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15.3.30. 법륜스님과 함께 하는 통일학교 제1강


 

 

오늘 새벽 330분에 기상하신 스님께서는 새벽 기도 후 530분에 아침공양을 하시고 서울로 출발하기 전에 탑곡으로 산책을 나가셨습니다.

 

 

 

작년에 봤을 때 약간 특이한 색깔의 진달래가 있었는데, 다시한번 그 진달래꽃을 관찰하기 위해 탑곡 저수지로 향했습니다. 작년에는 탑곡으로 오는 시기가 늦어져 진달래꽃을 많이 보지 못했었는데, 오늘 가보니 온산에 진달래가 활짝 피어 있었습니다. 분홍빛깔의 특이한 진달래꽃도 피어 있어서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어 좋았습니다.

 



 

 

스님께서는 예전에는 진달래꽃으로 꽃망방이를 만들 수 있을 만큼 오졌는데, 요즘은 그렇지 않다고 하시면서 직접 꽃송이가 많은 꽃을 보여주며 설명해주셨습니다. 요즘 우리가 보는 진달래는 꽃이 2-3개씩 달렸는데, 스님이 보여주신 진달래는 5개의 꽃이 한꺼번에 달려 있어 보기에도 훨씬 풍성해보였습니다.

 

 


 

 

스님께서는 탑곡을 떠나 돌아오는 길에 부모님 산소에 잠깐 들러 산소상태를 체크하신 후 서울로 향했습니다.

 

1130분에는 평화재단에서 예전에 스님께서 가르친 제자분과의 만남이 있었습니다. 현재 큰 회사의 사장님이신데, 스님께 인사도 드릴 겸, 또 강의 요청도 할 겸 찾아오셔서 점심식사를 하면서 환담을 나누셨습니다.

 

그리고 지난번에 스님께서 민중미술가이며 설치미술가이신 임옥상 미술작가님이 하시는 헌법을 다시 읽읍시다.’는 운동에 후원을 하신 적이 있는데, 임옥상 작가님께서 헌법 읽기 운동을 후원해주신 분들께 헌법을 새긴 종이병풍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직접 검은색과 흰색 종이에 헌법을 새겨서 병풍처럼 만든 것인데, 보기에도 너무 정성스럽고 감동스러워 보였습니다.

 

 

 

오후 2시부터는 서울 서초법당에서 법륜스님과 함께 하는 제 1기 통일학교가 열렸습니다. 이날 강의는 사전에 접수한 사람을 대상으로 한 집중 밀착 강의였습니다. 시작 30분 전부터 이미 많은 대중들이 속속 모여들어 자리를 잡고 앉습니다. 보통의 법회나 강의와는 다르게 법당에는 통일학교 학생을 위한 100여 개의 앉은뱅이 책상이 마련되어 벌써 학교의 분위기가 물씬 났습니다. 이미 오래 전부터 기획되고 기다려온 강의이기에 시작 전부터 조용한 가운데서도 기대감이 흘렀습니다. 통일의병학교는 오늘 입학을 시작으로 마지막 역사기행까지 총 6강으로 진행이 됩니다.

스님께서는 먼저 의병이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으로 강의를 시작하셨습니다.

 

 

 의병이 무엇입니까? 의병은 관병에 반대되는 말, 즉 정규군이나 직업 군인이 아닌 민간인이 자발적으로 일어나서 하므로 보통 민병이라고도 부릅니다. 의병이라는 용어는 조선시대 이후의 용어고 그 전에는 주로 민병이라고 썼습니다. 의병의 역사를 살펴보면 우리나라 최초의 의병은 다물군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고조선 말기에 중국에서 한군이 고조선을 침략했는데 이것이 단군 조선 이래 최초의 외세침략일 겁니다. 이때 관병이 전쟁에서 지고 나라가 망하니까 관병이 해체돼 버렸습니다. 그러나 애국심이 강한 민간인들이 스스로 일어나서 한사군에 대항하며 한군을 우리 강토에서 몰아내고 조선의 옛 땅을 회복하자, 우리 조국을 되찾자는 민병운동이 일어납니다. 이게 다물군입니다.

