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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에 원주에서 열린 즉문즉설 강연에 이어 저녁 7시부터는 송파 구민회관에서 송파구민과 강동구민을 위한 즉문즉설 강연이 열렸습니다.
비가 많이 내리고 있어서 좌석이 남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들었으나, 강연 시간이 가까워지자 준비된 600석이 모두 채워졌고, 많은 봉사자들이 나와 시민들을 반갑게 맞이하는 모습들이 즐거워보였습니다.
▲ 송파구민회관
한달 전부터 스님을 뵈면 질문하겠다고 미리 예약을 한 60대 질문자는 가게 문도 닫고 왔다면서 2시간 전부터 미리 객석에 앉아 스님을 기다리기도 하였습니다.
7시가 다 되어서 송파구민회관에 도착한 스님은 들어가는 입구에서 청중들을 맞이하는 봉사자들에게 “수고가 많아요” 라고 인사를 나누고 곧바로 3층 강연장으로 올라갔습니다.
▲ 구민들을 반갑게 맞이하는 송파정토회 자원봉사자들
1층과 2층까지 600여 명이 자리를 가득 메운 가운데 스님 소개 영상이 끝나자 곧바로 무대 위로 걸어나오는 스님을 보자 청중들은 큰 박수로 환호를 해주었습니다.
스님은 “저녁식사 하셨어요?” 라고 인사한 후 비가 오는데 오시느라 고생하셨다는 말씀과 함께 즉문즉설은 우리들의 어려움을 친구에게 묻듯이 대화를 나누는 것이라고 하면서 대화를 시작했습니다.
“어릴 때 엄마가 나를 야단쳐서 마음에 상처가 된 경우가 많이 있죠. 그런데 내가 엄마 나이가 되어보니 나도 별 볼일 없는 인간이에요. ‘엄마도 짜증을 낼 수 있고 화도 낼 수 있고 욕도 할 수 있는 사람이구나. 엄마가 나를 괴롭히려 한 게 아니라 엄마도 그 나이에 사는 게 힘들어서 악을 쓴 것에 불과하구나.’ 하고 느끼게 됩니다. 어릴 때는 아이 입장에서만 엄마를 보다가 내가 커서 엄마가 되어 다시 아이들을 보면, 즉 입장을 바꿔놓고 보면 엄마가 이해가 됩니다. 한쪽만 보다가 전체를 보는 거예요. 그러면 미워했던 감정이 풀어지기 시작합니다.
부처님이 와서 도와주거나 하나님이 와서 대신해주는 게 아니에요. 내가 지혜를 얻게 되면, 즉 깨달음을 얻게 되면 번뇌가 사라집니다. 불을 켜면 어두운 방이 밝아지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천 년 동안 어두웠던 방이라고 해서 불을 켜면 천 년 있다가 밝아지고, 어제 어두웠던 방이라고 불을 켜면 하루 있다가 밝아지는 게 아닙니다. 어둠이 얼마나 오래됐든 관계없이 불을 켜면 바로 밝아져요. 내가 그 상처와 괴로움을 얼마나 크게, 오래 안고 있었든지 관계없이 진실을 보게 되면 어둠이 불 앞에서 일거에 물러나듯 번뇌가 사라집니다.
부처님이 우리를 도와주시는 게 아니라 부처님의 가르침인 그 진리가 우리를 괴로움으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거예요.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라고 하셨어요. 진리를 너무 멀리, 높게 생각하지 말고 우리들이 겪는 일상의 삶으로부터 시작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괴로워하고 의문을 갖는 거기로부터 진리로 통하는 문이 있습니다.
그래서 불가에서는 ‘번뇌 즉 보리(煩惱卽菩提)’, 즉 괴로워하는 여기로부터 깨달음에 이르는 길이 있다고 했습니다. 성경에서는 ‘고통 속에서 하나님의 음성이 들린다’라고 했습니다. 내 뜻대로 다 이루어져서 기분이 좋을 때가 아니라 우리가 고뇌할 때에야 진정으로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다는 겁니다. 그러니 오늘 여러분들도 편안한 마음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하시면 됩니다.”
