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15.3.19 (인도 17일째) 둥게스와리 마을리더, 수자타아카데미 교사 모임

▲ 전정각산에 올라 수자타아카데미를 바라보고 계신 스님

 

안녕하세요. 오늘 스님께서는 오전에 둥게스와리 마을 리더들과 회의를 하고, 오후에는 수자타아카데미 교사들과 모임을 갖고, 저녁에는 인도JTS 활동가들을 위해 법회를 해주셨습니다. 

 

오늘도 새벽4시30분에 도량석 소리와 함께 전정각사 법당으로 올라가 새벽 예불 및 108배와 명상, 경전 독송을 하며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6시30분부터는 발우공양을 하며 함께 밥과 국, 반찬을 나눠 먹었습니다. 오늘 발우공양에는 상카시아 석가족 청년회에서 온 인도인 세 분이 함께 참석해서 더욱 특별한 시간이 되었습니다. 

 


▲ 발우공양

 

발우공양을 마치고 스님께서는 석가족 세 분에게 소감을 물어보셨습니다. 석가족 분들이 “인도에서 옛날에 밥 먹는 방식과 너무 비슷해요” 라고 말하자 스님께서는 “그래요. 맞아요. 발우공양은 인도에서 전래되어 온 것이예요. 그런데 한국에서도 이렇게 인도식으로 밥을 먹는데, 너희들은 인도에서 살면서 왜 다 잊어버렸어요?” 라고 하시며 웃으셨습니다. 

 


▲ 상카시아 석가족 청년 세 분이 함께한 발우공양

 

그리고 스님께서는 어제에 이어서 발우공양 때 함께 외우는 소심경의 의미에 대해 법문을 해주셨습니다. 먼저 오늘 배울 게송을 함께 따라해 보았습니다. 

 

“여등귀신중 아금시여공 차식변시방 일체귀신공 옴 시리시리 사바하 

 오관일적수 팔만사천중 약불염차주 여식중생육” 

 

이어서 스님께서 이 게송의 의미에 대해 말씀해 주셨습니다. 

 


 

“여등귀신중, 너희 귀신의 무리들아. 아금시여공, 내가 지금 이 음식을 너희들에게 공양을 올리노니. 차식변시방 일체귀신공, 이 음식이 온누리에 있는 일체 귀신들에게 두루 베풀어져 다 먹고 배불러지이다. 

 

우리는 살아있는 사람만 생각하는데 옛날 사람들은 모양 있는 사람과 모양 없는 사람 두 가지를 늘 함께 생각했거든요. 사람이 죽으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모양 없는 사람으로 존재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모양 없는 사람, 즉 우리 눈에 보이지도 않고 들리지도 않는 사람들이지만 그 사람들도 함께 배불러지이다 하는 의식을 했단 말이예요. 그래서 자기 밥에서 조금 덜어서 발우에 모은 후 ‘옴 시리시리 사바하’ 하고 진언을 외우는데, 이것은 성경에 비유하면 오병이어의 기적과 같은 의미입니다. 

 

예수님께서 산상에서 설교를 하실 때 많은 사람들이 그 설교를 듣기 위해 산 위에 올라와서 그 설교를 듣고 점심 때가 되었는데 가난한 사람들이다 보니 대부분 음식을 못 가지고 왔습니다. 그런데 몇 사람이 음식을 들고 온 거예요. 예수님께서 “가지고 온 것을 이리 다 내어놓아라” 하니까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였습니다. 그것을 다시 주욱 나눠주었더니 다 먹고도 남았다. 이것이 오병이어의 기적입니다. 

 

 

이것이 현재에도 이뤄질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한국에서 값비싼 호텔에서 두 사람이 먹는 비용이면 이곳 마을 사람들 200명이 먹을 수 있습니다. 한국에 있는 돈을 가져와서 마을잔치를 한다고 하면 이것은 현대판 오병이어의 기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호텔에서 먹으면 10여명 밖에 먹지 못하는 돈이 이곳에 오면 2천명이 먹을 수 있게 됩니다. 손가락을 튕길 때에는 그런 마음이어야 합니다. 이 음식이 오병이어의 기적처럼 뻥튀기가 되어서 배고픈 무리들은 모두 배불러지이다. 배고프다고 내 먹는 데에만 신경쓸 것이 아니라 밥을 먹을 때는 늘 배고픈 사람을 생각하자는 것입니다. 한국에서 한끼 굶어서 그 돈을 북한에 보내주면 일주일치의 식량이 됩니다. 돈을 보시하는 것도 있지만 배가 고파봐야 배고픈 사람의 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오관일적수, 물 한반울을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이 관해보니. 팔만사천충, 한량없는 생명체가 살고 있구나. 약불염차주, 만약에 이 염불을 하지 않고 이 음식을 먹는다면. 여식중생육, 중생의 고기를 먹는 것과 같다. 

