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은 순천에 있는 '사랑 어린 배움터'를 방문하고, 광주에서 행복한 대화 즉문즉설 강연을 하기로 한 날입니다.
스님은 새벽 2시에 일본 도쿄 하네다 공항을 출발하여 4시 30분에 인천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비행기 안에서 쪽잠을 잔 후 공항을 나와 곧바로 정토회관으로 향했습니다.
정토회관에 도착하여 짐을 풀고 아침 식사를 한 후 오전 10시부터 평화재단에서 박진도 교수와 미팅을 했습니다. 박진도 교수는 최근에 '국민총행복 전환 포럼'을 이끌며 여러 국회 의원들과 함께 국민총행복 증진을 위한 ‘국민총행복 기본법’ 제정과 국정 과제 반영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데요. 다가오는 12월 3일에는 국회로 스님을 초청하여 ‘국민총행복의 길’이라는 주제로 강연을 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현재 국회에서 50여 명의 국회 의원들이 국민 총 행복 증진을 위한 ‘국민총행복 기본법’ 제정을 위해 입법 발의를 추진 중입니다. 입법을 하고자 하는 핵심은 국가의 목표를 경제 성장보다는 국민 행복에 방점을 두자는 것입니다. 단순히 선언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국가와 지방 정부, 민간이 각각 어떤 책무를 가져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세부 내용을 포함했습니다. 소수의 이익을 위하는 일은 피켓을 들고 열심히 소리치는 사람들이 있는데, ‘행복’은 모든 사람의 이익에 해당하는 것이니까 오히려 동력이 없어요. 그래서 스님께서 이 부분을 국회 의원들에게 이야기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여러 이야기를 나눈 후 내년 3월에 부탄 공무원들의 한국 견학 프로그램에 대해서도 논의를 하고 미팅을 마쳤습니다. 박 교수님은 스님의 신간『탁! 깨달음의 대화』를 직접 구입해 와서 스님에게 사인을 받았습니다.
“저도 아직 인쇄된 새 책을 못 받았는데, 교수님이 먼저 보셨네요.” (웃음)
박 교수님을 배웅해 드린 후 스님은 곧바로 서울을 출발하여 순천으로 향했습니다.
'사랑 어린 배움터'를 운영하고 있는 김민해 목사님이 오래전부터 스님의 방문을 요청했습니다. 마침 오늘은 광주에서 즉문즉설 강연이 있어서 가는 길에 잠시 들르기로 했습니다.
차로 3시간 30분을 달려 오후 3시에 전남 순천시 해룡면에 위치한 '사랑 어린 배움터'에 도착했습니다. 차에서 내려 김민해 목사님과 포옹을 하며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와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사랑 어린 배움터' 학생들과 선생님들이 교문 앞에 일렬로 서서 스님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함께 손뼉을 치며 노래를 불러 주었습니다.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함께 운동장으로 들어섰습니다.
운동장에 동그랗게 모여 선 채로 조촐한 환영식을 진행했습니다. 스무 명 남짓한 아이들과 선생님들이 인사를 건네며 스님에게 한 말씀을 청했습니다.
스님은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춰 자기소개를 한 후 경쟁 사회를 벗어나 새로운 실험을 해나가고 있는 아이들과 선생님들을 격려해 주었습니다.
“제 이름은 법륜(法輪)입니다. ‘법(法)의 수레바퀴를 굴려라’ 하는 뜻으로 스승님께서 지어 주신 이름이지요. 그래서 여기까지 굴러 왔습니다. 만나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웃음)
시골에서 배운 삶의 지혜
이곳은 제가 다녔던 초등학교보다 훨씬 크네요. 제가 입학했을 당시 학교에는 교실이 네 칸뿐이었습니다. 교실이 부족해 나무 아래에서 공부할 때도 있었고, 졸업 무렵이 되어서야 두 칸이 더 지어져 여섯 칸짜리 학교가 되었습니다. 어린 시절을 떠올려 보면, 거의 자연 속에서 맨발로 뛰어다니며 살았어요.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시절의 환경이 제 육체적·정신적 건강에도 좋은 영향을 주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제가 동남아시아에 가서 어려운 분들을 돕다 보면, 그 집의 부모 나이, 아이 수, 농사짓는 땅의 규모만 들어도 금방 그 집의 형편이 파악됩니다. 통역을 맡은 현지 청년들도 잘 모르는 일을, 스님이 어떻게 아느냐고들 묻습니다. 사실은 신통력이 있어서가 아니라, 제가 자란 시골과 지금의 동남아시아 농촌이 너무 비슷하기 때문입니다. 부엌에 들어가 보면 ‘허리가 아프겠구나.’ 하고 자연스럽게 떠오릅니다. 그러면 현지 아주머니들이 ‘남편은 20년을 같이 살아도 몰라 주는데 스님은 어떻게 그렇게 잘 아느냐’? 하며 신기해하곤 합니다. 그럴 때 저는 이렇게 말합니다.
