일까요?

대화를 마친 후 스님은 경전 공부가 신비주의나 고집이 아니라, 이해되는 것은 받아들이고 이해되지 않는 것은 잠시 옆에 둘 수 있는 균형 잡힌 태도에서 비로소 지혜로 살아난다고 강조했습니다.

“경전대학 공부를 할 때는, 지금 이해되는 것은 그대로 받아들이고, 이해되지 않는 것은 ‘틀렸다’, ‘필요 없다’고 단정하지 말고 잠시 옆으로 두면 됩니다. 믿어지는 것은 믿고, 지금 믿기 어려운 것은 억지로 받아들일 필요도, 부정할 필요도 없습니다.
교육 과정을 모두 마치고 다시 돌아보면, 그때는 이해하지 못했던 부분이 자연스럽게 이해되기도 하고, 믿기지 않아 부정했던 내용이 긍정적으로 바뀌는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이해되지 않는 것이 있다면, 또다시 옆으로 두면 됩니다. 이렇게 꾸준히 공부하다 보면 불교를 바라보는 폭이 넓어지고, 깨달음의 깊이도 커져서 ‘다시 보니 별거 아니었네.’ 하고 가볍게 여길 수 있게 됩니다. 이해되지 않는다고 해서 ‘뭔가 특별한 비밀이 있을 것’이라며 신비주의적으로 접근할 필요도 없습니다. 지금은 보이지 않아도, 내가 더 깊이 눈을 뜨면 자연히 보이게 되기 때문입니다. 지금 모를 뿐이지, 그게 문제는 아닙니다.

다만 어떤 가르침이든 현실 속에서 검증 가능해야 한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삶과 동떨어진 추상적인 말에 휘둘릴 필요는 없습니다. 그렇다고 ‘있기는 뭐가 있어, 내가 아는 게 전부지.’라고 자기 생각에 갇히는 것도 좋지 않습니다. 우리 모두에게는 아상과 아집이 있어서 보지 못하고 놓치는 것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아는 것이 전부는 아닙니다.
경전 공부에서는 이 두 가지가 함께 갖추어져야 합니다. 내가 아는 것에 집착하지 않으면서도 내가 모르는 세계가 있음을 인정하는 태도와 모르는 세계를 신비주의로 여기지 않는 태도, 이 두 가지 사이에 균형을 유지하며 한 걸음씩 다음 단계로 공부를 이어가시기를 바랍니다.”

경전대학 학생들은 스님의 말씀을 가슴에 새기며 사홍서원으로 생방송을 마쳤습니다. 모둠별로 마음 나누기 시간이 이어졌습니다.

방송실을 나온 스님은 점심 식사를 한 후 길벗 모임과 함께 연탄 배달 봉사를 하기 위해 작업복으로 갈아입었습니다. 방한용 바지, 앞치마, 팔토시, 장갑, 마스크를 착용하고 그대로 차에 올라탔습니다.

오늘 연탄 배달 봉사를 하기로 한 곳은 서울 강남구 개포동 구룡 마을 판자촌입니다. 스님이 도착하자 방송, 영화, 연극, 예술계에 종사하는 길벗 회원 120여 명이 연탄을 배달하기 위해 모여 있었습니다. 제일 먼저 배우 조인성 님이 스님을 환영해 주었습니다.

“스님, 잘 지내셨어요?”
“네, 어제 새벽에 일본에서 돌아왔어요.”
작업복과 마스크를 쓴 스님을 뒤늦게 알아보고 모두가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스님은 오늘 하루 지도법사가 아닌 연탄 배달부가 되어 함께 하기로 했습니다.

몸풀기 체조를 한 후 JTS 이사장인 스님이 먼저 인사말을 했습니다.

“많이 오셨네요. 만나서 반갑습니다. 날씨가 꽤 추운 것 같더니 그래도 오늘은 날이 조금 풀렸죠?”
“네.”


“다음 주에는 영하 10도까지 떨어질 정도로 아주 추워진다고 하는데, 여러분은 날짜를 잘 잡았네요. 저는 용성조사 기념관 개원식을 12월 4일로 잡았는데 그날 영하 10도까지 떨어진다고 해서 사람들이 ‘스님이 차니까 날씨가 차죠.’라고 농담을 해요. 제가 그리 찬가요?” (웃음)
“아니요.”

