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13.8.6. 역사기행 셋째날 - 국동대혈, 5회분5호묘, 장군총, 광개토대왕릉

새벽 4시에 국동대혈로 출발했습니다. 국동대혈은 고구려 시대에 하늘에 제사를 지내던 곳입니다.



가는길에 이곳 마을 사람들이 전통적으로 믿어오던 관음상을 모신 관음굴을 들렀습니다. 중국은 문화혁명때 종교를 부정하기 때문에 모든 민간 신앙을 없앴다가 최근에 마을 사람들이 다시 동굴에다 관음상을 모신 것입니다. 우리들도 마음의 평안과 평화통일을 기원하였습니다.



관음굴과 사랑바위를 보고난 후 국동대혈로 이동했습니다.  

국동대혈은 큰 동굴이 동서로 뚫린 형태로 국내성의 동쪽에 큰 대혈이 있다는 뜻으로 고구려의 왕들이 직접 여기에서 하늘에 제사를 지냈다고 합니다. 고구려 왕들은 정치적 최고 권력자임과 동시에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제사장이었습니다. 우리들도 그 당시를 생각하며 남북이 평화통일을 이룰 수 있도록 간절히 기원했습니다.

 

국동대혈을 내려와서 압록강가를 따라 숙소로 오는 길에 압록강 건너 보이는 북한을 볼 수 있었습니다. 북한의 집들은 예전의 우중충한 회색빛에서 흰색벽과 푸른 지붕으로 새단장이 되어 있었습니다. 자거거를 타고 지나가는 사람들이 많이 보였습니다. 몇 년전만 해도 죽은 도시같은 느낌의 북한이 조금씩 밝아지는 것 같아서 그나마 다행스러웠습니다. 

숙소에서 아침을 먹고 난 후 해외사무국장인 김순영법우님의 어머님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실무자들은 모두 모여 스님과 함께 김순영님의 어머니의 왕생극락을 바라며 간단히 천도재를 지냈습니다. 

5회분 5호묘는 고구려 벽화고분중 유일하게 내부 관람이 가능한 곳입니다. 5회분 5호묘 안에는 죽은 시신을 보관하는 3개의 관대가 있었고, 벽화는 장식적인 문양과 설화적인 묘사들이 그려져 있었습니다.

 

장군총은 고구려의 적석무덤으로 7계단 22층으로 우리가 역사책에서 배워 아는 것보다는 훨씬 어마어마한 규모로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장군총 뒤의 한쪽 모서리가 무너져 있긴 했지만, 거의 원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몇 년전만해도 무덤안에 들어가 볼 수 있었으나 이제는 관광객들도 많고 무덤을 보호하기 위해 외부에서 보는 것만 가능했습니다.

 

광개토대왕비는 장수왕때 만든 것으로 호태왕의 업적을 기록한 것으로 고구려 건국부터 호태왕까지의 역사도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자연석의 돌에다 업적을 새긴것이며 비석의 크기도 엄청나게 컸습니다.

 

광개토대왕릉은 한면의 길이가 장군총의 약 2배이상의 크기를 가진 규모였습니다. 무덤만으로도 그당시 광개토대왕의 호탕한 기상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오늘은 다니다 보니 한국관광객들도 눈에 보입니다. 그 중 일부는 스님을 알아보고 함께 사진찍자고 하는분들도 계시고, 인사를 하고 가는 분들도 계셨습니다.

점심을 먹고 난 후 백산으로 이동했습니다. 오늘은 백산에서 잠을 자고 내일 백두산을 가려고 합니다. 

백산의 숙소에서 저녁을 먹고 난 후 스님으로부터 세 번째 강의를 들었습니다. 오늘은 고조선부터 현재까지 흥망성쇠를 거듭한 역사에 대해 설명해 주셨고 특히 역사의 정통성 계승, 그리고 힘이 약한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것에서 현재 남북한의 통일을 위한 방안에 대해 말씀해 주셨습니다.

 

“고조선이 쇠락하고 분열이 되어 번조선, 진조선, 막조선으로 되었다가 나중에 조선이 한으로 바뀌면서, 변한, 진한, 마한으로 되었습니다. 중국쪽에 위치한 것이 번조선(변한)이었고, 가장 오른쪽에 있던 막조선은 마지막 단군인 고열가가 산으로 들어가 버림으로 해서 해모수가 단군이 되어 부여로 명하였습니다. 고조선이 힘을 잃으니 열국시대가 되었고, 열국시대의 맹주는 부여가 되었습니다.  