스님의 이야기가 끝나자 여기저기서 손을 들고 질문을 했습니다.
총 6명이 스님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이혼 후 재혼을 했는데 자식들을 안 보고 살아도 되는지 묻는 40대 엄마, 6년 전에 스님 법문을 듣고 20년 마시던 술도 끊었고, 오늘은 가게 문도 닫고 질문을 하기 위해 2시간 전부터 기다리던 60대 질문자, 직장 상사의 잔소리가 너무 심해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30대 직장인, 짝사랑하는 남자와 7년째 사귀고 있는 남자 사이에 누구를 선택해야 할지 갈등하는 젊은 여성, 중소기업에 다니며 안정되게 생활하고 있으나 미래가 보장되지 않고 흥미가 없어 자영업을 해볼까 고민 중인 직장인, 결혼 13년차 직장맘으로 가장 힘들 때 남편이 바람을 피웠는데 이혼하면 안 되냐고 묻는 두 아이의 엄마까지 다양한 질문에 대해 스님은 막힘 없이 명쾌한 답변을 들려주었습니다.
오늘은 그 중에서 큰 웃음을 선사하며 우문현답을 이끌어낸 60대 아주머니의 질문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합니다.
“스님을 만난 지 6년이 되었는데 그동안 스님 기도문을 받아 하루도 안 빠지고 기도해와서 성과를 많이 얻었어요. 스님께서 ‘이 세상에서 착하고 어리석은 여자가 제일 무섭다’고 했는데 제가 그런 여자인 줄도 알게 되었고요. 20년 동안 하루도 안 빠지고 술을 마셔도 얼굴에 표가 나지 않으니 가족들도 몰랐는데, 기도한 지 3년이 되니 술도 고기도 노래도 싫어지고 40년 된 화병도 없어졌어요. 그런데 노래는 신기한 게, 트롯트 노래는 듣기도 싫고 하기도 싫지만 트롯트 노래 가사에 ‘관세음보살’을 넣어서 하면 그렇게 좋아요. (청중 웃음)
기도를 많이 하면 손자가 좋아진다고 하잖아요. 그리고 손자를 위해 보시를 많이 해야 한다고 하는데,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되는지요? 스님한테 질문하려고 2년을 벼르고 오늘 가게 손님들도 다 내쫓고 왔어요.
또 딸이 하나, 아들이 하나 있는데 재산 때문에 걱정이에요. 아들이 장사를 두어 번 실패해서 빚을 크게 졌어요. 변변한 직장 없이 낮에 가게 일을 좀 도와주는 정도인데 제가 보기에 심리불안증도 있고 결벽증도 있고 성격 장애도 있는 것 같아요. 지금은 용도 변경한 25평짜리 단독주택 세를 받아서 그걸로 빚을 갚고 있어요. 제가 아들에게 그 집을 아예 넘겨주면 딸이 가만 있지 않을 테고, 놔두고 그냥 죽으면 애들끼리 싸움이 날 텐데 어떡하면 좋아요?”
“다른 분들은 질문을 하나 하는데 질문을 여러 개 하셨으니까 제 답변을 듣기 전에 염불로 노래 한 곡 불러주세요. 관세음보살 트롯트 한번 들어봅시다.” (청중 환호하며 박수)
“노세 노세 젊어서 놀아 ♬ 늙어지면 못 노나니. 화무는 십일홍이요 ♬ 달도 차면 기우느니라.
이 노래에 관세음보살을 넣어 부르면 이렇게 돼요.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앗싸!”
대중들은 질문자가 노래의 곡조에 맞추어 구성지게 관세음보살을 부르니 장단을 맞추어 박수를 치다가 마무리 부분에서 ‘앗싸’라고 하자 박장대소하며 웃었습니다.
“저는 이렇게 염불을 하면 제일 좋아요. 그래서 손님들 없을 때 혼자서 불러요.”
