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월간정토
100번이 99번이 되기까지

열심히 살았지만 그럴수록 더 불행해졌다는 김성민 님. 깨달음의 장을 시작으로 정토회에 발을 들였고, 백일출가를 마치고 지금은 수련원 행자원에서 스태프로 있습니다. 이번 백일출가 소감문에는 그동안 단골 소재였던 만 배 정진 이야기는 없습니다. 대신 백일출가를 하면서 겪은 분별 에피소드와 함께 백일출가를 마치고 나서 지금은 어떻게 살고 있는지에 대해 잘 보여 줍니다. 소제목을 붙이자면, '백일출가, 그 후 이야기' 쯤이 될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마음의 변화를 잘 보여줘서 '저런 마음으로 살 수 있다면 나도 백일출가를 해보고 싶다'라는 생각이 가득 들게 만드는 글입니다.

열심히 살았지만 더 불행해지는 역설

배수로 청소 중에(김성민 님)
▲ 배수로 청소 중에(김성민 님)

사는 것이 괴로웠습니다. 수험 생활을 4년이나 했으나 원하는 대학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어렵사리 이른바 명문 대학에 들어가 열심히 공부했고, 장학금도 받았습니다. 그러나 인생이 더 불행해지는 것만 같았고,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살았습니다. 대학에 들어가서 학점과 스펙을 쌓으면 그것이 행복으로 가는 길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왜일까? 오히려 더 불행해졌습니다. 과연 취업해서 대기업에 들어가면 행복해질까? 매달 월급이 꼬박꼬박 들어오면 행복해질까? 지금도 불행한데, 직장에서 일에 치이고 월급날만 기다리며 부품처럼 쓰이다가 나가라는 말 한마디에 나가야 하는 삶이 행복할까?

자취방에서 그런 생각을 하며 1년을 보낸 탓인지, 공부해도 행복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 탓인지 심한 번아웃이 왔습니다. 학교 수업을 들어도 머리가 멈춘 듯 아무것도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억지로 머리에 구겨 넣으려 몇 번을 써가며 공부해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수행의 길에 발을 담그다

수험 생활을 하면서 유튜브에서 법륜 스님 즉문즉설을 보았습니다. 당시 제 생활의 숨구멍이었습니다. 즉문즉설에서 스님이 질문자들에게 ‘깨달음의 장’(이하 깨장)에 가보라고 권하는 장면이 여러 번 나왔습니다. 그 말씀이 자주 떠올랐고, 공부도 안되고 학교 다닐 기력도 없던 어느 날, ‘이럴 바엔 깨장에 가보자’라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휴학을 신청하고 깨장에 참여했습니다. 처음 신청할 때는 많이 망설였습니다. 당시 법륜 스님은 ‘즉문즉설 하시는 분’ 정도로만 알았고, 정토회가 어떤 곳인지도 몰랐습니다. 살아갈 방법을 찾지 못해 절박했습니다. 사이비라도 속는 셈 치고 해보자는 절박한 마음이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깨장 수련을 계기로 정토회에 깊이 발을 들이게 되었습니다. 수련을 마친 후 마음이 가뿐해졌습니다. ‘내가 별문제 없는 사람이구나’, ‘이 문제의 뿌리가 부모님과의 관계에 있었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안내자인 법사님이 백일출가를 권유하셨습니다. 시기가 맞지 않아 ‘바라지장’과 ‘49일 문경살이’를 거쳐 백일출가를 마쳤고, 지금은 수련원 행자원에서 스태프로 있습니다.

불교박람회에서 (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김성민 님)
▲ 불교박람회에서 (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김성민 님)

백일출가에서 발견한 어머니의 손길

백일출가에서 설거지, 걸레질, 걸레 빨기, 해우소 청소, 분리수거 등 여러 일을 했습니다. 백일출가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부모님께 감사기도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아무런 느낌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30일, 50일이 지나면서 정말 감사하는 마음이 올라왔습니다.

