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14.5.24. 평화리더십아카데미, 여성리더십아카데미 경주역사기행

 

오늘 새벽 2시 가까이 되어 경주에 도착하신 스님께서는 잠시 휴식을 취한 후 아침 일찍부터 낫과 호미를 들고 이곳저곳을 다니며 풀을 뽑기도 하고, 가지가 늘어진 것은 가지치기를 하기도 하며, 이곳저곳을 정비 하셨습니다.

     

오후 1230분부터는 평화재단의 평화리더십 아카데미와 여성리더십 아카데미의 경주 워크샵이 진행되었습니다. 법륜스님과의 경주 일정 첫 번째 장소는 법흥왕릉이었습니다. 구부러진 오솔길을 5분정도 걸어 법흥왕릉에 도착했고 법륜스님은 신라역사에 대한 개괄적인 설명을 해 주셨습니다. “신라는 우리 민족사에서 주류라기보다는 변방에 불과했습니다. 그런 신라가 어떻게 삼국을 통일하고 우리 민족사의 주류로 발돋움하게 되었을까요? 그것은 바로 신라가 가야와 합의통일을 하면서 가야의 우수한 문화를 받아들이고 가야의 귀족을 신라의 귀족으로 받아들이면서, 신라는 통합의 시너지 효과로 강성해졌습니다.”

 

스님께서는 수강생들에게, 신라가 가야와의 통일을 현재 남한과 북한의 상황에 빗대어 설명해 주셨고 수강생들은 신라의 통일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을 되새기는 듯 한 표정들이었습니다. “법흥왕은 율령을 반포하고 불교를 공인하는 등 개혁과 개방정책을 폄으로써 나라를 발전시켜 고대 국가로서의 모양새를 갖추는데 큰 공헌을 한 왕입니다. 신라는 모범적인 지도자들이 있었고 왕권이 안정되어 국론을 통일하는데 용이했습니다. , 그 당시 국제정세가 신라에게 유리하게 돌아갔지요. 우리가 신라의 통일에서 배울 수 있는 중요한 점은 가야와의 통합에서 보여준 그 시너지 효과입니다. 상대의 훌륭한 인재를 수용하고, 문명을 받아들이고, 이것이 신라가 비약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던 것입니다.” 스님은 신라의 통일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것에 대해서 다시 한번 강조하시며, 수강생들과 함께 법흥왕릉을 떠나 무열왕릉으로 이동하셨습니다.

     

태종무열왕릉 입구에는 태종무열왕의 업적을 기리는 비석이 우리를 반겨주었습니다. 이 때 경주의 온도는 32도에 달하며, 수강생들 이마에 맺힌 땀이 햇볕에 반사되어 반짝거렸습니다. 그러나 스님의 흥미로운 역사이야기에 모두들 지친기색도 없었습니다. “668년 고구려가 내분과 나당연합군과의 전쟁에 패해서 멸망하자, 당나라는 고구려 영토중 대동강 이남 땅을 신라에 주기로 약속했지만, 오히려 안동도호부와 9개의 도독부를 설치하고 고구려를 직할 관리했습니다. 이는 마치, 미국의 도움으로 남북이 북한을 멸망시키자 남북이 통일이 될 줄 알았는데, 미군이 북에 미군정을 실시하며 미국이 직접 관리하는 것과 비슷한 상황인 것이지요. 신라는 그런 상황에서 당나라와 전쟁을 벌였고 무려 8년이나 싸움을 계속했습니다. 신라는 대당 전쟁에서 당나라의 침공을 막아내고 676년에 당나라와 화친하면서 대동강 이남땅을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그 때 만약 신라가 아니라 고구려가 삼국을 통일을 했으면 어떻게 됐을까 하는 수강생의 질문이 있었고 스님의 답변이 이어졌습니다. “고구려가 삼국을 통일했다면 5세기경에 할 수 있었고 고구려는 중원을 점령하거나 아예 고구려가 없어질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신라가 통일을 함으로 인해서 영토가 지금의 한반도에 국한되었다는 것이 한계라고 보는 사람들도 있고, 반면 통일의 주체가 신라였기 때문에 중국에게 크게 위협이 되지 않아 민족의 고유성을 유지시킬 수 있었다고 볼 수도 있겠지요. 어떻게 평가하고 어느 면을 바라보느냐에 따라 장점과 단점이 있을 수 있습니다.” 스님은 태종무열왕릉 뒤에 있는, 고분군에서 수강생들과 기념사진을 찍고 다음 장소로 이동하였습니다.

