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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두북수련원의 아침이 밝았습니다.

스님은 새벽 수행과 명상을 마친 후 아침 7시 30분부터 정토회 상임 천일준비위원회와 온라인으로 간담회를 하며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천일준비위원회는 정토회의 다음 3년간의 사업 계획을 준비하는 핵심 논의 단위입니다. 지난 1년 동안 수많은 회의 끝에 이제 사업 계획 초안이 거의 완성되어 가고 있습니다. 삼귀의와 수행문을 낭독한 후 천일준비위원회(천준위) 위원장을 맡고 있는 법정 법사님이 그동안 논의한 내용을 바탕으로 정토회 2-2차 천일결사 사업 방향에 대해 스님에게 자문을 구했습니다.

먼저 지부와 지회 개편안, 주간 지회 신설안, 정토사회문화회관 특별지부 신설안, 서원행자 교육생 추천 자격 변경안, 으뜸절 및 실천장소 운영안, 3년 평가서 기획안 등 쟁점이 되고 있는 다양한 사안에 대한 질문들이 이어졌습니다.
스님의 애정 어린 조언들이 이어지는 가운데 천준위에서는 정토회 활동가들의 회의 및 활동 부담을 경감하기 위한 방안에 대해서도 스님에게 자문을 구했습니다.
“전법회원들의 어려움 해소 방안을 연구해 보니, 회의를 대폭 줄이는 것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의결 회의를 50퍼센트 이상 줄였고, 함께 논의할 수 있는 사안은 같이 진행하도록 조정했고, 회의 자체도 효율적으로 진행되도록 개선해 보았습니다.”
스님은 회의 시간을 제한하거나 횟수를 줄이는 등 다양한 방법을 제안해 주었습니다.

“회의 시간을 좀 제한하는 건 어떨까요? 현재 기본 회의 시간은 90분인데 60분으로 줄이고, 만약 부득이하게 회의 시간을 늘리려면 전원이 동의해야 한다는 원칙을 두는 겁니다. 사전 준비를 많이 해서 60분 안에 효율적으로 회의가 진행되도록 하면 좋을 것 같아요.
물론 모든 회의를 60분 이내로 하자는 것은 아닙니다. 주로 어려움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전법회원들이니까 전법회원들이 참여하는 회의에 한해서 진행 시간을 대폭 줄여보자는 거예요. 무엇보다 회의가 신속하게 진행되도록 바꾸는 것이 필요합니다. 신속하다는 것은 밀어붙이라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짧게 효율적으로 진행하자는 뜻입니다. 첫째, 회의가 너무 많습니다. 정토회의 모든 회의는 의제를 선정하고 의결하고 승인하는 3단계 절차를 거치는데,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승인 절차를 생략하는 방법도 고려해 보면 좋겠어요. 어떤 사안은 모둠원 전체의 승인 절차를 거치고, 어떤 사안은 지회장 회의에서 의결로 끝내고, 어떤 사안은 사후 승인제로 처리하는 등 회의를 줄이는 다양한 방식에 대해 의견을 모아 보면 어떨까 싶습니다.
회의를 줄이는 방법에 대해서는 대중의 의견을 물어보면서 진행해야 합니다. 회의를 해야 정보 공유가 될 수 있어요. 회의를 안 해 버리면 일방적인 행정으로 흐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회의가 너무 많아 힘들다는 의견이 있으니, 필요 없는 회의가 있는지, 얼마나 자주 회의를 해야 하는지 설문조사를 해서 확인해 보는 것이 필요해요. 정말 필요한 회의는 유지하고, 필요 없는 회의만 줄이는 방식이 되어야 합니다.”
“온라인 회의가 없는 날을 지정해 달라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회의가 없는 날을 지정한다 하더라도 업무 경감이나 실효성 측면에서 큰 효과가 없다고 판단해 지정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목사님들이 월요일에 쉬는 것처럼 저도 월요일을 휴일로 해보려고 시도해 봤지만 현실적으로 어려웠습니다. 월요일에 강의나 공식적인 약속을 잡지 않더라도 부고 소식을 들으면 아무리 쉬는 날이어도 안 갈 수가 없었어요. 만약 강의가 잡혀 있으면 조문도 갈 수 없고, 휴일이라서 못 간다고 말할 수는 없다는 겁니다. 그러다 보니까 결국은 휴일에도 일정이 다 잡히게 되었어요. 몇 번 시도하다가 휴일을 없애 버렸습니다. 부서별이나 지회별로 필요하면 시험적으로 운영해 보고, 효과적이라면 제안을 해 보라고 하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몇몇이 요구한다고 해서 전체 방침으로 정하는 것은 좀 이르다고 봅니다.”
“최근 주요 활동가들의 병가 등 건강 문제가 의제로 떠올랐습니다. 주말에 오프라인 행사가 있는 날에는 새벽에 온라인 회의를 하지 않아야 한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가정의 날 하루는 텔레그램 소통방도 쉬고 회의도 없어서, 주요 활동가들에게 매우 유의미하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중앙에서 일하는 활동가들의 업무 과부하가 심해서 중앙 사업을 지역으로 이관하는 문제도 의제로 잡혔습니다. 이에 대해서도 의견을 여쭙습니다.”
“네, 뭐든지 대중이 원하는 대로 하세요. 건강 문제는 여러분 자신의 문제이니까 여러분 스스로 어떻게 조정하면 좋을지 의견을 모아 주세요.”
“정토회에는 월급 없음, 휴일 없음, 휴가 없음이라는 삼무 원칙이 있기 때문에 휴일을 두자고 제안하기에 망설임이 있습니다.”

