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2.6.10. 밭에 액비 뿌리기, 금요 즉문즉설
“나 몰래 대출을 받은 남편에게 너무 화가 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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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두북 수련원의 아침이 밝았습니다. 오늘도 스님은 새벽 기도와 명상을 마친 후 농사일을 하며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오늘은 작업복 위에 비옷과 방수 토시를 한 겹 더 입고 산아랫밭으로 갔습니다. 밭에 유기농 액비를 뿌리는 작업을 하기 때문입니다.

며칠 전 겨울 채소를 수확한 자리에 다시 작물을 심기 전에 천연비료인 액비를 뿌리기로 했습니다. 산아랫밭은 산이었던 땅이라 척박해서 그냥 작물을 심기만 해서는 잘 자라지 못합니다. 그래서 아랫밭을 담당하던 행자가 고무통을 가져다 놓고 그 속에 다양한 유기 자원과 미생물을 넣고 발효시켜두었습니다. 작년에 밭에 뿌리고 남은 액비가 아홉통이 있었습니다. 오늘은 남은 액비를 다 밭에 뿌리기로 했습니다. 뚜껑을 열자 액비에서 시큼한 냄새가 코를 찔렀습니다.

“아이고, 냄새야.”

스님은 작년에 만든 긴 막대기로 만든 바가지를 들고 액비를 퍼서 작은 통에 담았습니다.

“옛날에 똥 푸는 거랑 꼭 같아요.” (웃음)


스님은 악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웃으며 바가지로 액비를 펐습니다. 스님이 액비를 퍼서 작은 통에 담아주면 행자님들이 밭으로 가져가 골고루 뿌렸습니다. 액비의 양이 워낙 많아서 한참 동안 밭을 오가며 계속 뿌렸습니다.


“액비가 튀더라도 옷을 좀 벗어야겠어요. 너무 덥네요.”

해가 뜨자 날이 점점 더워졌습니다. 비옷을 한 겹 벗고 일을 계속했습니다.



어느 정도 통이 비워지면 셋이서 직접 통을 들고 밭 안쪽으로 가서 한꺼번에 뿌렸습니다. 싹 비운 통은 씻어두고 다시 다음 통을 비우는 작업을 반복했습니다. 통이 비워지고, 밭에 액비가 뿌려질수록 사방에서 냄새가 진동을 했습니다. 힘은 드는데 자꾸 웃음이 났습니다.


마지막 두 통은 밑이 뚫려있는 통이었습니다.


통을 들어내자 바닥에 액비가 고여 있었습니다. 스님은 그 자리에 밭에서 저절로 자란 호박 모종을 옮겨다 심었습니다.


석회로 만든 액비는 펌프에 호스를 연결해 바로 작물에 뿌려주었습니다.

한편에 낙엽과 부엽토 포대도 쌓여있었습니다. 싹 다 밭에 뿌려주었습니다.


통과 포대로 가득 차 있던 밭 앞쪽이 깨끗해졌습니다.

씻은 통과 빈 포대는 트럭에 싣고 밭을 내려왔습니다.


“수고했어요. 오늘은 꼭 씻고 발우공양에 참석해야 하니까 얼른 갑시다.”

두북 수련원으로 돌아와 온몸을 깨끗이 씻었지만 얼마나 냄새가 지독한지 씻어도 냄새가 난다고 대중들이 놀렸습니다. 한바탕 웃고 9시부터 발우공양을 시작했습니다.

“차식색향미 상공시방불 중공제현성 하급군생품”

식사를 마치고 대중이 스님에게 한 말씀을 청했습니다. 스님은 농사와 관련해 이야기했습니다.

“오늘 아침에 산아랫밭에 액비 통을 모두 비웠습니다. 통이 크니까 옮기고 퍼나를 때 너무 힘들었어요. 액비 통을 한 군데에 모으지 말고 모서리마다 분산해서 놓아서 거름을 줄 때 힘이 덜 들도록 연구를 좀 해보면 좋겠습니다.

