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2.11.7 전법활동가 법회, 미소원 성금 전달식, 공동체 공청회, 길벗 강연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지만 자꾸 무기력한 마음이 들어요”

안녕하세요. 두북 수련원의 아침이 밝았습니다.

새벽 기도와 명상을 마친 후 8시부터 공동체 법사단과 화상으로 회의를 했습니다. 다음 달에 1차 만일결사 회향을 앞두고 정토회의 30년 역사를 정리하여 소개하는 일과 인도성지순례 준비 등 여러 가지 현안을 의논을 한 후 회의를 마쳤습니다.

이어서 10시에는 전법활동가 법회 생방송을 시작했습니다. 주말에 청년들과 함께 했던 경주역사기행 모습을 영상으로 함께 본 후 만일결사 회향식과 인도성지순례 준비를 비롯해 지금 정토회가 하고 있는 일을 공유한 후 궁금한 점에 대해 질문을 받았습니다.


누구든지 손들기 버튼을 누르고 스님에게 궁금한 점을 질문했습니다. 그중 한 명은 정토회의 예산을 왜 일반 회원들에게는 공유하지 않고 전법활동가들에게만 공유해주는지 궁금하다고 질문했습니다. 스님은 정토회가 운영되는 중요한 힘이 무엇인지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이 외에도 정토회의 운영과 관련된 다양한 질문들이 이어졌습니다. 모든 질문에 대해 답변을 한 후 1차 만일결사의 마무리를 잘하기 위해 앞으로 해야 할 일들을 일러준 후 법회를 마쳤습니다.

점심 식사를 한 후 오후 1시부터 다시 화상회의에 참석했습니다. 회의를 마치고 오후 3시에는 사단법인 미소원에서 JTS에 성금을 전달하기 위해 두북 수련원을 방문했습니다. 미소원(이사장 장유정)에서는 매년 인도 JTS에 결핵 환자 의료지원 및 우물파기 후원금을 20년째 기부하고 있습니다.

“스님, 미소원에서 원을 세우고 인도JTS를 돕기 시작한 지 올해로 20년이 되었습니다.”

“벌써 그렇게 되었어요? (웃음) 지난 20년 동안 꾸준히 후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결핵 환자가 처음에는 몇 백 명이었는데, 여러분들이 계속 후원함으로 해서 점점 숫자가 줄어서 지금은 5명까지 줄었어요. 우물 덕분에 식수 문제도 많이 해결이 되었고요.”

스님은 미소원 장유정 이사장님과 후원자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 후 기념사진을 찍고 스님의 책을 사인해서 선물로 드렸습니다.

오후 4시에는 공동체지부 공청회를 시작했습니다. 지난 몇 개월 동안 INEB 참여불교국제연대 콘퍼런스를 준비하고 진행하느라 공동체 지부 성원들의 고생이 많았습니다. 자원봉사하는 모습을 영상으로 함께 본 후 평가회의 결과를 공유하고, 다음을 위해 여러 가지 제안도 받았습니다.

그리고 인도성지순례 준비상황을 공유한 후 마지막으로 스님이 1차 만일결사 회향을 앞두고 당부 말씀을 해주었습니다.

“12월 4일에 1차 만일결사 회향을 해도 공동체지부 여러분들의 업무는 그대로 진행이 됩니다. 결사행자, 각 위원회, 그리고 공동체지부는 회향식 이후 2차 만일결사 준비에 인력이 전부 투여되어야 해요. 물론 대중부는 1차 만일결사가 끝나면 모두 대행 체제로 바뀌게 됩니다. 그러나 공동체지부는 대중부의 공백 기간을 대체해 주어야 하기 때문에 대중부처럼 ‘아, 이제 만일결사가 끝났다. 회향이다!’ 하고 들뜬 마음을 가져서는 안 돼요. 2차 만일결사를 준비하기 위해 인사이동 없이 기존의 업무를 계속해 나가야 하고, 2차 만일결사를 출범시킨 후에 마지막에 가서야 공동체 지부 내에서의 인사이동이 시작됩니다. 그러니 공동체 대중 여러분들은 그렇게 아시고 마음이 들뜨지 않도록 해주시기 바랍니다.”

사홍서원으로 공동체 지부 공청회를 마쳤습니다.

해가 저물고 저녁 7시 30분부터는 연극, 영화, 방송, 문화 예술인들이 봉사하고 마음공부하는 수행모임인 길벗 회원들을 위한 온라인 즉문즉설을 시작했습니다.

해마다 여의도에서 열리던 강연이 코로나 확산 이후 3년째 온라인으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스님은 두북 수련원에 마련된 방송실에서 200여 명의 방송·영화·연극인들과 온라인으로 만났습니다.