이후에 주몽은 부여의 적통을 계승하여 고구려를 건국했기 때문에 건국이념이 조선의 옛땅을 되찾는 것이었습니다.

 

고구려의 대무신왕때 와서 부여가 고구려를 공격했는데, 부여의 대소왕이 전사하면서 이를 계기로 고구려는 성장하게 되고, 부여는 꺽이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열국시대, 오국시대를 거치고 부여는 문자왕때 고구려에 합병되었고 이후 삼국시대가 되었습니다.  

주몽의 고구려 건국에 대해서 불만을 가진 비류와 온조가 백제를 건국했는데도, 백제를 정통이라고 할 수 없는 것은 백제의 건국이념이 조선의 고토 회복이라는 것이 분명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신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이후에 고구려가 연개소문이 죽자 아들들이 분열해서 동생은 신라로, 맏이 남생은 당으로 가서 협력하는 등 내부분열이 가속화 되면서 당나라와 신라 연합군에 멸망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신라는 역사의식의 부족으로 고구려의 옛땅을 차지할 생각을 하지는 않았습니다.  

고조선이나 고구려가 망할 때 가장 큰 원인은 내부분열로 인한 것이었습니다. 내부분열이 일어날 수 밖에 없었던 것은 강경정책에 대한 반발이 큰 원인입니다. 권력을 유지하려면 독재를 해야 하고, 그러면 내부는 깨져 내부분열이 일어나고 백성들은 애국심이 사라지게 되는데, 이렇게 되면 망국으로 가게 되지요. 

삼국중에서는 고구려만이 고조선의 고토회복이라는 국가이념을 가지고 나라를 운영한 것입니다. 그러나 15대 미천왕때 고조선의 옛영토를 회복했지만, 오히려 그것이 화근이 되어 모용왕이 침입을 해서 연나라에 사대의 예를 취하게 되면서 최대의 위기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소수림왕이 왕위에 오르면서 관제를 정비하고 불교를 받아들였습니다. 불교를 받아들였다는 것은 단순히 종교적인 문제가 아니라 개방정책을 폈다는 것입니다. 고국양왕에 와서 자리를 잡았고 바로 광개토대왕으로 이어지면서 다시 국가이념에 충실하는 확장정책을 폈습니다. 고구려는 남으로는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고, 평양으로 수도를 옮기면서 장수왕 후반부터 문자명왕때까지 태평성대를 이뤘습니다. 

 

 신라의 역사를 살펴보면 법흥왕이 왕위에 오르면서 금관가야와 합병했는데, 가야는 신라와 철천지 원수지간이었지만, 과거의 원한을 씻고 합의 통일을 이루어 냈습니다. 합의통일이라는 것은 상대의 모든 문화를 수용하고, 지배세력으로 인정하는 것입니다. 가야의 왕족이 신라의 왕족으로 흡수된 것입니다. 이처럼 인재를 등용한 것이 신라의 국력이 비약적으로 성장하는 첫 번째 요소가 되었습니다. 가야 마지막왕의 증손자가 통일의 주역인 김유신으로 가야출신들은 주로 군대에서 활약했습니다. 

남북이 합의 통일을 하게 된다면 아마도 북한은 군대에서 그 능력을 발휘하게 될 것입니다. 이처럼 역사를 보면 아이디어를 얻을 것이 많습니다.  

나당연합군에 의해 660년에 백제가 멸망하고 668년에 고구려가 멸망했지만, 신라가 삼국통일을 한 것은 당을 몰아낸 676년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만큼 신라도 자주성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발해는 고구려의 옛 영토만이 아니라 그보다 더 북으로 진출했기 때문에 민족적으로는 말갈족이 대부분이었습니다. ‘

 

민족사에서 발해를 잊어버림으로 해서 잃어버렸고, 신라가 통일을 하다보니 신라중심의 역사가 정리된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고려가 이 부분을 잘 연결해 내었습니다.  

