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검색
원하시는 검색어를 입력해 주세요
안녕하세요. 오늘은 일본 오사카(大阪市)에서 즉문즉설 강연을 하는 날입니다.
스님은 새벽 기도와 명상을 마치고 6시 30분에 숙소에서 아침 식사를 했습니다. 아침 식사를 마치고 업무를 보다가 오전 10시부터 숙소에서 수행법회 생방송을 했습니다.

정토회 회원들이 화상회의 방에 모두 입장하자 지난 한 주 동안 정토행자들의 활동 모습을 영상으로 보았습니다. 영상이 끝난 후 대중들이 삼배의 예로 스님에게 법문을 청했습니다. 잠시 명상을 한 후 스님이 인사말을 했습니다.

“저는 내일까지 이어지는 일본 순회 법회 일정으로 현재 오사카에 와 있습니다. 오늘 저녁에는 교민과 일본 현지인을 위한 법회가 오사카에서 열리고, 내일은 도쿄에서 즉문즉설을 진행할 예정입니다. 일본의 날씨는 한국과 비슷하게 제법 쌀쌀하네요.
일본은 한국과 지리적으로 가까움에도 불구하고, 의외로 일본에 대해 잘 모르는 분들이 많습니다. 일본의 국토는 남한의 약 세 배, 인구는 두 배 반 정도이며, 1인당 GDP도 우리와 비슷한 수준입니다. 인구 1억 명이 넘는 나라 가운데 이 정도로 경제가 성장한 곳은 미국에 이어 일본이 유일합니다. 세계적으로도 경제 규모가 큰 나라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과거의 아픈 역사 때문에 일본에 대한 감정적 거리감이 있지만, 현재 한국과 일본은 경제적으로 매우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특히 미·중 갈등이 심해지는 국제 정세 속에서는 과거의 상처를 넘어서 상호 협력하는 것이 양국 모두에게 이익이 됩니다. 그리고 일본에는 약 60만 명의 한국 교민이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교민들과 2세들, 나아가 일본인들이 더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돕고자 정토회에서는 이곳에서 교민 법회와 더불어 일본인을 위한 정토불교대학도 시작했습니다.”
이어서 궁금한 점에 대해 질문을 받았습니다. 세 명이 사전에 질문을 신청하고 스님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중 한 명은 어머니를 떠나보낸 뒤 죄책감에 사로잡혀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모르겠다며 고민을 털어놓았습니다.

