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15.3.31. 통일학교 제2강, 제9기 청년리더십아카데미 입학식등

 

 

스님께서는 새벽 5시에 예불과 기도를  대중들과 함께 하고 발우공양도 함께 하셨습니다.

 

 
 

스님께서는 오늘 대중공사 시간을 통해 지난 일요일에 서울공동체 대중들이 경주 남산을 다녀와서 다들 몸이 괜찮은지 확인하시면서 특히, 몸이 좋지 않은 대중들을 한명한명 거명하면서 확인하셨습니다.

 

, 이번 주말에 있을 청년정토회에서 진행하는 경주역사기행에 서울공동체 대중들도 함께 하자고 하시면서 언제 경주로 이동할 것인지, 코스를 어디로 할 것인지에 대한 이야기도 함께 의논하였습니다.

 

그리고 어제 필리핀에서 그동안의 활동을 마치고 들어온 이재곤 법우님에게도 지난 28개월간 필리핀에서 학교 짓는다고 수고했다고 격려해 주시기도 하셨습니다.

  

 

대중공사가 끝나자마자 스님께서는 7시부터 진행된 기획위 회의에 늦었다면서 바삐 움직이셨습니다.

 

11시가 넘어 기획위 회의를 마친 스님께서는 유수스님과 평화재단에서 점심공양을 한 후 2시 통일학교 제2강을 위해 정토회관으로 오셨습니다.

 

스님께서는 어제 강의가 어려웠어요? 내가 중학생 실력도 안 되는 사람들을 모아놓고 가르치는 것은 아니지요?”라며 웃음 섞인 말씀을 던지셨습니다. 어제 강의가 어려웠던 사람은 손을 들어보라니까 손든 사람이 없었습니다. 강의가 어려웠다고 말씀을 전한 분이 유수스님이었던지, “여기 어렵다는 사람이 한 명도 없는데, 혹시 유수스님만 중학생 실력도 안 되는 것이 아니에요?”고 하셔서 다들 왁자하게 한바탕 웃어댔습니다.

  

분위기가 화기애애하게 풀어지자, 곧장 강연으로 들어갔습니다. 어제는 의병이 무엇인지, 그리고 왜 지금 우리가 통일의병이 돼야 하는지에 대해 우리 근대사를 국제정세와 연관 지어 설명을 해주셨다면, 오늘은 앞으로 남은 강의들이 어떻게 진행될 것인지 간단히 정리해주셨습니다. 불교식으로 하면 고집멸도에 해당하는 구성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정확하게 지금의 우리가 겪고 있는 문제점을 알고, 이 문제점의 원인을 정확하게 알고, 이 문제를 해결한다면 어떤 희망이 있느냐, 그렇게 가기 위해서 지금 우리는 무엇부터 어떻게 하나하나 실천해나가야 하겠느냐. 그러니까 개인 수행처럼 자기 까르마(업식)로 인해 형성된 이 고통을 어떻게 극복해야겠느냐? 업식으로부터 어떻게 자유로워야 되겠느냐? 어떻게 변화시켜야 하겠느냐?’ 이런 시각에서 우리 사회문제도 바라볼 수 있습니다. 개인의 수행 차원에서의 고집멸도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도 나름대로 까르마를 갖고 있으므로, 어떻게 이 까르마를 극복해서 정토를, 통일조국을 건설할 수 있겠느냐, 이런 시각에서 공부를 해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제는 고()에 대해서 진단을 했다면, 오늘부터는 원인에 대해서 여러 각도에서 살펴봐야 합니다. 남북한이 처해있는 고통의 현실에 대해서도 더 세세하게 진단을 해봐야 해요. 이런 문제를 극복한 통일국가는 어떠해야하는지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말로만 통일해야 한다고 하지, 사실 통일이 되면 뭐가 좋은지 확실히 안 잡히지 않습니까? 그저 막연하게 이산가족이 만난다든지, 아니면 땅덩어리가 넓어진다든지 이런 것들이죠. 통일이 되면 구체적으로 내 삶의 현실에서 어떤 점이 좋아지는지도 알아야 합니다.”

