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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길을 출발해서 밤새 심양을 향해 출발한 버스는 운행금지시간인 새벽 2시부터 5시까지 고속도로 휴게소에 정차해 놓고 참가자들도 휴식을 취했습니다. 새벽 5시가 되자 바로 출발하여 심양공항에 도착, 탑승 수속을 밟고 7박 8일간의 역사기행의 감동을 안은 채 인천공항으로 떠났습니다. 스님께서는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원고 교정을 하시고는 탑승하러 들어가는 참가자들을 환한 표정으로 일일이 악수하며 배웅하셨습니다.
그리고 바로 121명의 청년대학생들이 도착하여 또 한 팀의 7박 8일 역사기행단을 맞으셨습니다. 대부분의 참가자들이 새벽 4시에 일어나서 왔다고 하는데도 동북아 역사 대장정의 첫날이라 그런지 피곤한 기색 없이 들뜬 모습이었습니다. 공항에서 이곳저곳에 무리지어 사진을 찍고 왁자지껄 떠들었습니다. 참가자들을 반겨주듯 심양의 하늘도 푸르렀습니다.
스님과 참가자들은 버스를 타고 심양에서의 첫 일정인 요녕성 박물관으로 향했습니다. 버스에서 스님은 무전기로 전원 참가자들에게 반갑게 인사를 하시고, 7박 8일 동북아 역사 대장정을 함께 할 버스기사분과 법사님과 스탭들을 소개하시고, 오늘의 전체적인 일정에 대해 간단히 말씀해 주셨습니다. 참가자들은 무전기에 나오는 스님의 말씀에 일제히 조용해졌습니다.
스님께서는 전체적으로 동북3성과 심양에 대해 간략히 설명해 주시고, 요녕성 박물관에 대해 1관 문명서광 전시실부터 안내를 해주셨습니다. 참가자들은 스님 가까이서 설명을 듣기 위해 옹기종기 모여 스님을 따라 다니며 경청했습니다. 요녕성 박물관은 요녕성의 대표적인 유물을 시대별로 나누어 다섯 전시관에 전시하고 있습니다. 스님께서는 각 전시관에서 각 유물과 우리의 역사가 어떤 관계가 있는지 설명하셨습니다.
“지나간 문명은 어느 한 나라의 것이 아니라 인류의 재산입니다. 지금 요하문명이 중국의 땅에서 발견된 유물이라고 해서 그것이 중국의 역사를 입증하는 것은 아닙니다. 중국은 유물·유적은 있지만 역사가 없어서 해석하는데 장애가 있고, 우리나라는 역사·신화는 있지만 유물·유적이 없어 역사를 고증하기가 어렵습니다.”
스님의 말씀을 들으며 우리의 유적인데 지금 중국 땅에 있다고 해서 중국의 역사로 왜곡되는 것이 안타까웠지만 한편으로는 이런 역사가 우리에게 있었구나 하며 자랑스러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요녕성 박물관 견학을 마친 후, 스님과 참가자들은 북한 식당으로 향하였습니다. 남남북녀라는 말을 실감할 수 있듯이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북한의 아리따운 여성분들이 반가이 맞아주었습니다. 중국에서의 기대했던 첫 식사는 평양냉면이었고, 새콤달콤한 김치와 평양냉면이 어우러져 한국에서 맛보았던 냉면과는 다른 특유의 평양냉면을 맛 볼 수 있었습니다. 평양냉면을 맛보는 동안 스님의 특별 요청으로 공연을 볼 수 있어서 혀뿐만 아니라 눈도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우리에게도 익숙한 ‘반갑습니다’ 노래로 시작된 공연은 마지막에 ‘다시 만납시다’ 노래로 끝이 났는데 이 노래를 들으면서 많은 참가자들이 감동을 받아 눈가가 촉촉해졌고, 통일에 대한 염원이 더욱 간절해짐을 느꼈습니다.
식사를 마친 후 숙소에 도착하여 각 조별로 인생 나누기 시간을 가졌습니다. 다음은 식사 장소로 이동하여 저녁식사를 했는데, 첫 중국식 식사에 신이 난 참가자들이 진행 스텝의 안내도 잘 듣지 않아 스님께서는 저녁 강의 시작 전에 기행 중 주의사항에 대해 이야기를 해주셨고 이어 민족의 시원에 대한 법륜스님의 강의가 시작되었습니다.