 

우리가 산다는 것은 이렇게 다른 생명의 희생 위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러니 그것을 내가 알아야 합니다. 옛날 사람들은 ‘아니, 깨끗한 물 한방울 속에 뭐가 들어있노’ 라고 하겠지만, 아무리 깨끗한 물 속이라도 수많은 생물들이 살고 있죠. 이렇게 자신의 삶의 존재 방식을 정확하게 인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내가 어떤 상태에서 생존하고 있는지 늘 깨어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늘 배고픈 사람을 함께 생각하고, 내 존재가 수많은 생물들의 희생 위에서 살고 있음을 자각하면서 음식을 먹는다는 발우공양의 의미를 들으니 ‘밥 한끼 먹는 것도 큰 수행이 되는구나’ 하는 것을 크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발우공양을 모두 마치고 아침 7시40분에는 SBS 촬영팀과 함께 전정각산에 올라갔습니다. 스님께서는 전정각산을 올라가시면서 21년 전 수자타아카데미를 처음 세울 때의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유영굴로 올라가는 길 위에서 수백명의 아이들이 구걸을 하고 있었는데,  수자타아카데미가 세워지고 난 후 지금은 구걸하는 아이들은 거의 보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 SBS 촬영팀과 함께 전정각산으로 출발하시는 스님

 

그런데 올라가는 길에 구걸하고 있는 아이 한명을 만났습니다. 스님께서는 곧바로 아이에게 물었습니다. 

 

“너는 왜 학교 안 가고 여기에 있니?”

“집이 가난해서 학교에 안보내줘요”

 

"그러면 수자타아카데미에 오면 되지 않느냐?" 

"수자타아카데미에서는 안 받아 주어요."

 

"왜?"

"라르푸르에 살아요. 입학 대상이 아니예요."

 

"알았다. 스님이 허락해 줄테니 오늘 바로 수자타아카데미에 와서 입학 등록을 하거라” 

 

이렇게 얘기를 해주고 스님께서는 전정각산으로 올라가시고 아이는 마을로 내려갔는데, 산을 내려와보니 이 아이는 정말로 학교에 다니고 싶었는지 몸을 씻고 새옷으로 갈아입은 후 입학 등록을 하러 학교에 와 있었습니다. 

 


▲ 아침에 스님을 만나고 구걸하지 않고 학교에 다니겠다며 교무실로 찾아온 아이

 

스님께서는 전정각산 위에 올라가서 산 아래 수자타아카데미를 바라보고 계셨는데, 촬영팀이 스님께 “여기서 수자타아카데미를 보시면 어떤 생각이 드세요?” 라고 물어보니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 전정각산 

 

“멀리서 마을을 내려다보면 참 아름답게 보여요. 그러나 마을 속에서 사는 사람들은 참 어렵게 살고 있죠. 자연 풍경은 아름다운데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힘들게 살고 있어요. 여기 온 관광객들이나 멀리서 이 모습을 보는 사람들은 그들의 고뇌를 잘 모르죠. 그러나 그 속에 들어가서 보면 사람들이 먹고 살기도 힘든 상태에서 살고 있습니다. 

 

제가 여기 학교를 짓겠다고 해서 여기 지은 것이 아니고요. 마을 사람들과 이야기를 했는데, 자기 마을과 제일 멀리 떨어져있고, 농토로 부적합한 황무지여서 못 쓰는 제일 위쪽 땅을 저한테 준 것이죠. 45평씩 10명이 450평을 초등학교 지을 자리만 저한테 기증을 했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불교의 가장 중요한 성지인 부처님이 6년 고행했던 그 자리에 학교가 지어지게 된 것입니다. 

 

의도한 바는 전혀 아니였고요. 여기 유영굴에 성지순례를 왔다가 아이들이 구걸하고 있어서 그 이유를 물으니 “학교가 없어서 그렇다” 하고, 주민들은 “학교가 필요하다” 해서, 제가 “그럼 너네가 못 쓰는 땅을 좀 내어놓아라” 하니까 이 땅을 준 것이고, 그렇게 해서 학교를 짓게 되었는데 결과적으로 의미있는 학교가 된 것입니다.”

 


 

학교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계시는 스님의 모습을 보며 잔잔한 감동이 물밀 듯이 올라왔습니다. 한 수행자가 심은 작은 보리수 나무 씨앗 하나가 21년을 자라 지금은 제법 큰 나무가 되어 많은 사람들의 쉼터가 되어주고 있으니 말입니다. 

 

스님께서는 부처님이 물을 드신 곳인 샘터와 명상을 하시던 자리에 남겨진 탑터를 더 둘러보시고 잠시 앉아서 명상을 하시기도 하셨습니다. 