‘제가 전생에 복을 많이 지어서 가난한 시골에서 태어났습니다. 그 덕분에 조기 교육을 잘 받아서 아는 게 많습니다.’
교육이란 꼭 학교에 가서 책으로만 배우는 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노래하고, 춤추고, 뛰어놀고, 장난치며 익히는 모든 것이 교육입니다. 그런 경험이 바로 산 교육이며, 실제 삶에 훨씬 도움이 됩니다. 지금은 도시 아이들에 비해 학업 성적이 뒤처지는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앞으로의 시대는 ‘지식을 얼마나 아느냐?’보다 ‘환경 변화에 얼마나 잘 적응하느냐?’가 훨씬 중요해질 것입니다.
미래를 대비하는 최고의 교육
많은 분들이 ‘미래에 직업이 많이 사라진다는데, 아이들에게 어떤 교육을 시켜야 하느냐?’고 묻습니다. 그런데 앞으로 어떤 직업이 생기고 없어질지 정확히 아는 사람은 없습니다. 100년 전 조선 시대에 지금처럼 다양한 직업이 생길 줄을 누가 알았겠습니까? 그래서 미래를 준비하는 가장 좋은 교육은, 어떤 상황에서도 무엇이든 해낼 수 있는 사람을 만드는 것입니다. 밥 해야 하면 밥하고, 청소해야 하면 청소하고, 계산할 일이 생기면 계산하는 것—즉 금강경의 표현을 빌리면 ‘무유정법(無有定法)’의 태도로, 주어진 형편에 맞춰 적응할 수 있는 힘을 길러야 합니다. 그래야 새로운 직업이 생겨도 문제 될 게 없습니다. 그에 맞춰하면 되니까요.
저는 종종 ‘제가 잘 사는 것이 대한민국 사람들에게 희망입니다.’라고 말합니다. 저는 고등학교도 중간에 그만둔 사람이고, 시골에서 자라 외국 유학의 ‘유’자도 몰랐습니다. 그런데도 지금 이렇게 잘살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학교도 나보다 더 다니고, 더 젊고, 재산도 더 많은 여러분이 왜 못 살겠습니까? 제가 웃으며 잘 살고 있는 모습 자체가 ‘법륜스님도 저렇게 사는데, 우리도 충분히 잘 살 수 있다.’ 하는 메시지가 되는 겁니다. 그러니 여러분도 마음속에 남아 있는 작은 걱정들을 내려놓고, 조금 더 편안하게 사셨으면 좋겠습니다.”
아이들과 선생님들은 두 손 모아 합장하며 스님의 이야기를 가슴에 새겼습니다.
다 함께 학교를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기념사진 촬영을 마치고 선생님이 아이들을 향해 이야기했습니다.
“법륜 할아버지 큰스님께 인사드리고 여러분은 이제 집으로 돌아가겠습니다. 나머지 분들은 좋은 시간 계속 이어 가기를 마음속으로 염원해 주세요.”
선생님의 이야기가 끝나자마자 아이들은 쏜살같이 교문을 향해 달려 나갔습니다.
김민해 목사님과 선생님들, 배움터 가족들 모두가 실내로 이동하여 대화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목사님이 중심이 되어 기독교 사상을 공부하는 사람들이지만 스님에게 삼배를 하고 반야심경을 독송을 했습니다. 오늘 모임을 갖기 50일 전부터는 법륜스님의 금강경 강의 책도 함께 읽고 공부하는 시간을 가졌다고 합니다.
'사랑 어린 배움터'를 소개하는 영상을 함께 본 후 김민해 목사님이 스님에게 말씀을 청했습니다.
