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13년 1월 8일 법륜스님의 하루(수자타아카데미, 개교기념식)

수자타 아카데미에 울려 퍼지는 도량석 목탁소리를 듣고 일어났습니다. 종성에 이어 아침 예불과 천일결사기도를 하고, 6시 20분에 교문 앞에 모였습니다. 날이 환하게 밝았습니다. 스님께서 많이 피곤한 사람은 휴식을 하고 전정각산 아침 산행을 할 사람만 같이 가자고 하셨습니다. 올라가는 입구에도 탑터가 있었습니다. 조금 더 올라가니 작은 물웅덩이가 있었습니다.

“이 곳이 전정각산에서 유일하게 물이 있는 곳입니다. 사람도, 짐승도 모두 여기서 물을 마십니다. 부처님도 이 물을 마셨다고 해서 ‘부처님 샘터’라고 합니다. 지금은 건기라 모든 곳의 물이 마르고 없는데, 이곳에는 물이 조금 있네요.”

 

돌산이라 걷기가 불편했습니다. 스님께서는 그래도 소가 다니면서 길을 내어놓아 그나마 다니기 쉬운 길이라며, 가시나무가 많으니까 조심해라는 말씀도 해 주셨습니다. 걷다가 분위기가 안온한 바위로 둘러싸인 곳에 잠시 쉬었습니다. 맨 마지막 사람이 올 때까지 다 같이 명상을 했습니다.

“자, 여기까지라도 오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 지금 여기서부터는 힘든 사람은 따라오지 마시고, 여기 앉아서 명상을 하고 계셔도 좋겠습니다.” 이렇게 말씀하시고는 스님의 원래 속도대로 빠르게 산을 오르기 시작하셨습니다.

산 정상 부근에 명상하기 좋은 자리가 있었습니다. 전에 스님께서 명상하고 계신 사진이 정토회 달력으로 나온 적도 있었습니다. 같이 갔던 사람들이 스님께 자리에 한 번만 앉아 달라고 부탁을 하고는 비디오, 사진기를 가진 사람들이 그 뒤에 포토존을 이루고 열심히 사진을 찍었습니다. 참 멋있는 장면이었습니다.

 

산 정상에 올라가니 주변 경치가 멋있었습니다. 거기다 저 멀리 붉은 태양이 떠올라 운치가 더했습니다. “스님. 부처님도 여기서 저렇게 해가 뜨는 것을 보셨을까요?” “당연하죠. 여기서 6년을 사셨으니까 일출도 당연히 보셨겠죠.” “와, 부처님이 일출을 보셨던 곳에서 우리도 일출을 보고 있다는 것이네요? 와, 정말 행복합니다.”

 

전정각산에서 내려와 아침식사를 맛있게 했습니다. 잠시 휴식을 하고 설성봉 거사님 추모식을 했습니다. 설성봉 거사님과 함께 부산정토회에서 활동을 했던 하경화 님이 발원문을 읽고, 설거사님과 함께 서울, 대전정토회 등의 불사를 같이 했던 청덕님이 추모문을 읽었습니다. 청덕님은 추모문을 읽으면서 많이 울어서 동참한 사람들도 같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이어서 비구니스님들과 함께 정성드려 천도제를 봉행했습니다. 착한 염소같은 작은 눈으로 두꺼운 안경너머 우리를 바라보던 거사님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부산정토회에서 같이 활동할 때 거리에 모금하러 나가고, 사무실에서 같이 회의하고, 가끔씩 옥상에 올라가 이런 저런 이야기도 참 많이 나눴었던 설성봉 거사님. 거사님 덕분에 수자타아카데미는 아무런 사건 사고 없이 잘 지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감사한 마음을 다시 전하며 왕생극락을 기원했습니다.