 


▲ 부처님께서 명상을 하셨던 곳

 

전정각산을 내려와서는 곧바로 10시부터 마을 리더들과 ‘어떻게 하면 둥게스와리 마을을 더 아름답게 가꿔나갈 것인가’ 하는 주제로 많은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스님께서는 지난주에 1400여 가구를 모두 방문하시면서 새해 인사를 하셨는데, 마을 방문을 하시면서 생각해낸 마을 발전을 위한 아이디어들을 이야기해 주시고 또 이에 대한 주민들의 의견을 수렴하셨습니다. 쁘리앙카님이 스님의 입이 되어 원활히 통역을 해주어서 스님과 마을 사람들 모두 편안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 마을 리더들과의 회의

 

특히 오늘은 젊은 여성 분들이 많이 참석했습니다. 스님께서 마을에서 유치원 선생을 할 수 있는 여성들을 데리고 오라고 마을 리더들에게 부탁했는데 오늘 함께 온 분들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먼저 마을의 유치원 선생님을 이 여성들이 맡을 수 있는지를 확인하시고, 주민들도 이것에 대해 만족해하는지 최종 의사를 확인해 보셨습니다. 모두들 여성들이 맡으면 좋겠다고 동의를 해주었습니다. 

 


▲ 마을 유치원 교사를 할 수 있다고 말하는 젊은 여성들

 

또 유치원에 화장실을 지어달라는 요청에 대해 시범적으로 한두곳 지어서 운영해보고 난 후 확대하자고 대답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마을별로 축구장으로 꾸밀 수 있는 공터가 있는지 알아봐달라고 부탁하시고, 또 까나홀 마을은 하수구와 도로를 새로 정비하면 좋겠다고 제안하셨습니다. 이 외에도 다양한 얘기들을 함께 나누신 후 둥게스와리의 마을 개발에 대해 큰 틀에서 이런 제안을 해주셨습니다. 

 

“앞으로는 우리가 마을별로 여자는 여자대로 남자는 남자대로 어른은 어른대로 청년은 청년대로 조직을 만듭시다. ‘우리 마을을 어떻게 잘 만들 것이냐?’ 하고 머리를 맞대면 훨씬 더 빨리 개선할 수 있어요. 마을에 골목을 어떻게 정비할 것인지 고민해서 벽돌을 깔아서 비가 와도 괜찮도록 하고요. 하수구로 어떻게 물을 뺄 것인지, 핸드펌프를 파더라도 어느 위치에 파서 보다 더 많은 사람이 이용하기 편하게 할 것인지, 주택을 지을 때도 협동해서 지으면 더 잘 지을 수 있고요. 비료나 벽돌, 시멘트 같은 것들은 1000명이 필요한 것을 동시에 구입하게 되면 훨씬 더 싸게 구입을 할 수 있습니다. 염소나 소를 키우는 문제도 이런 마을별 조직을 통해서 하면 키우는 사람에게 더 유리하게 할 수 있습니다. 우유 같은 것도 공동으로 모아서 판매를 하거나, 우리가 공장을 만들어서 판매를 하면 훨씬 더 이익이 남습니다. 

 


 

현재처럼 이렇게 그냥 살면 더 이상 수입이 없으니까 공부한 젊은이들은 다 외지로 나가버리고 시간이 흐르면 노인들만 남게 됩니다. 땅은 외부인들이 다 사서 가져가 버리고요. 그래서 마을이 우리 것이 되지 못합니다. 자그디스푸르와 두르가푸르는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다 외부인들이 땅을 사버릴 겁니다. 왜냐하면 곧 도로가 나고 관광객이 몰려오고 가게가 생기면서 외부인들이 땅을 비싸게 준다고 하면 여러분들도 땅을 다 팔어버릴텐데 지금 팔 때는 돈이 비싼 것이 좋지만 한번 팔면 다시 살 수는 없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가 우리 마을을 지켜야 합니다. 

 

그럴려면 수입이 될 만한 것들을 자꾸 만들고, 주택도 개량하고 도로도 정비해서 가난하지만 예쁜 동네를 만들어야 합니다. 아이들도 대학까지는 못보낸다고 하더라도 고등학교까지는 공부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합니다. 이제는 우리가 노력하면 가능합니다. 20년 전에는 마을에 배운 사람들이 없어서 불가능했는데, 이번에 마을을 주욱 돌아보니까 수자타아카데미를 졸업한 젊은이들이 많아져서 ‘이제는 할 수 있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주민들 중에 한 분이 큰 목소리로 대답했습니다. 

 


 

“스님께서 저희들의 미래에 대해서 참 좋은 이야기를 해주셨어요. 지금 스님말씀처럼 하지 않으면 우리 자식들도 우리들처럼 살게 될 것입니다.” 

 

스님께서는 다시 한번 주민들에 대한 애정어린 마음을 담아서 이야기하셨습니다. 

