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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오전 10시 30분에 원주 정토법당에서 원주 시민을 위한 즉문즉설 강연을 한 후 저녁 7시에는 서울 송파구 구민들을 위해 즉문즉설 강연을 했습니다. 먼저 원주 즉문즉설 강연 소식부터 전해드리겠습니다.
어제 문경 정토수련원에 하루밤 주무신 스님은 새벽 4시에 일어나 예불과 기도를 한 후 아침 식사 후 8시에 즉문즉설 강연이 열리는 원주로 향했습니다.
늘 그렇듯 차안에서 단잠을 주무시며 연일 계속된 강행군으로 인한 피로를 조금이라도 풀었습니다.
▲ 차 안에서 단잠을 주무시는 스님
원주에 조금 일찍 도착했지만 대기할 장소가 없어 차 안에서 원고 교정 업무를 보았습니다.
10시 30분이 되어 오늘 강연이 열리는 원주 정토법당으로 올라갔습니다. 강연을 주관한 원주정토회에서는 강연 장소를 대관하기 위해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고 합니다. 봄철 메르스의 여파로 많은 행사들이 가을로 연기되면서 강연 장소 대관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강연을 취소하려고 했으나 원주정토회에서는 원주 정토법당이 최근에 개원을 했기 때문에 스님이 꼭 한번 방문해 주셨으면 하는 간곡한 요청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부득이하게 원주 정토법당에서 강연이 열리게 되었습니다.
▲ 원주 정토법당
법당을 강연 장소로 하다 보니 준비과정에도 많은 신경이 쓰였습니다. 방문한 청중들의 신발관리를 어떻게 해야 할지, 일반 시민들을 의자가 아닌 바닥에 2시간 이상 앉아 있게 해도 ?찮을지, 출입문이 하나인데 끝난 후 밀리지 않고 나갈 수 있을지, 책 사인회 동선을 어떻게 해야할지, 여러 어려움이 있었지만 봉사자들의 철저한 준비 덕분에 무사히 강연을 치룰 수 있었습니다.
▲ 신발 넣을 공간이 부족해 임시로 마련한 신발장
여러 우여곡절에도 불구하고 오늘 원주 정토법당에는 스님의 법문을 듣고자 270여명의 원주 시민들이 모였습니다. 스님이 강당 안으로 걸어 나오자 모두들 환한 웃음과 박수로 스님을 맞이했습니다.
▲ 원주 정토법당 강당을 가득 메운 원주 시민들
공공 장소가 아닌 법당에서의 강연이기 때문에 지금까지의 즉문즉설 강연과는 달리 삼귀의, 반야심경 봉독, 입정을 마친 후 강연이 시작되었습니다.
스님은 즉문즉설을 시작하기 전 법당에서 강연이 열리게 된 이유를 짧게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조금 불편을 감수해 줄 것을 당부하며 긴장한 청중들의 마음을 열어주기 위해 즉문즉설의 취지를 평소와는 달리 아주 재미있게 설명해 주었습니다. 특히 스님이 어렸을 적에 교회와 절에 갔을 때 들었던 의문에 대한 이야기는 종교의 본질이 무엇인지 파악하게 해줌과 동시에 절로 웃음을 터뜨려 주었습니다.
“제가 초등학교 때 교회를 다녔는데 크리스마스를 맞아 예수님 탄생에 대한 연극을 할 때면 제가 동방박사 역할을 늘 했어요. 찬송가 중에 ‘동방박사 세 사람, 귀한 예물 가지고’ 이렇게 시작하는 게 있잖아요. 그렇게 동방박사를 했는데, 어릴 때 했던 역할이 중요한 거 같아요. 제가 아직도 동방박사거든요. 그래서 크리스마스만 되면 교회하고 성당에 가느라 초파일 때보다 더 바빠요. 초파일은 우리 절에서만 지내면 되는데, 크리스마스 때는 교회도 가고 성당도 가니까요. 개중 한 성당에서는 미사는 신부님이 지내고 강론은 제가 합니다. 그러니까 제가 영원한 동방박사가 됐어요. (대중 웃음)
그런데 교회에 다니면서 하도 궁금한 게 있어서 몇 번 물어봤는데 오히려 야단을 맞고는 교회 다니던 걸 그만뒀어요. 예수님의 탄생을 설명할 때 ‘남자 없이 여자 혼자 낳았다’ 그러잖아요. 그런데 또 ‘성령으로 잉태했다’고 해요. 그래서 ‘진짜 남자 없이 애가 생길 수 있느냐?’고 제가 궁금해서 몇 번씩 물었어요. 제가 다니던 교회가 조금 개방된 교회였으면 괜찮았을 텐데, 굉장히 보수적인 곳이어서 저를 불신자라고 낙인찍고 ‘불신자는 지옥 간다’며 겁을 줬어요. 나는 단지 궁금해서 물었는데 지옥 간다니까 그게 좀 이치에 합당치가 않았어요.