“그래요. 아주 훌륭한 스승님이 지금으로부터 1,300년 전에 이미 그렇게 했어요. 원효대사님이 그 분입니다. 원효대사는 원래 유명한 학승이어서 고상한 이야기를 많이 했어요. 그런데 어느 날 크게 깨달은 바가 있어서 요즘 말로 하면 큰 절의 주지를 그만두고 천민들이 사는 동네에 가서 그 사람들에게 불교를 쉽게 이야기했어요. 자기는 나름대로 굉장히 쉽게 했지만 사람들이 워낙 무식하니까 그것도 어렵다며 다 안 듣고 가버려요.
그런데 자기가 이야기하면 다 졸다가 핫바지에 방귀 새듯 새어나가 버리던 사람들이 광대가 판을 벌려 춤추고 노래하는 곳에는 구름떼 같이 모여들어 재미있다고 깔깔 웃어요. 그래서 그걸 옆에서 가만히 보고 연구해서 자기도 그 흉내를 냈어요. 조롱박을 하나 두드리면서 무애의 노래를 불렀다고 합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인 ‘무가애 무가애고’를 가지고 걸림 없는 노래를 불렀어요. 요즘 식으로 말하면 유행가 곡에 섞어서 부른 거죠. 그리고 무애의 춤, 즉 걸림 없는 춤을 췄어요. 보통은 춤추려면 좀 부끄러워지는데, 자기라는 것을 다 내려놓고 걸림 없이 춤을 추면서 ‘나무아미타불’을 지금 보살님처럼 부른 거예요. 그랬더니 천민들이 너무너무 재미있어 하면서 따라 불렀는데 살펴보면 그 노래가 ‘나무아무타불’을 부르며 극락을 발원하고 ‘관세음보살’을 부르며 중생의 고통을 수렴하는 내용이었습니다.
당시에는 신라 사람들 중 10퍼센트 남짓한 소수의 왕족이나 귀족, 지식층만 불교를 알았는데, 원효의 무애가와 무애무 덕분에 상민이나 천민, 소위 일반 민중까지도 다 부처님의 명호를 알게 되었어요. 이걸 민중불교라 합니다. 저도 흉내를 한번 내어보려 했지만 도저히 저는 못 하겠던데 보살님은 타고 났네요. 아주 잘 하셨어요.
답을 하나만 해주려고 했는데 노래 공덕이 있으니까 다 해드릴게요. 하나씩 답해드릴 테니 1번부터 다시 물어보세요.”
“기도를 많이 하면 손자가 좋아진다는데... 또 보시를 많이 하라는데 어떤 식으로 해야 하는지요?”
“보시를 많이 하라는 건 액수를 말하는 게 아니에요. 작은 나무는 나무 뿌리 가까이에 거름을 주고 큰 나무나 고목은 나무로부터 멀리 떨어져서 몇 미터 밖에 거름을 줍니다. 뿌리가 멀리 뻗어 있기 때문에 나무 밑에 거름을 주면 오히려 나무가 썩기 쉽고 뿌리가 영양분을 제대로 흡수하지 못하거든요. 할머니는 고목과 같아서 손자에게 거름을 줄 때는 보이지 않게 줘야 해요. 부모가 자식을 위해서도 보이지 않는 복을 짓는데 할머니라면 더더욱 보이지 않는 복을 지어야 해요.
손자에게 유산을 물려주거나 손자가 잘 되길 바라면서 뭘 하기보다는 항상 손자를 생각하며 작은 돈이라도 꾸준히 베푸세요. 절에 가든 교회에 가든 지나가다 불쌍한 사람을 보고 돕든 상관없이, 움켜쥐지 않고 베풀면 그런 복들은 대부분 내 대와 아들 대를 건너뛰어서 손자 대에 나타납니다. 그러니 밑거름을 많이 해두십시오. 조금씩 조금씩 널리 보시를 하세요.”
“방송에서 처음으로 스님 법문을 듣고 6년째 기도하고 있기에 매일 ARS를 한 번씩 눌러서 기부를 해요. 이걸로도 보시가 되는가요?”