다만 고구려, 발해 아래에 있던, 문화가 다른 말갈․여진․거란․선비족을 떼내어 버림으로 해서 거대한 동북아의 문명사가 왜곡되어 버렸습니다. 통합해서 계승했다면 당당한 동북아의 거대한 역사가 되었을 것입니다. 앞으로 이런 것들을 어떻게 문명사적으로 통합을 해서 우리의 상처를 치유해 낼 것인가가 관건입니다. 이것이 치유가 된다면 중국을 두려워할 것도 없고 얕잡아 볼 것도 없습니다. 

지금 남북이 역사를 계승할 때도 백년뒤에 민족사의 단절없이 어떻게 계승할 것인지를 신라, 발해, 고려를 보면서 교훈을 얻어야 할 것입니다.  

세계 문명이 유럽에서 아메리카로, 이제는 동아시아로 이동하고 있습니다. 동아시아 문명이 도래하는 조건은 되었지만, 문명의 중심이 되려면 군사력, 경제력만으로는 안됩니다. 문명이 앞서야 합니다. 이것은 정신적 철학이 앞서야 하고, 인권, 소수자등 모든면에서 앞서야 합니다. 동아시아 도래가 자동적으로 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당분간은 민족적 갈등이 심화될 수도 있습니다.

 

중국은 인권이나 소수민족문제등 여러측면에서 문명을 이끌수가 없고, 일본도 침략과 만행에 대해 사과하고 역사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문명을 이끌수가 없습니다.

한국도 지금처럼 남북이 대결한다면 문명을 이끌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만약 한국이 합의 통일을 한다면 남한사람이 애국열사능에 참배하고, 북한사람이 국립묘지에 참배하게 되는 것은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것으로 엄청난 힘이 되고 동아시아 시대의 문명을 이끌수가 있습니다. 

이것은 세계의 갈등을 치유하는데도 모델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미래를 보고 크게 나가야 합니다. 이처럼 우리에게 주어진 기회를 살릴 수 있을것인가 하는 것은 우리의 과제입니다." 

앞으로 우리가 북한과 통일을 할 때 무엇을 중요시 해야 하고 우리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임해야 하는지를 다짐하면서 하루를 마무리 했습니다. 

내일은 림강에서 아침을 먹고, 영광탑을 방문하고 우리의 최대 관심사인 백두산을 오르는 일정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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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레놀

와~정말자세하고자상하게사진과스님말씀올려주셔서감동받습니다!정토회는왜?이런부분까지감동을주시는지...정토회입문2년~감동이아닌것이없습니다!근데스님이너무야의셨습니다..정토회는.큰나무큰바위큰하늘큰사랑..우리부처님~항상감사드립니다!이사랑일체중생의은혜에보답하겠습니다.개성공단이정상가동되기를진심으로간절히염원합니다!

2013-08-08 12:58:04

통일의병

우리의소원은 통일! 꿈에도 소원은 통일! 이정성 다해서 통일! 통일이여 오라~ 이겨레 살리는 통일~ 이나라 살리는 통일~ 통일이여 어서 오라~ 통일을 이루자!<br />우리가 합니다. 내가 합니다. 원은 지치지 않는 것이라 했습니다. 통일이 될때까지 마음을 정신을 다합니다. 우리는 위대한 단군조선, 고구려, 발해, 고려의 후손이니깐요...스님의 역사강의는 나란 존재에 대한 자긍심을 불러 일으킵니다. 고맙습니다.....그리고 저도 아래분의 말씀처럼 개성공단이 빨리 정상화되기를 간절히 기도하겠습니다.

2013-08-08 07:43:06

우리의소원은통일

남한사람이 애국열사능에 참배하고, 북한사람이 국립묘지에 참배하게 되는 것은 종교의 진리를 사랑을 실천하는 엄청난 힘이되고, 문명을 이끄는 힘이 된다는 말씀.....참 좋습니다. 정말 빨리 통일이 이루어지길...부처님 말씀처럼..미워해야할 사람속에서도 미움버리고, 증오속에서도 증오 버리고 우리 진정 자유롭게 행복하게 살아가자..는 부처님의 말씀처럼.....우리의 마음속에 모든 증오와 미움 버리고, 서로의 처지와 상황을 인정하고 배려하고, 소중하게 여기는 우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제 굶어죽어가는 사람이 없기를 원합니다. 최소한 인간다운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원합니다. 너가 없으면 나도 없고, 너가 죽으면 나도 죽는...너와 내가 다름이 아님을 배웠기 때문입니다. 저도 개성공단이 빨리 정상화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2013-08-08 07:2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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