 

다물군에 참여해 그것을 계승한 사람이 고주몽이라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고구려는 건국이념이 다물사상이예요. 그냥 나라 하나를 세우는 게 목적이 아니고 고조선의 옛 땅을 되찾자는 큰 원을 가지고 시작이 된 거에요. 때문에 고구려는 고조선을 이어서 동북아 대륙에서 제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어요. 그 후에도 나라마다 시대마다 민병이 있었지만 조선시대에 이르러 임진왜란, 병자호란을 겪으면서 의병이 눈부신 활약을 합니다. 대한제국 시기에는 일본제국주의에 저항해서 1차 의병봉기, 2차 의병봉기가 있었고 이 의병운동을 계승해서 나라 밖에서 독립군이 조직됐습니다. 잃어버린 나라를 되찾는 정의로운 뜻을 가지고 자신의 목숨을 걸고 재산을 다 바쳐 헌신했지요. 이를 일컬어 의병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의병은 첫째, 누가 시켜서 한 게 아니고 자발적으로 일어난 사람들이에요. 이 사람들은 꼭 싸워야 할 책임과 의무가 있는 것도 아니고 후원을 받는 것도 아니에요. 무기도 식량도 의복도 자기가 알아서 구해야 돼요. 다만 나라를 구하고 백성을 구하는 두 가지 이유를 위해. 그래서 나라가 위태로울 때와 백성이 고통 받을 때 의병이 일어납니다. 그런데 이 의병은 반군하고는 달라요. 반군은 나라가 제 역할을 제대로 못할 때 임금을 갈아치우고자 일어나서 관군과 싸우지요. 그러니까 의로운 면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권력을 잡으면 보상이 따르죠.

 

그러나 의병은 반군이 아니에요 정부군과 싸우는 게 아니에요. 제 역할을 못한 나라, 그 관군을 도와서 나라를 구하고자 하는 겁니다. 의병은 실패하면 목숨도, 재산도 다 잃습니다. 비난도 받습니다. 그러나 관군은 죽으면 국립묘지에 안장된다든지 인정을 받습니다. 그럼 성공을 하면 어떠냐. 관군은 출세를 합니다. 반군은 권력을 잡으니까 이 또한 이득을 얻죠. 근데 의병은 승리해도 아무 얻는 게 없어요. 자기 본래 직업으로 돌아가야 해요. 때로는 관군으로부터 공로에 대해서 시기, 질투를 받고 모함을 받아 오히려 희생이 될 때도 많습니다. 그러니까 관병하기가 제일 쉽고 두 번째 반군은 위험도 따르지만 잘하면 보상을 받는데, 의병하기가 제일 어려운 겁니다.

 

 

 

그러니까 오로지 나라와 백성을 구하기 위해 정의로운 생각으로 나서는 것이지 어떤 이익을 추구한다면 의병을 할 수가 없습니다. 이런 데서 의병의 성격이 규정됩니다. 비전문적이고, 자발적이며, 자급을 하는 사람들, 그리고 성공하면 자기 직분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의병은 관군을 도와야 합니다. 그런데 의병이 관군에 아무리 지극히 협력을 하더라도, 관군은 의병을 달가워하지 않고 경우에 따라 오히려 사지로 내몰기도 합니다. 의병은 처음부터 이런 걸 감수해야 합니다. 이런 점을 알고, 여러분들이 의병이 되어야 합니다. 통일의병이라는 용어가 부담스럽다고 바꾸자는 의견이 많았는데 성격상 의병이라는 말이 가장 맞아요.”

 

스님의 재치 있는 설명에 간간이 웃음이 터지기도 했지만, 강연은 어느 때보다 숙연하고 진지한 분위기 속에서 계속됐습니다. 스님께서는 그렇다면 왜 지금 이때 통일의병이냐?”는 질문을 던지시며 강연을 이어가셨습니다.