“2년 전, 어머니가 말기 간경화로 혈관이 매우 약해진 상태에서 출혈성 응급 상황을 겪으셨습니다. 의료진은 응급 수술을 하면 당장은 상태가 좋아질 수 있지만, 같은 상황이 반복될 가능성이 크다고 했습니다. 당시 저는 치료비를 혼자 모두 감당해야 했고, 국가와 지자체 지원도 끊긴 상황이라 수술을 진행할 수 없었습니다. 결국 어머니는 그날 돌아가셨습니다. 그때 저는 슬픔보다 먼저 ‘왜 모든 부담을 나 혼자 지게 만들었나.’ 하는 원망과 미움이 올라왔습니다. 제 몸 상태도 좋지 않아 한동안 무기력하게 지내며 치료에만 집중했습니다. 그러다 점차 ‘나는 살인자다.’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큰 괴로움에 빠졌습니다. 이후 깨달음의 장과 정토불교대학, 경전대학을 차례대로 졸업하고 수행을 이어오며 정신과 진료와 심리 상담도 병행했습니다. 그러면서 죄책감 속에 사는 것은 엄마를 두 번 죽이는 일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고, 이제부터는 엄마 몫까지 두 배로 행복하게 살겠다는 마음을 먹었습니다. 하지만 올해 몸이 회복되고 사회 활동을 다시 넓히자, 여러 사람 사이에 있을 때나 실수할 것 같은 순간마다 비난이 두렵고, 죄책감과 어지러움, 위축감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앞으로 저는 어떤 관점으로 수행을 이어가야 할까요?”
“우리가 어떤 선택을 했을 때, 그 선택이 분명히 나쁜 의도를 가지고 한 것이라면 반성해야 합니다. 다시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주의해야겠죠. 그러나 선한 의도로 선택했다고 해서 결과까지 반드시 좋으리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제 초등학교 친구 이야기를 하나 들려드리겠습니다. 어느 날 그 친구에게서 연락이 왔습니다. 열흘 이상 살기 어렵다는 진단을 받았으니 꼭 병문안을 와달라는 것이었어요. 찾아가 보니 친구는 제 손을 잡고, ‘이대로 그냥 죽기엔 너무 아쉽다. 죽더라도 서울에 있는 큰 병원에서 진료를 한번 받아보고 죽으면 여한이 없겠다.’라고 말했습니다. 친구는 지방 병원에 입원해 있었고, 담당 의사와 상담해 보니 간경화가 심해 해결책은 간이식 수술뿐이라고 했습니다. 다행히 딸이 간을 이식해 주겠다고 했고, 의사는 그 방법 외에는 다른 길이 없다고 말했어요. 저는 서울에 아는 병원이 없었기에 사회적 관계가 넓은 정토회 회원 몇 분께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그 가운데 한 분이 말씀하시길, ‘저도 지금 간이 나빠서 서울 큰 병원에서 치료받고 있습니다. 마침 3일 뒤에 진료가 잡혀 있는데, 제가 주치의에게 부탁해서 저 대신 그분이 진료받을 수 있도록 해보겠습니다.’라고 하셨어요. 정말 고마운 일이었죠. 다행히 그 주치의가 동의해 주어서, 결국 제 친구는 딸에게서 간을 이식받고 지금도 잘 있거든요. 제가 시골에 내려갈 때마다 ‘아직도 술 먹나?’ 하고 물으면, 친구는 ‘안 먹어!’ 하고 대답하곤 합니다. 이런 경우는 결과가 잘 나온 사례죠. 딸이 아버지에게 간이식을 한 결과가 잘 나타났잖아요.
하지만 반대의 사례도 있습니다. 제가 아는 또 다른 분도 간이식 외에는 방법이 없다고 해서 서울에서 여동생의 간을 이식받는 수술을 했습니다. 그런데 수술 직후에 돌아가셨어요. 수술하지 않았다면 몇 달은 더 살 수도 있었을 텐데, 수술로 인해 오히려 생명이 단축된 셈이에요. 환자는 세상을 떠나고, 동생은 간의 일부를 잃고, 수술비도 부담해야 하는, 이런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병원에서 수술 전 동의서를 받을 때 ‘성공 확률은 높지만, 예외적으로 위급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이 점을 알고 선택하십시오.’라고 안내하는 것이죠.
