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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청년학교 마치고 문경수련원에 도착하니 새벽 12시 40분경이었습니다. 스님께서는 잠시 휴식을 취하신 후 방에서 새벽예불을 드리고 5시에 간단히 아침공양을 한 후 새벽 6시부터 있을 2015년 가을불교대학 수도권지역 특강을 위해 대수련장으로 이동하셨습니다. 오늘 특강은 불대생들이 그동안 불교대학공부를 하면서 들었던 궁금한 것들을 스님께 물어보는 즉문즉설로 진행되었습니다. 불대생들이 미리 적어 낸 질문지를 보고 스님께서 답을 해주셨습니다. 스님과의 만남을 기대하던 학생들은 이른 새벽이지만 가르침을 받고자 똘망똘망한 눈으로 스님을 맞이했습니다.
스님께서는 먼저 서두에 “요즘은 혼자 사는 사람들이 많아 대중들과 함께 수련 하는 것이 쉽지 않을 거예요. 수련장에서 불편을 느낄 때 불편에 빠지지 말고 습관성에서 오는 불편임을 알고 직접 경험을 통하여 습관을 바꾸면 매사가 좋아집니다.”는 말씀으로 갑자기 많은 사람들이 모여 함께 함으로서 오는 불편함을 잘 살펴보도록 지도해주셨습니다. 그리고 “오늘 특강은 한학기 동안 공부하면서 궁금한 것을 질문하는 시간이니 주로 불대에서 배운 것을 중심으로 질문을 하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지금 이 시기에 하다보니 전체 학습에 대한 질문보다는 근래에 배운 것에 대한 내용, 특히 근본불교사상에 대한 질문이 많아요. 그리고 새벽부터 수업을 하니 아무리 좋은 얘기를 해도 지금 좀 졸릴 때니 졸리는 사람은 앉아서 졸지 말고 자리에서 서서 들으세요. 한명 서고 두 명 서고, 열 명 서고, 오십 명이 서면 휴식시간을 드리겠습니다.(대중들 웃음)”라고 가볍게 웃으시며 첫 질문을 읽으셨습니다.
Q. “희망편지로 희망을 만나고 정토회를 만나 희망을 갖고 살고 있고 제 인생을 다르게 살게 해주신 은혜로 길게 수행·보시·봉사하며 정진하겠습니다. 제 질문은 중도가 무엇인지, 마음을 절제하는 것이 수행이 아니라고 하면 기쁨,슬픔,분노를 돌이키고 알아차리면 된다면 중도의 삶은 무슨 의미가 있으며 왜 꼭 중도의 삶을 사는 건지 헷갈립니다. ”
스님께서는 “수업 시간을 제대로 안 들은 거 같아요.(대중들 웃음) 불교사상에서 제일 중요하고 또, 들어도 들어도 이해가 어려운 것 중 첫째가 중도, 둘째가 무아, 셋째가 연기입니다. 이 3가지는 이치가 힘든 건 아니에요. 이치는 아주 간단해요. 들으면 누구나 다 알아들을 수 있어요. 그런데도 이것이 이해가 안 되는 건 우리가 일상 속에서 중도적으로 생활을 안하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내가 이런 것들을 경험해본 바가 없어요. 늘 치우쳐서 생각하고 생활했기 때문에 이게 뭘 의미하는지 들을 때는 알겠는데, 지나고 나면 금방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중도는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다. 즉, 쾌락도 아니고 고행도 아닌 제 3의 길이 중도라는 것입니다.”라고 하시고는 대중들이 중도를 익히 알 수 있도록 따라 해보라고 하시기도 하셨습니다.
“한번 따라 해보세요. 뭐도 아니고? (쾌락도 아니고) 뭐도 아니고? (고행도 아니고).”대중들은 스님의 말씀에 따라 신나게 따라 합니다.
“제1의 길 쾌락, 제 2의 길 고행, 제 3의 길 중도, 이렇게 말합니다.