 

“젊은이들이 가야나 큰 도시로 돈 벌러 간다고 하지만 돈 조금 더 버는 것 외에는 남 밑에서 고생하고 건강만 더 헤치게 됩니다. 우리가 지금 외부로 나가봐야 남들 밑에서 심부름 하는 것 외에 다른 할 일이 있어요? 여기서 조금만 노력하면 우리 동네에서 우리가 살 수 있어요.”

 

주민들 모두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이렇게 2시간 동안 스님께서는 주민들의 의견을 경청하고, 핸드펌프부터 주택 개량, 마을의 장기적인 발전 방향 등에 대해 스님의 아이디어들을 세세하게 나누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내일 마을 잔치에 꼭 오시라고 부탁하시고 마을 리더들과의 회의를 마치셨습니다. 

 

집안일이나 밭일을 제쳐두고 시간을 내어 준 마을 주민들에게 스님께서는 티셔츠 한 장씩을 선물로 주었습니다.  

 


▲ 회의에 참석한 주민들에게 티셔츠를 나눠주시는 스님

 

그리고 마을 주민들과 함께 학교 급식으로 점심 식사를 함께 하셨습니다. 주민들과 식사를 하시면서는 주민들이 농사를 어떻게 짓고 있는지, 모판을 만드는 것, 모내기 하는 시기 등에 대해 주민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셨습니다. 스님께서는 정말 화두를 참구하듯이 어떻게 하면 둥게스와리 마을 주민들이 조금 더 행복하게 살 수 있을지에 대해서 몰입해 계신 것 같았습니다. 

 


▲ 마을 주민들과 함께 사부지와 달로 점심 식사를 하고 계신 스님

 

쉴 틈도 없이 바로 이어서 오후1시부터는 수자타아카데미 교사들 전체와 모임을 가지셨습니다. 오늘 교사들과의 모임은 무려 4시간 30분 동안이나 진행이 되었습니다. 스님께서는 지난 20년간 마음 속에서만 간직하고 있던 말씀들을 진솔하게 들려 주셨는데, 교사들은 스님의 간곡한 말씀에 많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 수자타아카데미 교사들과의 모임

 

무엇보다 그동안 수자타아카데미에서는 윤리와 도덕적은 측면에서만 항상 이야기를 해오셨는데, 오늘은 처음으로 “붓다 담마에 대해 이해를 해야 JTS의 활동 원칙에 대해서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다”고 하시면서 붓다 담마에 대해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부처님은 2600년 전에 인도에서 태어나셨습니다. 당시에 이곳 둥게스와리는 시체를 갖다 버리는 곳이였어요. 그래서 사람들이 잘 오지 않았습니다. 부처님은 이곳이 수행하기 적당하다 생각하시고 이곳에서 6년간 정진을 하셨습니다. 밥도 안 먹고 하루에 대추 한알씩 드시기도 했어요. 이 동네에 대추 많이 있죠? 여러분들도 많이 주워서 먹었죠?" 

 

"네"

 


 

"그러니 여러분들도 부처가 될 수 있어요. 그런데 부처님처럼 조금 먹어야 하는데 너무 많이 먹어서 아직 부처가 못 되고 있는 거예요." (웃음) 

 


 

"그래서 이런 고행상의 모습이 되도록 수행을 하셨습니다. 그래도 깨닫지를 못하니까 왜 깨닫지를 못하는지 반성하기 시작했어요. 출가하기 전에는 욕구를 쫓아 갔습니다. 여러분들도 하고 싶은 것을 하게 되면 기분이 좋지요? 그것으로 행복을 삼는 것을 쾌락주의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것으로 끝나요? 욕망이 더 커져요? 그래서 욕망은 끝이 나지 않습니다. 지금은 돈이 1락만 있으면 좋겠다 생각하지만, 1락이 생기면 그것으로 만족이 될까요? 이렇게 우리의 욕망은 끝이 없어요. 그렇게 치면 한국 사람들이나 미국 사람들은 괴로울 일이 없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들은 여러분들보다 더 괴롭다고 합니다. 부처님은 이것이 길이 아니다 하는 것을 어떻게 알았을까요? 왕자였기 때문입니다. 충분히 물질적 풍요를 누려보았기 때문에 그것이 길이 아닌 줄 알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출가를 하고 나서는 욕구를 무조건 억압을 한 것입니다. 먹는 것도 포기하고, 자는 것도 포기하고 목욕도 안 했어요. 이렇게 고행을 하시다가 욕구를 억압하는 것은 욕구를 따라가는 것과 정반대이지만 사실은 이것도 욕구에 대한 대응이라는 것을 발견하십니다. 욕구를 따라가는 것과 욕구를 억압하는 것이 모두 욕구에 대한 대응이라는 것을 이해하세요? (네) 

 

