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5.11.25. 한국 출발, 일본 오사카 도착
“정말 복 많은 사람과 박복한 사람이 따로 있을까요?”

안녕하세요. 오늘은 일본 순회강연을 하기 위해 오사카로 출국하는 날입니다.

스님은 새벽 3시에 두북수련원을 출발하여 서울로 향했습니다. 차로 3시간 30분을 달려 6시 30분에 서울 정토회관에 도착한 후 아침 식사를 했습니다.

오전에는 일본 순회강연을 가기 위해 짐을 쌌습니다. 일본에서 만날 원로분들에게 드릴 선물들을 챙긴 후 실내에서 여러 업무를 보았습니다.

점심 식사를 하고 오후 1시 30분에 서울 정토회관을 출발하여 인천 공항으로 향했습니다.

오후 3시에 인천 공항에 도착하여 수하물을 부치고 출국 수속을 한 후 오후 4시 55분에 인천 공항을 출발했습니다. 비행기로 1시간 45분을 이동하여 오후 6시 40분에 일본 오사카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수하물을 찾고 입국 수속을 하고 공항 밖으로 나오니 일본 정토회 회원들이 마중을 나와 열렬히 환영해 주었습니다.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함께 기념사진을 찍은 후 숙소로 향했습니다.

저녁 8시 50분에 숙소에 도착하여 짐을 푼 후 일본 정토회 회원들과 호텔 1층 라운지에서 대화 시간을 가졌습니다.

조정은 정토회 아시아태평양 지회장을 비롯하여 도쿄와 오사카에서 여러 회원들이 스님을 환영하기 위해 찾아왔습니다. 서로 자기소개를 하고 안부를 주고받은 후 오늘 일정을 마무리하였습니다.

내일은 오전에 숙소에서 수행법회 생방송을 한 후 점심에는 일본 교포분과 덴노 지구의 한식당에서 점심 식사를 함께 하고, 저녁에는 오사카 시립 히가시나리 구민 센터에서 일본어 통역으로 일본인들을 위해 즉문즉설 강연을 할 예정입니다.

오늘은 법문이 없었기 때문에 지난 24일 부산에서 열린 행복한 대화 즉문즉설 강연에서 스님과 질문자가 나눈 대화 내용을 소개하며 글을 마칩니다.

정말 복 많은 사람과 박복한 사람이 따로 있을까요?

“제가 60살이 다 되어 가는데, 돌아보면 제 삶이 참 순탄치 않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문득 ‘과연 복 많은 사람과 박복한 사람은 따로 있는 걸까?’하는 궁금증이 생깁니다.

첫째, 결혼할 때 양가 아버지의 의견이 충돌하면서 시아버님만 참석하셨던 일이 있었습니다. 그 기억은 너무 고통스럽고 힘들었습니다. 둘째, 결혼 전 사진 스튜디오에서 근무하다가, 결혼 후 사장님의 권유로 그 가게를 인수했습니다. 하지만 1년도 안 돼 철거 명령이 떨어졌고, 그 시기에 디지털 카메라가 보급되면서 고가로 인수했던 장비를 단돈 5만 원에 처분하며 가게를 정리해야 했습니다. 셋째, 남편과 아이 셋을 두고 그럭저럭 살던 어느 날, 남편이 갑자기 ‘가족이 부담스럽다.’며 저를 무차별로 폭행한 뒤 집을 나갔습니다. 넷째, 둘째 아이가 정신과 치료를 받던 중 직장 스트레스가 심해져 회사를 그만두었고, 집에서 번개탄을 피우는 일까지 벌어져 세 들어 살던 집이 불에 타 버렸습니다. 그로 인해 1억 원이 넘는 배상금까지 물어야 했습니다.