올해는 가을에 나비장터를 할 때 김장 축제를 할 수 있게 배추와 무를 많이 심읍시다. 비닐하우스 한 동에도 배추를 심어서 겨울에도 배추를 계속 먹을 수 있으면 좋겠고요. 배추는 가능한한 두둑을 좁게 해서 한 줄씩만 심는 게 좋습니다. 너무 배게 심으면 무름병이 생겨요.”

발우공양을 마친 후 10시부터 찾아온 보살님과 차담을 나누었습니다. 차담을 마치고 낮에는 뙤약볕을 피해 원고 교정 업무를 보았습니다.

해가 질 무렵 스님은 다시 작업복을 입고 농사일을 시작했습니다. 텃밭에 구석구석 맨드라미가 잘 번식해서 자라고 있었습니다. 삽으로 맨드라미를 뿌리째 퍼 와서 화분에 옮겨심기로 했습니다.

화분에서 양분을 많이 먹고 쑥쑥 자랄 수 있게 거름이 섞인 흙을 함께 화분에 담아 주었습니다. 뿌리가 달려 있는 것은 모두 골라서 화분에 담았습니다. 이 많은 화분들을 만들어서 어디에 사용할 것인지 궁금했습니다.

“6월 18일과 19일에 나비장터를 할 때 대중들에게 주려고요. 화분을 나눠주면서 ‘가난한 어린이를 돕는 것은 꽃밭에 꽃을 심는 것과 같습니다’ 하면서 JTS 후원금을 받아도 좋을 것 같아요.”

스님은 웃으며 정성껏 화분을 하나씩 만들었습니다.

마지막에 크기가 아주 작은 것들은 모종판에 모두 이식을 한 후 맨드라미 화분 만들기를 끝냈습니다.


“국화도 나비장터에 냅시다. 이 국화는 제가 100퍼센트 삽목하고 키운 거예요.”

“스님이 직접 키운 것이라고 하면 인기가 너무 많을 것 같은데요.”

얼마 전에 연수원에 보내려고 국화 삽목을 많이 해놓았습니다. 모종판을 꺼내 뿌리가 얼마나 자랐는지 확인해 보았습니다.

“우와, 한 달 사이에 뿌리가 정말 많이 자랐어요.”

줄기를 꺾어서 모종판에 꽂아만 두었는데 벌써 흙속에 뿌리를 잘 내렸습니다.

스님은 모종삽으로 국화를 하나씩 퍼서 화분으로 옮겼습니다.

“국화는 줄기 하나에 꽃이 많이 피어요. 꽃집에서 파는 것도 줄기 하나에서 그렇게 많은 꽃을 만드는 겁니다.”

삽목에 성공한 모종을 다 옮겨 심었는데도 화분이 아직 많이 남았습니다.

“연수원에 가져다주려고 했는데, 이번에 나비장터에 내면 연수원에 보낼 국화를 다시 삽목해야겠어요.”

10월 말에 연수원에서 세계참여불교대회가 열리기 때문에 꽃밭을 만들기로 했습니다. 꽃밭에 가을에 피는 국화가 많이 필요해서 스님은 틈나는 대로 국화 모종을 만들고 있습니다. 곧바로 스님은 화단에 가서 국화 줄기를 더 많이 잘라서 대야에 담아왔습니다. 모종판에 다시 흙을 붓고 국화 줄기를 꽂았습니다.



저녁 예불 시간이 다 되어 오후 울력을 마쳤습니다. 맨드라미 화분과 국화 화분마다 물을 듬뿍 주었습니다.

해가 지고 저녁 7시 30분부터는 금요 즉문즉설 생방송을 시작했습니다. 오늘도 5300여 명이 생방송에 접속한 가운데 스님이 인사말을 건넸습니다.

“지난 일주일 간 날씨가 좋았죠? 주말에 비가 흠뻑 왔고, 기온도 많이 떨어져서, 농사짓고 사는 저로서는 농사짓기에 아주 좋았습니다. 앞으로는 날이 점점 더워질 것 같습니다.

