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의 하루

2019.10.13. (오전) 경전반 특강
“부모님이 싸우는 모습을 보면 괴로워요”

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문경 정토수련원에서 새벽 6시부터 9시까지 3시간 동안 가을 경전반 수강생들을 위해 즉문즉설을 했습니다. 오후에는 서울 동국대학교에서 의료인을 위한 즉문즉설을 열었습니다.

문경 정토수련원에서는 어제부터 1박 2일 동안 경전반 특강 수련을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대 수련장에서 하룻밤을 잔 대중은 새벽 4시에 기상해 108배와 명상을 한 후 스님이 수련장에 들어오기를 기다렸습니다. 새벽 6시, 스님이 인사말을 건넸습니다.

새벽에 하는 법문이기 때문에 스님은 일부러 대중들의 졸음을 깨워주려고 활기찬 목소리로 법문을 시작했습니다. 스님은 ‘수행, 보시, 봉사하는 수행자가 되자’고 강조한 후 경전반 수업을 들으며 궁금했던 점에 대해 질문을 받았습니다.

오늘은 싸우는 부모님을 보면 괴롭다는 질문을 소개해드리겠습니다.

“금강경 강의를 듣다가 ‘모든 중생을 구제하는 마음을 내라’는 구절에 대한 스님의 설명을 듣고 나서 그 의미가 상대를 이해하는 과정에서 내 마음이 편해지는 것이라고 이해를 했습니다. 저는 그 의미를 저희 부모님에게 적용하는 것이 잘 안 됩니다. 아버지가 담낭암 판정을 받으셔서 앞으로 2년 내지 5년 정도 여생이 남으셨어요. 어머니도 건강이 안 좋은 상태입니다.

생계유지를 위해서 두 분이 붙어 있지만 늘 싸웁니다. 아버지가 가정 폭력이 심해서 어머니는 깡만 남은 상태예요. 아버지가 어머니를 많이 때리고 잘못을 많이 했지만, 본인이 남은 생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에 이제는 어머니에게 잘해 주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트러블이 생겨서 그저께 또다시 폭력이 있었습니다. 그 얘기를 듣고 나서 제 마음이 너무 아픕니다. 어릴 때 부모님이 싸우는 모습을 보고 가슴 아파했던 순간이 다시 떠오릅니다.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빨리 슬픔을 극복할 수 있나요?

그동안 아버지를 많이 원망하고 살았는데, 제가 어떻게 해야 아버지의 남은 여생 동안 효도를 하며 살 수 있을까요?”

“경전을 빙자해서 개인 상담을 하네요. 서두에 개인 상담은 하지 않는다고 얘기했는데도 결국 개인 고민을 묻고 있어요. 그래도 앞에 경전 구절을 담은 공로를 생각해서 대화를 나눠봅시다. (모두 웃음)

가을에 낙엽이 우수수 떨어지는 것을 보면 마음이 쓸쓸해진다는 이야기를 많이 하잖아요. 그런데 낙엽이 떨어지는데 왜 사람의 마음이 쓸쓸할까요? 이것은 가을 날씨나 낙엽의 문제일까요, 사람 마음의 문제일까요?”

“사람 마음의 문제입니다.”

“그렇다면 아버지와 어머니가 싸우는 모습을 보고 가슴이 아프다면 그것은 아버지와 어머니의 문제예요? 내 문제예요?”

“제 문제입니다.”

“그런데 왜 자꾸 ‘달이 동산에 떠서 눈물이 난다’, ‘낙엽을 밟으며 울었다’, ‘가을이라서 외롭다’, ‘봄이 되니까 애인이 그립다’ 이렇게 날씨를 핑계 댑니까. 그것은 자기 문제예요. 날씨는 날씨일 뿐이고, 슬픈 마음이 일어나면 내 마음을 봐야죠. 날씨와는 아무 관계가 없어요. 눈물이 나면 ‘내가 왜 눈물이 나지?’ 이렇게 살펴봐야지 동산에 달이 뜬 것과는 아무 관계가 없어요. 봄에 애인 생각이 나서 그리운 것은 날씨 탓이에요, 자기 마음 탓이에요?”

