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김해지회
문에서 문으로, 마음에서 마음으로

2차 만일결사 입재 3일 전, ‘자유로움, 그 첫 마음 하나로 간다.’라는 이현주 님을 화상으로 만났습니다. 소임을 맡으면 책임감에 자유를 저당 잡힐까 싶어 망설이는 리포터에게 닿은 귀한 인연이었습니다. 이현주 님은 일찍이 ‘행자의 하루’에 소개된 바 있어 이번엔 1-10차 김해지회장 소임을 회향한 소감 위주로 담았습니다. 인터뷰 내내 자유로움이 반짝이던 이현주 님의 마음 나누기 들어봅니다.

이현주 님
▲ 이현주 님

소임을 받고 아파 눕다

저는 9~10차 천일결사1 때 통일특별위원회(이하 통특위) 소임을 맡았습니다. 5년 정도 재미있게 하고 있었습니다. 9차에는 거의 혼자서 했는데 ‘여기 지회에 통특위가 뿌리를 내리려면 3년은 무조건 견디자. 여기서 내가 3년을 못 견디고 이 소임을 그만두면 다음에 오는 사람이 다시 3년을 고생해야 한다.’라는 마음으로 3년을 견뎠습니다. 법당 활동가들을 일곱 여덟 번 쫓아다니며 설득해 사람을 모았습니다. 10차에 예닐곱 명이 됐습니다. 이제 머릿속으로만 했던 사업들을 펼칠 수 있겠다 싶어 신이 났었습니다.

10차 중반에 정토회가 온라인 체제로 개편되면서 김해지회장 소임이 주어졌는데 제가 세 번까지 거절했습니다. ‘통특위 일을 해야 된다. 지금 꽃을 피우고 있다. 지병이 있는 나를 길게 쓰려면 지회장 일은 안 맞다’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수락하고도 거절하는 마음이 가시지 않아 삼 일 내내 몸이 많이 아팠습니다. 그래도 교육과 회의엔 들어가야 해 앉아 있었지만 마음은 방바닥에 누워 있었습니다. 삼 일이 지나니 ‘아! 이 또한 인연이겠다.’라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내가 만들고 내가 키웠으니 그 꽃을 보겠다는 집착이 있었음을 알아차렸습니다. 탁! 놓고 지회장 소임을 했습니다. 형태는 흔쾌히 받아들이는 것처럼 보였지만 내용은 엄청난 파도 속이었던 셈입니다.

새터민 나들이 (왼쪽 앉은 이 이현주 님)
▲ 새터민 나들이 (왼쪽 앉은 이 이현주 님)

하루에 회의를 7개 한 적도 있는데 통특위 일과는 너무나 구별되는 일이었기 때문에 시간만 채우고 앉아있기도 했지만, 삼 일째부터 마음을 내고 받아들이는 저를 보며 전보다 나아졌음을 알았습니다. 놓아야 할 때 놓지 못함이 통특위 일에 대한 애정이 깊어 그런 줄 알았는데, 내 것이라는 아집으로 일하고 있었기에 생긴 마음임을 알자 처음처럼 가벼워졌습니다.

첫 마음

<깨달음의 장2> 문을 열고 나왔을 때의 첫 마음은 언제나 선명합니다. 바람에도 걸림 없이 자유로웠고 새털처럼 가벼웠습니다. 딸이 고3인데도 ‘모르겠다’하고 떠났던 걸음이었습니다. 이 길로 평생 가리라 했습니다. 남편의 사업이 어려워지면서 생긴 돈 고생이 저에게는 큰 괴로움이었기에 (자세한 이야기 2021.1.4.일자 ‘정토행자의 하루’ 참조) '세상에서 돈으로 자유로울 수가 없다면 오직 이 법으로 자유롭게 살아야겠다' 했습니다. 외면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적인 어떤 욕구의 끝은 나를 파괴하고 상대도 파괴하는 것이겠구나.’ 깨닫고 스스로 자유롭게 하는 것은 ‘이 진리밖에 없겠다.’ 생각했습니다.