살다보면 날씨가 좋을 때도 있고, 나쁠 때도 있죠. 날씨는 내 마음대로 할 수 없기 때문에 그 날씨에 내가 어떻게 적절하게 적응하느냐가 중요합니다. 우리 인생살이도 그런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대화를 시작하기 전에 분위기를 가볍게 하기 위해 스님이 농사짓는 모습을 영상으로 함께 보았습니다. 시청자들은 자연 속에서 농사짓는 스님의 모습에 평온함을 느꼈습니다.

이어서 질문을 받았습니다. 네 명이 손들기 버튼을 누르고 스님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중 한 명은 남편이 자신 몰래 대출을 수천 만 원 받았다며 화가 나는 마음을 어떻게 다스려야 할지 질문했습니다.

나 몰래 대출을 받은 남편에게 너무 화가 나요

“저는 7개월 아기를 키우는 33살 엄마입니다. 결혼 전에는 부모에게 화가 자주 났었는데 최근 들어 남편과도 많이 다툽니다. 남편이 저 모르게 부족한 생활비를 충당하려고 대출을 수천 받았는데, 그때는 화가 나기보다는 함께 해결해야겠다는 마음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로 인한 죄책감으로 남편이 출근 전, 퇴근 후 잠만 자고 육아도 살림도 손 놓아버렸습니다. 저는 아기가 잠든 후에 알바까지 하고 있는데, 너무도 부족한 잠 탓에 남편에게 너무나 화가 납니다. 남편은 본인이 이토록 약해진 게 저 때문이라고 하며 제가 이기적이라고 말합니다. 저의 높고 까다로운 기준에 이제는 맞출 자신이 없다고 합니다. 남편이 한심해 보이고 남편을 무시하는 마음이 점점 커져갑니다. 제 화는 어디서부터 오는 것일까요?”

“화가 어디서부터 오기는요? 본인으로부터 오죠. (웃음) 그러면 아이 돌보느라 지금은 직장에 안 나가고 있어요?”

“직장에 나가지 않고 집에서 온라인으로 알바를 하고 있습니다.”

“아이 낳기 전에는 직장에 나갔어요?”

“네.”

“질문자가 직장에 안 나가면서 생활비가 부족해졌어요?”

“코로나로 남편의 수입이 많이 줄어서 생활비가 부족해졌습니다.”

“남편이 가게를 운영합니까?”

“강사입니다.”

“생활비가 부족해서 돈을 빌린 것이라면 헛된 곳에 돈을 낭비한 건 아니잖아요. 주식이나 노름해서 날린 것도 아니고요. 생활비가 부족해서 대출을 받아서 썼는데 왜 화가 납니까? 사전에 본인이랑 의논을 안 해서 화가 나는 거예요? 본인과 의논을 하면 돈이 더 생기고, 의논을 안 하면 돈이 덜 생겨요?”

“저와 의논을 했다면 다른 방법을 썼을 것 같아요. 둘이 머리를 맞댔으면 조금 더 현명한 방법을 찾을 수 있었을 것 같습니다.”

“어떤 방법이 가능했을까요?”

“제가 돈을 빌리면 이자가 훨씬 쌌을 것 같습니다.”