“자기 마음 탓입니다.”

“그러면 자기 마음을 살펴서 ‘어, 내가 왜 들뜨지?’ 이렇게 살펴야지 ‘봄이 되어서 그렇다’ 이런 얘기는 맞지 않아요.

어머니와 아버지는 지금까지 늘 싸워 오셨고, 그것이 그분들의 일상이었어요. 지금 한국 정치가 서로 싸우고 있어서 잠 못 드는 사람들이 있는데, 한국 정치가 하루 이틀 싸웠습니까. 내내 싸워 온 거잖아요. 어머니와 아버지가 싸우는 모습을 보고 괴로운 것은 질문자의 문제예요. 어머니와 아버지는 결혼하고 나서부터 지금까지 그냥 자기들 방식대로 일상적으로 그렇게 살아온 겁니다. 어떤 때는 좀 심하게 싸웠다가, 어떤 때는 좀 덜 심하게 싸웠다가 그런 거예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헤어지지 않고 같이 사는 것을 보면 헤어질 이유보다는 같이 살 이유가 더 많은 겁니다. 갈등이 일어날 때는 이혼한다 그래 놓고, 그럼에도 같이 사는 이유는 같이 사는 게 낫기 때문입니다. 같이 못 살겠다고 하는 말에 너무 끄달릴 필요가 없어요. 그럼에도 같이 사는 걸 보면 같이 사는 게 더 낫구나 하면 됩니다. 밥맛이 없다고 투정하면서도 밥을 먹는 것을 보면, 자기 입맛에 딱 맞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안 먹는 것보다는 먹는 게 낫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싸울 때 하는 말에 너무 신경 쓸 필요가 없어요.

아버지가 내일 죽든, 모레 죽든, 모든 사람은 언젠가 다 죽게 되어 있어요. 질문자가 걱정할 뿐이지 부모님과는 아무 상관이 없어요.”

“부모님이 헤어지지 않고 살아온 이유는 자식 때문이라고 말씀하세요.”

“자식 때문이라고 말을 할 뿐이죠. 실제로 자식 때문이었는지는 아무도 몰라요. 남편과 도저히 같이 못 살 것 같지만 밤에 남자는 필요한 경우도 있어요. 그럴 때 ‘서로 싸우면서 왜 같이 살아요?’라고 물어보면, ‘남자가 필요해서 삽니다’라고 말하기가 좀 곤란하잖아요. ‘아이 때문에 같이 삽니다’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죠. (모두 웃음)

어릴 때는 부모가 왜 싸우는지 도저히 이해가 안 됩니다. 왜 한 이불 밑에 자면서 서로 싸우는지 도대체 이해가 안 돼요. 그렇게 싸울 거면 같이 안 살든지, 한 이불 밑에 껴안고 살려면 싸우지 말든지, 둘 중에 하나여야 하는데 그게 아니니까 어릴 때는 도저히 이해가 안 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어른이 되고 나서 보니까 사람의 마음이 늘 한결같지가 않아요. 필요할 때는 같이 붙어서 자고, 성질이 날 때는 서로 싸우고, 그러고 나서 며칠 지나면 또 같이 붙어서 자고 그런단 말이에요. 질문자도 남편과 같이 살아보면 안 그래요?”

“저도 그러죠.”

“아이가 밉다고 해서 아이를 집에서 쫓아내 버립니까? 쫓아냈으면 다시 데리고 오지 말아야지, 데리고 왔으면 때리지 말아야지 또 악을 쓰고 야단을 치잖아요. 사람의 마음은 늘 바뀌는 게 정상입니다. 아버지도 자기 성질을 못 이겨서 악을 쓴 겁니다. 어머니도 자기 성질을 못 이겨서 악을 쓴 거예요. 그러다 보니 둘이 서로 싸우게 되는 것이고, 며칠 지나면 남자 여자가 서로를 필요로 하니까 또 한 이불 밑에서 자는 겁니다. 혼자 사는 것보다는 둘이 사는 게 나으니까 그래도 둘이 사는 겁니다. 어머니와 아버지가 서로 좋아하니까 질문자가 그 사이에서 태어났지 서로 안 좋아하는데 질문자가 어떻게 세상에 태어났겠습니까.