“오늘부터 본격적으로 동북아 역사 기행이 시작됩니다. 이번 기행은 역사적으로는 고구려‧발해‧독립운동 유적지를, 자연환경으로는 백두산, 압록강, 두만강 일대를 보는 것이 목적입니다. 역사는 과거를 공부하는 것이 아니고 현재와 미래를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지난 역사 가운데 교훈이 되는 것은 계승하고, 잘못된 것은 반성하고, 앞으로 다시 오류를 범하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미래를 위해서 과거를 공부하는 것입니다. 미래를 향한 옛길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먼저 이번 역사기행은 개인이 아닌 단체 생활이기 때문에 공동체로 생각하고 개인적인 욕망은 자제할 뿐 아니라 공동체 전체를 배려할 것을 당부하시며, 오늘 주제에 대해 말씀을 이어가셨습니다.
“민족의 시원은 민족의 뿌리입니다. 우리가 어디서부터 시작되었을까 하는 것입니다. 낙동강도 여러 갈래의 하천이 합쳐져서 만들어지지만 모두가 시원은 아닙니다. 우리가 시원은 하나로 정해 놓지만 또 그것만이 낙동강은 아닙니다.”
참가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민족의 시원을 강에 비유하여 쉽게 설명을 풀어 가시며 우리 민족의 시원을 찾아 현재부터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면서 하나하나 정리해 주셨습니다. 대한민국부터 시작하여 단군 왕검, 환웅 천황까지 민족의 역사를 찾아 거슬러 올라갈 수 있는데 이는 요하 상류에서 발견된 요하 문명 유적과 유물이 뒷받침 해 주고 있다고 합니다.
“환인의 한나라는 우리의 뿌리는 맞지만 한나라가 우리나라만의 것은 아닙니다. 진짜 ‘우리나라다’ 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배달나라입니다. 배달나라는 곰을 섬기는 부족, 호랑이를 섬기는 부족 등 여러 민족이 흩어져 살고 있는 곳에 선진문물을 가지고 온 것입니다. 이때 건국이념이 이런 후진 부족을 침략하여 착취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이롭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인류가 20세기에 들어와서야 가능했던 행동양식입니다. 홍익인간은 환웅의 신시 건국이념입니다. 환웅은 5,900여년 전에 홍익인간의 이념을 가지고 3천여명의 무리를 끌고 동북아 지역에 이주해 와서 지역의 토착세력에게 문명을 전파하고 나라를 세운 것입니다. 우리 육신의 유전자를 보면 환웅족보다 토착세력의 인자가 더 많을 것입니다. 하지만 정신적으로는 환웅의 신시에 뿌리를 둡니다. 하나의 뿌리에서 흩어진 것을 보면 언어적 어순이 같을 것입니다. 토착민족이랑 합쳐졌기 때문에 생긴 모습은 다르지만, 어원이 비슷합니다. 하지만 중국은 우리와 생긴 것은 비슷하지만 어순이 전혀 다릅니다. 이것은 문명의 뿌리가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홍익인간, 재세이화-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는 하늘의 뜻을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는 것입니다. 환인의 한나라의 문명을 신시의 배달문명으로 만들겠다는 뜻입니다. 단기기원이 아니라 신시개천 몇 년이라고 말해야 합니다.”
단순히 신화라고만 알고 있던 단군왕검과 환웅천왕의 이야기가 역사적인 사실로 생생히 살아 돌아오는 것 같습니다. 약 6천 년 전에 이 지역으로 이주해 와서 약한 다른 세력을 짓밟는 것이 아니라 문명을 전파하고 토착세력을 고도의 문명으로 이끌어 나갔다는 것이 놀랍기만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우리의 역사를 바로 알아서 민족의 자긍심을 가질 것을 당부하시며 오늘 강의를 마무리 하셨습니다.
“요하지역에서 발굴된 유물에 걸맞는 역사와 전설을 가지고 있는 곳은 동북아에서 우리나라밖에 없습니다. 피라미드처럼 무덤을 쌓은 것은 아시아에 고구려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7단 적석무덤 유적이 나왔습니다. 이것은 요하문명이 고구려의 뿌리라 해석할 수 있습니다. 역사적 사실을 바로 알아서 우리가 절대로 중국문명의 아류가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 스스로 우리는 변방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민족적 자긍심을 가지고 함께 새로운 문명을 창조해 가야 합니다.”
강의장이 다소 좁고 더웠지만 청년들은 스님의 말씀을 경청하고 나서 어느덧 동북아의 중심 문명을 이끌어 갈 꿈을 꾸는 듯 환한 표정으로 삼삼오오 얘기를 나누며 숙소로 돌아갔습니다.
내일부터 백암산성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역사기행이 시작됩니다.
오늘 낮 기행부분은 류희정님이, 강의 속기는 이윤미님이 수고해 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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