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14.8.11. 동북아 역사 대장정 이틀째 날 - 백암산성, 홀본산성

동북아 역사 대장정 이틀째 날이 밝았습니다. 참가자들은 340분에 기상하여 대련으로 가는 고속도로를 이용하여 요동성이 있던 요양을 거쳐 만주족 자치현인 환인으로 가게 됩니다. 아침 일찍 출발하기 때문에 호텔에서 아침 식사를 못하고 크고 맛있는 옥수수로 대신했습니다. 오늘부터 본격적으로 고구려 답사가 시작되고 첫 목적지는 백암산성입니다.

 

이동하는 차량에서 스님께서는 백암산성에 대해 설명을 해주셨습니다. 고구려의 연개소문이 비사성부터 건안성, 안시성, 요동성, 신성, 부여성까지를 연결하여 쌓은 천리장성 중 안시성과 요동성은 특히 당나라의 침공을 막는데 핵심이 되는 성이었는데 그 중 요동성을 보호하기 위한 산성이 백암산성이라고 합니다. 이 백암산성이 뚫리면 국내성과 평양성까지 위험해지기 때문에 최전방에 있는 군사적 요충지인데 수나라가 침공했을 때는 요동성이 함락되지 않았고 당태종이 공격해 왔을 때는 주성인 요동성이 함락되자, 백암산성은 항복해 버렸다고 합니다. 반면 양만춘의 안시성은 끝까지 당의 공격을 막아내어 성을 지켜냈는데 이 같은 사례에서 보듯이 성의 자연적 조건도 중요하지만 그 성을 관리하고 경영하는 리더의 중요성도 매우 영향이 크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7시경 백암산성에 도착하여 올라가기 시작했는데 홀본산성이 현지인들에게 오녀산성으로 불리우는 것처럼 백암산성도 현지에서는 연주산성이라 불리우고 있었습니다. 구름 낀 하늘과 시원한 바람, 성벽을 이루는 많은 돌들 사이로 피어난 들풀이 그 세월의 무게를 더함을 느끼며 스님의 상세한 안내에 따라 서쪽 성벽에 올랐습니다. 현장에서의 생생한 현장감과 스님의 자상한 설명에 이곳에서 나라를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우던 우리 선조들의 모습이 느껴졌습니다. 그들도 사랑하는 연인을 위해, 가정을 위해, 나라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고 싸웠을 것입니다.

 

스님께서는 고구려 성의 몇가지 특징을 설명해 주셨는데, 성벽이 무너지지 않도록 돌을 맞물려 쌓아올린 점과 성벽을 보호하기 위한 치성 그리고 덧성이 있다는 점입니다. 치성은 50~60 미터 간격으로 쌓아 방어 공간을 넓게 하고 적에게 화살을 쏠 때 사정거리가 30미터를 넘지 않도록 했습니다. 일반적으로는 성 바깥에만 치성을 쌓는데 유일하게 백암산성은 안쪽에도 치성이 있어서 물자를 보관하거나 병사들을 위한 공간으로 활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적의 침입이 잦은 서쪽 성벽은 높이가 10m에 이르고 아래 부분을 계단식으로 쌓아 안정성을 높인 것에 비해 적의 침입이 어려운 북쪽 성벽은 상대적으로 낮고 폭도 좁았습니다. 동쪽으로는 태자하라는 강이 흐르고 절벽으로 되어 있어 성벽이 아예 없다는 것이 한편으로는 당연하면서도 이런 지형에 산성을 만든 점을 신기하게 느끼며, 참가자 일행은 백암산성의 정상에 있는 망대에 올라 저 넓은 요동벌을 바라보니, 고구려의 영토였으나 현재는 중국의 영토에 속한 이 지역에 대한 아쉬움이 밀려왔습니다.

 

크지 않은 규모지만 그 지형지세가 산성으로서 완벽해서인지 돌궐 1만 군사가 공격해왔어도 함락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백암산성의 정상을 둘러 본 후 내려오는 길에 바닥돌을 깨내어 빗물을 모아 식수로 사용하던 웅덩이도 보고 남쪽에 한창 발굴 중인 병영터를 보면서 내려왔습니다. 마을로 내려와 보니 동네 담장 대부분이 성벽 돌을 가져다가 쌓은 것을 볼 수 있었는데 마을과 가까운 남쪽 성벽이 상대적으로 파괴가 심한 이유를 알 것 같습니다.