 

분단이 왜 우리의 삶을 고통스럽게 하는가. 왜 분단이 우리 고통의 최대 원인이 되는가.’ 어제 강의에서 이것을 알아야 우리가 왜 통일을 해야 하는지 확연히 알 수가 있다고 하셨던 말씀이 자연스레 떠올랐습니다. 과연 통일 문제가 고집멸도에 어떻게 대입되는지, 스님 말씀을 계속 집중하며 들었습니다.

 


 

우리가 통일을 과제로 안고 있는데, 이 과제는 분단이 돼있어서 그렇고, 이 분단이 된 이유는 무엇인지, 우리가 왜 극복하기 어려운가 이것을 역사적으로 짚어봐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통일강좌 기간 동안 역사공부를 적어도 2회 정도는 해야 합니다. 역사를 돌아본 뒤에는 그 다음 단계로 남북이 분단된 뒤, 북한은 북한대로 나름대로 발전해왔고 남한은 남한대로 발전해 왔는데, 북한은 현재 무엇을 과제로 안고 있는지, 남한은 또 어떤 성과와 과제를 안고 있는지 각각에 대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각각의 체제에 살고 있는 국민들의 고통이 무엇인지 이것이 진단돼야 합니다.

 

그런 연후에 이것을 극복하기 위해 우리가 통일로 가야한다고 할 때, 통일이 되면 구체적으로 어떤 이익이 있는지, 통일된 국가는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 또 어떤 과정을 거쳐서 통일을 달성할 수 있는지, 이런 실천 방향들을 살펴봐야 합니다. 이것이 불교에서 말하는 고집멸도입니다.”

 

스님 말씀을 듣다보니, 부처님의 가르침이 사회 문제를 인식하고 통찰하며, 해결책을 모색하는데도 아주 유용한 방법론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됩니다. 고집멸도 방법론에 입각한 통일강좌라니, 세상에 이런 강의가 또 있을까요? 부처님의 가르침을 정확히 이해하고, 또 그 가르침을 현실에서 치열하게 실천해온 스승님이 계셔서 가능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늘은 원인분석으로 상고사를 공부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상고사라고 하면, 우리에게는 옛날 옛날 아주 옛날, 전설 따라 삼천리식의 신화로 남아있습니다.

 

스님 설명에 따르면, 삼국유사에는 옛날 하느님의 아들, 환웅이 하늘세상에서 인간세상으로 하강했다. 그때 천부인 세 개를 가지고, , 구름, 바람을 다스리는 신하를 거느리고 신시를 건국했다. 그때의 건국이념이 홍익인간 재세이화이다. 널리 백성을 이롭게 하고, 하늘에서의 이치를 인간 세상에 그대로 한 번 실현해보겠다는 이념이다. 이렇게 해서 환웅천황이 배달나라를 건국했다. 그때 곰과 호랑이가 사람 되기를 원해서, 마늘과 쑥을 먹고 동굴에서 100일을 어떤 곳에서는 21일을 있으라고 했더니, 호랑이는 뛰쳐나가고 곰은 여자가 됐다. 결혼처가 마땅치 않아 신단수 아래에서 빌었더니, 환웅이 부인으로 맞아 단군이 태어나셨다. 단군이 왕위에 올라 나라 이름을 조선이라고 했다. 조선의 역사가 시작됐다.”고 간략하게 기록돼있을 뿐이라고 합니다.

 

부에서는 삼국유사가 고려시대에 써진 점을 들어, 고려가 몽골의 침략을 받게 되자 민족의식을 고양시키려는 목적으로 이런 설화 또는 신화가 만들어진 것이라며 역사성이 없는 것으로 치부해왔습니다. 사실 일연스님이 삼국유사를 썼던 목적은 고구려, 백제, 신라즉 삼국의 역사를 정리하려는 것으로, 배달나라와 조선나라의 역사는 그저 뿌리를 설명하기 위한 도입부에 해당하는 것이었습니다.