     

계속되는 더위에도 스님께서는 빠른 걸음으로 수강생들은 인솔하셨습니다. 다음 장소는 김유신장군묘 였습니다. 스님은 수강생들을 그늘에 앉히시고 지팡이를 손에 쥐신 채 김유신에 대한 설명을 해주셨습니다. “김유신은 신라에서 최고의 장군으로 추대 받았던 사람이었습니다. 나중에 신라 하대에 가서는 흥무왕이라고 추존 될 정도였습니다. 김유신은 신격화된 유일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김유신은 어머니와의 약속을 지키려고 애인 천관을 외면해서 천관을 죽게 만들었던 것을 보면 한 여인의 좋은 아들이었던 것은 같은데, 한 여인의 좋은 남자는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여기도 그런 사람들 있는 것 같은데..” 스님의 말에 수강생들이 웃음을 터트렸습니다. 스님께서는 수강생들과 함께 왕릉보다 화려한 김유신장군 묘와 그를 받치고 있는 12지신이 새겨진 돌들을 한바퀴 둘러보았습니다.

 

스님께서는 사천왕사지로 발걸음을 옮기셨습니다. 사천왕사지는 신라에서 신성스럽게 여겨지던 낭산의 중턱에 위치해 있는데, 이는 낭산을 수미산이라 여기고 도리천과 인간세계의 중간계에 있는 사천왕들이 있는 곳이라는 의미라고 합니다. “사천왕사는 나라를 지키기 위해 세운 호국사찰입니다. 문무왕때 당나라가 군대를 이끌고 쳐들어 온다는 소식을 접하자, 왕은 이 사찰을 지었고 명랑법사가 유가승 12명과 함께 문두루 비법을 행하니 바다에 폭풍이 일어 당나라 군대가 모두 수장되었다는 설이 있습니다. 저 뒤에 가면 12지신을 모시고 문두루비법을 행했던 터가 남아있어서, 그 비법을 행한 것은 설이 아니라 실제였구나 확인이 되었죠. 그런데 그때가 7~8월인데, 우리나라에 태풍이 많이 일어나는 계절이지요.”

 

논리적이고 명쾌한 스님의 설명에, 오래된 옛날이야기도 사실적으로 다가와 황량한 절터가 실감나게 느껴졌습니다. “저 뒤에 보면 산이 보이죠? 저게 낭산인데 저기에 선덕여왕릉이 있어요. 그런데, 여러분 일제시대때 일본이 우리나라의 지맥을 끊는다고 쇠말뚝 같은거 박았다는 이야기 들어본 적 있어요? 사천왕사지와 낭산이 연결되어 있는데, 여기에다가 철길을 만들어 놨어요. 철길을 우연히 여기에 만든건지, 일부러 지맥을 끊으려고 만든건지는 모르겠지만 그랬을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사천왕사지에는 거북이 두 마리가 있는데, 하나는 문무왕의 공덕을 기리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사천왕사의 공적을 기리는 거북이 인데 두 마리 모두 목이 잘려져 있었습니다. 이 역시도 일제강점기의 흔적이라는 설명에 수강생들은 아쉬운 마음을 숨기지 못했고, 나라독립의 중요성을 새삼 되새기게 되었습니다.

     

일제강점기의 흔적인 철길을 지나 산으로 올라가니 산 위에 안락하게 자리 잡은 선덕여왕릉이 보였습니다. 스님께서는 왕릉 앞에 도착하신 후 한숨 돌리시고 곧이어 설명을 이어가셨습니다. 선덕여왕이 행했다는 신비한 이야기가 하나 있습니다. 선덕여왕이 즉위 한 후 당 태종이 꽃씨와 꽃그림을 선물로 보냈다고 합니다. 이를 받은 선덕여왕이 이 꽃은 향기가 없겠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씨를 심어 꽃이 피고 보니 정말로 향이 없었다는 거예요. 그래서 신하가 어떻게 그걸 아셨냐고 물으니 그 그림에는 나비가 없더라라고 말했습니다.”