“그럼 대출을 갚고 나서 다른 방법을 찾으면 되잖아요. 돈을 다른 곳에 써버렸다면 갈등의 조건이 되는데, 대출을 받아서 생활비에 썼다면 지금부터 의논해서 다른 방법을 찾으면 될 것 같은데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맞습니다. 그런데 제가 당시에 화가 나서 남편에게 ‘너는 능력이 안 되는데 좋은 남편이 되고 싶어서 거짓말까지 했다. 너는 능력도 없고 거짓말도 한다’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결혼할 때는 상대에게 잘 보이려고 약간씩은 누구나 다 속입니다. 왜 화장을 하고 나가요? 그것도 속이는 겁니다. 왜 굽이 높은 신을 신어요? 그것도 속이는 겁니다. 옷은 왜 잘 입고 나가요? 그것도 속이는 겁니다. 왜 데이트할 때 돈을 빌려서라도 지갑에 돈을 넣고 나가요? 그것도 속이는 거예요. 좋게 말하면 예의를 차리는 것이고, 나쁘게 말하면 잘 보이려고 하는 거예요. 그렇게 남편이 잘 보이려고 하는 모습을 보고 질문자가 결혼한 겁니다. 그런데 결혼해서 세수하고 보니까 얼굴이 다르고, 신발 벗고 보니까 키가 작고, 옷을 벗고 보니까 몸매가 못한 거죠. 그것처럼 질문자도 깨 놓고 보니까 남편의 수입이 적다는 것을 알게 된 겁니다. 그래서 지금 갈등이 생긴 거예요.

남편은 완전히 사기를 친 게 아니라 잘 보이려고 약간씩 속인 겁니다. 그렇게 안 하면 결혼이 성립이 안 되었을 거예요. 사실 그대로도 괜찮은 남자라면 그 남자가 질문자를 쳐다보았겠어요? 질문자보다 나은 여자를 쳐다보았을 겁니다. 나를 쳐다보는 남자는 내 마음에 안 들고, 내가 쳐다보는 남자는 또 다른 여자를 쳐다보고 있거든요. 그래서 약간 구두의 굽을 높이고, 약간 화장을 하고, 약간 경력을 속여야 결혼이 성사됩니다. 지난 선거에서도 경력을 약간 속이는 것이 뉴스에 나왔잖아요.

물론 완전히 위조하면 범죄가 되겠죠. 그런데 우리는 다 살면서 약간씩은 자기를 과장합니다. 왜냐하면 욕심이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욕심을 버리고, 자기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고, 나를 좋아하는 상대와 결혼하면 아무 문제가 없어요. 그런데 내가 좋아하는 상대를 찾아서 결혼하려고 하니까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겁니다.

남편이 특별히 잘못된 남자는 아니에요. 욕심이 과해서 이런 일이 생긴 겁니다. 만약 질문자가 이혼을 해서 애기 하나 데리고 재혼한다면, 현재의 남편보다 더 좋은 남자를 구할 수 있을까요?”

“아니오.”

“가능은 하지만 확률이 매우 낮죠. 혼자 사는 길도 있는데 쉽지는 않습니다. 남편이 바람을 피웠다든지 특별한 하자가 있는 게 아니잖아요. 코로나로 인해 수입이 줄었고, 아내를 실망시키지 않으려고 대출이라도 받아서 수입이 있는 것처럼 해서 속인 겁니다. 나쁜 의도로 속인 게 아니라 질문자를 실망시키지 않으려 하다 보니 속인 거예요. 솔직히 깨 놓고 얘기하는 게 가장 좋았겠지만, 때로는 사람이 그렇게 되지 못할 때가 있어요. 그러니 지나간 걸 자꾸 문제 삼지 말고 남편에게 이렇게 말해주면 좋겠어요.

‘다음부터는 너무 나한테 잘 보이려 하지 말고, 어려운 게 있으면 솔직하게 드러내고 함께 풀어나가자. 지나간 건 더 이상 문제 삼지 않을게.’

부부가 같이 살면서 맨날 지나간 걸 문제 삼으면 피곤해서 어떻게 살겠어요?”

“네, 그런데 저는 사실 남편이 대출을 받았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화가 나지 않았어요. 그 이후에 죄책감이라는 핑계로 너무 나약하게 무너져 내린 남편의 모습이 너무 한심하더라고요. 남편은 지금 모든 걸 손 놓아버렸어요. 출근만 겨우 하고 있고, 집에서 잠만 자요. 잠이 엄청나게 늘었어요. 저는 24시간 아기랑 함께 있는 게 너무 행복하지만, 어쩌다 너무 힘든 하루에는 남편의 도움이 절실한데, 이때 남편이 미워져서 싸움이 커지더라고요. 평소에는 화내지 않으려고 스님 말씀 들으면서 마음을 다스리는데, 어쩌다 한 번씩 화가 폭발해버리는 것을 해결하고 싶어요.”

