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2.6.9 군법사 미팅, 정토불교대학 인간붓다 제4강
“욕망을 쫓아가지도 않고, 억압하지도 않고, 새로운 길은?”

안녕하세요. 오늘도 어제에 이어서 서울 정토회관에서 새벽 예불을 하며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계향 정향 혜향 해탈향 해탈지견향”

예불과 기도를 마치고 곧바로 평화재단으로 이동해 찾아온 손님들을 맞이했습니다.

오전 내내 손님들과 연이어 미팅을 한 후 점심에는 군법사님들과 식사를 함께 했습니다. 식사를 마친 후 차담을 나누었습니다.

군법사님들은 요즘 군대에서 포교를 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그 속에서 느끼는 보람은 무엇인지, 현장의 목소리를 많이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저희들이 군대 현장에서 포교를 해보면, 우선 불교에 대해 조금이라도 아는 군종병을 확보하기가 더욱더 어려워지고 있어요. 그래서 군대 가기 전에 군종병이 될 수 있는 교육이나 연수 프로그램들을 많이 개발하는 것이 필요한 실정이에요. 스님께서 도와주시면 조금이나마 기반을 닦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리고 군대 안에서 종교에 관계없이 스님이 국민들을 상대로 행복학교를 열어가는 방식으로 저변을 확대하는 방안도 마련해보면 좋겠어요. 요즘 군인들은 일요일에 종교행사에 참석하는 경우가 거의 없습니다. 왜냐하면 영화도 볼 수 있고, 핸드폰도 사용할 수 있고, 내무 생활이 많이 달라졌거든요.

요즘 병사들을 보면 굉장히 무기력한 친구들이 많아졌습니다. 지시를 내려도 안 하려고 하고, 일일이 점검을 해야 겨우 움직이는 친구도 있어요.”

스님도 공감하며 대답했습니다.

“군인들만 그런 게 아니라 요즘 청년들이 전반적으로 그렇습니다. 제가 청년들을 대상으로 즉문즉설을 해보면 우울증 증상이 있는 분들이 질문자의 절반 가까이 될 때도 있어요.” (웃음)

군법사님들은 이런 시기일수록 스님의 법문이 군인들에게 절실히 필요하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스님은 군법사님들의 이야기를 경청한 후 여러 가지 방안을 고민해 보겠다고 대답했습니다.

“네, 잘 알겠습니다. 저희도 군법사님들과 협력해서 행복학교를 시범 운영을 한 번 해보겠습니다. 행복학교 마음편은 자기 마음을 알아차리는 과정인데 한 달 프로그램이에요. 마음편을 마치면 관계편으로 넘어가는데, 관계편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어떤 문제가 발생하는지를 다루는 프로그램입니다. 관계편을 마치면 심화과정으로 넘어가고, 심화 과정을 마치면 행복시민이 되는 순서로 프로그램이 만들어져 있어요. 법문을 듣는 것보다 본인이 체험하고 그 체험을 나누는 것이 중심인 프로그램입니다.

그리고 정토회 내부에 군대 가기 전인 청년들을 모아서 연수 프로그램을 한 번 진행해 볼게요. 아무래도 불교를 맛보고 나서 군대에 가야 군종병을 할 수도 있잖아요.

또 군종병들의 사기를 북돋우고 신심을 가질 수 있게 다양한 수련과 교육 프로그램을 한 번 고민해 보겠습니다.”

“예전에 스님께서 ‘힘내라 청춘’이라는 포켓북을 만들어서 군대에 보급해 주셨는데, 책 속에 한지민 씨 사인이 들어 있었어요. 신병교육대에서 훈련병들의 반응이 굉장히 좋았습니다. 연예인들이 어떤 역할이라도 해주면 군인들이 정말 좋아할 것 같아요.” (웃음)


“청년들이 경주 남산 순례를 갈 때 군종병들도 같이 참여하는 방식도 괜찮을 것 같아요. 이런 일은 꼭 불교를 전한다는 차원을 넘어서서 군인들의 정신 건강을 위해서도 필요한 일이거든요.

청년들에게는 전통적인 불교 형식이 없을수록 더 전법하기가 좋아요. 그래서 저도 신앙의 대상으로서의 부처님보다는 위대한 스승으로서의 부처님에 대해 강의를 하고 있거든요. 부처님의 인격은 오히려 요즘 젊은 사람들에게 더 다가가는 게 많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그것을 전할 수 있는 방법을 제대로 못 찾아서 그렇죠.”

“네, 저희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아무튼 스님께서 많이 도와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군포교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약속한 두 시간이 금방 지나갔습니다. 스님은 책에 사인을 해서 군법사님들에게 선물하고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미팅을 마치고 오후 2시에 서울을 출발해 두북 수련원으로 향했습니다. 고속도로 위를 4시간 달려 저녁 6시에 두북 수련원에 도착했습니다.