어릴 때는 이런 사람의 심리를 몰라서 상처도 입고 원망도 했지만, 어른이 되고 나서 보니 ‘아, 사람이 별거 아니구나. 이래서 싸우기도 하고, 저래서 좋아하기도 하고, 사람이라는 게 그렇구나. 숨 넘어갈 때까지 그렇게 살겠구나’ 이렇게 이해가 되잖아요. 서로 싸웠다고 하면 ‘오늘도 둘이 성질이 났구나’ 이렇게 생각하고, 서로 잘 지낸다고 하면 ‘오늘은 둘이 마음의 안정이 되었구나’ 이렇게 생각하면 돼요.

아버지가 이제 곧 돌아가시면 싸울 일도 없게 되잖아요. 질문자부터 싸우는 아버지를 보면 미워하고, 암 걸렸다는 아버지를 보면 슬퍼하고, 이중적인 행동을 하고 있잖아요.

남편과 갈등을 일으키다가 ‘아, 내 문제이구나’ 하고 시비를 멈추듯이 어머니와 아버지가 싸우는 모습을 봤을 때도 ‘아, 내가 또 경계에 휘둘렸구나’ 하고 제자리로 돌아오면 되죠. 나도 모르게 휘둘릴 수는 있어요. 그럴 때마다 ‘아, 내가 또 경계에 휘둘렸구나’ 하고 돌아오면 돼요.”

“제 마음의 문제라는 것은 잘 알겠습니다. 그런데 중생을 구제하는 것이 수행의 목표인데...”

“중생을 구제하는 것이 수행의 목표가 아니에요. 내 마음이 편안한 것이 수행의 목표예요. 무슨 자기 수준에 중생 구제를 말해요? 자기부터 먼저 잘 사세요. (모두 웃음)

“금강경에는 중생을 구제해야 내 마음이 편안해진다고 하잖아요.”

“중생을 구제하면 내 마음이 편안해진다고 생각하지 말고, 내 마음이 편안해 질려면 중생을 구제하는 마음을 내야 한다 이렇게 생각하셔야 해요. 아버지가 돌아가시든지, 어머니가 돌아가시든지, 아이가 시험에 떨어지든지, 그건 그들의 문제예요. 제일 중요한 것은 내 마음이 편안한 것입니다. 우리는 남을 외면하면 내 마음이 편안해질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남을 외면하면 오히려 내 마음이 편안해지지 않는다는 겁니다. 남을 이해할 때 오히려 내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우리는 마음 작용에 대해서 거꾸로 알고 있어요.

아이가 공부 안 하고 노는 걸 보고 성질이 날 때 ‘너도 공부하기가 참 싫겠다. 나도 그때는 그랬다’ 이렇게 아이를 이해하면 누구 마음이 편안해질까요?”

“내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남편이 술 먹고 늦게 들어왔을 때 ‘저 놈의 인간이 또 술 쳐 먹고 들어왔다. 왜 술을 먹니?’ 이렇게 생각하면 화가 나는데, ‘아이고, 요즘 남편이 장사가 안 되니까 화가 나서 술 한 잔 먹고 기분을 푸시나 보다’ 이렇게 이해하면 내 마음이 편안해진다 이 말이에요.

어머니와 아버지가 싸우는 것을 봤을 때 ‘암 진단까지 받아놓고 왜 저렇게 싸우고 난리냐’ 이렇게 받아들이면 내 가슴이 답답해지지만, ‘아이고, 아버지는 몸이 아프시니까 짜증이 더 나겠구나’ 이렇게 이해하면 내 마음이 편안해져요. 질문자가 못 봐서 그렇지 어머니도 남편이 곧 죽는다고 하니까 남편에게 잘해주고 싶은 생각이 있어요. 그런 마음이 있는데, 남편이 옛날에 하던 그 말버릇과 행동을 그대로 하니까 자기도 모르게 성질이 팍 나는 겁니다.