이곳에서 하는 일들은 사실 어머니가 그동안 계속 해주시던 일이었습니다. 저는 그것이 당연한 줄 알았습니다. 학교를 마치고 집에 오면 집은 늘 정리되어 있었고, 밥은 차려져 있었습니다. 화장실은 깨끗하게 정돈되어 있었고, 옷은 입고 나갈 수 있도록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곳에서 일하면서 깨달았습니다. ‘아! 그 모든 것이 누군가의 손을 거친 것이었고, 어머니가 늘 해준 것이구나’ 어머니가 씻은 그릇에 담긴 밥을 먹으면서도 어머니가 해준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내가 직접 설거지를 하고 밥을 짓고, 밥상을 차려 함께 먹어보니 알겠습니다. ‘아, 이 모든 것을 그동안 어머니가 대신 해주었구나. 밥을 지으면서 이 밥을 먹고 아들이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었겠구나!’하는 마음이 비로소 들었습니다.

지켜야 할 규칙 vs. 깨야 할 아집

백일출가 수련을 마치고 행자원 스태프로 있으면서 유독 한 도반과 성격이 맞지 않아 갈등을 겪었습니다. 서로 생활 습관이 너무나 달랐습니다. 그 도반은 백일출가 때 배운 생활 규칙을 자기 마음대로 적용했습니다. 저는 ‘왜 저러지?’ 분별하며 다른 도반들에게도 그 도반 이야기를 많이 했습니다. 규칙은 나와 남이 서로 편하게 지내기 위해 만드는 것인데, 그 도반은 그걸 무시하고 자기 편할 대로 했습니다. 빨래 건조대를 방에 가져와 옷들을 널기도 하고, 땀에 젖은 티셔츠를 사물함 앞에 걸어두어 방에 들어오면 땀 냄새가 나기도 했습니다.

하루는 건물 내부 화장실이 환자용으로 사용 금지되어 있는데도, 그 도반이 사용했습니다. 회의가 끝나고 복도에 나가자 화장실 냄새가 진동했습니다. 그 도반에게 화장실을 사용했느냐고 묻자 “급해서 그랬다. 그만큼 급해서 사용하면 내가 환자지 뭘 그러냐”며 적반하장격으로 말했습니다. 그 순간, ‘아, 이 사람은 말이 안 통하는구나. 그냥 제멋대로구나’라고 규정했습니다. 그때부터 마음 나누기는 ‘분별 나누기’로 변질되었습니다. 마음에 들지 않는 행동은 모두 말했고, 그 도반이 한마디 던지면 저도 바로 맞받아쳤습니다. 그 도반이 제가 절 할 때 관음정근 소리가 거슬린다고 하기에, 저는 땀냄새가 거슬린다고 했습니다. 관음정근을 일부러 더 크게 했습니다. 제 말투가 거칠다고 하기에 “자기 말투는 재수 없는 거 모르나?”라고 비꼬았습니다.

여래원에서(맨 오른쪽이 김성민 님)
▲ 여래원에서(맨 오른쪽이 김성민 님)

그때 저는 비난하는 제 모습이 정당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규칙을 어겼으니 비난받을 만하다고 여겼습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설사 그렇다 해도 저의 반응이 과하다고 했습니다. 도반과 갈등에 대해 다른 보살님과 도반들에게 상담했으나 돌아오는 반응은 비슷했습니다. “분별 낼 시간에 네 마음을 들여다봐라”, “어떤 경우에도 화합이 최우선이다”, “너나 잘해라” 등. 여러 사람의 반응을 들으며 깨달았습니다. 이건 내 문제였습니다. 제가 옳고 그름의 기준이 너무 강한 탓이었습니다. 마음 나누기 시간에 그 도반은 자신이 그럴 수밖에 없었던 사정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러나 어리석은 저는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제가 하는 만큼 상대도 해야 한다는 내 기준을 들이댄 것이 문제였습니다.

