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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밤새 달려온 버스는 아침 7시경에 심양공항에 도착했습니다. 7박 8일간의 중국역사기행을 무사히 마치고 한국으로 가기 위해 수속을 밟습니다. 스님께서는 역사기행을 마치고 돌아가시는 한분한분에게 일일이 악수를 하시며 인사를 하셨습니다.
역사기행 참가하신 분들은 오늘 한국으로 돌아가지만, 스님께서는 오늘부터 또다시 청년들과 함께 역사기행을 한번 더 할 예정입니다. 심양공항 입국장에서 청년 역사기행팀을 기다리니 맨 먼저 김제동씨가 나옵니다. 김제동씨는 올 여름휴가로 이번 동북아 역사기행을 하기로 했답니다.
심양이 있는 요녕성의 서쪽은 내몽고 자치구 적봉시와 함께 고조선 시대의 활동무대였고, 고조선보다 앞선 환웅의 배달문명의 중심지였습니다. 고구려 발해 역사기행을 시작하기 전에 이의 뿌리에 해당하는 요하문명을 먼저 알아보기 위해 요녕성 박물관을 둘러보게 되었습니다.
요녕성 박물관으로 가는 버스안에서 스님께서는 우리의 고대문명인 요하문명에 대해 설명해주셨습니다.
“요녕성 서쪽 조양시 근처에서 홍산문화의 유물이 나왔는데, 5천년전에 이미 구리를 제조할 수 있는 문명이었으며, 여신, 재단, 돌무덤(적석총)등이 나왔습니다. 이것으로 이 시기에 고대국가가 만들어졌다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이것은 지금으로부터 6,000년-5,000년전 사이의 유물인데, 중국의 역사시작은 약 5000년전이며 장강문화와 황하문명을 시원으로 한다고 했는데, 그 이전 유물들이 나오게 되니까 중국은 국가적으로 논의를 해서 중국문명의 시원은 황하문명과 요하문명으로 한다고 정리한 것이 동북공정입니다.
만리장성 밖 유목민족이 세운 문화를 현재 중국이 그 영역을 통치한다는 이유로 중국 문명으로 편재해 버린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문명의 계승자인 부여 고구려 발해는 자동적으로 중국의 지방문명으로 편재되어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역사를 보면 환인의 한나라는 약 9,000년-6,000년, 환웅의 배달나라는 6,000-4,300년 사이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역사는 있는데, 역사를 뒷받침할 유물, 유적이 없고, 중국은 이지역에서 유물, 유적은 출토되었는데, 이를 뒷받침 할 역사가 없는 것입니다.
한나라, 배달나라, 조선나라의 위치를 요서지역이라고 추정해 왔는데, 이 지역에서 많은 유물들이 출토가 되었습니다. 여러 상식적으로 볼 때 배달시대, 고조선의 유물로 보입니다. 적석총은 지금까지는 어디에도 없는 고구려만의 독특한 양식이었는데, 여기서 발견된 적석총과 고구려의 무덤이 거의 같은 양식입니다.
이런 배달문명시대에 이미 녹도문 문자가 있었고, 고조선시대에는 지금 한글의 원형인 가림토 문자가 있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환웅천황이 하늘에서 내려올 때 천부인 3개-청동거울, 청동방울, 청동검-을 가지고 왔는데, 이시기에 이미 청동기가 사용된 것으로 보입니다. 단군신화에서도 곰이야기가 있는데, 고구려 벽화에 보면 신단수 아래 곰이 있는 그림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지역에서 발견된 일부 여신의 손모양이 곰 손모양입니다.
이런것에서 고대사를 다시 생각해봐야 합니다. 홍산문명은 시기적으로 배달문명에 해당하고 하가점 하층.상층문화는 단군시대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요녕성 박물관은 요녕성에서 발견된 것만 전시되어 있는데, 배달문명과 고조선문명에 해당하는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요하문명의 유물중 80%는 내몽고 자치구의 적봉시에 있습니다. 양쪽을 다봐야 우리의 고대문명이 어떻게 형성되어 있었는지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요녕성 박물관은 요하문명중 이 지역에서 출토된 유물을 전시하고 있는데, 특히 우하량에서 나온 홍산문화중 여신상과 옥기의 일부가 전시되어 있습니다.”