“됩니다. 보시를 한 뒤 ‘내가 보시했다’ 하고 자꾸 생색을 내면 그 복이 탕감된다고 해요. 실제로 그렇습니다. 예를 들어 김밥 할머니가 장학금으로 100만원을 냈다면 작은 단신 기사가 나가요. 그런데 알고 봤더니 그 분이 올해 처음 한 게 아니라 지난 10년 동안 아무도 모르게 보시를 계속해 왔다고 하면 단신 기사의 10배 크기보다 더 크게 기사가 나요. 우리는 복을 지으면 다 떠벌리는데 그걸 묻어둬야 해요. 복은 조금 지어놓고 크게 지었다고 선전하고, 죄는 크게 지어놓고 조금만 지었다고 과장하는 게 보통 인간 심리예요.
그 정도는 그래도 봐줄 만하지만 절이나 교회에 다니는 사람은 심보가 이보다 더 더러워서 복은 하나도 안 지어놓고 자기한테 복 다 달라고 하고, 죄는 엄청나게 지어놓고 자기 벌 안 받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그건 인과법칙에 맞지 않아요. 이런 어리석음을 깨우치는 게 예수님이고 부처님이고 성인인데 지금 교회나 절은 그런 어리석음을 도리어 부추기는 역할을 합니다.
복을 지어놓고 복을 받겠다는 것은 당연한 법칙이에요. 인연과보의 법칙입니다. 그러나 수행자는 복을 지어도 지었다는 생각을 하지 않아요. 잊어버린다는 말이 아니라 그 복을 받으려는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그래야 그게 더 큰 복이 됩니다. 기독교 식으로 설명하면 이 세상에서 지은 복의 보상은 아주 작은데 반해 이 세상에서 그 보상을 안 받고 저 하늘나라에 가면 하나님께서 헤아릴 수 없이 큰 복을 준다고 합니다. 불교에서는 ‘내가 복을 지었다’ 하는 상을 내려놓은 것을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라고 해요. 무주상보시의 공덕은 이루 헤아릴 수가 없어어 이 세상에서 가장 귀한 7가지 보석으로 허공을 가득 채워도 그 공덕에는 못 미친다고 해요.
우리가 남을 사랑하거나 도와주고자 어떤 일을 하면 마음속에는 ‘너, 내 공덕 알지?’ 이렇게 대가를 바라는 마음이 있어요. 그런데 그 대가가 안 돌아오면 기분이 나쁘고 섭섭해집니다. 그래서 베풀고 미워하고, 사랑하고 미워하게 됩니다. ‘사랑은 눈물의 씨앗이다’, ‘사랑하기 때문에 미워한다’고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사랑하면 기뻐요. 사랑이 미움의 씨앗이 되는 것은 사랑하기 때문이 아니라 사랑의 대가를 갈구하기 때문입니다.
아무것도 베푼 것 없이 복을 받으려 하고, 자기는 사랑하지 않으면서 남으로부터 사랑받으려 하면 어리석은 중생입니다. 반면, 조금 사랑해놓고 많이 받으려고 하면 그나마 인연을 짓고 받으려 하는 것이니까 이 사람은 인연의 이치는 조금 아는 사람이에요. 이걸 현인이라고 해요. 그러나 현인은 역시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는 없어요. 대가가 돌아오면 다행이지만 안 돌아오면 배반감을 느껴서 괴로워집니다. 사랑하는 건 사랑으로 끝나고 어떤 대가도 바라지 않는 게 무주상보시입니다. 그렇게 하면 사랑하는 결과가 미움으로 전환되지 않습니다. 설악산을 보면서 감탄하고 좋아하면 내가 좋아요? 설악산이 좋아요? 꽃을 보고 좋아하면 꽃이 좋아요? 내가 좋아요?”
“내가 좋아요.”
“그러니 내가 누군가를 좋아하면 내가 좋은 거예요. 산을 좋아하고 꽃을 좋아하면 아무 부작용이 없어요. ‘내가 설악산이 좋다고 10번이나 와 줬는데 산이 인사도 안 해준다’ 이렇게 화내는 사람은 없잖아요. 산더러 나를 좋아해달라는 대가성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람에게는 ‘내가 너한테 사랑한다는 말을 했는데 너는 왜 안 하니? 나는 편지 세 번이나 했는데 너는 왜 한번도 안 하니?’라고 화냅니다. 이건 사랑이 아니라 거래예요. 이렇게 상거래를 하다 보니 ‘밑졌다, 손해다’ 하고 자꾸 계산이 되어서 미워하거든요. 돈만 주고받는다고 장사가 아니라 사랑도 장사처럼 해요. 좋아하는 것도 장삿속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밑졌다는 생각에 배신감을 느끼는 거예요.
