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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4시에 림강으로 출발하려 했으나 호텔측의 체크가 늦어져서 약 20분이 늦은 채 출발했습니다. 림강은 발해시기에 서경압록부의 소재지로 교통의 요충지였습니다. 최근에 림강 부근에서 발해의 유물, 유적등이 발견되었습니다.
이곳에서 역사기행 참가자들은 시장을 자유롭게 다니면서 아침을 해결했습니다. 중국 서민들의 실생활을 잘 알수 있었고, 우리가 직접 사먹는 재미도 있었습니다.
림강을 떠나 압록강을 따라 장백으로 향했습니다. 압록강 건너 보이는 북한은 여전히 가슴아픈 나의 모습이었습니다. 스님께서는 예년에 비해 농사가 잘 되었다고 합니다. 북한의 뙈기밭들은 여전했지만, 그래서 사람들의 움직임이 보였고 예전보다 활발해 보였습니다.
압록강 건너 보이는 북한의 뙈기밭은 가슴 아프지만, 그래도 예년보다는 조금 나아보인다는 스님의 말씀에 안도감이 들기도 했습니다. 스님께서는 압록강을 따라 가면서 보이는 북한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해 주셨습니다.
“북한은 자기가 농사를 지어도 자기것이 되지 않기 때문에 농사를 짓는데 소홀하게 되고 수확량이 떨어지게 되고, 개인은 먹고 살기 위해 집주위 산을 개간해서 농사를 지어 자기것이 되기 때문에 열심히 짓습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자기것이 되어 좋지만, 국가적으로는 손실입니다. 그래도 북한 주민들이 90년대 고난의 행군시기에 살아남은 것도 다 이 뙈기밭 덕택입니다.
북한이 계속적으로 식량난을 겪고 있는 가운데, 현재는 농업생산량의 배분을 바꾼다고 합니다. 생산량의 70%는 개인이 처분 가능하고, 나머지 30%에 대해서 정부가 공급하는 농자재에 대해 감가하고 남으면 농민에게 현금으로 배분하는 방식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러나 이것도 한꺼번에 시행한 것이 아니고 처음에는 30%만 개인이 처분했는데, 이제는 70%로 바뀌었습니다. 북한의 관리들도 북한의 농업 시스템이 이렇게 바뀌어야 된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회의를 하면 사회주의 원칙을 고수하는 소수가 주장을 강하게 하면서 제대로 시행이 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역사적으로 볼 때 전쟁이 나면 끝까지 싸우자는 사람들이 있고, 타협하자는 사람들이 있는데, 역사속에서는 싸우자고 하는 사람들이 잘했던 것 같은데, 현실에서는 사람들이 이렇게 고통받는데도 끝까지 싸우자는 것이 잘하는 것인지 다시 생각해 봐야 할 문제입니다.
90년대 후반에 북한 난민을 수도 없이 만나고 이야기 해봤을 때, 이념과 현실은 차이가 나는 것 같았습니다. 백성들을 팽개치고 나라를 지킨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북한난민들을 만나고 가장 가슴 아팠던 말이 ‘다 죽고 지혼자 왕하면 뭐하노?’라는 말이었습니다.”라는 스님 말씀에 다시한번 북한의 굶주리는 사람들이 스쳐지나 갑니다.
압록강 건너 북한땅을 보면서 스님의 설명을 듣다 보니 어느새 북한의 혜산이 내려다 보이는 영광탑까지 왔습니다. 영광탑은 발해시기의 탑으로 그 밑에는 무덤으로 되어 있습니다. 준비해 간 제물을 차려놓고 간단히 예불을 했습니다.
이곳에서는 압록강 건너 혜산이 바로 눈앞에 보였습니다. 북한을 가장 가깝게 내려다 볼 수 있었습니다. 건너 보이는 혜산은 강변에 벽을 쳐서 제대로 보이지 않게 해 놨지만, 강변에 나와 있는 사람들의 모습도 보였습니다.
점심을 먹고 난 후 백두산 남편으로 이동했습니다. 이동하는 중에 슬픈 소식 하나를 들었습니다. 며칠전 내린 비로 백두산 남편이 폐쇄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남문입구까지 갔다가 기념사진을 찍고 다시 서문으로 이동했습니다. 여기서도 시간이 늦어서 입구에서 모형을 보고 스님의 설명을 듣고 난 후 기념사진을 찍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랬습니다.
백두산은 내일 북문으로 갈 예정입니다. 만약 비가 온다면 이 또한 어떻게 될지 모르겠습니다. 중국역사기행은 고구려, 발해 유적지를 찾아가는 것이지만 그래도 최고의 묘미는 백두산 천지를 보는 것인데, 아쉬움이 많습니다. 혹시나 내일 비가 오면 어쩔까하는 걱정도 됩니다.
오늘 백두산 천지를 보지 못한 관계로 숙소에 예정된 시간보다 일찍 도착해서 저녁을 먹고 북한에 대한 스님의 강의를 들었습니다. 오늘은 하루종일 압록강을 따라 가면서 북한의 산하, 마을, 사람들을 보았습니다. 중간중간에 스님의 설명을 듣긴 했지만, 오늘 저녁 강의를 북한을 주제로 스님께서 정리해주셨습니다.
“북한에 대한 평가는 긍정적인 것이건 부정적인 것이건, 사실대로 접근해야 합니다. 일제 시대와 분단이 연관이 돼 있어서 제대로 평가를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1920년까지 독립운동의 주류는 대종교였고, 1930년 이후는 민족주의 독립운동은 소수였고 사회주의 계열이 주류였습니다. 상해임시정부가 유명무실해지자 무장투쟁하던 사람들은 대부분 중국 공산당으로 편재되어 독립운동에 가담했습니다. 일단 조국의 독립을 위해 들어간 것이었습니다. 국내 다수 국민들은 소작농 철폐등 사회주의가 당시 시대의 주류였습니다. 해방 후 남쪽은 미군정이 북쪽은 소련 군정이 들어섰는데, 서로 경쟁 상대가 된 것입니다.