세상에는 이 두가지 길 밖에 없었어요. 그러나 이 두 길은 결국 욕구에 대한 대응이라는 측면에서는 똑같아요. 이 두 길이 아닌 제 3의 길은 무엇일까요? (모르겠어요) 

 


 

이 제3의 길을 바로 이곳에서 발견하신 겁니다. 그것은 붓다가 이 세상에서 처음 발견한 길입니다. 이 길은 욕구에 반응하지 않는 길이예요. 그것은 바로 ‘알아차림’입니다. 즉, 지금 다리가 아프다면 첫 번째 길은 다리를 펴는 거예요. 두 번째 길은 참는 거예요. 이 둘을 떠난 제3의 길은 그냥 ‘다리가 아프구나’ 하고 알아차리는 것이예요. 참는 것이 아니라 그냥 알아차리는 것이예요. 긴장하는 것이 아니고 ‘통증이 있구나’ 하고 편안한 상태에서 다만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이렇게 6년간 수행하신 곳이 바로 이곳입니다. 이곳은 정말 중요한 곳입니다. 보드가야에서는 100일 계셨고, 이곳은 6년 계셨어요.

 

부처님은 깨달음을 얻으신 후 어떻게 생활하셨는지 한번 봅시다. 당시는 노예제 사회였어요. 노예제 사회라는 것은 심부름하는 노예가 있다는 것이죠. 말을 모는 사람도 있어야 하고, 옷 입혀주는 사람도 따로 있어야 하고, 음식 만드는 사람도 따로 있어야 하죠. 만약 왕이라면 종이 10명이든 30명이든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부처님이 출가한 뒤에, 또 부처님이 되신 뒤에 종을 데리고 살았다는 기록이 있어요? 당시에 집을 지어서 살았다면 누군가 밥해주는 사람이 있어야 하잖아요? 그런 것 없이 살려면 어떻게 살아야 해요? 밥은 남의 집에 가서 얻어 먹고, 옷은 시체 싸던 것을 주워서 입고, 잠은 나무 밑에서 자고요. 그러면 남의 도움을 받을 필요가 없잖아요. 그렇게 부처님은 노예제 사회에서 노예가 없는 삶을 사셨어요. 부처님 뿐만 아니라 모든 수행자가 그랬어요. 

 


 

그런데 지금 절은 어떻습니까? 절에 밥하는 사람도 있어야죠. 운전해주는 사람도 있어야죠. 사무실에서 일하는 사람도 있어야죠. 그러면 그 사람들 월급을 줘야 하잖아요? 그 사람들이 보기에는 스님들이 스승이예요? 사장이예요?” 

 

“사장입니다”

 

“그러면 저는 어떻해야 합니까? 여러분과 저의 관계에서 저는 여러분의 스승이예요? 사장이예요? 그래서 제가 여러분들에게 그동안 붓다 담마를 이야기하지 않았던 겁니다. 왜냐하면 제가 여러분들의 스승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저는 사장을 하기 위해서 출가를 했어요? 스승이 되기 위해서 출가를 했어요?” 

 

“스승이 되기 위해서요.” 

 

“그런데 저는 지금 여기서 사장하고 있잖아요. 이것이 지금 저의 가장 큰 고민이예요. 저는 여러분들에게 스승이 되고 싶지 사장이 되고 싶지 않아요. 그런데 여러분들은 모두 저한테 돈을 달라고 하잖아요. 그러면 저는 사장이 되어야 하잖아요. 여러분들은 자꾸 저보고 사장이 되라고 하잖아요. 저는 여러분들의 스승이 되고 싶고, 여러분들은 자꾸 저보고 사장이 되라고 하고, 이 사이에 간격이 자꾸 생겨요. 이해하시겠어요?” 

 

“이해하는데 이해 안하고 싶어요.” (웃음)

 


 

“그런데 저는 한국 사람들에게는 사장이 아니고 스승이예요. 왜냐하면 서로 돈을 주고 받는 관계가 아니기 때문이예요. 모두 다 수행자예요. 수행자로써 역할이 분담되어 있을 뿐이예요. 부처님이 나이가 많을 때 아난존자가 옆에서 도왔죠? 그런데 종으로서 도왔어요? 월급 받고 도왔어요? 아닙니다. 그것은 수행자로서 역할을 분담한 것이예요. 우리는 지금 수행자로서 어떤 사람은 운전하고 어떤 사람은 밥을 하고 역할이 분담되어 있는 것이예요. 이것을 현대식으로 말하면 모두가 다 자원봉사자로 함께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인도는 그렇지 않아요. 이런 모순이 있습니다. 앞으로도 이 모순은 계속될 거예요. 그래서 우리가 어떻게 하면 수행자로서 함께 만들어가는 마을이 될 수 있을까 이것이 저의 고민이예요. 둥게스와리 사람들은 한국 사람들도 아니고 저의 친척들도 아니고 저의 자식들도 아니고 불교신자도 아니예요. 그러나 저는 둥게스와리 사람들이 어떻게 하면 조금 더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 늘 생각해요. 집을 보면 어떻게 집을 개선해야 할까, 물은 어떻게 더 확보할까, 골목은 어떻게 정비해야 할까, 먹고 살 수 있는 수입은 어떻게 마련할 수 있을까, 서로 협력하면 좋을텐데... 이런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은 자기 마을에 살면서도 이런 생각을 안해요. 