부모가 자식을 키울 때도 원래 장삿속으로 하진 않지만 중생의 습관이 워낙 깊이 배어 있다 보니 애가 말을 잘 안 들으면 ‘내가 너 키운다고 얼마나 고생했는데!’ 이럽니다. 이건 본전 생각이 난다는 말이에요. 무슨 주식 투자하듯이 키웠다는 거예요.
손자를 도우려면 무주상보시를 해야 공덕이 큽니다. 질문자가 재벌도 아닌데 도우면 얼마나 돕겠어요? 큰 공덕이 되려면 바라는 마음을 버리세요. 손자에게 공덕이 될 거라는 생각도 하지 말고, 어떻게 좋은지도 따지지 말고 그저 베푸세요. 내가 이 세상의 어려운 사람을 위해서 베풀면 없어지는 게 아니라 다 좋게 돌아옵니다.
좋은 것이 나타나는 모습은 여러 가지예요. 예를 들어 살생, 즉 내가 누굴 죽였다면 과보는 내가 죽임을 당해야 해요. 그걸 단명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런 공덕을 쌓게 되면 단명보를 면한다고들 말해요. 우리가 좋은 일을 많이 했는데도 오히려 욕 얻어먹을 때가 있어요. 그럴 때 기분 나빠하지 말고 고마워해야 해요. ‘욕을 얻어먹으면 오래 산다’라는 말 들어봤죠? 이 말은 앞에 ‘좋은 일 하고’가 빠졌어요. 나쁜 일 하고 욕을 얻어먹어야 오래 사는 게 아니라 좋은 일 하고 욕을 얻어먹으면 오래 살아요. 예를 들면 이 사람은 원래 단명보로 일찍 죽을 운명인데 그 욕을 얻어먹음으로 해서 명을 길게 만들었다는 거예요. 그보다 더 큰 공덕이 없어요. 그러니 남을 도와주고 욕을 얻어먹더라도 이 인연의 이치를 알면 빙긋이 웃게 됩니다. ‘네가 날 욕해줘서 내 명이 길어졌다’ 이런 이야기입니다.
과보를 제대로 받으면 죽어야 하지만 그보다 조금 감해지면 병고에 시달려요. 이런 인연의 이치를 알면 병고에 시달린다고 한탄하지 않습니다. ‘그래도 안 죽고 살아 있는 것만 해도 다행이다’ 이러면 병고에 시달려도 행복하게 살 수 있어요.
그것보다 큰 복은 욕 얻어먹는 것이에요. 욕먹는 것으로 단명보를 면하니까요. 현상은 나쁘게 나타나는데 그게 절대로 나쁜 게 아니에요. 사실은 인연의 과보를 따지면 지옥에 떨어져야 될 것이 그 지은 인연 공덕으로 지옥에 안 떨어지고 이 세상에 와서 그래도 몸 좀 아픈 것이나 욕 좀 얻어먹는 걸로 때우니 엄청난 공덕이에요. 우리는 좋은 일만 생겨야 공덕이라고 생각하는데 그건 인연의 이치를 모르는 겁니다. 세상에서 말하는 재앙마저도 공덕인 줄 알면 이 세상을 사는데 두려울 게 없어집니다.
그런 이치를 모르면서 작은 시험에라도 걸리면 ‘아이고, 내가 베풀었더니 우리 손자가 잘 되는구나’ 하고, 떨어지면 ‘내가 그렇게 몇 십 년을 베풀었건만 아무 공덕도 없네’ 이러면 안 돼요. 그저 베푸는 것으로 끝내면 저절로 공덕이 됩니다. 노래 한 곡 하고 너무 많이 얻어가네요.” (청중 웃음)
“제일 중요한 게 한 가지 남았어요.”