“오늘은 서울에 남은 마지막 판자촌인 이 동네에서, 노인들과 주민들이 겨울을 따뜻하게 보낼 수 있도록 연탄을 지원하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이곳도 곧 재개발이 이루어진다고 해 이미 많은 분이 이사했고, 주민 수도 많이 줄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아마 올해가 마지막 연탄 지원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봉사를 하면 가장 먼저 내가 좋아집니다. 땀이 날 정도로 몸을 쓰게 되니 운동도 되고요. 두 번째로는 같이해서 좋습니다. 강연장에 가면 스님은 법상에 있고, 여러분은 청중석에 있고, 우리는 무대 위와 아래로 나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서로 옆에서 땀 흘리고 연탄을 묻히며 함께 일하는 경험은 전혀 다른 차원의 친밀감을 만들어 줍니다. 함께 고생하고, 함께 웃고, 함께 일할 때 우리는 훨씬 더 가까워집니다.
그리고 우리만 좋은 게 아닙니다. 동네 주민들은 겨울 내내 연탄을 충분히 때며 따뜻하게 지낼 수 있으니 서로에게 좋은 일입니다. 나도 좋고 너도 좋은 일, 그게 바로 오늘 우리가 하는 봉사입니다.

일상이 바빠서 자주 봉사를 하기 어렵겠지만, 길벗 모임에서 일 년에 한두 번이라도 이렇게 함께한다는 것이 참 귀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오늘도 많은 분이 시간을 내어 참석해 주셨겠지요.
오늘 조금 허리가 아프고 팔이 아프고 땀이 나더라도 힘들다고 여기지 말고, 즐거운 마음으로 함께해 주시길 바랍니다. 저는 그동안 연탄을 주로 쌓아 왔는데, 이제는 누군가에게 인수인계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오늘 연탄 쌓는 법을 알려 드릴 테니, 앞으로는 여러분이 앞장서서 해 보세요. 저도 여러분과 함께할 수 있어 참 기쁘고 감사합니다.”
다 함께 파이팅을 외치며 연탄 배달을 하기 위해 비좁은 골목길을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구룡마을 동네 주민이 나와 오늘 연탄을 배달할 집을 알려 주었습니다. 스님은 가장 먼 곳인 꼭대기 집으로 향했습니다.

오늘 길벗 모임과 함께 배달해야 할 연탄은 모두 3400장입니다. JTS와 길벗 모임에서는 장애인, 중증 환자, 유공자 등 17가구를 선별한 후 가구마다 200장을 배달해 주기로 했습니다. 모두가 어렵지만 특히 어렵게 사는 분들입니다.
어제 JTS 활동가들이 차가 다닐 수 있는 도로에는 미리 연탄을 내려놓았습니다. 그러나 좁은 골목으로는 차가 들어가지 못하기 때문에 길벗 봉사자들이 골목마다 길게 줄을 서서 손에서 손으로 연탄을 날라야 합니다.

“양팔 간격으로 주욱 서 보세요. 마주 보고 지그재그로 서서 연탄을 나르겠습니다.”
스님의 안내에 따라 길게 줄이 만들어졌습니다. 한 집마다 200장씩 연탄을 쌓았습니다. 올해도 스님은 집으로 들어가서 연탄을 쌓는 일을 맡았습니다. 연탄을 쌓아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 스님밖에 없습니다.

스님은 먼저 바닥을 수평으로 만들고 연탄을 차곡차곡 쌓아 올렸습니다.

어느 정도 연탄이 쌓이자 스님은 봉사자에게 연탄 쌓는 일을 맡겼습니다.
“이제 이 위로 차곡차곡 쌓으면 돼요. 한번 해 보세요.”
연탄 쌓기가 어느 정도 안정이 되자 스님은 밖으로 나와 함께 전체를 살폈습니다.
“손이 보이면 안 돼요. 빨리빨리 해 봐요.” (웃음)

연탄을 하나씩 나를 때마다 몇 번째 연탄인지 숫자를 헤아렸습니다.
“1, 2, 3...... 198, 199”




배우 조인성 씨와 한효주 씨, 임세미 씨도 중간중간에 서서 동료들과 함께 부지런히 연탄을 날랐습니다.

깨끗했던 장갑과 옷소매가 금방 검게 변했습니다. 마스크도 검게 그을린 것처럼 변했습니다.
“마지막 200장 들어갑니다!”