“그래서 휴일이 아니라 가정의 날이라고 명칭을 정했잖아요. 가정의 날에는 공식 일정을 잡지 않기로 했습니다. 그날은 휴일이 아니고 가정을 가진 사람으로서 가정에 충실하자는 뜻입니다. 이번 2-1차 회향식 후 공동체도 열흘간 가정 주간을 갖습니다. 부모님을 돌봐야 하는 사람도 있고, 개인적으로 명상을 더 해보고 싶은 사람도 있고, 건강이 안 좋은 사람도 있어서 3년마다 열흘 정도는 공동체 대중도 가정 주간을 갖자고 해서 만든 겁니다. 그런데 MZ세대에서는 이 기간에 해외 여행을 가겠다는 아이디어까지 나와서 원래 취지와 맞지 않다는 의견이 있는 상황입니다. 공동체 대중은 출가를 한 수행자들이기 때문에 집에 가지 않는 게 원칙이지만, 머리를 깎고 들어온 게 아니라서 집에 문제가 생기거나 명절에는 집에 다녀올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난 추석에 집에 가지 않고 여행을 다녀오는 사람이 생겨서 과연 이런 식으로 운영되는 게 맞는지 생각해 보게 됩니다. 처음에는 몸이 아픈 사람이 쉬거나, 잠시 집에 가서 부모님을 돌보는 목적으로 시작이 되었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휴가를 간다는 개념으로 변해 버렸고, 이 기간은 내 시간이니까 간섭하지 말라는 식으로까지 발전한 겁니다. 기본적으로 가정 주간을 정한 이유는 이 기간만큼은 가정에 충실하자는 취지입니다. 그 기간에 육체적으로 피곤한 사람은 쉴 수도 있는 거고요. 이런 취지가 충분히 공유되는 게 필요해 보입니다.”
마지막으로 남북 관계의 변화된 상황을 반영하여 통일 활동의 명칭을 변경하는 방안에 대해서도 스님의 자문을 구했습니다. 스님은 급변하는 정세 속에서 어떻게 중심을 잡아야 하는지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실천 활동 중 통일 활동 명칭에 대한 고민이 있습니다. 현재 정토회의 실천 활동은 환경, 복지, 통일로 진행되고 있는데, 2-2차 천일결사 기간에는 ‘통일’ 대신 ‘평화’ 활동으로 바꾸는 게 맞지 않느냐는 의견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통일이라는 용어 대신 평화로 변경해서 사업 방향을 잡는 게 어떨지, 그리고 통일의병을 평화 의병으로 명칭을 바꾸어야 할지, 스님의 조언을 듣고 싶습니다.”