 

추모식을 하는 동안에 학교에는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습니다. 수자타아카데미 학생들과 동네 사람들, 부다가야에서 오신 스님들과 국회의원 등의 내빈들이 수자타아카데미 19주년 개교기념식에 참가하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개교기념식이 시작되었습니다. 오늘을 위해 그동안 준비한 학생들의 공연이 하나 둘 무대에 올라오면서 분위기도 무르익어 갔습니다. 학생들의 공연 하나 하나가 재미있고 또한 감동적이었습니다. 스님 말씀처럼 그냥 뒀으면 거리에서 동냥을 하고 있을 아이들인데, 학교가 설립되고 교육을 받다 보니 이렇게 도시의 어느 아이들 못지않는 자랑스럽고 늠름한 학생들이 되어 있었습니다. 정말 교육의 중요성을 다시 실감하게 되는 자리였습니다.

 

 

 

수자타아카데미에서 처음 박명주 군에게서 태권도를 배웠던 학생이 전 인도 태권도대회에서 우승을해서 2개 분야에서 금메달을 따서 세계선수권대회 참가자격을 받았는데, 인도에서 여권이 늦게 나와 작년 11월에 한국에서 있었던 세계선수권대회에 참가하지를 못했다고 합니다. 그 소식에 기념식에 참가한 대중들이 ‘아이구-, 쯧쯧-’하며 아쉬움을 표했습니다. 그래서 그 때 받은 메달을 오늘 스님께서 직접 목에 걸어주었습니다. 감격스런 장면이었습니다.

 

성지순례객들도 정말 좋아했습니다. “뿌듯했어요.”“울컥해서 많이 울었어요.”“스님이 너무 자랑스럽고 고맙고 말로 다하지 못하겠어요.” 유영굴까지 쭉 줄서서 구걸하던 아이들이 이제는 어엿한 수자타 아카데미 학생이 되어서 춤도 추고 태권도도 하고 컴퓨터도 배웁니다.

“언제나 스텝진을 자비롭게 돌봐주시는 미얀마 큰 스님께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19년 동안 계속 지원해 주신 한국의 후원자분들에게도 감사를 드립니다. 여기 함께 있지는 못하지만, 한국에 계신 후원자님들께 감사함의 큰 박수를 보내 주십시오.” 스님께서 그동안 도와주신 모든 분들게 깊은 감사를 표했습니다.

내년이면 수자타 아카데미도 20주년을 맞습니다. 수자타 아카데미도 이제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것 같습니다. 둥게스와리에서 태어난 것이 자랑스러울 수 있도록 만들겠습니다. 학부형의 많은 참여와 어르신들의 도움, 한국 후원자들의 힘이 필요합니다. 함께 노력해서 이 아이들이 훌륭하게 자랄 수 있도록 했으면 합니다. 저희들도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학생들을 바라보는 스님의 얼굴 표정이 환했습니다. 미얀마절의 큰스님과 스님, 박지나, 김기진 JTS 대표님이 무대에 올라가서 마지막 무대를 장식했습니다.

 

성지순례객들도 오늘은 인도식으로 점심식사를 했습니다. 유미죽과 뿌리와 달과 야채를 손으로 먹었습니다. 이 많은 사람들 음식 준비하느라 정말 수고가 많았겠다 싶었습니다. 맛있게 먹었습니다.

점심 식사 후에는 마을 방문이 있었습니다. 6개 마을로 나눠서 실제 이 마을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무엇이 필요한지, 우리가 도울 것이 뭐가 있겠는지 살펴보기 위해 마을 방문을 했습니다.

스님께서는 두르가푸르라는 마을을 방문했습니다. 이 곳은 스님께서 93년에 한 달간 살았던 동네이기도 했습니다.“가야에서 출퇴근하기도 어려워서 이 동네에 방 하나 달라고 했더니 이 방을 줬어요. 이 방에서 한 달간 살았죠. 이 집 아들이 우리 학교 교사를 했어요. 유일하게 초등학교를 졸업한 유일한 청년이었어요. 그 때 제가 이 마을 사람 10명에게 45평씩 보시 받아서 학교를 시작했어요. 없는 사람에게도 이렇게 보시받았죠.” 스님께서는 20여년 전의 일들을 떠올리며 한 달간 사셨던 집도 소개를 해주고, 그 때 있었던 일들도 이야기해 주셨습니다. 몇 집을 돌아봤습니다. 둘러본 집에는 목도리, 모자 등 작은 선물도 했습니다.

