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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토행자의 하루 주인공이 정해지면 이름, 연락처, 추천 사유가 전달됩니다. 오늘 주인공은 추천 사유가 없었습니다. 수성지회 이.임.숙. 이름만 대면 아~ 저절로 이해되나 봅니다. 이임숙 님은 ‘지금까지 정토행자의 하루 주인공이 나눠준 이야기 값을 이번에 내야지~’하는 마음에 인터뷰에 응했다 합니다. 이임숙 님의 이야기 값이 얼마인지 궁금합니다. 바로 만나볼게요~
아버지는 합리적이고, 일머리가 있고, 흥이 많았습니다. 저는 아버지와 성향이 잘 맞았고 늘 아버지 편이었습니다. 어머니는 한 생각에 꽂히면 이유 없이 고집했습니다.
제가 스무 한두 살 때, 아버지가 한옥을 양옥으로 새로 지었습니다. 옛집은 서향이라 여름이면 햇볕이 엄청 뜨거웠고, 겨울엔 몹시 추웠습니다. 온 가족이 새집을 남향으로 짓기 원했는데 어머니는 반대했습니다. 이유가 뭐냐고 물으면 “그냥", "처음 본채가 앉은 대로 지어야 한다”라고 했습니다. 결국, 집은 어머니 뜻대로 서향으로 지었습니다.
농사일이나 다른 일에서 어머니는 이런 식이었습니다. 어머니를 바꾸기는 힘들고, 아버지가 맞추는 게 더 쉽다는 걸 알았던지 대체로 아버지는 어머니 뜻에 맞추었습니다. 뭔가 이해할 만한 이유가 있으면 “그래, 그럴 만하다” 할 텐데 타당하지 않은 이유로 고집하는 어머니를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친정에 들를 때면 “엄마는 아빠 말 좀 잘 들어라. 그러면 집안 시끄러울 일 없다”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아들, 딸, 딸, 아들을 차례대로 낳았습니다. 첫째 키울 때 육아 서적을 많이 봤습니다. 첫째는 말도 빠르고 책에 나온 대로 밤중 수유, 이유식도 착착 수월하게 했습니다. 첫째를 기준으로 보니 둘째 딸은 늦되었습니다. 관심 있는 곳에만 흥미를 보였고 충동적인 생각을 바로 행동으로 옮겼습니다.
공공장소에서 떼쓰는 아이를 제대로 다루지 못하는 부모를 이해 못 했는데, 둘째를 키우며 저 또한 아이 양육을 잘 못 하는 부모가 되었습니다. “도대체 얘는 왜 이러지?, 이해가 안 되네?”라는 생각이 자꾸 들었습니다. 계획적인 저와 달리 둘째 딸은 즉흥적이었고 딸에게서 제 어머니와 닮은 모습을 보았습니다.

저는 둘째를 바꾸려고 애썼고 자주 혼냈습니다. 늘 노력해야만 하는 둘째와의 관계에 힘이 들었고, 노력하지 않아도 잘 맞는 첫째와 차별하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두 아이를 대하는 제 마음이 다르다는 게 괴로웠고 그 마음을 받아들이기 힘들었습니다.
어머니가 생각났습니다. 어머니는 다섯 남매 중 유독 둘째 언니에게만 모질게 대했습니다. ‘엄마는 언니한테 왜 저렇게 못되게 하노?, 엄마가 저러면 안 되는 거 아이가?’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제게서 어머니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제발 좀 저러지 말았으면 하는 마음에 어머니를 싫어했는데 제가 똑같이 한다는 게 힘들었습니다.
불교를 잘 아는 건 아니지만 어릴 때부터 불교 문화에 익숙했습니다. 어머니는 초파일에 등을 켰고 절에 갔습니다. 도서관에서 불교 관련 책을 빌려보면 무슨 말인지 모르지만 좋은 말 같았습니다. ‘좋은 말인데, 그래서 나는 어떻게 하라는 거지?’라며 의문을 가졌습니다.
어느 날, 도서관 신간 코너에서 세 권짜리 법륜스님 즉문즉설 책을 만났습니다. 지금까지 보던 불교책과 달리 가족 갈등, 직장 문제 등 일상 이야기만 하는데 ‘이 안에 뭔가 있다’라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습니다. 법륜스님 책을 찾아 읽으면서 ‘기도’ 책을 보았고 ‘이 스님을 찾아가고 싶다’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둘째가 초등학교 5학년 때쯤 정토회를 찾았습니다.