 


 

환웅시대와 단군시대의 역사기록이 보다 상세하게 남아있는 책은 환단고기라는 책입니다. 환웅과 단군, 즉 환단의 옛 이야기를 적은 책입니다. 그런데 일제시대를 거치면서 식민사관이 우리 주류 사학으로 자리 잡는 바람에 이 책이 진위논쟁에 휘말려 제대로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는 현실입니다. 한쪽에서는 우리도 한때 광활한 영토를 지배한 제국이었다고 열광하며, 환단고기를 도인들 사이에 전해 내려온 비서(秘書)로 추앙하는 반면, 다른 한쪽에서는 환단고기에 열광하는 사람들을 환빠라고 경멸하며, 상상책에 불과한 내용을 마치 역사의 사실인양 호도하고 있다고 맞섭니다. 역사에 별 관심이 없는 일반인들로선 어느 것이 맞는 말인지 어리둥절할 뿐이지요. 그런데 스님께서는 이 역사책에 쓰인 내용을 100% 진실이라고 볼 수도 없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지어낸 이야기로 치부해서도 안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무엇이든 늘 역사의 맥락에서 진실이 무엇인지 살펴봐야 한다는 말씀이셨습니다.

 

이 환단고기가 옛 기록 그대로 남아있다면 논란이 없을 텐데, 고구려가 망하면서 다 유실됐다가 발해 시대에 일부 복원됐다가, 또 발해가 망하면서 유실됐다가 고려 시대에 일부 복원되고, 또 고려가 망하면서 유실됐다가 조선 시대에 일부 복원되는 등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기록이 축소되거나 소실되어왔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 진본이라고 하기에는 몇 가지 부족한 점이 있는 것이 사실이죠. 그러나 중간에 기록하는 과정에서 일부 문제가 있다고는 해도, 현재 고고학의 발전에 따라 사실로 입증되고 있는 것들을 보면서 우리 옛 선조들의 역사를 다시 정립할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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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우리 선조들은 일찍이 종이기술이 발달해서 고구려의 경우 역사서만 100여 종이 넘고, 백제에도 많은 역사책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런데 당나라에 패망한 뒤 대부분 불타 없어졌다고 하지요. 백제는 더더욱 그 찬란했던 과학기술과 문화예술을 입증할 수 있는 기록물이 사라져 정말 안타까울 뿐입니다. 어떤 나라든 패망하면 역사에서 잊히기 마련이라지만, 그 후손들이 역사를 복원하기는커녕 식민사관에 물들어 제 뿌리조차 모르고 살아간다는 게 부끄럽기도 합니다.

 

스님께서는 역사교육의 식민사관을 빨리 극복하지 않으면, 민족 정체성의 혼란이 계속될 것이라고 말씀하시면서, 상고사 얘기를 이어가셨습니다.

 

상고사는 크게 환인시대, 환웅시대, 단군시대 3개로 나눕니다. 환인은 임금의 이름으로, 그때의 나라는 한나라입니다. 환웅의 배달나라’, 단군의 조선나라이렇게 3개입니다. 우리가 배달의 자손이라고 말하지 않습니까? 우리나라의 국호는 대한민국인데, 여기에 한이 또 들어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이름을 대표적으로 쓴 것은 이렇게 한나라’, ‘배달나라’, ‘조선’, 그리고 고구려/고려4가지이고, 영어로 하면 코리아’, ‘꼬리아’, ‘꼬레이렇게 됩니다.

 

첫 번째 환인의 한나라는 지금부터 약 92백여 년 전에 생겨서 3,301년 동안 지속됐다고 합니다. 두 번째 배달나라는 환웅이 이 땅에 처음으로 나라를 세웠다는 신시 개천이 지금으로부터 약 6천 년 전입니다. 홍익인간 재세이화는 단군이 제창한 것이 아니라 환웅천황이 한 것입니다. 단군왕검으로부턴 4,348년으로 즉 반만년의 역사이고, 환웅의 신시개천으로 올라가면 우리 민족의 역사가 6천 년 전이지만, 가장 길게 보면 환인시대로 약 1만 년의 역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환인의 한나라가 92백여 년 전에 시작됐고, 당시로서는 최고(最古)의 문명이라는 말씀은 우리가 중고등학교 세계사 시간에는 배우지 못했던 내용입니다. 고대문명의 발상지로는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인더스, 황하의 4대 문명이라는 것만 주구장창 외웠으니까요. 지금에서야 4대문명으로 국한하기 어렵다, 마야문명도 있었다, 최근에 발견된 요하문명이 다른 문명보다 훨씬 앞섰다는 등 고고학의 성과가 속속 밝혀지면서 새로운 내용이 발표되고 있지만, 그 전에는 4대문명만을 확고부동한 도식처럼 외웠더랬습니다.