그러다 중학교 때는 친구 따라 절에 갔는데, 거긴 또 ‘부처님이 나자마자 서서 한 손은 하늘로, 한 손은 땅을 향하고 사자처럼 외쳤다’라고 해요. 동네에서 ‘애 낳았는데 애가 태어나자마자 섰다’는 이야기는 못 들어봤거든요. 그래서 그걸 자꾸 물었더니 스님이 대답을 못 하고 ‘야, 그러니까 부처지’ 그러는 거예요. ‘날 때부터 그렇게 탁 설 정도니까 부처지, 너처럼 엎드려 울면서 나면 부처라고 하겠냐?’ 이런 투였어요. 그래서 제가 그랬어요. ‘아, 그럼 우린 수행할 필요가 없겠네요. 날 때 이미 딱 선 사람만 부처가 되고 못 선 사람은 부처가 못 된다는 거잖아요. 누구나 공부하면 부처가 된다고 그랬는데, 그럼 처음부터 우리는 부처가 못 되는 존재 아니에요? 앞뒤가 안 맞잖아요.’ 그러니까 그 스님이 제 질문에 대답을 못 했어요. (청중 웃음)
궁금해서 물어보는 건 괜찮아요. 물어보는 걸 갖고 비난이라고 생각할 필요는 없잖아요. 세상 살면서 궁금한 거 많잖아요. 그런데 이런 데서 질문하라 그러면 질문을 잘 못해요. 왜 그럴까요? 질문을 하려면 굉장히 고상한 걸 질문하고 싶어 하거든요. 학교 다닐 때도 선생님한테 질문할 때면 진짜 자기가 모르는 것이 아니라 선생님이 모를 것 같은 걸 어디서 찾아가지고 질문하잖아요. 여기서는 그렇게 남을 애먹이기 위한 질문이 아니라 자기가 궁금한 것, 자기가 괴로운 것, 자기가 힘든 것, 즉 자기 이야기를 해야 돼요. 아무리 빛깔이 좋아도 그림의 떡은 소용이 없어요. 오늘은 주제가 정해져 있는 게 아니니까 어떤 이야기든 해도 좋지만, 대신 자기 이야기를 해야 합니다. ‘책에 보니까 뭐라고 써놨더라’, ‘어떤 스님이 뭐라 그러더라’ 이렇게 남의 이야기를 하지 말고요. 어떤 분은 저에게 찾아와서 이렇게 물었어요.
‘스님, 어떤 스님이 우리 애를 보더니 단명한다고 방비를 하라고 그래요.’
‘그러면 하면 돼죠.’
‘그런데, 그 돈이 너무 비싸요.’
‘돈이 아까우면 안 하면 되죠.’
‘그런데 안 하면 애가 일찍 죽는데요.’
‘그럼 해야죠.’
이렇게 그 스님 말이 진짜냐고 묻는 거예요. 그래서 ‘그걸 나한테 물으면 어떡합니까? 말한 스님한테 가서 꼬치꼬치 물어보세요. 나는 그런 말 안 했잖아요.’ 이러고 웃고 말았어요. 여기서는 ‘우리 이야기, 나의 이야기, 지금 이야기’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게 좋아요. 여기에서는 친구가 친구에게 이야기하듯이 편안하게 이야기하는 자리입니다.”
편안하게 이야기하라는 스님의 말씀에 모두들 마음이 활짝 열렸는지 곳곳에서 손을 들고 스님에게 질문을 청했습니다.