그 도반은 자기가 해결하고 싶은 만큼 공부를 잘했습니다. 그렇게 그 도반은 자기가 공부하기로 정한 시간만큼 공부하고 회향했습니다. 만약 그때 제가 이해하는 마음을 내어 “도반님도 잘 안돼서 힘들지요?”라고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넸으면 어땠을까. 저 역시 고치기 어려운 부분이 있는 것처럼 상대도 그랬을 겁니다. 같은 길을 걷는 도반으로서 그 모습을 지켜보고 기다려주었다면 좋았을 걸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내가 안 고쳐지는 부분에 대해서는 상대방의 이해를 바라면서, 정작 상대의 부족한 모습에는 견디지 못하는 저 자신을 보았습니다.

효율 뒤에 숨긴 ‘내가 옳다’

다른 도반이 일수행 안내를 하는 모습에 분별심이 일어났습니다. 일을 시키려면 구역을 나누고 시간을 정해 “언제까지 끝내주세요”라고 안내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 도반은 그런 설명없이 그냥 “일하세요” 하고 던져두었습니다. ‘그러면 수련하는 행자님들이 어떻게 일을 하라는 거지?’라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모호하게 지시하면서 “시간없다”는 말을 반복하는 모습을 보면서 분별심이 더 일었습니다. “아니, 그러면 사람들이 해놓은 양을 보고, 적게 한 사람은 더 빨리하라고 안내하고, 어떻게 하면 더 빨리 할 수 있는지 알려줘야지. 말로만 ‘시간없다’고 하면 어쩌자는 거냐?”고 도반에게 따져 물으며 열을 올렸습니다.

이후 300배 정진을 하면서 참회했습니다. 그 도반은 이전에도 “다른 사람에게 일을 시키는 게 쉽지 않다”라고 말하곤 했습니다. 그건 그 도반의 성향이었습니다. 혼자 맡은 일은 누구보다 잘했습니다. 저를 포함해 그 누구도 따라갈 수 없을 정도입니다. 단지 그 사람의 특성입니다. 그걸 알면서도 막상 그 순간에는 분별심이 생겨 거침없이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리 크게 잘못된 일도 아니었고, 그 사람이 모르면 그냥 알려주면 될 일이었습니다. 괜히 열 올릴 필요는 없었습니다.

‘아, 내가 또 밖을 향했구나. 나도 못하는 게 있으면서 남이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못 하면 분별하고 나 잘났다고 그렇게 쏘아댔구나. 나는 뭐 그리 잘한다고 그랬을까. 또 눈이 확 돌아가면서 그랬구나.’ 그 도반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나만 옳다’는 생각으로 자신에게는 관대하면서 상대에게는 냉정하게 구는 제 모습을 보았습니다.

일수행 중에(맨 왼쪽이 김성민 님)
▲ 일수행 중에(맨 왼쪽이 김성민 님)

숙이고 또 숙이기

내 마음을 보겠다고 백일출가를 했으면서 밭일을 같이하는 도반에게 분별합니다.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매번 참회하면서도 또 그렇게 합니다. 그러고는 또 참회합니다. 도반들도 이런 제 꼴을 압니다. 그런데도 잘 고쳐지지 않습니다. 예전에는 스스로 탓하고 우울해하던 마음이 이제는 밖으로 향하며 독이 묻어나옵니다. 정신이 들면 도반에게 미안하다고 합니다. 저와 함께 살아줘서 고맙다고 고개를 숙입니다. 도반은 저에게 자주 말합니다. “행자님은 별일도 아닌 걸 가지고 참 화를 많이 낸다”고. 맞는 말입니다. 저 역시 제가 왜 그러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도 그렇게 하고 있고, 아마 앞으로도 또 그럴 겁니다.

