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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모든 일정을 마무리 하고 12시가 넘어 잠자리에 들었지만, 다행히 오늘은 아침 일정이 조금 여유가 있었습니다. 보통 3시 전후로 기상하여 이동하는데, 오늘 아침은 5시 50분에 기상하였습니다. 기상 후 짐을 챙겨 현관으로 오니 비가 쏟아지고 있었습니다. 아침을 먹고 나서도 비가 내리고 있어서 오녀산성에 오르는 것이 가능한지 확인하는 동안 스님께서 고구려 시대의 홀본, 집안지역에 대해서 설명을 해주셨습니다. 고구려가 처음 세워질 때 소서노와 주몽의 이야기, 유리왕이 왕위 오르면서 소서노가 비류와 온조를 데리고 백제를 건설한 이야기, 유리왕때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집안으로 수도를 옮긴 이야기등을 듣고 있는 가운데 비가 그치면서 오녀산성에 오르는 것이 허락되어서 다들 가벼운 마음으로 오녀산성으로 향했습니다.
오녀산성에 도착해서 기념관을 둘러보고 산성입구까지 차로 이동한 후 가파른 계단을 올랐습니다. 가파른 계단을 오르다 보니 숨이 찼는데, 스님께서는 제대로 드시지도 않으시면서 오르는 길이 많이 힘드셨을텐도 모든 일정을 저희와 함께 해주셨습니다.
오녀산성은 고구려의 첫 수도이며, 오녀 산성 아래로는 비류수가 흐르고 있습니다.
오녀산성은 깍아지른 절벽위의 평지에 사람들이 살았으며, 여기에는 전망대, 병영자리, 우물터, 식량 창고자리터가 남아 있습니다. 오녀산성은 자연 지형을 그대로 이용하여 쌓은 천연의 요새로 적의 침입이 거의 불가능 했다고 합니다. 일반적으로 산성을 유지하려면 반드시 물과 곡식이 있어야 되는데, 이곳 오녀산성에는 우물터가 있어 지금도 샘물이 있습니다. 그리고 오녀산성을 오를 수 있는 곳은 서문쪽 밖에 없는데 서문은 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옹자형 성문을 쌓았습니다. 산허리에 있는 동쪽 성벽의 동문은 공자형 성문이었습니다.
오녀산성을 내려와서 점심을 먹고 환도산성, 국내성이 있는 집안으로 향했습니다. 환도 산성은 지형지세가 좋고 자연조건이 워낙 견고해서 적의 공격을 막기에 좋은 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함락이 잘 안되는 곳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425년간 2번의 함락이 있었습니다. 환도산성에서 바라보면 국내성까지 한눈에 볼 수 있기 때문에 밖에서 오는 적들을 바로 확인할 수 있는 구조였습니다.
고구려 산성의 특징중 하나는 평지성과 산성이 한 조를 이루게 되는데, 환도산성과 국내성이 한 조를 이루어 평상시에는 국내성을 중심으로 활동하다가 위급할때는 환도산성으로 이동했었습니다.
환도산성 입구에는 산성하 무덤떼가 있습니다. 산성아래 무덤들이라는 뜻의 고구려 무덤으로 아래에는 기단을 쌓고 맨위는 큰돌을 얹은 적석무덤입니다. 이런 무덤형식은 중국에는 없는 고구려만의 독특한 양식입니다. 계급이 높을수록 기단의 수가 많아지게 쌓았습니다.
국내성은 평지성으로 고구려 제2대 유리왕부터 제20대 장수왕까지 425년간 통치하던 곳입니다. 지금은 아파트들이 들어서 있고 성벽들이 일부 남아 있습니다. 국내성은 중국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시키고 앞으로 30여년에 걸쳐 사람들을 이주시키기로 했습니다.
