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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 아침 새벽 기도를 마치고, 어제 준비한 음식으로 차례상을 준비했습니다. 나물과 과일을 올리고, 법사님들과 행자님들은 법복을 깨끗하게 차려 입고 차례 준비를 했습니다.
법륜스님을 모시고, 간소한 상차림으로 설날 차례 불공을 올리니 괜히 가슴이 벅차올랐습니다. 스님과 함께 간절한 마음으로 부처님께 절을 올렸습니다.
“지심정례공양 삼계도사 사생자부 시아본사 석가모니불
지심정례공양 시방삼세 제망찰해 상주일체 불타야중....(중략)
유원무진 삼보대자대비 수차공양 명훈 가피력 원공법계제중생 자타일시 성불도”
부처님께 먼저 공양을 올린 후, 조상님들께도 차례를 지냈습니다. 매일 아침마다 부처님께 제일 먼저 예불을 올리지만, 설날 아침에 이렇게 모여 함께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고, 조상님들께도 감사의 절을 올리니, 차가운 새벽 공기로 손발이 시린데도 마음이 따스하고 좋았습니다. 부처님과 제대선지식과 조상님들께 감사한 마음으로 큰 절을 올렸습니다.
차례 후에는 스님께 세배를 했습니다. 스님께서 덕담을 해 주셨습니다.
"봄이 오면 잎이 피고 가을이 되면 낙엽이 떨어지며 금방 일년이 지나가듯이, 인생도 나뭇잎 하나 피었다가 지는 것과 똑같습니다. 나고 죽는다는 것에 의미를 부여하면 의미가 있지만, 의미를 부여하지 않으면 그냥 자연현상의 하나입니다.
인생에 의미 부여를 너무 많이 하면 인생살이가 피곤해집니다. 그냥 나뭇잎 하나 피었다가 떨어지는 것이나, 풀 한 포기 피었다가 죽는 것처럼 생각하면 좀 밟혀도 자라서 꽃이 피고, 나뭇잎이 벌레 좀 먹어도 자라다 지고 그런 것입니다. 그런데 인생이 과거에 좀 밟혔다, 벌레 좀 먹었다 하는 이런 생각을 계속하게 되면 인생이 괴로워지고, 죽으면 어떻게 하나 이런 생각 자꾸 하게 되면 인생에 근심걱정이 많아지게 됩니다.
풀 한 포기 나서 죽는 것처럼 인생을 가볍게 생각하게 되면 오히려 천하의 제일 귀한 존재가 되고, 인생에 자꾸 많은 의미 부여 하게 되면 세상에서 제일 비참한 존재가 됩니다. 다람쥐도 걱정없이 사는데, 토끼도 걱정없이 사는데 오히려 인간이 괴로운 인생을 살게 됩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서 가장 열등한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경전을 읽는 것은 필요합니다. 그러나 경전을 많이 읽는다고 인생이 편안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지식만 자꾸 늘어난다고 인생이 행복지지는 않아요. 마음을 놓아 버려야 인생이 행복해지고 힘도 나고 그렇습니다. 그래서 너무 애쓰지 말고, 편안한 가운데 그냥 꾸준히 해나가야 합니다.”
“우리는 내 목표대로 살아가면서 주어진 현실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고 내 목표대로 안 되면 애를 쓰고 괴로워 합니다. 아니면 자기 목표를 버려 버리고 그냥 주어진대로 살아버립니다. 주어진대로 살면 짐승과 똑같습니다. 사람이라고 할 게 없습니다.
그런데, 자기 식대로만 하려면 짐승보다 못해집니다. 짐승은 괴로워하지 않는데, 인간은 괴로워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자기 목표를 향해서 나아가되 주어진 환경을 감안해서 살면 괴롭지도 않고 짐승보다 나은 인생의 길을 갈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애쓰지 말고 주어지는대로 살아라 하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잘못 받아들이면 짐승처럼 살아라 그렇게 되어버리고, 또 ‘너가 부처다. 깨달아라’를 잘못 받아들여 너무 인간이 굉장한 존재라고 생각하게 되면 사명감에 어깨가 무거워져서 사는 게 힘들어집니다.
애쓰고 말고 그러나 꾸준히 그렇게 살아보세요. 법사라는 게, 수행자라는 게 다른 것이 아닙니다. 어디 가든지 그렇게 꾸준히 자기 세운 원의 길을 가되, 주어진 환경에서 일어난 일을 그냥 받아들이면 됩니다.”
올 한 해는 정말 애쓰지 말고 꾸준히 그냥 살아 보자.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소리없이 소담스럽게 피어 있는 들꽃들처럼 그냥 그렇게 살아보자 하며 스님 말씀을 마음에 깊이 새겼습니다.
차례상을 물려서 아침식사를 하고, 바로 경주남산으로 향했습니다. 아침 공기가 찼습니다. 영하 3도라고 했습니다. 손을 호호 불며 집을 나섰습니다.
남산 삼불사에 차를 세우고, 삼릉길을 따라 천천히 걸어 올라 갔습니다. 해가 나면서부터 기온이 영상 15도까지 올라간다는 기상 예보가 있어, 스님과 김제동씨는 옷을 가볍게 입고 출발을 했습니다.