“어느 날 문득 법륜스님을 떠올리면서, 마치 잃어버린 형제를 찾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 한편으로는 법륜스님이 한국의 마하트마 간디가 아닐까 하는 마음도 함께 들었습니다. 오늘 저희 배움터에 큰 어른을 모시게 되어서 설레고 기쁜 마음입니다. 참 고맙습니다.
저희들은 법륜스님이 오심을 준비하며 기도하고 또 기도했습니다. 날마다 스님께서 강의하신 『금강반야바라밀경』을 독송하며 하루하루 살고 있습니다. 스님을 모신 이 자리에 함께해 주신 여러분에게도 귀한 발걸음을 해주셔서 고맙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목사님은 작년 제주 항공 여객기 참사로 아들을 잃은데 이어 얼마 전 남편과도 사별한 '사랑 어린 배움터'의 한 가족을 언급하며 스님에게 위로의 말을 청했습니다. 스님은 어떤 마음을 가져야 슬픔을 극복할 수 있는지 이야기한 후 대화를 시작했습니다.
누구든지 손을 들고 스님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다섯 명이 미리 준비해 온 질문을 읽었습니다.
정토회는 수행 공동체로 엄격한 일상을 가진다고 들었는데, 정토회 일꾼들의 실제 일상과 생계는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나요?
'사랑 어린 배움터'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돈을 필요한 만큼 요청해서 받습니다. 저는 남편이 연금을 받고 있어서 지난 3년 동안 돈을 받지 않았는데, 앞으로 3년은 돈을 받을지 고민입니다.
'사랑 어린 마을 배움터'에서는 금강경을 공부하고 있는데, 경전 공부가 일상 속에서 살아 숨 쉬는 공부가 되려면 어떻게 이해하고 적용해야 하나요?
정토회에서 만일결사를 하는 의미는 무엇이고, 올바른 기도의 마음가짐은 무엇인가요?
법륜스님은 다양한 활동을 하면서 바쁘게 사시는데, 어떻게 공부를 하시나요?
스님은 원래 한 시간만 대화를 나누려고 했는데, 분위기가 좋아서 한 시간 더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대화를 마치며 스님이 '사랑 어린 마을 배움터'를 방문해 본 소감과 더불어 마무리 말씀을 해주었습니다.
“저는 여러분이 지금 하고 있는 이러한 시도가 매우 가치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늘날은 누구도 ‘미래 문명은 앞으로 이렇게 될 것이다.’, ‘인생은 이렇게 살아야 한다.’ 하고 단정할 수 없는 시대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여러분은 새로운 가능성을 향해 다양한 실험을 이어 가고 있습니다. 이렇게도 시도해 보고, 저렇게도 해 보며 방향을 찾고 있지요. 각각의 시도만 놓고 보면 실패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한 사람의 인생이나 한 시대만을 기준으로 평가해서는 안 됩니다. 이런 실험들은 ‘인류 문명’이라는 긴 역사 속에서 평가받아야 합니다.
당대의 평가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남기는 발자취입니다
우리가 지금 하고 있는 다양한 시도는, 역사적으로 보면 춘추 전국 시대 제자백가의 실험과도 비슷합니다. 후대의 사람들이 이 실험들을 평가하고 정리할 것이며, 그러한 정리 속에서 새로운 사상이 만들어지기도 하고, 그중 하나가 주류가 되기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당대의 성과나 규모만 가지고 옳다, 그르다 판단하는 것은 너무 성급합니다. 예수님의 공동체가 당시 큰 규모였던 것도 아니고, 부처님 역시 당시 인도에서 주류가 아니었습니다. 비주류 중에서도 아주 작은 흐름에 지나지 않았지요. 그러나 시간이 흐른 뒤, 인도의 통일과 역사적 변화 속에서 비교적 합리적이었다고 후대의 평가를 받았고, 그래서 나중에 주류로 ‘채택’된 것입니다. 처음부터 위대했던 것이 아니라, 후대의 평가가 그렇게 만든 것입니다.
지금 여의도 순복음교회가 크게 보이지만 100년 뒤에도 그렇게 기록될지, 아니면 '사랑 어린 배움터'의 김민해 목사님이 역사에 더 크게 남을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결국 규모나 당대의 평가는 절대적 기준이 아닙니다.