“남편이 실망해서 무너지니까 그 모습을 보고 본인도 무너진 거잖아요. 본인은 남편이 무너지니까 따라서 무너진 것이고, 남편은 자기 직장이 뜻대로 안 돼서 무너진 겁니다. 직장이 남편 생각대로 안 되었을 때 남편이 다른 방법을 찾는 게 좋나요, 무너지는 게 좋나요?”

“다른 방법을 찾는 게 좋아요.”

“질문자는 남편이 무너졌을 때 남편 따라서 무너지는 게 낫나요, 다른 방법을 찾는 게 낫나요?”

“다른 방법을 찾는 게 나아요.”

“질문자가 남편 따라 무너진 건 잘한 일이고 남편이 직장 때문에 무너진 건 잘못한 일이에요? 남편이 무너지니 따라서 무너지는 나를 보면서 오히려 이렇게 생각해야죠.

'아, 세상이 자기 원하는 대로 안 되니 이렇게 사람이 무너지는구나. 사람이라는 게 그렇게 대단한 존재가 아니구나. 우리 남편도 코로나로 직장이 자기 계획대로 안 되니 저렇게 무너져서 낙담해서 정신을 못 차리는구나. 그러니 이럴 때 나라도 격려를 좀 해줘야 되겠다.’

그리고 남편에게 이렇게 격려해주면 어떨까요?

‘자기 뜻대로 안 되니 무너진 건 이해가 되지만. 그래도 여보! 우리 힘을 내서 같이 이 난관을 극복합시다.’

질문자도 남편 때문에 무너지니까 이렇게 스님에게 물어서 격려를 받잖아요. 그래서 남편이 무너지더라도 나는 다시 일어나는 공부를 하듯이, 질문자가 남편에게 그런 역할을 해야죠. 결혼해서 아이까지 있는데, 서로 격려를 해주고 이끌어주고 기다려주고 이래야 부부 아닙니까. ‘내가 결혼을 잘못했네. 이럴 바에야 혼자 사는 게 낫겠다' 하는 건 이기심의 극한이잖아요.

장사하는 사람도 거래하다가 상대가 어려워서 돈을 못 갚으면, 기다려 준다든지 포기를 한다든지, 다시 일어서게 돈을 더 빌려준다든지 하잖아요. 하물며 부부 사이에 지금 어려움에 처해있는 상대에게 격려를 안 해 주고 더 짓밟는다면 도대체 왜 결혼을 했는지 모르겠어요. 이런 결혼이야말로 극도의 이기심이 낳은 결과 아닙니까? 사랑해서 결혼한 게 아니라는 반증이에요. 사람 하나 잘 잡아 결혼해서 평생 뜯어먹으려고 하는 심보입니다.

저도 수없이 즉문즉설을 해보지만 결혼은 이기심의 극치예요. 그래서 청년들이 ‘스님, 저희가 결혼하는데 축하해 주세요’ 하고 요청해도 저는 축하한다는 소리를 절대 안 합니다. 곧 있으면 둘이 싸우고 후회할 것이기 때문에 정말로 축하할 일인지 아닌지 지금은 알 수 없기 때문이에요. 적어도 십 년 정도 지난 뒤에 사는 모습을 보고 축하해 줄지는 모르겠지만요.