아버지도 이제 죽을 때가 다 되어가니까 마누라에게 그동안 잘못했다고 반성은 하지만 막상 마누리가 하는 꼬락서니를 보면 주먹이 날아가는 거예요. 옛날에는 싸우기만 했는데, 지금은 반성해가면서 서로 싸우는 거예요. 아직도 싸운다는 측면에서만 보면 옛날과 똑같아 보이는데, 잘 관찰해보면 옛날보다 싸우는 횟수가 적어지고, 그 강도가 약해진 거예요. 그렇지만 한꺼번에 개선되지는 않잖아요. 그러니 어머니와 아버지가 싸우는 모습을 보면 이렇게 생각해야 해요.

‘그래도 옛날보다는 싸우는 횟수가 많이 줄었다. 강도가 많이 약해졌다. 반성하는 속도가 좀 더 빨라졌다.’

환자를 보고 아직도 몸이 아프지만 차도가 점점 좋아지고 있다고 하듯이 생각하면 아무런 문제가 아니에요. 이것이 바로 금강경에 나오는 ‘중생을 구제한다’, 즉 상대를 이해한다는 것에 해당되는 내용입니다. 중생을 구제하겠다는 마음을 내면 보살이 아니라고 그랬잖아요. 첫째, 남을 위해서 내가 어떻게 하라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이 편안하려면 상대를 어떻게 봐야 하느냐’ 하는 겁니다. 상대를 위하는 마음을 내면 내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이것은 나를 위한 행위이기 때문에 ‘내가 너를 위해서 했다’라는 생각을 할 필요가 없어요. ‘내가 너를 위해서 했다’라는 마음을 내면 다시 괴로워집니다.”

“상대가 죽든 말든 내 마음이 편안한 것이 수행이라고 하셨는데, 스님께서는 북한 아이들이 굶어 죽어 가고, 사람들이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고, 그 사람들을 살리려고 이 많은 일들을 하셨지 않습니까. 그래서 저도 많은 중생은 아니더라도 이제는 내 마음을 편안하게 해서...”

“질문자가 자기 마음을 편안하게 해서 남편도 돌보고, 자식도 돌보고, 부모도 돌보는 것이라면, 제가 뭐라고 하겠어요? 그런데 질문자는 ‘아버지 때문에 괴롭다’, ‘어머니 때문에 괴롭다’ 이렇게 말하니까 제가 드리는 말씀이에요. 제가 만약 ‘북한동포 때문에 괴로워 죽겠다’라고 하면 ‘북한동포가 죽는데 네가 왜 괴롭니?’ 이렇게 물어야죠. 낙엽 떨어지는 모습을 봤는데 왜 슬픕니까, 저한테도 이렇게 물어야죠.”

“스님도 북한동포가 굶어 죽어 간다고 했을 때 마음이 아파서 단식을 하셨잖아요.”

“제가 단식하면서 괴롭다고 하던가요?”

“북한 동포가 굶어 죽어가고 있는데, 도와줄 수가 없어 마음이 아파서 단식을 하셨다고 알고 있어요. 저는 마음이 아파서 부모님을 돕고 싶습니다.”

“그러면 부모님을 도우면 되잖아요. 저한테 물을 게 뭐 있어요?"

“저는 방법을 알 수 없어서 스님께 물어보는 겁니다.”

“사람이 죽는 걸 보면 슬픔이 일어날 수가 있어요. 슬픔이 일어나지만 그걸 붙잡고 하소연을 하지는 않아야 합니다. 나도 모르게 잠깐 경계에 끄달리지만, 금방 고개를 돌려서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뭐지?’ 이렇게 돌아와야 해요. 제가 우는 것이 북한 동포를 살리는 데 도움이 된다면 울고 다니겠죠. 그래서 저도 북한에 식량이 없으니 돕자고 했을 때 아무도 돕지 않으니까 단식을 했던 거예요. 제가 단식하는 모습을 보고 북한동포 돕기에 참여한 사람들도 많았어요. 북한동포가 굶어 죽는다는 건 눈에 안 보이니까 스님이 단식을 해서 삐쩍 마른 걸 보고 돈을 낸 사람들이 많았어요. 스님이 막 울면서 얘기하는 모습을 보고 돈을 내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그냥 얘기할 때는 아무도 돈을 내지 않았는데 말이죠. 제가 북한 식량난에 대해 브리핑을 하면서 막 우니까 미국 군인이 돈을 내기도 했었어요. 저는 괴롭다고 하소연을 한 게 아니라 굶주리는 북한동포를 돕자고 호소를 한 거예요.