모두 5명이 질문을 하였습니다. 30대 여성 분은 폐암으로 투병 중인 어머니와 함께 사는 새아버지와의 불편한 관계를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지 물었고, 40대 남자 분은 서점을 운영하고 있는데 앞으로 서점 사업의 전망과 본인이 쓴 책과 강연을 많은 이들에게 알릴 수 있는 방법을 물었습니다. 세 번째 질문자는 중국 여성과 결혼하여 아이가 있는데, 아이의 정체성 확립을 위해 어떤 교육을 하면 좋을지 물었고, 네 번째 질문자는 남자 친구와에게 이성의 호감보다는 친구 느낌이 더 많이 드는데 더 좋아할 수 있을지 확신이 안 선다며 서로를 위해 어떻게 하는 것이 현명한 방법인지 물었습니다. 마지막 질문자는 스님의 열광적 팬이라며 정말 행복해하는 여성이었는데, 감정 기복이 심한 편이지만 사회적 약자나 불우한 이웃을 돕는 일을 하고 싶은데 가능할지 물었습니다.
스님의 답변을 듣고 환하게 얼굴이 바뀌는 질문자들의 얼굴을 보며 2시간 30여 분의 시간이 금방 지나갔습니다.
오늘은 그 중에서 새 아버지와의 불편한 관계를 어떻게 극복할지 물었던 내용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합니다. 질문자는 감정이 많이 쌓였는지 울먹이며 질문을 했습니다.
“친정 엄마가 폐암 수술 후 항암치료와 방사선 치료를 받고 계십니다. 제가 간병은 열심히 해드리고 있는데, 새 아버지와의 갈등 때문에 마음이 힘듭니다. 엄마가 2년 전에 재혼을 하셨어요. 새 아버지가 아버지가 되신지 얼마 안 되셨으니까 아직은 시간이 필요한데, 처음부터 너무 아버지 대접을 받고 싶어 하고, 저희 자녀들에게 함부로 대할 때가 많아서 거리를 두던 차에 엄마가 병에 걸리신 거예요. 엄마 치료에 대해서 의논할 때 엄마가 저에게 많이 의지하시는 편이라 제가 많이 관여하니까 새 아버지가 화를 내셔요. 본인이 나서서 하고 싶으신 것 같아요. 제가 중학교 때 엄마가 이미 한번 재혼하셔서 한 10년 사시다가 잘 안되셨는데, 그때 제가 겪었던 일들과 이번 일이 겹쳐지면서 제 안에서 화가 많이 올라와서 마음이 잘 다스려지지 않습니다. 엄마가 이대로 돌아가실까봐 무섭기도 하고, 엄마와 아버지에 대한 분노 때문에 힘들어서 스님께 여쭤보려고 나왔습니다.”
“하나씩 따져봅시다. 새 아버지 문제는 놔두고, 엄마에 대해서 왜 분노가 생겨요?”
“저도 아이 둘을 낳아서 키우고 있어요. 제가 만약 재혼을 했는데 남편이 그런다며 제가 막 달려들 것 같거든요. 그런데 엄마는 저희가 항상 새 아버지께 맞추기를 바라셨어요. 그래서 ‘왜 우리 엄마는 여자로 살고 싶을까. 우리 엄마로 살았으면 좋겠는데’ 그런 원망의 마음이 자꾸 들어요.”
“어릴 때 그런 생각을 했다면 이해가 되는데, 지금 나이를 먹고 아이를 둘이나 키우고 있잖아요. 지금 질문자에게 남편이 없다면 질문자는 엄마로만 살까요?”
“아니오.”
“예. 어릴 때는 여자가 뭔지를 잘 몰라서 엄마를 원망했다면 그건 이해가 돼요. 질문자가 이제 나이 들어서 엄마가 되어보니 첫째는 어린 아이들 데리고 혼자서 살기가 어렵고, 두 번째는 나도 한 여자로서 남자랑 함께 살기를 원하니까 ‘그래서 재혼을 해서 사는 거구나’ 이렇게 이해가 되잖아요. 어릴 때는 ‘엄마가 우리 엄마로서만 살았으면 좋겠다’ 했더라도 질문자가 나이 들어서 엄마가 이해되면 원망을 좀 놓아야지요. ‘아, 엄마, 미안해요. 그땐 내가 어려가지고 엄마를 원망했는데, 이제 내가 커보니까 엄마 마음과 엄마 삶이 이해됩니다’ 이러면서 오히려 자기가 엄마에게 참회를 해야 될 문제이지요.”