마지막 연탄이 출발하자 모두 환호성을 지르며 기뻐했습니다.

이번에는 집과 비교적 가까운 야외에 연탄을 쌓아 올렸습니다. 여기에는 여러 가구가 연탄을 공동으로 사용하기 때문에 600장을 쌓기로 했습니다.

스님이 연탄을 하나씩 차곡차곡 쌓고 있는데 옆에서 말없이 지켜보던 집주인이 한 가지 요청을 했습니다.
“스님, 가급적 연탄을 높게 쌓아 올려 주세요. 옆에 다른 공간이 좀 있어야 다른 물건들도 쌓을 수 있거든요.”

아마도 JTS뿐만 아니라 다른 단체에서도 지원 물품을 받게 되면 여기에 물건을 적재해야 되는 것 같았습니다. 스님은 요령을 발휘하여 가급적 높게 연탄을 쌓아 올렸습니다.



200장 배달을 완료하면 지체 없이 다음 집으로, 다음 집으로 배달을 계속했습니다. 같은 동작을 계속하다 보니 중간에 허리가 아픈 사람은 신음 소리를 내기도 했습니다.



중간에 한 번씩 방향을 반대로 서면서 부지런히 연탄을 날랐습니다.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습니다.




예년보다 연탄을 배달해야 하는 동선이 그렇게 길지 않아서 1시간 30분 만에 3400장 배달이 끝났습니다.
“마지막 연탄입니다. 끝났습니다!”

온몸이 뻐근하지만 빈 손으로 골목을 나오는 마음이 뿌듯합니다. 장갑을 벗으니 연탄재가 까맣게 묻어 있었습니다.

연탄재가 묻은 얼굴을 그대로 한 채 다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길벗 파이팅!”

길벗 모임 참가자들은 현장에서 마음 나누기를 했습니다. 스님은 배우들과 인사를 나눈 후 곧바로 차를 타고 정토사회문화회관으로 향했습니다.
“저는 먼저 들어가 보겠습니다. 마음 나누기 하고 나서 저녁 먹으러 오세요.”

정토사회문화회관 지하 1층 식당에는 JTS 봉사자들이 정성껏 준비한 카레와 김치가 차려져 있었습니다.



따뜻한 온기에 몸을 녹이며 맛있게 식사를 하고 대강당에 모두가 다시 모였습니다. 오후 5시 30분부터는 스님과 함께 인생 고민에 대해 묻고 대화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먼저 스님이 수고한 길벗 모임 참가자들을 격려했습니다.

“힘 좀 쓰고 나니까 근육이 좀 붙었어요?”
“네!”

“이렇게 운동 삼아 같이 일을 했는데 소감을 한번 말해 볼 사람 있나요? 오늘 이 시간은 특별히 법문을 하는 시간이 아니고 그냥 대화의 시간이에요. 그냥 헤어지려니까 조금 섭섭하기도 해서 같이 모인 겁니다. 또 길벗 대표인 노희경 작가님이 몸이 좀 안 좋아서 일은 못하더라도 얼굴은 보여야 하잖아요. 작가님이 인사부터 해 주세요.”
이어서 길벗 대표인 노희경 작가가 인사말을 했습니다.

“일을 안 하고 인사만 하러 왔습니다. 제가 봉사를 시작한 지 23년이 되었는데 이번에 처음 빠진 겁니다. 그래서 기분이 되게 이상했습니다. 솔직히 좀 좋을 줄 알았는데 며칠 전부터 자꾸 허전하고, ‘이제 계속 못 가게 되면 어떡하지?’ 이런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같이 일하는 재미가 있는데, 그 재미를 못 느낀 게 조금 서운하기도 했습니다. 흐린 날씨를 보면서 걱정도 했어요. 집안에서 바깥을 보니까 해가 없어서 너무 추워 보이는 거예요. 그래서 ‘엄청 춥겠다. 어떻게 하지?’ 이런 걱정도 했었는데, 덜 추웠다고 해서 다행입니다. 이렇게라도 얼굴 볼 수 있어서 정말 고맙습니다.”
계속 이어서 누구든지 손을 들고 스님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연탄 봉사를 하는데 손발이 정말 잘 맞는 느낌이 들었어요. 힘든데 이상하게 집중이 잘 되고… 약간 명상하는 것처럼 마음이 차분해지더라고요. 그래서 봉사하면서 더 즐거웠습니다.”
연탄을 배달해 본 소감을 가볍게 말하고 앉는 분도 있고, 최근에 겪게 된 어려움을 이야기하며 고민을 말하는 분도 있었습니다. 한 시간 동안 여섯 명이 스님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그중 한 명은 어머니의 왜곡된 기억 앞에서 마음을 어떻게 다스리고 반응해야 하는지 스님에게 조언을 구했습니다.

