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성남지회
나는 누구인가?

꼼꼼하게 준비한 자료로 진행하면 인터뷰가 순조로울 듯했습니다. 그런데 마지막 점검 중 작은 표 하나를 지우려다 진행자료 전체를 날려 버렸습니다. 되돌릴 방법도 없었습니다. 멘붕! 놀란 마음을 알아차리고 인터뷰 대상자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자료 복구하는 방법을 알려 주고, 저녁은 먹었냐며 인사를 건넵니다. 안 먹어도 배고프지 않을 상황이지만, 휴대폰 너머로 전해지는 상냥한 목소리에 마음이 조금씩 진정됩니다. 이미 일어난 일, '일어났구나!' 하고 알아차리고, 사전 질문지만 들고 7시 30분에 인터뷰를 시작했습니다. 정토회가 나아가는 길 위에 함께 서 있는 길동무, 성남지회 이현미 님의 이야기 들려드립니다.

한순간에 사라지다

결혼하면서 직장을 그만두고, 집안 살피고 아이들 키우는 데 전념했습니다. 알뜰하게 살아 30대에 집을 장만했고, 아이 셋도 잘 자라 큰 어려움 없이 살았습니다. 그러던 2001년, 남편이 보증을 선 일이 잘못 되어 한 달에 이자만 100만 원씩 내며 1년을 버텼습니다. 도저히 안되겠다는 생각에 남편과 의논해 집을 정리하고 연고도 없는 성남으로 이사했습니다.

2002년 여름, 월드컵 열기로 온 나라가 뜨거웠습니다. 우리나라는 4강에 올랐고, 아이들과 운동장에서 함께 응원도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주말, 아이들과 산에 갔다가 먼저 내려온 둘째가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남편이 출근하고 두 아이가 학교에 가면 죽은 아이 생각에 하염없이 울었습니다. 아이들이 돌아와도 울음을 그치지 못해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했고, 아이들은 집 밖에서 기다리다 들어오곤 했습니다. 더 이상 집에만 있어서는 안 될 것 같았습니다.

행복학교 활동
▲ 행복학교 활동

둘째는 도서관에서 책 보는 것을 엄청 좋아했습니다. 성남시에서 엄마들이 운영하는 도서관 사업이 있어 다른 엄마들과 함께 해 보기로 했습니다. 사서에 '사'자도 몰랐지만, 다른 학교 사서 선생님에게 배워 책 라벨 만드는 것부터 책정리까지 모두 했습니다. 도서관 운영과 관련해 교육감 상을 두 번이나 받았습니다. 나중에 사서 선생님이 배치되기까지 끝까지 '엄마 도서관'으로 남았던 학교가 바로 아이들이 다니던 학교였습니다.

사서 도우미, 독서 토론 등 이것저것 봉사하며 많이 배우러 다녔습니다. 4년가량 밖에서 방황하고 나니 그제야 남은 두 아이가 보였습니다. 늘 내 품 안에 있던 아이들이 어느새 저만큼 멀어져 있었습니다. 이제는 이 아이들을 품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초파일 행사 때 친환경 삼베 수세미 손뜨기 체험부스에서 (오른쪽 이현미 님)
▲ 초파일 행사 때 친환경 삼베 수세미 손뜨기 체험부스에서 (오른쪽 이현미 님)

둘째가 사고로 세상을 떠난 뒤 큰아이도 충격이 커 원형 탈모가 생겼습니다. 남은 아이들과 잘 살아 보려고 둘째 이야기를 자주 했습니다. 둘째가 좋아했던 음식과 함께 했던 추억을 나누니 점점 편안해졌습니다. 그러면서도 죽은 아이를 위해 뭔가 해야 할 것 같았습니다. 아이 생일과 기일에 재를 지냈고, 배 멀미를 하면서도 바다에서 지내는 천도재에 참석했습니다. 필사한 글을 바치기도 하고, 사찰에서 하는 성지순례도 많이 다녔습니다. 그렇게라도 해서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을 표현하고 스스로를 위로하려 했던 것 같습니다.

정토회를 만나지 못했다면 잃은 아이를 위해 '내가 이렇게까지 했다'는 생각에 머물고, 남은 아이들을 키우면서도 계속 무언가를 바라고 탓하는 마음이 있었을 것 같습니다. 정토회 덕분에 그 모든 일이 다만 제가 좋아서 한 일임을 알았습니다.

