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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제19차 중국 역사기행 첫날입니다. 126명의 참가자들은 예정된 시간보다는 약간 늦게 심양공항에 도착했지만, 무사히 심양공항을 빠져 나와 요녕성 박물관으로 향했습니다. 요녕성 박물관으로 향하는 버스안에서 스님께서는 요하 문명에 대해 간단히 말씀해 주셨습니다.
“요하강 유역의 홍산문명은 황하문명보다 앞선 것입니다. 중국은 전통적으로 만리장성 밖은 오랑캐 땅이라고 하여 중국으로 인정하지 않았는데, 황하문명보다 앞선 문명이 만리장성 밖에서 발견되다보니 당황해 했습니다.
유물이 나온 것만이 아니라 성이 발견되고 거대한 적석무덤, 신전, 제단이 발견되었습니다. 중국은 전통적으로 용문화인데, 이지역에서 최고 오래된 용과 봉황이 나왔습니다. 중국의 갑골문자보다 더 오래된 문자인 도부문자도 나왔습니다. 이제까지는 중국 문명의 시원을 황하문명, 장강문명으로 하였으나, 지금은 요하문명과 황하문명을 중국문명의 시원으로 한다고 규정한 것이 동북공정의 가장 중요한 내용입니다.
요하문명은 인류 최고의 문명이라는 메소포타미아 문명과도 쌍벽을 이룰 정도이며, 단군조선을 넘어 환웅의 배달나라가 유물적으로 증명이 된 것입니다. 환인시대에 해당하는 9천년전 유물도 나왔습니다. 약 6천여년전 유물에서는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3단으로 된 제단이 발견되었고, 신전 특히, 여신전이 발견되었는데, 여신의 손모양이 곰 손모양처럼 보이는 것도 나왔습니다. 단군신화가 유물로 나온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고구려 무덤은 주위 어디에도 없는 독특한 양식인데, 고구려 무덤과 같은 적석총이 발견되었고, 그 규모도 고구려 무덤 이상으로 초기 국가가 형성된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기에 이제 우리는 더 이상 우리의 역사에 남아 있는 이런 기록들을 단순히 신화라고 생각하는 것을 바꿔야 합니다. 고구려만이 갖는 독특한 무덤, 성곽문화, 이것이 바로 선조로부터 물려받은 고대문화, 배달문명이었던 것입니다.
이곳 요녕성 박물관은 요하문명의 일부 유물만 전시되어 있고, 요하문명의 대다수 유물, 유적은 내몽고 자치구에 있습니다. 고조선 시대를 중심으로 발달된 청동기 문화, 배달문명시대에 해당되는 잘 다음어진 옥기문화, 그보다 앞선 신석기 문화가 요하문명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요녕성 박물관은 제1관은 구석기와 신석기, 동석병용기 시대의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으며, 제2관은 상주시대에 해당하는 청동기 시대의 유물들이, 제3관은 진한시대 이후 당나라시대까지 이 지역에서 출토된 유물이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요녕성 박물관을 나와 백암산성을 향했습니다. 2시간을 달려 도착한 백암산성은 한창 발굴작업이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백암산성은 고구려의 산성으로 지금은 연주산성으로 불리고 있었습니다. 백암산성을 따라 걸어 오르면서 스님께서는 백암산성의 특징, 고구려 산성의 특징에 대해 설명을 해주셨습니다. 백암산성은 산성을 보호하기 위해 덧성을 쌓았고, 성의 안쪽과 바깥쪽으로 치를 쌓았습니다. 고구려성의 특징은 돌을 마름모꼴로 다듬어 마름모의 끝이 서로 맞물리도록 하여 서로 지탱할 수 있도록 견고하게 성을 쌓았다고 합니다.
백암산성은 북쪽으로는 높고, 동쪽으로는 태자하가 흐르면서 절벽을 이루고 있으며, 적이 주로 서쪽으로 침공해 올 위험이 있어 서쪽으로는 성을 두껍고 견고하게 쌓아던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백암산성의 맨 꼭대기인 망대에서 주변을 살펴보면 적이 오는 것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시야가 트여있었습니다. 옛고구려인들이 나라를 지키기 위한 기상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백암산성을 떠나 환인으로 이동하는 길에 본계현에서 저녁식사를 한 후 다시 2시간 30분을 이동하여 숙소가 있는 환인에 도착하자마자 짐은 로비에 그대로 둔채 강의장으로 향했습니다.