네 명이 손들기 버튼을 누르고 질문했습니다. 영화와 예술에 관한 일을 하고 있는 분들이라 일과 관계된 질문이 많았습니다. 그중 한 명은 음악을 작곡하고 노래를 부르는 분이었는데요. 스님과의 대화를 통해 마음이 가벼워졌습니다.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지만 자꾸 무기력한 마음이 들어요

“저는 곡을 만들고 부르는 싱어송 라이터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최근에 오랜 시간을 들여서 만든 앨범을 발표했는데, 성취감과 기쁨보다는 오히려 막막함과 무기력한 마음이 자주 듭니다. 저는 평생 장래 희망이 바뀐 적 없을 정도로 음악을 너무나 하고 싶었고 지금도 그렇습니다. 열심히 해야 하는 일임을 아는 데도 연습하는 것이 너무 어려워요. 앨범이 나오면 괜찮아질 줄 알았는데, 여전히 집중해서 연습하고 활동 계획을 세우는 게 너무 힘듭니다. 어떻게 하면 이런 마음을 좀 다잡을 수 있을까요?”

“좀 직설적으로 말해도 되나요? 혹시 상처를 입을까요?”

“아뇨, 괜찮습니다.”

“지금 질문자가 욕심을 좀 부리네요. 앨범이 히트를 못 쳤어요?”

“아닙니다. 히트 치겠다는 욕심은 없습니다.”

“힘든 이유는 욕심이 있기 때문입니다. 히트 욕심이 있으니까 부담이 되는 거예요. 히트 욕심이 없는데 부담이 될 이유가 뭐가 있어요? 스님들도 ‘깨달아야지!’ 이러기 때문에 선방에서 참선하는 부담이 얼마나 큰지 알아요? 참선하면서 스트레스를 엄청나게 받습니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면 홧김에 나가서 스트레스 푼다고 술을 먹는 일까지 벌어져요. 옛날에 그런 사건으로 한동안 떠들썩했잖아요. 여러분은 스님이 되어서 스트레스받을 일이 뭐가 있을까 싶죠?

‘돈 벌어야지!’

‘시험에 합격해야지!’

‘깨달아야지!’

이렇게 욕심으로 어떤 일을 하기 때문에 괴로움이 발생하는 거예요. 질문자도 마찬가지입니다. 본인이 좋아해서 노래하고 곡을 쓰는데 스트레스를 왜 받아요? 그 결과물에 대해서 뭔가 성과를 바라기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 거예요. 그 성과라는 게 결국 인기나 돈 아니겠어요?

그런데 질문자가 만든 음악을 우리가 좋아해 줄 이유가 뭐가 있어요? 질문자가 쓴 곡을 우리가 굳이 인기 음악으로 만들어줄 이유가 뭐가 있어요? 본인이 쓰고 싶어서 썼는데 다른 사람이 왜 그걸 보고 좋아해야 해요? 본인이 부르고 싶어서 불렀는데 그걸 왜 좋아해야 해요? 그렇기 때문에 ‘대중이 좋아해 주면 좋겠다’라는 생각 자체가 잘못된 겁니다. 그런 생각이 바로 욕심입니다.

내가 좋아해서 곡을 지었으면 내가 만족하면 되고, 내가 글 쓰고 싶어 썼으면 내가 만족하면 됩니다. 사람들이 그걸 갖고 공감하면 다행이고, 공감 안 해도 그만이에요. 사람은 누구나 다 자기 생각이 있고 자기 반응이 있는데 왜 내가 그걸 내 마음대로 하려고 해요? 사람들의 반응을 내 마음대로 하려고 하기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 거예요. 그래서 욕심이라고 얘기하는 겁니다. 욕심을 가지면 ‘이번에는 과연 잘 될까?’ 이런 부담이 생기게 되고, 부담이 있으면 만드는 과정도 힘들고 결과도 성에 차지 않게 돼요. 만약 그 앨범이 히트를 쳐서 수백만 장이 팔렸다면 질문자가 지금처럼 막막하다고 할까요? 그렇지 않을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이런 일을 할 때는 세상 사람이 다 내 뜻대로 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늘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사람들이 듣고 좋아해 주면 수익이 좀 생기는 것이고, 안 좋아해 주면 그만이에요. 수익이 안 생기면 낮에는 다른 데 가서 아르바이트를 좀 하고, 저녁에는 음악 하면서 살면 돼요. 꼭 내가 만든 것을 세상 사람이 좋아해야 할 이유가 뭐가 있어요? 반대로 지금 안 좋아한다고 해서 나중에도 안 좋아하라는 법도 없어요. 어떤 화가는 밥 한 끼 얻어먹으려고 그림을 그려주었는데 그 그림이 수백 년 지난 뒤에 수십만, 수백만 달러가 된 경우도 있잖아요. 내가 쓴 글이나 내가 만든 음악을 한국 사람은 공감 못 하지만 외국 사람들은 공감해 줄 수도 있고, 지금은 공감을 못 받지만 수십 년이나 수백 년 후에 공감받을 수도 있잖아요. 또 공감을 못 받으면 어때요? 내가 좋으면 됐죠.