이거 뭐지?

2014년, 일반 사찰에 다니던 중 아는 언니 소개로 정토회 법회에 갔습니다. 일반 사찰에서는 법회를 할 때 신도들이 목탁 근처에도 가지 못했는데, 정토회에서는 회원이 법복을 입고 목탁을 쳤습니다. 영상으로 스님의 법문을 듣고 나서는 둥그렇게 앉아 명심문을 읽고 나누기를 했습니다. '이거 뭐지?' 싶고 당황했습니다. 소극적인 성격이라 낯선 상황이 불편했던 저는 언니에게 "나하고는 안 맞는 것 같다." 말하고 더 이상 법회에 나가지 않았습니다.

부처님에 대한 공부는 하고 싶어 혼자 공부해 보았지만, 하다 말다 하며 이어 가지 못했습니다. 그러다 2016년, 집 근처 법당에서 정토불교대학에 입학했습니다. 불교대학에 다니면서 수행법회에도 참석했습니다.

2023년 인도성지순례
▲ 2023년 인도성지순례

법당에서 소임을 맡아 일할 때 꼼꼼하게 하는 편이었고, 효율적이라고 생각해 함께 하기보다 혼자 했습니다. 법당 총무는 제가 하는 일이 못마땅한 듯했고, 샘을 내는 것 같기도 했습니다. 사람들이 저랑 친하게 지내면 불편해 하는 것 같았고, 어느 순간에는 저를 왕따 시키는 것 같기도 했습니다. 그런 감정 싸움이 너무 힘들었지만, 나중에는 '그래, 저건 저 사람 마음이지.'라며 제 마음을 다독였습니다.

1년에 두 번 정일사 수련을 하면서 불편한 마음을 살폈습니다. '저 사람 입장에서는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가만히 있었습니다. 정토회를 소개한 언니는 제가 구설수에 오르자 일반 사찰로 다시 가자고 했습니다. 하지만 정토회가 지향하는 바가 좋고 저에게도 맞는 것 같아 남았습니다.

나 혼자 끌탕

그러면서도 문득 억울하고 화가 났습니다. 집에 와서 설거지하다가 저도 모르게 욕이 나왔습니다. 평소에는 욕을 하지 않는데 억울한 마음이 가득 차니 머리가 깨질 듯 아팠습니다. 혼자 북 치고 장구 치고 끌탕을 했습니다. 그러다 문득 '내가 왜 이러지? 미쳤나 보다. 그 사람들은 지금 아무렇지도 않은데, 나 혼자 끌탕하며 욕하고 머리 아파하고 별짓을 다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무 쓸데없는 짓이라는 것을 알아차리고 나서야 마음이 조금 편안해졌습니다.

2025년 동북아 역사기행 (오른쪽 이현미 님)
▲ 2025년 동북아 역사기행 (오른쪽 이현미 님)

정일사 수련을 하면서 특별히 내어놓을 이야기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법사님이 마지막에 "그래요? 그런데 혹시 외면하고 있는지 한번 잘 보세요."라고 했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도 그 말씀이 계속 머리에 남았습니다. 그러다 문득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저 사람은 저럴 수 있어.'라고 생각하며 공감한다고 여겼는데, 사실은 '너는 너대로 살아, 나는 나대로 살 테니까.'라며 외면하고 있었음을 알아차렸습니다. 눈물이 주르르 흘렀습니다.

백조의 호수에서

2023년 1,250명이 가는 인도성지순례에 다녀오고, 이듬해에도 다시 갔습니다. 성지순례를 다녀온 뒤 허리 협착이 너무 심해 앉지도, 서지도, 눕지도, 걷지도 못할 지경이었습니다. 너무 힘들었지만 누워서라도 수련하고 명상하고 절을 했습니다. 침으로 집중 치료 받을 때는 절을 하지 못해 답답했습니다. 이후 천천히, 아주 천천히 절을 시작해 횟수를 조금씩 늘렸더니 몸이 훨씬 빨리 회복되었습니다.