비록 늦은 시간에 몸이 피곤하기도 했지만, 바로 강의장으로 향하면서 역사기행 첫날, 우리역사 전반에 대한 이야기들을 들었습니다.
“우리나라사람들은 크게 3가지의 열등감을 가지고 있는데, 첫째가 중국에 대한 문명사적 열등감인데 역사적으로는 상고사부분입니다. 우리의 뿌리인 상고사에 대해 많은 유실과 왜곡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주로 중국과 관련된 것입니다. 우리 상고사의 유실과 왜곡은 우리의 문명이 중국문명의 아류, 변방이라는 인식을 심어주고 있습니다.
둘째, 일본에 대한 식민지배의 상처인데 주로 근대사 부분입니다. 우리나라가 근대사회로 넘어오는 과정에서 일본의 침략을 받고 지배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문제가 아니라 식민지배에서 벗어나는 과정에서 우리가 스스로 자주독립을 이뤘다면 피해의식이 없을텐데, 외세의 힘으로 이루어진데다가 그 이후에 남북간 분단으로 인해 남한은 남한대로 북한은 북한대로 자기 정통성을 확보하기 위해 상대편에 대한 독립운동역사를 왜곡하거나 무시하고 있습니다. 그런 가운데서는 독립운동에 대한 인식부족으로 민족적 자존감이 생길수가 없습니다.
셋째는 미국등 서구문명에 대한 열등의식이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지식계층이 미국에 가서 공부를 하고와서 국민들을 개도했습니다. 현재 우리사회 발전이라는 것이 서양을 모방하는 것이고, 과학기술만이 아니라, 철학, 종교등 모든 분야에서 우리것은 낙후되어 있고 서양것은 발전되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근원적인 열등의식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운명을 개척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역사에 대한 정립이 되어야 한다는 것, 우리를 둘러싼 주변의 국제질서, 국제관계를 정확하게 알아야 된다는 것, 우리의 역량을 충분히 정확하게 파악해야하며 창조적 사고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창조적 사고를 하려면 열등감이 극복되어야 합니다. 열등감은 문명의 역류현상이 일어나면 극복이 됩니다.
그렇기에 우리의 역사를 민족사가 아니라 문명사로 다루어야 합니다. 중국은 이제까지의 한족 문화를 오늘날 다민족의 중국문화로 만들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거기에 우리가 흡수되어 있는 상태입니다. 이런 우리의 자존감을 세우기 위해 역사를 왜곡하자는 것이 아니라 잊어서 잃어버렸던 역사를 되찾아 바로 잡자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가지고 중국과 역사논쟁을 하자는 것이 아니라 이것이 극복이 되어야 한국과 중국간에도 좋은 관계가 유지되고 그래야만 도래하는 동아시아시대를 함께 준비할 수 있습니다. 인종적으로 중국의 한족은 남방 몽골리안, 우리나라는 북방몽골리안이고, 문화적으로도 중국은 차이나 티벳어족, 우리나라는 우랄 알타이어족입니다. 서로 섞여 살뿐, 문화적으로는 그 뿌리가 서로 다릅니다.
중국과 우리는 문화의 출발이 서로 다릅니다. 문명은 앞선쪽에서 낮은 쪽으로 흐르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의 과거 역사를 어떻게 복원할 것인지 고민해야 합니다. 정말 똑똑한 사람이 역사학과를 나와서 평생 역사연구와 정립에 몸담아야 합니다. 해모수라고 할 때 한문으로 적어놨는데 뜻을 새겨서는 의미가 없습니다. 순 우리말로 해석하면 ‘해를 모시는 우두머리’라는 뜻입니다. '천제를 섬기는 자'라는 뜻이지요. 수리는 '맨 꼭대기'라는 뜻입니다. 이렇게 언어를 모두 재해석해야 합니다. 일본의 천왕문화속에는 우리의 전통문화가 많이 남아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천왕이라는 것은 신정일치이며 천왕은 등극할 때 반드시 신내림을 받아야 합니다.
역사의 복원은 현장에서 조사할 뿐 아니라 사서를 참고할때는 그들의 편견에서 본 기록이라는 것을 감안하고 해석해야 합니다. 별자리의 이동도 조사하고, 백두산 폭발등을 과학적으로 검증할 수도 있습니다.
역사의 현장을 다니면서 우리 민족의 자존의 뿌리를 찾아 회복하는 그런 여행효과를 얻기를 바랍니다.”
오늘 역사기행 첫날 11시가 넘어 마무리 되었지만, 우리의 뿌리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우리가 대단한 민족임을 자각하며 잠자리에 든 하루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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