결혼은 사회적 협약입니다. 결혼식 할 때 '아무리 어려운 일이 있더라도 서로 사랑하겠느냐?' 하고 물었을 때 질문자가 ‘예’ 하고 대답했잖아요. 그래 놓고 왜 약속을 어겨요? 오히려 질문자는 지금 '네가 무너졌으니까' 하면서 상대 핑계를 대고 있습니다. '어떤 일이 있더라도' 하고 선서를 했잖아요. 상대가 무너지든, 상대가 바람피우든, 상대가 어떻게 하든, 상대가 이혼을 하자고 하면 몰라도 그렇지 않다면 나는 약속을 지킨다는 관점을 가져야 해요. 이건 헤어질만한 사유가 아닙니다.

그리고 아이 가진 엄마가 짜증을 내면 아이한테 굉장히 나쁜 영향을 줍니다. 그리고 남편은 나와 헤어지더라도 내 사랑하는 아이의 아빠잖아요. 내 사랑하는 아이의 아빠가 무너져서 폐인이 되어 있으면, 우리 아이한테 얼마나 나쁜 영향을 주겠어요? 그러니 설령 남편과 헤어지더라도 남편을 일으켜 세워놓고 헤어져야 합니다. 다른 여자를 구해서 둘이 붙여줘서 잘 살도록 살림을 내줘야 된다는 말이에요. 남편이 잘 살도록 도와주고 내 갈 길을 가야죠.

남편은 지금 병원에 가서 심리 치료를 받아야 할 상태인데, 만약 질문자가 남편보고 병원에 가보라고 하면 남편이 자기를 정신병자 취급한다고 오해할 수 있어요. 세상이 뜻대로 안 돼서 좌절했다는 건 정신적으로 보면 일종의 우울증 같은 병에 걸린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기 컨트롤이 안 되는 거예요. 그러니 우선 지금은 격려해주고 따뜻하게 대해주고 사랑을 듬뿍 주어야 합니다. 그런 뒤에 병원에 같이 가서 체크해보세요.

이혼을 하더라도 무너진 남편을 다시 일으켜 세워놓고 해야 해요. 사람이 약속을 했으면 지켜야죠. 길가는 사람도 쓰러지면 도와줘야 하는데 내 남편이 쓰러졌는데 그걸 외면하면 어떡해요? 넘어진 사람을 발로 밟고 그러면 안 돼요. 격려를 해준 다음 진정이 되면 병원에 가서 한번 진찰을 받도록 하세요. 우선 따뜻하게 격려해줘서 한 달 정도 지난 뒤에 남편이 일어나면 다행이고, 그래도 못 일어나면 ‘내가 아파서 그런데 병원에 같이 가자’ 하고 데리고 가서 ‘당신도 한번 검진을 받아봐’ 이런 식으로라도 해보는 게 필요해요. 세상이 뜻대로 안 될 때 정신력이 약한 사람은 완전히 좌절합니다. 정상적인 사람은 대부분 조금 실망했다가 다시 일어나거든요.

그런데 남편이 부담이 좀 있는 것 같아요. 남편은 자기보다 부인이 낫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어떻게든 부인을 만족시키려고 했는데, 그게 안 되니까 지쳐버린 거예요. 애쓰다가 포기해버린 거죠. '에라 모르겠다. 네가 떠나든지 말든지 내 능력은 이거밖에 안 된다' 하고 포기해버린 겁니다. 결혼 생활하면서 너무 무거운 짐을 지고 있어서 그래요.

‘나한테 너무 부담 갖지 마라. 결혼도 했고 아이도 있으니 서로 격려하면서 같이 살아가자.’

이렇게 말하고 남편을 일으켜 세워주는 게 필요한 것 같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여러분은 늘 이렇게 저를 뿌듯하게 만들어줘요. 즉문즉설을 해보면 ‘부부생활이 힘들다’, ‘애 때문에 고생한다’가 줄줄이 나오거든요. 그러면 저는 '내가 혼자 살길 잘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기분이 좋습니다. 약 오르지요? 약을 팍팍 올려야 여러분이 정신을 좀 차려요.