 

얼마전 한 사극드라마에서 보여진 선덕여왕은 실제의 선덕여왕과는 거리가 좀 있지만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분황사, 영묘사, 첨성대, 황룡사 9층 목탑등 선덕여왕 시대에 완성된 많은 문화유산들이, 그녀가 역사적으로 재조명될 필요성이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것 같기도 했습니다. 낭산을 내려오는 길에는 문무왕을 화장한 자리에 탑을 세웠다는 능지탑을 만나, 죽어서라도 나라를 지키려고 했던 문무왕의 호국정신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어느덧 해가 지기 시작하고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했습니다. 법륜스님과 수강생들은 마지막 장소인 황룡사지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황룡사지에는 한참 모내기를 하시는 마을 농민분들도 보입니다. 황룡사지는 생각보다 규모가 상당했습니다. 목조 건축물들로 구성되어 있었던 황룡사지는 몽고가 쳐들어왔을 때 완전히 소실되었는데, 우리나라에 큰 규모 사찰이 없는 것이 아니라 몽고란, 임진왜란, 6·25 전쟁때 타서 모두 소실되었다는 스님에 말씀에 모두들 안타까워했습니다. “황룡사지는 진흥왕때부터 축조를 하기 시작했어요. 저 옆에 보이는 곳이 신라 왕궁터였는데 왕궁을 옮기기 위해서 원래 습지였던 이곳을 메워서 왕궁을 세우려고 했는데, 커다란 구렁이가 나왔어요. 그래서 여기는 사람이 살 곳이 아니라 부처님이 계실 곳이다, 해서 절을 짓게 된 것입니다. 황룡사지는 남문, 중문, , 금당, 강당의 순서가 아주 원칙적으로 잘 지어진 절의 정형입니다. 그것은 이곳이 습지를 메워 만든 평지이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앞서 말씀 드렸듯이, 선덕여왕때 만들어진 황룡사9층 목탑은 높이가 67m에 달했습니다. 9개의 층은 신라의 9개의 적을 방어하는 것을 의미하구요.” 설화가 가미된 스님의 설명은, 막연한 황룡사지의 숨겨진 이야기들과 그 규모가 눈 앞에 그려지는 듯했습니다. 황룡사지의 남문터와 금당터에 직접 발을 디뎌보면서, 스님과 수강생들은 화려했던 통일신라와 몽고침략의 아픈 순간을 느껴볼 수 있었습니다.

 

스님께서는 경주의 유적지들을 돌아보시고 나서 숙소에 돌아와 저녁식사를 하시고, 잠시 휴식을 취하신 후 7:30분에는 평화&여성리더십아카데미 수강생들과 신라의 삼국통일로 본 통일코리아의 전망이라는 주제로 오늘 하루 경주역사기행을 정리하는 강연이 있었습니다.

     

신라는 당시에 강한 나라가 아니었습니다. 고조선을 계승한 부여가 맹주였지요. 우리는 5국 시대라 하면 동부여,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 이렇게 다섯 나라를 이야기 하고 다시 삼국시대를 거치고 통일신라 이후에는 민족사적으로 보면 2국 시대라고 볼 수 있습니다. 북쪽으로는 발해, 남쪽은 신라. 이렇게요. 민족사에서 변방이었던 신라가 2국 시대를 이룰만큼 강대해 진 것은 법흥왕 때 개혁개방정책을 취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가야와 합병을 할 때 합의통일을 했기에 가야의 인적자원을 신라에 모두 유입하게 되었습니다. 1+1 넘어서 3이 되고 5가 되는 시너지효과를 가져왔습니다.

 

이런 점에서 동독과 서독의 통일은 신라와 가야의 통일과 매우 유사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독일의 통일은 단지 통일에 그친 것이 아니라, 그 결과 EU의 중심 국가가 된 것이지요. 통일이 가능해지고, 상승효과도 생기게 하려면, 힘 있는 쪽에서 없는 쪽을 가능한 포용해서 통일을 해야 합니다. 우리는 그것을 깊이 검토해야 합니다. 우리의 평화정책은 분단을 극복하는 징검다리로서의 평화와 우리의 통일정책은 통일을 넘어서 동아시아 공동체로 나아갈 수 있는 통일을 만든다면 과거의 상처를 치유하고 미래비전을 만들 수도 있습니다.

     

신라는 국제정세의 변화를 잘 감지하고 활용했습니다. 당시 중국에서는 당나라가 등장했고 당나라는 중국만이 아니라 전 세계에서 가장 강력하고 문명수준이 높은 국가였습니다. 신라는 그런 당나라와 협력을 유지했고, 그것이 통일의 주역이 될 수 있었고, 그 이후에도 문명의 발전을 가져온 큰 행운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지금의 한국도 주변정세의 변화를 활용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는 식민지배, 분단, 전쟁을 겪은 불행한 역사를 가지고 있음과 동시에 그런 상황에서도 산업화 민주화에 성공한 유일한 나라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대한민국은 조선시대의 명나라에 대한 자발적인 사대정책으로 중국의 변방으로 전락되듯이 국제정세 가운데에서 자주성을 띄기보다는 강대국에 휘둘리는 경향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시공간의 변화 속에서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예민하게 반응해야 합니다.