 

의병이라는 것은 백성이 처한 고통을 해결하고자 일어나는 겁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나라가 처한 가장 큰 어려움, 국민의 가장 큰 어려움이 바로 분단에 있다는 인식이 있어야 통일의병이 일어납니다. 마치 일제 식민지배가 그 당시 백성이 처한 가장 큰 고통이라는 인식에서 항일독립의병이 일어났듯이, 분단상황에 대한 문제인식이 있어야 통일운동이 일어날 수 있습니.

 

 

  

 

그런데 그런 인식이 없는 이유는 두 가지에요. 하나는 이해관계, 즉 같은 백성이라 하더라도 외세의 침략에 큰 손실을 보는 집단이 있는 반면, 오히려 이익을 보는 집단이 있어요. 이익을 보는 집단에서는 외세의 지배를 반대할 이유가 없겠죠. 두 번째는 식민지배가 많은 불이익이 있어도 당장 눈앞에 보이는 일이 아니고, 사회 구조적인 문제라 고통의 본질을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모든 국민이 이런 문제를 올바르게 인식하기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다들 자기 사는데 급급하기 때문에 출발할 때는 올바르게 인식한 사람은 소수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그 소수의 사람들이 거병을 해서 그들의 주장이 세상에 알려지고, 또 어느 정도 성과가 있어야 합니다. 계란으로 바위치기다 하면 대중 참여가 이뤄지기는 어렵습니다. 일정한 성과가 있어서 가능성이 열리면 대중 참여는 폭발적으로 늘어납니다. 거기까지 만드는 게 사실 제일 힘들어요. 가능성 있는 데까지 끌어올리는 데 열정과 시간이 가장 많이 듭니다. 우리가 지금 거기까지 만들어가야 합니다.

 

그럼 통일에 있어 관군은 누구일까. 첫째 정부, 그중에서도 통일부가 대표적이죠. 국방부도 막강한 힘이 있습니다. 이런 주체들이 관군이라 할 수 있죠. 관군을 지원하는 통일연구원이나 민주평통 같은 준 관군도 있습니다. 이런 관군이 통일을 추진하는데 역부족이라면 밀어줘야 하고, 추진할 생각이 없다면 비판을 해야겠죠.

 

옛날 같으면 임금이 나라의 주인이기 때문에 임금이 안하겠다고 하면 방법이 없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떻습니까? 국민이 주인이니까 정부가 국민의 의사를 대변하지 못하면, 정부를 비판할 수 있어요. 그런데 여기에서 오해가 생기는 것 같습니다. 정부를 비판하거나 하면 반군이 되는 것 아니냐 하는 걱정이 그겁니다. 아닙니다. 민주국가에서 정부를 비판하거나 교체하는 것을 반군이라고 하지 않아요. 왜냐하면 지금은 국민이 주인이기 때문에 국민의 의사에 맞지 않게 정부가 운영되거나 통일을 위해 노력하지 않는다면, 국민의 이익을 대변하도록 요구하고 또 통일을 지향하는 정부를 구성하도록 여론을 형성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의병의 역할입니다.”

 