여러분도 행복하게 살아서 스님이 '나도 장가 한번 가볼 걸 그랬나?' 이렇게 부러움을 느끼도록 인생을 한번 살아봐요. 본인이 선택해놓고 왜 후회하면서 살아요? 결혼해서 살면서 왜 혼자 사는 사람을 부러워해요? 사람으로 태어나서 왜 새를 부러워하고, 다람쥐를 부러워해요? 다람쥐가 사람을 부러워해야죠. 혼자 사는 사람이 둘이 사는 사람을 부러워해야지, 둘이 살면서 혼자 사는 사람을 왜 부러워해요?

각자가 자신의 삶을 온전하게 살아야 합니다. 늙은이는 늙은 게 좋은 줄 알고, 젊은 사람은 젊은 게 좋은 줄 알고, 결혼한 사람은 결혼한 게 좋은 줄 알고, 애기가 있으면 애기가 있는 게 좋은 줄 알아야 해요. 그래야 자기 삶이 떳떳하고 당당해집니다. 왜 늘 남을 부러워하고 자기를 하찮게 여기나요? 그게 바로 본인을 괴롭히는 행위예요. 자기가 자기를 괴롭히는 건 어리석은 행위입니다.”

이 외에도 다음과 같은 질문이 있었습니다.

  • 저는 직장에서 근로자 관리 업무를 하고 있습니다. 처음에 근로자 처우 개선을 할 때는 마음이 괜찮았는데, 지금은 근로자들의 여러 가지 요구가 더해지면서 힘이 듭니다. 어떡하죠?
  • 저는 바람기가 많습니다. 연애하는 것이 좋습니다. 나를 사랑한다는 말이 늘 듣고 싶고 콩닥콩닥 하는 즐거움을 늘 따라갑니다. 이 업식을 고치고 싶습니다.
  • 남편은 저한테 ‘돈 일전도 못 벌어오는 주제에’ 하면서 제 자존감을 갉아먹는 말들을 서슴없이 내뱉습니다. 어떻게 해야 더 이상 남편한테 휘둘리지 않을까요?

대화를 다 마치고 나서 스님이 질문자들에게 한 줄 소감을 물어보았습니다. 무너져버린 남편에 대한 실망감을 토로한 질문자도 소감을 이야기했습니다.

“스님 말씀을 듣고 보니 남편이 자신이 처한 상황을 본인의 언어로 저에게 말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제가 어리석어서 그걸 이해하지 못했고, 스님의 말씀을 통해서야 남편이 무슨 말을 하고 싶었는지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서로의 말에 귀 기울여주고 힘이 되어주는 부부가 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스님의 말을 잘 이해한 질문자를 향해 스님이 웃으며 한마디 덧붙였습니다.

“잘하셨어요. 마음이 예쁘네요. 그렇게 해서 사는 데까지 살아봐요. 헤어지는 건 언제든지 할 수 있어요. 복잡하게 소송을 걸 필요도 없어요. ‘너 혼자 잘 살아라’ 하고 그냥 나가버리면 끝이에요. 그게 아니라 같이 살겠다고 한다면 서로 격려하고 재미있게 살아야죠.”

생방송을 마치고 나니 밤 9시가 훌쩍 넘었습니다. 오늘도 긴 하루였습니다.

내일은 천일결사 기도를 생방송하고 행복시민들을 위한 역사특강을 할 예정입니다.

전체댓글 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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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각

감사합니다 스님 부부생활이 참쉽지않지만 관점만 잘 잡으면 되겠구나 싶었습니다. 우리 아버지도 사업에 실패했을 때 집에만 계셨는데 아버지도 그 때 우울증일수도 았으셨갰구나.. 그 때 내가 아버지 등도 두드려주고 위로도 더 해줄걸 하는 생각이 들었네요 그땐 내가 어렸구나.. 아버지 많이 힘드셨겠다..는 마음이 느껴졌습니다

2022-06-20 17:13:15

김현

제 삶을 온전하게 받아들이고 당당하게 살아가겠습니다.

2022-06-16 22:24:03

김남희

감사합니다 오늘도 크게 배웠습니다

2022-06-15 08:4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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