“재산을 어떻게 할까 하는 문제요? 아들 주면 딸이 난리고, 딸 주면 아들이 난리고, 안 주고 죽으면 자기들끼리 싸우겠다고 했죠. 그러면 이 재산이 없었으면 좋았을 원수덩어리잖아요. 그럴 때는 법륜 스님에게 주세요. (청중 박장대소)
그러면 자식은 안 싸우고, 질문자는 공덕을 짓고, 저는 그걸 받아서 북한의 굶어죽는 사람들과 인도의 가난한 사람들을 도울 수 있으니 얼마나 좋아요? 그런데 그걸 뭐 고민거리라고 그래요. (청중 웃음)
우선은 진 빚을 갚아야 하니 조금 놔두세요. 그런데 부모가 재산을 가지고 있으면 자식은 절대로 자립을 하지 않습니다.”
“저는 재산이 없어요.”
“집이 있다면서요. 명의가 누구 명의로 되어 있어요?”
“아들하고 저, 둘 명의로 되어 있어요.”
“그럼 반은 아들 거네요. 그냥 놔두세요.”
“그러면 제가 죽고 나면 딸하고 싸울 거 아니에요?”
“절반은 아들 것이니까 절반은 아들 주고, 절반은 스님한테 드린다고 유언장을 써놓으면 안 싸운다니까요. 뭘 그걸 그리 어렵게 생각해요. (질문자 한숨)
스님은 주기 싫어요? 스님 법문 듣고 기도문 받아서 자기가 좋아졌다면서 그 공덕에 대한 대가도 지불 안 해요? 저는 늘 후불제인데... 선불 받는 거 아니잖아요. 그렇게 공덕이 있었으면 나중에라도 좀 갚아야 될 거 아니에요?”
“그런데 그 월세 나오는 걸로 저희 아들이 지금 빚을 갚는데, 착하긴 착하지만 뚜렷한 직장도 없어요. 깨달음의 장이랑 나눔의 장을 다녀왔어도 달라지는 게 없더라고요. 그렇게 힘들고 고통스러우면 스님한테 질문을 한번 해보라고 했지만 아들도 며느리도 용기가 없나 봐요.”
“시간 지나면 될 거예요. 괜찮으니 놔둬보세요.”
“그럼 재산은 제가 죽기 전에 아들 앞으로 증여하지도 말고... 어떻게 해요?”
“그냥 죽으세요. 스님 앞으로 주고 죽던지 그냥 죽으면 돼요. 그러면 자기들이야 싸우든지 말든지 알아서 할 테니까 걱정 안 해도 돼요.”
“어이구, 저 죽은 뒤에 또 둘이서 싸우면 어떡해요?”
“걱정이 되면 스님한테 주라잖아요. (청중 웃음) 그런데 그걸 도저히 못 하겠다니까 그냥 두고 죽으라는 거예요. 아직 안 죽고 명이 좀 더 가겠으니 걱정하지 마시고 그냥 우선 생활하세요.”
스님의 대답에 청중들은 배꼽을 잡고 웃었습니다. 질문자도 처음에는 한 숨을 쉬더니 나중에는 환한 웃음을 보였습니다.
웃으며 박수를 치다보니 2시간이 훌쩍 지나갔습니다. 모든 질문에 대한 답변을 마치고 나서 스님은 재미있었냐는 물음과 함께 인생은 복잡한 것 같아도 복잡하지 않고, 누에고치가 구멍을 내고 나비가 되어서 날아가듯이 사로잡힘에서 벗어나야 자유로워질 수 있다고 하면서 마무리 말씀을 해주었습니다.
“재미있었어요?”
“네!” (청중 우렁찬 대답)
“인생이라는 게 복잡해 보이지만 찬찬히 들여다보면 별로 복잡할 것도 없어요. 누에가 자기 입에서 낸 실로 고치를 만들고 그 속에 갇혀 답답하다고 아우성치는 것처럼 우리도 자기가 일으킨 한 생각에 갇혀서 속박 받고 살아요. 자기 생각에서 못 벗어나는 이것을 ‘사로잡힘’이라고 합니다. 자기가 한 마음, 한 생각 일으킨 거기에 딱 사로잡혀서 철벽보다 더 두껍게 느껴요.