건물과 건물 사이 줄을 매달아 놓고 줄타기하는 사람이 그 줄을 딛고 건너갑니다. 그러면 이치로 설명할 때 줄타기를 어떻게 해야 합니까? 왼쪽으로도 치우치지 말고 오른쪽으로도 치우치지 말고 똑바로 가면 돼요. 쉽죠? 그런데 자기가 직접 올라가서 해보면 될까요? 왼쪽으로 치우치든, 오른쪽으로 치우치든 떨어지겠죠. 그러면 ‘이거는 몇 번 해보니까 안 된다, 이건 불가능한 거야. 말도 안 돼.’라고 하는데 실제로 불가능한 것일까요? 내가 안 되는 거지 이치로는 가능한 거예요. 그러면 이치로는 가능한데 현실에서는 불가능하다면 이 갭을 어떻게 맞추느냐? 연습을 많이 하면 됩니다. 그러면 이 분이 또는 여러분들이 줄타기를 하면서 떨어지면 또 하고, 또 떨어지고, 이렇게 몇 번쯤 연습하면 가능하게 할 수 있을까요? 최소 만 번 이상은 해야 될 것입니다. 그런데 다섯 번 해보고 난 안된다. 열 번 해보고 ‘아, 난 줄타기가 안 돼.’ 그러면 이사람은 재능이 없는 사람이에요? 욕심쟁이에요? (욕심쟁이요) 만 번 해야 되는 걸 다섯 번, 열 번 해서 안된다고 포기합니다. 좌절과 절망은 해봐도 안 되기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욕심 때문에 일어납니다.
그래서 꾸준히 연습을 해야 합니다. 될 때까지 꾸준히 하는 걸 정진이라고 합니다. 되고 안 되고에 신경 쓸 필요가 없어요. 돼도 하고 안 돼도 하고. 그렇게 꾸준히 해야 합니다. 여러분들이 아침에 참회 기도할 때 절을 하고 싶어도, 절이 하기 싫어도, 절을 하면 다리가 아파도, 다리가 안 아파도, 꾸준히 하는 걸 정진 바라밀이라고 합니다. 중도는 이렇게 경험을 해야 합니다.
그러면 제 1의 길, 쾌락이란 건 뭘까요? 쾌락이란 건 철학적 용어이지 생활용어가 아닙니다. 술 먹고, 영화보고, 놀고 이런 걸 쾌락이라고 하는데 여기선 그런 뜻이 아니에요. 여러분은 뭔가 하고 싶은 욕구가 있는데, 욕구는 삶의 동력입니다. 그 욕구가 일어날 때 그 욕구를 채워주고 충족시키면 정신적으로 기분이 좋아지는데 그것을 즐거움이라하고 그게 충족이 안 되고 뜻대로 안되면 기분이 나빠지는데 그것을 괴로움이라 합니다. 이걸 한문으로 ‘즐거움은 락, 괴로움은 고.’라고 합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이루어질 때도 있고 이루어지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그리고 원하는 것이 이루어졌다고 끝이 나나요? 오히려 욕구가 좀 더 커집니다. 그 다음에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영원히 안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또 노력을 하면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고와 락이 늘 이렇게 되풀이 되는 것입니다. 이 고락이 되풀이 되는 것을 윤회라고 합니다.
사람이 죽어서 소 되고, 개 되고, 말 되고 하는 이것도 윤회라고 하는데 이것은 인도의 전통 민간사상인 힌두교에서 나온 것입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윤회는 고와 락이 되풀이 되는 것입니다. 고락이 똑같이 50%, 50%로 되풀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어떨 때는 고가 70%, 락이 30%일 때도 있고, 락의 비중이 점점 많아져서 거의 100%에 근접하면 락이 지극히 많다고 해서 극락이라고 합니다. 고가 점점 많아져서 고가 지극히 많아지면 지옥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아무리 고가 많아져도 고만 100프로가 될까요? 거기에 락도 조금 있을까요?(락도 조금 있어요.) 아무리 락이 많아도 거기 락이 100프로가 될까요? 고도 조금 있을까요?(고도 조금 있어요.) 그래서 고락은 떨어질 수가 없이 돌고도는 것입니다.
우리가 윤회에서 벗어나는 것은 고는 없어지고 락만 있다는 것은 아닙니다. 고락이 되풀이 되는 이 사슬, 쳇바퀴처럼 얽혀진 고리를 끊어버리는 것이 해탈입니다. 그런데 어리석은 중생은 고락이 윤회하는 세계 안에서 고와 락을 분리시켜서 고는 없고, 락만 있으면 좋겠다는 이런 허황된 생각을 합니다. 이것이 복을 구하는 윤회의 씨앗을 심는 것입니다.