그때 질문자가 다른 선택을 했다고 해서 어머니가 지금 살아 계셨을 거라는 보장은 없는 거예요. 최근에도 제 가까운 지인이 외국에서 뇌 수술을 받고 귀국했는데 상태가 좋지 않았습니다. 한국에서 정밀 검사를 받아보니 뇌암이 재발했어요. 항암치료를 시작했는데 오히려 상태가 훨씬 더 악화했습니다. 앞으로 한두 달밖에 못 산다는 판단에 항암을 중단했지만, 오히려 지금까지도 살아 있습니다. 의사 말로는 앞으로 1년은 더 괜찮을 것 같다고 해요. 이렇듯 상황은 늘 예측대로만 흘러가지 않습니다.
어떤 결정을 선의로 내렸다고 해서 결과까지 좋으리라는 보장도 없고, 반대로 나쁜 결과가 나왔다고 해서 그 결정이 잘못이었다고 단정할 수도 없습니다. 질문자도 당시 상황에서 최선을 다했을 뿐인데, 어머니가 돌아가시면서 ‘내가 죽게 만든 것 같다.’ 하는 죄책감이 생긴 것입니다. 예를 들어 형제 중 한 사람이 정신 질환으로 오랫동안 ‘죽겠다, 죽겠다.’ 하며 자해를 반복한다고 합시다. 몇 년 동안 이런 상황이 반복되면, 같이 사는 가족도 지쳐 충동적으로 ‘그래, 죽든지 말든지 마음대로 해라!’라고 말할 수도 있겠죠. 그런데 그날 정말로 죽었다면, 평생 죄책감이 남는 거예요. 그러나 그 말 때문에 죽은 게 아니에요. 그날은 아무리 말려도 위험한 하루였던 겁니다. 그러니 이런 결과를 개인의 잘못과 연결할 수는 없습니다.
‘내가 이렇게 했으면 더 나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은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가정을 계속하면 죄책감에서 벗어나기 어렵습니다. 얼마 전에도 어떤 분이 교통사고로 돌아가셨을 때 ‘내가 외출을 막았으면’, ‘마지막에 내가 하지 말라고 했으면.’ 하는 생각이 끝없이 이어진다며 죄책감을 이야기하는 분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가정은 현실을 바꾸지 못하는 헛된 상상일 뿐이에요. 그래서 질문자 때문에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생각은 지나치게 과민한 반응입니다. 만약 수술했다가 돌아가셨다면, 오히려 ‘수술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하고 더 큰 죄책감을 느꼈을 수도 있습니다.
그 일은 이미 지나간 일입니다. ‘앞으로 비슷한 일이 있을 때 조금 더 신중해야겠다.’ 하는 정도로만 교훈으로 삼고, 질문자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데 집중하면 좋겠습니다. 질문자가 잘못한 것은 없습니다. 칼로 찌르거나 독을 먹인 것도, 등을 떠민 것도 아니라면 개인적 잘잘못을 따질 수 없습니다. 의사가 특별히 실수한 것이 아니라면 의사에게 책임을 묻기도 어려워요. 요즘은 이런 문제로 의사들이 고발당하는 바람에 수술하는 의사들이 점점 줄어드는 문제까지 생기고 있어요. 이럴수록 주어진 상황을 받아들이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질문자가 어머니 때문에 괴롭게 산다면 돌아가신 어머니가 원하는 바도 아닐 것입니다. 이제 질문자는 자신의 인생을 살아가는 관점을 갖는 것이 필요합니다.”
“감사합니다. 한결 마음이 편안해졌습니다. 앞으로 엄마 몫까지 행복하게 살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엄마 몫까지 살 필요는 없어요. 자신의 인생을 자기답게 잘 살아가면 됩니다. 어머니가 질문자를 낳고 키운 이유는 결국 딸이 건강하고 행복하게 사는 데 있지 않겠어요? 그런데 질문자가 병들고 위축돼 제대로 못 산다면, 그게 오히려 어머니의 노고를 헛되게 만드는 것 아닐까요? 질문자가 잘 살아주는 것이 부모의 노고에 보답하는 길입니다. 부모에게 모든 걸 잘해야만 은혜를 갚는 것이 아니에요. 내가 건강하고 행복하게 사는 것이 바로 은혜에 보답하는 길입니다. 이런 관점을 가지고 앞으로의 삶을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계속해서 질문들이 이어졌습니다. 대화를 마치고 나서 스님은 앞으로 이어지는 정토회의 연말 행사 일정들에 대해 다시 한번 상기시켜 준 후 생방송을 마쳤습니다. 법회를 마치고 짐을 정리한 후 점심 식사를 하러 이동했습니다.