그런데 고치 안에 들어간 애벌레는 스스로 고치에 구멍을 내고 나와 나비가 되어서 날아가잖아요. 나비가 고치에서 나와 자유롭게 날아가듯이 우리가 자기 생각에 사로잡힌 여기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해탈이에요. 그래야 여러분들의 삶에 자유와 기쁨이 주어집니다. 주어진 상황 속에서도 얼마든지 자유로워지고 행복해질 수 있고,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고 느낄 수 있어요.
예를 들면 지금 부처님의 가피 혹은 하나님의 은총이 마치 비 내리듯 내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다 제 그릇 따라 그 물을 받는데, 바가지를 거꾸로 쥐고 있는 사람은 아무리 오래 기다려도 물 한 방울 고이지 않아요. 지금은 바가지를 거꾸로 쥐고 있는 형국이에요. 그러니 조금만 생각을 바꾸면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은 누구나 다 행복할 수 있습니다.
누구나 다 행복할 수 있다는 말은 곧 모든 중생은 다 부처의 성품을 갖고 있다, 즉 불성이 있다는 이야기예요. 기독교식으로 말하면 ‘모든 사람은 다 하나님의 아들딸이다’ 라고 합니다. 모든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평등하다, 다시 말해 누구나 다 자유롭고 행복할 수 있는 신성을 가지고 있다는 뜻입니다. 이걸 우리가 자각해서 자기의 소중함을 알고, 자신의 삶을 함부로 팽개치지 않고, 어떤 상황에 처하든 자기를 늘 아름답게 가꿔가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은 누구나 다 행복할 수 있다는 스님의 말씀에 모두 공감을 하며 큰 박수를 보냈습니다.
이어서 무대 위에서는 책 사인회가 열렸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서 책 사인회는 20분이 넘게 계속 되었습니다. 어떤 50대 여성 분은 “스님 법문을 매일 들으며 제 인생이 나날이 행복해지고 있습니다.” 라고 하면서 환한 웃음을 보였습니다.
▲ 책 사인회
또 어떤 분은 방금 구입한 ‘야단법석’ 책에 “법륜 스님! 우리 모두의 희망이자 사랑이십니다. 건강하세요.” 라고 문구를 미리 적어와 스님에게 사인을 받기도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오늘 강연을 준비한 송파정토회 자원봉사자들과 기념 사진을 찍었습니다. 활짝 웃는 얼굴에는 행복이 가득 넘쳐 보였습니다.
▲ 송파정토회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사진을 찍고 나서 스님은 봉사자들에게 일일이 악수를 해주며 “수고했어요” 라고 격려해 주었고, 봉사자 중에 한 분이 “스님, 사랑합니다.” 라고 말하자 주위에는 웃음이 한가득 피었습니다.
오늘 스님의 즉문즉설 강연을 통해 모든 봉사자들과 청중들이 나도 좋고 너도 좋고 오늘도 좋고 내일도 좋은 시간을 함께 만든 것 같습니다.
▲ 봉사자들에게 합장 반배를 하며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있는 스님
행사장 뒷정리를 시작하는 봉사자들에게 공손히 합장하며 인사를 한 후 송파구민회관을 나온 스님은 밤 10시가 넘어서 서울 정토회관에 도착했습니다. 집무실에서 업무를 더 보다가 오늘 일정을 마쳤습니다.
내일은 아침 7시부터 평화재단에서 조찬 모임을 가진 뒤 오후 1시 30분부터는 ‘통일코리아를 위한 한국 사회의 성찰과 변화’를 주제로 프레스센터 20층 국제회의장에서 열리는 평화재단 창립 11주년 기념식 및 심포지엄에 참석할 예정입니다.
※ 법륜 스님과 함께하는 '인도 성지순례' 참가자 접수가 진행 중입니다. 부처님의 발자취를 따라서 인도의 10대 성지를 내 발로 직접 밟아보고 그 감흥을 느껴보는 시간을 가져보세요. 아래 배너에서 직접 신청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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