“그런 생각을 안 한 건 아니에요. 저도 결혼해서 살아보니까 남편이 한 번 만져주면 좋고, 같이 사는 게 좋은 건 알죠. 그런데 성인이 된 지금까지도 엄마가 자꾸 저에게 의지하시니까 새 아버지랑 저랑 갈등이 생기는 것 같아요.”
“새 아버지하고 질문자 사이에 갈등 생길 게 뭐 있어요? 그리고 새 아버지, 헌 아버지가 어딨어요? 엄마하고 살면 그냥 아버지예요. 내가 자꾸 ‘새 아버지’라고 하니까 갈등이 생기는 거예요. 아버지를 위해서가 아니라 엄마를 위해서 아버지 대우를 해드려야 해요. 질문자도 재혼해 산다면 아이들이 남편을 존중해 주기를 원하지 않겠어요? 그러니까 엄마 입장에서 엄마의 남편을 존중해 줘야 합니다. 내 친아버지가 아니라도 엄마의 남편을 존중해 줘야 해요. 엄마의 남편은 자기도 존중받고 싶은 거고, 엄마도 자기 남편을 자녀들이 존중해 줬으면 하는 거예요.
질문자는 물론 좀 서먹서먹하겠죠. 그런데 ‘아버지’라는 것을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마세요. 엄마의 남편이 곧 아버지입니다. 나하고 인연 짓지 말고, 엄마의 남편으로서 존중해 주는 자세를 가지면 됩니다. 그런데 질문자는 자꾸 ‘나’만 생각해요. 질문자는 엄마의 딸이자 아이의 엄마이고 또 남편의 아내입니다. 그 셋 모두가 질문자의 존재예요. 엄마 입장에서 보면 이분은 나의 남편이고, 질문자는 나의 딸이에요. 그 둘 사이에 갈등이 생기면 엄마가 얼마나 힘들겠어요?
질문자 입장에서는 ‘내 엄마다. 당신이 무슨 상관이냐?’ 이렇게 생각하지만 엄마 입장에서는 또 자기 남편인 거예요. 하루를 만났든 30년을 살았든 자기 남편이에요. 아들이 결혼해서 3~4년 되면 시어머니가 며느리를 별로 중요하게 대접해주지 않아요. 시집온 지 몇 년 안 됐으니까 기분 나쁘면 ‘싫으면 딴 사람이랑 가서 살아라’ 이렇게 말이 나가는데 그게 옳진 않잖아요. 그러니 그걸 해수로 계산하지 말고 질문자가 어머니의 남편을 존중해줘야 합니다.
학교에 가면 아이 가르치는 사람더러 자기보다 나이가 어리다고 ‘아무개야’ 이렇게 안 부르잖아요. 우리 아이를 가르치는 선생님이니까 아이를 위해서 그 사람을 ‘선생님’이라고 부르잖아요. 나이로 치면 내 아들딸 뻘이라도 착실하게 우리 아이를 가르쳐주는 사람이니까 ‘선생님’이라고 깍듯이 인사하듯이, 내 어머니의 남편이니까 ‘아버지’라고 깍듯이 존중해 줘야 합니다. 그러면 어머니가 얼마나 마음이 편하시겠어요?
그리고 어머니는 남자 없이는 못 사는데 질문자가 ‘남자를 선택하든지 나를 선택하든지 하세요. 아예 새 아버지가 책임을 지든지, 아니면 새 아버지 떼버리고 아예 나한테 책임을 맡기든지 둘 중에 하나만 하세요’ 라고 할 거예요? 인생이 그렇게 안 돼요.”
“제가 겉으로는 깍듯했지만 스님 말씀 듣고 보니까 아버지로 인정을 안 하고, 엄마는 내 엄마니까 내 의견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아버지 의견을 자기 의견보다 더 존중해 주세요. 이럴 때 엄마 혼자 있으면 질문자가 100% 책임져야 되는데, 아버지가 있으니까 아버지 의견을 받아들이는 척하고 책임을 나누면 되잖아요. 얼마나 좋아요?