삼릉의 솔숲을 지나 맨 처음 만난 부처님은 목이 없는 냉골석조여래좌상이었습니다. 스님께서 상세하게 설명을 해 주셨습니다.
“이 부처님은 머리와 손발이 없습니다. 우리가 고등학교 다닐 때 저 머리를 찾아 이 계곡, 저 계곡을 참 많이 헤맸습니다. 그러다 머리는 부처님의 지혜를 말하고 손발은 자비, 실천을 의미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 머리와 손발을 잃어버리고 몸둥이만 덩그렇게 있는 것이 지혜와 자비의 실천을 잃어버리고 불교라는 이름만 가지고 있는 한국불교의 현실을 보여주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머리와 손발을 복원하는 길은 지혜와 자비의 정법을 구현하는 것이라 여기고 발원하였습니다. 그래서 정토가 가는 길은 바로 부처님의 지혜와 자비를 실현하여 이 불상을 참으로 복원하는 길입니다.”
그 다음 만난 부처님은 냉골석조여래좌상 왼쪽으로 조금 올라가면 왼손에 약병을 쥐고 서 있는 마애관음보살입상이었습니다.
“이 분은 관세음보살님입니다. 지금은 그늘이 져 있지만 오후 3시가 되면 관세음보살님 얼굴로 해가 환하게 들어옵니다. 그 때 보면 얼굴을 가장 잘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남산 제일 아래에 관세음보살상을 모시고, 남산 제일 위에 아미타부처님을 모셨습니다.”
조금 더 올라가 이제는 선각아미타삼존불, 선각석가삼존불에 예를 올렸습니다. 갈수록 검고 푸른 이끼가 끼어서 부처님을 드러낸 바위선이 잘 보이지 않게 되어 안타까웠습니다. 육존불 뒤로 쭉 올라가면 만나는 입술이 두꺼운 선각여래좌상도 만났습니다. 거기서 옆길로 더 가면 광배 앞에 당당히 앉아 있는 석조여래좌상은 남산 부처님 중 유일하게 팔짱을 낄 수 있는 부처님입니다.
스님의 중고등학생 시절 이야기도 같이 들으며 한 분 한 분 부처님을 만나고 설명을 들으며 산에 오르다보니 등에 조금씩 땀이 배기 시작했습니다. 상선암 오르는 길 맞은 편 바위에 새겨진 선각부처님도 보고, 상선암 마애여래대좌불에도 인사를 드렸습니다.
저도 대학생 때부터 매년 다닌던 남산이라 익숙한데, 스님께선 중고등학생 때부터 다니셨던 길이니 얼마나 낯익고 정겹고 추억이 많으실까? 그 속에서 신심을 키우고 역사를 배우고 민중의 삶을 이해하셨으리라 싶었습니다.
금오산 정상을 지나 남산 순환도로를 따라 포석정으로 내려오는 중간에 다시 산속 길로 접어들었습니다.
“자, 여기서 저 석탑 한 번 보세요. 여기서 보는 것이 제일 멋있는 것 같아요.” 스님의 말씀을 따라 바라보니, 5층 석탑이 멀리 하늘을 받치고 서 있는데, 참 아름다웠습니다. 늠비봉 5층 석탑. 용장골 3층 석탑과는 또다른 아름다움이었습니다.
늠비봉 5층 석탑 앞에서 스님과 김제동씨, 그리고 함께 산에 갔던 일행들이 모여 기념 사진을 찍었습니다.
내려오면서 부흥사 대웅전에 참배를 하고, 다시 오솔길로 접어들어 선각황금불을 참배하고, 다시 순환로를 따라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나누며 산을 내려왔습니다. 마지막으로 순환로가 거의 끝나는 지점에서 바위에 새겨진 세 분의 본존불, 약사불께 인사를 드렸습니다.
“예수님 뵌 지도 오래 되었는데, 오늘 부처님을 너무 많이 뵌 것 같습니다.”하며 장난스레 이야기하는 김제동씨의 말에 일행이 다함께 웃었습니다. 김제동씨 덕분에 많이 웃으면서 재미있게 남산을 다녀왔습니다.
다시 두북으로 돌아와 점심으로 떡국을 먹고 김제동씨는 저녁 일정이 있어 서울로 출발했습니다. 스님께서 직접 경주터미널까지 배웅 해 주었습니다.
오후에는 스님 부모님 산소에 갔습니다. 톱과 낫, 삽, 장갑 등을 챙겨 갔습니다. 성묘를 하고, 산소 주변 정리를 했습니다. 높게 자라있는 배롱나무를 손질하고, 개나리 주변의 나무들을 쳐 주었습니다. 스님께선 열심히 톱질을 하셨습니다. 한 시간정도 정리를 하고 나니, 산소 주변이 깨끗하게 정리가 되어 기분이 좋았습니다.
2014년 설날을 의미있게 보냈습니다. 스님과 함께 부처님께 차례상 올리고 예불을 모신 것도 좋았고, 스님의 덕담도 마음에 참 와 닿았습니다. 설날에 경주남산 순례를 한 것도 좋았습니다. 그리고, 생활하는 곳곳에 묻어나는 스님의 따스함과 배려를 그대로 느낄 수 있는 시간을 다시 가지게 된 것도 저에게는 소중했습니다.
내일은 도문큰스님께 새해 인사를 드리러 가실 예정입니다. 내일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