 

학교 안가는 아이들을 보면 어떻게 하면 저 아이를 학교에 보낼 수 있을까, 공부 못하는 아이를 보면 어떻게 하면 더 잘 가르칠 수 있을까, 학용품이든 교복이든 어떻게 하면 더 좋게 할 수 있을까... 그런데 여러분들에게는 이 아이들이 다 여러분의 마을 아이들이잖아요. 다 인도 사람이고. 같은 둥게스와리 마을에 살고 있고, 우리 친척의 아들인데... 어떻게 하면 서로 힘을 합해서 더 잘 가르칠 수 있을까? 이런 생각들을 좀 하면 좋겠어요. 

 

우리가 조금만 더 머리를 맞대고 힘을 합하면 좋은 방법이 많이 있는데 전부 자기 이익만 생각하고 살기 때문에 아무런 변화가 없습니다. 오늘 제가 붓다 담마를 이야기한 것은 이런 붓다 담마에 기초해서 일을 하고 있기 때문에 여기에는 노동자를 고용하면 안돼요. 그것은 부처님 당시에 노예를 데리고 상가를 구성하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월급을 주고 받는 사장과 종업원의 관계가 아닌 우리가 같이 이 마을을 좋도록 만드는 같은 활동가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들도 먹고 살아야 하잖아요? 현실은 이해해요. 그런데 그렇게 되면 죽을 때까지 먹고 사는 것만 하다가 죽어요. 어떤 길을 갈 것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여러분들이 만약 ‘우리는 좋은 마을을 만들기 위해 같이 일하는 사람이다’ 이렇게 생각한다면 스님은 악덕 기업주가 아니라 좋은 스승이 될 수 있고, 좋은 스폰서가 될 수 있습니다. 제가 여러분들에게 돈을 많이 주면 좋은 사장은 될 수 있지만, 좋은 스승은 될 수 없어요. 여러분들은 사장이 필요하지 스승은 필요 없죠?” (웃음) 

 

“저희들은 둘 다 필요해요.” 

 


 

“오늘 스님이 갖고 있었던 20년 동안의 고민을 처음 이야기 했어요. 왜 오늘에서야 이야기하느냐? 지금까지는 여러분들이 너무 어렸어요. 그러나 이제 어른이 되었어요. 이제는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갈 것인가 함께 고민해야 합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노동자가 되기를 원치 않습니다. 우리가 함께 아이들을 가르치고 마을을 변화시키는 활동가가 되기를 원합니다. 그러니 학교를 운영하든, 유치원을 운영하든, 병원을 운영하든, 마을개발을 하든, 스님 일을 도와준다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내 마을을 가꾼다는 생각을 해야 됩니다.

 

제일 중요한 것은 스스로 ‘정말 내 일이다’ 생각하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많은 일을 해도 지치지가 않아요. 그래서 둥게스와리 마을을 가난하지만 세상에서 가장 살기 좋은 마을로 만듭시다. 전 세계 어디를 가도 “너 어디서 왔느냐?” 하고 물으면 “둥게스와리에서 왔다” 이렇게 자랑스럽게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둥게스와리’라는 말 뜻이 원래는 ‘부정한 곳’이잖아요. 그러나 부처님이 이곳에서 6년간 수행함으로 해서 성스러운 곳이 되었단 말이예요. 그런데 천민들이 가난하게 살다보니 다시 나쁜 마을이 되었단 말이예요. 바깥 사람들은 위험하다고 이곳에 가지 말라고 해요. 그런데 JTS가 들어오고 나서 위험한 것도 많이 없어졌잖아요.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설성봉님 같은 분의 희생이 있었어요. 설성봉님의 죽음이 없었다면 이렇게 치안이 유지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어떤 변화를 위해서는 이렇게 누군가가 노력을 해야 합니다. 다들 동네 버리고 도망갈 생각만 하잖아요. 그러지 말고 둥게스와리를 자랑스럽게 한번 만들어 봅시다.”

 

스님의 간곡한 호소에 인도인 교사들은 모두 “Yes!” 라고 크게 대답했습니다. 인도인 교사들의 눈빛은 더욱더 초롱초롱 빛나고 있었습니다. 무려 4시간 30분 동안 법문을 해주신 스님께, 그리고 통역을 해준 쁘리앙카님에게 모두들 뜨거운 박수를 보냈습니다. 