해방이 되었지만, 문제는 해방의 주도 세력이 미국과 소련 외세였지 우리가 아니었습니다. 독립을 우리가 당당히 했다면 이런 일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분단 자체가 우리 책임은 아니지만, 미국은 미국에서 활동했던 이승만을 추천한 것이었고, 소련은 5년 정도 하바로브스크에 와서 소련군으로 활약했던 김일성을 내세운 것입니다. 외세의 힘이 강력한 상황에서 김구, 조만식 등 외세와 함께 하지 않았던 국내 세력은 클 수가 없었던 것이었습니다.
전쟁이 끝난 후에도 남한은 부정선거등 각종 문제들이 많았지만, 경제개발에 성공해서 1970년대 들어서 남북한 세력이 비등비등해지니까 서로의 체제를 인정한 위에 통일문제를 협의 하게 된 것입니다. 남쪽은 각각 독자적으로 국가를 유지하는 통일에 대한 원칙적인 통일인 연합제를 주장하고, 북쪽은 연방제를 주장했습니다. 7.4남북공동선언에서 세 가지 합의를 한 것입니다. 이때까지도 북한이 공세적인 시기였습니다.
그러나 1980년대 들어 북한은 경제가 침체되기 시작했고 우리나라는 올림픽이 끝나자 민주화운동도 성공해서 체제의 정당성이 강해졌습니다. 북한은 1989년에 세계청소년축전을 88서울 올림픽에 견주어서 과도하게 평양을 건설하면서 재정이 악화됐고, 주체농법, 자립경제가 다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거기다 결정적으로는 소비에트와 동유럽이 붕괴되어 북한 경제가 중대한 타격을 받았습니다. 치명적인 것은 에너지 공급이 멈춘 것이었습니다. 전기가 안 들어오니까 석탄을 못 캐고, 탄광이 무너지고, 탄을 못 캐니 다시 발전소를 못 돌리고 이렇게 악순환인데다 미국의 경제봉쇄로 자본주의 세계와 거래를 할수도 없었습니다.
북한이 대량아사가 발생한 것은 첫째는 북한정부의 잘못이지만, 둘째는 남한 정부의 잘못도 있습니다. 또, 세계 최강대국인 미국과 장기전을 한 것도 북한경제의 몰락을 가속화한 것입니다. 현재 북한의 경제와 사회는 붕괴된 상태였고 정치와 군사는 아직 굳건한 상태인 것입니다.
북한의 긍정적인 점을 얘기하면 보수세력은 친북이라고 하고, 북한의 피폐한 점을 얘기하면 북한과 남한의 진보세력은 반북이라고 합니다. 이제 우리는 친북, 반북이 아니라 객관적 사실 위에서 접근해 나가는 것이 필요합니다. 북한의 과거 긍정적인 점은 인정하고 그리고 내부 모순이 심해지면서 인권문제등 부정적인 면도 우리가 인정해야 합니다.
북한은 통일해야 할 대상인 동시에 현실에서는 최대 적대적인 당사자라는 이중 모순이 있습니다. 남북간 화해, 교류, 협력을 하되 북한의 도발에는 강력한 대응을 해야 합니다. 체제유지에 대한 불안을 덜어주면서 북한을 우리 민족사 내부로 어떻게 포용할 것인지 고민해야 합니다. 서민들은 인도적 지원을, 중상층 사람들은 남북경제교류로, 최상류층은 신분보장을 해주고 체제보장을 해주어야 통일의 길을 열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남쪽의 우파가 통일을 위해 북쪽을 포용해주어야 합니다. 중국의 대만에 대한 포용에서 시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어려울 때 힘있는 우리가 끌어안으면서 가면 신라가 가야를 통일할 때처럼 시너지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북한은 현재 아무리 통일을 얘기해도 통일보다는 체제유지가 급해서 남쪽이 주장했던 각자의 체제를 유지하자는 것에 남북연합의 큰 관심을 갖는 것입니다.
우리 민족의 미래를 위해, 대한민국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기 위해서도 성장동력이 소진된 현재 상태를 극복하기 위해서도 북한을 껴안고 가야 합니다. 인도주의 측면, 과거 아픔을 청산하는 측면, 미래의 비전을 만드는 측면, 국가 브랜드를 높이는 측면, 평화를 완전히 정착시키는 측면 등 10가지, 20가지를 잡아도 남북한이 통일해야 합니다. 젊은세대는 통일에 부정적인데, 미래의 비전을 만들기 위해서 통일이 어떤 이익을 가져오느냐가 새로 검토돼야 합니다. 새로운 100년을 만들어가는 사람들이 새롭게 통일운동의 주체가 되어야 합니다.
역사기행은 이런 기본 인식의 토대를 만들기 위해서 고단한 몸을 끌고 이렇게 역사의 현장을 찾아 다니는 것입니다.”
스님께서는 북한에 대한 상황도 이해하고 남한의 상황도 이해하면서 서로 양보하고 힘을 합해 나가야 할 것에 대해 당부하시면서 우리가 지금 이렇게 역사기행을 다니는 것도 이런 통일운동중의 하나임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내일은 오늘 보지 못한 백두산 천지를 보기 위해 다시 백두산에 오를 예정이며, 오후에는 발해의 유적지를 돌아볼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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