“정토회 설립 목표 중 하나는 한반도의 평화적 통일을 이루는 것입니다. 우리 민족의 평화를 위한 궁극적 목표는 통일이지만, 원래의 정신을 세계적으로 적용하려면 통일보다는 평화가 더 맞습니다. 그래서 세계 무대에서의 활동을 고려했을 때는 3대 목표도 ‘환경, 복지, 통일’보다는 ‘환경, 복지, 평화’가 합리적이라고 봅니다.
그러나 통일의병의 명칭 변경은 조금 더 연구가 필요합니다. 외국어로 번역할 때는 통일의병이 아니라 평화 의병으로 표기하자고 이미 제안이 된 바 있습니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목표를 명확히 하려면 통일의병이라는 표현이 더 적합합니다. 이 부분은 좀 더 논의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현재 북한이 통일을 포기했다고 해서 우리도 통일을 포기하고 평화로 간다고 오해하면 안 됩니다. 전략적 목표는 여전히 통일입니다. 그러나 전술적으로는 현재 평화를 우선하는 정책을 펴는 것입니다. 만약 평화를 전략적 목표로 삼자는 제안이라면 이 부분은 다시 검토해야 합니다.
한반도를 둘러싼 정세는 한 치 앞도 모르는 상황입니다. 북미 정상회담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3년이 지나도 지금과 상황이 같을 것이고, 북미 정상 회담이 성사되고 남북 정상 회담까지 열리면 2018년처럼 당장 내일이라도 통일이 될 것처럼 난리가 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정세가 어떻게 급변하든 기본적인 방향은 꾸준히 유지한다는 원칙을 갖고 활동을 계속해 나가야 합니다.”
두 시간 동안 대화를 나눈 후 9시 30분에 회의를 마쳤습니다. 천준위 위원들은 긴 시간 애정 어린 조언을 해준 스님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곧이어 오전 10시부터는 전국 법사단 연수에 참석했습니다. 2차 만일결사를 시작하고 다섯 번째 진행되는 전국 법사단 연수입니다. 오늘은 지난 3년간의 활동을 평가하면서 법사의 역할이 무엇인지에 대해 집중적으로 토론하고 설계하는 시간으로 연수 프로그램이 마련되었습니다.