해가 지고 정토불교대학 수업 준비를 한 후 저녁 8시에 방송실 카메라 앞에 자리했습니다. 오늘은 정토불교대학 수업 중 인간붓다 4번째 강의 시간입니다.

지난주에는 부처님의 출가와 고행을 공부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왕위를 버리고 출가하여 여러 스승을 찾아다니며 수행을 했습니다. 스승의 경지에 올랐지만 완전한 해탈이 아니었기에 가야 근교 전정각산에서 홀로 극심한 고행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깨달음을 얻지 못했습니다.

오늘은 부처님이 고행을 극복하고 마침내 깨달음을 얻는 과정에 대한 강의가 이어졌습니다.

“부처님께서는 가야 근교 고행림에서 정말 그 누구도 흉내 낼 수 없을 만큼 극도의 고행을 행하셨습니다. 하루도 아니고, 한 달도 아니고, 일 년도 아니고, 몇 년이 지나도록 계속 고행을 했습니다. 세상 누구도 흉내 내지 못할 정도로 고행을 했는데도 깨달음을 얻지 못했어요.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지금까지 살아온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았습니다.

이렇게 고행을 했는데도 왜 깨닫지 못할까

부처님은 태어나서 스물아홉 살까지는 욕망을 따라 살았습니다. 욕망을 따라 원하는 것은 뭐든지 이루는 쪽으로 살았습니다. 욕망을 따르는 삶의 극치가 바로 왕궁의 삶입니다. 부처님은 왕궁에서 원하는 것을 다 누릴 수 있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무척 부러워했어요. 그러나 정작 본인은 번뇌에 휩싸여 있었습니다. 그래서 욕망을 추구하는 길로는 진정한 자유와 행복에 이를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부처님은 누구보다도 자신이 원하는 것을 다 이루고 살았기 때문에 이 사실을 몸으로 체험할 수 있었어요. 가난하거나 원하는 것을 이루어보지 못한 사람들은 아무리 욕망을 버리려고 해도 아쉬움이 남기 마련입니다.

‘나중에 고통이 따른다고 해도 그건 그때 얘기이고, 일단 한 번은 해봤으면 좋겠다’

사람 마음이 보통 이렇죠. 여러분도 ‘부자가 한 번 되어 봤으면 좋겠다’, ‘결혼을 한 번 해봤으면 좋겠다’ 이렇게 얘기하잖아요. 다른 사람이 ‘해보니 별 거 아니다’라고 해도 ‘그건 네 생각이고, 나는 한 번 해보고 싶다’라고 하죠.

그런데 부처님은 원하는 것을 다 해봤어요. 그래서 그 길이 허무하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왕위를 미련 없이 버린 거예요. 그런데 우리는 왜 욕망을 못 버릴까요? 자기가 원하는 대로 다 이루어도 꼭 행복해지는 게 아니라는 것을 체험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아직도 자신이 원하는 것을 다 이루어보지도 못했고, 또 그것을 경험하기 전에 미리 깨닫지도 못했기 때문에 미련이 남는 거예요.

부처님은 그런 이치를 알고 왕궁을 나와 출가를 했습니다. 이후에는 반대로 욕망을 버리는 고행주의를 따랐습니다. 그 누구도 흉내내지 못할 정도로 고행을 해서 죽음 직전까지 이르렀습니다. 고행도 주위 수행자들이 부러워할 정도로 극심하게 했어요. ‘어떻게 저렇게까지 할 수 있냐’ 하고 감탄할 정도였어요. 그런데도 해탈에 이르지 못하자 욕망을 따라가는 것이 깨달음의 길이 아니었듯이 욕망을 억제하는 것 또한 깨달음의 길이 아니라는 것을 자각했습니다.

부처님은 한 번은 욕망을 따라서 끝까지 가봤고, 한 번은 욕망을 억제하는 쪽으로 끝까지 가봤습니다. 이렇게 양 극단을 직접 경험해보고 이 두 가지 길이 다 아니라는 것을 아셨어요. 출가하기 전에는 욕망을 따라가는 쪽으로 치우쳤고, 출가한 후에는 욕망을 억제하는 쪽으로 치우쳤던 거예요.

새로운 길, 중도(中道)

욕망을 따라가지도 않고, 욕망을 참지도 않는 제3의 길은 바로 ‘욕망과 다투지 않는 길’입니다. 욕망에 끌려가지도 않고, 욕망을 참지도 않는 거예요. 뭐든지 참으면 긴장이 됩니다. 긴장은 편안한 상태가 아니죠. 욕구가 일어나면 그냥 ‘욕구가 일어나는구나’ 하고 알아차리는 거예요. 욕구대로 하지도 않고, 반대로 참지도 않는 거예요. ‘하겠다’ 하거나 ‘안 하겠다’ 하는 어떤 의지를 다 놓아버린 거예요. 이렇게 욕망이 일어나면 그냥 ‘욕망이 일어나구나’ 하고 알아차리는 것을 ‘중도(中道)’라고 합니다. 이것이 제3의 길이예요.