 

환단고기의 내용이 허무맹랑한 소리만은 아니라는 사실도 과학기술과 고고학의 발전으로 하나둘 입증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몇 년 전에 환단고기에 기록된 오성취루 현상을 입증했다는 천문학자의 발표도 있었습니다. 환인의 한나라 시대는 인류문명으로 치면 신석기 시대에 해당하는데, 얼마 전만 해도 최고로 오래된 신석기 유물이 5천 년 전에 불과했지만, 최근 중국 요하강 상류 지역에 거의 8천 년 전의 유물이 발굴된 데 이어 인류 최대로는 12천 년까지 확대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니 9천 년 전의 환인시대가 신석기 문명의 기원이라고 해도 어불성설은 아닐 것입니다. 물론 한나라가 현재 우리가 말하는 국가의 형태는 아니었겠지만, 우리 민족의 뿌리가 그 연원으로 올라간다는 것에는 왠지 장구한 역사의 흐름이 느껴져 괜히 으쓱해집니다.

 


 

중국에서는 새로운 유물이 계속 발견되는데 대신 역사가 없습니다. 우리는 전설따라 삼천리 식의 역사가 있는데, 유물이 부족하죠. 중국으로치면 오랑캐들이 살았던 지역이 바로 우리 조상들이 살았던 곳인데, 이제 그곳에서 아주 오래된 유물들이 발견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환웅이 세운 배달나라는 하늘세계에서 인간세계로 하강한 것이 아니라, 선진문명에서 미개문명으로 이주한 것으로 봐야한다고 스님께서 말씀을 이으셨습니다. 선진문명에서 한 세력이 떨어져나와 새로운 나라를 건설했는데, 그것이 신시였습니다.

 

신시의 도시 이름으로 아사달입니다. ‘앗시라는 말은 순 우리말로 처음이라는 뜻이에요. 달은 이라는 뜻으로, ‘처음 시작된 땅이라는 뜻이 됩니다. 나중에 나라 이름을 배달나라라고 했어요. 이렇게 이주세력이 토착세력이 있는 곳에 선진문명을 가져와서 새로 나라를 건설했는데, 그들은 하늘을 믿는 신앙이 있었고, 고도의 문명 수준을 갖고 있었습니다. 스스로를 하늘의 자손이라고 했어요. 그 징표로 천부인’ 3, 즉 청동거울, 청동검, 청동방울을 가져왔습니다. 이것은 뭘 말합니까? 배달나라가 청동기 문명이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환인의 한나라가 신석기 문명의 시원이듯이 환웅의 배달나라는 청동기문명의 주역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이 역시 구전으로만 내려왔기에 논란이 있었다고 합니다. 6천 년 전에 무슨 청동기 문명이냐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아무리 오래된 청동기 유물도 3천년 전의 것이고, 세계에서 아무리 오래된 것이라고 해도 그만큼 안됐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역시 최근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6천 년 전은 물론 7천 년 전의 청동기가 발견됐고, 중국 은나라 지역에서 3-4천 년 전의 유물들이 대거 발견되면서 그 이전에 세워진 배달나라가 청동기 문명이었다는 사실이 간접적으로 입증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무슨 문물이든 다 중국에서 전해온 것이라고 해석하는 시각이 일반적인데, 배달의 후손 일단이 동쪽으로 이주해서 조선을 세웠다면, 서쪽으로 가서 세운 나라가 은나라로 알려지고 있는 것도 흥미로운 사실입니다. 즉 배달나라의 후손이 청동기를 중원에 전달해준 것이지, 우리가 중원에 전달받은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유물을 둘러싼 문명 논쟁보다 더 특별한 점은, 바로 건국이념에 있습니다홍익인간 재세이화, “백성을 널리 이롭게 한다. 하늘의 이치를 땅에서도 이룬다는 이 고귀한 이념으로 나라를 세운 선례가 인류문명사에 우리 말고 또 있을까요? 스님께서도 이 부분을 다시 짚어주셨습니다.

