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실천

통일
한글 한 땀, 바느질 한 땀의 되살림

지난 3년 동안 정토회 경주지회 황성 모둠은 매주 목요일마다 고려인 이웃들에게 한글을 가르쳤습니다. 칠월 어느 날, 경주지회 4개 모둠원과 고려인들은 함께 모여 ‘되살림 바느질’을 하며 자연스럽게 한글을 익히고 자원을 아껴서 지구환경을 지키는 방법을 배웠습니다.

경주지회 정토 행자 22명은 여는 모임 후 이름표, 현수막, 바느질 도구, 자리 배치 등 준비물을 챙겼습니다. 두근두근 기대하는 마음으로 고려인 이웃들을 기다렸습니다.

주인을 기다리는 이름표
▲ 주인을 기다리는 이름표

모임 시간에 맞춰 고려인 14명이 되살림 바느질 ‘한 땀'을 배우기 위해 경주시 한빛길 부근에 마련된 ‘고려인 사랑방’에 도착했습니다. 서로 인사를 나누며 마음을 가다듬고 명심문을 읽습니다. 다 같이 외우는 한마디는 방 안 공기를 새롭게 만듭니다.

"세상 누구와도 좋은 이웃이 되겠습니다."

그간 한국어 수업을 진행한 황성 모둠 강순자 님이 벽에 붙은 천과 작은 받침대에 써 놓은 글자들을 하나하나 함께 읽으며 오늘의 수업을 소개했습니다.

한 땀의 바느질이 마음을 잇고 하나로 만듭니다.
▲ 한 땀의 바느질이 마음을 잇고 하나로 만듭니다.

“산에 들에 꽃이 더 예쁘게 피고, 시냇물에 고기도 더 많이 살고, 하늘에 달님도 더 예쁘게 반짝였으면 좋겠습니다.”

‘되살림 바느질 한 땀으로’ 제목으로 시작된 글이 시 한 편처럼 눈에 띄었습니다. 자연환경을 살리자는 취지이면서, 작은 천 조각도 이렇게 ‘꽃이 피고 고기가 살고 달님이 뜬 것처럼 수를 놓으면 예쁜 천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다.’는 안내입니다. 알록달록 여러 가지 색깔을 담은 고운 그림 같은 실선이 천 안쪽에 숨어 있지 않고, 천 바깥에 자리하기 때문에 ‘보이는 수선’이라 합니다.

누구나 알고 있으나 잘 실행하지 않는 ‘장주머니’ 쓰는 법도 함께 읽었습니다. 흔히 우리가 ‘장바구니’라고 부르며 쓰는 것입니다. 오늘은 부드러운 천을 준비했습니다.

“흙 묻으면 털어 쓰고, 물 묻으면 말려 쓰고, 가끔은 빨아 쓰고, 항상 갖고 다니고”

장주머니 쓰는 법을 알려 주는 이림 님 (오른쪽)
▲ 장주머니 쓰는 법을 알려 주는 이림 님 (오른쪽)

‘되살림 바느질’ 진행자 이림 님은 장주머니 쓰는 법과 보이는 수선 '직조' 바느질 법을 알려 줍니다. 지구를 살리고 자원을 아끼는 실천 방법을 함께 숙지하며 수업을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귀도 눈도 나이를 먹는 연로한 분들에게 바느질 권하기를 망설였습니다. 2시간 남짓한 짧은 수업을 고려하여 직접 만든 장주머니를 준비했습니다. 바느질은 생각보다 오래 걸리는 작업이고, 여러 바느질 법을 배우기에는 턱없이 시간이 부족합니다.

쉽게 할 수 있도록 굵은 실을 준비했습니다. 옆에서 돕는 정토 행자들도 바늘귀가 작아서 실을 꿰기가 어렵습니다. 누구 하나 불평하지 않고 서로 도우며 실을 꿰고 바느질합니다. 파란 실과 분홍 실이 격자로 엮이고, 서투른 손으로 한땀 한땀 바늘이 오가는 사이 마음은 손끝에 집중합니다. 구멍을 메우듯 감쪽같이 체크무늬로 된 사각 천 바탕이 탄생합니다. 간간이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 모습은 말보다 더 깊은 소통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말해 줍니다.

정토 행자들이 도와 한 땀 한 땀 장주머니를 꾸밉니다.
▲ 정토 행자들이 도와 한 땀 한 땀 장주머니를 꾸밉니다.

되살림 바느질을 함께 배우니 즐거움도 배가 됩니다.
▲ 되살림 바느질을 함께 배우니 즐거움도 배가 됩니다.

색이 다른 두 개의 실이 모여  색다른 체크무늬 천이 만들어졌습니다.
▲ 색이 다른 두 개의 실이 모여 색다른 체크무늬 천이 만들어졌습니다.

시간이 조금 흐른 뒤, 각자 바느질 솜씨를 뽐내는 ‘오늘의 금손' 선정 시간을 가졌습니다. 금손 선정권을 가진 이림 님이 "출품한 모든 작품이 훌륭하다."라며 장주머니마다 감자와 양파를 담았습니다. 만들고 끝나는 게 아니라 실천으로 이어지도록 준비한 것입니다.

두근두근! 오늘의 금손이 선정되는 순간 (천을 들고 발표하는 강순자 님)
▲ 두근두근! 오늘의 금손이 선정되는 순간 (천을 들고 발표하는 강순자 님)

완성된 장주머니에 동글동글 감자를 담았습니다.
▲ 완성된 장주머니에 동글동글 감자를 담았습니다.