예를 들어 시어머니도 있는 게 좋아요. 어떤 분이 병든 남편이랑 도저히 못 살겠다고 해서 제가 ‘그럼 늙은 여자한테 갖다줘버리세요. 원주인한테 돌려주세요’ 그러니까 ‘시어머니가 돌아가시고 고아라서 좋다고 결혼했다가 이렇게 됐어요’ 라는 거예요. 돌려줄 데가 없다는 거예요. 그러니 그 늙은 여자가 있는 게 좋아요. 그런 일이 안 생기면 더 좋겠지만, 만약에 생기면 돌려줄 데라도 있잖아요. (청중 웃음)
그러니까 꼭 지금 좋은 것만 생각하면 안 돼요. 아버지를 존중해서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먼저 의견을 물어보고 ‘이렇게 하면 좋겠다’ 하면 어머니한테 ‘아버지는 이렇게 하자는데 어머니는 어떠세요?’ 하고, ‘너희 아버지 의견은 그렇지만 나는 그렇게 안 하겠다’ 하면 아버지한테 ‘엄마 의견은 이렇다는데요’ 이렇게 자기 의견은 내지 말고 전해보세요. 그럼 부부 둘이서 조절하겠지요. ‘결정 나면 저한테 이야기하세요. 제가 해 드리겠습니다’ 이렇게 하면 얼마나 편해요? 자기 애들 키우기도 힘들 텐데 그 늙은 여자 덤터기를 왜 질문자가 다 덮어쓰려고 해요? 엄마도 자식한테 그걸 다 덤터기 씌우지 않으려고 남자를 구해서 절반은 의탁한 거예요. 새로 만난 지 얼마 안 되어서 금방 다 의탁할 수 없으니까 절반쯤은 남편에게 의탁하고 또 절반은 자식한테 의탁해서 살려는 거예요. 자기가 볼 땐 섭섭할지 몰라도 어떻게 보면 그게 엄마의 자식 사랑일 수 있어요.
노후에 연세 드신 아버지가 ‘할머니를 구한다’ 하는 것도 그래요. 얼른 보면 돌아가신 어머니 생각에 기분 나쁠지 몰라도, 그게 자식들한테는 실제 부담이 적어요. 그렇게 들어온 새 어머니가 돈을 밝힌다고 하면 ‘늙은 영감하고 살려면 돈이라도 좀 생겨야지. 안 그러면 그 나이에 무슨 재미로 살겠어?’ 이렇게 생각해야 해요. 혼자 계시는 부모가 병이 나서 도우미나 간호사를 보낸다고 해도 돈이 많이 들잖아요. 같이 사는 분한테는 그만큼 안 드려도 되는데 그보다 훨씬 더 잘 보살펴줄 거잖아요. 그러니 질문자는 지금 바보 같은 생각을 하는 거예요. 그게 뭐 그리 슬픈 일이라고 울어가면서 이야기를 해요? (청중 웃음)
질문자가 중학교 때 엄마가 딴 남자를 만난 걸 생각해봅시다. 그때 엄마 나이가 지금의 질문자 나이 정도밖에 안 됐을 수도 있잖아요. 그때 엄마는 남자가 필요했던 거예요.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은 이해되니 그 원망했던 걸 참회해야 합니다. 지금 엄마가 연세가 드셔서 이렇게 하는 것은 사람마다 다 기질이 다르다는 점을 질문자가 이해해야 해요. 나이가 서른, 마흔밖에 안 되는 사람 중에도 성적인 문제에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이 있고, 나이 칠십, 팔십이 되도 그 문제를 굉장히 중요시하는 사람이 있어요. ‘여자가 남자 없이는 못 산다, 여자가 색을 밝힌다’ 이런 게 아니라 생물학적으로 체질이 그렇게 돼 있어요. 우리가 겉만 보고 도덕적으로 재단해서 ‘나쁜 놈이다’ 하는 사람도 그 사람 입장에서는 자기를 컨트롤 못해서 그런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성적 성향에는 이성애, 동성애, 양성애가 있어요. 양성애란 남자한테도 호기심이 가고 여자한테도 호기심이 가는 것을 말하는데 여성의 경우에는 이 양성애의 비율이 높습니다. 남자보다는 그 비율이 높다는 게 현재 의학계에서 낸 통계예요. 그 다음으로 아무런 성적 호기심이 없는 무성애가 있어요. 이런 사람들은 결혼하면 결혼생활이 굉장히 힘들어요. 신체적으로는 이상이 없지만 전혀 성적 호기심이 없기 때문에 부부관계를 거부하니 부부 사이에 정이 없죠. 그래서 본인도 힘들고 상대편도 힘듭니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이 스님이나 신부가 되면 수도를 안 해도 벌써 도인이에요. (청중 웃음)
그러니 질문자의 어머니에게 어떤 고뇌가 있는지는 딸도 알 수가 없고 남편도 알 수가 없습니다. 그냥 경제적으로 의지하기 위해서 남자가 필요한지, 어떤 정서적인 이유 때문에 필요한지, 성적인 이유 때문에 필요한지, 무엇 때문에 필요한지 다른 사람이 알 수가 없어요.