지난번에 어떤 외국인이 이렇게 질문했어요.

‘눈이 아파서 스님 책을 읽으려 해도 읽기가 어렵습니다. 스님께서 이 책의 요점을 딱 말해주세요. 스님이 쓰셨으니 뭘 쓰고 싶다는 요점이 있었을 거 아니에요.’

저는 제가 뭘 쓰고 싶다는 생각이 전혀 없어요. 누군가가 물으니 그냥 대답을 했고, 그 대화가 많은 공감을 얻었기에 글로 엮어서 펴낸 것뿐이에요. 그렇게 대답을 했더니 계속 고개를 갸우뚱거리면서 이해가 안 된대요.

그러니 질문자도 ‘내가 욕심을 내고 있구나’ 이렇게 좀 살펴보면 어떨까요? 내가 좋아서 음악을 만들었으면 됐지, 그 결과물에 대중이 호응하고 안 하고는 그들의 문제예요. 호응해도 좋고, 안 해도 좋아요. 이런 관점을 갖는다면 왜 부담이 되겠어요?

물론 앨범을 발매하려면 돈이 드니까 본전 생각이 날 수는 있겠네요. 제작비도 안 나올까 봐 걱정이 좀 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음악가들이 제작비를 회수할 수 있다는 보장이 없어요. 이 세상 모든 사람이 성공하고 싶어 하지만 모두 성공하는 건 아니잖아요. 그러니 좀 더 자유롭게 음악을 하시고, 자유롭게 작곡을 하는 사람이 되면 좋겠습니다.

동시대 사람들의 공감을 좀 얻고 싶다면, 동시대 사람들 중에서도 어떤 계층의 사람들의 공감을 얻고 싶은지를 먼저 설정해야 합니다. 그런 다음에는 그들의 생활을 내가 직접 해봐야 해요. 20대의 공감을 얻고 싶다면 20대하고 같이 좀 지내봐야 합니다. 몇 년 동안 그들과 같이 생활해보면 20대의 정서가 어떤지를 알 수 있어요, 40대 주부의 공감을 얻고 싶다면 본인이 결혼 생활을 하고 애를 키워본 40대가 되어야 40대가 무엇을 갈구하고 어떤 생활을 하는지 알게 되어서 공감이 가는 결과물을 만들 수 있어요.

창작을 하려면 경험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지식으로 아는 게 아니라 경험으로 알아야 해요. 특히 음악이나 예술은 아주 예민한 작업이기 때문에 이렇게 접근해야 그런 예민한 부분이 건드려져서 사람들의 반응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저는 예술 분야를 잘 모르지만 기본 원리는 그렇습니다.

부담이 될 때는 우선 ‘욕심내고 있구나’ 하고 자각할 필요가 있어요. 질문자만 그런 게 아니에요. 누구라도 어떤 일을 할 때는 부담이 돼요. 그런데 한 번 생각해 보세요. 운전하는 게 부담이 된다면 그 이유는 운전이 서툰 사람이 잘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연설하는 게 부담이 된다면 본인이 손쉽게 잘 연설하고 싶기 때문이에요. 저처럼 이렇게 친구하고 얘기하듯이 편안하게 대화하면 무슨 부담이 되겠어요? 그런데 멋있는 얘기를 하려고 하면 부담이 생기게 됩니다.”

“스님, 제가 108배를 하면서 욕심을 내려놓을 수 있도록 기도문을 하나 주실 수 있을까요?”

“108배를 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부담이 될 때마다 이렇게 자각하는 게 중요합니다.

‘어, 내가 욕심을 내고 있었네. 스님하고 얘기해 보니까 내가 약간 기대를 갖고 있었구나. 욕심을 움켜쥐고 있어서 부담이 됐구나.’

이렇게 자각하고 ‘엇!’ 하고 놓아버리면 됩니다. 그러면 되는데 굳이 또 기도문을 만들어서 108배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요? ‘노력하겠습니다!’ 이런 마음은 각오와 결심이에요. 각오와 결심은 수행이 아닙니다.

