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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자타 아카데미에서의 하룻밤을 보냈습니다.
새벽 4시 30분 기상해서, 5시에 다같이 강당에서 새벽 예불을 올렸습니다. 예불 후, 바로 부다가야까지 걸어가기 위해서 학교 교문앞에 모였습니다. 어젯밤 12시까지 스텝들과 공양 조에서 준비한
주먹밥과 오렌지 한 개를 교문 입구에서 나눠주고 있었습니다.
아직 깜깜한 새벽인데다, 날씨도 싸늘했습니다.
“자, 여기서 뒤떨어지면 못 따라 옵니다. 쳐지지 말고 잘 따라 오세요.” 참가자들을 2줄로 세워서
긴 줄을 만들어 부다가야로 향했습니다. 걷기 시작하면서 전정각산을 향해 먼저 서서 삼배를 드리고
걸었습니다.
“어두워서 안 보이지만, 여러분들 앞에 있는 산이 부처님께서 6년동안 고행했던 전정각산입니다.
전정각산을 향해서 먼저 서서 삼배드리겠습니다.”스님 말씀을 따라 삼배를 드리고 어둠을 뚫고
길을 걸었습니다. 2600년 전 부처님께서도 이 길을 걸었을 것입니다. 하늘에 그믐달이 떠 있고,
마을의 개짓는 소리가 온통 마을을 흔들었습니다. 날이 차츰 밝아지니 안개가 제일 먼저
우리를 맞이했습니다.
새벽부터 볼 일 보러 나온 사람도 있고, 가족이 다같이 나와서 인사를 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갑자기 나타난 많은 사람들 때문에 어린 여자아이는 울음을 터뜨리기도 했습니다.
새벽 공기는 갈수록 차가워졌습니다. 온 몸을 오싹하게 하는 아침 추위였습니다.
“날이 추우니 좋은 점도 있네요. 빨리 가자 하지 않아도 다들 빨리 걷네요.” 스님 말씀처럼 추우니까
다들 걸음을 빨리하는 것 같았습니다. 건기라 네이란자라강에 물이 거의 없었습니다.
전에는 신발을 벗고 맨발로 물을 건넜던 기억이 있는데 신발도 벗지 않고 편안하게 강을 건넜습니다.
“부처님이 고행림을 나와서 네이란자라강에서 목욕을 하게 됩니다. 부처님이 아마 힘이 없어
물에 쓰러져 떠내려 가다가 아사나 나뭇가지를 잡고 강기슭으로 나왔다고 합니다.
저쪽이 부처님이 쓰러지셨던 곳입니다. 참배를 하고 경전독송하겠습니다.”
긴 행렬이 때로는 밀밭길을 지나기도 하고, 때로는 강을 건너기도 하고, 마을길을 지나가기도 했습니다.
가는 길에 네이란자라강 옆에 인도정토회에서 명상센터를 할려고 구입한 터를 지나 수자타 공양터로
이동했습니다. 수자타공양터에는 탑 2개가 쌓인 흔적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부처님에게 공양을 올리기는 어렵지 않습니다. 그러나 강가에 쓰러져 있는 볼품없는 수행자를
지극정성으로 돌보기는 쉽지 않습니다. 부처님이 강가에 쓰러졌을 때 지극정성으로 부처님을 보살핀
수자타의 후손들이 여기 살고 있습니다. 수자타의 후손들에게 고마움을 표하기 위해,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는 마음으로 수자타 아카데미를 지었습니다.”
스님 말씀을 들으니 수자타의 공양이 더 위대하게 느껴졌습니다.
참배를 한 후 경전독송을 하고, 아침에 싸온 주먹밥을 먹었습니다. 참기름과 깨소금으로 양념한 밥 위에
달걀 후라이까지 올려져 있어서 정성이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갈수록 날씨가 차가워져서
옷을 단단히 입고 오지 않은 사람들은 많이 떨었습니다. 우리나라는 해가 뜰 때 기온이
가장 많이 내려가는데 이 곳은 해가 났는데도 안개가 끼여서 기온이 계속 내려가고 있어서
추위가 뼛속까지 스며드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은 맨 발로 뛰어다녔습니다.
수자타 공양터에서 계속 더 걸어서 우루벨라 가섭을 교화했던 곳으로 갔습니다.
이 곳도 역시 힌두사원이 되어 있었습니다. 스님께서 앉아서 충분히 설명을 해야 하는데,
추워서 서서 간단히 설명을 한다고 하시면서 부처님의 카사파 3형제를 교화한 이야기를 해 주셨습니다.
부처님이 전법선언을 하신 후, 이 곳 병장촌으로 오셔서 카사파 3형제를 교화함으로써
1000명의 제자가 생긴 것은 이후 교단발전에 있어서도 큰 전환점이 되었을 것 같습니다.
우루벨라 가섭 교화 이야기는 언제 들어도 감동적입니다.
이야기가 많은데 간단하게 설명을 해서 아쉬웠습니다.
다음으로 간 곳은 수자타의 집터였습니다. 아쑈카 대왕도 수자타의 공양을 위대하게 생각해서
탑을 크게 쌓은 것 같았습니다. 참배를 하고 참가자들이 손에 손을 잡고 탑 전체를 애워싸고
간절한 마음을 담아 보현행원을 다같이 불렀습니다.