욕구가 있으면 욕구가 충족이 돼야 즐거움이 생기니까 중생은 즐거움을 추구합니다. 그것이 좀 많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면 복을 구하는 것이 됩니다. 이처럼 복을 구하는 것이 불교라고 생각하면 불교의 ㅂ자도 모르는 사람입니다. 천당 가는 게 목표이고 이것이 불교라고 생각하면 이것도 불교의 ㅂ자도 모르는 것입니다.
사람은 욕구가 일어나면 그 욕구를 충족시킴으로 해서 일어나는 기분 좋음을 즐거움으로 삼는 것을 쾌락주의라고 합니다. 술 마시고, 노래 부르고 하는 것이 쾌락주의가 아니고 욕구를 충족시켜서 일어나는 즐거움을 추구하는 것을 쾌락주의라고 합니다.”라고 쾌락주의에 대해서 설명을 하신 후 불대생들이 알아듣기 쉽게 다시 예를 들어서 설명도 해주셨습니다.
“예를 들어, ‘누가 나한테 100만원만 줬으면 좋겠는데’라고 생각하는데, 누군가가 100만원을 주면 기분이 좋아지죠. 그 다음달에도 주면 기분이 좋아지죠. 그런데 그 기분 좋음이 계속 늘어날까요? 똑같을까요? 줄어들까요? (줄어들어요.)
1년 지나고, 2년 지나고 하면 돈을 받으러 가는 것이 귀찮아지고, ‘그냥 통장으로 넣어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통장으로 10년째 100만원이 들어오면 감각이 있을까요? 아무 감각이 없어집니다. 이 기분좋음을 계속 유지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100만원 들어오고, 그 다음에 200만원 들어오고, 300만원, 500만원 점점 늘어나야 합니다. 마약과 똑같습니다. 기분 좋음을 유지하거나, 기분 좋음을 점점 높이려면, 마약 투여량을 늘여야 합니다. 나중에는 한달치 한꺼번에 맞아도 별로예요. 그래서 마약과 똑같은 것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먹는 것만 생각해봐도 알 수 있습니다. 배고플 때는 종류를 따지지 않고 배만 불렀으면 합니다. 그런데 충분히 먹을 게 주어지면 맛있는 것을 따지게 됩니다. 맛있는 것만 따지나요? 영양도 따지고, 어느 그릇에 담았는지도 따지게 됩니다.
이처럼 욕구를 따라가서 완전한 행복에 이르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 이치로 알아지나요? (네) 대답이 신통찮네요.(대중들 웃음)
욕구, 욕망이라는 것은 용납하면 끝이 없기 때문에 아예 용납을 안 해야 합니다. 아주 작은 것도 씨를 말려야 합니다. 먹고 싶어도 안 먹고, 자고 싶어도 안 자고, 가고 싶어도 안 가고. 더 좋은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생존에 필요한 먹는 것까지 부처님께서는 안 먹었잖아요. 잠도 안 자고, 목욕도 안 하고 그래서 아무리 작은 어떤 욕구도 용납하지 않는 것을 철학적으로 고행주의라고 합니다.
꼭 나무에 거꾸로 매달리고 하는 것이 고행이 아니라 욕구를 참아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고행주의이고, 욕구 따라가서 해결하는 것을 쾌락주의라고 하는 것입니다.
부처님은 29살 출가하기 전까지 쾌락주의를 따랐습니다. 이건 기존의 길이었고, 세속의 길이었습니다. 출가 이후에는 이것으로 해결이 되지 않으니까 고행주의자의 길, 잠도 들에서 자고, 콩 한알만을 먹기도 하고, 그렇게 6년을 했는데 해결이 안 되었어요. 그래서 뭐가 문제일까?’고민하며 자기 삶을 돌아봤더니 지금 이야기한 이것을 발견한 것입니다.
출가하기 전에는 욕망을 쫓아갔고, 출가한 후에는 욕망을 억제했던 것입니다. 둘 다 심리가 편안한 상태가 안돼요. 욕망을 따르는 것은 욕망을 수용하는 것이고, 억제하는 것은 욕망을 반대하는 것 같지만 둘 다 욕망의 노예입니다. 욕망 따르는 것만이 아니라, 욕망을 참는 것도 욕망의 노예인 것입니다.
