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14..8.3. 동북아 역사기행 첫째날 - 요녕성 박물관, 백암산성

올해로 스무 해를 맞은 동북아 역사기행, 201483일 오늘, 78일간의 여정이 시작되었습니다. 이번 역사 기행단은 법륜스님의 안내 하에 특별히 평화재단 평화연구원 김형기 원장님과 묘당, 덕생 두 분의 법사님이 동행하셨고, 좋은 벗들 스텝들, 일반 참가자를 포함하여 총 138명으로 꾸려졌습니다. 휴가철을 맞아 인천국제공항은 이른 아침부터 여행객들로 북새통을 이루었습니다. 140여명의 우리 일행은 질서정연하게 출국수속을 밟고 심양으로 향했습니다. 

 

 심양공항에 도착하여 무사히 입국 심사대를 빠져나와 일행을 기다리는 3대의 버스에 나누어 타고 일정의 첫 코스인 요녕성 박물관으로 향했습니다. 이동하는 버스 안에서 스님께서는 수신기를 통해 인사와 함께 요하 문명에 대해 간단히 말씀해 주셨습니다. 요하문명과 황하문명의 시원(始原)에 대한 이야기와 함께 환인-환웅-단군에 이르는 한나라, 배달나라, 조선나라로 이어지는 우리 상고사에 대한 밑그림을 그려주시며 환웅천황의 신시 개천 이래 6천 년을 넘게 동북아를 중심 무대로 활약했던 한민족의 기개와 그에 대한 자부심을 고취시켜 주셨습니다. 스님의 음성으로 우리 민족의 시원에 대한 개요를 듣고 나니 수천 년 전의 과거로 떠나는 역사기행이 비로소 본격적인 궤도에 올랐음을 실감하며 스님의 설명을 듣는 중에 번화한 심양 시내를 30여분 달려 요녕성 박물관에 도착하였습니다 

 

이곳 요녕성 박물관은 요하문명 중 요녕성에서 발견된 일부 유물만 전시되어 있습니다. 요하문명의 유물, 유적은 내몽고 자치구에 많습니다. 고조선 시대를 중심으로 발달된 청동기 문화, 배달문명시대에 해당되는 잘 다음어진 옥기문화, 그보다 앞선 신석기 문화가 요하문명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요녕성 박물관은 제1관은 구석기와 신석기, 동석병용기 시대의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으며, 2관은 중국의 상주나라 시대에 해당하는 요녕성 지역의 청동기 유물들이, 3관은 진한시대 이후 당나라시대까지 이 요녕성 지역에서 출토된 유물이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스님의 자상한 해설과 함께 한 시간가량 관람을 마치고 나와 각 차량에 준비된 삶은 옥수수를 점심으로 먹으며 이동하는 동안 스님께서는 스텝 소개와 이번 여행의 주의사항 등을 거듭 챙기셨습니다. 오늘로 단식 26일째를 진행하고 계신 스님께서는 참가자들이 옥수수 점심을 먹으면서 심양 시내를 벗어나는 동안 아무 것도 드시지 않고 수신기를 통해 여행 중 주의사항 등 이런 저런 것을 챙기셨습니다. 

 

 한 말씀 한 말씀에서 어린 제자들과 함께 수학여행 떠나온 담임선생님의 챙기는 마음이 온전히 전해집니다. 말씀을 마치신 후 30분 휴식하다 보면 백암산성에 도착할 테니까 휴식하면서 가자.’고 하신 지 얼마나 되었을까, 한참을 달리던 버스가 움직이지 않는 느낌에 눈을 떠보니 어느 한적한 시골 마을 길가에 버스가 정차하여 있습니다. 꽤 많은 시간을 그렇게 서 있는 것 같았습니다. 이야기인 즉, 마을 비포장도로를 정비, 포장 공사를 하는 중이어서 통행이 차단되었다는 것입니다. 차량이 통행할 방편을 마련하지 않은 채 왕복 도로 전체를 점령하며 공사를 하고 있는 그들과 30분 넘게 통과할 방법을 협상하셨지만 결국 수용되지 않아 왔던 길을 다시 나가 우회하기로 하여 한 시간 이상을 달리다가 다시 차가 섰습니다.  