부처님이 걸으셨던 것처럼 저희도 걷고 또 걸어서 부다가야에 도착했습니다. 11km정도 걸었습니다.
부처님은 길에서 태어나셔서, 길에서 평생을 사시다가 길에서 돌아가셨습니다.
부처님이 2600년 전 걸었을 땅을 내 발로 걸어보는 것만으로도 감동이 살아났습니다.
부다가야 대탑에 도착해서, 스텝들이 준비한 공양물을 가지고 부처님께 사시 공양을 올렸습니다.
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얻으신 곳. 우리도 부처님이 앉으셨던 보리수나무 아래에 앉아 경전을 읽고
명상을 하면서 아득히 먼 2600년전 한 수행자를 떠올려 보았습니다.
부처님이 이 땅에 오신 것만으로도 고맙고 감사했습니다.
대탑에서 참가자들에게 자유시간을 주고, 기도도 하고, 점심도 자유롭게 사 먹고
오후 1시 30분에 대탑 앞에서 만나기로 했습니다. 나중에 보니 자유시간에 점심도 안 먹고 기도를 한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언제 이 좋은 곳에 다시 오겠어요? 부처님 계셨던 곳에서 기도하는 것만으로도 참 행복했습니다.
108배 하고, 명상하다 왔습니다. 점심은 이렇게 바나나 몇 개 샀어요.”하며
바나나를 들어 보이는 거사님의 표정이 환했습니다.
버스를 타고 학교에 들어오니, 음악 소리가 빵빵 터지고 있었습니다.
어제는 성지순례객들이 밤 늦게 수자타 아카데미에 들어와서 아이들과 만나지를 못했습니다.
오늘 아이들이 성지순례객을 환영하기 위한 준비를 하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인도에서는 스승에게나 환영하는 사람에게 꽃목걸이를 해 주고, 꽃을 뿌립니다.
스님께 학생들이 꽃목걸이를 많이 걸어줘서 앞이 안보일 정도였습니다.
앞에는 흰 코끼리를 탄 어린 아이가 꽃을 뿌리며 길을 안내하고, 뒤에 선 성지순례객들에게도
아이들이 꽃목걸이를 모두 걸어줬습니다. 살아오면서 이렇게까지 환영을 받은 적이 또 있을까 싶었습니다.
학교에 들어와 법당 참배를 하고, 이어서 설성봉 거사님 추모탑에 참배한 후 받은 꽃목걸이를
추모탑에 빙 둘러 걸었습니다.
이어서 쉬는 틈없이 바로 전정각산으로 향했습니다. 둘쨋 날 기차시간 때문에 일정 전체가
약간 늦어진 면이 있었는데, 스님께서는 시간을 쪼개서라도 하나도 빠지지 않고 다 보여주려고 하셨습니다.
힘들면 산에 오르지 말고 유영굴에 가 있어라는 스님 말씀에도 사람들은 끝까지 스님을 따라
산에 올랐습니다. 스님께서 칼산 끝에 서서 학교 주변을 설명해 주셨습니다.
전정각산을 내려와 유영굴 참배를 했습니다. 부처님께서 이 곳 전정각산에서 6년 고행을 하고
성도를 위해 떠날 때 섭섭해 하는 산신을 위로하기 위해 이 동굴에 부처님의 그림자를 남기고
떠나셨다고 해서 유영굴이라 이름붙였다 합니다. 모두 유영굴 참배를 하고, 경전 독송을 하고
당시 부처님을 떠올리며 명상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새벽부터 걸으면서 부다가야 주변의 부처님의 자취를 그대로 느낀 하루였습니다.
많이 걸었고, 많이 보았고, 스님으로부터 부처님 이야기도 많이 들었습니다. 하루를 빡빡하게 지내서 그런지,
저녁을 준비해 준 분들의 정성이 그대로 녹아 있어서 그런지 저녁은 꿀맛이었습니다.
저녁 공양 후, 수자타 아카데미사업에 대해 발표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인도에서 활동하는 활동가들이 자기가 맡은 각 파트 사업을 발표했습니다. 수자타 아카데미,
지이바카 병원, 마을개발, 인도정토회 불교부흥사업에 대한 소개가 있었습니다.
스님께서 마지막 정리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스님께서는 매우 세밀하게 사물을 바라보십니다.
그래서 뭐가 필요한지, 뭐가 중요한지, 뭐가 부족한지를 바로 아시는 것 같습니다.
그것은 깊은 관심과 사랑이 있어야 나올 수 있는 관찰력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오후 9시 30분경에 전체 일정이 마무리 되었습니다. 오늘 하루는 새벽부터 열심히 다녔습니다.
모두들 몸은 피곤해도, 부처님의 삶을 직접 느낄 수 있었던 하루여서 마음은 그 무엇보다
행복하지 않았을까 싶었습니다.
내일은 아침에 전정각산 올랐다가, 설성봉 거사님 추모제를 하고, 10시에 수자타아카데미
19주년 기념식을 하고, 오후에는 전정각산 인근 마을 방문을 할 예정입니다.
내일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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