 

하늘에서 왔다고 했지만, 하늘에서 온 이주민이 원주민을 지배 정복한 것이 아니라, 그 목적이 원주민에게 이익을 주려고 나라를 건국한다는 사상입니다. 토착민을 억압하고 착취하는 것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나라가 백성을 이롭게 한다는 취지입니다. 이런 국가 설립 취지는 그 어떤 종교보다 고귀하지 않습니까? 재세이화도 보세요. 하늘의 이치를 이 세상에 실현하겠다고 했습니다. 기독교식으로 말하면, ‘하늘에서 이뤄진 것을 땅에서 이루어지게 하여지이다라는 말씀이 됩니다. 우리 인류사에서 18세기만 보더라도 유럽문명이 아프리카 등에 가서 어떻게 했나요? 원주민을 이익되게 했습니까, 착취하고 지배하지 않았습니까? 또 임금이 백성을 이롭게 하기보다, 백성들을 지배하고 모든 재산과 인명을 마음대로 하지 않았습니까?

 


 

 

지금 우리보고 건국이념을 만들어보라고 해도 이보다 더 고귀한 정신을 담기는 어려울 겁니다. 사실 엄격하게 말하면 이 부분이 헌법 전문에 들어가야 한다고 봅니다. 환웅천황의 신시 건국 이념인 홍익인간 재세이화의 건국이념을 계승한다고 분명히 명시를 해야 합니다. 이것은 전 세계 어디에 내놔도, 지금의 건국이념이라고 해도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홍익인간 재세이화가 헌법 전문에 들어가야 한다는 말씀에, 저도 모르게 가슴이 뛰었습니다. 스님 말씀대로, 이보다 더 좋은 건국이념이 있을까요? 이 건국이념을 되살리는 것이 어쩌면 앞으로 우리가 통일한국을 만들어가는 데 가장 선결과제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스님께서는 환웅의 배달나라에는 청동기 문명만 있는 것이 아니라 옥기문명이 있었다는 사실이 밝히고 있다는 것도 상세히 설명해주셨습니다. 좋은벗들에서 주관하는 8월 동북아 역사기행에 가면, 중국 심양에서 요녕성 박물관을 방문하게 되는데, 요하문명의 유물들을 두 눈으로 자세히 관찰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중국에는 역사가 없기 때문에 그냥 몇 세기 어느 지역 출토 유물 정도로 써있다고 해요. 역사가 있는 우리나라와 공동으로 발굴하고 함께 연구하면 훨씬 풍부한 설명을 할 수 있을 텐데 참 아쉽기만 합니다.

 


 

환웅시대에 이주세력이 토착세력과 혼인관계를 맺게 되고, 그 사이에 낳은 자녀가 왕위에 오르면서 단군시대로 넘어가게 됩니다. 단군시대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이주세력과 토착세력이 통합됐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스님 말씀에 따르면, 이 단군은 왕위에 오르자마자 허물어진 율법을 바로 세우고 다시 정비해서 신시를 새롭게 했다고 합니다. 신시를 건국한 것이 아니라, 개혁한 것이라고 봐야 한다는 말씀이셨습니다. 말씀을 들으면서는 우리의 개천절이 단군왕검을 기리는 것이 아니라, 환웅천황을 기리는 것으로 바뀌어야 하지 않나 생각해보았습니다.

 

스님의 역사 강의는 들으면 들을수록 넋을 잃고 빠져들게 됩니다. 재미나게 말씀해주기도 하시지만,  군데군데 비어있는 부분을 스님의 통찰력으로 전혀 어색함이 없이, 그러나 사실에 입각해서 하나로 이어주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 사학계가 실증주의를 표방하면서 놓치고 있는 부분이 너무 많은데, 연구방법론적으로도 풍부하게 상상하되 이런 부분을 더 치열하게 연구했으면 하는 바람이 들었습니다. 물론 그렇게 노력하는 분들이 없는 것은 아니겠지만, 아직 주류 사학은 우리 정체성을 밝히는데 미흡한 부분이 많은 것 같아서요.