이런 일들을 겪으면서 ‘나는 왜 이렇게 박복한 걸까?’ 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특별히 잘못한 것도 없고, 힘든 사람들을 도우며 세 아이를 최선을 다해 키워 왔는데 왜 이런 일들이 생기는 걸까요? 그동안은 긍정적인 마음으로 버텨 왔지만, 집에 불이 나는 일을 겪으면서 처음으로 ‘정말 나는 박복한 사람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박복한 사람이 실제로 있는지 알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스스로 박복하다고 느끼는 사람은 분명히 있죠. 예를 들어 결혼했다가 이혼하면 ‘남자 복이 없다.’ 거나 ‘여자 복이 없다.’고 말하고, 재혼 후 또 이혼하면 ‘정말 남자 복이 없다.’고 하죠. 그런데 저는 ‘너 진짜 여자 복 많다! 나는 평생 결혼을 한 번도 못 해봤는데, 너는 결혼을 두 번이나 하네.’ 이렇게 말합니다. (웃음)

결혼을 여러 번 하는 것이 불행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관점을 바꾸면 인연을 여러 번 만났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결국 본인이 어떻게 받아들이느냐가 중요하다는 거예요. 평생 한 회사만 다니는 것을 안정적으로 보고 정규직을 선호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저처럼 여러 경험을 해 보는 걸 선호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기준이 다르면, 같은 경험도 전혀 다른 의미로 다가오는 법이죠.

질문자의 이야기를 들어 보면, 인생의 참 다양한 경험을 하며 살아온 사람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 다양한 경험 자체가 일종의 복일 수도 있습니다. 소설이나 영화도 평탄한 이야기보다는 굴곡이 있어야 흥미롭잖아요. 아무 사건 없이 ‘둘이 만나 행복하게 잘 살았다.’ 하는 이야기만으로는 두 시간을 채우기 어렵죠. 오히려 사연이 많아야 이야기가 되고, 그런 인생은 나중에 돌아보면 큰 자산이 되기도 합니다.

설악산에 오른다고 생각해 보세요. 개울도 건너고, 가파른 능선도 오르고, 위험한 순간도 겪어야 정상에 도달합니다. 그 과정을 모두 고생이라고만 보면 박복한 일이 되지만, 등산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그 모든 과정이 바로 산행의 즐거움입니다. 케이블카를 타고 바로 정상에 올라가는 것이 과연 더 의미 있을까요?

질문자도 마찬가지입니다. 결혼도 해보고, 장사도 해보고, 집에 불도 나고, 폭력도 겪어 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이렇게 살아 있잖아요. 그 자체로 대단한 일입니다. 그래서 저는 질문자의 인생은 성공적이라고 봅니다. 많은 경험을 쌓았기에, 누군가 인생이 힘들다고 말하면 ‘그게 어려운 건가요? 불은 안 나보셨잖아요. 남편한테 안 맞아보셨잖아요.’ 이렇게 대답해 줄 수 있잖아요.

결국 자기 삶의 기준을 어떻게 세우느냐가 중요합니다. 스스로 ‘박복하다’고 하면 박복한 인생이 되고,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여기까지 잘 왔다.’고 보면 복 있는 인생이 됩니다. 그러니 자기가 기준을 정해야 합니다. 많은 경험과 우여곡절을 겪으며 여기까지 왔다면, 그 자체로 복 받은 인생입니다. 나쁜 일 속에 좋은 일과 좋은 사람들이 있었고, 그 덕분에 잘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질문자는 복 받은 인생인가요? 박복한 인생인가요?”

“저는 천주교 신자여서, 신의 은총으로 잘살고 있습니다.”

“신의 은총으로 산다고 생각하면 더 감사해야죠. 그런데 스스로 박복하다고 말하는 것은 신을 부정하는 것과 같아요. ‘왜 제 인생을 이렇게 힘들게 하십니까?’ 하고 묻는 것은 신에 대한 믿음이 부족한 것입니다. 믿음이 있다면 집에 불이 나도 ‘주님의 뜻이라면 기꺼이 받아들이겠습니다.’ 하고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합니다. 큰 시련이 있을 때 보통 사람들은 절망하지만, 신앙이 있는 사람은 하느님이 뜻이 있어서 그렇게 하신 것이라고 여기며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합니다.”

“받아들이겠습니다, 스님.”

“그렇다면 ‘나는 신의 축복을 받은 사람이다.’ 하고 생각하면 됩니다.”

“네, 잘 알겠습니다.”

전체댓글 6

0/200

박경자

스님말씀대로 내 인생은 축복받았습니다.고맙습니다.

2025-11-28 06:40:56

이수정

고맙습니다.

2025-11-28 06:38:17

정의웅

지혜로운 말씀 감사합니다~

2025-11-28 06:3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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