여기서 제 3의 길은 욕망에 반응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욕구가 있는데 욕구에 대응을 안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욕구로부터 자유로워진다는 것입니다. 즉, 이쪽에도 치우치지 않고, 저쪽에도 치우치지 않고 똑바로 간다는 것입니다. 다만 욕구를 알아차릴 뿐입니다. 이처럼 중도는 욕구를 따르지 않고, 욕구를 알아차리고, 욕구를 지켜보는 것입니다.”라며 현실적인 문제를 예로 들어서 설명해주시니 중도가 좀 더 명확하게 와 닿는 것 같습니다.
그 외에도 무아, 윤회에 대한 질문, 계급타파를 위해 부처님은 어떤 실천을 하셨는지, 통일의병 양성, 북한에 정토행자 만들기등의 계획에 대해 궁금해 하시는 분, 부처님은 열반후에 극락에 계시는지 궁금해 하는 질문, 욕구와 집착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설명을 해 달라는 분, 자본주의 사회에서 보살행이 오히려 자본주의 더 강화시키는게 아닌지 궁금해 하는 질문, 내가 없다는 것과 천상천하 유아독존이 모순 되는 것은 아닌지, 사람의 죽음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연기법이 진리라고 하지만 현실에서는 치열한 경쟁사회인데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마음의 실체가 공하다는 것이 이해가 안된다고 하는 질문, 나라고 할 만한 것이 없는데, 다겁생래 지은 업장이라는 말에는 나가 들어 있는 것이 아닌지 궁금해 하는 질문, 부처님의 신통력에 대해 궁금해 하는 분, 기독교의 유일신과 불교에서도 부처님만을 모시고 태어난 곳, 설법하신곳등을 순례하고 성도제일을 기념하는 것이 비슷한 것은 아닌지 궁금해 하는 천주교 신자분, 불교의 많은 부처와 보살에 대해 궁금해 하시는 분, 중도에 대해 실제로 본인이 고민되는 질문을 하신 분등 다양한 질문들도 이어졌습니다.
약 3시간 30분동안 스님께서는 불대생들의 질문에 하나하나 답을 해주시고 두북으로 이동하셨습니다.
서울공동체 대중들 20여 명과 시간을 함께 보내기로 미리 약속을 해둔 터였습니다. 서울공동체 상주자들은 전날 두북수련원에서 자고, 오늘 아침엔 나물 캐기와 연등 울력을 하고, 또 일부는 저녁 식사 준비 등을 미리 해두었습니다.
스님께서는 거의 주말마다 경주에 오시는 일정이신데, 올해부터는 서울 공동체 성원들도 두북수련원에서 울력을 하거나 짬짬이 스님과 일정을 함께 보내면 좋겠다고 제안을 해주셨습니다. 다음 주에는 청년정토회 평지순례가 있고, 그 다음 주에는 불교대생들의 남산 순례가 예정되어 있습니다. 서울 공동체 대중들은 업무 때문에 참석이 어려운 경우를 제외하고는 4월 한 달 동안엔 가급적 주말마다 두북수련원에 내려오기로 했습니다. 업무 중심의 생활에서 벗어나 자연 속에서 심신을 새롭게 하고, 활력을 키워보자는 스님의 제안이십니다.
그래서 오늘은 가볍게 아주 완만한 능선을 따라 남산 산행을 하셨습니다. 스님께서 아무리 ‘가볍게’라고 하셨지만, 이미 정토회에서 수십 년 장판 때를 묻히고 살아온 노회한(?) 공동체 식구들은 압니다. 그렇게 만만한 산행이 아니라는 것을요. 역시나 오후 1시부터 5시까지 장장 4시간의 시간이 잡혀있습니다. 공동체 대중들은 각자 물병과 모자, 등산화 등을 단단히 챙기고 나섰습니다.
경주 남산 부처바위골로 올라 탑곡 마애여래상군(일명 부처바위)을 참배하는 것으로 산행을 시작했습니다. 부처바위에는 삼존불과 독립된 불상, 본존과 보살상, 7구의 비천상, 그리고 9층목탑과 7층 목탑이 남면, 동면, 북면 등에 멋지게 새겨있습니다. 마모되기도 해서 찾아보기 힘든 그림도 있지만, 그만큼의 오랜 세월을 느낄 수 있어 그 앞에 서면 그저 경이롭기만 합니다.