전국 법사단 100여 명이 화상 회의 방에 입장한 가운데 삼귀의와 반야심경 봉독을 한 후 전국 법사단 연수를 시작했습니다. 법사단은 삼배의 예로 스님에게 입재 법문을 청했습니다. 스님은 대중을 효과적으로 지원하는 것과 간섭하는 것 사이에 중도의 길을 가려면 어떤 관점을 가져야 하는지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오늘은 법사단 연수 교육의 날입니다. 법사단 단장님의 말씀에 따르면, 정토회 안에서 법사의 역할에 대해 약간의 어려움도 있고, 정확하게 이해되지 않는 부분도 있다고 합니다. 어떤 일에 적극적으로 관여하면 ‘간섭한다’는 말이 나오고, 한발 물러서 지켜보면 ‘무관심하다’는 이야기가 나온다고 해요.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균형을 잡을 것인지가 오늘 연수 프로그램의 주제라고 들었습니다.
저는 정토회 안에서 법사단의 역할이 자연스럽게 커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 이유는 바로 ‘연속성’에 있습니다. 법사는 정년이 있긴 하지만 죽는 날까지 역할을 이어 가기 때문에 경험이 쌓일 수밖에 없고, 그만큼 다양한 곳에서 영향력을 발휘하게 됩니다. 반면 정토회의 행정 담당자들은 3년 또는 6년 단위로 바뀌고, 그 가운데 상당수가 마지막에는 법사단으로 옮겨 옵니다. 이런 구조는 정토회가 수행을 기반으로 한 조직이라는 점을 공고히 하면서 안정성을 높여 주는 장점이 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조직 전체가 나이 들어가는 한계도 있습니다. 경험은 풍부하지만 나이가 많은 사람들이 계속 중심이 되는 구조가 형성되는 것이죠.
장점은 살리고 부작용은 줄이려면 제도적 보완도 필요하지만, 무엇보다 각자의 바른 관점이 중요합니다. 자신의 카르마나 재능만 앞세우지 말고 ‘정토회 전체의 발전을 위해 내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라는 관점에 서야 합니다.
젊은이들은 용기와 활력이 넘치지만, 아직 미숙한 점이 있습니다. 그러나 미숙함만 문제 삼으면 쉽게 위축되고, 결국 능숙한 어른들이 모든 일을 맡게 되는 구조가 고착될 위험이 있습니다. 그래서 서툴더라도 열정과 재능 있는 젊은이들이 시행착오를 겪으며 경험을 쌓아갈 수 있도록 충분한 기회를 줘야 합니다. 법사단은 정토회를 안정시키는 역할을 하면서 동시에 젊은이들이 활발히 활동해 정토회의 활력을 유지하도록 든든한 기반이 되어야 합니다.

젊은이들이 미숙하다고 너무 비판하거나, 지나치게 간섭해서도 안 됩니다. 사람은 미숙한 상태에서 연습하며 능숙해집니다. 시행착오를 반복하면서 성장하는 것이죠. 이때 필요한 것이 바로 ‘지켜봐 주는 자세’입니다. 필요할 때는 조언하고 도와주되, 지나치게 개입하지 않아야 합니다. 비유하자면, 법사단의 역할은 거름과 같습니다. 농사를 지을 때 거름을 너무 많이 주면 작물이 웃자라 쓰러지고, 너무 적게 주면 영양이 부족해 제대로 자라지 못하죠. 마찬가지로 지나치게 관여하면 젊은이들은 시키는 일만 하게 돼 활력을 잃고, 반대로 관여가 너무 적으면 미숙함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으며 익숙해지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립니다. 그래서 정토회의 발전이 더뎌질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역할은 젊은이들이 미숙한 상태에서 능숙해지는 과정을 곁에서 지켜보고, 필요할 때 적절히 도와주는 것입니다.
또 시간을 절약하려면, 젊은이들이 어려움에 부딪힐 때 필요한 만큼 도와야 합니다. 하지만 도움이 과하여 자립심을 약화시켜서도 안 되고, 자립을 돕겠다고 내버려 둬 시행착오만 늘어나게 해도 안 됩니다. 이 사이에서 적절하게 균형을 잡는 것이 바로 ‘중도’입니다. 그런데 적절하다고 느끼는 정도는 사람마다 다릅니다. 조금만 도와줘도 간섭이라고 느끼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많이 도와줘도 고마워하는 사람이 있죠. 그래서 법사님들 중에는 ‘도와주려고 하면 간섭이라 하고, 물러서면 역할을 안 한다고 하니, 도대체 어떻게 하라는 말인가?’ 하고 고민에 빠지기도 합니다. 그럴 때 너무 섭섭해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래, 안 할게. 너희가 알아서 해라.’ 하고 아예 손을 뗄 필요도 없고, 지나치게 붙어 있을 필요도 없어요. 상황에 따라 한발 물러서기도 하고, 한발 다가서기도 하면서 균형을 맞추는 것이 필요합니다.
법사가 어느 정도 관여해야 하는지는 함께 일하는 지부장이나 지회장의 성향과 역량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정해진 기준은 없습니다. 어떤 지회장은 조금 적극적으로 도와주는 것을 고맙게 여기며 손발을 잘 맞추는 사람이 있고, 어떤 지회장은 아주 작은 관여에도 간섭이라 느낄 수가 있습니다.