참가자들은 스님의 한 말씀, 말씀마다 깊이 호응하면서 높은 집중력을 보였습니다. 스님께서는 여기까지 말씀하시고, 그렇다면 지금 국민의 가장 큰 고통이 과연 분단 때문인가 검토해보자고 하셨습니다. 크게 국내요인과 국제요인이 있는데, 우리나라의 경우 국제정치의 영향을 더 크게 받는다고 하셨습니다. 그중에서도 최근 중국이 급격히 부상하면서 우리를 둘러싼 역학관계, 즉 힘의 관계가 변화하고 있어 통일을 하지 않으면 앞으로 더 어려운 상황이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현재 국제정치 역학을 설명하기 전에, 분단 70년의 역사를 먼저 짚어주셨는데, 지난 1945년 전후로 국제 정치의 역학이 어떻게 변해왔는지, 그에 따라 왜 우리가 이런 분단 상황을 맞게 됐는지 설명해주셨는데, 정말 이해하기가 쉬웠습니다. 학교에서 1945년 전후의 세계사와 국내 상황을 배울 때는 세력의 충돌과 계파가 하도 많아서 굉장히 복잡하고 어렵다는 생각을 해왔는데, 스님 설명 덕분에 통시적으로 그러면서도 맥락을 잘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1945년 이전은 어땠냐. 일본제국주의의 식민지배 시대였고, 우리는 그에 저항했지만 힘이 못 미쳐서 스스로 독립을 쟁취하지 못했어요. 일본제국주의와 적대관계로 대항하고 있던 것은 연합군이었습니다. 연합군의 주축은 미국과 소련이었고, 작게는 중국도 있었죠. 이런 상황에서 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이 연합국에 패망하면서 국제 질서는 연합군으로 함께 활동하던 미국과 소련이 양대 세력이 된 거예요. 당시 중국은 항일을 하던 세력이 둘이었는데, 장개석이 이끄는 국민당과 모택동이 이끄는 공산당이었습니다. 이 둘도 경쟁관계에 돌입하게 됩니다. 일본이 패망하자, 한반도는 전후처리를 두고 연합국들 사이에 경쟁이 벌어지게 됩니다.

 

남측은 미국의 후원을 받는 세력이, 북측은 소련의 후원을 받는 세력이 장악하게 되죠. 우리로서는 상해임시정부가 정통인데, 이미 들어와 있는 미국이나 소련으로서는 자기네들이 후원하는 세력이 주도하길 바랐습니다. 그래서 임정요원들은 남북 양쪽으로부터 환영을 받지 못했지요.

 

그런데 당시 미국이 군사적으로나 정치적으로, 그리고 경제적으로 우위에 있었지만, 국제 여론은 인민해방의 기치를 걸었던 소비에트가 더 컸어요. 봉건제에서 근대로 넘어오는 개혁, 혁명, 즉 민족해방이든 계급해방이든 여성해방이든 토지개혁이든, 공산주의나 사회주의가 명분 면에서 훨씬 앞섰던 거죠. , 우리 독립운동가 중에도 한반도의 지형지세로 보면, 중국 공산당의 동북항일연군에 참여한 사람은 압록강과 두만강을 드나들며 전투력을 발휘하고 있었고, 소비에트도 한반도와 연계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북쪽은 소비에트가 자기 세력을 형성하기가 어렵지 않았는데, 미국은 이남에서 자기 세력을 형성하는데 상당히 어려움이 따랐습니다. 미국이 후원하는 사람들이 한반도에서 무장투쟁을 할 수가 없었잖아요. 그래서 미국은 남한 내에서 주도를 잡는데 많은 반대에 부딪혔습니다. 미국이 미국에서 공부한 소수의 사람으로 중심을 세우면서 다수의 반대에 부딪쳤기 때문에 이런데서 남한 안에는 사회적 갈등이 많이 생겼습니다.

 

 

 

북한은 이런 남한 내부 정세를 보고, 힘으로 밀어붙이면 통일할 수 있겠다 판단해서 전쟁을 일으켰죠. 사실 이 판단은 비교적 정확해서 한 달 만에 부산까지 밀고 내려왔습니다. 그런데, 내부 정세는 정확했지만, 국제정세를 오판했습니다. 국제정세 측면에서 보면 당시 미소경쟁이라고 하지만 미국이 최대 세력이었고, 미국이 용납을 안 하니까 UN에서 침략으로 규정받고 미국을 비롯한 UN군이 참전을 하게 된 것입니다.

 

미국의 참전으로 당장 전세가 뒤바뀌어서 이북으로 막 밀고 올라가니까 이번에는 중국이 나섭니다. 38선 위로 올라오면 자기네에 대한 위협으로 간주하겠다고 경고한 것이지요. 당시 중국은 1949년도에 국·공 내전에서 공산당이 승리하고 겨우 공산정부를 수립했는데 미군이 올라오니까 자기들 체제가 위태롭다고 보지 않았겠어요? 평양까지 올라가니까, 이것은 우리에 대한 침략으로 간주하겠다고 하고는 100만군이 들어온 것입니다. 그들 말로는 항미원조전쟁에서 참여한 것이지요.