저는 중요한 것이 따로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어떤 목표를 가지고 어떤 실험을 했는가,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기록으로 남겼는가가 중요합니다. 후대 사람들이 교훈을 얻으려면 자료가 있어야 판단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흔적도 남기지 못하면 그저 역사 속으로 사라져 버리고 맙니다.
오늘 이곳을 둘러보며 여러분의 시도가 매우 참신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동시에 제 자신에 대한 작은 반성도 하게 되었습니다. 정토회의 규모가 커지고 제가 바빠지면서 대중과 함께 어울려 지내는 시간이 점점 줄어들었기 때문입니다. 공동체가 처음 만들어질 때만 해도 하루 종일 함께 일하고, 함께 먹고 자고, 함께 산행도 하며 지냈습니다. 하지만 규모가 커지면서 지금은 형식적으로 1년에 몇 번 결합하는 정도에 그치고 있습니다. 오늘 여러분의 삶을 보며, 저도 대중과 더 가까이 지내야겠다는 마음이 다시 들었습니다. 고맙습니다.”
큰 박수와 함께 대화를 마무리했습니다. 마칠 때도 서로가 서로에게 절을 했습니다.
'사랑 어린 배움터'에서는 바쁜 가운데 시간을 내어준 스님에게 직접 생산한 쌀, 계란, 산야초 효소액을 선물해 주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스님은 작별 인사를 나눈 후 서둘러 순천을 출발하여 광주로 향했습니다. 해가 저물고 차로 약 1시간 30분을 달려 저녁 6시 50분에 광주에 도착했습니다.
오늘 강연이 열리는 곳은 전남대학교 민주 마루 대강당입니다. 2025년도에 열리는 행복한 대화 즉문즉설 열 번째 강연입니다. 스님이 도착하자 강연을 준비한 광주 행복시민들이 반갑게 스님을 환영해 주었습니다.
스님은 강연 전 대기실에서 지역 인사들과 차담을 나눈 후 함께 강연장으로 이동했습니다.
사전 공연으로 가수 이현미 님이 아름다운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고 있었습니다.
‘인생의 선물’, ‘행복의 나라’ 두 곡을 열창하고 무대에서 내려오는 이현미 님에게 스님은 책을 선물하며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이어서 스님을 소개하는 영상이 상영되고, 영상이 끝나자 스님이 큰 박수를 받으며 무대로 걸어 나왔습니다. 스님은 환한 웃음과 함께 인사말을 했습니다.
“열렬히 환영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2층과 3층에도 많은 분이 자리해 주셨네요. 3층에 계신 분들은 뭐가 잘났다고 남의 머리 위에 앉아 계시는가요? (웃음)
모두 잘 지내시지요? 날씨가 갑자기 추워졌는데 건강은 괜찮으십니까? 서울은 벌써 영하권으로 내려갔습니다.
많은 분들이 궁금해합니다. 스님은 어떻게 그렇게 다양한 문제에 대해 답하십니까? 혹시 모르는 질문이 나오면 어떻게 하려고 뭐든지 물어보라고 하십니까? 그런데 ‘어떤 답을 해야 한다.’라고 생각하면 모르는 것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대화에서는 ‘모르는 문제가 있다, 없다.’가 염려되지 않습니다. 친구와 차 한잔을 마시며 ’내가 이런 문제가 있는데...‘ 하고 이야기를 나눌 때, 굳이 대화의 주제를 제한할 필요가 없는 것과 같습니다. 모르면 모른다고 말하면 됩니다.
답을 주는 시간이 아니라 스스로 길을 찾는 시간
이 자리는 대화의 자리이므로 어떤 답을 주는 것이 아닙니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스스로 ‘별일 아니구나.’ 하고 깨닫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것이 큰 깨달음입니다. ‘별일 아니다.’ 하는 것이 가장 큰 깨달음입니다. 유식하게 한문 불교 용어로 말하면, ‘제법이 공하다.’라고 할 수 있어요. ‘나는 별일인 줄 알았는데...’라고 느끼는 것이 ‘색(色)’이고, 그것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별일 아니네!’ 하는 것이 바로 ‘공(空)’입니다. 별일이 아니니까 해결해야 할 문제가 없어집니다. 또한,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알겠습니다. 이렇게 하면 되겠네요.’ 하고 스스로 길을 찾게 됩니다.