국내성의 동쪽벽은 거의 형체를 찾아볼 수가 없고 남, 서, 북쪽벽은 일부 성벽들이 남아 있고 성문 자리도 남아 있습니다. 서문은 공자 형태로 그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국내성의 남쪽벽 자리를 따라 걷는 길은 압록강을 따라 건너편에는 북한이 보입니다.
건너편 북한이 보이는 압록강변에서 사진을 찍고 저녁을 먹으러 갔습니다. 저녁먹기가 약간 미안하기 했지만, 또 우리는 우리의 일정이 있기 때문에 미안한 마음을 뒤로 하고 저녁을 먹고 숙소로 와서 저녁강의를 들었습니다. 어제보다 약 1시간 정도 빨리 도착했습니다.
오늘은 스님께서 대한민국의 뿌리를 찾아가는 시간이었습니다. 지금 대한민국의 역사적 정통성은 어디에 있는지, 앞으로 통일된 대한민국이 가질 정통성에 대한 강의를 들었습니다.
“대한민국의 뿌리는 대한제국이고, 대한제국의 뿌리는 조선왕조입니다. 조선왕조는 삼전도의 굴욕으로 청나라에 종주권을 잃었다가 조선조 말엽 고종때 청나라의 세력이 약해지자, 국권회복을 하면서 국호를 대한제국, 연호를 광무로 쓰고 고종황제로 칭했습니다. 조선왕조의 뿌리는 고려왕조이며, 고려에서 조선으로 바뀐 것은 다른 변화없이 왕의 성만 바뀐 것입니다. 고려왕조의 뿌리는 고구려입니다. 왕건이 창건할 때 고구려를 계승한다고 했습니다. 만약 고려가 신라를 계승한다고 했으면 우리의 민족사는 2천년으로 한정 되었을 것입니다. 역사의식은 발해를 계승하지만, 현실은 신라를 계승한 것입니다. 그래서 고려가 고구려를 계승한다고 함으로써 동시에 발해, 신라를 계승한 것이 된 것입니다.
고구려는 주몽이 부여의 왕인 해모수의 아들이라고 했기 때문에 부여가 뿌리입니다. 동부여, 백제도 그 뿌리를 부여에 뒀고 정통성을 고구려가 계승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해모수는 부여를 세울 때 나는 단군의 아들이라고 했기 때문에 단군조선을 계승했고 단군은 환웅의 아들이며, 환웅은 환인의 아들로 환인의 한나라를 계승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민족사는 환인의 한나라까지 약 9천여년이 넘는 것입니다.
앞으로 우리가 통일국가를 이룰 때 국호, 국시를 고려해야 할 것입니다. 통일국가를 계승할 때, 북한을 배제하고 할 것인지, 아니면 북한까지 같이 계승할 것인지에 대해 고려해야 할 것입니다. 통일 국가의 정통성을 북한을 포함해서 계승한다면 북한의 독립운동가들도 함께 계승하게 될 것이고, 배제한다면 일본에 항거했던 독립운동중 사회주의 계열의 것이 모두 줄어들게 되는 것입니다. 그럴 경우 민족사의 정통성에 상당한 상처를 입게 된다는 것입니다.
남북간에는 지금까지 정통성 경쟁을 해 왔습니다. 초기에는 북한이 우세했지만, 지금은 남한이 우세합니다. 남한은 초기에는 정통성에 취약점을 가지고 출발했지만, 지난 60여년 동안 민주화 투쟁을 통해서 국민에 의해 선출되는 정부를 만들어 내었습니다.
이제는 남북한이 어떤 역사의식을 가지고 대해야 하는가의 문제입니다. 어떻게 민족사를 온전하게 이어가며 우리 민족의 발전에 어떤 영향을 줄것인가하는 문제입니다.”
오늘은 우리 민족의 뿌리가 어디인지를 살펴보고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고민하면서 하루를 마무리 했습니다.
내일은 하늘에 제사를 지냈다는 국동대혈과 꿈에도 그리던 장군총, 광개토대왕릉을 둘러볼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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