     

참가자들을 태운 버스는 다음 목적지인 홀본산성으로 가기 위해 환인으로 출발하였습니다. 백암산성에서 환인으로 향하는 길은 옛날 고구려가 국내성에 근거지를 만들어 놓고 요동으로 진출하던 통로였다고 스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역사적으로 우리와 끊임없이 경쟁하고 교류했던 한족, 중국이 자기 역사를 어떻게 정리하고 있는지에 대해 상세한 중국역사 강의를 듣다보니 어느덧 환인에 도착하였습니다. 먼저 점심식사를 한 후 바로 홀본산성으로 갔습니다.

 

버스를 타고 산에 오르던 길에 보이던 홀본산성의 위엄은 사진에 담지 않고는 견디지 못할 정도의 감격이었습니다. 고구려성의 특징은 절벽 등 지형 조건을 잘 활용하고 옆에 주변에 강으로 된 자연 해자가 있으며 평지성과 짝을 이루는 산성이 있다는 점입니다. 홀본산성은 해발 800m에 위치하고 있으며 특징으로 동문의 공자형 성문과 서문의 옹자형 성문이 있습니다. 홀본산성에 오르기 전에 박물관에 들렀습니다.

 

적석총은 고구려 초기 무덤 형태인데 깨지지 않는 강돌을 사용하였고 그 형태가 고인돌과 같습니다. 권력과 부에 따라 더 크고 높이 만드는데 그 높이가 점점 높아져 장수왕의 경우는 7층에 이릅니다. 흐르는 땀과 그 땀을 스치는 바람 덕분에 기분 좋게 산성을 오르고 난 후 저 멀리 내려다 보이는 풍경은 이루 말로 할 수 없을 만큼 장관이었습니다.

 

다만 댐 건설로 인해 많은 유물이 수몰됐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너무나 안타까웠습니다. 좁고 경사가 심해 다리가 절로 후들거리는 계단을 내려와 산길을 걸으며 스님께서 열심히 설명해주신 공자형 동문도 살펴보고 이끼 낀 2천년된 성벽에 서서 단체 사진도 찍고 그 후 우리는 홀본산성을 내려와 숙소로 돌아왔습니다.

 

물기를 머금은 풀잎향기, 하늘을 가득 메운 어두운 구름, 따스한 햇살과 우리들 몸을 슬그머니 감싸는 시원한 바람... 그 모든 것과 우리 선조들의 얼과 지혜를 느낄 수 있는 하루였습니다.

     

환인에서 저녁식사를 마치고 약간의 휴식시간을 가진 뒤 우리 민족의 시원에 대한 스님의 강의를 들었습니다.

     

고구려 역사를 학교에서 책으로만 배웠는데 역사 현장을 발로 밟아보고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하면서 고구려가 동북아 대륙의 중심국가로 존재했음을 확인했습니다. 고구려는 어떤 문화를 계승해서 이런 위대한 문명을 이루었을까요? 고구려의 창건자 주몽은 나는 부여의 자손이다라고 스스로 주장했습니다. 부여의 창건자 해모수는 스스로 자신은 단군의 아들이라고 주장했어요. 연원을 따지면 환인의 한나라가 우리의 뿌리이고, 우리 민족 역사의 시작은 배달나라입니다. 그것을 계승하고 개혁한 국가가 단군의 조선나라입니다.”

 

이어서 우리에게 익숙한 단군 설화를 들려주셨고 단군 조선이 어떤 나라였는지 설명해주셨습니다.

단군 설화 내용을 다시 풀어본다면 배달나라 환웅 가운데 마지막 환웅의 왕위를 계승한 사람이 단군인데 이 단군은 천손이긴 하지만 어머니가 토착세력의 부족장, 소위 곰족의 부족장 딸이었습니다. 단군이 천왕으로 추대되어 제 1대 단군이 되었습니다. 단군이 세운 조선나라는 이주해서 새로 나라를 세운 게 아니고 있는 배달나라를 혁신해서 그 이름을 조선나라로 바꿨습니다. 단군의 조선나라는 현재 역사적 기록에 단군이 총 47분이 기록에 남아 있고 약 2100년 동안 계승되었습니다.  왕의 아들이 없거나 신통찮으면 5가 회의에서 왕을 뽑았는데 주로 우가의 사람이 왕으로 추대되었습니다. 우가가 농업을 담당이니 식량담당이 가장 중요한 관직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단군조선 전반기 천년은 배달문명을 계승해서 동아시아에서 가장 앞선 문명이었으나 중국 주나라 후반 춘추전국시대에 이르러 사상의 발전과 철기문명의 발달로 중국에 역전을 당하게 되고 결국 침략을 받게 되면서 고조선은 쇠퇴하고 부여와 고구려로 이어지게 됩니다.