화상 인터뷰
▲ 화상 인터뷰

수행을 이어갈수록 돈은 작은 문제였습니다. 성격이 급하고 일을 몰아쳐 하는 저의 업식은 개인적 수행에서나 통특위에선 뚝심으로 작용했지만, 지회장 소임을 하면서는 경계에 부딪혔습니다. 소임을 시작하고 보니 모르는 것이 너무 많았습니다. 회원들도 양산지역 전법 회원 정도만 알고 그 외 김해, 장유, 창령에 있는 회원들은 거의 모르는 얼굴이었습니다. ‘잘하고 있는 나를 왜 데리고 와서…’라는 마음이 일던 날도 있었습니다. 통특위 일을 5년쯤 하다 다시 정토회 일을 하니 용어도, 일의 내용도, 낯설어 계속 묻고 또 물으며 일했습니다. 저 혼자선 할 수 없는 너무 모르는 세계니 ‘업식을 거스르는 또 다른 기회겠구나.’ 생각했습니다. ‘맞추면서 가자, 하나하나 물으면서 가자.’ 그러면서 갔더니 전체를 보는 시야가 생기며 조급히 서두르기보다 여유를 갖고 기다려야 할 때는 기다리는 습이 익혀졌습니다. 그날의 첫 마음이 계속 저를 나아가게 했기에 만나게 된 '또 다른 자유'가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모두의 기쁨

지회장은 관리해야 하는 인원이 많습니다. 백 명을 상대해도 화나고 짜증 나지 않는 사람은 열 명을 상대할 때, 감사합니다. 서른 명도 감사합니다. 아흔 명이면 애를 쓰지만 감사합니다. 백 명이 훌쩍 넘으면 애를 못 씁니다. 다 걸립니다. 이럴 때 진짜 공부가 됩니다. 자신의 능력의 60%만 하면 좋은 사람 소리 들으며 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자유로움을 느끼기엔 부족했음을 지회장 일을 하며, 경계에 부딪히며, 수행해보니 알겠습니다.

22년 정토불교대학 홍보(오른쪽 이현주 님)
▲ 22년 정토불교대학 홍보(오른쪽 이현주 님)

2022년 봄 '행복학교 1만 만들기' 할 때가 떠오릅니다. 김해지회는 김해, 장유, 양산, 밀양, 창령법당이 모여 ‘온라인 김해지회’가 됐습니다. 홍보하려니 전법 회원들은 생방송으로 불교대학 진행하느라 엄청난 피로감에 있었고, 일반회원들은 변화된 온라인에 적응하느라 힘들어하고 있었습니다. 일일이 전화를 걸어 ‘전화전법광장’을 함께하자 독려했습니다.

일반회원 30명과 전법 회원 28명의 마음이 하나로 뭉쳤습니다. 여기에 지원 담당자의 뛰어난 업무 실력이 더해지고, 개인의 일에 대한 능력이나 봉사자의 컨디션에 따라 속도를 조절해 능률을 높였습니다. 컴퓨터 입력을 힘들어하는 도반은 수기로 적어가며 힘을 보태는 등 회원들은 전화로, 전단으로, 현수막으로, 열정을 다했습니다. 특위 활동가들도 지회 홍보방에 꾸준히 홍보물을 올리고 다른 회원의 게시물에 댓글과 이모티콘으로 분위기를 활기차게 만들며 홍보에 집중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했습니다. 이렇게 삼박자가 잘 맞아서 김해지회는 맨 먼저 목표한 접수 인원을 100% 달성 할 수 있었습니다. 내가 옳다는 목소리를 낮추고 마음을 하나로 모은 힘이 만든 모두의 기쁨이었습니다.

떠나면서

통특위 일도 떠나와서 보니 열심히 성실하게 임한다고 하면서 지회 내 수행 정진하는 일에 소홀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정작 해야 할 지회 내의 여러 수련과 법회에 조금이라도 일정이 바쁘면 참석하지 않았는데, 통특위 제 후임자는 정토회의 정진 프로그램에 다 나오고 소임도 열심히 하는 것을 보면서 놀랐습니다. 반성하는 마음이 저절로 일었습니다.