부처님 당시에 욕망을 따라가는 길을 쾌락주의라고 불렀습니다. 이것은 정통 브라만들이 가는 길이었죠. 자기가 원하는 것을 신에게 빌어서 얻으려고 했습니다. 다른 길은 욕망을 억제하는 고행주의였습니다. 출가 사문들이 가는 길이었죠. 당시 인도에 사상계, 철학계, 수행계에 큰 두 파가 있었다면 하나는 쾌락주의이고, 하나는 고행주의였습니다.

부처님은 젊어서는 쾌락주의를 경험했고 출가해서는 고행주의를 경험해 보셨습니다. 그리고 그 길에서 최고의 스승이 도달했다는 경지까지 다 경험해 봤지만 그것이 완전한 해탈의 길이 아니었습니다. 완전한 자유, 완전한 행복의 경지는 아니었어요. 직접 시행착오를 경험해보고 ‘아, 이 길은 아니구나!’ 자각하시고 발견한 것이 치우치지 않는 중도의 길입니다. 욕망을 따라가지도 않고 욕망을 참지도 않고, 넘치지도 않고 모자라지도 않고, 이 쪽도 아니고 저 쪽도 아니고, 다만 알아차리는 새로운 길입니다. 이걸 빨리어로는 ‘사띠(Sati, सति)’라고 하고, 한문으로는 ‘념(念)’이라고 해요. 뚜렷한 알아차림 또는 마음챙김(mindfulness) 등으로 번역합니다. 그래서 ‘다만 바라보기만 하라’, ‘알아차리기만 하라’ 이렇게 여러 가지 표현을 합니다.

이 새로운 길은 편안한 가운데 긴장하거나 애쓰거나 나태하거나 해이해지거나 포기하거나 얻으려고 하지 않고, 일체 의도를 내려놓고 편안한 가운데 다만 욕구를 알아차리는 거예요. 마치 바닷가에서 파도가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을 편안히 바라보면, ‘파도가 일어나는구나’, ‘파도가 사라지는구나’ 이렇게 알아차릴 수 있는 것 과 같아요. 그래서 욕구를 따라가는 것도 아니고, 욕구를 억제하는 것도 아닙니다. 이 새로운 길, 중도를 발견하고 나니까 이를 악 다물고 각오하고 결심할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깨달음

부처님께서는 중도를 발견하고 다시 보리수 아래에 대결정심을 가지고 앉았습니다. 하루가 지나고 일주일이 지나고 2주가 지나고 3주, 5주, 6주가 지나고 7주가 되도록 계속 정진을 했습니다. 부처님은 깊은 선정에 들었고 마왕의 유혹으로 상징되는 세 가지 유혹을 극복한 후 새벽녘에 이르러 빛나는 별을 보고 마침내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깨달음을 얻자 모든 번뇌가 사라지고 두려움이 없어지고 모든 의혹이 사라졌습니다. 열두 살 때 농경제에서 시작된 질문과 모든 고뇌가 사라져 버렸어요. 마치 날이 밝자 어둠이 사라지는 것과 같았습니다. 지금 내가 겪고 있는 고통이 과거에 어떤 원인으로 인해서 일어났고, 지금 나의 행동이 미래에 어떤 결과로 돌아올지 훤히 보였습니다. 모든 번뇌가 소멸한 부처님께서는 이렇게 선언하셨어요.

‘나는 신과 인간의 모든 굴레로부터 벗어났다. 이제 어둠의 세계는 타파되었다. 내 이제 다시는 고통의 수레에 말려들지 않으리. 이것을 고뇌의 최후라 선언하며 이제 여래의 세계를 선포하노라.’

오늘은 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얻기까지의 과정을 살펴봤습니다. 다음 시간에는 부처님께서 성도하신 후에 어떤 행보를 보이셨는가에 대해 얘기해보겠습니다.”

여기까지 강의를 한 후 이번 주 수행연습 과제를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생방송 수업이 끝나자 학생들은 교실별로 화상회의 방에 모여 마음나누기를 이어갔습니다.

내일은 오전에 산아랫밭에 가서 액비와 유기농 퇴비를 뿌리고, 낮에는 원고 교정과 여러 업무들을 하고, 저녁에는 금요 즉문즉설 생방송을 할 예정입니다.

전체댓글 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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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유

부처님의 깨달음을 얻는 과정들 울컥합니다.
부처님도 위대하시지만 법륜스님은 제 위대한 스승이십니다.

꼭 만나뵙고 싶습니다. 건강하십시오

2022-06-16 08:30:32

송은숙

지금 일어나는 마음을 그렇구나 하고 다만 알아차렸을 뿐인데 부정적으로 흐르던 마음이 멈춤을 경험합니다. 감사합니다^^

2022-06-14 18:21:19

김학준

중도에 대해서 제대로 배웁니다. 감사합니다.

2022-06-13 19:4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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