이런 대화를 ‘즉문즉답’이라고 하지 않고 ‘즉문즉설’이라고 부릅니다. 여러분이 말하는 ‘즉문즉답’에서는 ‘만약 스님에게 모르는 질문을 한다면 어떡하나?’ 하는 염려가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대화는 즉문즉설이기 때문에 그런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됩니다. 모르는 질문이 나오면 ‘그건 모르겠는데, SNS에 검색해 보세요.’라고 하면 됩니다. 검색해서 찾으면 되는 것을 굳이 제게 물을 필요는 없어요. 그러니 어떤 주제를 가지고 대화해도 괜찮습니다. 스님을 걱정해서 ‘이런 질문을 하면 스님이 곤란해하지 않을까?’ 하고 염려하지 말고, 마음 편하게 질문하면 됩니다.”
이어서 사전에 질문을 신청한 분들부터 스님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이어서 현장에서도 누구든지 손을 들고 스님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두 시간 동안 열 명이 자신의 고민을 말하고 스님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중 한 명은 사춘기 아들이 엄마 말만 안 듣는다며 답답한 마음을 털어놓았습니다.
사춘기 아들이 엄마 말만 안 듣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저는 초등학교 6학년 사춘기 아들을 키우는 엄마입니다. 아들은 무서운 아빠가 말을 하면 어느 정도 따르지만, 만만한 엄마가 말하면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립니다. 그래서 자꾸 반복해서 말하게 되고, 결국 소리를 지르거나 화를 내기도 합니다. 그러면 남편이 옆에서 보면서도 제가 왜 그러는지 이해하지 못하고, 결국 아이 문제 때문에 부부 갈등이 생기기도 합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제가 아이에게 한 번만 말해도 행동하고, 말을 잘 듣게 할 수 있는지 스님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질문자는 아들을 미워하나요? 아니면 사랑하나요?”
“미울 때도 있지만, 사랑하기는 합니다”
“그렇다면 아들이 커서 자립적인 사람이 되길 바라나요? 아니면 엄마 뒤를 졸졸 따라다니는 마마보이가 되길 바라나요?”
“저는 아들이 자립하기를 바라서 공부하라는 말은 전혀 하지 않습니다. 다만 생활 습관, 예를 들어 아들이 학교에서 돌아오면 가방이나 옷을 어떻게 정리해야 하는지 때문에 잔소리를 하게 됩니다. 수백, 수천 번 얘기해도 잘 지키지 않아요”
“아이가 엄마 말을 ‘네’ 하고 잘 따르면, 엄마에게는 좋을지 몰라도, 나중에 아이가 결혼하면 엄마 말만 듣고 아내 말은 듣지 않게 됩니다. 그럼 며느리 입장에서는 속이 터지겠지요. 남자가 어느 정도 자기 관점이 있어야 하는데, 다 큰 남자가 어떻게 엄마 말만 듣겠습니까?
그러니까 엄마 말만 듣는 착한 마마보이가 좋은가요? 아니면 엄마 말을 조금 안 듣더라도 자기 삶을 살아가는 아이가 좋은가요? 어느 쪽이 낫습니까?”
“스님, 며느리 보기 전에 제 속이 터질 것 같아요” (웃음)
“그러니까 질문자는 엄마 자격이 부족합니다. 질문자는 그냥 애는 다른 사람에게 맡기고, 강아지를 한 마리를 키우는 게 어떨까요?”
“그런데 이미 아들을 낳았어요”
“아들은 사람인데 강아지 다루듯이 다루려고 합니다. 사람은 자기 생각이 있어야 합니다.”
“네. 아휴”
“부처님은 원래 다음 왕이 될 사람이었지만, 왕이 되지 않고 출가하셨습니다. 결혼도 하고 아이까지 낳았지만, 부인을 두고 출가하셨습니다. 아버지 입장에서는 나쁜 아들이고, 부인 입장에서는 나쁜 남편이며, 아이 입장에서도 나쁜 아버지입니다. 그런데도 왜 부처님을 좋아할까요?”
“부처님은 특별한 분이니까요. 제 아들이 부처는 아니잖아요.”
“질문자의 아들은 지금은 엄마 말을 안 듣기 때문에 아직 부처는 아니더라도, 부처가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엄마 말만 잘 듣게 되면 부처가 될 씨앗이 사라집니다. 그러니까 아들이 말을 안 들을 때마다 ‘우리 아들이 크게 될 수 있겠구나.’ 이렇게 생각하세요.”