2013년 불교대학에 입학했고, 법륜스님이 대구법당 불교대학 학생들을 만나는 자리에서 질문했습니다. 아이에게 소리 지르고 화내는 점을 고치고 싶은 마음이 너무 절실해 ‘스님이 뭐를 하라캐도 한다’라는 마음으로 물었습니다. 스님은 “아이에게 와락 화를 쏟아내면 천 배를 하라, 천 배를 서른 번 하면 괜찮아질 거다”라고 했습니다. 그 말이 엄청 반가웠습니다. ‘서른 번만 하면 되는구나. 못할 게 뭐 있노’
“제가 어리석어 어머니를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참회합니다”를 명심문으로 기도를 시작한 삼 일째, 눈물이 많이 났습니다. ‘그래, 엄마도 나랑 같았겠구나. 엄마도 몰라서, 내가 안 되듯이 엄마도 정말 안 돼서 그랬겠구나, 엄마는 나처럼 정토 불교대학을 다니지도 않았고, 불법을 공부하지도 않았으니 당연히 더 안 되지’라고 참회했습니다.
친정에 들렀을 때, 미처 다 하지 못한 천 배를 시간에 쫓기며 정신없이 하는데 어머니가 “고춧가루는 있나?, 마늘 줄까?” 하며 계속 물었습니다. 어머니가 하는 말에 대꾸를 안 하고 계속 절을 하는데 갑자기 “엄마는 늘 이렇게 사랑을 주는데 내가 몰랐구나, 아무리 사랑을 주어도 내가 받지 못했구나.”라고 확 느꼈습니다.
어머니는 늘 사랑을 주고 있었는데, 저는 ‘이런 게 사랑이야’ 하며 제 방식을 따로 정해놓고 있어 어머니의 사랑을 몰랐음을 깨닫자 참회의 눈물이 정말 많이 났습니다. 늘 “이것 좀 하고, 저것 좀 하지 마” 이러던 제가 어머니의 방식에 “그래요, 그래”하고 조금 편안하게 받아들였습니다.
천 배를 백일 간 쭉 했습니다. ‘스님이 서른 번 하라 했는데 나는 백번이나 했다’ 싶던 어느 날, ‘이것도 내 마음대로 했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화를 왈칵 내쏟으면, 참회를 하고 천 배를 하라고 했는데 저는 그냥 제 마음대로 날을 정해 천 배를 백일 동안 했습니다. 늘 제 식대로, 제 뜻대로 하면서 그런 저를 보지 못했습니다.