 

오늘 재미나게 말씀을 들었지만, 그중에서도 우리의 시야가 확 넓어진 것은 바로 북방영토를 둘러싼 한족(중원)과 우리 민족(계열)의 주도권 다툼 부분이었습니다. 북방영토는 원래 우리 민족의 발상지이자 대대로 삶의 터전이었습니다. 중원에서는 자기네 땅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서 관심을 두지 않았던 땅이기도 하고요. 그런데 이 북방영토를 고조선 시대에 처음으로 중원의 침입을 받아 빼앗깁니다. 중원은 한사군을 설치해 이 지역을 지배했습니다. 조선나라의 관군이 패망하자 옛 영토를 회복하기 위해 다물군이 나섰다는 어제의 강연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스님께서는 우리 민족 최초의 의병이 바로 다물군이라고 하셨죠. 그 다물군의 기상을 이어받아 고주몽이 고구려를 건국했고, 미천왕 시대에 이르러 낙랑군을 몰아냄으로써 비로소 영토를 회복했다는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낙랑이 마지막까지 남아있던 한사군이었습니다.

 


 

고구려가 대제국을 건설해 동북아의 맹주가 되었다가 당나라에 패망합니다. 이때 고구려 밑에 있다가 발해가 일어나자 다시 발해 밑에 있던 거란족이 요나라로 독립한 뒤에 발해를 멸망시킵니다. 그러면서 동북지역을 요나라가 차지합니다. 요나라는 원래 고조선 민족으로, 우리 사촌 격입니다. 발해가 멸망하고 신라도 멸망한 뒤에 고려가 세워졌는데, 고토회복이라는 건국이념을 실현하지 못했습니다. 바로 우리 민족의 아래에 있던 제 민족들이 강성하게 일어나 거란족이 세운 요나라가 발해를 멸망시키고 여진족이 금나라를 세워서 요나라를 멸망시키고, 금나라를 몽골족이 원나라를 세워서 멸망시키고, 그 몽골족이 고려까지 침공해 들어온 것이죠.

 

그러니 고려는 북방을 되찾겠다고 원을 세웠지만, 첫 번째 같은 북방민족인 요나라에, 그 다음에는 금나라에, 그 다음엔 원나라에 부딪혀서 그 원이 좌절됐습니다. 사실 원나라는 중국이 아니라 몽골족입니다. 그 사람들이 중원에 내려가서 송나라를 멸망시켰어요. 중국 사극을 보면 주로 민족의식이 부딪히는 게 요나라 침공에 대한 송나라 사람들의 싸움, 금나라 군사와의 싸움, 원나라의 싸움 등입니다. 원나라가 송나라를 멸망시키고 중원을 다 점령해버렸어요. 이미 요·금시대에 북경까지 다 북방민족이 차지했고, 송나라는 남쪽으로 쫓겨서 남송이라고 했는데 그마저 원나라는 침략해서 다 차지해버렸습니다. 우리는 성공하지 못했지만 우리 사촌들이 차지한 것입니다.

 

그런데 한족들의 반원운동으로 원나라가 망하면서 북방민족이 차지하고 있던 땅이 다 중국땅이 돼버렸습니다. 그래서 원래 우리민족의 본거지였던 북방영토, 즉 동북지역이 한사군 다음으로 두 번째로 중국의 영토가 됐습니다. 중국 사람들은 고대로 북방영토에대해 자기 것이라는 인식이 없었기 때문에 관리를 제대로 못해서 다시 북방민족이 일어났는데 그것이 만주족이 세운 청나라입니다. 나중에 일본도 어때요? 여기다 만주국을 건설했죠. 일본도 엄밀히 말하면 북방민족의 한 갈래입니다. 그런데 일본이 패망하면서, 그 영토를 중화인민공화국이 차지하게 된 것입니다. 고래로부터 중국이 이 지역을 세 번째로 차지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이 지역을 잃었지만, 우리 밑에 있던 소수민족이 일어나서 제국을 한 번씩 건설했어요. 거란족이 요나라를, 여진족이 금나라를, 몽골족이 원나라를, 만주족이 청나라를, 그리고 일본까지 대제국을 한 번씩 건설했습니다. 자 그럼, 다시 어디로 올까요?”