JTS 연탄봉사 (가운데 이현주 님)
▲ JTS 연탄봉사 (가운데 이현주 님)

1년 5개월간의 지회장 소임을 내려놓을 때 시원섭섭했습니다. 지회장은 회원들과 으뜸절 봉사나 실천 활동 등 지회 행사에 서슴지 않고 뛰어다녀야 하는데 저는 지병으로 몸이 힘드니 그러지 못한 것이 제일 아쉽습니다. 짧았던 임기이기도 했지만 일을 익히고 처리하는데, 급급해 지역 사업을 만들어내지 못한 것도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김해지회는 면적이 넓습니다. 인근 부산처럼 행사가 있을 때 바로바로 모이는 것이 힘듭니다. 그렇다고 온라인이 쉬운 것도 아닙니다. 김해 쪽은 초전법륜 성지라 불심이 높지만, 옆에서 온기를 느끼며 일했던 사람들은 옛날을 그리워합니다. 저 역시 사람의 온기가 있을 때 소통이 된다고 느낍니다. 그러나 5차 전법 교육생들과 온라인 수업을 13주 한 후 밖에서 만나 환경실천 활동으로 줍깅을 할 때 확실하게 느꼈습니다. 어색함은 잠시였습니다. 어제 만난 사람처럼 친밀하게 쓰레기 줍고 마음 나누기를 하며 유익하고 재미있는 시간을 갖고 보니, 온라인에 실천활동을 더한다면 최고의 시스템이 되겠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2차 만일결사 시작이라는 중요한 시기에 건강한 도반이 후임을 맡아 다행이고 감사합니다.

새로운 소임

이번에 맡은 소임은 회원활동국 교육연수 서원행자교육 담당입니다. 이 일이 제겐 또 다른 세계입니다. 지회로 내려오는 기획안, 진행안, 취합시트, 공지가 그저 만들어지는 것이려니 했습니다. 지회의 상황은 고려 안 하고 내려보내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습니다. 공지 하나도 시기가 맞는지, 대상 또한 잘 그룹핑 되었는지, 회의를 통해 살피고 조율하고 조사 하나까지 점검하는 것을 보고 뜨끔했습니다. 그동안은 어느 배우의 수상소감처럼 잘 차려진 밥상에 숟가락만 얹으며 지내왔다는 걸 알았습니다. 이제 새로운 소임 한 달째, 새로운 문을 열고 새로운 마음을 만나며 매일 매일 시야를 넓혀갑니다.


이현주 님의 작은딸이 얼마 전 취직하고 문자를 했답니다. ‘엄마의 성질과 엄마의 사랑을 그대로 배웠습니다. 고맙습니다.’ 이현주 님은 자신의 급한 성질을 계속 고쳐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딸이 고맙다고 말해주니 감사했다는 겁니다. 그 말을 듣고 제가 덩달아 울컥했습니다. 고쳐야 할 성질이 뭐가 있는지 모르게 시원한 성품으로 십수 년 몸 아끼지 않고 정토회에 봉사해준 덕에 저야말로 숟가락만 얹으며 행복했습니다. 소임이 굴레가 되는 것이 아니고 자유가 된다는 말씀 새기며 저 또한 문에서 문으로, 마음에서 마음으로, 나아 가겠습니다. 고맙습니다.

글_이주현 희망리포터(부산울산지부 동래지회)
편집_권영숙(서울제주지부 서초지회)


  1. 천일결사 정토회는 개인의 행복과 정토세상 실현을 위해 1993년 3월 만일결사를 시작. 3년을 정진하면 개인의 의식 흐름이 바뀌고, 30년(만일)을 정진하면 한 사회가 바뀔 수 있다는 믿음으로 3년(천일) 단위로 천일결사 정진을 이어오고 있음.  

  2. 깨달음의 장 4박 5일 기간의 정토회 수련 프로그램. 평생에 한 번만 참여할 수 있음. 

전체댓글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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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현정

느긋한 말투와 눈을 떼지 못하고 집중하게 만드는 말씀의 힘이 어디서 나왔는지 알겠습니다.
감동입니다~

2023-07-01 06:46:26

배병갑

지병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소임을 끝내 이루고 해놓은 밥에 숟가락만 얹었다는 겸양의 자세는 수행자가 아니라면 쉽게 할수없는 말이라 생각합니다. 깊은 맛이 우러나는 국 한그릇 잘 먹었습니다.

2023-06-01 09:29:41

김민주

잘 읽었습니다 소임에 대한 사연들을 들으니 참 재미있고 배울점이 많네요 감사합니다

2023-05-20 06: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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