 

마지막 방문한 집은 마당에 나락이 쌓여 있었습니다. 이 동네에서 잘 사는 집인 것 같았습니다. 작은 집에 작은 할머니, 부부, 자녀 6명, 결혼 안 한 남자동생 2명까지 11명이 사는 집이었습니다. 11명이 사는데 다른 집보다는 좀 낫지만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집 안을 돌아보고 가족과 함께 사진 촬영도 했습니다.

“너무 충격적이었어요. 그렇게 살 수가 있는 건가? 지금도 그 충격이 남아 있습니다.”

“왜 사람들이 집 밖에 나와 있는지 알겠더라고요. 집에 있어도 할 일도 없고, 집도 춥고, 햇빛도 안 들어오고. 그래서 다 밖에 나와 있는 것 같아요. 아이들도 하나같이 얼마나 손이 찬지 몰라요.”

“음식 안 남기고 먹어야겠어요. 물도 전기도 아끼고. 정말 내가 많은 것을 가지고 살고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느꼈습니다. 저렇게 사람이 살 수도 있구나 싶어서 현재의 제 삶이 벅차도록 고마웠습니다.”

“돌아가면 바로 JTS 후원금을 늘려야겠어요.”

“피아노를 배워서 몇 년 후에는 이곳에 와서 아이들에게 피아노를 가르쳐 주고 싶어요.”

마을 방문을 하고 와서 조별로 마음 나누기를 하고, 우리가 도울 수 있는 일이나 할 수 있는 일이 어떤 것이 있는지 토론을 했습니다. 저녁식사를 하고 저녁 예불 후 강당에 모여서 소감 발표시간을 가졌습니다. 많은 의견들이 나왔습니다. 많은 배움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스님께서 마지막 정리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여러분 소감문 잘 들었습니다. 저희가 사업을 시작한지 내년에 20년이 되는데 제일 많이 변한 것은 아이들 교육입니다. 지금은 20세 이하 젊은이들은 70-80%가 글을 압니다. 아이들은 자라고 그들이 변해가는 것이 장기적으로는 지역 발전의 원동력이라 생각합니다. 처음에 새마을 운동 비슷한 것을 하려해도 같이 할 사람이 없었습니다. 2-30년 기다려야한다고 했습니다. 아이들이 커서 청년이 되면 마을의 주민이 되면 마을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일을 할 수 있지 않겠나 생각해서 제일 중요시한 것이 아이들 교육이었습니다.

그리고, 가난한 것은 어쩔 수 없다고 해도 질병에 병들어 죽는 것은 막아야 하지 않겠나해서 보건의료에 관심을 가졌습니다. 이 마을 최고의 질병이 결핵이었는데, 이제 결핵의 위험으로부터 거의 벗어났고, 유아사망률도 급격히 줄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을의 빈곤문제는 쉽게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20년 전에는 벽돌집이 거의 없었는데 정부지원으로 마을절반이상이 벽돌로 이루어진 변화가 왔으나, 수입구조는 20년 전과 큰 차이가 없는 상황에 놓여있습니다.”

 

스님께서는 조별로 제안한 사항들에 대해서 제안을 받아들이기도 하고, 잘못 이해가 된 것은 현재 상황에 대한 설명과 함께 어려움에 대한 설명도 해 주셨습니다. 전체적으로 직접 마을 방문을 함으로써 두 눈으로 상황을 직접 볼 수 있어서 대안도 이야기할 수 있었고, 현재 내 삶이 얼마나 풍족한지에 대해서 느낄 수도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내일은 아침 일찍 라즈기르로 이동할 계획입니다. 라즈기르에서 영축산, 빔비사라왕 감옥터, 칠엽굴, 나란다 대학 등을 순례할 계획입니다. 내일 뵙겠습니다.

전체댓글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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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궁금

혹 들국화법우님 감가 드셨나요??<br />현지 인터넷사정이 좋지 않을까??<br />넘 궁금해요~~~ㅎㅎ

2013-01-16 07:33:08

도연

눈에 선합니다.ㅠㅠ

2013-01-15 01:28:13

전봉래

득국화님 감사합니다_()_

2013-01-14 18:5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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