또한 적절함은 업무 성격에 따라 달라집니다. 지회장이나 지부장이 새롭게 정해지면 먼저 그 사람을 지켜보며 성향을 파악해서 어느 정도 관여해야 적절한지 판단해야 합니다. 대중 상담과 같이 수행과 관련된 업무는 간섭이라고 해도 적극적으로 관여할 필요가 있습니다. 반면 행정 업무는 서운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그들의 책임이므로 한발 물러서서 지켜볼 필요가 있습니다. 요청이 있으면 도와주고, 요청이 없으면 지켜보면 됩니다. 수행과 관련된 업무라면 간섭이라는 평가가 있더라도 적극적으로 역할을 해주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이렇듯 적절함이란 사람과 업무에 따라 달라지는 유연한 개념입니다. 만약 이 균형을 잡는 것이 어렵다면, 그것은 곧 수행이 충분히 안 되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법사라는 자리는 자신의 스타일을 앞세우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조건과 인연에 맞춰 조율하며 적절함을 유지하는 자리입니다.
지부장이나 지회장이 내 밑에서 보조를 했던 사람이기 때문에 법사가 되고 나서 관계가 더 좋아질 수도 있지만, 보조할 때 나로부터 마음에 상처를 받았다면 오히려 껄끄러운 관계가 될 수도 있어요. 그래서 항상 상황을 살피고 적절함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런데 만약 여러분이 게으르거나 탐구하는 자세가 부족하다면, 자기 스타일대로만 행동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 ‘내가 검소하게 살아서 모범을 보여 주자.’ 하는 것과 ‘너도 검소하게 살아라.’ 하는 것은 다르다는 거예요. 만약 내가 조금 풍족하게 사는 습관이 있다면 ‘나도 검소하게 사는 게 안 되니 너희도 대강 살아라.’ 하고 규칙을 어기는데도 봐주면 안 된다는 겁니다. 내가 부족하더라도 정토회의 원칙은 정확하게 안내해 줄 수 있어야 합니다. 반론이 나오면 ‘죄송합니다. 그 부분은 제가 부족합니다.’라고 인정하면서 법사로서의 역할은 역할대로 반드시 해야 합니다. 우리는 종종 내가 잘하는 것에 대해서는 대중도 그렇게 해야 한다고 요구해서 힘들게 하고, 내가 못 하는 것에 대해서는 정토회의 원칙이 어겨져도 방치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것은 법사의 역할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적절함을 유지하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정토불교대학 입학생이 몇 명 들어왔는지, 정토회 회원 수가 얼마나 늘었는지는 중요한 게 아닙니다. 법사가 가장 관심을 가져야 하는 내용은 ‘사람들을 도와주는 데 내가 어떻게 적절한 역할을 할 수 있을까?’입니다. 이런 관점을 갖고 다양한 상황을 조율해야 합니다. 불평이나 문제 제기를 두려워하지 마세요. 오히려 문제가 드러나는 것이 내 수행에 도움이 됩니다. 사람들이 불평해 줘야 내가 무엇이 문제인지 알 수 있잖아요. 속으로만 불평하면 다 잘하고 있다고 착각하다가 나중에 큰 사건이 생길 수 있습니다. 그러니 대중의 문제 제기를 기분 나쁘게 받아들이면 안 됩니다. 대중이 너무 간섭한다고 문제 제기를 하면 ‘아, 내가 너무 가까이 다가갔구나.’ 하는 정도로 받아들이면 됩니다. 내가 조금 지켜본다는 것을 대중이 서운하게 느꼈다면 ‘내가 법사 역할을 조금 더 해주기를 원하는구나.’ 하는 정도로 이해하면 됩니다.
여러분 대부분이 주로 행정 업무만 해왔기 때문에 이름만 법사이고, 할 줄 아는 건 행정 업무뿐이라 법사가 되고 나서도 계속 행정 업무만 보면서 잘했는지 못했는지 따질 수가 있습니다. 그러다 보면 간섭한다는 소리를 들을 수가 있는 거예요. 하지만 법사의 역할은 활동가들의 심리적 불만, 스트레스, 불안, 소극성, 성(性) 문제 등을 상담하고 진정시키는 것입니다. 또한 내가 행정 업무를 하며 겪은 어려움을 떠올려보면 오히려 그들을 더 잘 도와줄 수가 있습니다.
특히 일반 회원들을 위해서는 상담을 해주는 것이 법사의 중요한 역할입니다. 한 사람 한 사람 다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늘 상담의 문을 열어서 언제든지 만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 놓고 있어야 합니다. 법사의 역할은 수행을 지도하는 데 있습니다. 오늘과 같은 연수 프로그램을 통해 법사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계속 알아가야 합니다. 그냥 법사 수계만 받고 끝내면 자신이 해오던 역할 외에 새로운 역할을 찾기 어렵습니다.