“스님, 아직 답이 안 됐습니다.”
“말을 안 듣는 것에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한 번 말해도 안 듣고, 두세 번 잔소리를 하면 아이에게 면역이 생깁니다. 매를 들 때도 처음에는 말을 잘 듣지만, 반복되면 ‘까짓것, 한 대 맞지 뭐!’ 하고 생각하게 되고, 교육 효과가 없어집니다. 말해도, 때려도 아무런 교육 효과가 없어집니다. 질문자는 잔소리를 너무 많이 하기 때문에 아이가 만성이 되어, 귓등으로도 안 듣고 ‘너는 지껄여라, 나는 간다.’ 하는 상태가 됩니다. 그래서 지금은 얘기해 봐야 효과가 없습니다. 아이가 말을 잘 들으면 좋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은 상태입니다. 그런데 질문자가 낳고 키운 아들이니까 질문자를 닮은 게 아닐까요?”
“남편을 닮은 것 같아요. 저는 안 그랬었어요.” (모두 웃음)
순간 강연장은 웃음바다가 되었습니다. 스님이 답변을 이어 갔습니다.
“그래도 남편을 닮았으니 다행입니다. 아이가 말을 안 듣는다고 해서 꼭 나쁜 것은 아닙니다. 다만 지금까지의 방식은 효과가 없어졌습니다. 질문자가 하는 방식이 더 이상 효과가 없기 때문에, 계속 이렇게 하는 것은 무의미합니다. 질문자도 힘들고, 아이도 ‘나쁜 아이’가 됩니다. 엄마가 ‘우리 아이가 말을 안 듣고 문제’라고 말하면 주변 사람들은 ‘저 집 아이가 문제더라.’ 하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이 ‘아이가 문제다.’라고 해도 엄마가 ‘우리 아이 괜찮아.’라고 말해 주면 아이는 자신감을 갖게 됩니다.
그러니 아이를 더 이상 나무라지 마세요. 옷을 아무 데나 벗어두더라도 그냥 두세요. 질문자가 아무리 말해도 개선되지 않고, 아이는 상처를 받고, 질문자만 힘들어질 뿐입니다. 아이가 보통 아이와 많이 다르고, 집중력이 떨어지거나 감정 조절이 잘 안 된다면 병원에서 심리 검사를 받아 보세요. 감정 조절 문제나 집중력 저하가 확인되면 치료를 받으면 됩니다. 잔소리만으로는 해결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검사를 해도 특별한 문제가 없으면 기뻐해야 합니다. 그럼 말을 안 들어도 괜찮고, 아이가 자기 방식대로 행동하도록 두어도 괜찮습니다. 철이 늦게 드는 것일 수도 있어요. 요즘은 ‘말 안 듣는다.’고만 하지 않고, 실제로 검사를 해 보면 ADHD 판정을 받는 경우도 있습니다. 결국 집중력 저하나 심리 불안이 있으면 치료가 필요하지, 잔소리로 해결할 문제가 아닙니다. 질문자가 보기에 문제가 없다고 판단되면 그대로 두고, 아무리 봐도 정상 범위를 벗어난다고 판단되면 병원에서 검사를 하고, 문제가 있다면 치료를 하고, 이상이 없으면 ‘철이 좀 늦게 드는구나.’ 하고 기다려 주는 게 필요합니다.
질문자는 제 말이 마음에 안 드나 봐요. ‘스님은 애가 없으니까 그런 소리 하시죠.’라고 하면 제가 다시 묻습니다. 그런데 왜 저한테 물어요?”
“아니요. 저는 아이를 키우면서 최선을 다했습니다.”
“최선을 다한 건 맞지만, 지혜롭지는 못합니다”
“스님 말씀대로, 아이가 사회성이 떨어져서 잘하기를 바라는 마음에 상담 센터도 다녔습니다”
“사회성이 떨어지는데 잘하기를 바라는 것은 잘못된 교육 방식입니다. 먼저 의사에게 진료를 받아 어떤 문제가 있는지 확인하고, 그 결과에 따라 필요한 보충 교육을 받아야 합니다. 사회성이 떨어지니까 ‘내가 데리고 다니면서 훈련시키면 된다.’는 생각은 잘못입니다.”
