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13년 1월 9일 법륜스님의 하루(라즈기르)

수자타 아카데미에서의 마지막 밤을 보냈습니다.
새벽 4시 30분에 일어나 5시에 수자타 아카데미에서 라즈기르(왕사성)로 향했습니다.
짙게 안개가 끼어 차가 속도를 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예상 시간보다 한 시간 늦게 라즈기르에
도착했습니다. 날도 추웠습니다. 스님께서도 “무슨 날씨가 이렇게 춥나?”하면서 발토시를 하셨습니다.
인도가 많이 춥다고 옷 준비를 단단히 하라고 해서 설마 하면서도 겨울 옷 준비를 많이 해 왔는데,
정말 날이 많이 추워서 안 입을 줄 알았던 겨울옷을 겹쳐 입고 인도의 새벽을 보내고 있습니다.

“라즈기르는 북인도의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로 꽃피우던 곳으로, 당시 강대국이었던 마가다국의
수도였습니다. 라즈기르는 부처님과 인연이 깊은 고장입니다. 부처님은 카필라바스투를 떠나 출가하여
이 곳에서 두 분의 스승을 만나 수행하였고, 빔비사라왕과 첫 만남을 가진 곳이기도 합니다.
부처님이 성도 후 1000명의 비구를 이끌고 돌아와 오랫동안 머물면서 교화설법하여 빔비사라왕은
물론 사리풋트라와 목갈리나, 마하 가섭 등 유명한 제자의 귀의를 받고 최초의 불교 사원인 죽림정사를
기증받은 곳이기도 합니다.”

스님께서 라즈기르에 대해서 설명을 해 주셨습니다. 라즈기르에서 맨 먼저 간 곳은 영축산이었습니다.
영축산 오르는 입구에는 빔비사라왕이 말에서 내려 부처님을 뵈러 올라가는 빔비사라 로드가
시작되는 곳이 표시되어 있었습니다. 이 곳에서 선생경이 설해지기도 했고, 데바닷타가 돌을 굴려
부처님 발을 다쳤을 때, 아난존자가 이 곳까지 부처님을 엎고 내려와 지이바카로부터
응급 처치를 받은 곳이기도 하다는 스님의 말씀에 그 당시의 상황이 그대로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영축산으로 천천히 올라갔습니다. 부처님은 이 산에 머무시면서 반야심경, 법화경 등 잘 알려진
대승경전이 설하셨다고 합니다. 부처님이 계셨던 곳, 빔비사라왕이 직접 이 곳까지 걸어와서
부처님을 친견하던 곳, 부처님의 제자들이 수행하던 굴들, 데바닷다가 돌을 굴린 곳...
2600년전의 일들이 어제 일처럼 가깝게 다가오고, 상상 속의 부처님이 아니라 현실의 살아계셨던
부처님으로 생생하게 다가왔습니다.

 

영축산 정상에서 참배를 하고, 경전을 독송하고, 잠시 부처님 당시를 생각하며 명상을 했습니다.
부처님! 이 곳에 앉아 설법을 하셨던 부처님... 스님께서는 영축산을 올라가고 내려오면서
영축산과 부처님, 빔비사라왕에 대한 이야기를 자세하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영축산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빔비사라왕 감옥터로 이동했습니다. 가는 길 양 옆에
부처님의 주치의였던 지이바카 망고동산과 집터를 지나쳐 갔습니다.

빔비사라왕 감옥터에서는 빔비사라왕과 위제희 부인, 아들 아자타삿투, 데바닷다에 대한 이야기를
재미있게 해 주셨습니다. 이 곳은 또한 위제희 부인을 위해서 관무량수경이 설해진 곳이기도 하다고
하셨습니다.

 

이 곳에서 각 조별로 아침을 먹고 다음 순례 장소인 죽림정사로 향했습니다.
죽림정사에서도 참배를 하고 경전독송을 하고, 명상을 했습니다.
스님께서 죽림정사에 대한 설명을 해 주셨습니다.

“죽림정사는 라즈기르(왕사성) 북문 밖으로 나가면 멀지도 않고 가깝지도 않은 거리에 위치한
최초의 정사입니다. 라즈기르 빔비사라왕이 부처님께 공양을 하겠다고 여러 번 청했으나,
부처님이 거절하시자 빔비사라왕이 부처님께 기증한 곳이 죽림정사입니다.
코살라국의 수닷타 장자가 사위성에 지은 기원정사의 모델이기도 합니다.”