고조선은 세력이 약화되고 동북쪽으로 진출한 해모수가 고조선을 계승하여 부여가  창건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부여를 역사의 정통으로 보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여는 그런 고조선의 옛터를 회복하겠다는 적극적인 의지가 부족했어요. 이 문제로 인해서 고주몽이 부여와 대치했습니다. 둘 사이의 갈등이 생겼고 결국 고구려가 역사의 중심이 됩니다.”

     

이어서 스님은 현재까지 내려온 배달문명의 흐름과 현 상황을 설명해주셨습니다.

배달문명 아래에 아홉 개의 다른 문화를 가진 종족이 있었습니다. 조선의 휘하에 있다가 몽골족, 선비족, 말갈족 등이 독자적인 민족의 문명을 만들어 나갑니다. 배달문명 산하의 민족들이 각자 나름대로 독립국가를 건설하고 한때 강성했지만 결과적으로 도태되어 소멸했어요. 만족만 해도 아직까지 인구가 천만명 정도 남아 있는데 말도 안 쓰고 글도 안 쓰고 한족과 차이가 없습니다. 호적에 만족이라고 표시하는 것 외에 독자적인 문화를 가진 게 없습니다. 행정적으로 만족 자치현인데 독립된 나라를 꿈꾸는 수준이 전혀 아닙니다.”

 

이런 상황에서 한반도의 통일은 배달문명을 이어받은 다른 민족에게 어떤 의미가 될지 설명하셨습니다.

남아있는 민족 첫 번째가 대한민국, 두 번째가 몽골족입니다. 몽골은 내몽골과 외몽골로 나뉜 상태인데 중국과 러시아 두 강대국 사이에서 통일의 가능성이 별로 없습니다. 동북아 대륙 중에 그래도 남아있는 건 조선족밖에 없습니다. 우리 민족의 문제를 넘어서서 배달문명의 영광을 되찾는 건 동북아 민족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일입니다. 스케일을 크게 잡는다면 우리에게만 꿈과 희망이 아닌 것입니다.”

     

한반도의 통일이 우리 민족만의 꿈과 희망이 아닌 배달문명의 영광을 찾아주는 일이라는 말씀이 크게 다가왔습니다. 한편 스님께서는 우리 민족이 활동한 무대였던 동아시아 대륙이 현재 중국 땅이 된 연유도 설명해주셨습니다.

우리 민족이 활동했던 건 줄곧 현재의 만주라고 불리는 동북아시아 대륙과 한반도입니다. 중국이 동북아 대륙을 밀고 들어온 때는 한사군 때이고, 거꾸로 동북민족이 대륙 쪽으로 밀고 들어간 게 원나라 때입니다. 동북아 대륙은 한사군 때 빼고는 중국의 지배를 받은 적 없었는데 원나라가 망하고 명나라가 들어서면서 동북아 대륙이 중국영토가 됐습니다. 동북아 대륙은 중국인이 점령한 게 아니고 원나라 땅이었다가 중국땅이 되어버려서 어쨌든 중국영토가 된 거죠.”

스님은 역사를 볼 때 문명적 사관에서 역사를 보는 눈을 키워야 한다고 강조하시면서 현재 우리의 과제인 통일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통일을 남북한의 통합으로 보는 것을 넘어서 문명적인 관점으로 협력해야 합니다. 통일이라는 건 이산가족이 만나고 경제가 통합되는 수준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상적으로 남북이 통일되는 건 원수가 형제가 되는 겁니다. 6·25때 남쪽 사람을 죽인 사람이 북한에서는 영웅이고 남한에서는 원수인데 통일이 되면 이 둘이 하나가 됩니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거죠. 엄청난 사상적 자유와 문명의 진보를 말하는 겁니다. 이건 정신적인 상처, 분단의 한계를 한꺼번에 극복하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문명이 세계의 선진문명으로 갈 수 있는 것으로 종교적 이상을 현실에서 실천하는 것과 다름없는 일이 벌어지는 겁니다. 통일은 단순한 영토의 통합이 아니라 상상도 못할 훨씬 더 큰 변화를 가져올 것입니다. 민주주의 심화, 소위 경제민주화 복지확대 이런 것들이 충분히 이루어진다면, 두 나라의 단순한 통합이 아니라 새로운 대한민국을 건설해나갈 수 있습니다. 나아가 단지 통일은 통일에서 끝나지 않고 동아시아 변영의 열쇠가 됩니다.”