“이미 데리고 다니면서 노력하고 있습니다”
“잘못된 방식으로 노력할수록 더 나빠집니다. ”
“스님 말씀대로 노력하고 있습니다.”
“잘못된 방식으로 노력하면, 안 하는 것보다 못합니다.”
“엄마로서 집에서는 생활 교육을 해야 하지 않을까요?”
“하지만 아이가 집중력이 떨어지면, 그 방식은 오히려 역효과가 날 수 있습니다. 먼저 진료를 받고 전문가의 지도를 따라야 합니다.”
“네...”
“억지로 ‘네...’ 하네요. 자, 그 마이크를 옆에 있는 아이에게 줘 보세요.”
스님은 옆에 앉아 있는 질문자의 아들과 대화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스님이 묻자 아이는 쑥스러워하며 조그만 목소리로 대답했습니다.
“엄마의 어떤 부분이 불편한지 본인 마음을 말해 보세요.”
“잔소리가 너무 많아요.”
“엄마 말을 듣고 ‘그렇게 하겠습니다.’ 하면 그건 잔소리가 아니고, 안 들으면 잔소리가 됩니다. 엄마 말을 왜 안 듣나요?”
“하기 싫어서요.”
“그럼 ’ 엄마 하기 싫어요.’라고 말하면 됩니다. 그런데 엄마가 옷을 옷걸이에 걸어 두라고 하면, 하기 싫어도 해야 하나요? 안 해도 되나요?”
“해야 합니다.”
“그런데 왜 안 하나요?”
“귀찮습니다.”
스님은 다시 청중에게 질문했습니다.
“여러분, 이 아이가 말을 안 듣는 아이처럼 보이나요?”
“아니요.”
청중이 한 목소리로 말하자 스님은 다시 질문자에게 마이크를 넘겼습니다.
“제가 보기에 아이는 괜찮아요. 다만 집중력이 조금 떨어집니다. 그래서 먼저 전문가의 확인이 필요합니다. 질문자는 아이를 사랑하지만, 교육 방식은 어리석습니다. 지금 아이에게 맞는 교육을 제대로 못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상담이 필요합니다. 엄마가 더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면 해 보세요”
“저는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눈 감고 안 보이는 상태에서 최선을 다해 앞으로 걸어가면 안 됩니다.”
“병원도 데려가고 상담도 받고, 정말 하라는 것은 다 하고 있습니다.”
“그럼 병원의 진단 결과, 집중력이 좀 떨어진다고 합니까?”
“네.”
“그럼 그 결과에 맞추어서 아이에게 요구해야 합니다. 집중력이 떨어지는 아이에게 보통 아이들과 똑같이 요구하면 안 됩니다.”
“저는 많은 걸 요구하지는 않는데요.”
“질문자 입장에서는 많지 않아 보여도, 아이에게는 많은 요구입니다. 아이도 동의하잖아요. 질문자가 보기에는 이 정도는 할 수 있다고 요구하는 것이 아이에게는 힘든 겁니다.”
“그럼 제가 조금 내려놓아야 할까요?”
“내려놓고 안 내려놓고가 중요한 게 아닙니다. 질문자는 착하기는 한데 어리석습니다. 아이에게 맞게 요구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세 살짜리 아이에게 ‘뜀뛰기를 몇 개 해라!’ 하고 요구하면 안 되잖아요. 한 살도 안 된 아기에게 걷기를 요구하면 안 되는 것처럼, 아이의 현재 상태를 진찰해 보고 거기에 맞게 요구해야 합니다. 낮은 단계부터 반복 훈련을 시켜야 하는데, 질문자는 자꾸 높은 단계를 설정하고 아이가 빨리 습득하기를 바랍니다. 그러니 아이가 힘이 들어 거부하게 되고, 그러다 보면 질문자도 감당이 안 되어 악을 쓰게 됩니다. 그러면 아이의 마음에 상처가 됩니다.
착한 엄마이지만, 현명한 엄마는 아닙니다. 그러니까 아이에게 맞게 요구하고, 자신의 기준을 낮추어 아이의 상태에 맞게 도와줘야 합니다. 내 기준대로 끌고 가려고 하지 말고, 아이에게 맞게 도와주라는 얘기입니다. 아이가 집중력이 약간 떨어져도 이해해 주어야 합니다.”