 


 

둥게스와리 마을을 가난하지만 가장 살기좋은 마을로 만들어보자는 스님의 말씀에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만 같았습니다. 통역을 하던 쁘리앙카님은 이곳에 봉사를 왔다가 강도의 총에 맞아 돌아가신 설성봉님을 스님께서 언급하자 목이 메여서 목소리가 떨렸습니다. 그리고 사장이 아니라 스승이 되고 싶다는 스님의 호소에 뒤에 앉아 있던 한국인 활동가들은 눈시울이 붉어졌습니다. 

 

스님께서 법문을 마치고 법당을 나가시자 인도인 교사들은 한층 밝고 들뜬 마음으로 함께 모여서 내일 있을 마을잔치 준비를 위해 회의를 했습니다. 회의를 하는 모습 속에 평소보다 더 큰 생동감이 느껴졌습니다. 스님께서 교사들에 대해 그리고 수자타아카데미에 대해 그리고 둥게스와리 마을에 대해 갖고 계신 따듯한 사랑을 모두들 느꼈을 것입니다. 

 

긴 시간 법문을 마치시고 스님께서는 잠시 쉬었다가 6시부터는 어제에 이어서 상카시아에서 온 석가족 청년들과 담마 센터 건립을 위한 회의를 하셨습니다. 

 


▲ 상카시아에서 온 석가족들과 회의

 

저녁 식사 시간도 없이 회의를 하고 나서 오후 6시45분부터는 인도JTS 활동가들을 위해 수행법회를 해주셨습니다. 인도JTS 활동가들은 원래 매주 목요일마다 수행법회를 영상으로 하고 있는데 오늘은 스님께서 직접 즉문즉설 법회를 해주셨습니다. 기존에 파견되어 있던 활동가들, 그리고 이번에 새로 파견을 오게 된 9기 행자대학원생들, 보광법사님, 쁘리앙카님, 그리고 SBS 촬영팀까지 카메라 촬영을 멈추고 스님께 고민을 묻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 인도JTS 활동가 수행법회 

 

총 6명이 스님께 질문을 했습니다. 화를 잘 내는 편인데 인도에 파견을 와서 다시 아이들에게 화를 낼 것 같아 걱정이 된다는 분, 한가지 일에 집중을 잘 하지만 전체를 살피는 눈이 없어 고민인 분, 인도에 오고 나서 언어를 잘 몰라 의사소통이 잘 안되어서 조급한 마음이 올라온다는 분, 남들보다 긴장을 많이 하는 성격을 어떻게 고쳐야할지 묻는 분, 행자 교육을 받고 있지만 잘 생긴 남자를 보고나 결혼한 사람을 보면 마음이 흔들린다는 분, 인도에 행자로써 파견이 되어 왔는데 마음가짐이 어떠해야 하는지 등 각각의 질문들에 대해 스님께서는 지혜로운 답변을 들려주셨습니다. 

 

각각의 질문에 대한 답변을 모두 소개해 드리지는 못하지만, 질문에 대한 답변을 모두 마치고 나서 스님께서 수행자의 자세에 대해 마지막으로 정리해 주신 내용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조금 더 행복한 삶을 살고자 하는 우리 모두에게 소중한 가르침이 될 것 같아 함께 나눕니다.  

 

“욕구를 따라가면 반드시 괴로움이 발생합니다. 반대로 욕구를 억압하면 괴로움이 발생하지는 않지만 욕구를 억압하는 그 자체가 괴로움이 됩니다. ‘행자는 어떻게 살아야 한다’ 이렇게 너무 자기를 규정하지 마세요. 일단 자기 상태를 늘 알아차리면 됩니다. ‘나는 이런 욕구에 치우치는구나’ 이렇게 알아차리면 되지 ‘치우치면 나쁜 거야’ 이렇게 규정을 자꾸 짓지 마세요. 그러면 스트레스를 받게 돼요. 

 


 

부족하다고 열등의식을 가지며 안돼요. 열등의식을 갖는다는 것은 자기가 잘 나고 싶어서 열등의식을 갖는 것입니다. 어차피 우리는 모두 부족해요. 그러나 우리는 그 부족한 상태에서 출발해서 그 부족한 점을 개선해가는 것이 우리의 목표입니다. 너무 빨리 개선하려고 하면 부족한 것이 자꾸 부각이 되니까 자학 증상이 생기고, ‘나만 그런가? 사람이 다 그렇지 뭐’ 이렇게 부족한 것을 합리화시키면 현실에 안주하게 됩니다. 그러면 발전이 없어져 버려요. 부족한 현실에서 출발해서 부족한 것을 극복하는 쪽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엎어지고 넘어지고 하면서 꾸준히 해나가면 됩니다. 