정진을 꾸준히 하며 돌이키다 보면 100번 하던 게 99번 되고 98번 되고 합니다. 단시간에 100번 하던 것이 한 번 하는 수준으로 줄어들지는 않습니다. 정말 천천히, ‘되는 게 맞긴 해?’ 싶을 만큼 서서히 됩니다. 그래서 제가 또 그렇게 할 거라는 걸 압니다. 그 도반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도 모르게 화내더라도, 늦게라도 알아차리고 미안하다며 확 숙이는 것으로 택했습니다. 그러면 도반은 이해해줍니다. 그렇게 살고 있고, 이렇게 사는 게 재밌습니다.

특별한 것 없는 행복

농사 일수행 중에
▲ 농사 일수행 중에

수련원에서는 어느 것 하나 특별한 것이 없습니다. 제시간에 밥을 하고 밥을 먹습니다. 걱정할 것도 별로 없어서 예전에는 뭘 그렇게 걱정하며 살았을까 싶습니다. 맛있는 음식을 먹지 않아도, 대단한 일을 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함께 밭에서 풀을 뽑으며 웃을 때도 있고, 같이 밥을 하다가 다툴 때도 있습니다. 그냥 이런저런 일을 하며 별걱정 없이, 특별한 일 없이 살아갑니다. 그래도 살아집니다. 오히려 이렇게 사니 더 좋습니다.

예불문에 ‘명훈가피력’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의식하지 못하나 사실 많은 사람의 도움을 받고있다’는 뜻입니다. 그동안 인식하지 못한 어머니의 사랑이 얼마나 많았을까요? 어머니에 대한 감사의 마음이 커지면서 예전의 분노는 줄었습니다. 그때 ‘힘들었구나, 그래도 참 감사한 일이 많았네’를 알고 나니 그 일이 별일 아닌 것처럼 느껴집니다. 실제로도 별일이 아닙니다. 못해도 큰 일이 생기지 않고, 못한다고 욕을 좀 먹어도 별일이 생기지 않습니다. 하다 보면 잘하게 됩니다.

그리고 욕하는 사람을 보며 ‘저 부분은 왜 저리 못하나’ 싶을 때가 있습니다. 어떤 때는 그 모습을 보며 저도 욕합니다. 또 어떤 때는 화가 나서 씩씩대다가도 밥을 먹으면 기분이 좋아집니다. 다 지나갑니다. 뭐 대단할 일이랄 게 없습니다. 사는 게 별일이 아닌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냥 밥 먹고, 청소하고, 때 되면 잡니다. 이렇게 사는 게 행복합니다. 불안하지 않습니다. 충분합니다. 제가 부족하다고 스스로 학대해 온 일들이 내가 그랬었나? 싶을 만큼 남의 일처럼 느껴집니다. 지금은 충분하고, 이대로 제가 좋습니다. 다른 말이 필요 없습니다. 그냥 좋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부럽지 않습니다. 특별한 일이 없어도 괜찮습니다. 이렇게 사는 게 좋고, 이런 마음으로 쭉 살고 싶습니다.


이 글은 <월간정토> 2025년 12월 호에 수록된 백일출가 소감문입니다.

글_김성민(49기 백일출가)
편집_월간정토 편집팀

전체댓글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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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명화

잔잔하면서 깊은 울림을 주는 감동적인 수행담 감사합니다.

2026-07-20 20:18:52

육윤희

도반님 정말 재미나게 사시네요.!
저도 도반님처럼 일상에 행복하고 만족하며 다투기도 하고 싸우기도 하고 사과하기도 하면서 재미나게 살고 싶습니다. 함께해서 행복합니다. 나눠 주셔서 감사 고맙습니다.

2026-07-20 13:33:28

현광 변상용

스님께서 항상 말씀하시는 '별 일 아니네. 별거 없이 산다' 는 말씀이 떠오르는 삶인 것 같네요.
스스로 분별내고 터트리고 후회도 하고 반성도 하는 그 일상이 수행자의 길인 것 같습니다.
앞으로의 멋진 삶도 응원하겠습니다~

2026-07-20 12:3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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