스님의 즉문즉설과 스님의 하루를 보고 큰 감동을 받아서 스님이 일본에 올 때마다 숙소와 식사를 준비해 주시는 분이 이번에도 오사카 덴노 지구의 한국식당에서 점심을 대접해 주었습니다.
식사를 마친 뒤 오후 2시 30분에는 식당 근처의 사천왕사를 참배했습니다. 이곳은 일본에서 국가 차원으로 세운 최초의 불교 사찰로,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절이자 일본 불교의 성립과 깊이 연결된 곳이라고 합니다.



사천왕사를 한 바퀴 둘러본 후 강연장으로 향했습니다. 오늘 강연이 열리는 곳은 오사카 지역 주민들이 모임, 강연, 문화 행사 등을 열 수 있도록 마련된 복합 커뮤니티 공간인 오사카 시립 히가시나리 구민센터입니다. 작년에 강연을 했던 장소보다 코리아타운에서 더 가까운 장소로 옮겼다고 합니다.

스님이 강연장에 도착하자 30여 명의 봉사자들이 반갑게 스님을 환영해 주었습니다. 지방이나 도쿄에서 온 봉사자들이 강연을 마친 후 막차를 타러 바로 나가야 해서 강연을 하기 전에 사진 촬영을 함께하였습니다.
“오사카 파이팅!”

봉사자들은 각자 자기 위치로 가서 청중들을 맞이할 준비를 했습니다. 곧 강연장에 청중이 도착하기 시작했습니다.

스님은 대기실을 찾아온 손님과 차담을 나누다가 강연을 시작할 시간이 되어 함께 강연장으로 이동했습니다.

저녁 6시 30분이 되자 스님을 소개하는 영상이 일본어 자막과 함께 상영되었습니다. 영상이 끝나자 큰 박수와 환호를 받으며 스님이 무대 위로 걸어 나왔습니다. 환한 웃음을 머금으며 스님이 인사말을 했습니다.

“오늘 여러분과의 대화는 원래 한국 교민을 위해 마련된 자리였습니다. 그런데 우리 교민 2세나 3세가 한국말을 잘 모르는 경우가 있고, 또 일본인 중에서도 즉문즉설에 관심 있는 분들이 계셔서, 오늘은 일본인을 위해 통역을 곁들여 진행하기로 했습니다. 이렇게 하면 두 가지 문제가 생기는데요. 하나는 통역하는 데에 시간이 오래 걸려서 대화할 수 있는 사람 수가 줄어든다는 점이에요. 다른 하나는 한국말을 아는 사람들이 통역이 끝나기 전에 먼저 웃어버리면 분위기가 조금 어색해진다는 점이에요. 웃거나 박수를 치고 싶어도, 통역이 끝난 뒤에 해주세요. 지금도 통역이 채 끝나기 전에 벌써 웃어 버리잖아요.” (웃음)

이어서 즉문즉설의 취지에 대해 설명한 후 질문을 받았습니다. 사전에 질문을 신청한 분들부터 차례대로 손을 들고 스님과 대화를 나눈 후 현장에서도 질문을 받았습니다.
약 두 시간 동안 여섯 명이 질문을 했는데요. 그중 한 명은 불평이 많은 남편과 지내기 힘들다며 이럴 때 어떻게 감사하는 마음을 낼 수 있는지 스님에게 조언을 구했습니다.

“저희 남편은 세상에 대한 불평불만이 가득한 사람입니다. TV를 봐도 욕을 하고, 운전하면서도 욕을 하고, 주변 사람들이 하는 행동을 보면서도 화를 냅니다. 남편은 칠남매 가운데 여섯째로 태어나 어릴 때부터 눈치를 많이 보면서 자랐고, 집안일도 많이 도와야 했다고 합니다. 또 다른 형제들이 사고를 많이 쳐서 부모님이 힘든 것을 많이 참으며 살아왔다고 합니다. 그런 배경을 알고 있어서, 남편이 욕하거나 화를 내도 ‘그러려니’ 하며 살고는 있습니다. 제가 이런 얘기를 하면, 스님께서는 남편에게 감사 기도를 해야 한다고 말씀하실 것 같은데, 사실 그게 잘 안됩니다. 머리로는 늘 감사하게 생각해야지 하지만 막상 감사 기도를 하려면 잘 안됩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질문자 같은 분이 자꾸 저를 왜곡시키는 거예요. 남편이 무엇을 잘했다고 질문자가 감사 기도를 하나요? 질문자가 저를 그렇게 잘 안다면, 여기 연단에 와서 직접 말씀하세요. (웃음)
이런 경우에는 크게 세 가지 대응 방법이 있습니다. 첫째, 남편에게 왜 이런 반응이 나타나는지 진단이 필요합니다. 원인은 대부분 스트레스가 많기 때문이에요. 그럴 때마다 ‘아, 우리 남편이 스트레스가 많구나.’ 하고 생각하면 됩니다. 아이가 울면 ‘아프구나.’ 하고 바라보듯이, 옳다 그르다 판단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보는 거예요. 사람은 스트레스가 쌓이면 자기 살려고 욕을 하든, 어떤 방식으로든 스트레스를 풀려고 합니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구나. 그래서 욕을 하면서 풀고 있구나.’ 이렇게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것이 첫 번째 방법입니다.