 

노천 화장실에 다녀오라는 안내가 있은 후 스님께서는 마을 주민들과 한참동안 말씀을 나누셨습니다. 버스기사가 길을 잘못 들어 길을 잃었던 것입니다. 결국 그렇게 돌고 돌아 다시 처음 그 자리 차를 돌려 나간 공사현장으로 돌아왔습니다. 예년과 다르게 빠른 길로 가보려고 했는데 여의치 않았던 것 같습니다. 아이패드로 계속 지도를 보고 계셨던 스님께서는 빙빙 돌고 있다는 걸 알고 계셨지만 버스 기사는 길만 보고 다니니 같은 지역을 빙빙 돌고 있다는 걸 모르는 것 같습니다. 법을 가르쳐 주시는 지도(指道)법사님이나 길을 알려주시는 지도(池圖)법사님이나 결국 길을 잃고 헤매는 중생을 구제하시는 건 같은 것 같습니다. 그리 길지 않은 공사 구간을 뚫고 나오는 데 20분이 넘게 걸려 1시간 늦게서야 드디어 백암산성 입구에 당도하였습니다. 백암산성을 직접 올라볼 수 있게 된 감회를 스님께서는 해년마다 백암산성 오는 길에는 우여곡절이 있었다고 표현하시며 우리 일정 중 백두산 다음으로 보기 힘든 곳이 바로 백암산성이라고 하셨습니다.  

  

 

백암산성은 고구려가 축성한 100개가 넘는 성 중에서 현존하는 것 중 보존상태가 가장 좋은 것으로 현재 중국에서는 연주산성이라는 이름으로 부르고 있습니다. 지리적으로 만주 벌판이 끝나면서 백두산 자락으로 이어지는 경계에 자리하고 있어 북쪽으로 높고 남쪽이 낮습니다. 산성의 왼편 즉, 동쪽으로는 깎아 지르는 절벽 아래로 태자하가 흐르고 있어 적의 침입이 어렵다고 판단되는 동쪽은 비교적 성벽을 쌓지 않았거나 아주 느슨하게 쌓았으며 만주벌판에 면해 있는 남쪽과 서쪽으로 침입할 적에 대비하여 남쪽 서쪽 성벽을 가장 견고하게 쌓았습니다. 또한 산성을 보호하기 위해 덧성을 쌓았고, 성의 안쪽과 바깥쪽으로 치성을 쌓았습니다. 고구려 성의 특징은 돌을 마름모꼴로 다듬어 마름모의 끝이 서로 맞물리도록 하여 서로 지탱할 수 있도록 견고하게 성을 쌓았습니다. 현재 서쪽 성벽이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고 남쪽 성벽은 많이 훼손됐는데 남쪽에 마을이 있어서 주민들이 이 돌을 가져다가 집을 집의 담장을 치는데 사용해서 그렇습니다.”

   
  

스님의 해설을 들으며 남서쪽으로 빙 둘러친 성의 외벽을 돌아 망루까지 올랐습니다. 망대에 올라 사위를 돌아보니 과연 뻥 뚫린 남서쪽 벌판에는 어떠한 장애물도 없는 것이 이쪽을 향해 접근하는 무엇이 있다면 개미 한 마리까지도 다 보일 듯 탁 트인 전망이 시원하게 펼쳐져 있었습니다. 망루에는 과일 서너 점을 바치고 복을 빌고 간 흔적이 있었으며 바로 옆에 마시고 버리고 간 페트병이 눈이 띄자 스님께서 직접 주우시며 내려가는 길에 버려진 쓰레기 좀 주워서 내려가자고 말씀하셨습니다. 사소한 것 하나도 지나치지 않고 살피시는 모습에서 생활 속에서 몸소 실천하시는 모습에서 항상 감동하고 스님 모습 그대로 닮아가야겠다는 발심을 하곤 합니다. 성을 다 내려와서 아래에서 위로 올려다본 백암산성은 평지에 닿는 부분에까지 외벽을 둘러쳐 놓아 산성의 크기와 웅장한 자태에서 광활한 대륙을 지배하던 옛 고구려인의 웅장한 기상과 스케일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백암산성을 둘러보고 내려와 오늘 묵을 환인(桓因)현으로 이동하였습니다. 중간에 본계(本溪)현에서 저녁 공양시간을 가진 후 다시 2시간 30분을 달려갔습니다. 그런데 이 길이 바로 단군조선을 계승한 고구려가 졸본에 수도를 정하고 또는 국내성으로 수도를 옮기면서 단군조선의 옛 영토를 되찾기 위해 요동으로 요서로 진출해 가던 바로 그 주요 이동통로라고 하셨습니다. 밤길에 그냥 지나갈 뿐인 단순한 그런 길이 아니라 역사적으로 중대한 의미를 지닌 경로임을 일러주셨습니다. 또 이번 역사 기행에서 돌아보게 될 동북 3(요녕성, 길림성, 흑룡강성)의 역사적 의미를 되짚어주셨습니다.

     

숙소가 있는 환인에 도착하자마자 짐은 로비에 가지런히 모아둔 채 강의장으로 향했습니다.  

     

이미 많이 늦은 시간이라 참가자들이 피곤할 것으로 생각하신 스님께서는 관광이 아닌 역사 공부하러 온 것이니만큼 힘들다고 생각하지 말고 열심히 공부해 보자고 기운을 북돋워 주시며 우리 민족의 시원에 대해 정성스럽게 설명을 해 주셨습니다.  