그런데 질문자는 이미 성년이잖아요. 그러면 엄마가 어떤 선택을 하든 존중해야죠. 그게 남을 때리거나 죽이는 것, 남의 물건을 뺏거나 훔치는 것, 남을 강제로 성추행하거나 성폭행하는 것, 욕설을 하고 거짓말하거나 사기 치는 것, 술을 마시고 행패를 피우는 게 아닌 이상 인간은 누구나 다 자기 성향대로 살 권리가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남의 생활에 간섭하지 말아야 하고, 내 삶도 남으로부터 간섭받을 필요가 없어요.
질문자가 나중에 예순 쯤 되면 이렇게 엄마를 이해 못한 과보를 받아요. 어머니 나이가 되었을 때 이혼하거나 사별하거나, 아니면 사정상 남편과 떨어져 살게 돼서 그 과보를 받게 됩니다. 그렇게 과보를 받아야 질문자가 엄마를 이해하게 돼요. 지금 생각에는 ‘다 늙었는데 무슨 영감이 필요한가?’ 싶지만 자기가 예순이 되면 생각이 바뀔 거예요.
질문자는 철딱서니가 없어요. 아무리 부모라 하더라도 그 부모의 인생이 있습니다. 자식을 위한다는 그 한 가지로만 부모가 살 수는 없어요. 자식이 어릴 때는 부모가 자식을 위해서 헌신하지만 자식이 크면 부모는 다 자기 인생을 살 권리가 있습니다. 자식이라고 부모한테 ‘이래 살아라, 저래 살아라’ 할 수 없고, 부모라고 다 큰 자식한테 ‘이래 살아라, 저래 살아라’ 할 수 없어.요 우리나라는 너무 그렇게 너무 간섭하기 때문에 인생이 복잡해지는 거예요.”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대중 박수)
“좋은 질문 하셨어요. 그러니까 어머니를 이해하고, 또 기도를 하세요. 어렸을 때 엄마를 미워하고 원망한 일로 질문자의 가슴에 상처가 있어요. 그래서 ‘엄마가 옛날에도 한번 재혼하더니 지금 또 일을 벌여서 나를 귀찮게 한다’ 싶으니까 속에서 울화통이 터지는 거예요. 그러나 10번을 재혼하더라도 그건 질문자가 간섭할 일이 아닙니다. 엄마 선택을 항상 존중해 드려야 해요. 그런 어리석음을 참회하고, 엄마한테 감사 기도를 하세요.
부모도 자식이 결혼하면 그 배우자를 존중해줘야 해요. 하물며 자식은 말할 것도 없죠. 부모인 엄마의 남편을 존중하는 자세를 가져야 엄마도 행복합니다. 그러니 질문자가 엄마의 남편에게 깍듯이 해드리세요. 속박 받으라는 뜻이 아니라 마음으로 깍듯이 존중하라는 이야기예요.”
울먹이던 질문자는 환한 웃음을 머금으며 자리에 앉았습니다. 감사 인사를 하는 우렁찬 목소리에 청중들도 우레와 같은 격려 박수를 보냈습니다.
자식은 어떻게 부모의 마음을 헤아려야 하고, 부모는 어떻게 자식의 마음을 헤아려야 하는지 양쪽 입장에서 충분히 공감할 수 있었던 시간이 된 것 같습니다.
이렇게 모든 질문에 대해 답변을 마치고 나니 2시간 30분이 훌쩍 지났습니다. 오늘 강연을 마무리하면서 스님은 첫 번째 질문자를 위해 ‘연기법’과 ‘공’이 무엇인지 덧붙여 설명해 주면서 청중 모두를 깨달음의 세계로 안내해 주었습니다.
