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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4시 30분 기상을 해서 5시에 천일결사 기도를 했습니다.
기도 후 모두 가사를 수하고 숙소였던 천축선원에서 천불화현탑으로 걸었습니다.
새벽 어둠이 약간 남아있는 길을 한 줄로 서서 천천히 걸었습니다. 날씨도 그리 춥지 않고 안개도 끼지 않아
상쾌한 새벽공기가 우리를 맞이해 주었습니다.
“천불화현탑은 부처님께서 사위성(쉬라바스티) 사람들을 교화하기 위한 방편으로 많은 군중이 모인 가운데
부처님께서 망고를 먹고 그 씨를 땅에 심어 순식간에 싹을 틔워 거목으로 자라게 한 후,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게 하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망고나무 열매 하나하나에 부처님이 화현하여
1000분의 부처님이 나타났다고 해서 천불화현이라고 합니다.
왕사성에는 부처님 법을 따르는 사람이 많았지만 이 곳 사위성에는 부처님을 알지 못했는데,
이를 계기로 많은 사람들이 교화되었다고 합니다. 문화적으로 발달하지 못한 이 곳 사위성 사람들을
처음에 교화하기가 쉽지 않았다는 것을 말해 주는 것 같습니다.” 스님의 설명을 듣고,
부처님께서 사위성 사람들을 교화하는 장면을 생각하며 명상을 하였습니다.
천불화현탑에서 천천히 걸어 기원정사로 갔습니다.
“부처님은 마음이 가장 편안한 상태로 걸으셨다고 합니다.
1250명의 비구들이 기러기떼처럼 걸어서 걸식을 하였습니다. 하루 15km가량을 걸었습니다.
너무 늦지도 않고, 너무 빠르지도 않은 걸음으로 오직 지금 자신의 동작에 깨어서 걸어 봅니다.
두리번거리지 않고 걷는 걸음에만 집중을 합니다. 부처님께서 1250명의 대중들과 밥을 빌러
사위성으로 들어가시듯이 천천히, 마음에 깨어서 걸어 봅니다.”
천불화현탑에서 기원정사로 가는 길에 저 멀리서 빨갛고 둥근 해가 떠올랐습니다.
부처님 당시의 걸식을 하러 걸어가는 1250명의 비구스님이 되어 걸었습니다. 그 모습이 장관이었습니다.
기원정사에 들어가서 부처님의 처소인 간다쿠티를 한 바퀴 돌며 탑돌이를 하고, 잔디밭에 넓게 앉았습니다.
이 잔디밭의 곳곳에 부처님과 부처님의 제자들이 앉아서 수행을 하셨을 것입니다. 그 자리에 우리도 앉아
부처님을 생각하고 부처님을 찬탄하며 기도를 했습니다.
스님께서 기원정사의 유래에 대해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인도말로는 ‘제따바나’ 즉 ‘제따의 숲’이라고 합니다. 제따(기타) 태자가 제공한 숲과
급고독 장자가 세웠다고 하여 ‘기수급고득원’이라고 하였는데, 그것을 줄여 기원정사가 된 것입니다.
급고독은 ‘외로운 이를 돕는 자’라는 뜻으로 인도 말로는 ‘아난드 핀디카’라고 하며 수닷타 장자의 별명입니다.
수닷타는 전 재산을 정법에 다 바쳐 부처님에게 공양드리며 불법에 귀의하였습니다.”
“수닷타 장자가 왕사성 친구집에 왔다가 부처님을 만나게 되고, 부처님께 귀의하여
부처님께 사위성으로 오시도록 요청을 드렸습니다. 사위성으로 돌아온 수닷타 장자는 왕사성의 죽림정사처럼
왕궁에서 멀지도 않고 가깝지도 않아 수행하기 좋은 처소를 찾던 중 제따의 숲을 발견하고 제따왕자에게
그 숲을 팔기를 요청했습니다. 제따태자가 숲에 금화를 모두 깔면 팔겠다고 하자,
수닷타 장자가 곡간 문을 열어 실제 금화를 까는 모습에 감동을 해서 나머지 부분을 보시했습니다.
이렇게 기원정사가 생기게 되고, 부처님께서는 45안거 중 19안거를 기원정사에서 보내셨습니다.”
“어때요? 좋죠? 저도 기원정사가 참 좋습니다. 부처님께서 45안거 중 24안거를 사위성에서 하셨으며,
그 중 19안거를 하신 곳이라 그런지 이 곳에 오면 마음이 편안하고 좋습니다.”
스님 말씀처럼 저도 인도성지순례에 왔다 가면 항상 기원정사가 제일 마음에 남았던 것 같습니다.
앉아 있어도 편안하고, 천천히 걸어도 좋고, 편안하고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아 어느 곳에 있어도 참 좋습니다.
예불과 기도를 하고, 스님의 기원정사에 대한 말씀을 듣고, 잠시 휴식을 했습니다.