어딜 가나 늘 스님께서 먼저 설명하곤 하시는데, 갑자기 묘덕법사님더러 설명해보라 하십니다. 다다음주에 있을 불대생 남산순례에서 이곳은 묘덕법사님이 담당하게 되는 코스라고 합니다. 묘덕법사님이 약간 당황한 모습이었지만, 그래도 기억을 되살려 열심히 설명해주셨습니다. 그런데도 공동체 대중들은 “법사님, 설명이 너무 짧아요. 좀 더 길게요. (웃음)”, “법사님 공부하시라고 일부러 스님이 여기로 오자고 하셨나 봐요” 등 그저 법사님 놀리는 재미에 푹 빠져봅니다.
부처바위의 부처님들께 참배를 마친 뒤 본격적으로 산길을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몸이 아픈 환자들도 몇 있었는데, 스님께서는 “오늘 죽기 살기로 한 번 가보자”며 격려하신 터여서 나름 각오를 다지는 모습들입니다. 그런데 가장 팔팔해야 할 스물 두 살 풋풋한 대학생 친구가 어쩐지 비틀비틀합니다. 스님의 ‘가벼운’ 산책을 곧이곧대로 듣고, 운동화를 신고 온지라 아직 낙엽이 쌓여있는 길이 미끄럽기도 합니다. 나이든 실무자들은 “다음부터는 아무리 스님께서 가볍게 산책하자고 하셔도 중장비를 갖추고 떠나야 한다”며 실실 웃으며 한 마디씩 던집니다. 중장비라고 해봤자 바닥이 덜 미끄러운 등산화를 이르는 말이지만요.
그런데 실제로 예전에 비하면 정말 가벼운 산행이었습니다. 오르막길을 최소화하고, 아주 평평한 길을 택하셨습니다. 중간 중간 자주 쉬기도 하셨습니다.
“내가 언제까지 이렇게 산에 다닐 수 있을까? 최장으로 잡아도 한 십년쯤 될까? 아니면 5년 정도가 최대로 잡은 것이지 않을까?”
누구도 대답을 하지는 않았지만, 왠지 마음 한 구석이 짠해집니다. 우리 스님은 안 늙으시면 좋겠다는 마음 때문입니다. 그렇게나 좋아하시는 산행인데 못할 때를 꼽아보신다니, 이제 스님도 세월의 흐름을 의식하고 계시는 것 같습니다. 스님과 함께 산행을 못할 때가 언젠가 오긴 하겠지만, 오늘은 그저 봄날의 축복을 만끽해봅니다. 스님께서 좋아하시는 연분홍, 진분홍 진달래가 산허리 둘레둘레 어디나 흐드러지게 피어있어 눈이 즐거웠습니다. 키 큰 진달래나무들이 넝쿨을 이뤄 꽃 동굴을 만들어놓은 곳도 많았습니다. 아직 꽃봉오리가 활짝 피지 않은 곳도 있었지만, 3-4일이면 온천지 사방에 꽃 동굴들이 만들어져 장관을 이룰 것 같습니다.
스님 뒤를 종종 따라가면서 여쭤보았습니다. “스님, 스님께서도 여기 남산에서 못 가본 곳이 있으신가요?”
안 가본 곳이 한 군데도 없다는 답변이 돌아올 줄 알았는데, 딱 한 군데 못 가봤다고 하십니다. 아시겠지만 경주 남산에는 약 40여 개의 골짜기가 있지요. 122개의 절터와 57개의 석불, 64개의 석탑 등 불교 유적지가 곳곳에 있고, 수많은 산길이 있어 답사코스만 70여개에 달한다고 하지요.
