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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룡사를 오릅니다. 모기 입이 비뚤어진다는 처서가 열흘 지난 산길엔 도심과 달리 슬그머니 와닿는 가을의 냄새와 시원함이 있습니다. 여름에 땀 흘린 자만이 먼저 알 수 있는 반가움입니다. 자주 오를수록 거리가 가깝다는 신비의 오르막길, 더해지는 시간만큼 말뚝에 새긴 말씀도 익어갑니다.
기자들이 도착할 즘 여는 나누기를 마치고 농기구를 챙겨 밭으로 가는 농사팀을 만났습니다. 참 부지런도 합니다.
“안녕하세요?”
낯익은 얼굴도 낯선 얼굴도 모두 반가운 도반입니다.
공원문화유산지구인 고위산 천룡사지입니다. 단정하게 잘 가꿨지요. 삼사 년 만에 천룡사 왔다는 도반이 생각납니다. 몇 년 사이 몰라보게 변했다며 감탄을 했습니다. 사람들의 뜻이 모인 곳에 손길이 모여 돌과 풀들이 제자리를 찾고 호국의 기상을 세웁니다. 앞으로 지어질 금당과 강당을 상상하는 일은 천룡사지를 찾는 또 하나의 설렘입니다.
보이시나요?
야생동물 접근을 막는 철망 울타리 안쪽이 천룡사 경작지입니다. 일손 부족으로 1,200평 중 일부만 농사를 짓습니다. 작년까지 금정지회를 중심으로 일부 뜻있는 봉사자들이 농사를 지었습니다. 올봄 20여 명의 천룡사 보리수 1기(정토회 보리수 7기)가 수료하면서, 그중 다섯 명이 농사팀을 결성해 본격적으로 농사를 시작했습니다. 다른 보리수 도반들은 각자의 재능을 살려 도량정비팀, 시설관리팀 등으로 책임을 맡아 천룡사를 보다 효율 있게 관리합니다. 7월, 보리수 2기(정토회 보리수 8기)에서도 네 명의 도반이 농사팀에 들어 든든한 큰 손이 되었습니다.
작물은 주인의 발소리를 듣고 자란다지요.
도반들이 없을 때의 밭과 도반들이 있을 때의 밭 풍경이 매우 다름이 인상적입니다. 동트기 무섭게 농부의 걸음이 왜 밭으로 향하는지 알 것 같습니다.
한여름을 갓 지난 밭에는 가지도 깻잎도 상추도 잎이 무성하고 서로 키를 뽐냅니다. 올봄 농사 시작하면서 관리가 부족했던 산 위의 땅을 어떻게 돋우었는지 궁금합니다.
“올 초 농사를 시작하면서 두북에 요청해 거름을 샀습니다. 두북에 있는 목장에서 소 배설물도 얻어와 한 차례 뿌렸습니다. 천룡사에서 나오는 음식물 쓰레기도 거름으로 이용합니다. 앞으론 퇴비장을 만들어 천룡사에서 나오는 인분과 예초한 풀을 숙성시킬 계획입니다. 천룡사는 차량이 다니기 험하고 외길이라 외부에서 비료나 거름을 조달하기가 어렵습니다. 자체적으로 거름을 조달할 수 있다면 제일 좋습니다.”
“요즘은 고추, 수박, 오이, 호박, 고구마, 방울토마토를 더한 십여 종의 작물이 내어 준 열매가 바구니를 가득 채웁니다. 트랙터를 못 쓰게 되어 오직 삽질로 일군 소득입니다. 올봄엔 감자를 300kg이나 수확했습니다. 부⋅울지부 도반들이 감자를 직접 캐고 시식하는 감자데이 행사를 진행해 풍성하고 신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나머지 농산물은 아직 수확량이 많지 않아 봉사자들 공양으로 쓰고, 남은 것은 봉사자들이 자율 보시하고 가져갑니다.”
와~, 대단하지요.
가을엔 고구마데이도 계획하고 있다니 벌써 기다려집니다.
시골 출신에 주말농장 경험이 있는 신용필 님은 천룡사 농사팀장을 맡고 있습니다.
땀 흘리는 것을 좋아해 농사짓는 일이 힘들지 않다는 신용필 님에게 올해 가장 잘 된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올해는 잘 된 것도 수박이고, 잘 안된 것도 수박입니다. 산 위 땅에 수박이 될까 했는데 여러 통이 잘 열렸고, 수박은 손이 많이 가는 작물이라 일주일에 한 번 돌보는 것으로는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크기나 당도가 기대만큼은 아닙니다.”
기대의 기준에 따라 잘되고 안되고가 나뉘었네요. 법문을 들은 듯 마음이 차오릅니다. 올여름 기대 이상으로 향 짙고 당도 오른 노지 수박 맛을 참참이 볼 수 있어 행복하고 감사했습니다.