  

이제 우리가 처한 현실이 어떤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지금 중국의 급격한 부상에 따라서 세계는 미중의 패권이 경쟁하는 시대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미국은 일본을 동아시아의 미국대리인으로 만들려고 하고 있고, 한국이 일본과 함께 군사협력 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국제정세가 급변하는 상황에서 우리에게 기회가 많지 않습니다. 북한이 중국의 영향권에 들어가기 전에 빠른 시간 내에 통일이 가능합니다. 만약 영향권에 들어가서 친중 정권이 들어선다면 과거 한국정부가 미국영향권 내에 들어선 것과 같아 통일은 상당기간 어렵다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 목표는 남한체제유지 뿐만 아니라 북을 포함한 전 민족의 이익을 우리가 책임져야 하는 의식이 필요합니다. 이는 전민족적인 책임의식이지요. 그런데 이런 의식이 없다는 것이 통일에 있어서 가장 큰 취약점입니다. 그런데 남한의 보수는 통일의 주체가 남한이다 하는 의식은 있지만, 전민족적 책임의식이 없어 북을 포용하지 못하고, 진보는 남한이 중심이 되는 전민족인 책임의식이 결여되어 있는 듯합니다. 우리는 우리식대로의 일방적인 통일이 아니라 이런 토대위에서 북한을 포용하여야 합니다. 북한의 민심은 지금 현재, 많이 흔들리고 있습니다. 이런 흔들리는 민심을 잡기 위해서는 인도적 지원은 필수이고, 남과 북의 경제적 교류가 필요합니다.

 

앞으로의 북한의 미래는 굉장히 불안정합니다. 합의통일은 북한이 자주성을 유지할 때까지만 유효하고, 북에 친중정권이 들어서면 합의통일을 어렵다고 볼 수 있습니다. 중국이 미국보다 우위에 선다면 통일을 한다 해도 국가발전 비젼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통일이 되어도 강대국의 변방으로 전락합니다. 이런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우리는 역사의식을 가져야하고 통일에 대해 조금 더 주체적인 태도를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라며 리더십 아카데미에서도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안들이 무엇이 있을지 서로 대화하고 연구하길 바란다며 오늘 하루를 정리해주셨습니다.

그리고 몇가지 질문을 받고 난 후 오늘 하루를 마무리를 하시고 내일 문경에서 있는 정토불교대 특강수련에 참석하기 위해 문경으로 출발하셨습니다.


2025 9월 정토불교대학

전체댓글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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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행이원경

안선영님 의견에 동감합니다. 저도 몇 년전부터 새로운 100년 책을 어떻게 널리 읽힐 것인가가 항상 머릿속에 있는 숙제였답니다. 저도 전국의 도서관에 이 책이 있는지 찾아보고 없는 곳엔 책을 보내주도록 캠페인을 해보기도 하고 10명에게 보내서 그 사람이 책이 맘에 들면 또 10명에게 보내도록 릴레이식으로 하는 것도 생각해 봤는데 아직 해보지는 못한 상태입니다. 제가 속한 "새로운 100년을 여는 통일의병" 영남본부에서도 이런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어떤 식으로 운영하는 게 좋을지 저도 좀 더 고민해 봐야겠네요.

2014-05-27 13:23:12

정명화

와! 굿! 굿!
어떻게 요렇게 좋은 생각을 하셨을까요?
저도 기꺼이 동참합니다.
새로운 100년--이렇게 빛을 발하는군요---
말보다 실천,
행동보다 좋은건 없습니다.
관계자님! 적극적으로 검토해 주셔요--
마음있고 뜻있으신분--
함께 해 보아유----
도반님들~~~
사랑합니다.

2014-05-27 09:48:22

최미숙

안선영님 굿 아이디어~~새로운 100년 대박입니다! 저도 새로운백년 창구만들어주면 인연맺고 싶습니다. 책 10권 후원 10명에게 인연맺어주고 싶습니다.~~ 가슴뛰는 새로운 100년의 역사 우리가 만들어요!

2014-05-27 09: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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