대중이 불편하다고 말하면 조금 떨어져 주고, ‘법사 역할을 제대로 못 한다.’ 하는 요구가 있으면 필요한 역할을 찾아 적극적으로 해 보세요. 내가 봐서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그냥 하면 됩니다. 상대방이 ‘영역 침범입니다.’ 하면 ‘알겠습니다.’ 하고 물러나면 되고, 반대로 ‘왜 아무 역할도 안 합니까?’ 하면 ‘알겠습니다.’ 하고 역할을 수행하면 됩니다. 기준을 딱 정해서 ‘여기까지는 하고, 여기까지는 안 한다.’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큰 틀은 수행 지도와 행정 업무로 나뉘지만, 실제 접점에서는 구분이 없어요. 사람에 따라, 업무 성격에 따라 관여와 지켜봄의 비중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오후 토론 시간에 구체적인 사례를 서로 나누면서 다시 관점을 잡아 보시기 바랍니다.
법사단은 정토회의 수행적 관점과 가치를 중심에 두고 대중의 행복을 위해 역할을 해야 합니다. 반면에 행정 업무를 맡은 사람은 사업을 추진하고 성과를 내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 그런 역할이 없으면 정토회는 정체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대중이 행정 업무를 수행하는 것을 격려하되 법사가 앞장서서 ‘가자!’ 하고 나서는 건 맞지 않습니다. 지부장이나 지회장이 아닌 법사가 사업의 선두에 나서는 것은 적절하지 않아요. 다만 본인의 기질이 행정 업무에 더 맞다면 법사라 하더라도 행정 쪽에 기여할 수는 있습니다. 그런 분은 법사이면서 동시에 행정 업무도 일부 맡으면 됩니다. 또한 건강이 좋지 않은 법사님은 건강이 허용하는 범위에서 역할을 맡으면 됩니다. 건강이 좋지 않지만 경험 많은 법사님과 신규 법사님이 짝을 이루게 해서 노하우가 전수될 수 있게 배치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이렇게 서로 보완하며 정토회를 발전시켜 나가면 좋을 것 같습니다.

대중이 문제를 제기하면 귀담아들어야 할 것도 있지만, 모든 문제 제기가 진짜 다 문제라고 생각할 필요도 없습니다. 다수의 의견일 수도 있고, 소수의 의견일 수도 있어요. 한 사람의 문제 제기도 적절할 수가 있기 때문에 경청을 하긴 해야 합니다. 그러나 문제점을 감지하고 고려하되 법사의 역할은 항상 다수를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오늘은 서로 허심탄회하게 토의하고 대화해서 여러분끼리 해결책을 찾을 수 있는 것은 찾아 나가기 바랍니다. 남은 과제가 있다면 끝 무렵에 제가 참여해서 조언을 하겠습니다.”