     

우선 가까이부터 뿌리를 찾아가다 보면 대한민국-대한제국-조선-고려-고구려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고 고구려의 뿌리인 부여가 단군의 고조선을 계승하였으므로 우리 민족의 시원은 환웅의 배달나라, 환인의 한나라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음을 설명해 주시고 고려가 신라가 아닌 고구려를 계승함으로써 우리의 역사가 2천년에 그치지 않고 9천여년에 이를 수 있었고 강동6주를 되찾은 서희 장군의 담판의 배경에는 역사의식이 있었음을 설명해 주시면서 역사의식의 중요성을 강조하셨습니다. 아울러 신라의 백성과 영토를 계승한 고려가 발해를 계승한다고 하지 못함으로써 결과적으로 민족사의 축소를 가져온 것처럼 앞으로 통일 한국이 남북한의 역사를 함께 포용하지 못하면 우리의 독립운동사가 축소될 것을 우려하셨습니다.

     

앞으로 대한민국이 과거를 정리할 때에 북한에 대하여 어떻게 볼 것인가 규정할 것인가가 매우 중요합니다. 만약에 우리가 통일한 후에 북한의 역사를 받아들이고 인정한다면 북한의 많은 독립운동들이 인정되지만, 북한 역사를 부정해버리면 독립운동사에서 제외될 것입니다. 현재 우리 남한의 독립기념관이나 독립역사를 보면 독립운동사의 일부만이 남아 있습니다. 이는 우리나라가 분단이 되면서 우리의 독립 역사가 왜곡된 것입니다. 이는 남북한이 각각 자신의 정통성을 강조하려면 상대를 부정하고 인정하지 않아야하는 처지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역사의식이란 중요한 것이고 우리가 지금 힘들게 여행하는 것도 바로 역사의식을 가지기 위한 것입니다.”

     

또한 중국은 자기 영토내의 모든 역사를 중국의 역사로 통합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는 반면에 우리는 배달 문명을 같이 물려받고 역사 속에서 우리 민족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는 이웃 민족들을 도외시하여 역사를 축소시키고 있는 것을 스님의 설명을 통해 들으면서 우리도 모르게 중국의 관점에서 오랑캐로 치부해버린 이웃 민족들에 대한 미안함과 안타까움이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동북아 대륙에서 수많은 부족들의 합류 결과 지금의 대한민국이 되었고, 그 속에 신라, 발해, 백제, 가야, 옥저, , 동예 등 모두 들어옵니다. 하지만 원줄기는 환인의 한나라이고 환웅의 배달나라, 단군의 조선나라, 해모수의 부여나라, 고주몽의 고구려로 연결되어 오다가 잠시 신라와 발해 2국 시대로 나눠졌다가 고려, 조선, 대한민국에 이른 것입니다. 중국은 계속해서 영토의 주인이 바뀌면서 각 나라의 수명이 짧았을 뿐 아니라 외세가 세운 나라도 모두 중국의 역사로 흡수하였기 때문에 역사가 풍부한 반면에 우리나라는 세계 역사상 보기 드물게 각 나라의 수명이 길었고 사촌에 해당하는 여진, 거란, 선비, 몽골, 만주 등의 민족사를 모두 빼버리니 역사가 단출해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북방민족에 해당하는 모든 민족들을 다 배달의 후예로 보아야 합니다.”

     

황하의 문명이 동아시아에서 앞섰다고 생각했으나 요하문명이 2천년 더 앞선 것이 밝혀지니 지금의 중국은 황하문명과 요하문명을 두 개의 물줄기로 받아들이고 있는데 이는 큰 역사의 왜곡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만이 요하문명을 뿌리로 한다고는 할 수 없지만 우리나라의 뿌리는 요하문명을 계승하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무덤 문화만 해도 한족에게는 이를 계승했다고 할 만한 유적과 유물이 없지만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고구려의 유적과 유물이 있습니다. 하지만 모레 집안에 가서 고구려 벽화를 보면, 일연의 설화 이야기가 나오는 신단수, 동굴, , 호랑이 등이 정확하게 나옵니다. 이는 위조할 수 있는 유물도 아닐뿐더러 5천년 전 홍산 문명 유적지에 이미 곰의 손모양을 한 여신의 유물이 나온 것과 연결해본다면 이는 단순히 설화라고 볼 수 없습니다.“

    

우리조차 단순 설화로 치부하고 있는 환인, 환웅, 단군의 역사를 이미 세상에 드러난 홍산문명의 유적과 유물을 통해 유추할 수 있는 사실들에 비추어 자세히 설명을 듣다보니 책 속의 신화가 우리 조상들의 삶의 이야기로 살아나오는 것 같습니다.