“저는 독실한 기독교 가정에서 자랐지만 어릴 때 어머니에게 심하게 맞으며 자랐습니다. 너무 무서웠던 기억이 많지만, 한편으로는 어머니의 박복한 삶을 알기에 이해하려고 노력하며 스스로 예민하다고 자책해 왔습니다. 성인이 된 후에도 그 기억의 무게가 무대에서조차 저를 짓누르는 큰 상처로 남아 있습니다. 그런데 몇 년 전부터 어머니가 경도 치매 증상을 보이면서, 저를 볼 때마다 ‘나는 너를 한 번도 때린 적이 없어. 그렇지?’라고 반복해서 말하십니다. 오히려 제가 어릴 때 학대를 기억하는 것이 틀린 것처럼 느껴져 혼란스럽고, 용서하지 못한 응어리가 남아 있다는 사실에도 마음이 힘듭니다. 친구는 제 이야기를 듣고 ‘그건 심한 아동 학대였다.’고 말했지만, 저는 어머니를 그런 사람으로 말하는 것도, 그 사실을 부정하는 것도 모두 괴롭습니다. 다음에 어머니가 ‘나는 너를 때린 적 없다.’고 말하면, 제가 정직하게 사실을 말씀드려야 할까요? 아니면 어머니 마음을 편하게 해 드리기 위해 ‘맞아요.’라고 받아들여야 할까요? 이 두 갈등 사이에서 어떤 태도가 옳은지 스님께 여쭙고 싶습니다.”
“솔직하게 이야기해 주셔서 먼저 감사드립니다. 듣는 사람은 흥미롭게 듣고 교훈을 얻을 수 있지만, 말하는 사람에게는 쉽지 않은 이야기였을텐데 용기를 내주셨네요. 이제 어머니가 왜 치매가 온 후에 왜 그런 말씀을 반복하는지 한 번 생각해 봐야 합니다. 어머니는 신앙적으로 ‘아이를 때리면 안 되고, 사랑해야 한다.’는 의식이 아주 강하게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실제 살아온 환경과 감정 속에서는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으며, 학대에 가까울 정도로 아이를 때리고 공부를 강요하고 강박적으로 행동했던 거죠. 이 두 가지가 평생 마음속에서 충돌하며 큰 갈등을 만들어냈고, 그것이 죄책감이 되어 힘들게 살았습니다.

치매가 오면서 이성의 힘이 약해지니, 그 죄책감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앞서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너 보고 공부하란 말 안 했지?’ ‘나는 너 안 때렸지?’ 하고 눈을 동그랗게 뜨고 계속 확인하는 겁니다. 정말 안 때렸다면 굳이 반복해서 확인할 이유가 없지요. 강조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만큼 내면에 죄책감이 깊이 자리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정상적인 사유가 가능하다면, 사실은 ‘내가 너를 때려서 미안하다. 잘되라고 한 행동이었지만 너한테 고통이었을 것 같아 미안하구나.’ 이렇게 말해야겠지요. 그런데 어머니는 여전히 신앙적 강박이 강해, 자신의 행동을 솔직하게 인정하는 단계까지는 아직 가지 못한 겁니다. 그래서 ‘안 때렸지?’라고만 묻는 방식으로 자기 마음을 지키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럴 때는 두 가지 모두 가능합니다.‘그래, 엄마. 맞아. 엄마는 나를 안 때렸어.’라고 엄마 말에 맞춰 드려도 되고, ‘엄마는 안 때렸는데 나는 좀 맞았어. 누구한테 맞았는지는 모르겠지만 맞긴 맞았어.’ 하고 농담처럼 말해 엄마의 긴장을 풀어 줘도 괜찮습니다. 또는 ‘엄마, 때리긴 했지. 하지만 괜찮아. 나 잘되라고 그런 거였잖아. 나는 다 이해해. 그러니까 너무 죄책감 갖지 마.’ 이렇게 부드럽게 풀어 줘도 좋습니다.