“여러분들은 ‘나다’ 이렇게 자기를 내세우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나’라고 할 게 없어요. 이상하죠? 내가 분명히 있는데 ‘나라고 할 게 없다. 무아(無我)다’ 이러면 황당하잖아요. 그런데 내가 남편을 만나면 나는 아내로 규정되고, 엄마를 만나면 딸이라고 규정되고, 아이를 만나면 엄마라고 규정되고, 가게에 가면 손님이라고 규정되고, 절에 오면 신자이고, 택시 타면 승객이고, 학교에 가면 학부형이라고 규정됩니다. 그때그때 인연에 따라서 무엇이라 불리는 것이지 ‘무엇이다’라고 할 게 따로 없어요. 그런데 우리는 예컨대 아내 역할을 오래 하면 ‘내가 아내다’ 하는 생각이 굳어져버려요. 그러나 남편이 죽으면 나는 더 이상 아내가 아니에요. 엄마가 죽으면 나는 더 이상 딸이 아닙니다. 남편이 있으면 내가 인연을 따라 아내지만 남편이 죽으면 나는 아내가 아니에요. 섭섭한 마음은 이해가 되지만 내가 아내로 계속 머무는 것은 아닙니다. 남편이 죽으면 자기 존재 중에 ‘아내’ 존재는 없어졌어요. 그러다가 또 어떤 남자를 만나면 다시 ‘아내’라고 불리는 거예요.
이게 연기법(緣起法)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서로 이렇게 연관되어 있고, 독립적으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부처님이 깨달은 최고의 법이 연기법인데, 연기법이 저 멀리 있는 게 아니라 우리의 생활 속에 이렇게 있습니다. 이 도리를 알게 되면 여러분들이 지금 고뇌하는 게 많이 없어집니다. 이 도리를 모르면 온갖 고뇌를 하게 돼요. ‘연기’니 ‘공(空)’이니 하는 어려운 용어를 안 쓰고도 지금 제가 그냥 물어보잖아요. ‘자기 아빠냐 아니냐를 보지 마세요. 어머니의 남편인 건 맞지 않아요?’
어머니의 남편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거예요. 그러니까 헌 아버지니 새 아버지니 이런 말을 하지 마세요. 어머니의 남편이 아버지이고, 아버지의 아내가 어머니예요. 쓰는 용어가 아버지이고 어머니예요.
그러니 지나가 버린 과거 생각은 버리고 지금 이 인연을 소중하게 생각하세요. 존재는 늘 이렇게 인연을 따라 이루어집니다. 이걸 고상한 용어로 설명하면 <법성게>에 나오는 ‘불수자성 수연성(不守自性 隨緣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불수자성’은 ‘스스로의 성품이 없다, 스스로 이게 나다 라고 지킬 성품이 없다’는 뜻이고 ‘수연성’은 ‘인연을 따라서 이루어질 뿐이다’라는 뜻입니다. 어떻게 맺어지냐에 따라서 이렇게 불리고 저렇게 불리는 거예요.
여러분들을 만나니까 제가 스님이라고 불리지, 저희 아버지 앞에서도 제가 스님은 아니잖아요. 그 인연에서는 아들에 불과해요. 부모님 앞에서도 ‘내가 스님이다. 나한테 인사해라’ 이러면 불효막심한 사람이 되는 거예요. 반대로 아버지가 절에 오셨는데 ‘아들아, 나한테 절해라’ 이래도 안 돼요. 절에 오면 스님과 거사가 되고, 집에 가면 아버지와 아들이 되고, 인연에 따라서 이렇게 다른 거예요. 그런데 이 인연의 도리를 모르니까 갈등이 생깁니다. ‘날 언제 봤다고 네가 울 아버지냐?’ 이렇게 생각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어요. 엄마가 그 남자와 인연을 맺으면 나에게는 ‘아버지가 되는 거예요.
부처님이 깨달은 건 이런 원리에요. 그런데 우리에게 불교 용어가 너무 복잡하고, 뜻도 너무 높이 하늘에 올려놓아져 있기 때문에 생활에 적용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제가 여러분들하고 이렇게 대화할 때는 그런 용어를 안 씁니다. 그냥 생활에 적용해서 이야기하면 여러분들이 ‘아, 그렇구나’ 하는 그게 깨달음이에요. 깨달음이란 게 굉장한 게 아니에요. 몰랐던 걸 들으면서 ‘아, 그렇구나’ 하는 게 깨달음이에요. 그러면 고뇌가 사라지고 의문이 사라집니다.”