그때 저는' 백조의 호수'였습니다. 행복학교 수업을 진행하는데 제 목소리가 높고 낭랑한 데다 항상 웃으며 진행하니 사람들이 '아픈 사람 맞냐?'고 했습니다. 땀이 나고 허리 아래로 통증이 심해 앉아 있기조차 힘들었지만, 한 시간 수업 동안은 꼼짝없이 백조처럼 지냈습니다. '스님께서는 더 아프셔도 하셨는데,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지.'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안했습니다.

2026년 8.15 광복절 행사 (왼쪽 이현미 님)
▲ 2026년 8.15 광복절 행사 (왼쪽 이현미 님)

행복학교 마음편을 진행하면서 학생들의 변화를 지켜본 일도 기억에 남습니다. 모두 7명이 입학했는데, 그중 6명이 자살을 시도한 경험이 있다고 했습니다. 첫수업 때는 모두 표정이 우울했는데, 마지막 4강에서는 활짝 웃었습니다. 학생들이 심각한 나누기를 해도 진행자는 토를 달지 않고 매뉴얼에 따라 '좋아요'라고 반응합니다. 10분도 채 안 되는 스님의 법문을 듣고 돌아가며 나누기를 할 뿐인데, 학생들의 마음이 열리고 심화편까지 공부를 이어가는 것을 보며 너무 감사했습니다.

한 분은 작가였는데, 자살을 거듭 시도하다 행복학교를 만나 다시 작가 생활을 시작했고 불교대학도 졸업했다고 했습니다. 행복학교 프로그램이 참 좋다는 느꼈고, 이런 경험을 할 수 있는 소임이 금은보화보다 큰 가치로 다가왔습니다.

모둠원 중 한 도반은 아이가 고등학교 3학년이라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제가 "이거 한번 해 볼래요? 그렇게 힘든 거 아닌데..."라고 권했더니 "네, 알겠습니다."하고 봉사를 시작했습니다. 직접 해 보니 그리 힘들지 않았고, 수행과 봉사를 병행하니 오히려 마음이 편안해졌다며 소임도 조금씩 늘려갔습니다. 그 모습을 보며 이렇게 소임을 맡아 봉사를 해야 정토회에서 진정한 수행의 맛을 느낄 수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정토회

결혼하고 알뜰하게 살림을 꾸려 집을 장만하고 아이들을 별탈없이 잘 키우는 것이 전부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소중하게 붙잡았던 것들이 무너지면서 내가 잡는다고 해서 붙잡히는 것이 아님을 알았습니다. 이후 이 절 저 절 찾아다니며 좋다는 것을 해 봤지만 마음은 채워지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의 감정에 이리저리 쏠리고 남들 따라다니느라 힘들기만 했습니다.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에서 벗어나고 싶어 공부를 해 보았지만 혼자서는 꾸준히 이어 가기 어려웠습니다.

2025년 동북아 역사기행
▲ 2025년 동북아 역사기행

'내가 잡고 있던 게 아무것도 아니면, 그렇다면 나는 누구인가? 나는 왜 살았고, 무엇 때문에 살지?'라는 화두가 마음속에 들어왔습니다. 이 화두를 품고 정토불교대학을 시작해 지금까지 정토회에서 수행하고 있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하기로 한 일은 무소의 뿔처럼 나아가는 법륜 스님이 부처님 같습니다. 지금 여기서 하는 활동이 의미 있고 재미있습니다. 모두가 괴롭지 않고 서로 도움 주는 세상이 되기를 서원하며, 지금이 가장 좋은 때임을 비로소 압니다.


인터뷰 시작하기 전 당황했던 마음은 온데간데없고 인터뷰 내내 많이 웃었습니다. 이현미 님이 밝아서 고맙고, 분명해서 고맙고, 씩씩해서 고마웠습니다. 무거운 이야기도, 마음 아픈 이야기도, 알아차린 이야기도 가볍게 내어주었습니다. '소임은 금은보화보다 가치가 있다.'고 했던 말이 마음에 새겨집니다. 백조의 호수처럼 잔잔하고 우아하면서도 물밑에서는 치열하고 힘차게 발차기하는 수행담, 잘 들었습니다. 고맙습니다.

글_김정림 희망리포터(대구경북지부 동대구지회)
편집_박선희(강원경기동부지부 수원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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