수업이 끝난 뒤 함께 둘러앉아 짧게 한 줄 소감을 나눴습니다. 고려인 김마야 님의 얘기입니다.

“선생님들이 모두 선한 마음으로 대해 주어 정말 감사합니다.”

다음은 평소 일하느라 사랑방에 자주 나오지 못하는 허조야 님입니다.

“오늘은 일을 쉬고 나왔어요.”

한국어를 제일 잘해서 고려인 한글 수업에 많은 도움을 주고 있는 최타마라 님입니다.

“선생님들 덕분에 기분이 참 좋습니다.”

세 명의 소감에 모두 박수를 보냅니다.

오늘 고려인 이웃들을 처음 만난 대구경북지부 담당 향존 법사님은 "환한 웃음이 참 좋다. 앞으로 가끔 만나러 오겠다."라고 합니다.

마지막에는 고려인들과 정토 회원들이 이면지에 손수 ‘좋은 벗들’이라고 적었습니다. 삐뚤빼뚤한 글씨지만, ‘좋·은·벗·들’ 네 글자처럼 우리는 조금 더 좋은 이웃이 되는 중입니다.

고려인들과 함께하는 좋은 이웃의 날, 단체 사진
▲ 고려인들과 함께하는 좋은 이웃의 날, 단체 사진

수업이 끝난 후, 경주지회 평화 실천 꼭지 이승헌 님이 좋은 벗들에서 지원한 토마토를 고려인 이웃 한 분 한 분에게 한 박스씩 건네며 소감을 전합니다.

“경주지회 활동에서 봤던 도반들이라 낯이 익어 이번 계기로 더 친해진 것 같습니다. 바느질을 통해 되살림을 직접 체험할 수 있어 좋았고, 고려인이 많은 다른 지역에도 이런 행사가 계획되어 해보면 좋겠습니다.”

토마토를 전해 주는 이승헌 님 (왼쪽)
▲ 토마토를 전해 주는 이승헌 님 (왼쪽)

이어 다른 봉사자들의 소감 나누기 시간에도 웃음은 끊이지 않습니다.

"우리 선생님 제일 예쁘다.”

누군가는 이 한마디 말에 가장 감동적인 순간을 맞습니다.

"동심의 세계로 돌아가는 것 같아요."

처음 참여했다는 어떤 봉사자는 전혀 모르는 다른 나라에서 온 사람과 만난 것처럼 순수하게 소통하는 그 자체가 새롭고 신선했다고 합니다.

집에서 양말을 꿰매 신는다는 도반은 "오늘 배운 것을 활용할 수 있겠다."라며 좋아했고, 아들의 구멍 난 양말 이야기로 좌중을 웃음 바다로 만들었습니다. 무엇보다 조용히 지역 실천을 이어오던 도반들이 ‘손끝 재주를 세상에 꺼내어 보자’라는 마음으로 되살림 바느질 자리가 기획 되었다는 이야기가 마음에 더 남습니다.

바느질 공방을 성심성의껏 이끈 이림 님의 소감을 들어보았습니다.

“검소하게 살아왔을 고려인 분들과 버려지는 옷가지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볼 ‘좋은 기회다.’ 싶었습니다. 그래서 나눔 받은 천으로 장주머니를 만들고 직조 수선법을 가르쳤습니다. 고려인 분들이 바느질하며 작은 창조의 기쁨을 느끼는 모습을 보는 것 자체가 이미 저에겐 감사한 시간이었습니다. 이번 활동이 소비 중심 사회에서 벗어나 공유와 회복의 가치를 일상에서 실천하는 자각의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이 자리를 기획한 황성 모둠장 공영순 님의 이야기도 들어봅니다.

“지회 재편으로 고려인 지원사업 지속이 불투명해지자, 기후 위기 시대에 맞춰 '되살림 바느질'을 기획해 '좋은 벗들'과 연합하게 됐습니다. 떨리는 손으로 정성껏 수를 놓는 모습이 시골 외할머니를 떠올리게 했고, 완성된 장바구니에 감자를 담아드릴 때, 얼굴에 웃음이 가득해 국경과 세대를 넘어 마음이 이어지는 뜻깊은 순간을 경험했습니다. 제가 고려인 지원사업에 애착을 갖는 이유는, 지금 우리가 누리는 평화와 부가 이 사람들 조상의 희생 없이는 불가능했기 때문입니다. 이국 땅에서 고생한 그 사람들이 이제는 선조들의 고향에서 따뜻한 여생을 보냈으면 합니다.”

한글이든 바느질이든, 우리가 전하고 싶었던 것은 어떤 기술이 아니라 '함께 있음'이었음을 다시 느낍니다. 3년을 이어온 목요일도, 오늘처럼 여러 사람의 정성이 모인 하루도 다르지 않습니다. 꾸준함이란, 거창한 결심이 아니라 그저 ‘매주 그 자리에 있는 것이고, 그 위에 함께하는 이들의 마음이 더해질 때 봉사는 훨씬 더 깊은 울림이 된다는 것’을 배운 뜻깊은 하루였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나날이 가까워지고 또 다정한 이웃이 되고 있습니다.

글과 사진_김미향 (대구,경북지부 경주지회)
지원_황재윤 (대구,경북지부 포항지회)
편집_여수연(서광주지회)


2026 9월 정토불교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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