“비파골이라는 데가 있는데, 거기는 유적지가 별로 없어서 지금껏 가보지를 못했어. 전설은 있지. 무슨 전설이냐면, 옛날 신라시대에 어느 왕이 무슨 낙성식에 참석을 했는데 아주 행색이 남루한 스님이 찾아왔다는 거야. 사람들이 문전박대를 했겠지. 스님이 그래도 왕께 참석하게 해달라고 청하니까 왕이 뭐 허락을 하기는 했는데 ‘어디 가서 왕이 함께 한 불사에 참석했다는 소리를 하지 말라’고 했대. 그러니까 그 스님이 왕한테 ‘왕께서도 어디 가서 진신석가를 친견했다고 말씀하지 마십시오’하고는 구름 위로 사라져버렸다는 거야. 왕이 부랴부랴 그 스님을 따라가 보라고 시켰는데, 신하들이 거기 비파골까지 가보니까 스님은 온데간데없고 발우가 떡 하니 있더라는 거야. 그래서 부처님이 없다고 해서 불무사라고 이름을 짓고 부처님께 공양을 했다는 전설이 있어. 그런데 거기를 내가 못 가봤어.”
아마 머지않아 그곳에도 가볼 날이 있으시겠지요. 봉화대를 지나 칠불암이 내려다보이는 전망바위에서 숨고르기를 한 뒤 하산 길을 잡았습니다. 내려오는 길에는 새갓골 석불좌상이 있는 곳으로 왔는데, 사실 스님께서 보여주고 싶어 하신 부처님은 석불좌상이 아니라, 그 옆에 보호막이 쳐있는 마애불입상이었습니다. 입상이었다는데 무슨 연유인지 부처님 얼굴이 땅바닥에 거의 닿을락 말락 엎어져 있습니다. 그런데 옆모습이 정말 예술입니다. 눈과 코, 얼굴 옆선이 마치 그리스 조각상처럼 아주 뚜렷하고 부드러우며 우아합니다. 본래의 모습으로 복구되면 아름다운 부처님을 만나게 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워낙 무너진 바위의 크기가 거대해서 복구 작업이 만만치는 않을 것 같았습니다. 안타까운 마음을 뒤로 하고 빠른 걸음으로 내려오는데, 내려오는 길이 또 진달래꽃들로 장관입니다. “여기는 남 남산이라고 해. 남산의 남쪽이라는 말인데, 그러니까 봐라, 진달래꽃들이 여기는 더 활짝 폈잖으냐. 저기도 봐라. 저 진달래꽃은 나무가 아주 훌륭하네. 저쪽 옆에도 봐라. 저 멀리도 봐라. 다 진달래꽃들이잖으냐.” 스님께서는 여기, 저기 사방팔방 손으로 진달래꽃을 가리키시며 어린아이처럼 좋아하십니다.
차량 운전자들은 산행 중간에 내려가 차를 미리 하산 지점에 대기해놓고 있었는데, “지금이라도 얼른 올라갔다 와봐라. 조금만 올라가면 진달래꽃들이 아주 멋지다”며 꽃구경을 하라고 권유하십니다. 몸은 어느덧 노곤해졌지만, 스님 뒤를 열심히 따라나선 덕분에 진달래 삼매경에 푹 빠질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남산에서 스승님과 또 한 편의 소중한 추억을 쌓았습니다. 스님 덕분에 서울 공동체 대중들도 진달래꽃을 사랑하게 된 것 같습니다. 스님 감사합니다.
남산을 내려와서는 다함께 목욕을 하고 두북수련원에서 저녁을 먹고 다시 스님과 모임을 가졌습니다.
스님께서는 각자 업무적으로나 개인적으로 논의할 것을 해보자고 하셨습니다.
먼저 문화사업부부터 이번에 나오게 될 스님 책과 관련해서 책제목부터 언제쯤 어떤형식으로 나올 것인지에 대해 의논하기도 하였고, 평화재단 교육원과는 다음에 있을 평화리더십 경주역사기행과 관련하여 숙소등을 답사한 것을 가지고 어떤 숙소로 할 것인지등에 대한 논의를 하였습니다.
또, 4월 마지막주에 한국을 방문할 필리핀 송코 마을 사람들의 한국일정과 숙소, 차량등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논의하였습니다. 그 외에도 여러 부서들이 스님과 함께 고민되는 것들을 논의하였습니다.
오늘 모임은 다들 산행후 피곤할 것을 감안해서 9시 30분경에 마쳤습니다. 내일은 오전 11시 30분에 평화재단에서 모임이 있으셔서 아침 7시에 모두 함께 출발하자고 하시면서 하루를 마무리 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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