죽림정사는 대나무가 많았으나, 2년 전 ‘대나무 꽃’이 피어 모두 죽고, 새롭게 대나무숲을 조성하고
있었습니다.

 

죽림정사를 나와 칠엽굴로 향했습니다. 춥던 날이 해가 나니 금새 따뜻해졌습니다.
칠엽굴은 산으로 1.5km 가량 올라가야 해서, 땀을 흘리며 천천히 올라갔습니다.

“칠엽굴은 부처님과 직접 관계가 있는 곳은 아닙니다.
부처님이 열반에 드시고, 부처님 말씀이 잘못 전해질 수 있어서 이 곳 칠엽굴에서 깨달음을 얻었다고
인정되는 최고의 장로 500명이 모여 부처님이 말씀하셨던 경과 율을 결집하였습니다.
부처님의 법을 가장 많이 들었던 아난다 존자가 ‘나는 이렇게 들었다, 부처님께서...’하고 부처님 말씀을 전하면,
나머지 제자들이 ‘맞다’, 혹은 ‘거기에는 이런 부분이 더 들어간다’ 하며, 부처님이 말씀하셨던 것을
정리하였다고 합니다. 이것을 제 1결집이라고 합니다. 이후 제 2결집은 바이샬리에서, 제 3결집은
파탈리푸트라에서 있었습니다.” 칠엽굴 입구에 앉아 스님께서 당시 결집할 때의 상황에 대해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칠엽굴에서 천천히 내려와 나란다대학으로 이동했습니다. 나란다대학은 2팀으로 나눠서
현지 가이드의 설명을 쁘리앙카지와 JTS 실무자 김혜원 님이 통역해주는 형식으로 진행되었습니다.

“나란다대학은 불교대학이지만 불교만 가르친 것이 아니고 힌두교라든지 다른 종교나 철학이나 수학 등
전 학문을 가르친 종합대학이었다고 합니다. 7세기경 현장법사가 이 곳에 왔을 때는 학생 수가 만명,
선생이 천 오백명이었다고 합니다.” 스님에게 나란다대학에 대한 전체적인 말씀을 듣고,
나란다대학에 들어가서 구체적인 설명은 현장의 가이드로부터 들었습니다. 쁘리앙카지와 김혜원씨가
통역을 해줘서 현장 곳곳을 다니면서 자세하게 설명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지금 1km만 발굴했는데 그 길이가 10km나 되었다고 합니다. 10분의 1만 발굴된 상태라고 합니다.
내부에는 불상 모신 곳, 강당과 침실, 도서관, 목욕탕 등이 갖춰져 있었습니다.
당시 어마어마한 학교였겠구나 싶었습니다. 대단했습니다. 7세기까지 세계 최고의 대학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무슬림이 침공해 대부분 파괴하고, 도서관은 6개월이나 불탔다고 합니다.
지금도 도서관 벽면이 불에 탄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었습니다.

오늘은 라즈기르의 영축산, 빔비사라왕 감옥터, 죽림정사, 칠엽굴, 나란다대학까지 순례를 하고
숙소로 돌아왔습니다.

내일은 당시 가장 진보적인 도시였다고 하는 바이샬리로 갑니다. 바이샬리라는 도시를 떠올리면
부처님이 쿠시나가르로 가시기전 늙은 코끼리가 고개를 돌리듯이 천천히 바이샬리를 돌아보셨다는 장면이
항상 떠오릅니다. 내일은 바이샬리 순례 이야기를 전하겠습니다.

내일 뵙겠습니다.

전체댓글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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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륜장

몇해전에 다녀온 성지순례 이글 읽으면서 새록새록 생각이 납니다 그때 미처 느끼지 못한것들을 지금 온마음으로 느낄수 있어 감사합니다 부처님 생각하며 함께 순례하고 있는것 같아 참 행복합니다 스승님 들국화님 등 모든분들 덕분에 잘보고 있습니다 읽으면서 행복한 눈물 이 나네요감사합니다~~~

2013-01-20 07:16:26

있는 그대로

순례겸, 수행겸...<br />모두 수고 많으시고 보람된 시간 보내심에 부럽습니다...(^_^)

2013-01-17 20:07:17

혜향

부처님 당시 상황들을 눈앞에서 직접보는 듯한 느깜입니다!!! 사진과 글로서만 봐도 마음이 울컥~~~ 감동입니다. 여행중에 이리 소중하고 귀한 글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들국화님!<br />나란다대학은 생각할수록 너무 안타깝고 안타까워요. 인류의 정신적 유산이 그리 어이없게 소실되었다는 것이...

2013-01-17 15:2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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