스님의 말씀을 듣고 나니 왜 즉문즉설이 땅에서 시작해서 하늘로 올라가는 이야기가 되는 것인지 절로 이해가 갔습니다. 어려운 불교 용어를 하나도 사용하지 않지만 자기 고민에 대한 문답을 통해 불교의 근본 원리를 깨닫도록 해주는 것이 바로 즉문즉설임을 다시 한 번 깊이 느낄 수 있었습니다. 사홍서원을 마지막으로 즉문즉설 강연을 마쳤습니다
강연이 끝난 후 소강당에서는 책 사인회가 열렸습니다. 좁은 장소임에도 길게 줄을 서서 사인을 받는 사람들도 사인하는 스님도 즐거운 모습이었습니다.
▲ 책 사인회
스님의 새 책 ‘야단법석’은 많은 인기로 금방 다 판매되고 다른 책들도 금방 팔렸습니다. 준비한 책의 소진으로 미처 구입하기 못한 분들은 많이 아쉬워했습니다.
질문자였던 40대 분은 “영상 강연이나 책 뿐만 아니라 직접 질문에도 항상 일관성 있게 답변해 주는 스님은 정말 대단한 분 같다”며 감동스런 표정을 지었습니다. 또 “기존과는 다르게 법당에서 강연을 하니까 마치 집에 스님이 방문해서 고민을 들어주는 것 같은 분위기를 느꼈다”고 소감을 말하는 분도 있었습니다.
이어서 오늘 강연을 준비한 원주정토회 봉사자들 모두가 스님과 함께 기념 사진을 찍었습니다. 활짝 웃는 모습에는 보람이 가득차 보였습니다.
▲ 오늘 강연을 준비한 원주정토회 자원봉사자들
사인회를 마친 스님은 새로 개원한 원주 정토법당을 구석구석 둘러보았습니다. 지난 5월까지 10평 남짓의 사무실에서 원주정토회를 꾸려왔는데 스님은 제법 큰 규모의 법당을 보더니 '잘 꾸몄네' 하며 칭찬을 해주었습니다. 스님의 칭찬에 봉사자들도 한껏 웃었습니다.
그리고 오랜만에 원주를 방문해 많은 가르침을 준 스님에게 감사의 마음을 담아 꽃다발을 선물했습니다.
봉사자들은 모두 이구동성으로 “상대적으로 장소가 협소했지만 가족 같은 분위기로 강연이 잘 끝나 행복하다”며 기쁜 마음을 내비쳤습니다.
오는 11월 24일에 원주 치악예술관에서 열리는 통일 즉문즉설 강연에도 많은 시민들이 찾아와 스님의 촌철살인 답변과 확고한 통일 의지를 느끼길 바래봅니다.
원주 정토법당을 나온 스님은 곧바로 서울로 향했습니다. 오후 4시 무렵에 평화재단에 도착한 스님은 먼저 도착해서 기다리고 있던 김제동씨와 반갑게 인사를 나눈 후 환담을 나누었습니다.
▲ 김제동씨와 미팅
김제동씨는 지난 11월 1일에 서울 시청광장에서 스님과 함께 청춘콘서트 피날레 무대를 가진 것을 비롯해 한해 동안 전국을 순회하며 청춘콘서트를 했는데, 간단히 그 소감을 나누면서 내년에는 청춘콘서트를 통해 청년들에게 어떻게 더 힘을 불어넣어줄 수 있을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특히 군대에 가서 지뢰 피해를 입거나 훈련 중 부상을 당했음에도 국가의 보살핌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음을 이야기하며 이런 청년들을 어떻게 도와줄 수 있을지 대화를 나누기도 했습니다. 스님과 김제동씨는 청년들에 대해 정말 많은 애정을 갖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김제동씨를 배웅한 후 평화재단에서 업무를 보던 스님은 오후 6시에 저녁 강연이 열리는 송파 구민회관으로 향했습니다. 저녁 7시부터는 송파구 구민들을 위해 즉문즉설 강연이 열렸습니다. 다음 이야기에 계속 됩니다...
※ 법륜 스님과 함께하는 '인도 성지순례' 참가자 접수가 진행 중입니다. 부처님의 발자취를 따라서 인도의 10대 성지를 내 발로 직접 밟아보고 그 감흥을 느껴보는 시간을 가져보세요. 아래 배너에서 직접 신청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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