“예, 감사합니다.”
계속해서 질문이 이어졌습니다.
교사가 되고 싶어 사범대에 왔지만 열정이 사라져 진로에 대한 확신이 흔들리고 있습니다. 지금이라도 다른 길을 찾아야 할까요?
과거의 상처를 덮고 용서하려 했지만 오히려 트라우마가 더 얽혀 마음이 힘듭니다. 과거를 인정하면서도 현재를 잘 살아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동물을 사랑해 키우다 보니 개·고양이가 많아져 개인 시간이 사라지고 점점 지쳐 가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저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췌장암이 폐로 전이되어 외롭고 두려운 마음속에서 가족 걱정과 삶의 아쉬움이 큽니다. 남은 시간을 평온하게 보내기 위해 어떻게 마음을 다스려야 할까요?
깨달음의장을 다녀와서 너무 감명을 받아서 10배 절과 10분 명상을 하고 있습니다. 정토회 기준으로 하면 부족한 것 같은데, 이 정도만 수행을 해도 될까요??
환경 문제를 공부할수록 무력감이 커집니다. 편리할수록 환경이 파괴되는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편리를 추구하게 되니까 고통스럽습니다.
편입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학창 시절에 부모님에게 받은 상처 때문에 부모님의 간섭을 다시 받는 게 꺼려집니다.
딸이 내년에 결혼을 하게 됩니다. 부부가 싸우지 않고 화합하는 가정을 이루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저희 딸에게 좋은 말씀을 해주세요.
아스퍼 증후군을 앓고, 아버지와 갈등이 있어 혼자 광주로 왔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은 사람과 만남을 오래 이어 갈 수 있을까요?
대화를 마친 후 마지막으로 스님이 정리 말씀을 해주었습니다.
“너무 자주 잔소리를 하면 효과가 없어요. 조금 참아야 합니다. 결혼 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결혼을 하면 배우자로부터 ‘당신 만나서 덕 봤다.’ 하는 소리를 듣겠다는 마음을 갖고 살아야 합니다. ‘저 사람이 나한테 무슨 도움이 되나?’ ‘결혼해서 이익 되는 게 없다. 차라리 혼자 사는 게 낫지.’ 이렇게 생각하면 갈등만 생깁니다.
인간관계를 편안하게, 자연스럽게 갖는 게 필요합니다. 강아지나 고양이를 키울 때를 생각해 보세요. 강아지나 고양이를 키운다고 해서 큰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오히려 내가 밥을 주면서 강아지나 고양이를 좋아하고 지내잖아요. 강아지나 고양이의 좋은 점은 사람처럼 잔소리를 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잔소리는 설령 득이 되어도 듣기 힘듭니다. 부부간에도, 부모 자식 간에도 잔소리를 줄여야 합니다. 너무 간섭하지 말고 적당한 선에서 관계를 맺고 살아간다면 갈등 없이 충분히 잘 살 수 있습니다. 그렇게 여러분 모두 나날이 행복하게 사시길 바랍니다.”
큰 박수와 함께 강연을 마쳤습니다.
이어서 로비로 이동하여 책 사인회를 시작했습니다. 대부분의 청중들이 길게 줄을 서서 스님의 사인을 받고 감사의 마음을 표시했습니다.
“스님 덕분에 정말 많이 행복해졌습니다.”
책 사인회가 끝나고 스님은 강연을 준비해 준 봉사자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광주전라, 워메~ 수고했어!”
재미있는 구호를 함께 외친 후 모두가 활짝 웃었습니다. 스님은 봉사자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 후 강연장을 나왔습니다.
밤 10시에 광주를 출발하여 서울로 향했습니다. 차로 3시간을 달려 새벽 1시에 서울 정토회관에 도착한 후 하루 일과를 마무리하였습니다.
내일은 오전에 영어권 정토회 회원들을 위해 온라인으로 즉문즉설 생방송을 하고, 경전대학 학생들을 위한 즉문즉설 시간을 가진 후, 오후에는 방송·영화·연극·예술인들의 모임인 '길벗' 회원들과 함께 구룡 마을에서 연탄 배달 봉사 활동을 하고 대화의 시간을 가진 후, 저녁에는 두북수련원으로 이동할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