     

배달나라를 계승한 것이 조선나라이고. 조선나라의 일파가 남서쪽으로 가서 은나라를 세우고, 은나라가 망하자 고향으로 돌아온 게 기자조선입니다. 이때까지는 조선이 중국보다 앞섰는데, 후기 조선, 기자조선 이후에 문명이 주나라와 비등해지고 조선 말기엔 문명이 역전되었습니다. 중국은 춘추전국시대를 거치면서 철기 문명이 발달하고 조선은 청동기 문명에 안주하다 한나라의 침략을 받게 되었고 그 이후로 수세에 몰리고 있습니다.”

     

이렇게 과거 역사 속에서 앞선 문명을 갖고 있다가 중국에 역전된 사례를 설명해 주시면서 지금의 우리에게 또다시 과거 역사의 반복이 일어나지 않도록 경각심을 심어주셨습니다.

     

지금 문명적으로 누가 앞서 있을까요? 땅 덩어리는 우리가 월등히 작지만 현재 한국이 중국에게 문명적으로는 앞서 있고 모든 것이 한국에서 중국으로 가고 있습니다. 민주주의 같은 사상이나 산업 기술 등 여러 가지가 앞서 있는데 20년 후면 역전될 수 있습니다. 이것을 어떻게 살려 낼 것인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지금 우리가 이렇게 될 수 있었던 것은 인류 최고의 문명을 가진 배달문명의 DNA를 민족혼 속에 갖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신라의 목판인쇄, 고려의 금속활자, 조선 초기 과학기술 문명은 서양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았는데 조선시대 자발적 사대로 인해 민족의 기상이 달라졌습니다. 문명의 뿌리에 대한 바른 이해가 있어야 하는 것이 중요한 겁니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역사기행을 온 목적에 대해서 다시 한번 환기시켜 주시며 앞으로 남은 일정동안 참가자들이 역사기행을 진지하게 해 나갈 수 있도록 조언해 주셨습니다.

환단시대, 즉 환인, 환웅, 단군 시대는 사실 확인이 불가능합니다. 요하문명의 유적지가 있지만 다만 추리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내일부터 보는 고구려 유적은 기록도 분명하고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걸 보면서 이것이 어디서 왔느냐를 찾아가다보면 부여, 단군조선, 환웅의 배달나라로 갈 수 있고 또 이걸 누가 계승했을까 찾아가 보면 발해, 고려로 갈 수 있습니다. 고구려를 통해 상고사의 뿌리를 찾고, 계승자로 발해의 영광을 회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렇게 힘들게 고구려 유적을 둘러보는 것입니다. 이런 점을 명심해서 여러분들이 자부심을 가지고 역사 순례를 진지하게 했으면 좋겠습니다.”

이렇게 진지한 분위기 가운데 강의를 마치고, 내일의 일정을 위해 모두 숙소로 올라갔습니다. 내일은 오녀산성과 환도산성 그리고 국내성을 들러볼 계획입니다. 

 

오늘 스님의 하루 기행 부분은 전서영님, 강의 속기는 이선민, 김정윤님이 수고해 주셨습니다.

전체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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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긍정

잘 읽었습니다.<br />감사합니다.

2015-05-11 21:26:48

자재행 정홍숙

무더운 여름이지만, 열심히 공부하고 오신 모든분께 큰 깨달음의 기회이며 자부심 가지시길... 우리는 참으로 훌 륭한 조상님을 가진 민족임을, 우리스스로 자각하고 반성하며 예전의 성품을 ,호연지기와 인 ,의, 예, 지를 되찾아야 합니다!!! 화이팅!!!

2014-08-22 23:20:43

문승대

저는 인터넷으로 정토회를 통하여 불경공부를 짬짬히 하는 시민입니다<br />이번 여행이 여러분들의 우리나라의 상고사에 대한 인식을 새로이 하는 조그만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br />고구려가 망하고 발해가 건국된 것이 불과 30여년밖에 안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br />그러나 슬프게도 우리는 발해에 대하여는 너무나 모르고, 통일신라를 부정해서도 안되겠지만 맹목적이리만큼 신라로 이어지는 민족의 정통성을 외길로 무작정 내려왔습니다<br />고구려가 망했을때 요동일대 즉 전방사단은 전혀 망하지 않고, 거의 발해로 내려왔다는 역사적 사실로도 발해를 우리 민족사의 주요부분으롤 당연히 받다드려야 할 것입니다<br />1천여년이 흘렀지만 동북3성에 가보면 음식문화하며, 이것 저것 우리와 비슷한 문화행태에 놀랄겝니다<br />아무쪼록 여행단 여러분 건강히 그리고 뜻깊은 남은 여정되시길 빌겠습니다<br />다음에는 저도 동참하고 싶습니다<br />

2014-08-05 20:4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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