입재 법문이 끝나고 전국 법사단은 사례담 발표, 그룹 토론, 토론 결과 발표 시간을 이어 갔습니다. 법사가 어떻게 하면 행정에 도움이 되게 할 것인지, 일반 회원들이 정토회에 머물 수 있는 놀이터를 어떻게 만들 것인지에 대해 많은 토론을 한 후 구체적인 사례담도 나누었습니다.

스님은 방송실을 나와 작업복으로 갈아입은 뒤 감나무 가지를 정리했습니다. 지난달에 감을 따고 난 뒤 나무에는 가지만 무성하게 남아 있었습니다. 내년에 감이 잘 열리도록 지금 가지치기를 해두어야 해서, 스님은 잠시 시간이 난 틈에 혼자 울력을 했습니다.

한 시간 동안 울력을 하고 나니 미국 LA정토회 회원인 이경택 님과 이승훈 님이 부산 해운대 법당을 둘러보고 두북수련원을 찾아왔습니다. 두 분은 LA정토회가 오늘에 이르기까지 초창기부터 기틀을 마련해 준 분들로, 오랜만에 한국을 방문하여 정토회 으뜸절을 순례하고 있었습니다. 스님은 함께 점심 식사를 한 후 천룡사가 있는 경주 남산으로 향했습니다.

스님과 두 분 모두 무릎 관절이 안 좋아서 백운암까지 차를 타고 올라가서 천룡사가 있는 산 중턱으로 내려가는 코스를 선택했습니다.

스님은 두 분에게 미리 준비해 온 지팡이를 건넸습니다. 지팡이를 잡고 조심조심 산길을 내려오자 곧 산 중턱에 위치한 넓은 평지가 나타났습니다.
“여기가 바로 『삼국유사』에 ‘이 절이 망하면 나라가 망하고, 이 절이 흥하면 나라가 흥한다.’고 기록된 천룡사입니다. 그래서 정토회에서는 대한민국이 통일되고 발전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절을 복원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스님의 안내에 따라 천룡사 부지를 한 바퀴 둘러보았습니다. 먼저 삼층 석탑에 참배했습니다.

“이 탑은 천룡사의 옛터에 무너져 있었는데 저희 은사 스님이신 불심 도문 큰스님께서 새롭게 복원해서 지금의 모습이 되었어요. 맨 밑이 기단이고, 그 위에 탑신이 3개 있기 때문에 삼층 석탑입니다. 몇 층 석탑인지는 지붕의 개수를 세어 보면 돼요. 자, 참배하고 가겠습니다.”

삼층 석탑에 참배한 후 발굴 작업을 마치고 복원 계획을 세우고 있는 부지를 자세히 살펴보았습니다.


이어서 가건물로 지어 놓은 대웅전을 참배했습니다. 삼배를 한 후 다시 스님이 설명을 이었습니다.


`“여기에는 불상 조각이 많죠. 오백 나한입니다. 이곳 천룡사를 복원하기 위해 불심 도문 큰스님이 여기서 발원 기도를 시작하셨어요. 용성 조사님이 돌아가실 때 대한민국의 국운 융창을 위해 ‘천룡사를 복원하라.’는 유훈을 남기셨습니다. 다시 말해 새로운 국가를 세우고 그 국가가 발전하려면 이 절을 복원해야 한다는 이야기지요.”
스님은 한쪽 편에 마련된 용성 조사님의 영정에 참배한 후 대웅전을 나왔습니다.

선당 앞에서 고위산 봉우리를 뒤로 하고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그리고 잠시 선당에 들어가서 차담을 나누었습니다. 천룡사를 지키고 있는 일등명 법사님이 정성껏 다과를 내어 주었습니다.

선당에 앉아서 밖을 바라보자 그림 같은 풍경이 펼쳐졌습니다. 스님이 웃으며 말했습니다.

“여기 와 보니까 참 좋죠? 여기서 보면 천하가 다 내려다 보이잖아요. 나무가 앞을 막아서 다 보이지 않긴 하지만 복이 빠져나가는 걸 막아 주는 것 같기도 해요.”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곧 전국 법사단 연수에서 스님이 법문을 해 주어야 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저는 법회 시간이 되어서 빠른 속도로 먼저 내려가 보겠습니다. 두 분은 천천히 내려오세요.”