“이제 고장 난 트랙터 대신 경운기도 마련했고 올해의 경험이 있으니 내년엔 더 크고 맛있는 수박이 주렁주렁 열겠지요.”
싱긋 웃는 도반의 미소가 수박만큼 시원합니다.
천룡사 농사의 큰 걸림은 물과 일손 부족입니다. 지하수 수량이 풍부하지 않아 천룡사에서 쓰고 남은 물을 큰 통에 받아두었다 사용합니다. 아직은 통 한 개로 사용하지만, 농사가 늘면 물이 부족할 수 있습니다. 또 작물은 해가 뜨거워지기 전에 물을 줘야 하는데 봉사자들이 빨라도 9시에 일을 시작할 수 있어 여름엔 특히 곤란합니다. 일주일에 한 번 밭을 돌보는 것으로는 자라는 풀의 속도를 따라갈 수 없습니다. 모둠 실천활동이 균등하게 조정되고 모둠 봉사자가 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농사에 있어 때를 맞추는 일은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적당한 시기를 며칠만 놓쳐도 수확량이 줄어듭니다. 너무 이르거나 늦으면 품질도 볼품없습니다. 한두 번 경험하고 나면 절로 해의 길이와 바람의 온도를 알고 게으름을 털어냅니다. 지난주에 경운기로 밭을 갈고 비닐을 씌운 이유입니다.
이번 주엔 배추 모종을 심고 물을 주고 북을 돋우었습니다. 두 달 뒤면 배추의 속이 차기 시작합니다. 그로부터 20~30일 후엔 수확이 가능합니다. 노란 속내의 고소한 맛으로 잘 자라길 바라는 마음을 사진에도 담았습니다. 보이시나요?
농사꾼에게 겨울은 쉼이 아니라 준비의 시간입니다. 가을에 겨울을 얘기할 수 있는 것 또한 때가 분명한 농사의 미덕이지요. 울타리를 손보고 밭을 골라야 합니다. 고랑을 정비하고 땅심도 길러야 합니다. 농막을 짓고 경운기와 농기구도 들여야 합니다. 겨울에 할 일을 얘기하는 신용필 님에게서 고생보다 공 차고 놀던 소년의 활기차고 맑은 눈빛을 봅니다. 다른 농사팀원과 일일 봉사자들도 아이같이 해맑습니다.
놀멍 쉬멍 욕심내지 않는 마음은 지금이 행복한 때임을 알아 농부의 손이 되어 잘 쓰입니다.
농사 취재를 마치고 본당으로 돌아가는 길이 훤합니다. 도량정비팀의 예초 손길 덕분입니다. 도량정비팀은 부산울산지부 일곱 개 지회 소속 봉사자 네 팀이 한 주씩 돌아가며 봉사하고 있습니다. 바빠서 거를 때도 있지만 매주 봉사하는 분들 덕분에 천룡사 기세등등한 풀들을 발등 아래 둡니다. 지나치다가도 다시 돌아보게 되는 멋진 도반들입니다. 쉽지 않은 일인데 거뜬히 맡은 그 마음 참 고맙습니다.
예초기 정비하는 박정배 님의 능숙한 솜씨는 유튜브로 익혔답니다. 어느 유튜버인지 훌륭한 제자를 두었네요. ‘잘 쓰여집니다’ 도반의 등에 적힌 글귀가 어느 때 보다 빛나 보입니다.
천룡사의 핫플레이스 ‘바람쉼터’ 카페에서 취재를 마무리합니다. 이날의 신메뉴는 유기농청귤차입니다. 맞춤하게 발효된 맛에 동동 띄운 얼음이 늦더위를 성큼 물립니다. 경험에서 나온 카페지기의 숙련된 솜씨와 멋진 풍경에 몸도 마음도 편안합니다.
천룡사는 이제 전국적인 소문만 곁들이면 되겠지요. 꼭 봉사가 아니어도 좋습니다. 평일엔 친구와 휴일엔 가족과 나들이도 오세요. 천룡사 둘레길 산책도 한 멋 합니다. 가을꽃 예쁜 이때를 놓치지 마세요.
내려가는 길에 농사팀 도반들이 다시 또 따뜻하게 손을 흔듭니다. 신용필 님의 당부도 메아리처럼 다시 새겨집니다.
“우리는 일주일 만에 왔다고 하지만 작물들에겐 일주일이 엄청 긴 것 같습니다. 그래서 조금씩 빨리 오면 좋고 끊이지 않고 계속 오면 더 좋겠습니다. 수행도 그냥 물 흐르듯이 작물 자라듯이 계속하는 게 좋잖아요. 잘 자라면 잘 자라는 대로 못 자라면 못 자라는 대로 그렇게 하다 보면 수행도 농사도 결실이 있지 않겠습니까.”
자신의 쓰임을 발견하고 도반과 함께 성장하는 멋진 모자이크 붓다들이 모여있는 천룡사 농사팀이었습니다.
정토회원님들~ 천룡사로 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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