질문자도 부모님을 돕고 싶으면, 밥을 사주든지, 청소를 해주든지,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하면 돼요. 미국과 북한이 싸우지 않도록 제가 할 수 있는 역할을 할 뿐이에요. 미국 가서도 관계자를 만나서 이야기해 보고, 중국 가서도 관계자와 이야기해 보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계속 해나가지 술 먹고 울고 있지는 않아요. 그래서 질문자도 괴로워할 일이 없어요.”

“제가 어릴 때 기억 때문에 슬픔이 올라온다는 사실을 확실하게 알았습니다. 제 슬픔을 잘 다스려서 슬픔을 내려놓겠습니다.”

“다스린다는 말을 쓰지 마세요. 내려놓기는 뭘 내려놓아요?”(모두 웃음)

“그럼 어떻게 해야 해요? 알아차리고 연습하겠습니다.” (모두 박수)

“다스린다, 컨트롤한다, 내려놓는다, 그런 말은 어디서 배워서 자꾸 쓰는 거예요? 본래 슬플 일이 없어요. 내가 슬퍼하는 것이죠. 본래 슬퍼할 일이 없는 줄을 알면 슬픔이 저절로 사라져요. 그걸 언어로 표현하려니까 ‘내려놓는다’라는 말을 쓰는 것이지 내려놓을 게 없어요. 그런데 ‘안 내려놓아집니다’ 그러면 옛날 선사들은 ‘그럼 계속 들고 있어라’ 그랬습니다. ‘마음을 편안하게 하고 싶습니다’라고 하니까 육조 혜능 대사가 뭐라고 했습니까?

‘너의 마음이 어떤데?’
‘제 마음이 심히 불안합니다.’
‘그러면 그 불안한 마음을 이리 내놔라. 내가 편안하게 해 줄게.’

불안한 마음을 내어놓으려면 자기 마음을 봐야 되잖아요. 책을 봐야 합니까? 인도에 갔다 와야 합니까? 자기 마음을 딱 들여다보니까 내어놓을 게 없었어요.

‘내어놓을 게 없습니다.’
‘내 이미 너의 마음을 편안하게 했도다.’

내어놓을 게 없다고 할 때 이미 편안해진 겁니다. 내어놓을 게 없다는 말은 자기 마음을 관찰했다는 뜻이에요. 그것처럼 질문자가 지금 미쳐서 난리를 피우는 것이지 본래 괴로워할 일은 없다는 거예요. 어머니와 아버지가 싸우는 모습을 봐도 이웃 사람들은 아무도 신경을 안 쓰잖아요. ‘영감과 할머니가 또 싸우네’ 이러고 말아요. 내 어머니, 내 아버지라는 생각에 집착하니까 괴로운 겁니다. 온 세상의 영감과 할머니가 서로 싸우면서 살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헤어지지 않고 같이 사는 이유는 좋은 점이 더 많기 때문이에요. 그러나 싸우고 나서는 다 안 좋다고 말해요.

사람의 마음은 항상 촉새 물레방구 뒷 궁둥이 흔들듯이 시뚝빼뚝 하는 겁니다. 물가에서 촉새가 뒷 궁디를 요렇게 저렇게 흔드는 것 보셨어요?”

“네.”

“그걸 ‘촉새 물레방구 뒷 궁디 흔든다’라고 해요. (모두 웃음) 변덕이 죽 끓듯이 할 때 그 말을 쓰는 거예요. 마음이 요랬다 저랬다 정신을 못 차리는 사람을 보고 시골에서는 ‘아이고, 저것이 촉새 물레방구 뒷 궁디 흔들 듯이 저렇게 마음이 왔다 갔다 한다’라고 해요. 점잖게 말하면 변덕이 죽 끓듯 하는 거죠. 질문자의 마음이 지금 시뚝빼뚝 하는 거예요. 온 세상 사람이 다 그래요. 스님도 그래요. 그런데 원래 마음의 특성이 그런 줄을 알면 시뚝빼뚝 하는 마음을 가라앉힐 수 있어요.