둘째, 질문자가 남편보다 더 크게 욕하는 겁니다. 남편이 욕하는 대상에 대해 질문자가 더 세게 반응하는 방식이에요. 예를 들어, 차가 끼어들어 남편이 ‘저 나쁜 놈!’ 하면, 질문자는 ‘아주 죽일 놈이네!’ 하고 더 강하게 욕해 주는 거죠. 이렇게 남편의 스트레스를 대신 풀어주는 방법입니다.
셋째, 남편이 그런 반응을 보일 때마다 안아주고 등을 두드려 주는 겁니다. ‘얼마나 답답하면 이러겠나.’ 하고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갖는 거예요.

여기서 중요한 건 ‘이 세 가지가 남편에게 무슨 도움이 될까’ 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 관점을 가지면 남편의 말과 행동이 질문자에게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겁니다. 남편을 불쌍히 여기고 등을 두드려 주어도 나한테는 아무 문제가 안 돼요. 그냥 ‘스트레스가 많구나.’ 하고 지켜봐도 나한테는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내가 더 크게 욕을 해줘도 나한테는 아무 문제가 없어요. 오히려 남편에게는 내가 욕을 더 크게 해주는 방식이 가장 도움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남편이 ‘너 왜 그러니? 그 정도 일에 무슨 죽일 놈이야. 그냥 좀 잘못한 정도지.’라고 말릴지도 모릅니다. (웃음)

이런 관점을 가지면 남편과 같은 성격을 가진 사람과도 얼마든지 함께 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성격을 가진 남편과 헤어지지 않고 계속 사는 것을 보면, 아마 남편이 돈도 잘 벌고 장점도 많나 봐요. 이것만 좀 문제지, 다른 건 괜찮으니까 같이 사는 거겠죠.”
“맞습니다.”
“다른 장점이 많은데 어떡하겠어요.”
“잘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남편에게 감사 기도를 안 해도 된다는 말에 안심했습니다. 이제는 스님이 말씀해 주신 세 번째 방법에 도전해 보겠습니다.”
계속해서 질문들이 이어졌습니다.

모든 질문에 대해 답변을 한 후 밤 9시가 되어서 강연을 모두 마쳤습니다.

곧바로 무대 위에서 책 사인회를 했습니다. 참석한 대부분의 청중이 줄을 서서 스님에게 사인을 받고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스님, 최고로 존경합니다.”
“감사합니다.”

책 사인회를 마친 후 스님은 봉사자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강연장을 나왔습니다.
“모두 수고하셨어요.”

강연장을 나온 스님은 숙소로 향했습니다. 숙소에 도착한 후 원고 교정과 업무를 보고 나서 하루 일과를 마무리하였습니다.
내일은 아침 일찍 신칸센 기차를 타고 도쿄로 이동한 후 오전에는 북일 관계 정상화를 위해 정치원로 인사를 만나고, 오후에는 일본어 통역으로 일본인들을 위해 강연을 한 후, 저녁에는 한국 교민들을 위해 즉문즉설 강연을 할 예정입니다.
전체댓글 6
전체 댓글 보기스님의하루 최신글
다음 글이 없습니다.
이전글“정말 복 많은 사람과 박복한 사람이 따로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