그동안 스님께서도 염주를 들고 천천히 절을 하셨습니다.
스님께서는 부처님이 대승불교의 요체인 금강경을 설하신 배경과 핵심 내용, 오분향 예불문에 대해
법문을 해주시고, 기원정사에서 있었던 부처님의 여러 이야기들을 해 주셨습니다.
“부처님 법을 듣고 달라진 사람들, 유녀 암나팔리, 신통력을 쓰지 못하게 하자 죽을 때도
신통력을 쓰지 않고 죽은 목갈리나, 부처님 설법 때 존다는 말을 듣고 아예 잠을 자지 않아 육신의 눈은 멀었지만
천안을 얻은 아니룻다, 장사하는 사람임에도 부처님께 귀의하고 자신의 모든 재산을 내어놓은 수닷타 장자 등
부처님 법에 귀의한 사람들의 신심은 대단했습니다. 또한 참으로 당당했습니다.”
“금강경 뿐만 아니라 많은 경전이 사위성을 배경으로 설해졌습니다.또 여러분들이 잘 아는
가난한 여인의 등불도 이 곳이 배경입니다.”
부처님께서 이 곳에 머문 시간이 많다보니 전해지는 이야기도 참 많았습니다.
경전 독송을 하면서 부처님의 병든 비구를 간호하는 이야기, 눈 먼 아니룻다의 바늘에 실을 끼어주시는
부처님의 이야기를 독송하면서 눈물을 흘렸습니다. 부처님의 큰 자비심과 인자함, 자상함이 그대로 느껴졌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코살라국 프라세나짓왕에게 훌륭한 왕이 되는 길에 대해서도 설하셨습니다.
‘첫째, 백성을 사랑하기를 외아들 사랑하듯이 해라.
둘째, 타인의 희생위에 자신의 행복을 쌓아서는 안 된다.
셋째, 가난한 자를 돕고, 외로운 자를 위로해라’고 하셨습니다.
왕이 어리석으면 나라는 고사하고, 자기 목숨도 지키기 어렵습니다.
국가 지도자가 이렇게 국민을 아끼고 사랑한다면 훌륭한 지도자가 되겠죠? 2600년전, 절대왕국의 시대에
부처님은 왕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부처님의 위대함과 당당함을 다시 느낄 수 있습니다.”
오늘은 정말 오랫동안 기원정사에 있었습니다.
“여태껏은 성지순례오면 오후 4시경에 이 곳에 도착해서 경전읽고 법문하기에 바빴는데, 지난 20여년 동안
오늘처럼 이렇게 하루 종일 여유있게 기원정사에 있었던 적이 없었어요. 처음입니다. 참 좋네요.”
법문 후에는 스님과 함께 차량별로, 조별로, 개인들까지 다 사진을 찍었습니다.
사진을 찍고 기원정사를 나와 앙굴리말라탑터로 향했습니다.
“이제 사위성으로 들어갑니다. 기원정사에서 나와 사위성의 서쪽문으로 들어갑니다.
부처님과 1250명의 비구들이 기원정사에서 사위성으로 걸식하러 걸어갔던 길입니다.”
스님께서는 정말 자세하고 자상하게, 부처님이 살아오신 것처럼 설명을 해 주셨습니다.
앙굴리말라탑터에 도착해서 경전을 독송하고 잠시 명상을 했습니다.
“‘앙굴리’라는 말은 손가락이란 뜻이고, ‘말라’는 목걸이라는 말입니다. 앙굴리말라는 100명의 사람을 죽이고
그 손가락으로 목걸이를 만든 살인마였습니다. 살인마 앙굴리말라를 교화해서 출가하게 하고 깨닫게 한 것은
프라세나짓 왕이 “부처님이시여, 참으로 위대하시고 거룩하십니다.” 하며 찬탄한 것처럼
부처님의 위대함을 보여준 것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앙굴리말라가 돌에 맞아 죽으면서도 안온한 상태에서
죽음을 맞이한 것은 바로 부처님 법의 위대함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앙굴리말라탑터에 참배를 하고, 맞은 편에 있는 수닷타 장자의 탑터에도 참배를 했습니다.
“수닷타 장자는 재가신자지만 부처님의 10대 제자에 버금가는 분이었습니다.
왕사성에는 지바카, 사위성에는 수닷타 장자와 베사카 부인으로, 실제 교단에 많은 영향을 끼친 분들입니다.”
수닷타탑터에서 천축선원으로 돌아와 라면으로 저녁 식사를 하고, 저녁예불을 했습니다.
저녁예불 후에는 천축선원 주지이신 대인스님의 말씀을 듣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대단한 원력으로 불사를 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대인스님 말씀 후에는, 다같이 금강경이 설해진 곳이니만큼
금강경을 한 번 더 독송하고 하루 일정을 마쳤습니다.
내일은 상카시아로 갑니다. 오랫동안 차를 타야겠네요.
내일 상카시아에서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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