‘마음이 이번엔 이렇게 가는구나, 저렇게 가는구나.’

마음을 가만히 지켜보면 돼요. 그러면 결과적으로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장례를 치러드리면 돼요. 어머니가 혼자 사시게 되면 전보다 더 자주 전화를 해드리면 됩니다. 그래도 어머니 입장에서는 싸우는 아버지라도 있는 게 나아요. 싸울 때는 싫지만, 죽고 나면 허전합니다. 비록 자주 싸우긴 하지만 서로에게 필요한 존재인 겁니다.

그러니 너무 걱정 안 해도 돼요. 죽고 나면 저절로 혼자서 살게 돼요. 그래도 지금은 살아있으니까 죽고 난 뒤보다 나은 거예요. 부모님이 안 싸웠으면 좋겠다는 건 자식의 바람이에요. 정치인들도 안 싸웠으면 좋겠고, 남북 간, 북미 간에도 안 싸웠으면 좋겠죠. 그런데 세상은 싸우잖아요. 그렇다고 지금 우리가 못 사나요? 세상은 우리의 마음대로 되는 게 있고, 안 되는 게 있어요. 원하는 대로 되면 좋겠다고 바란다면 그렇게 될 수 있게 노력을 해야죠.”

“잘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모두 박수)

이 외에도 다음과 같은 질문이 있었습니다.

  • 금강경 수업에서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에 대해 배웠습니다. 아상을 내려놓으면 나머지 상도 생길 수 없을 것 같은데, 아상을 내려놓아도 다른 상이 남아있는 건가요?
  • 조국 장관 임명을 두고 나라가 시끄럽습니다. 아상, 인상을 짓지 말라고 했지만, 더 좋은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끼리끼리 뭉칠 수밖에 없지 않나요?
  • 평생을 공부해도 금강경 하나도 다 배우지 못할 것 같은데, 과연 출가를 안 하고 깨달음을 얻을 수 있을까요?
  • 불교대학에서 중생의 요구에 수순 하는 삶에 대해 배웠습니다. 이혼한 아내가 양육권을 달라고 하는데, 전처의 요구에 수순 해야 할까요?
  • 부처님이 살아계실 당시 인도에 문자가 있었나요? 문자가 있었다면 경전을 기록해서 부처님에게 확인을 받아 놓지 왜 사후에 경전을 썼나요?
  • 예수님이 33살 이후 인도에 와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았다는 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 마음이란 무엇인가요? 능엄경을 읽어도 잘 모르겠는데 스님께서 설명해주세요.
  • 직장에서 인간관계 문제로 괴로워요.
  • 보왕삼매론에 근심과 걱정으로 세상을 살아가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수행은 근심과 걱정이 없는 상태로 나아가는 것인데 굳이 근심과 걱정을 달고 살아가야 하나요?

어느덧 9시가 가까워지고 있었습니다. 스님은 8번째 질문자를 마지막으로 법문을 마쳤습니다. 대중은 열정적으로 강연을 해준 스님에게 박수갈채로 감사한 마음을 전했습니다.

문경 정토수련원을 출발한 스님은 곧바로 서울로 향했습니다. 오후 4시부터는 동국대학교 중강당에서 의료인을 위한 즉문즉설이 열렸습니다. 다음 이야기로 계속 이어집니다.

전체댓글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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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규태

스님께 감사드리며 참가자분들께도 감사드립니다!!!^_^

2019-11-25 15:40:20

법승

감사합니다_()_

2019-10-18 14:48:02

함미

문경 경전반특강수련 6시 스님강연 저도 거기 있었어요‥ 즉문즉설에 질 문자와스님의 법문에 시대적인 국가관이 정리되었어요 이시대를 살아가면서 우리가 지켜야할 몸가짐도 배웟습니다ㆍ 스님 감사합니다ㆍ

2019-10-16 10:2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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