둘째가 고등학교 입학 후 친구 관계에 어려움을 겪었고 학교에 다니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6년 이상 정진해왔고 평소 300배, 500배 정진을 늘 해서 아이를 이해하고 지지하는 입장에 설 수 있었습니다. 일주일에 한 번 상담 다니고, 매일 편지를 써주며 ‘너를 이해한다.’라는 마음을 전했습니다.
정진하지 않았다면 화를 참으며 많이 괴로웠겠지만 ‘이제 내가 과보를 받는구나, 기꺼이 받아야지’하는 마음에 힘들지 않았습니다. 제 생각, 기준으로 판단하고 맞다/틀리다, 좋다/싫다가 많았는데 모든 걸 제가 일으켰다는 걸 수행으로 체험하니 모든 걸 문제 삼을 바가 아님을 알았습니다. 다른 아이들은 엄마가 정토회 다니나 안 다니나 비슷하다고 하지만 둘째 딸은 제가 정토회 다니는 걸 제일 좋아합니다. 제가 많이 달라졌고 딸에게 맞추려 하는 걸 많이 느낀다고 합니다.
정토회 활동에 온 힘을 쏟아부을 때 ‘나눔의 장’으로 며칠씩 집을 비우고, 들어오자마자 명상한다고 방에 들어가 버리고, 아침밥을 안 차리기도 했습니다. 남편이 화내는 상황에서 그 순간을 빨리 넘기고 마무리 짓기 위해 “미안하다”라고 했고, 내일 또 나가야 하니 오늘 숙였습니다.
세 번 연달아 남편 마음을 불편하게 한 날이었습니다. 세면대가 막힌 걸 남편이 발견했습니다. 꿀꺽꿀꺽 삼키고 참았던 남편의 화가 폭발했습니다. 그 순간 제가 좋아서 하는 일이니 봐주고 참았던 남편 마음을 확 느꼈습니다. 예전엔 숙이고 미안한 마음이 100중 80이었다면 그날은 100중 100, 어떤 이유 없이 온전히 숙이는 마음이었습니다. “미안하다, 정말 미안하다”라는 말이 절로 나왔습니다. 그 경험에서 큰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다른 사람이 지적할 때, 받아들이기가 잘 될 때도 있고 안 될 때도 있습니다. 예전에는 탁 날아오는 공의 속도만큼 제가 확 쳐냈습니다. 지금은 야구 글로브로 착 받아내는 느낌이 들 때 기쁩니다.

남산법당 개원할 때 부총무를 했습니다. 처음 만드는 법당이라 활동가가 없었습니다. 대구법당에 입학한 불교대학 학생 중 남산법당과 가까운 곳에 사는 학생을 남산법당으로 옮겨 불교대학을 진행하고 회계 업무, 실천활동, 수행법회를 모두 했습니다. 할 사람이 없으니 다 했습니다. 셋째 아이가 초등학교 2학년, 막내가 7살 때였는데 소임이 크니 딴생각이 없었습니다. ‘내가 할까, 말까’라는 생각이 전혀 없었습니다. 이만큼 해야 하니 이만큼 마음이 나서 했습니다.
통일특별위원회 활동을 할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행복학교를 개척하며 구미, 포항, 경주, 울진에서 강연이든 홍보든 소임만큼 아무 망설임 없이 그냥 했습니다. 모둠장을 하면 딱 모둠장만큼 했습니다. 온 마음을 내어서 하는 일도 많지만, 소임 덕분에 하는 일도 많았습니다. 해보면 그 자리에서만 느낄 수 있는, 알아가는 기쁨이 있어 활동을 이어갈 수 있었습니다. '오늘의 발걸음이 내일의 발걸음을 부르는구나'를 체험하면서 ‘소임이 복이다’라는 말에 고개를 끄덕입니다.

불교대학을 다닐 때 "비야 와라, 바람아 불어라, 파도야 쳐라"라는 법문이 있었습니다. 전에는 비가 안 오고, 바람이 안 불고, 파도가 없기를 바라며 조마조마했습니다. 지금은 어떤 일이 일어나더라도 기꺼이 받아들이고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는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방향과 길을 찾았으니 가기만 하면 된다는 든든한 마음입니다.
천 배를 서른 번도 아니고 백 번이나 했다는 주인공 이야기를 듣고 ‘헉! 대단하다’ 싶었습니다. 봉사 일을 할 때도 슬렁~슬렁~ ‘하기만 하면 되지’라는 게 요즘 제 마음입니다. 온 마음을 내어 하지는 못하지만 가늘고 길게 오래오래 해볼까 합니다.
글과 편집_곽도영(대구경북지부 구미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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