지금 중요한 것은 내가 예전에 맞았던 한을 풀어내는 것이 아니라, 어머니가 죽기 전에 그 죄책감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입니다. 질문자의 마음속에 ‘내 상처를 엄마가 인정해 줬으면 좋겠다.’ 하는 바람이 있기 때문에, 어머니가 그런 말을 하면 ‘왜 저러실까?’ 하는 마음이 드는 거예요.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질문자는 이미 성인이 되었고, 어머니는 이제 어린아이처럼 마음이 약해지고 있습니다. 그러니 어머니의 죄책감이 무의식에서 치솟아 올라오는 과정이라고 이해하시고, ‘어떻게 하면 어머니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편하게 해 드릴 수 있을까?’ 하는 관점에서 접근해 보세요. 그렇게 보면 어머니가 더 안쓰럽고, 마음으로 보듬는 것도 조금은 쉬워질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사회 정의를 실현하는 것과 개인적인 양심을 지키는 일이 반드시 모순되는 것만은 아닙니다. 우리가 어떤 문제를 바라볼 때는 겉으로는 그 상황을 보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자기 방어와 자기 해소의 심리가 늘 함께 작용합니다. 어머니를 생각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결국 나 자신의 마음이 얽혀 있기 때문에 어머니가 그런 말을 할 때 ‘어머니가 왜 갑자기 이런 말씀을 하실까?’ 하고 제대로 파악하기 어려운 거예요.
그런데 관점을 조금 바꿔서 바라보면, ‘엄마가 겉으론 강한 척했지만 속으로는 엄청난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구나. 지금 그 죄책감에서 벗어나려고 확인 작업을 하고 있구나.’ 이렇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보면 엄마가 불쌍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엄마의 죄책감을 조금이나마 덜어 주기 위해서는 ‘엄마가 나 안 때렸어.’라고 맞춰주는 것이 나을지, ‘엄마, 때리긴 했어. 그런데 이제 괜찮아. 어릴 땐 상처였지만 지금은 엄마의 어려움을 이해하게 됐어. 너무 죄책감 갖지 마.’라고 말해 주는 것이 나을지는, 여기서 단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그건 실제로 어머니와 대화를 나누면서 살펴보고 조절해 가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어머니가 죄책감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돕는 입장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어머니를 보듬는 과정을 거치다 보면, 질문자 자신의 상처도 자연스럽게 풀리고 사라지게 될 거예요.”
“잘 알았습니다.”

계속해서 질문이 이어졌습니다.

연탄 배달을 하다 보니까 그곳에 살던 많은 분들이 이사를 가셨다 하더라고요. 구룡 마을 연탄 지원이 실제로 도움이 필요한 분들에게 전달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길벗 모임에서 느껴지는 어색함과 거리감을 어떻게 줄일 수 있을까요?
나이가 들다 보니까 예전에 친했던 친구들이랑 자연스럽게 멀어지는 게 좀 서운합니다. 멀어지는 인간관계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마음을 편안히 할 수 있을까요?
올해도 열심히 했는데 결과물이 하나도 통과가 안 됐어요. 그래서 내가 뭘 했나… 괜히 허무합니다. 스스로를 어떻게 격려하고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을까요?
절친이 죄를 짓고 감옥에 갔습니다. 친구를 돕고 싶은 마음과 사회적 책임 사이에서 어떻게 균형을 잡아야 할까요?

모든 질문에 답변을 한 후 저녁 6시 30분이 되어서 대화를 마쳤습니다. 다 함께 기념사진을 찍은 후 스님은 대강당을 나왔습니다.

곧바로 짐을 챙겨 서울을 출발해 두북수련원으로 향했습니다. 저녁 7시에 출발한 차는 고속도로 위를 3시간 30분 동안 달려 밤 10시 30분에 두북수련원에 도착했습니다.
내일은 아침 일찍 정토회 상임 천일준비위원회와 온라인으로 회의를 한 후 전국 법사단 연수에 참석하여 입재 법문을 하고, 오후에는 손님들과 함께 천룡사를 방문하여 안내한 후, 오후에는 다시 전국 법사단 연수에 참석하여 즉문즉설과 회향 법문을 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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