‘내가 욕심을 좀 내고 있었구나.’

‘내가 성과에 기대를 좀 가지고 있었구나.’

이렇게 자각하면 ‘엇!’ 하고 내려놓으면 됩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기본 전제가 있어요. 세상 사람들이 내 음악을 듣고 감동해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이걸 여러분이 먼저 전제로 갖고 있어야 합니다. 내 연기를 보고 사람들이 감동할 이유가 하나도 없어요. 그런데 왜 여러분은 자기가 연기하고 자기가 노래하고 자기가 글을 쓰면 세상 사람들이 거기에 감동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본인은 다른 사람이 만든 걸 보면 다 감동하고, 다른 사람이 연기하면 다 감동해요? 어떤 음악을 들어도 다 감동해요? 감동을 안 할 때도 있잖아요. 내 취향에 맞아야 감동을 하게 되는 겁니다.

내가 좋아서 만들었는데 마침 거기에 사람들의 공감대가 형성되면 좀 확산이 되는 것이고, 공감대가 별로 형성되지 않으면 확산이 안 되는 것입니다. 확산이 안 될 때는 나 혼자 그냥 즐기면 되는 거예요. 먹고살아야 한다면 그건 다른 아르바이트를 해서 먹고살면 됩니다. 공감을 조금 받고 싶다면 자기 취향을 주장하지 말고 대중의 취향이 뭔지를 직접 경험해봐야 합니다.

‘아, 사람들의 취향이 이렇구나.’

이렇게 경험을 통해서 사람들의 취향을 알게 되면 인기를 좀 얻을 수 있어요. 인기를 얻으려면 비위를 좀 맞출 수밖에 없습니다. 내가 생긴 대로 그냥 놀았는데 공감대가 형성돼서 인기를 얻은 경우도 있고, 내 취향이 아니지만 사람들의 비위를 맞춰서 조금 공감대를 넓히는 경우도 있어요. 그런데 질문자는 자기 취향을 고집하는 동시에 또한 공감대가 확산되기를 바라는 것 같아요. 그건 될 수도 있고, 안 될 수도 있는 일이에요.

그러니 창작 작업을 편하게 하세요. 적자가 나면 적자가 나는 대로 다른 일을 해서 메꾸면 돼요. 그러다 보면 공감대가 넓어져서 확산이 될 수도 있어요. 이렇게 가볍게 해야 부담 없이 노래를 하거나 작곡을 할 수 있습니다.

안 그러면 비위를 좀 맞추세요. 비위를 맞추려면 상대를 알아야 비위를 맞추잖아요. 내 작품을 어떤 세대, 어떤 계층에 좀 확산을 시키고 싶다면 그들의 취향에 대해 경험적으로 굉장히 많이 알고 있어야 해요. 그래야 아주 민감한 부분에 가닿을 수 있어요. 예술에서는 특히 굉장히 민감한 부분이 터치되어야 합니다. 지식은 원줄기만 딱 제대로 잡으면 사람들이 이해를 하지만, 예술이라는 것은 바람이 불 때 잎이 흔들리듯이 아주 민감한 부분이 건드려져야 감성적인 공감을 얻을 수 있어요. 그냥 지식으로 이해하는 것으로는 대중적인 음악이나 글이 나올 수 없습니다. 본인이 굉장히 경험적으로 느끼고 있어야 그걸 터치할 수 있는 결과물이 나올 수 있어요.”

“제가 욕심이 좀 있다는 생각을 항상 하긴 했어요. 하지만 ‘최선을 다하려는 게 왜 욕심이지?’ 이런 생각도 자주 듭니다.”

“최선을 다하는 건 욕심이 아니에요. 최선을 다하는 게 아니라, 결과를 좋게 하려는 걸 욕심이라고 해요. 작곡을 열심히 하는 건 욕심과 관계가 없어요. 그런데 ‘내 노력에 대한 결과를 대중이 좋아해야 한다’ 이렇게 생각한다면 그게 욕심이라는 겁니다.

‘저는 세계적인 뮤지션이 되려는 것도 아니고, 제 밥만 먹을 수 있는 정도만 앨범이 판매되면 좋겠는데, 그게 무슨 욕심입니까?’

이런 생각을 할 수도 있는데 그것도 욕심이에요. 사람들이 별로 듣고 싶어 하지 않고, 별로 감흥이 없는데도 자꾸 ‘내가 밥을 먹을 수 있을 만큼은 너희가 감응해라’ 그러면 그건 욕심 아니에요? 남을 자꾸 자기 의도대로 하려는 건 모두 욕심이에요.”

“제가 연습하는 것이 너무 힘든 것도 욕심에 너무 짓눌려서 그런 걸까요?”