 

“(북방영토의 주도권이) 자 그럼, 다시 어디로 올까요?” 스님의 마지막 물음에 통일의병 교육 참가자들은 와아 하고 웃었습니다. 어떤 대답이 숨어있기 때문일까요? 여러분이 짐작하시는 그대로일 겁니다.

 

천년의 꿈을 말씀하셨지만, 오늘은 무려 ‘3천년의 꿈을 말씀하셨습니다. 9천 년의 우리 역사 속에서, 배달나라로 치면 6천 년이지만, 3천 년 전부터 중원과의 경쟁에서 밀리기 시작했고, 고구려와 발해가 멸망한 이후에는 완전히 주변국으로 전락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통일은 문명사적으로 무려 ‘3천 년 전의 본래 위상을 회복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는 말씀이셨습니다. 스님께서는 통일을 한다고 해서 꼭 그렇게 되는 것은 아니지만, 통일이 없으면 그럴 가능성도 없다, “우리가 그 큰 꿈을 실현해보자고 다시 한 번 당부하셨습니다. 내일은 근대에 이르러 우리 민족이 어떤 고통을 겪었고, 우리가 어떻게 대응을 해왔는지 살펴보겠다고 하시며 오늘 강의를 마치셨습니다.

 

참가자들은 강의를 마치고 약간 흥분된 상태에서 조별 나누기를 했는데, 어제보다 확실히 분위기가 밝았습니다. 참가자 한 분에게 어제 강의가 진짜 어려워서 분위기가 무거웠던 거냐고 물으니, “아 그런 게 아니고요, 강의가 어려운 게 아니라, 어제 스님께서 우리가 통일할 기회가 10%도 안 된다고 하셨잖아요. 그러니까 다들 우리가 무슨 힘으로 통일을 이룰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오늘 3천 년의 꿈을 말씀하시면서, 1천 년 동안 우리가 주변국으로 전락한 것은 아무 것도 아니라는 말씀을 하시니 뭔가 해볼만하다고 느꼈어요. 저만 그렇게 느낀 게 아니었는지, 우리 조원들은 다들 공감하더라고요. 그래서 오늘은 다들 왁자하게 떠들면서 신나하는 모습이었어요라고 소감을 나눠주셨습니다.

 

또 북방영토를 둘러싸고, 우리 민족뿐만 아니라 사촌격인 민족들이 9천 년 역사에서 중원에 이 땅의 지배권을 내어준 게 고작 3차례에 불과하다는 말씀을 들으니, 아무리 중국이 G2로 급부상하고 있다지만 그렇게 두려워만 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 기회를 적극적으로 만들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얘기도 나눴습니다. 이렇게 한 회, 한 회 강의가 이어지면서, 우리 통일의병의 의식도 점점 성숙해지고 깊어지는 모습입니다. 스님께 다시 감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강의가 끝나고 스님께서는 정토회관 집무실에서 업무를 보셨습니다. 강의 후 스님의 집무실까지 따라간 SBS촬영팀은 스님께 이렇게 통일강의를 하는 이유와 역사 강의에 대한 질문들을 다시 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스님께서는 이번 통일학교 마지막 프로그램으로 경주역사기행이 있는데, 어디서 출발해서 어떻게 코스를 정하고, 숙소는 어디로 할 것인지등에 대해 행정처 김은숙처장님, 이상옥보살님과 잠시 논의하는 시간도 가졌습니다.

 


 

회의를 마친 후 스님께서는 계속해서 원고교정작업과 통일학교 강의 준비에 전념하셨습니다.

 

저녁 730분부터는 평화재단 3층 강당에서 제9기 청년리더십아카데미 입학식이 있었는데, 스님께서도 함께 하셔서 입학생들을 격려하고 축하 해주셨습니다.