     

또 앞으로 어떻게 해나갈 것인지를 과거에서 찾아볼 수 있음을 설명해 주셨습니다.

주몽이 그냥 나라 세운다고 되는 게 아닙니다. 어릴 때부터 역사의식을 가지고 나라 하나 만드는 게 목표가 아니라 선조의 옛 땅을 되찾는다는 목표를 가지고 했던 겁니다. 그런데서 지금 우리 문제는 영토의 문제에 너무 집착하면 안됩니다. 영토문제가 핵심이 아니라 어떻게 자기 정체성을 갖고 주변과 네트워킹과 협력을 잘하냐, 이게 핵심적인 관건이죠. 없는 역사를 만들자는 것도 아니고 남의 역사를 가져오자는 것도 아니고 있는 우리의 역사 잊지 말자는 겁니다.”

     

스님은 이 역사기행이 통일의 의지로 이어지길 청년에 당부하시고 토닥이시며 강의를 마무리하셨습니다.

경제발전과 민주화가 어느 정도 이루어져 우리가 통일을 할 만한 토대는 되는데 가장 중요한 건 통일에 대한 의지가 없다는 게 문제입니다. 사회각계각층에서 어떤 희망을 향해 연대하고 협력해나갈 것인가가 숙제죠. 우리가 역사순례하는 건 배달문명의 후예로서의 자긍심을 가지려는 겁니다. 규모만 봐서는 안 되고 정교함, 독특함, 이런 것들은 어디서 왔는지, 이런 공부를 하러 여기에 왔습니다. 역사를 통해서는 기상을, 기를 좀 받아갔으면 좋겠습니다. 청년들은 위축되어 자살할 생각하지 말고, 친구하고 어떻게 경쟁해서 이길까 하지 말고 좀 더 대범하게 가세요. 고기 먹고 술 먹고 노래방 가고 연애에 집착하고 괴로워하는 건 삶의 희망이 없어서 그런 거 아닌가요? 내 작은 재능을 쓸 수 있는 곳이 없어서 비전이 없어서 그런 게 아닌가요? 이런 게 나를 희생하는 게 아니라 이것이야말로 의미가 있고 재미가 있는 일인 겁니다. 삶의 희망을 만들어 나가는 그런 측면에서도 기상이 있어야지요. 이곳이 혁명의 고장 아닙니까? 일제강점기때 독립을 위해 고난의 행군을 했던 곳이니까 우리 힘들어도 여기서 답사를 계속해봅시다.”

     

이렇게 동북아 역사기행 둘째날의 모든 일정이 마무리되었습니다. 참가자들은 나누기 모임을 가진 후 내일 집안에서의 고구려 유적 답사를 위해 일찍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오늘 낮 기행부분은 채희범님이, 강의 속기는 양이숙님이 수고해 주었습니다.

전체댓글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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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이숙

자녁강의 속기 제가 했어요 ㅎㅎ

2014-08-17 15:11:05

최현숙

새로운 백년 정말 감동이죠~~ 공감합니다.! 그리고 아나다님!!! 공감합니다.^^

2014-08-14 13:02:02

무량상

맞아요! 법륜스님의 책 '새로운 백년'을 읽고 가슴이 터질것 같았습니다. 새로운 희망으로 얼마나 벅차던지.....저에게도 이런 애국심과 애민족심이 있었구나...자각하게 했습니다. 모르니깐 모르는 것이었다는거..<br />법륜스님 바른 역사 가르쳐 주셔서 감사합니다. 바른 길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바른 삶 살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세상에 속하되 세상에 속지 않겠습니다. 너무나 확연한 진리는 가슴을 뛰게 합니다.~~정토회! 법륜스님! 대한민국의 자부심입니다!

2014-08-14 12:5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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