“네, 그렇습니다. 본인이 좋은 만큼 하면 되지, 무엇 때문에 그렇게 힘들게 해요? 특히 예술은 그렇게 너무 힘들게 하면 안 됩니다. 음악을 만드는 사람이 질문자처럼 힘들어하면, 그 음악을 듣는 사람도 얼마나 힘들겠어요? 만드는 사람이 기뻐하며 만들어도 다른 사람이 들으면 기쁠까 말까 한데요. 창작을 하는 동안에 질문자가 너무 힘들었다면 그 작품도 공감받기가 쉽지 않아요. 스님이 여러분과 대화하는 걸 너무너무 힘들어하고 스트레스받는다면 여러분은 그 대화 내용에 공감할 수 있을까요? 저부터 여러분과 이렇게 재미있고 가볍게 이야기를 나누니까 여러분이 이 이야기를 들어도 재미있고 가볍잖아요.”

“감사합니다. 도움이 많이 됐습니다

“자꾸 작품으로 돈을 벌려고 하지 마세요. 작품 활동은 그냥 취미 생활처럼 하고, 돈이 부족하면 아르바이트를 해서 벌고, 그렇게 하다가 시절 인연이 도래해서 맞아떨어지면 거기에서 또 돈이 벌리는 거예요. 특히 작가들을 보면 억지로 글을 쓰는 사람이 많아요. 본인부터 머리를 쥐어짜서 쓴 글을 누가 읽고 감동을 하겠어요? 안 그래도 머리 아픈 세상인데요. 쓰고 싶은 글은 본인이 편하게 쓰세요. 그냥 쓰고 싶은 글을 술술 써서 두어 번 읽어보고 고칠 게 있으면 좀 고치는 정도로 임하는 게 좋아요.”

“네, 오늘 스님 말씀 듣고 제 질문이 좀 부끄럽다는 생각도 많이 했습니다. 제가 노력보다는 결과가 좋기를 바랐구나 싶습니다.”

“부끄럽다고 말하는 건 아직 조금 덜 깨어난 거예요. 부끄러울 일이 뭐가 있어요? ‘내가 조금 욕심을 냈구나’ 이러면 되죠. 천하에 모든 사람이 다 욕심내고 사는데 부끄러울 게 뭐가 있다고 부끄럽다고 해요? 하나도 부끄러워할 게 없어요. 우리는 누구나 욕심을 내면서 살아요. 그래서 괴로워하고요. 그러니 부끄러워할 일은 아닙니다. 질문자가 부끄럽다고 하니까 ‘아이고, 저 사람이 좀 덜 깨달았구나’ 이렇게 제가 금방 아는 거예요. 그만큼 질문자는 아직도 좀 잘나고 싶은 거예요.”

“맞습니다. 감사합니다.”

방송, 영화, 예술을 하는 분들의 다양한 질문과 사연, 그리고 스님의 답변을 들으며 두 시간이 금방 지나갔습니다.

마지막으로 길벗의 대표인 노희경 작가님이 마무리 인사를 했습니다.

“매달 저희는 이렇게 모여서 마음공부를 합니다. 정말 많이 힘들 때, 사람들의 얘기를 귀담아듣기만 해도 내 고통이 내려가는 경험을 참 많이 합니다. 오늘도 여러 가지 무거운 마음들이 있었는데, 질문자들의 이야기를 가만히 들으면서 ‘아, 사람 사는 게 이렇구나’ 하고 또 배울 수 있었습니다. 오늘도 행복한 밤입니다.”

11월 말에는 길벗 모임 전체가 연탄을 나르는 봉사를 함께 하기로 하고 생방송을 마쳤습니다.

내일은 산윗밭에 올라가서 들깨를 수확한 후 저녁에는 정토경전대학 반야심경 제1강 수업을 생방송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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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각

조금 쎄게 이야기하는 느낌이 들긴했지만, 스님께서 말씀해주신 내용이 질문자에게 많이 도움되면좋겠다 싶습니다. 고맙습니다

2022-11-24 09:45:55

무구행

질문자를 스스로 깨달아 가볍고 편안하게 답변해주시는 스님께 감동입니다.

2022-11-19 07:20:12

정다운

여자아이한테 이런말을 하던데 공감함 뭐라햇냐면 "대학가서 대학생활 충분히하고 가수해도 늦지 않다고" 쌉 공감함 노래를 부르고 대중이 들을대에는 소통 (공감) 이 뭔저라 생각하거든, 그래서 그런 다양한 경험들이 노래에 묻어나서 좋은 가수가 된다고 생각함.

2022-11-18 11:2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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