 

이렇게 오르락내리락 하다 보니 시간은 흐르고, 어느 한쪽의 일방적 승리는 어려울 것 같으니 1953년에 휴전협정을 맺습니다. 그 전에는 북한에도 북한정부에 반대하는 세력이 있고, 남한에도 남한정부에 반대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전쟁을 거치면서 각 진영내 반대세력은 모두 말살되다시피 합니다.

 

미국은 점점 초강대국이 되니 미국이 후원하는 한국은 점점 발전하고, 반대로 북한은 소련의 세력이 축소되는데다, 소련과 중국이 싸우면서 주체경제를 내세웠지만 경제가 점점 취약해집니다. 처음에는 북쪽이 우세했지만 점점 남쪽이 경제를 성장시키면서 70년대 들어 남북한 양쪽의 세력이 비슷해지면서 이제는 누구도 어느 일방이 다른 일방을 흡수하는 게 불가능하다는 자각이 생기면서 탄생한 게 7.4 남북공동성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다 90년대 들어 세력판도가 급속도로 바뀌게 됩니다. 소련이 붕괴되고 동유럽이 해체되고, 미국이 세계 유일한 초강대국이 되죠. 한국은 미국과 동맹관계를 맺고 있으니 안보가 튼튼하고 미국과의 경제협력으로 국제무대에서 더욱 성장해갑니다. 북한은 공산진영 자체가 붕괴되니 판로가 없어지고 미국의 경제봉쇄 정책으로 자본주의 사회와는 차단돼 있어 급속히 경제가 추락합니다.

 

 

 

중국은 개혁개방을 하면서 다시 일어났지만 체제의 성격이 바뀌었죠. 정치는 사회주의라지만 경제는 시장경제로 바뀌어, 북한과 정치적으로 안 맞아서 북중 사이에 갈등이 심화됩니다. 이러니까 북한은 더욱 체제붕괴위험에 몰리게 됩니다. 경제를 회복할 가능성도 없고 안보가 불안하니까 핵을 개발하는 쪽으로 가죠. 이런 상황에서 2000년대 6.15 공동선언이 일어납니다. ‘남북한이 각자의 체제를 인정하고 평화통일을 위해서 상호협력하자.’ 이렇게 됩니다. 이런 역사의 흐름을 살펴보면 국내 변화는 국제 변화와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스님 말씀 덕분에 우리나라가 국제정치 상황에 많은 영향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일목요연하게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10년 전부터 중국이 급부상하면서 미국과 함께 이른바 ‘G2’ 시대에 돌입하면서 또 다시 달라졌습니다. 남한은 중국이 부상하면서 경제적인 필요 때문에 20년 전에 한중수교를 맺은 바 있습니다. 중국이 급속히 성장하면서, 경제적으로 대중의존도도 급격히 심화되는 상황입니다. 한중교역액이 한미와 한일교역액을 합친 것보다 1.5배나 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정치적으로나 안보적으로는 여전히 미국의 절대적인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즉 경제로는 중국의 눈치를 봐야 하고, 안보적으로는 미국의 눈치를 봐야 합니다. 스님은 이런 상황에 대해, 역사적으로 고려말 원청 교체기와 조선 중기 명청교체기’, 그리고 구한말 청일교체기와 비교하면서, 그 시점마다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해왔고, 어떤 결과를 맞았는지 설명해주셨습니다.