법회에 늦지 않기 위해 스님은 종종걸음으로 하산을 시작했습니다. 20분 만에 틈수골을 부지런히 내려와 와룡사 앞에서 다시 차를 타고 두북수련원으로 향했습니다.


오후 3시 40분이 되어 두북수련원 방송실 카메라 앞에 자리했습니다. 그룹별로 토론한 내용을 발표하고 있었습니다. 스님은 발표 내용을 경청하고 필요한 내용은 메모했습니다.

발표가 끝나고 스님과 질의응답 시간을 가졌습니다. 법사단은 지부와 지회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일들을 예로 들며 법사의 역할이 무엇인지에 대해 구체적으로 질문했습니다. 한 시간 동안 여러 가지 질문이 이어졌습니다.

마지막 순서로 손을 든 법사님은 입재 법문에서 이야기하는 중도의 길이 현실에서는 실천하기가 어렵다며 조금 더 구체적인 방법이 있는지 조언을 구했습니다.
“법사는 대중을 효과적으로 지원하되 그것이 간섭처럼 느껴지지 않도록 중도의 관점을 가져야 한다고 하셨는데, 현실에서는 적절하게 적용하기가 어려울 때가 있습니다. 일이 닥쳤을 때 조금만 개입해도 간섭이 되기도 하고, 반대로 ‘그냥 알아서 해라.’ 하고 외면하게 되는 마음이 생기기도 합니다. 이렇게 마음이 왔다 갔다 하다 보면, 상황에 맞는 중도의 관점을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경험을 통해 서서히 찾아가는 수밖에 없는 것인지, 아니면 좀 더 빠르게 알아차림을 유지하면서 적절함을 찾는 방법이 있을까요? 어떤 관점으로 법사 역할을 해야 할지 궁금합니다.”

“적절함이 잘 유지되지 않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경험 부족이고, 다른 하나는 자기 고집 때문이에요. 마음대로 하겠다는 생각이 강하면, 자신의 방식대로 밀어붙이다가 저항을 받게 되죠. 그러면 ‘알았다, 그럼 관여하지 않을 테니 알아서 해라.’ 하면서 외면하게 됩니다. 이렇게 집착과 외면이 반복되는 상황이 생기는 이유는 자신의 견해를 고집하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자신의 견해를 고집하지 않으면, 시간이 지나고 경험이 쌓이면서 집착과 외면 사이의 간격이 조금씩 좁혀집니다. 단순히 시간이 흐른다고 저절로 중도가 찾아지지는 않아요. 자기 고집을 내려놓아야 집착과 외면 사이에서 중도를 향해 수렴해 가는 과정으로 조금씩 나아갈 수 있습니다. 또한 아무리 적절하게 하고 싶어도 경험이 부족하면 한쪽으로 치우치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어느 정도의 경험이 쌓이는 게 필요합니다.
그냥 시간만 흐르고 같은 방식이 반복된다면 간격이 좁혀지지 않아요. 그래서 자기 생각을 내려놓고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자.’ 하며 연구하는 자세가 중요합니다. 또한 상대의 반응을 살피면서 조금씩 조정해 나가야 적절함을 찾아나갈 수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잘 알았습니다.”

오후 6시가 다 되어 사홍서원으로 전국 법사단 연수를 마쳤습니다. 이미 해가 저물고 날이 어둑해져 있었습니다.

저녁에는 미국에서 온 이경택 님, 이승훈 님과 함께 저녁 식사를 하며 LA수련원 불사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내일은 새벽 3시에 두북수련원을 출발하여 서울로 이동한 후 아침 일찍 평화재단 임시 이사회에 참석하고, 주간반 전법회원 법회를 생방송한 후, 오후에는 병원 정기 검진을 받고, 저녁에는 저녁반 전법회원 법회를 생방송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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