 

어떤 사람이 일제시대에 태어나 소학교에서 1등하고, 지방에 좋은 중학교에서도 1, 고등학교도 1등해서 경성제대 법과대에 입학을 했어요. 거기서도 사시에 합격해서 졸업하자마자 검사가 되었어요. 이정도면 성공했죠? 서른이 되어서 지검장까지 오르면 대성공이죠? 부모에 효도하고 화목한 가정을 꾸려서 도덕적으로도 하자가 없었는데, 해방이 되니 하루아침에 매국노가 된 거예요. 재산을 몰수당하고, 감옥에 가게 됐어요. 그러면서 세상 사람들에게 손가락질을 받게 되고, 대 실패인 인생이 되었어요. 하루 아침에 대성공에서 대실패로 바뀌었어요. 이 사람이 하루 사이에 잘못한 것은 아무것도 없어요. 강도짓 하거나, 거짓말 하거나, 성추행 하거나, 술먹고 행패를 부리거나 한 것도 아니고 개인적으로 어떤 윤리적 도덕적 법률적 하자가 없었는데도 왜 불행이 온 것일까요? 무엇이 잘못되어 이런 일이 생겼을까요? 이것만을 보면, 이 사람으로서는 억울하겠죠? 뭐가 문제였을까요?

 


 

이 사람이 불행을 자초한 한가지는 바로 역사의식이 부족했다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시대적 과제가 무엇인지 몰랐다, 무지했다고 할 수 있어요. 모든 사람은 자기 나름대로의 과제와 목표가 있어요. 그런데, 그 시대에 각 개인이나 계층이 아니라 이천만 민중 전체, 삼천만 민중 전체의 삶을 괴롭게 하는 근원적인 문제가 있었다면 무엇이었을까요? 바로 일본의 식민통치였겠죠? 그것이 크던 작던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는데도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 공통의 문제, 근본의 문제를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깨닫는 것을 역사의식이 있다고 하고, 삼천만 동포의 시대적 과제가 나라의 독립이었다는 것입니다. 나라의 독립은 식민지 지배하에서 국가 보안법 위반이었어요. 식민지 지배 체제를 반대했다는 것이 국가 보안법 위반이었지만, 지금은 그들을 애국자라고 하죠.

 

  

 그렇다면 시대적 과제를 알려면 첫째, 역사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현 사회에 대해서도 이해해야 합니다.

 

여러분들이 이것을 자각하는데 도움을 주기위해 청년리더십아카데를 개설한 것입니다. 둘째 자각했다면, 그렇다고 행동으로 다 옮길 것이냐? 불이익이 있고, 목숨을 걸어야 해서 행동을 하기는 어렵더라도 시대적 과제를 이해한다면, 자신의 재량 범위 안에서 영향력을 미칠 수 있겠죠. 우리 청년들은 자신이 처한 자리에서 이 시대적 과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지 고민하고 행동해 나갔으면 합니다.”

 

 

이렇게 스님께서는 입학식 축하 인사를 하시면서 현실(현재)에서만 살고 있는 청년들에게 시대적 과제를 함께 해결해 나갈 수 있도록 격려해주시면서 이 시대적 과제를 해결하는데 청년들의 역할의 중요성을 말씀해주시면서 재단을 떠나셨습니다.

  

9시경 정토회관으로 오신 스님께서는 통일학교 강의준비를 하시면서 하루를 마무리 하셨습니다.

전체댓글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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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념차리자

결국 만주 침략하기위해 통일하자는 소리임? 평화외치는 스님이 제국주의적 언동을 하고 있네 무개념 몰상식

더구나 일제의 만주국도 합리화 시키고 있음 정신차리세요

환단고기는 친일하던 반공냉전 세력이 꾸며낸 이야기예요 환단고기 고조선 영토와 일제 중국 침략 영토가 대부분 일치함

그리고 한나라 배달국 다 망상에 불과 근거 없는 소리 요하문명도 우리거 아님

2021-01-28 15:20:02

일불제자

존경하는 스님, 부디 역사는 역사학자들에게 맏기세요. 잘못된 레퍼런스로는 진실에 다가가기 어렵습니다.

2019-03-31 20:08:43

김수구

감사합니다.
역사의 바른견해도 8정도의 하나로 중요한 덕목임을 깨우져 주십니다.

2017-01-20 21: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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