 

우리는 늘 대륙세력의 교체기에 우리끼리 싸웠습니다. 명나라와 원나라가 교체되던 시기에 고려말 기득권 세력은 원나라를 지지하고 신진세력은 명나라를 선택해서 이성계의 반정으로 조선을 건국했습니다. 그러면서 명나라에 자발적으로 사대주의를 선택했습니다. 명나라와 청나라 교체기에는 어떻습니까? 명나라에 대한 의리와 명분을 이유로 청나라와의 화친을 반대하는 세력이 많아서 두 번의 침략을 받고 결국은 패해서 속국이 돼버렸습니다. 삼전도의 굴욕을 다 들어보셨을 겁니다. 구한말에는 청의 지배를 받던 시기였는데 일본이 부상하니까 다시 우리나라에서 각축이 벌어졌습니다. 주변세력을 등에 업고 우리끼리 자중지란을 일으키고 결국은 일제에 나라를 빼앗겨 버렸습니다.

 

일제 강점기말에는 일본이 주변 연합군과 싸우다가 망해버렸습니다. 만약 일본이 어느 한 나라와 싸워서 망했다면, 또 그 나라의 속국이 됐을지 모르지만, 연합군과 싸우다가 망하니까 그 연합국이 후원했던 세력이 제각각이라 우리 내부에서 또 여러 갈래로 분열하게 된 것입니다.”

 

스님 말씀을 듣다보니, 우리는 역사의 중요 고비마다 내부 분열 때문에 미래를 안전하게 선택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히려 전쟁위기와 참화를 겪어야 했습니다. 스님께서 우리 민족은 발해 멸망 이후 천년 동안 주변 강대국에 좌우되는 약소국으로 전락했고, 그것이 지금껏 유지돼왔다며 지금도 마찬가지임을 짚어주셨습니다.

 

중국이 부상하면 앞으로 어떻게 될지 유동적인 상태입니다. 중국이 완전히 뜨는 해가 될지, 아니면 뜨다가 가라앉을지, 미국이 예측대로 서서히 가라앉을지, 아니면 다시 부상할지 지금으로선 알 수 없습니다. 그런데 북한 정부는 아직도 중국에 고개 숙이기를 거부하고 있어요. 그러니까 저 정부가 굉장히 문제가 많은 정부이지만, 통일의 시각에서 보면 아직 유리한 점이 있습니다. 반대로 북한 정부가 얼마 못 버티고 중국에 고개를 숙이면, 통일은 더 어려워집니다.”

 

 

 

스님께서는 통일 후의 전망에 대해서도 잠깐 말씀해주셨습니다. 통일을 하면 저성장 정체기에 접어든 한국 경제의 활로를 찾을 수 있고, 동아시아의 통합과 평화에도 큰 기여를 할 수 있다는 말씀이셨습니다. 그러나 역시 문제는 우리였습니다.

 

통일된 한국이 미국에 붙을지, 중국에 붙을지에 따라 동북아 정세가 달라집니다. 이런 점을 생각하면 주변국들 입장에서는 남북한이 통일을 하지 않는 것이 안전합니다. 그러니까 통일을 하려면 어때요? 우리의 통일이 너희 두 나라에 손해가 아니라는 것을 설득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통일을 하겠다고 우리가 마음을 똘똘 뭉쳐도 그들을 설득하기가 만만치 않은데, 우리 내부가 분열돼있기 때문에 그리고 국제정세의 흐름을 본다면 90%는 계속 분단상태로 갈 가능성이 높다고 보면 됩니다. 그러면 우리에게 희망은 없습니다.

 

우리 개인적인 삶은 어때요? 우리 까르마(업식)를 보면 대충 미래가 예측되잖아요? 우리 업식도 바꾸기가 굉장히 어렵죠. 그래도 한 번 바꿔보자는 것이 수행아닙니까? 가만히 있어도 성불할 바에야 우리가 뭣 하러 수행하겠습니까? 그냥 기다리면 되는 거죠. 통일도 마찬가지입니다. 가만히 있어도 통일이 된다면 뭣 하러 노력하겠습니까? 그런데 그냥두면 안 되니까 우리가 나서서 ㅂㅏ꾸어 보자는 겁니다.