스님께서 요하문명에 대해 그리고 그 유물이 전시 되어 있는 요녕성 박물관에 대해 먼저 설명해 주셨습니다. 도착한 요녕성 박물관은 제1관은 문명의 서광이라고 하여 28만-4만년전 구석기와 8,000-7,000년 전의 신석기 유물과 5,000년전 홍산문화 유물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제2관은 중국의 하상주시대의 북방인 이곳에서 출토된 고조선 시대의 발견된 유물이 전시된 곳으로 주로 청동기 유물입니다.
점심식사를 하고 숙소에 도착하여 청년들은 조별로 모임이 있었습니다.
저녁시간에는 우리가 고구려 발해 유적지를 답사하면서 왜 역사를 이야기 하는지에 대해 스님께서 정리해 주셨습니다.
“인간은 시간적 공간적 존재이며 이것은 곧, 사회적 역사적 존재임을 말합니다. 나를 알려면 시간적 공간적관계를 알아야 하고 사회, 역사를 알아야 합니다. 역사 문제를 다루는 데 있어서도 개인처럼 열등의식을 먼저 치료해야 합니다. 열등의식이라는 것은 열등해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심리적인 상처입니다.
민족도 상처가 있으면 민족이 자주적이지 못하게 됩니다. 나타나는 현상은 첫째는 당당하지 못하고 비굴해집니다. 반대로는 자기들이 이 세상의 중심이다라는 과대의식이 생기는 것입니다. 열등의식과 교만은 동일 한 것입니다. 과대망상과 피해망상은 같이 다닙니다.
우리민족도 좋은점이 있고 나쁜 점도 있는데, 민족적인 열등의식이 있습니다. 우리 민족은 열등의식이 3가지 있습니다.
첫째가 중국에 대한 열등의식입니다. 중국이 문화의 중심이라는 생각에서 무엇이든지 중국으로부터 건너왔다, 침략을 당했다, 우리는 변방이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기독교라는 종교를 가지면서 서양에 대한 열등의식이 생기는 것처럼. 중국은 문화의 중심이고 우리는 변방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유교가 국교인 조선시대에는 심지어 중국을 부모의 나라라고 하기도 했습니다.
두 번째는 일본에 대한 열등의식입니다. 근대에 들어서면서 일본으로부터 많은 것을 따라 배웠습니다. 특히 침탈을 당해서 일본에 대한 상처가 깊습니다. 독도문제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독도를 우리가 점유하고 있는데도 우리가 더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이처럼 상처가 있으면 더 민감하게 됩니다.
세 번째는 미국등 서구문명에 대한 열등의식입니다. 우리사회 발전이라는 것이 서양을 모방한 것이고, 과학기술만이 아니라, 철학, 종교등 모든 분야에서 우리 것은 낙후되어 있고 서양 것은 발전되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근원적인 열등의식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세가지 민족적 열등의식은 역사적 조건에서 도래했습니다. 이 세가지 상처를 치유해야 새로운 시대, 동아시아시대를 준비할 수 있습니다. 세계에 나가서 아무런 열등의식 없이 당당하고 평등하게 나아가려면 민족적 상처가 우선 치유 되어야 합니다.
이번 역사 순례의 주 과제는 상고사입니다. 중국에 대한 열등의식을 어떻게 치유 할것인가입니다.
우리가 역사 복원이라는 문제를 풀기위해서는 핵심을 잡고 해야 합니다. 고구려라는 중심을 잡고 고구려의 뿌리는 어디인가, 고구려의 문화를 누가 계승했는가로 접근해 나가는 것입니다.
발해의 역사는 잊어버려서 잃어버린 것이 되었습니다. 발해사람이 쓴 자기기록은 한점도 없고, 요즘 발굴하면서 무덤, 비석에서 나오고 있습니다. 발해역사는 중국 당나라 역사 기록에 조금 남아 있습니다.
남한이 가진 장단점과 북한이 가진 장단점을 어떻게 조화롭게 만들어 갈것인가가 관건입니다. 사실적으로 접근해 가면서 과거를 살피고 미래를 돌아보자는 것이 이번 역사기행의 취지입니다. 어떤일을 할때는 핵심을 잡고 해야 합니다. 그리고 아무리 좋아도 재미가 없으면 하기 어렵습니다. . 재밌게 지내면서 그 안에 내용도 만들어가는 그런 역사기행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앞으로 진행될 동북아 대장정에서 우리는 어떻게 임해야 하고 무엇을 찾을 것인지를 스님께서 정리해주시면서 오늘 첫날을 마무리 했습니다.
내일은 고구려 성인 백암산성, 오녀산성을 갈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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