 

수행자는 밖을 보지 않고 자기를 봐야 합니다. 어떤 경우에도 자기를 봐야 합니다. 원칙대로 행동하지 않는 도반이 있다고 합시다. 그것을 보고 화가 나는 것은 내 문제입니다. 이 화는 내가 다스러야 할 문제이지 저 사람 문제는 아닙니다. 그러나 그 사람이 원칙을 어긴 것은 지적해서 개선해야 합니다. 그러나 화가 나서 지적을 하거나 불평을 하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불평으로 어떤 문제를 제기하면 그것은 자기 문제로 봐야 합니다. 

 


 

개선이 필요하면 두 번이고 세 번이고 계속 요구를 해야 됩니다. 불평하거나 화내지 않고 끝없이 문제제기를 해나가야 합니다. 그러나 그 속에서 화가 나는 것은 내 문제라는 얘기입니다. 문제가 있다면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 연구하고 시도하고 도전해 나가야 하지요. 그러나 화가 나면 ‘내가 나를 고집하고 있구나’ 이렇게 내 문제라는 것을 딱 알아차려야 합니다. 화를 냈다고 하더라도 ‘앗, 내가 집착하고 있었구나’ 이렇게 다시 돌아올 수 있으면 수행자이고, ‘아니, 그런데도 화를 어떻게 안 낼 수가 있어?’ 이렇게 나가면 수행자 아닙니다. 화를 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때 자기로 돌아올 수 있으면 수행자이고, 그것을 놓쳐버리면 수행자가 아닙니다. 놓치면 다시 돌아오고, 놓치면 다시 돌아와야 합니다. 그래서 아침마다 정진을 하는 것입니다.” 

 

스님의 명쾌한 말씀에 인도JTS 활동가들도 모두 마음이 가벼워졌습니다. 법회를 마치고 나서는 세명씩 네명씩 모여서 마음나누기를 하였습니다. 모두들 스님의 구체적이고 명쾌한 답변에 마음이 홀가분해졌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 수행법회 후 마음나누기

 

법회 후 8시30분부터는 사업논의 회의를 하였습니다. 내일 마을잔치 준비 상황을 함께 점검하고, 초등학교 인도인 책임자는 누구를 배정할지, 마을 개발 인도인 담당자는 누구를 배정할지 등을 논의하면서 인도JTS 2015년 사업계획을 거의 완성시켜가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 인도JTS 사업논의

 

이렇게 오늘 스님께서는 오전에는 마을 주민들의 마음을 가볍게 해주시고, 오후에는 인도인 교사들의 마음을 가볍게 해주시고, 저녁에는 인도JTS 활동가들의 마음을 가볍게 해주셨습니다. 함께 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더 행복하게 만들어주시려는 스님의 애정을 곳곳에서 느낄 수 있는 오늘 하루였던 것 같습니다. 

 

내일은 둥게스와리의 마을 잔치가 열리는 날입니다. 마을별로 장기자랑 경연대회도 하고, 푸짐한 음식도 함께 먹으면서 왁자지껄하고 신나는 날이 될 것 같습니다. 내일 하루 만큼은 둥게스와리 마을 주민들도 먹고 사는 걱정 없이 마음껏 놀 수 있는 날이 되었으면 합니다. 내일 또 소식 전해드리겠습니다. 

 

▼ 배고픈 사람은 먹어야 합니다, 아픈 사람은 치료받아야 합니다, 아이들은 제 때에 배워야 합니다. JTS가 인도 둥게스와리 아이들을 위해 펼치고 있는 기아, 질병, 문맹 퇴치 활동에 함께해 주세요. 

   

기아 질병 문맹퇴치 - 지금 함께해주세요 : JTS 후원하기

전체댓글 26

0/200

정긍정

잘 읽었습니다.<br />감사합니다...

2015-04-11 21:43:02

^^^^

&lt;&lt; ...농토로 부적합한 황무지여서 못 쓰는 제일 위쪽 땅을 저한테 준 것이죠. 45평씩 10명이 450평을 초등학교 지을 자리만 저한테 기증을 했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불교의 가장 중요한 성지인 부처님이 6년 고행했던 그 자리에 학교가 지어지게 된 것입니다. &gt;&gt;--수자타아카데미가 지어진 배경을 보며,가슴뭉클하게 눈물이 핑 도네요~보이지않는 부처님의 어떤 힘을 느끼게됩니다!

2015-04-05 01:23:08

오돈희

오돈희정미생양띠,남자49세
이글보고,저가 최고로놀랍고,최고경이롭다고,생각합니다...깨달음에최고,진실에최고는~
저의생각입니다..말과행동,마음,생각이바른사람이겠죠~? 늘,감사하는마음으로,살려고,노력중입니다.삼존불이시영원하소서~forever
아뇩다라샴막샴보리~깨달음중깨달음,진실중진실

2015-03-24 22:04:55

전체 댓글 보기

스님의하루 최신글

목록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