 

통일만이 전쟁의 위험을 막는 항구적 평화요, 희망입니다. 더 나아가서는 발해 멸망 이후 천년 넘게 주변국으로 전락해서 늘 우리의 운명이 주변 강대국의 운명에 좌우되는 신세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기회입니다. 즉 통일은 우리 민족이 천년의 한을 푸는 일이고, 천년의 꿈을 이룰 수 있는 기회입니다. 이런 역사적 전환기에 우리가 의병으로 일어나 통일을 위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다면, 그게 부담이 아니라 큰 은혜요, 혜택을 입은 거라 볼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아직도 우리는 옛날에 왕이 주인이던 시대의 백성 의식이 있어서 주인들이 안 하는데 우리보고 어떻게 하라는 거냐이렇게 생각합니다. 그러면 안 됩니다. 이제 국민이 주인이니, 이것은 내가 해야 할 일이다이런 인식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통일의병이 되어 통일운동을 한번 일으켜보자는 것입니다. 정토회 창립의 꿈이 하나는 불교중흥이고, 하나는 민족중흥인데, 민족중흥의 핵심은 분단된 나라를 통일해서 천년의 한을 풀어 천년의 꿈을 실현시켜보자는 것입니다. 이제 이 두 가지를 시도해볼 때가 왔습니다.”

 

 

 

의병이 무엇인지 의미를 규정하면서 시작했던 첫 강의는, 이렇게 우리가 왜 통일의병이 되어야 하는지 당부 말씀으로 끝났습니다. 2시간여 짧다면 짧은 시간이었지만, 스님의 첫 강의는 우리에게 천년의 꿈을 되살려주었습니다. 강의가 끝나자 누구랄 것 없이 한 마음으로 뜨거운 박수를 보냈습니다. 정토회 김은숙 행정처장의 입학 환영 인사가 이어졌는데, 감동의 여운이 가시지 않았는지 목소리가 살짝 떨렸습니다. 김은숙 처장은 이젠 정말 통일을 이룰 시간과 기회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앞으로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에 가슴이 두근 거린다며 감동받은 소감을 나눠주었습니다.

 

 

 

통일의병, 하자, 하자, 하자라는 구호 선창에 따라 힘차게 외치며 사진기를 향해 함박웃음을 짓는 새내기 의병들의 모습을 보니, 그 어떤 장애와 곤란이 오더라도 희망하는 이가 있는 한 꿈은 꼭 이뤄질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의병 정신으로 우리부터 똘똘 뭉치면, 통일을 앞당길 수 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강의 후 스님께서는 앞으로 5일동안 계속 진행되는 통일학교 강의를 위해 강의내용을 정리하시는 등 서울정토회관에서 업무를 보셨습니다.

 

내일은 아침 7시에 기획위회의, 통일학교 제2, 청년리더십아카데미 입학식에 참여할 예정입니다.

전체댓글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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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이한 진달래 꽃빛깔을 보러 일부러 가시는 모습이 참 낭만적이시네요..저렇게도 힘이 드신 큰꿈을 이끄시고 설하시는 스님은 얼마나 또 힘드실까요 ㅠ노트필기사진위에,까만글씨에 "원청교체기"는 <원명교체기>로 바꿔야하는거 아닌가요?저도 역사를 잘 몰라 잘은 모르겠지만요^^

2015-04-04 22:33:09

해탈광

우와!!!!!! 도대체 스님의 뇌의 용량은 얼마실까요?? 번번히 감동스럽스럽습니다. 처음 스님을 유트브 즉문즉설로 뵈었을때 질문을 미리 받아 밤사이 준비해서 그걸 일러주시는가 했었답니다. ^^;; 그뒤 불대와 경전반을 스님좇아 졸업을 하기까지 한번도 흐트러진 빈곳을 찾지 못했으니 스님 정말 내게는 부처님이십니다. 고맙습니다.

2015-04-03 06:30:36

이상주

직접 공부했는데 다시 복습하니 좋네요. 고맙습니다

2015-04-02 11:2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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